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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다니엘 영재교육원 원문보기 글쓴이: 천사
머리말 1. 열린 예배를 시작하다 2. 처음에 생긴 일 3. 시행착오를 통해 배우다 4. 토요일 밤의 기본요소 |
5. 열린 예배의 성경적 토대 6. 열린 예배를 준비하는 7단계 7. 배후에서 일어나는 일들 8. 작은 교회에서 열린 예배를 하려면 9. 열린 예배를 통해 배운 것들 10. 열린 예배에 가장 흔히 제기되는 질문들 |
에드 답슨(Ed Dobson)
미시간 그랜드레피즈에 있는 갈보리 교회 담임목사.
리더십 저널(Leadership Journal)의 편집 고문이며 크리스체너티 투데이(Christianity Today)의 상임 편집자로서 영향력 있는 책들을 집필하였다. 무디 성경협회는 1993년에 그를 ‘올해의 목회자’로 선정했다.
머리말
이 책은 교회의 근본적인 변화를 다루고 있습니다. 즉 한 전통적인 교회가 불신자에게 문을 열기 위해 어떻게 비전통적인 예배를 시작하게 되었는지를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지난 5년 동안 회의주의자와 무신론자와 기독교를 의심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일해 왔습니다. 이 책은 그 사역의 결과인 셈입니다.
갈보리 교회의 담임 목사인 저는 우리 교회가 불신자들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기독교적인 배경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다가갈 수 있었지만 완고한 회의주의자들에게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저는 몇몇 친구들과 함께 교회와 별 상관없이 사는 사람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또 그에 적합한 사역을 어떻게 시작할 수 있을지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거의 일년 동안 관련 서적들을 읽고 사례들을 조사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을 결정했습니다.
예배의 형식은 비전통적인 방식을 채택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거의 반전통적이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로 파격적인 방식이었습니다. 음악은 현대적인 록큰롤을 사용했고 연극을 상영했으며 목회자도 주로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었습니다. 예배 진행 형식은 자유로웠습니다. 저는 처음부터 이 비전을 함께 나누어온 동료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또 ‘열린 예배’ (구도자에게 민감한 예배, seeker - sensitive service)를 발전시키는 과정 속에서 갈보리 교회 교인들이 보여준 관용과 기도와 지원에 감사드립니다. ‘토요일 밤’이 매주 열릴 수 있도록 수고한 스텝과 봉사자들에게도 감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토요일 밤’을 찾아온 많은 불신자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그들의 질문과 갈등과 삶은 저에게 큰 영향을 끼쳤으며 저를 변화시켰습니다. 이 5년간의 경험은 제게 놀라운 여행인 동시에 앞으로 계속할 여행의 출발점입니다.
1. 열린 예배를 시작하다
그 순간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날 ‘토요일 밤’의 주제는 ‘부모님을 용서하는 일’이었다. 나는 청바지에 스웨터 차림으로 등받이 없는 의자에 걸터앉아서 이 주제에 대해 이야기한 다음 질문에 대답하는 시간을 진행하고 있었다. 질문지를 절반쯤 넘겼을까. 인쇄된 글씨의 질문지가 나왔다. ‘누군지 모르지만 집에서 아예 질문지를 작성해 왔구나. 그렇다면 아주 심각한 문제겠다’ 나는 속으로 생각하며 질문 내용을 읽어나갔다.
“우리 어머니는 내가 어릴 때 돌아가셨다. 그래서 아버지는 재혼을 했는데, 아주 여우같은 여자랑 했다. 내 평생에 제일 큰 기쁨은 그 여자가 죽었을 때 그 무덤가에서 영광의 찬가를 부르는 것이다.”
나는 특히 ‘여우 같은 여자’라는 말을 크게 읽었다. 청중 사이에서 염려 섞인 웃음 소리가 터져나왔다. 그때 어떤 사람이 벌떡 일어나 말했다.
“그건 내가 쓴 겁니다.”
나는 당황했다. 그런데 그가 계속 말을 이었다.
“사람들이 왜 웃는지 모르겠어요. 나는 지옥을 지나가는 기분이라구요. 이건 재미있는 일이 아니에요!”
갑자기 청중석이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조용해졌다. 아무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는 것 같았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먼저 사람들이 웃은 것에 대해 사과했다. 그리고 그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용서가 무엇이며, 이 상황에서 용서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 말했다. 약 10분간 말했는데도 참 긴 시간처럼 여겨졌다. 그날의 순서가 다 끝나자 그를 안아주고 격려해 주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섰다. 나는 그 줄이 끝날 때까지 기다린 후에 마침내 그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맙습니다. 형제를 사랑합니다.”
그 다음주에 그 청년(이름이 데이비드였다)이 보낸 편지를 한통 받았다. 편지에는 자신의 쓰라린 유년 시절과 종교적으로 학대받은 일, 그리고 뇌성마비로 이제까지 고통받아 온 이야기가 쓰여 있었다. 그는 기성교회는 농담거리에 불과하다고 말하면서 인생에 무슨 의미나 목적이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했다. 그리고 편지 끝무렵에, ‘토요일 밤’은 지금껏 참석했던 예배와는 달리 사랑받고 용납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는 예배 였으며, 설교가 정직하다고 느낀 유일한 예배였다고 썼다. 놀랍게도 데이비드는 신학교 졸업생이었다. 데이비드는 그 후에도 계속해서 ‘토요일 밤’에 참석하면서 그리스도께 새로운 믿음을 갖게 되었다.
우리는 왜 ‘토요일 밤’과 같은 모임을 하는가? 데이비드 같은 사람들 때문이다. 삶에서 아무 의미나 목적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 하나님이나 성경에는 거부감이 없지만 전통적인 기독교는 거부하는 사람들 때문이다.
‘토요일 밤’ 사역을 해온 지난 5년 동안 수백 명의 불신자들이 이 예배에 참석했다. 그들의 질문에는 자신들의 상처와 갈등이 극적인 방식으로 반영되어 있었다. 그 질문들은 전형적인 ‘교회식’ 질문이 아니라 매일 생활하면서 부딪치는 실제적인 질문들이었다. 그 수백 가지 질문들 중에서 대표적인 것들을 뽑아보면 다음과 같다.
♣ 하나님이 내게 두 번째 기회를 준다는 얘기에 나는 신경쓰고 싶지 않다. 내가 12살이 되도록 성적인 학대와 육체적인 학대를 받을 때 당신들의 하나님은 어디 있었는지 묻고 싶다. 그런데도 내가 하나님께 두 번째 기회를 드려야 할 이유가 있는가?
♣ 하나님이 단지 심리적인 버팀목이 아니라 실재하는 분이라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 과거의 상처로 생긴 두려움과 벽을 목사님은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어떻게 하면 두려움을 몰아내고 신뢰하는 생활을 시작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왜 종종 자신을 인간의 수준에 제한하실까요?
♣ 내게 상처를 준 사람을 어떻게 하면 사랑할 수 있을까?
♣ 오래 사귀어 왔지만 사랑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해서 헤어지려 하는데 정직하게 헤어지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 불교, 힌두교, 모슬렘과 같은 종교들을 악마가 조종한다고 생각합니까?
♣ 사람들은 일요일에 교회 갈 때는 정장을 하면서 토요일 예배 때는 왜 그렇게 하지 않는가? 이 시간을 편안한 예배라고들 하는데 주일 예배와 무슨 차이가 있는가?
♣ 어떤 문제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고 있다면, 그리고 그 문제를 위해 계속 기도했는데도 사람들이 여전히 상처를 받고 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 하나님은 시련이나 환난으로 우리를 벌주시는가?
♣ 약혼한 사이라도 성관계를 가지면 안됩니까? 안 된다면 그 이유가 뭡니까?
왜 열린 예배인가?
윌로우크릭 커뮤니티 교회가 전통적인 교회의 사고방식에 근본적인 도전을 주었다는 사실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사람들은 윌로우크릭 교회의 세미나에 몰려가서 여러 가지 자료들을 구입하며 그 교회의 모델을 배우기 위해 애쓰고 있다. 윌로우크릭의 모델을 토대로 한 사역이 발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가 열린 예배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동기가 무엇인지 나는 계속해서 점검하고 있다. 그 과정 가운데 몇가지 강력한 이유들이 떠올랐다.
1. 우리는 복음주의 문화에 둘러싸여 있다
복음주의적인 그리스도인들인 우리는 우리만의 작은 세계에 격리되어 있다. 이 세계는 근본적으로는 바깥의 넓은 세계와 접촉하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우리 나름의 영웅과 책과 미디어와 음악과 언어와 교육제도와 금기사항 등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화는 그 영역을 확장하지 못한 채 다음 세대로 전달되고 있다. 우리 시대의 비복음주의적인 세대에 다가가려면 두 세계를 나누는 전통적인 경계선을 뚫고 나아가 사람들이 살고 있는 현장에 복음을 연결시켜야만 한다.
2. 우리는 외국에 파송된 선교사들이다
복음주의라는 하위문화권에 살고 있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전파하려면 복음주의 바깥 문화권과 그 언어를 이해해야 한다. 우리가 알다시피 이것은 다른 나라에 선교사를 보낼 때 적용하는 원리이다. 선교사들은 먼저 파송된 지역의 언어와 문화를 배워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복음을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지역에 영어권의 선교사를 보내면서 영어만 쓰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스페인어권에서 영어만 사용하는 것은 비합리적일 뿐 아니라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세상의 언어를 쓰는 회의적인 청중들에게는 복음주의의 언어만을 사용해서 복음을 설교하고 있는 것이다. 비극은 그들이 우리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과 그들의 귀에는 우리의 말이 마치 외국어처럼 생소하게 들린다는 사실을 우리가 모른다는 것에 있다.
열린 예배를 어떻게 시작할까?
사람들은 자주 열린 예배를 어떻게 시작해야 하느냐고 묻는다. 그들은 이 예배를 시작하는 데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한다. 전통적인 환경 속에서 열린 예배를 시작하려면 많은 것들이 필요하지만 그 중에서도 꼭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있다.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려는 열정이 있는가?
만약 여러분의 얼굴에 담배 연기를 내뿜거나 여러분 앞에서 술마시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또 불신자들만 있는 자리에 끼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남들에게 비난받는 것을 참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안전이 보장되는 하위문화권에 머물러 있는 편이 낫다. 어쩌다가 방황하는 사람들이 당신의 우리 안에 들어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도 괜찮은 일이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사람들을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고 받아주고 만나주는 일에 열심을 가지고 있다면, 복음 전도에 열정을 품고 있다면 당신은 열린 예배를 인도하기에 충분한 자격을 갖춘 것이다.
교인을 늘리기 위해 예배를 시작하지 말라. 무언가 변화가 필요하기 때문에 열린 예배를 시작하지 말라. 교회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해서 열린 예배를 시작하지는 말라. 교인들이 원한다고 해서 열린 예배를 시작하지 말라. 단지 하고싶다는 이유로 열린 예배를 시작하지는 말라. 오직 우리 주님을 모르는 사람들을 향한 인격적이며 뜨거운 열정이 넘친다면 열린 예배를 시작하라. 이런 열정이 없다면, 또 열정이 있더라도 진짜 열정이 아니라면 열린 예배는 실패할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의 마음이 거기에 없기 때문이다. 불신자들은 당신이 그들의 존재를 불편해 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먼저 알아차릴 것이며, 당신을 전형적인 위선적 ‘기독교인’으로 치부해버릴 것이다.
정직한 자기 평가
내 첫 번째 목회경험은 버지니아 주의 산간 마을인 부에나비스타에서 침례교회를 시작한 일이었다. 33명으로 시작했는데 2년이 안되어 200명이 넘는 회심자들이 침례를 받았다. 나는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그리스도를 전했으며 교회에 새로 나온 사람들을 심방했다. 주일 학교에서는 물총 싸움 주일, 연 날리는 주일, 풍선부는 주일 등 여러 가지 행사를 벌였다. 심지어 주일에 건물 지붕에 올라가서 설교를 한 적도 있었다. 이 모든 선전 활동의 요점은 복음 전도에 있었으며, 그런 일들을 통해 교회 다니지 않던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었다. 20년이 지난 지금 나는 물총이나 풍선은 사용하지 않는다. 그 대신 연극을 사용하고 있다. 또 일일이 집을 찾아 다니는 대신 ‘옛날’ 팝송을 틀어주는 라디오 지역방송을 통해 ‘랩’으로 광고를 한다. 지붕에서 설교하지는 않지만 청바지에 간편한 셔츠를 입고 등받이 없는 의자에 걸터앉아 설교한다. 시대가 변했고, 문화가 변했고, 방법이 변했다. 그러나 동기는 여전히 동일하다. 즉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가능한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본질적인 질문들
다시 말하지만 열린 예배를 시작할 때 우선되는 조건은 복음전도에 대한 열정이다. 만약 다음과 같은 질문 앞에 두려움이나 위협을 느낀다면 열린 예배를 시작하는 일을 신중하게 재고하라. 아니면 이런 사람들에게 민감해질 수 있도록 하나님의 도움을 간구하라.
♣ 그 동안의 친밀한 관계를 손상시키지 않고서도 성적인 접촉을 그만둘 수 있을까요? 실제적인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우리는 장성한 그리스도인들이며 사귄지 오래된 연인 사이입니다. 지금까지 성적인 접촉을 가져왔는데 어떻게 하면 이 일에서 떠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이 우리를 심판하실까봐 두렵습니다. 우리는 둘 다 이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고 그만 두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생각대로 잘 안 됩니다. 결정적인 성교는 하지 않았지만 우리가 어느 선까지 왔는지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 결혼하기 위해서 약혼한 사이라면 어느선까지 접촉할 수 있는가?
♣ 결혼하지 않았으면서도 성적인 접촉을 해왔거나 그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누구라도 내 말을 들어보기 바랍니다. 나는 거기에서 생기는 죄책감과 마음의 고통이 어떤 것인지 압니다. 성적인 접촉 없이 혼자 지내면서도 하나님의 용서와 행복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산 증인이 바로 저입니다. 아무리 죄를 짓고 하나님의 뜻을 거슬렀다 해도 당신은 하나님의 도움으로 “안돼”하고 말할 수 있어요.
♣ 하나님은 간음죄를 어느 정도까지 용서하시는가?
♣ 나는 전에 만난 남자에게 성적인 학대를 받았다. 재혼한 남편을 신뢰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된다. 옛날의 나쁜 기억을 떨쳐낼 수가 없다. 어떻게 해야 할까?
♣동성연애는 일부일처제의 관계라고 해도 하나님이 정해놓은 경계선을 넘은 것인가?
♣ 자위행위는 죄인가?
♣ 이런 예배 시간을 마련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2. 처음에 생긴 일
정확하게 언제부터 열린 예배를 생각하게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1987년 3월 갈보리 교회의 담임 목사로 부임했을 때까지만 해도 열린 예배를 할 계획이 없었다. 그런데 내가 이 예배를 고려하게 된 몇 가지 요인이 생겼다.
첫째로 나는 전에 ‘청소년 지도자’로 일했다. 그래서 사역하는 동안 고등학생들과 젊은이들에게 설교하였다. 나는 청소년 캠프, 운동경기대회, 청소년 부흥회, 독신 성인들을 위한 행사와 대학 교회에서 설교하였다. 이 행사들의 주변 여건은 대부분 ‘비전통적’이었다. 나는 캔사스 시의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젊은이’ 모임에 여러 번 참석했는데, 특히 이 단체에 감명을 받았다. 이 모임은 십대들이 2천명 이상 모이는 토요일 밤 집회를 매주 개최했다. 그랜드래피즈에 온 이후 나는 그 단체의 집회와 비슷한 무언가를 이 지역에서 시작하고 싶었다.
둘째로 나는 빌 하이블스 목사와 윌로우크릭 커뮤니티 교회에 대한 글을 여러 편 읽은 적이 있었다. 나는 그 교회의 예배 실황을 담은 비디오를 하나 구했다. 혁신적인 예배에 대해 계속 생각해오던 터라 기대를 하며 비디오 테이프를 틀었다. 그런데 음악이 귀에 거슬렸다. 밴드가 연주하는 ‘서곡’을 들으면서 떠오른 생각은 만약 갈보리 교회에서 이런 음악을 연주한다면 사람들이 내 귀를 붙잡고 교회 밖으로 쫓아내리라는 것이었다. 나는 낙담하면서도 그 테이프를 끝까지 보았다.
셋째로 나는 주일 아침 예배에 참석하는 교인들의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점에 대해 생각했다. 그렇지만 이런 성장은 석연치 않은 것이었다. 새신자들은 대부분 다른 교회에서 옮겨온 신자들이었다. 나는 복음주의 교제권 밖에까지 나아가고 싶었다. 신자들만의 유입은 세상을 복음화하라는 명령을 왜곡시키는 일로 느껴졌다. 갈보리 교회는 복음주의의 경계를 뚫고 나가서 교회에 전혀 다니지 않는 불신자들과 접촉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심지어 당회에 다른 교회에서 옮겨오는 신자들을 더는 받아들이지 말자고 제안하기까지 했다. 나는 성경을 가르치는 일이 좋았고 교회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더 많은 불신자들이 회심하는 일을 보고 싶었다.
열린 예배의 준비 단계
나는 당회에서 이러한 생각을 나누면서, 불신자들에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는 작은 위원회를 구성할 수 있도록 허락을 구했다.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젊은이’의 집회에 대해 설명했다. 당회원들 중에서도 십대 시절에 이 집회에 참석해본 사람이 여러 명 있었다. 나는 80년대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젊은이’ 집회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시했고, 당회는 이 아이디어에 대해 좀더 연구한 다음 당회에 보고하도록 허락해 주었다. 위원회의 구성원들은 전통을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는 사람들이었으며 불신자들을 향한 열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첫 번째 회의에서 우리는 논의를 진전시키기 위해 두 가지 주요 문제를 찾아냈다.
1. 누구에게 다가가고자 하는가? (목표가 되는 청중)
2. 그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어떤 형식의 예배가 필요한가?
우리는 이 문제를 놓고 여러 달에 걸쳐 수없이 논의했다. 그 결과 교회에 다니지 않는 20대에서 40대까지의 청중을 목표로 삼아, 이들을 연결할 수 있는 예배의 성격을 나열해보기 시작했다. 이런 특징들을 항목별로 구체화 해보니 프로그램에 필요한 몇가지 요소가 드러났다.
․형식에 매이지 말 것 : 우리는 편한 옷을 입기로 했다. 나를 포함해서 안내하는 사람과 음악 맡은 사람들 모두 청바지나 다른 가벼운 옷차림을 하기로 했다.
․현대적일 것 : 리드 기타와 베이스 기타, 신시사이저, 피아노, 드럼으로 밴드를 구성하고 현대적인 음악을 연주하기로 했다. 이런 음악 형식을 선택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로 이것은 우리가 목표로 하는 청중들에게 제일 익숙한 음악 언어이며, 둘째로 이런 음악은 확실히 전통적이지 않다. 셋째, 청중들이 비트에 따라 박자를 맞추고 몸을 움직이면서 음악에 참여할 수 있다.
․강요하지 말 것 : 참석자들에게 사람들의 주목을 받거나 자기 신분을 밝혀야 하는 부담을 주지 않으며 어디에도 이름을 쓰라는 부담을 주지 않기로 했다.
․적절할 것 : 자유롭게 질문 받고 대답하는 방식이 청중들에게 잘 맞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편안할 것 : 우리는 긴장감이나 압박감이 없는 프로그램을 원했다. 조용조용한 이야기와 함께 손으로 잡는 마이크와 등받이 없는 둥근 의자가 좀더 적절할 것 같았다.
․시각적인 호소 : 우리는 연극을 활용해서 사람들의 관심을 높이기로 했다. 또 강대상 주변을 재단장해서 교회 강대상처럼 보이지 않게 했다. 그래서 검정, 진한 분홍, 파랑색을 사용하기로 했다.
우리는 우리의 목적을 밝히는 문안 작성에도 공을 들였다. 모두 동의하며 작성한 이 문안은 열린 예배를 시작하고 발전시키며 평가하는 데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토요일 밤’의 목적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위해 오늘날의 여러 문제들을 가지고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가서 우리의 말을 전할 권리를 얻고자 한다. 우리는 관습에서 탈피한 토요일 저녁 예배를 사랑받고 용납되는 편안한 분위기를 제공하며, 참석자들이 그리스도를 찾도록 격려할 것이다. 이 예배는 복음을 전도하기 전에 먼저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시간으로서,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성경의 기본진리를 가르치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실제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기
1. 주제
불신자들은 교회를 자신과 상관없는 곳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그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제를 다루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몇몇 위원들이 이 문제에 대한 조사를 맡았으며 적절한 주제를 추천하였다.
2. 프로그램 개발
프로그램 개발의 임무를 맡은 사람들은 안내와 탁아 문제, 무대 설치, 음향, 조명을 책임졌다.
3. 광고
신문의 영화란과 듣기 좋은 록음악을 틀어주는 라디오 방송국의 상업 광고 시간, 그리고 도시 주변의 주요 고속도로 변에 있는 광고판에 광고를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매체를 활용하는데 드는 비용을 조사했다.
4. 스텝진 선정
음악, 연극, 광고, 안내, 탁아 등의 분야를 책임질 사람들을 선정하여 각 분야의 스텝진을 모집하도록 했다. 한 사람이 각 분야를 관장하는 책임을 맡았다.
5. 예산
크레이그가 6주간의 예배에 필요한 전체적인 예산을 수립하는 책임을 맡았다. 예산액은 총 15,000불이었다.
계획을 당회에 설명하다
당회의 승인을 받기 위해 이러한 생각들을 설명할 준비를 하는 데 거의 6개월이 걸렸다. 그 과정을 돌이켜볼 때, 우리의 설명에는 몇 가지 핵심적 요소가 두드러지게 나타나 있었다. 이 요소들은 나중에 교회 성도들에게 이 개념을 설명할 때 지침이 되어 주었다.
․우리가 현재 드리고 있는 전통적인 예배로는 이 지역의 불신자들에게 다가가지 못한다.
․열린 예배라는 새로운 시도의 성공 여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을 실험해보기 위해 적어도 6주간은 계속 시도해보고자 한다.
․ 이 예배는 20대에서 40대까지의 연령층을 고안한 것이다.
․ 40세가 넘는 사람들은 이 예배에 거부감을 느낄 수 있으므로 오지 않는 것이 좋다.
․옷차림은 간편하게 한다.
․여기서 사용하는 음악은 주일에 사용하지 않으며, 주일에 사용하는 음악은 토요일 모임에는 사용하지 않는다.
․6주 동안 이 프로그램을 시험해보고 평가한 후에 계속할 것인지의 여부를 결정한다.
․이 기간이 끝날 때까지는 이 예배에 대한 판단을 보류한다. 딱 한 번 참석해보고 판단하지 말기 바란다.
․여러분이 이 예배에 참석할 경우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이다. 이 예배는 교회의 여느 예배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당회와 성도들 앞에 전적으로 정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이 드신 분들은 우리가 선택한 음악에 거부감을 느끼리라는 점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그래서 현대 음악을 마땅찮게 생각하는 사람은 참석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당회는 6주간 시험기간을 가질 것과 15.000불의 예산을 사용할 것을 만장일치로 승인하였다. 몇몇 당회원들은 우려를 표명했으며 비전통적인 사역이 일단 시작되면 주일 아침에도 비전통적인 사역이 도입되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다. 그들은 교회 내에 비판과 분열의 씨가 생길 것을 염려했다.
승인을 받은 후 나는 당회가 시험적인 차원에서 이 일을 만장일치로 승인하였음을 교인들에게 조심스럽게 알렸다. 나는 ‘토요일 밤’이 내 개인적인 아이디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 당회의 지지 아래 시행되는 것임을 교인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3 시행착오를 통해 배우다
‘토요일 밤’ 모임을 처음 시작한 날, 나는 맨 앞줄에 앉아 있었다. 나는 청바지에 시카고 베어즈 티셔츠를 입었고 맨발에 운동화를 신었다. 재즈 음악이 음향시설을 통해 흘러나오고 있었다. 무대 왼쪽에는 밴드가 자리하고 있었다. 여러 곳에 TV화면과 스피커 연결선이 설치되어 있고, 정면에는 ‘토요일 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쓰인 거대한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나는 초조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나이든 몇몇 분들이 벌써 불편한 기색을 보이고 있었다. 화가 난 것 같기도 했다. 프로그램을 시작하기도 전에 말이다. 그러나 음악을 멈추기에는 이미 늦었다. 프로그램은 시작되었고 좋든 싫든 꿈은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나는 그다지 초조해 하는 성격이 아니다. 지난 몇 년 동안 꽤 어려운 상황이 많았지만 한 번도 초조한 적은 없었다. ‘필 도나휴 쇼’와 전국적인 뉴스방송에도 나갔고 ‘타임’지에 나간 적도 있었지만 그때도 겁나지 않았다. 그런데 토요일 밤에서는 그럴 수가 없었다. 내가 편안한 마음으로 모임에 임하는 데는 1년이 넘는 세월이 걸렸다. ‘토요일 밤’의 모든 프로그램은 내 뿌리와 교육환경, 교회배경, 그리고 이전의 사역과 완전히 달랐다. 현대 음악 때문에 나는 벼랑 끝에 몰렸으며, 전통적인 교인들은 연극이 너무 무례하다고 생각했다. 즉석에서 질문을 받고 대답하는 것도 겁나는 일이었다. ‘설교식’으로 얘기하지 않고, 교회에서 흔히 사용하는 용어를 피해가며 말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이 모든 두려움과 공포는 5년이 지나서야 사라졌다. 그러나 비전통적인 상황에서 사역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지금도 계속 배우고 있는 중이다. 나는 스스로 준비하기 위해 미국 문화에 대한 책을 가능한 한 많이 읽기 시작했다. ‘타임’지와 저녁 뉴스, 영화, 대중음악의 흐름을 부지런히 살펴보았고, 이른바 베스트셀러들을 섭렵했다. 나는 평소에 이야기할 때에도 신학적인 용어를 사용하지 않으려고 애썼고, 혹시 신학적인 용어를 사용할 경우에는 알기 쉬운 말로 설명해 주려고 노력했다.
6주간의 시험기간
대부분의 당회원들은 여섯 번의 ‘토요일 밤’ 중 적어도 한 번씩은 다 참석했다. 다섯째 주 모임을 마쳤을 때, 우리는 이 프로그램을 평가하고 앞으로도 계속할 것인가를 결정하기 위해 모였다. 이 프로그램을 계속하자는 측은 참석자들 가운데 하나님이 역사하신 몇몇 사례를 강력한 이유로 내세웠다.
다섯 번째 모임을 마친 후, 뒤쪽에 혼자 앉아 있는 20대 후반의 남자가 보여 그에게 다가가 도와줄 일이 있는지 물었다. 그가 대답했다. “하나님이 과연 절 용서해 주실 수 있을까요?” 그는 자신이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으며 매주일 교회에 다녔다고 했다. 그러나 7년 전에 교회와 집을 떠났다. 그 후 그는 사탄을 “인생의 주인이자 구세주로” 영접했고, 지난 7년간 사탄을 숭배해 왔다. 그러다가 ‘토요일 밤’ 광고를 보고 시험삼아 한 번 와봤는데, 어쩌다보니 다섯 번 내내 참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그날 밤 그가 드린 기도를 잊을수가 없다. “하나님, 제발 저를 용서해주시고 제 삶에 들어와 주십시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가! 나는 이제 하나님을 위해 살고 싶다.” 게리는 지금도 토요일 밤에 교회에 온다. 그리고 주일 예배에도 참석하고 있다. 그의 믿음은 눈부실 정도로 성장하였다. 내가 당회에서 게리와 또 주님을 발견한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토요일 밤’을 계속하자는 의견이 들뜬 분위기 가운데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그러나 당회원들이 모두 그 프로그램을 좋아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하나님께서 게리를 ‘토요일 밤’에 보내신 것은, 게리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서일 뿐 아니라 비전통적인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접근하려는 우리의 바람과 방향을 확실히 보여주시기 위해서였다고 믿고 있다.
첫 해
첫 해는 재미있었다. 모든 것이 새로웠으며 흥미로웠다. 참석률도 좋았다. 1년 동안 나는 우리가 단지 영역 확장 자체를 위해 영역을 넓힌 것인지. 아니면 정말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영역을 넓힌 것인지를 생각하곤 했다. 그리고 청중들이 대부분 대학생들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색다른 연극이나 즉흥극, 강렬한 음악 등 전위적인 수단을 사용했다. 내가 이야기 하는 시간은 종종 15분 이내로 줄어들곤 했다. 1년 후 그간의 성과를 평가하기 위해 위원회를 소집하였다. 우리는 거기에서 몇 가지 사항을 수정했다.
첫째로 청중이 다 같이 노래 부르는 시간을 없앴다. 참석자들 중에 불신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 이런 노래들을 잘 모르는 그들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요구하는 것은 부담이 될 것 같았다.
둘째로 나는 강대상을 치우고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기로 했다.
셋째로 우리는 질문을 지금까지처럼 말로 받지 않고 종이에 써서 받기로 했다. 종이에 쓰면 익명성이 보장되므로 더 자유롭게 질문할 수 있었다.
둘째 해
첫 채의 끝 무렵에 우리는 4주 동안 외부로 나가서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우리는 그랜드래피즈 시내의 원형극장을 빌렸고, 매주 1,3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참석했다. 우리는 지금까지 진행해온 방식을 똑같이 사용했다. 모임이 어떻게 되어가는지 보기 위해 갈보리 교회 교인들이 많이 왔다. 음악이 너무 시끄럽다는 비판이 많았다. 가사를 알아들을 수 없다거나 이런 음악으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는 등의 의견이 나왔다. 우리들이 조사해 본 바에 따르면 ‘토요일 밤’에서 제일 중요한 순서는 이야기하는 시간이었다. 음악은 두 번째로 꼽혔다. 음악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은 사람은 25%에 불과했으며, 음악을 가장 중요하지 않은 요소로 꼽은 사람도 8%나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을 바꾸자 사람들은 참석하지 않았다. 이것을 볼 때 음악이 참석의 주된 이유는 되지 못하지만, 계속해서 참석하도록 유인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알 수 있었다.
갈림길
3년이 지날 무렵, 나는 ‘토요일 밤’의 진척 상황 때문에 낙심하고 있었다. 참석자는 350명 정도로, 처음보다 100여명이 줄어든 숫자였다. 참석자를 늘이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결과는 오히려 반대로 나타나고 있었다. 반면 주일 아침예배는 자리가 부족할 정도로 사람들이 늘어났다. 여름에 열린 스텝 수련회에서 ‘토요일 밤’ 참석자 수의 감소추세와 주일 아침의 좌석 부족에 대해 논의하였다. 거기에서 우리는 현재 ‘토요일 밤’의 진행 방식을 중단하고, 그대신 주일 아침예배 형식을 도입할 것을 당회에 건의하기로 했다. 우리는 성가대와 오케스트라를 증원하고 질문받고 대답하는 시간은 계속하되, 기본적으로는 주일 아침예배 형식을 갖추려고 했다.
새로운 결정에 대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우리가 결국 전통이라는 그물로 다시 돌아가게 될 것이 분명해졌다. 그렇게 하면 더 많은 기독교인들을 토요일 밤에 끌어모을 수는 있겠지만 때때로 ‘토요일 밤’에 참석하면서 무언가를 찾고자 했던 수백 명의 불신자들은 놓치게 될 것이 분명했다. 평균 참석자는 300명에 불과했지만 때때로 참석하는 사람들까지 합하면 적어도 천명 이상의 불신자들이 ‘토요일 밤’을 찾았다. 그들은 교회의 정기 출석자가 아니기 때문에 매주 오지는 않았다. 그러나 어쨌든 그들이 한 번 이상 왔다는 사실은 가장 최근에 경험했던 종류의 프로그램을 계속 제공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되는 것이다. 휴가 기간이 끝나갈 무렵, 토요일 밤의 열린 예배를 그만두는 것은 복음 전도 사역에 심각한 손상이 되리라는 확신이 강하게 들었다. 사무실로 돌아와서 ‘토요일 밤’의 책임자인 필을 찾았다. 내가 없는 동안 그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우리의 제안이 잘못되었다는 점에 뜻을 같이했고, 다시 당회를 열어 우리가 성급한 결정을 내린 점을 사과했으며 지금까지 해온 일을 계속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당회는 기꺼이 나를 용서해 주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열린 예배 사역의 넷째 해를 맞이할 수 있었다. 나는 이 경험을 통해 몇 가지 중요한 점을 배웠다.
첫째, ‘토요일 밤’의 성장을 주일 예배 참석 교인 수와 비교해서는 안된다.
둘째, ‘토요일 밤’의 성장은 천천히 이루어진다.
셋째, 때때로 참석자들이 줄어들 수도 있다.
넷째, 열린 예배 사역은 장기적으로 헌신해야 할 일이니 잠깐 해보다가 다른 프로그램으로 교체 하는 식으로 해서는 안된다.
다섯째, 열린 예배는 밑빠진 독에 물 붓는 일처럼 힘과 노력을 계속 들여야 하는 사역이다.
여섯째,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께 헌신하기 전까지는 그가 정규적으로 참석할 것을 기대해서는 안된다.
‘프로그램’에서 ‘교회’로
사역을 시작한 지 5년째 되던 해, 상당한 변화가 일어났다. 참석자 수가 많이 늘어났을 뿐만 아니라 고정 참석자들의 수가 늘어났다. 갈보리 교회라는 울타리 안에 또 하나의 교회가 형성된 것이다. 이렇게 되기까지 몇 가지 요인이 작용했다.
1. 자유 선택 시간
우리는 ‘토요일 밤’ 이 끝난 후에 몇 가지 프로그램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는 미혼 남녀를 위한 모임인데, 보통 그 사람들에게 적절한 주제를 논의하였다. 여기에는 평균 100명이상의 인원이 참석했다. 또 하나는 그룹 성경 공부로서 20여 명 정도가 참석했다. 이 모임들을 통해 인격적인 만남이 이루어졌으며, 이 만남들은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영접하는 일로 연결되었다. 우리는 최근에 마약 중독자들과 알코올 중독자들이 함께 모여 스스로 치료해 나가는 모임을 새로 시작했다.
2. 디치디거(the ditch diggers)
우리는 주일 예배 참석자들 중에서 50명의 자원봉사자들을 모집하여 ‘디치디거’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이들은 개인적인 성장, 복음 전도, 제자도, 그리고 섬김에 대해서 집중적인 훈련을 받았다. 현재 이들은 여러 가지 영역에서 봉사하고 있으며, ‘토요일 밤’ 안내와 아이들 돌보기, 복음 전도, 양육, 무대설치와 정리 등을 번갈아 가며 맡고 있다. 이 일을 통해 몇몇 스텝과 평신도들에게 국한되었던 ‘토요일 밤’의 주인 의식이 널리 확산되었다.
3. 기도의 지원
우리는 ‘토요일 밤’을 위해 매일 기도할 사람을 300명 넘게 모집하였다. 이들이 늘 ‘토요일 밤’에 참석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기도 편지를 보내서 최근의 상황들을 알려주곤 한다. 나는 5년째 되는 해에 우리가 경험한 영적인 성장과 수적인 증가의 열쇠는 바로 이 중보기도에 있다고 믿고 있다.
4. 수요일 밤
‘토요일 밤’에서 새롭게 믿기 시작한 사람들에게 주일 예배 참석을 권유했지만, 그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사람들이 대부분 큰 부담을 느꼈고, 그저 몇몇 사람들만 주일 예배에 참석했다. 그러나 이 새신자들도 성경으로 훈련받아야 했기에 수요일 밤에 특별한 예배를 마련했다. 나는 이때 일요일 저녁에 했던 설교를 다시 하되, 일요일 저녁 때보다 훨씬 비형식적인 방법으로 했다. 우리는 또한 어와나(Awana)라는 청년 성경공부 프로그램과 그 밖의 프로그램을 수요일 밤에 시작했다. 우리는 ‘토요일 밤’ 이상의 단계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이 수요일 밤 프로그램을 권유한다. 이 시간이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사람들이 수요일 모임에 헌신하고 있으며 이 시간을 무시하지 않는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5. 성경공부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을 더 탐구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 주일 저녁에 두 개의 성경공부반을 마련했다. 첫 모임에 30명 이상이 참석했는데 그들 가운데 절반 이상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이 성경공부는 우리가 교회에서 주일 저녁예배를 드리는 동안에 개인의 가정에서 하고 있다. 6주간의 공부가 끝나면 새로운 6주간의 공부를 선택할 수 있는데, 대부분은 이 후속 과정을 선택한다.
6. 도움 요청 카드
‘토요일 밤’에 정규적으로 나누어 주는 순서지 뒷면에는 각각 떼어낼 수 있는 세 장의 카드가 있다. 하나는 질문을 쓰는 카드이다. 그리고 나머지 두 장은 도움을 받고자 할 때 사용하는 카드로서 한 장은 친구를 만나고 싶을 때, 또 한 장은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 쓰게 되어 있다. 디치디거들은 개인적인 양육에 이 카드를 활용한다.
4 ‘토요일 밤’의 기본 요소
음악
1. 록음악을 사용한 이유
‘토요일 밤’의 음악 스타일은 기본적으로 ‘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초반’까지의 록음악이다. 리드 기타와 베이스 기타, 신시사이저, 피아노, 드럼을 사용하며 때때로 색소폰을 가세하기도 한다. 열정적인 음악을 쓸 때도 있고 재즈나 포크에 가까운 음악을 연주할 때도 있으며 가끔 컨트리풍의 음악을 사용할 때도 있다. 밴드는 헌금할 때까지 포함해서 세 번 연주하는데, 보통 그날 저녁의 주제와 관련있는 음악을 연주한다.
우리는 왜 이런 스타일의 음악을 사용하는가?
첫째, 우리가 살고 있는 미시간 그랜드래피즈에는 480개에 달하는 개신교 교회가 있다. 이곳에는 종교적 전통을 달리하는 교단들이 있지만 불신자들은 여기에 관심이 없다. 우리는 ‘토요일 밤’의 참석자들에게 이것이 전통적인 예배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다. 우리는 우리가 선택한 음악 스타일로써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랜드래피즈에서 매주 밴드 공연을 하는 교회는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적기 때문이다.
둘째로, 우리는 20세에서 45세 정도의 사람들에게 통하는 음악 스타일을 원했는데,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록음악이다.
셋째로, 우리는 청중의 반응을 불러 일으킬 만한 음악 스타일을 원했다. 불신자들은 주저하는 마음으로 예배에 참석한다. ‘그들은 당신네들의 말은 나한테 안통해’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즉 방어벽을 높이 세워놓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청중들이 몸을 가볍게 흔들 수 있을 만한 음악이라면 그 방어벽을 무너뜨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해서 청중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를 흔들며 박수를 친다는 말은 아니다. 사실 청중들은 노래를 부르는 도중에는 거의 박수를 치지 않으며, 노래가 끝났을 때에야 환호의 박수를 친다.
2. 모든 것에는 적당한 때와 장소가 있는 법이다
나는 열린 예배와 전통적인 예배는 꼭 분리시켜야만 한다는 것을 배웠다. 이 두 예배는 섞지 말아야 한다. 두 예배의 스타일을 섞어 버리면, 두 예배 모두 망칠 확률이 크다.
3. 반대의견은 반드시 나오게 되어 있다
교회 예배에서 록음악을 사용하려는 사람은 반대와 비판을 예상해야 한다. 피켓을 들고 데모하는 정도는 아니더라도 분명히 반대가 있을 것이다. 나는 사람들과 논쟁하지 않고 사려 깊게 이런 비판에 대응하려고 노력해 왔다. 흔히 제기하는 비판에 대한 내 답변을 다음과 같다.
반대의견. 현대적인 음악을 사용하면 안 된다.
답변 모든 기독교 음악은 한때는 다 현대적인 것이었다. 교회가 현대적인 음악을 거부했다면 찰스 웨슬리나 아이러 생키, 화니 크로스비, 또는 존 피터슨 같은 사람들의 찬송은 사라졌을 것이다.
반대의견. 록음악은 세속적이다.
답변 음악 그 자체는 세속적인 것도 아니고 성스러운 것도 아니며,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사용하며 무엇을 말하느냐에 있다.
반대의견. 록음악은 성경적이지 않다.
답변 성경적인 음악 스타일이라는 것은 없다. 시편은 노래를 모아놓은 책으로서, 가사는 오류 없이 보존되어 있지만 악보나 스타일은 알려져 있지 않다. 만약 하나님께서 성경적인 음악 스타일을 만들고자 하셨다면, 성경에서 그 점에 대해 더 많이 제시하셨을 것이다.
반대의견. 록음악은 성, 마약, 저항과 관련된 음악으로서 교회에서 연주하기에 적합하지 못하다.
답변 대부분의 세속적인 록음악이 부패하였다는 말은 맞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스타일 자체가 부패했다고 할 수는 없다. 머리를 짧게 자르고 회색 양복에 버튼다운 셔츠를 받쳐 입는 사람들은 비지니스맨들이다. 이런 복장은 보통 탐욕과 물질주의와 연관되지만, 우리는 그런 보수적인 양복을 비판하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어느 음악 형식이 경건하지 못한 사람들과 관련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비난해서는 안된다.
반대의견. 나는 록음악이 어디까지 우리를 이끌고 갈지 염려한다. 우리가 지금 록음악을 수용한다 면, 다음에는 또 무엇을 수용할 것인가?
답변 나도 미래를 염려한다. 그러나 내 염려는 진리를 다음 세대에 전하는 일에 대한 것이지 우리의 취향이나 전통에 대한 것이 아니다. 오늘 옳은 일을 한다면 내일 일은 하나님이 돌보실 것이다.
연극
‘토요일 밤’ 예배를 구성하는 두 번째 중요한 요소는 연극이다. 연극의 내용은 언제나 그날 저녁의 주제와 관련된 것으로 내 이야기에 아주 큰 도움이 되어 왔다. 나는 이야기를 할 때 그날의 연극 내용을 예화로 들곤 한다. 나는 교회가 ‘보는’ 접근 방식을 지향할 때 ‘듣는’ 접근방식과는 달리 위험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시각적인 자극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는 뜻은 아니다. 보는 것이 듣는 것을 대체해 버린다면 그것은 순수한 오락거리가 될 확률이 크다. 그러나 보는 것이 듣는 것을 도와준다면, 그때 보는 것은 진리를 예시하는 하나의 방법이 된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어떤 행동을 통해 종종 진리를 예시했던 것처럼, 또 예수님이 비유를 통해 종종 진리를 예시했던 것처럼, 연극도 진리를 예시하기에 아주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실제로 나는 ‘토요일 밤’에 공연한 연극 장면들은 대부분 기억할 수 있어도, 내가 말했던 내용들을 기억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진정한 삶’(Real life)
이 순서는 열린 예배를 시작한지 4년째 되던 해에 새로 추가한 요소인데, 기본적으로는 개인적인 간증으로 이루어진다. 그날 저녁의 주제에 대해 고민해온 사람이 간증을 하는데, 주된 관심사는 언제나 그리스도께서 그의 삶 속에서 행하신 일에 있다. 나는 이들이 정직하게 말할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준다. 이들 대부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면서 얻게 된 기쁨과 더불어 아직도 계속되는 갈등을 이야기한다.
광고와 헌금
전통적인 교회에서는 광고와 헌금 시간을 중요하지 않게 여겨서 아무 준비 없이 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나는 ‘토요일 밤’ 광고를 할 때 주의를 많이 기울인다. 나는 매주 똑같은 형식으로 광고한다.
․환영의 말을 한다.
․그날 저녁의 주제와 다음주의 주제를 알려준다.
․질문지 작성 요령과 질문 방식을 설명한다.
․프로그램이 끝난 후에 마련해놓은 모임들을 알려주면서, 청중들이 흥미를 가질 만한 기회를 제공한다.
․헌금에 대해 말한다. 나는 헌금을 할 때 다음과 같이 주의깊게 소개한다.
“오늘 저녁 단순히 방문하신 분은 헌금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시간은 정규적으로 참석하면서 헌금하기를 원하는 분을 위한 것입니다. 이 시간의 헌금 전부는 ‘토요일 밤’을 위해 쓰여집니다. 그러므로 헌금해야 한다는 부담을 조금도 느끼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참석하신 것만으로도 즐겁습니다.”
성경 읽기
성경 읽기는 ‘토요일 밤’을 이끌어나갈 때 성경에 좀더 헌신하고자 하는 우리의 자세를 강화해준다. 성경을 읽는 사람은 다 읽은 후 대표기도를 한다.
이야기
1. 이야기하는 내용
존 스토트는 <두 세계 사이에서>(Between Two Worlds)라는 책에서 훌륭한 설교의 모델을 제시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설교는 성경적인 진리의 세계에서 일상의 세계로 건너가는 다리를 놓는 일이다. 나는 주일 예배 때 이 방법을 사용한다. 즉 성경을 한 절 한 절 가르친 다음 그 진리를 우리의 생활에 실제적으로 적용한다. 그러나 ‘토요일 밤’에는 그 순서를 뒤집는다. 즉 우리가 매일 생활하고 있는 실제 세계에서 이야기를 시작해서 그 세계의 이야기를 주로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경적인 진리의 세계로 들어감으로써 성경이 오늘날에도 적용되는 말씀이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2. 이야기 전달
나는 내 이야기가 설교처럼 들리지 않도록 노력해 왔다. 그래서 청바지나 티셔츠 같은 간편한 옷을 입고서 편안하고 자유로운 분위기를 만들고자 한다. 그리고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아서 손으로 잡는 마이크를 사용한다. 나는 걸으면서 이야기할 때에는 ‘설교적’이 되려고 하고, 앉아서 이야기할 때는 좀더 대화하듯이 말하고자 한다.
질문과 대답
‘토요일 밤’에서 가장 두려운 시간이 바로 ‘질문과 대답’ 시간이다. 질문용지를 읽어보기 전에는 무슨 질문이 나올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참석자들에게 나누어 준 순서지 뒤에는 쉽게 뜯어낼 수 있는 질문용지가 있다. 내 이야기가 끝나면 안내하는 분들이 이 질문용지들을 모아온다. 그러면 내가 큰 소리로 질문을 하나하나 읽어가며 대답하게 된다. 이 시간은 ‘토요일 밤’의 독특한 특징을 이루고 있다. 우리는 이 이야기 시간을 일년에 몇 차례 공개토론 형식으로 진행한다. 사람들은 아주 적극적으로 반응한다. 예배 실무진들은 이 시간을 통해 사람들이 안고 있는 문제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다. 우리는 이 질문들을 빠짐없이 정리해 놓고, 어떤 주제를 선정해야 할지 논의할 때 토대로 활용한다.
기도
순서가 다 끝나면 마무리 기도를 위해 청중에게 일어서 달라고 부탁한다. 이것은 ‘토요일 밤’에서 두 번째로 드리는 기도 순서이다. 나는 이 시간에 개인적인 질문을 쓴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내 이야기의 핵심 내용을 요약한다.
우리가 하지 않는 것
처음 몇 년 동안은 다함께 노래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런데 따라 부르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불신자들은 노래를 부르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런데 굳이 강요할 필요가 어디있겠느냐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우리는 그 시간을 없앴고, 우리의 결정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5 열린 예배의 성경적 토대
열린 예배를 비판하는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은 이것을 “시장지향적”, “실용주의적이고”, “소비자중심적인” 예배로 묘사한다. 그 밑바닥에는 열린 예배라는 발상 전체에 성경적인 토대가 부족하거나, 더 심하게 말하면 이런 접근 방식이 성경을 침해하고 있다는 가정이 깔려 있다. 나는 우리가 성경적인 원리를 새롭게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에 이 예배를 시작한 것은 아님을 고백한다. 오히려 우리는 이 방법에 대한 성경적인 토대를 명확하게 하지 않은 상태에서 불신자들을 위해 ‘토요일 밤’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 예배가 점점 커지면서, 우리는 성경을 근거로 우리의 행동을 설명하라는 요구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적인 원리에 따라 우리의 전략을 점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맵 전략(A MAP)
고린도전서 9장에서 사도 바울이 말하고자 했던 주제는 “더 많은 사람들을 얻고자 함”(to win as many as possible)이라는 것이다. 이 말의 마지막 네 단어의 첫 글자를 조합하면 AMAP, 즉 ‘a map’이 된다. 바울은 교회와 성도들이 도달해야 할 목적지가 표시된 한 장의 지도를 제공하고 있다. 그 목적지는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것이다. 내가 이미 지적했듯이 열린 예배를 시작하는 데 가장 중요한 조건은 복음 전도에 대한 열정이다. 복음 전도를 당신의 지도로 삼지 않는 한 열린 예배 사역에 뛰어들어서는 안 된다. 바울에게는 그 열정이 있었다.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
‘맵 전략’에는 융통성과 적응성과 변화가 필요하다.
‘맵 전략’은 긴장을 요구한다
‘가능한 모든 수단을 활용한다’는 바울의 원리에 입각할 때,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일을 일말의 제한도 없는 완전히 자유로운 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바울은 융통성과 제한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있다. 그는 ‘엄격한 훈련’이라는 제한과 자기 몸을 ‘노예’로 복종시키는 일에 대해 말하고 있다.
1. 엄격한 훈련
‘육상세계’라는 잡지는 1992년 7월호에 ‘승리를 위해 뛰라’는 글을 게재하였다.
어떻게 하면 승리자의 자리에 오를 수 있는가? 카네기 홀에 설 때와 똑같다. 연습, 오직 연 습만이 비결이다. 세계 최고의 자리는 수 년에 걸친 고된 훈련, 밤낮 없는 훈련을 요구한다. 훈 련의 강도가 점점 높아질수록 우리 몸은 거기에 적응한다. 몸이 회복되는 시간을 줄이면서 반복의 속도를 빨리하는 일, 약점을 극복하기 위한 특별한 노력, 들어 올리는 무게를 점점 늘이는 일이 필요하다. 자신의 한계에 부딪침으로써 그 한계를 넘어서는 일이 필요하다.
조안 베노이트 새뮤엘슨은 1984년 최초의 여자 마라톤 경기의 출발선에 섰을 때 자신이 품었던 불굴의 의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나보다 더 혹독하게 훈련한 사람은 없다고 확신했다. 나는 준비되어 있었고, 최상의 상태였고, 자신감에 차 있었다.” 마침내 조안은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다른 일들은 모두 옆으로 미루어 두라. 오직 경기만을 최우선순위로 놓고, 모든 계획을 경기에 맞추라.” 운동경기뿐 아니라 최고를 지향하는 모든 노력에는 희생이 필요하다.
사도 바울은 이와 똑같은 자세를 고린도전서 9장에서 보여주고 있다. 그가 하는 모든 일은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할 수 있는가’의 관점에서 이루어졌다. 우리의 교회도 이렇게 말할 수 있는가? 성공적인 복음 전도를 위해 무슨 일이든지 할 자세가 되어 있는가?
‘엄격한 훈련’이라는 이 제한은 복음을 전하는 데 방해가 되는 일을 제쳐놓은 채 오직 한 가지 목표, 곧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을 얻으려는 목표에 집중할 것을 요구한다. 교회사역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새로운 프로그램이나 새로운 생각, 새로운 기회들을 고려할 때 꼭 던져보는 질문이 있다. ‘이 일은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데 도움이 되는가?’ 하는 것이다.
2. 몸을 복종시키는 훈련
개인적인 정결함은 효과적인 복음 전도의 절대적인 전제조건이다. 불신자들은 우리의 위선과 율법주의와 일관성 없음과 부정함을 꿰뚫어 본다. 그들은 똑같은 죄를 지으면서도, 그리스도를 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에게는 높은 수준을 기대한다. 그렇다고 완전무결하기를 요구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신자라면 하나님을 위해 살려는 정직함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토요일 밤’을 시작한 지 얼마 후, 갈보리 교회에서는 필요한 교육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시설을 확장하기로 했다. 나는 기금 모집 프로그램의 일환으로서 3주간 성경적인 청지기 정신에 대해 설교하였다.
나는 ‘토요일 밤’을 통해서 믿게 된 새신자가 주일 예배에 참석했을 때, 이 설교를 듣고 불쾌하게 여겼다는 말을 나중에 들었다. 그들은 건물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내가 설교시간을 쓸데없이 낭비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우리의 삶을 위해 성경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이 주제를 다루는 설교가 끝날 때까지 주일 예배에 참석하지 않았다. 나는 이 일을 통해, 새신자들과 불신자들은 사물을 보는 시각이 기존 신자들과 여실히 다르기 때문에 그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그들의 관심사에 민감해져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6 열린 예배를 준비하는 7단계
1단계: 교회의 풍토를 이해하라
나는 우리 교인들을 준비시키기 위해 한동안 갈보리 교회의 역사를 공부했다.나는 갈보리 교회가 혁신을 거듭하였다는 사실에 감명받았다. 처음 교회가 라디오 방송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사탄은 공중의 권세 잡은 자이므로 공중 전파도 다스린다’고 생각한 대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이 이를 비판했다. 그리고 방학 중에 성경학교를 시작했을 때에는 그랜드래피즈의 어느 곳에서도 학생들이 공짜로 버스나 자동차를 집어타고 갈보리 교회로 올 수 있었다고 한다. 이 교회의 목사님으로 오랫동안 수고하신 레만 박사님은 밤늦게까지 진행하는 복음송 경연대회를 개최했고, 연극과 각종 경연대회 등 여러 프로그램을 시도했다. 또 음악 사역자인 피터슨은 작곡활동과 칸타타로 ‘새로운’ 형식의 음악을 도입하기도 했다. ‘토요일 밤’에 대한 내 생각은 이러한 오랜 혁신의 역사를 잇는 것이었다. 우리 교회가 받아들여 왔던 풍토에서 볼 때 ‘토요일 밤’은 또 하나의 단계였던 것이다. 교회의 풍토가 혁신과 변화에 열려 있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은 풍토에서 열린 예배를 시도한다면 틀림없이 갈등에 부딪치게 될 것이다.
2단계: 진리와 행동의 수준에 대해 가르치라
불행하게도, 많은 교회들이 취향의 문제를 확신의 문제나 절대적인 문제로 비약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구원에서부터 머리 모양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 연관시킨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자기들의 사고 방식과 행동방식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이렇다면 그 교회는 열린 예배에 준비되어 있지 않거나 개방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이제 막 믿음에 들어선 사람들을 대할 때 이 진리의 수준들을 기억해야 한다. 어떤 교회에서는 회심한 사람에게 제일 처음 주는 것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의 목록이다. 그런데 이것은 주로 취향에 대한 목록일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제자훈련은 가장 먼저 절대적인 진리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즉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가장 큰 계명을 가르쳐야 한다. 그 다음에 확신에 속한 것을 소개할 수 있으며, 마지막으로 가장 덜 중요한 문화적 취향에 속한 것을 가르쳐야 한다. 취향에 해당하는 요소를 강조하는 교회는 열린 예배 사역을 피해야 한다. 내 생각에 이런 교회는 차라리 복음 전도를 하지 않는 게 낫다. 이 같은 율법주의는 파괴적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마23:15).
3단계: 여러 전제조건을 생각하지 말고
먼저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체계를 발전시키라
객관적인 관찰자의 관점에서 보면, 교회는 때로 모순되게 보이기 마련이다. 교회는 은혜로 받는 구원의 소식을 전하면서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됩니다. 구원을 위해 무언가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하고 설교한다. 그런데 막상 그리스도를 믿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에게는 해야 할 일을 적어놓은 한 다발의 목록을 제시하는 것이다. 만약 열린 예배를 시작하고자 한다면, 회심자들에게 요구사항을 줄줄이 부과하지 말아야 한다. 주일 예배 참석과 세례와 교회등록을 강요하는 것은 그들을 몰아내는 행동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 아래 그들이 준비되었을 때 스스로 선택하도록 하고 있다. 우리는 같은 원칙을 옷입는 것이나 행동이나 다른 외적인 문제들에도 적용한다. 만약 이런 문제가 영접의 선결요건이 된다면 사람들은 더 이상 교회에 나오지 않을 것이다.
4단계: 모든 사람이 사역에 참여할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 준다
우리는 모든 사람이 사역에 참여하도록 격려 받는다는 사실을 ‘토요일 밤’에 참석하는 불신자들에게 분명히 보여주고자 한다. 남녀를 동등하게 인정하는 문화적인 분위기는 ‘토요일 밤’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그리고 열린 예배를 발전시키고자 하는 그 어떤 경우에도 중요한 요인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5단계: 전적으로 헌신하는 자세를 유지하라
열린 예배를 시작하는 일에는 전적인 헌신이 필요하다. 반신반의하는 헌신은 실패의 씨앗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 교회들이 많다. 그렇다면 전적인 헌신이란 무엇인가?
1. 담임목사가 참여해야 한다.
2. 열린 예배는 주일 예배만큼이나 중요하다
3. 열린 예배를 중심에 놓은 연후에 다른 행사를 계획해야 한다
4. 재정 지원이 있어야 한다.
5. 봉사할 사람을 모집할 때 유연성이 필요하다.
6. 당회가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6단계: 장기간 열린 예배의 가능성을 열어 놓으라
열린 예배는 장기간의 헌신이 필요하다. 우리는 ‘토요일 밤’ 폐지 여부를 여러 번 생각했다. 참석자 수가 현격히 줄었을 때나, 주일 예배보다 성장률이 처졌을 때에는 열린 예배가 불확실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토요일 밤’을 시작한 지 4년 만에 갈보리 교회의 주일 예배 출석교인 수는 2,500명에서 5,000명으로 늘어났다. 반면 열린 예배의 참석자 수는 극심한 변동 끝에 800명 선에서 고정되었다. 우리는 참석자 수를 비교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배웠으며, 주기적인 변동이 있더라도 열린 예배에 계속 헌신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7단계: 융통성을 유지하라
열린 예배를 시작하는 데는 모임에 융통성과 관용이 필요하고, 프로그램 자체에도 융통성이 필요하다. 우리는 계속 진행과정을 평가해 나가면서 변화를 시도했다. 교회가 우리에게 그런 유연성을 허용해 주었다. 우리가 변화를 시도할 때마다 20개나되는 위원회를 일일이 거칠 필요가 없었다. 우리는 필요한 것을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
상황에 빨리 적응하는 능력도 중요하다. 여러 달 변화를 미루면 이 사역의 활력과 성장에 결정적인 위험이 발생할 것이다. 그러므로 당회가 현장에서 직접 뛰는 사람들을 신뢰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제도’로써 이 일을 통제한다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7 배후에서 일어나는 일들
‘토요일 밤’은 토요일 저녁 6시에서 7시 15분 사이에 드리는 또 하나의 예배가 아니다. ‘토요일 밤’의 배후에는 수많은 움직임과 조직과 다양한 사람들의 참여가 있다. 이런 하부 구조는 프로그램 그 자체만큼이나 중요하다. 이런 구조가 없었다면 열린 예배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디치디거
‘디치디거’는 토요일 예배의 자원봉사자들을 일컫는 말로서, 토요일 예배 참석자들과 주일 예배 출석 교인 중에서 모집된 사람들이다. ‘디치디거’는 열왕기하 3장 17절에서 나온 말이다.
저가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이 이 골짜기에서 개천(ditches)을 많이 파라 하셨나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너희가 바람도 보지 못하고 비도 보지 못하되 이 골짜기에 물이 가득하여 너희와 너희 육축과 짐승이 마시리라 하셨나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물을 주시기 전에 사람들은 계곡 모든 곳에 개천을 파야만 했다. 하나님은 이 개천들이 준비된 다음에야 충분한 물을 공급하여 그들의 필요를 채우셨다. 이처럼 ‘토요일 밤’의 디치디거들은 준비하는 사람들로서 이 예배를 위해 계획하고, 조직을 만들며, 기도한다. 이 일은 거창하지는 않지만 영적인 물이 계속 흘러 넘치도록 하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토요일 밤’ 예배에는 37명의 디치디거가 필요하다. 이들이 하는 일은 무대설치, 조명과 음향, 보모 역할, 인사, 접수, 안내, 상담, 공동체와의 연결 등이다.
그리고 ‘토요일 밤’을 위해 중보기도하는 디치디거가 350명 이상 있다. 이들은 프로그램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지만, 이 예배를 위해 매일 기도하기로 작정한 사람들이다. 우리는 이 사람들에게 매월 기도 편지를 보내며, 토요일 밤을 위해 기도하라는 문구가 새겨진 스티커를 나누어 준다. 이들의 중보기도는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광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광고가 제일 좋다는 것은 우리도 알고 있다. 그러나 상업광고를 이용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토요일 밤’의 예산을 편성할 때 매디슨 거리에 있는 다음 전제를 고려한다. “처음에 어떤 새로운 상품이나 생각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적어도 20번 정도는 그 상품이나 생각을 접하게 해야 한다.” 우리 지역에 있는 불신자들에게 교회에 오고 싶다는 생각을 불러 일으키려면 이런 사람들이 자주 접하는 매체에 집중적으로 반복하여 광고할 필요가 있다.
독신자들의 시각
우리는 ‘토요일 밤’ 참석자의 50-60%를 이루는 독시자들의 필요에 부응하려고 열심히 노력한다. 그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마련한 프로그램이 바로 ‘독신자들의 시각’이다. 1990년 가을에 몇몇 독신자들이 ‘토요일 밤’의 정규 프로그램이 끝난 뒤에 친교 모임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내놓았고, 이것이 이 프로그램의 시발점이 되었다. 처음에는 서로 토론하는 형식인 ‘이야기해 봅시다’시간을 가졌는데, 몇 단계를 거치면서 ‘독신자들의 시각’으로 정착되었다.
첫 단계
12명의 리더를 선발하여 소그룹 별로 ‘토요일 밤’에서 다룬 주제의 토론을 인도하도록 훈련시켰다. 처음에는 50여 명의 독신자들이 둥근 탁자에 둘러앉아 간단한 샌드위치로 저녁을 대신하면서 ‘이야기해 봅시다’에 참여했다. 이들 중 서로 잘 알고 지내는 이들은 얼마 되지 않았으며, 무작위적이고 즉흥적으로 구성한 토론 그룹은 제대로 운영되지 않았다. 결국 11월 말에는 참석인원이 25-30명으로 줄어들었다. 우리는 이 프로그램을 재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
둘째 단계
우리는 전체가 모여서 공개 토론회를 시작했다. 진행자는 ‘토요일 밤’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질문지를 활용하며 토론을 이끌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의 주제와 관련된 참고자료들도 활용하였다. ‘이야기해 봅시다’ 시간은 독신자들 전체가 좀더 편안한 마음으로 함께 모이게 되면서 성장하기 시작했다. 모이는 방에는 여전히 둥근 탁자를 놓고 저녁을 제공함으로써 독신자들이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게 배려했다.
셋째 단계
한 번은 그날 저녁에 다룬 주제의 전문가를 강사로 초대한 적이 있다. 진행자가 그 강사를 인터뷰한 다음 독신자들의 질문을 받았다. 토론은 흥미로운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그 강사는 특정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며 청중들에게 되물었다. 여러 의견과 느낌이 개진되어 활발하게 토론이 이루어졌다. 바로 이것이었다. 청중들에게 질문만 할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의견과 관점을 표현할 기회를 주어야 했던 것이다. 이러한 진행 방식은 성공을 거두었다. 참석자들은 100명으로 급속히 늘었으며, 200명을 넘는 경우도 있었다. 현재 우리는 자신들의 경험을 직접 이야기하는 독신자들과 의학, 성, 재정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을 초대손님으로 모시고 있다. 또 우리는 30분 동안 간단한 저녁식사를 한 후 45분간 토론하기에는 네다섯 명보다 두세 명이 번갈아 토론하는 것이 효과적임을 알게 되었다. 이제 이 프로그램의 주제는 더 이상 ‘토요일 밤’의 주제에 국한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8 작은 교회에서 열린 예배를 하려면
자원이 한정되어 있는 작은 교회들은 어떻게 이와 같은 복음 전도 활동을 할 수 있을까? 이 일은 열린 예배 사역의 원리를 어떻게 적용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지 특정한 프로그램을 세부 사항까지 모방하는데 있지 않다는 것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제일 중요한 원리는 문화적으로 적절한 방법을 통해 복음을 불신자들과 연결한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불신자들과 접촉하는 일과 그들이 수용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용어로 복음을 전하는 민감함이 필요하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불신자들에게 민감하려면
불신자에게 민감한 태도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시작된다. 불신자에게 민감해지는 데 꼭 어떤 프로그램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이 일은 불신자들과의 단순한 접촉에서 시작된다. 그런데 문제는 대부분의 신자들과 목사들이 불신자들과의 교제를 스스로 제한한다는 데 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사람들과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실 교회 안의 많은 프로그램들은 이러한 분리를 조장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정작 주님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는 접촉하지못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일주일에 며칠은 헬스클럽에 나가는데, 거기에서 만나는 불신자들과 관계를 형성하려고 노력한다. 나는 여름에 벌어지는 축구시합에도 참여한다. 여기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거친 말과 욕설을 잘한다. 그래도 내가 이 축구시합에 계속 참여하는 것은 전도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동네에서 파티가 열리면 우리 부부는 꼭 참석한다. 맥주를 갖고 가거나 마시지는 않지만 참석은 꼭 한다. 또 이웃을 집으로 초대해서 그리스도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들은 담배 피우고 술 먹고 욕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기를 꺼린다. 불신자들을 집에 초대하는 일에 대해서도 “사람들이 집에 와서 담배나 피울 텐데” 하면서 예민하게 반응한다. 그리고 교회간에 모여서 운동경기를 하거나 모든 시간을 그리스도인들과 보내려고 한다. 이런 방식의 생활방식은 복음 전도의 기회를 빼앗는다. 나는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 제자들과 함께 앉았던 예수님의 모습을 통하여 확신을 얻는다(마9:10,11).
나는 “세리와 죄인들”과 식사하는가? 이방인들의 잔치에 참석하는가? 교회 밖의 사람들과 친하게 지낸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가? 그리스도인들과 약속한 것만 달력에 가득차 있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모범을 따르고 있지 않은 것이다. 같은 주를 섬기며 같은 가치관을 가진 그리스도인끼리 사귀는 일은 자연스럽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 밖의 세계에 관심을 잃지 않으려면 부지런한 노력과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
작은 교회가 불신자들에게 민감하려면
1. 뒤뜰 성경공부 모임
우리는 여러 해 동안 방학 중에 매일 성경학교를 개설했다. 8월 한 주간 동안 어린이들을 교회로 불러 모아 공예활동을 하고 노래를 부르고 성경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복음을 전했다. 그러다가 아이들을 교회로 부르는 대신 우리가 프로그램을 가지고 동네로 들어가는 중대한 변화를 시도했다. 그래서 지금은 8월의 같은 주간에 40여 개의 뒤뜰 성경공부 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교회에 다니지 않던 어린이들과 그 가족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났다. 교회의 벽을 넘는다면 불신자들을 더 효과적으로 불러올 수 있을 것이다.
2. 성탄절과 부활절 프로그램
거의 모든 교회는 성탄절과 부활절을 축하하기 위해 음악과 연극으로 구성된 특별 행사를 한다. 갈보리 교회는 6년 전부터 이것을 복음 전도의 기회로 삼았다. 우선 교인들이 불신자 친구들을 초대해서 같이 참석한다. 그리고 프로그램이 끝나갈 무렵 내가 한 10분 동안 복음을 설명하면, 참석자들은 앉아 있는 자리에서 조용히 기도하면서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 우리는 순서지에 있는 카드에 영적인 필요를 느끼는지, 누군가 말할 대상이 필요한지, 아니면 그리스도를 영접하기로 결단했는지에 대해 표시하도록 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회심한 사람들을 양육하기 위해 소그룹 성경공부를 한다.
3. 지원 모임
사역의 최일선에서 일하는 분들은 점점 더 사람들의 고통에 민감해지기 마련이다. 마음의 상처나 육체적인 고통을 겪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보이는 일은 거룩한 전략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여러 모양으로 힘들어 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다음과 같은 여러 개의 자원 그룹을 운영하고 있다.
․성적으로 학대받는 여성을 돕는 모임
․남편과 사별한 여성들을 위로하는 모임
․술을 과용하는 사람을 남편이나 연인으로 둔 여성들을 위한 모임
․약혼자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을 위한 모임
․새 직장을 구하는 사람들에게 건설적인 아이디어와 도움을 제공하는 모임
․알코올 중독이나 이와 유사한 이유로 인해 역기능 가정에서 자란 ‘성인 아이’ 를 위한 모임
․어린 미혼모를 위한 모임
․8주짜리 이혼자 회복과정에 참석한 사람들을 계속 도와주는 모임
지원 모임을 통해 사람들이 괴로움을 극복하고 그리스도와 인격적인 관계를 맺게 하는 일은 중요하다. 우리는 영적인 성숙을 자력(self-help) 원리로 대체함으로써 개인의 문제로 돌리지 않는다.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며 그들이 영적인 여정을 시작하도록 격려하는 일은 아주 중요한 일로서, 각 모임의 인도자들은 여기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 알코올 중독자 재활단체와 마약 중독자 재활단체는 우리 교회의 시설을 이용하고 있다.
지원 모임은 열린 예배 사역의 한 방법이지만 때로 비판을 받기도 한다. 즉 성경을 포기하고 그리스도를 소홀히 하고 있으며, 인생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복음 대신 심리학을 제시한다는 비난이 있다. 우리와 성경적인 양심을 공유하지 않는 외부 단체에 교회 건물을 내주었다는 비난도 들린다.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비난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계속해 나가고 있다.
4. 이혼자 회복과정
만약 우리가 복음 안에서 용서를 받고 새로이 시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이혼의 악몽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이 좋은 소식을 들려줄 필요가 있다. 우리 교회는 8주로 구성된 이혼자 회복과정을 일년에 세 차례 제공한다. 여기에는 강의와 소그룹 토론이 포함되어 있다. ‘무지개 클럽’은 이 과정에 참여하는 부모들의 자녀를 위한 프로그램이다. 이 과정의 마지막 날 저녁에 우리는 복음을 소개한다. 최근에는 이혼자 회복과정 참석자들 중 많은 이들이 ‘토요일 밤’에 참석하여 영적 여정의 2단계를 시작하고 있다.
5. 캠퍼스 사파리
이것은 매년 중․고등학교에서 갖는 전도활동이다. 일요일 아침에 체육관에서 두 시간 동안 태권도 시범과 간증을 하며 복음을 전한다.
6. 가정 성경공부
어색하지 않게 복음을 전하기에 좋은 방법은 불신자들을 가정 성경공부에 초대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모임을 ‘탐색 그룹’이라고 부른다. 여기서는 기독교 신앙에 대해 6주간에 걸쳐 서론적으로 공부한다. 참석자의 60% 정도가 믿지 않는 사람들이다.
7. 개인 전도
불신자들에게 접근하는 가장 효과적인 전략은 신자들이 자신이 속해 있는 영역에서 그들과 개인적으로 접촉하는 일이다. 단지 신자들이 자신들의 신앙을 다른 사람과 나누기만 하면 된다.
열린 예배
자원이 제한되어 있는 교회도 효과적으로 열린 예배를 할 수 있을까? 물론 그렇다. 매주 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고, 연주하는 밴드가 있어야만 하는 것도 아니며, 네온 사인이 있어야만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자원이 제한되어 있는 상황에서 열린 예배를 시도하고자 하는 교회에서는 다음의 내용을 숙고해보기 바란다.
매주 하지 않는다
적어도 처음부터 매주 시도하지는 말라. 계획을 세워 한 번 해보라. 그래서 유익이 되면, 몇 개월 뒤에 다시 한 번 시도해본다. 작은 교회인 경우에 매주 하기보다는 매달 하는 것이 좋다.
적절한 주제를 선택하라
불신자들이 공감할 수 있고 인도자가 소화할 수 있는 주제를 선택하라.
밴드의 연주가 없다고 해서 속태우지 말라
녹음된 음악을 활용하여 반주할 수 있다. 또한 현대 음악가들을 비디오로 소개하는 것도 유용할 것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좋은 음악을 제공할 수 있다.
연극반원을 모집하여 훈련시키라
교인들 가운데는 고등학교나 대학에서 연극에 참여해본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들의 관심을 키워주고 그들의 경험을 살려주도록 한다. 열린 예배의 주제와 어울리는 연극을 선택한다.
간증할 수 있는 사람을 찾으라
청중들 앞에서 연설을 잘하는 사람보다는 그리스도와 교제하는 일에 열정적인 사람이 훨씬 더 좋다. 말하는 기술보다 진실성이 더 중요하다.
비디오를 사용하라
우리는 점점 영상매체 중심으로 움직이는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에 비디오는 프로그램의 분위기를 높일 수 있다.
교인들이 직접 사람들을 초청하도록 힘쓰라
다 끝난 뒤에는 간식을 제공하라
먹을 것과 마실 것이 있으면 사람들은 좀더 편하게 다른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9 열린 예배를 통해 배운 것들
전통적인 예배와 열린 예배를 뒤섞지 말라
‘토요일 밤’은 파격적인 형식이다. 그러나 주일 아침예배는 파격적이지 않다. 우리가 배운 것 중 하나는 토요일 예배와 주일 예배는 별개로서, 서로 뒤섞을 수 없다는 것이다. 두 가지를 하나로 결합시키려 한다면 둘 다 망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신중하고 또 신중하기 바란다. 전통적인 예배와 열린 예배를 섞을 수는 없다. 전통적인 예배 시간에 현대적인 음악을 연주하거나 연극을 공연하거나 넥타이를 매지 않음으로써 열린 예배로 바꾸지 말아라. 열린 예배는 별개의 총체로서, 이것을 전통적인 형식에 집어 넣으면 그 총체성이 망가지기 때문이다.
열린 예배의 교회 안의 교회다
전통적인 주일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들에게 ‘토요일 밤’은 일개의 프로그램일 뿐이다. 그렇지만 ‘토요일 밤’ 참석자들에게 이것은 프로그램이 아니라 교회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로 참석자들은 ‘토요일 밤’을 예배로 생각한다. 전통적인 신앙 배경에서 자란 많은 사람들은 ‘토요일 밤’이 예배라는 사실을 놓치고 있다. 심지어 나 자신도 얼마 동안은 그랬다. 그런데 어느날 한 사람이 물었다. “ ‘토요일 밤’에서는 무얼 합니까?”
“연극, 음악, 성경 읽기, 기도, 간증, 이야기, 질문과 대답 시간이 있지요.”
그러자 그 사람이 말했다. “그러니까 예배라는 말씀이군요.”
‘토요일 밤’에 정규적으로 참석하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예배인 것이다.
둘째로 ‘토요일 밤’은 본질적으로 갈보리 교회 안에 있는 또 하나의 교회가 되었다. 그들은 일요일이나 주중에는 참석하지 않고 토요일만 참석하지만, 스스로 갈보리 교회 교인으로 생각한다.
전통적인 예배보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토요일 밤’의 1시간 10분을 위해서는 도합 4시간에 이르는 주일의 여러 예배를 준비할 때보다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전통적인 교회 사역을 훈련받았지만 일단 시작했으니 익숙한 영역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으며, 대체로 낯선 환경에서 사역해야 했기에 더 큰 노력과 힘을 들여야 했다.
계획
열린예배에는 주의 깊은 계획이 필요하다. 우리는 주제를 몇 달 전에 선정한다음 가장 좋은 제목을 찾기 위해 오랫동안 생각한다. 그리고 주제와 어울리는 연극을 계획하고, 기독교적이든 일반적이든 이 주제에 맞는 음악을 찾는다. 이것은 계획의 시작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준비
나는 매주 8시간에서 10시간 정도 설교를 준비한다. 이 준비는 한 절 한 절 강해하기 위해 성경을 공부하는 일과는 완전히 다른 일이다. ‘토요일 밤’을 준비할 때 나는 신학이나 종교서적 보다는 대중잡지와 인기있는 소설을 많이 읽는다. 그리고 성경을 읽을 때 이런 질문을 스스로 던져본다. ‘이 구절을 난생 처음 듣는 사람들에게 해줄 이야기가 무엇일까?’ 그렇기 때문에 나는 어느 것 하나도 당연시하고 넘어갈 수 없게 되었다.
예행 연습
예행 연습은 토요일 오후 2시에 무대 설치를 맡은 봉사자들이 도착하자마자 시작된다. 밴드는 오후 3시에서 4시에 연습하고, 그 다음에 연극을 연습한다. 그리고 4시 30분에는 이야기 시간을 제외한 전체 순서를 예행 연습한다. 이 시간을 통해 음향, 조명, 프로그램간의 연결을 시험해본다. 5시 15분에 함께 모여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기도회 시간을 갖는다. 준비하는 사람들이 이처럼 3시간에서 4시간을 교회에서 함께 보낸 후에야 예배가 시작된다.
양육
예배가 끝난 뒤에도 보통 너댓 사람과 함께 그들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 한다. 어떤 사람들은 소그룹을 인도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일대일로 사람을 만난다. 이런 일에는 노력이 필요하다. 저녁 순서가 끝날 때까지 ‘토요일 밤’을 위해 일한 사람들은 5시간에서 6시간 동안 교회에 머물면서 집중적으로 사역한다.
열린 예배는 기독교 내에서 집중적인 비난의 표적이 될 수 있다. 우리 교회는 세상과 타협했으며 세속적이고 사탄적인 음악을 사용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또 성경을 포기했고 죄 문제를 약화시켰으며 사역이 아닌 오락을 하고 있다는 비난도 들었다. 때때로 나는 이런 비난에 대해 나 자신과 교회를 옹호하고자 노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문제로 논쟁하는 일은 무익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나는 이런 비난을 무시하기로 결심했다. 전통적인 교회를 변화시키기보다는 새로 교회를 시작하는 편이 쉽다. 변화는 보통사람들의 저항을 불러 일으키는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그러므로 부지런함과 인내와 지속성이 필요하다. 많은 전통적인 교회들이 열린 예배를 시도했다가 실패했다. 그보다는 차라리 열린 예배 사역의 원리에 기초한 새로운 교회를 시작하는 편이 훨씬 쉽다.
나는 같은 건물에서 모이며 같은 자원을 사용하는 비전통적인 교회와 전통적인 교회 사이에서 내 시간과 노력을 나누어 사용해야 하는 현실을 받아들여 왔다. 이렇게 시간과 노력을 나누어 쓸 수밖에 없다는 것은 모든 전통적인 교회가 열린 예배를 시도할 때 부딪치는 한계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다.
10 열린 예배에 가장 흔히 제기되는 질문들
지난 2년간 ‘토요일 밤’ 예배에는 교회들이 두세 팀씩 찾아오곤 했다. 이들은 중서부 지역 전역에 걸쳐 있는 교회 사람들인데, 자신들의 교회에서도 열린 예배를 시도해보려고 참관차 방문하는 것이다. 나는 프로그램이 끝난 후, 이분들을 만나 몇 가지 질문에 답변해주곤 했다. 다음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정리한 질문과 대답들이다.
질문. 열린 예배를 시작할 때 가장 중요한 선결조건은 무엇인가?
대답. 복음 전도에 대한 열정이다. 안타깝게도 복음 전도의 열정은 복음주의권 내에서조차 심각하게 쇠퇴하고 있는데, 가장 주된 이유는 많은 복음주의적 교회들이 수도원 같은 은둔 상태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밖에 있는 세상의 필요와 점점 멀어지는 행동이다. 열린 예배를 한다는 것은 두려운 일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이것은 안전한 지역 밖으로 옮겨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충분히 기도하고 신중히 결정하도록 충고한다.
질문. 어떻게 시작하는가?
대답. 첫째, 주님께서 이 일을 내게 원하신다는 분명한 인도가 있어야 한다.
둘째, 교회 지도자들에게 복음 전도의 열정이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셋째, 열린 예배에 철저히 헌신할 수 있는 소수의 사람들을 모아야 한다.
넷째, 방법, 비용, 참여자, 시기 등을 철저히 조사 계획한다.
질문. ‘토요일 밤’ 참석자들 중 주일 예배 참석인원은 얼마나 되는가?
대답. ‘토요일 밤’ 참석자들의 주일 예배 참석률로 성공을 따지려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가 더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에 대한 인격적인 신앙을 갖게 되고, 영적 성숙을 위해 소그룹에 참여하며,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신앙을 설명하게 되는 일이다. 그들에게 영적 성숙이 있다면 우리는 만족한다.
질문. 어떤 양육 프로그램이 있는가?
대답. 소그룹에 참여한다(독신자들의 시각, 마약 중독자 재활 모임, 소그룹 공부 등). 또 다른 사람들은 주일 저녁에 가정 성경공부에 참여한다. 실제로 이러한 소그룹에 참여한 뒤에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믿는 사람들이 많다. 주일 아침 ‘그린 하우스’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여기에서는 기독교 신앙과 영적 성숙에 대한 기본 내용을 배우게 된다.
질문. 광고를 하고 있는가?
대답. 첫째로 도시 주변 여러 곳에 있는 대형광고판을 이용, ‘토요일 밤’의 로고와 시간을 제시한다. 둘째로 매주 일간 신문의 영화면에 광고하여 로고와 그 주간의 주제가 잘 보이도록 신경을 쓴다. 셋째로는 편안한 노래와 가벼운 록음악과 흘러간 노래를 틀어주는 라디오 방송에 광고한다. 기독교 방송에는 광고하지 않는데, 불신자의 대부분은 기독교 방송을 듣지 않기 때문이다.
질문. 록음악을 꼭 사용해야 하는가?
대답. 한마디로 그렇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사용한다. 우리는 록음악을 통해 우리가 섬기고자 하는 사람들과 접촉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록음악을 통해 전통적인 교회에 관계된 모든 이미지를 끊을 수 있었는데, 이 점은 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불신자들은 전통적인 교회가 죽어 있고 형식적이며 전통만을 강조한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열린 예배에 가장 적합한 음악 형식은 각자 정해야 할 것이다.
질문. 당신은 왜 청바지를 입는가?
대답. 우리는 ‘토요일 밤’의 참석자들이 정말 편안해지길 바란다. 양복에 넥타이를 맬 경우 우리가 원하지 않는 형식성을 띠게 된다. 간편한 옷차림은 어느 정도는 편안한 분위기를 연출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질문. 왜 열린 예배를 교회 건물 안에서 하는가? 좀더 중립적인 장소에서 해야 하지 않는가?
대답. 중립적인 장소에서 할 경우 좋은 점이 더 많은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참석자들이 궁극적으로 교회에 연결되어야 한다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교회에서 모임을 가지면 사람들이 교회 건물안으로 들어오는데 따르는 심리적 부담감을 점차 떨쳐 내게 되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앞으로도 교회에서 열린 예배를 계속할 예정이다.
질문. 왜 찬송가를 부르지 않는가?
대답. 첫해에는 찬송가를 부르기도 했다. 그런데 참석자들의 반응이 없었다. 우리의 결론은 불신자들은 와서 구경하고자 하는 것이지 참여하려 들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또 참석자들에게 찬송가를 부르게 하면 비록 밴드가 반주한다고 해도 전통적인 교회 분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는 찬송가를 부르지 않는다.
질문. 불신자들이 많이 참석하는가?
대답. 우리는 매해 같은 기간에 참석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는데, 이 결과에 따르면 ‘토요일 밤’ 참석자의 약 70% 정도가 불신자들이다. 이 70% 중 절반은 예전에 교회에 다니다가 떠난 사람들이고, 절반은 전혀 교회에 배경이 없는 사람들이다.
질문. 예산은 어느 정도인가?
대답. 해마다 다르지만 보통 5만불 정도가 든다. 대부분이 광고비로 충당된다. ‘토요일 밤’ 자체에 드는 실제 경비는 적은 편이다.
질문. 왜 헌금 시간을 갖는가?
대답. 사람들이 일단 교회와 관계를 맺게 되면 언젠가는 헌금을 드리게 될 텐데, 그렇다면 아예 처음부터 헌금 시간을 갖는 것이 좋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었다. 왜냐햐면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헌금과 관련하여 어떤 숨은 의도를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헌금에 대해서는 사려 깊게 광고한다. 나는 헌금에 대한 부담을 가지지 말라고 말하면서, 정기 참석자와 ‘토요일 밤’의 비용에 보태기를 원하는 사람만 헌금하라고 한다.
질문. 그 헌금으로 예산이 충당되는가?
대답. 보통 한사람당 1불씩 헌금하는데, 예산의 70%를 여기에서 사용하고 나머지는 교회의 전도비로 충당한다. 참석자들이 ‘토요일 밤’에 더 많이 연결되고 더 깊게 연루되면서 헌금액도 늘었다.
질문. 연극 대본을 어디서 구하는가?
대답. 처음 2년 동안은 우리가 직접 대본을 썼다. 그러다가 한 1년 반 정도는 다른교회, 특히 윌로우크릭 커뮤니티 교회에서 빌려 왔다. 그러나 작년부터는 다시 대부분의 대본을 우리가 직접 쓰고 있다. 함께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 후, 연기자들이 대본을 쓴다. 일반적으로 예배 시간에 전달하고 싶은 개념을 표현하는 내용이다.
질문. 밴드는 어떻게 조직했나?
대답. 교인 중에 연주할 만한 분들이 있었고, 그들은 음악의 재능을 활용할 수 있는 길을 찾고 있었다. 전통적인 분위기에서는 재능을 쓸 수 있는 기회가 적었던 이들이 ‘토요일 밤’ 밴드 일을 열성적으로 맡아 했다.
질문. 다른 교회들도 열린 예배를 시도했지만 실패한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대답. 실패의 주된 원인은 이 일에 완전히 헌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헌신이란 담임목사의 참여와 지원, 잘 운영할 수 있을 만큼의 재정 확보, 그리고 프로그램이 시작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투자하려는 의지를 말한다. 사람들은 윌로우크릭 커뮤니티 교회나 우리의 사역을 보고, 단지 좋은 아이디어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은 ‘토요일 밤’의 밑바탕에는 사람들을 주님께 인도하고 서로를 연결시켜 주는 강력한 양육 구조가 놓여 있다는 사실을 놓치고 있다.
질문. 주제를 어떻게 개발하는가?
대답. 우리는 참석자들을 모두 정리해놓고 있다. 때로 나는 이것들을 분류하면서 자주 나오는 질문들을 통해 사람들의 생각을 살펴본다. 그리고 이러한 조사 과정을 거쳐 주제를 개발한다.
질문. 자유롭게 질문하고 대답하는 시간이 필요한가?
대답. 나는 이것이 ‘토요일 밤’이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바로 이 시간을 통해 막연한 추측이 아니라 실제로 사람들이 고민하고 있는 문제를 접할 수 있고, 여기에 응답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일어나서 질문하는 식으로 이 시간을 진행했다. 그러나 이 예배가 자리를 잡아가면서, 이런 식의 진행은 사람들에게 겁만 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질문지를 사용할 때 더 자유롭게 질문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질문. 토요일 밤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은가?
대답. ‘토요일 밤’은 우리 교회 안에 속하면서도 본질적으로는 분리된 모임이 될 것 같다. 10년 후에는 ‘토요일 밤’이라는 접근 방식이 부적합해질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해서 우리가 서 있는 지점과 우리가 하고 있는 일과 우리가 다가가고자 하는 대상을 점검한다. 또한 ‘토요일 밤’이 더 이상 효과적이지 못하다고 판단될 경우, 변화를 주는 일에 대해서도 주저하지 않고 개방적인 자세를 취하고자 한다.
질문.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고치고 싶은 점은?
대답. 무엇보다 여름에 모임을 중단했던 일을 다시 고치고 싶다. 처음 4년간, 여름에는 사람들이 참석하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8주간 모임을 갖지 않았다. 그러다가 5년째 되던 해에는 여름에도 계속 진행했는데, 여름 내내 평균 407명 정도가 참석하였다. 우리는 지레짐작으로 프로그램을 중지한 탓에 ‘토요일 밤’이 주일 예배보다 중요하지 않다는 인상만 심어주는 결과를 낳았다.
질문. 빌 하이블스 목사와 윌로우크릭 커뮤니티 교회의 영향을 받았는가?
대답. 나는 빌 하이블스 목사님과 지금도 만나고 있고 윌로우크릭 커뮤니티 교회 예배에도 참석하곤 한다. 그러나 그 교회의 교역자 회의에 참석해 본 적은 없다. ‘토요일 밤’을 시작할 때 우리는 빌 하이블스 목사님의 영향을 간접적으로 받았다. 그 교회에 대한 비디오 테이프를 보았고 정기 간행물에 실린 몇 편의 글을 읽었으며, 그 교회를 다닌 적이 있는 우리 교회 교인들의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그러나 윌로우크릭 커뮤니티 교회를 그대로 본따서 새로운 예배를 시작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다가서고자 하는 대상들을 조사하고 그 사람들에게 필요한 예배를 만들어 보고자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어떤 점에서는 윌로우크릭 커뮤니티 교회를 닮은 점도 생기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예배는 그와는 분명히 다르다.
질문. ‘토요일 밤’은 주일 예배처럼 폭발적인 성장을 보이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대답. 내가 내린 결론은, 토요일 저녁에 참석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교회에 대한 헌신도가 낮은데다가 대다수가 그리스도께 헌신하지 않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매주 참석해야 할 의무감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주제가 마음에 들거나, 개인적인 갈 등을 겪고 있을 때 참석한다. 따라서 계속 참석하는 핵심인원은 300명 정도이고 나머지 300명에서 400명 정도는 유동적인 인원이다. ‘토요일 밤’은 장기적으로 볼 때 계속 성장할 잠재력이 있다. 그러나 앞으로도 주일 예배의 성장 속도보다는 훨씬 느리게 성장할 것이다.
질문. ‘토요일 밤’ 사역에 가장 중요한 요소를 한가지만 꼽는다면?
대답. 불신자들에게 헌신하겠다는 자세가 가장 중요하다. 이 우선 순위를 확립하지 못하면 열정을 갖고 사역을 시작하더라도 결국은 실패하게 될 것이다.
질문. 열린예배를 계획할 때 위험한 점은 무엇인가?
대답. 첫 번째 위험은 다른 교회가 하는 내용을 그대로 모방하려는 것이다. 모방은 해롭다. 다른 교회로부터 원리는 배울 수 있다. 그러나 그 원리를 적용할 때는 우리 자신의 상황 속에서, 문화적으로 적절한 방법으로 해야만 한다.
질문. 비판에 어떻게 대응해 왔는가?
대답. 우리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의 궁극적인 목표와 의도를 분간해야 한다. 만약 우리 예배가 편안한 시간이 됨으로써 복음을 전하고 그리스도를 사람들에게 소개할 수 있다면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예수님은 비유와 이야기를 통해 진리를 전달하셨다. 구약 성경에서 선지자들은 자신들의 생활을 예로 보여주면서 진리를 생생하게 보여주곤 했다.
질문. 왜 결신자 초청의 시간을 공식적으로 갖지 않는가?
대답. 복음적의적인 많은 교회들은 ‘불신자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유일한 방법은 공적인 초청의 시간을 통해 사람들을 강대상 앞으로 부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구원은 성령께서 사람들에게 죄를 깨닫고 하고 예수 그리스도와 만날 수 있도록 인도하실 때 일어난다. 구원은 사람들이 강대상 앞으로 걸어나올 때 이루어질 수도 있지만, 다른 방법으로도 가능하다. 우리들의 상황에서 볼 때, 강대상 앞으로 걸어나오면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게 되므로 마음이 약한 사람들에게는 부담이 될 수 있으며, 또한 인위적으로 조작될 수도 있다. 나는 ‘토요일 밤’에서 이야기를 마친 후에는 보통 두사람 정도를 일으켜 세운다. 이들은 예배가 끝난 뒤에 남아서, 원하는 사람들과 함께 대화하고 기도해줄 사람들이다. 물론 나도 남는다. 우리는 이 방법이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며 앞으로 나오는 방법보다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똑같은 이유 때문에 나는 주일 예배에서도 공식적인 결신의 시간을 거의 갖지 않는다. 그대신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도록 기도실을 제공하고 있다.
부록 질문과 대답
여기에 제시된 질문과 대답들은 모두 새출발이라는 4주짜리 시리즈에서 뽑았다. 이 답변들에서 민감성과 격려의 정신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답변은 약간의 편집을 거친 것들이다.
관계가 단절되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나?
질문. 지금 사귀는 사람이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지만 아직도 저는 그를 사랑하고 있어요. 도와주세요!
대답. 무엇보다 사랑은 아주 광범위한 용어입니다. 우리는 그 말을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하고 있지요. 예를 들어 “아내를 사랑한다”, “자녀를 사랑한다”, “학교를 사랑한다”고 말할 때 표현은 달라도 뜻은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기본적으로 감정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성경에 따르면 사랑에는 최소한 세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첫째, 사랑은 감정입니다. 둘째, 사랑은 육체적입니다. 셋째, 사랑은 영적인 것입니다. 이것은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일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지요. 제가 보기에 당신은 영적으로 옳은 결정을 내린 것 같습니다. ‘이 사람은 나와 맞지 않는다. 그러나 관계를 지속하여 나중에 크게 실망하고 상처받기보다는 지금 관계를 청산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런데 당신의 감정과 느낌은 아직 그 선택을 쫓아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결국 이겨낼 수 있으며, 사랑의 세 가지 측면이 모두 표현될 수 있는 바르고도 적합한 관계를 찾을 수 있습니다.
질문. 성적 학대를 경험한 사람이나 심하게 상처받은 사람들을 어떻게 도와줄 수 있습니까?
대답. 첫째로 그들을 사랑함으로써 도울 수 있습니다. 둘째로 그들을 학대하지 않음으로 도울 수 있습니다. 셋째로 전문적인 도움을 받도록 권함으로 도울 수 있습니다. 저는 성적 학대를 경험한 사람들이나 그들을 치료하는 사람들과 함께 대화하는 가운데 전문적인 도움의 중요성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학대받은 경험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영향을 미칩니다. 자기가 경험한 학대나 그 학대 유형을 나중에 가서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게될 가능성이 높지요. 만약 학대받은 사람을 알고 있다며, 그 사람의 가능성을 보고 사랑하지 말고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십시오. 그 사람은 상처받기 쉽고 약한 상태이므로 학대해서는 안됩니다. 또한 도움을 받도록 권하십시오. 회복이 빨리 되지는 않을 겁니다. 그것은 아주 심각한 일이며 극복하는데 오랜 시간과 도움이 필요한 일인 것입니다.
질문. 기도해도 고통을 없애주시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참고 기다려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말입니다.
대답. 하나님은 왜 고통을 없애지 않으실까? 인간이 존재하는 한 부딪쳐야 할 현실 중 하나가 고통이라는 것 말고는 드릴 수 있는 답이 없습니다. 고통을 겪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고통을 경험합니다. 하나님은 성경에서 고통을 사라지게 해주겠다고 약속하지 않으셨습니다. 단지 우리가 고통 당할 때 우리와 함께 하겠다는 약속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힘을 주십니다. 성경은 ‘여러가지 어려움에 빠질 때 너희 믿음의 시험이 인내를 낳는다는 것을 알고 기뻐하라’고 말합니다. 인내라는 말에는 역경 아래서 살아간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는 고통 속에서 하나님께 시선을 돌리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바로 그 순간 개입하셔서 고통 속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개인적으로 큰 상처를 받았을 때 어떻게 해야 하나?
질문. 나에게 정말 못할 짓을 저지른 사람을 용서했는데, 그가 자기 잘못을 알면서도 사과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대답. 회개하거나 남을 배려하지 않는 그 사람을 하나님이 처벌하실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시는 것 같군요. 하지만 저는 그렇게 말할 수가 없습니다. 만약 그렇게 따진다면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벌주셔야 할 것입니다. 아무도 절대적인 가치 기준에 맞추어 살 수는 없으니까요. 용서는 내가 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에게 나를 용서해 달라고 부탁할 수는 있지만 억지로 나를 용서하게 만들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어떤 사람을 용서하는 것은 상대방이 나에게 용서를 빌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내가 해야 할 옳은 일이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내가 용서한 그 사람은 어떻게 될까요? 그는 하나님이 그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용서를 빌게 하실 때까지 사슬에 묶인 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힘으로는 그 사람이 용서를 빌게 만들 수 없습니다. 인생의 모든 부조리들 속에서도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모든 것을 기록하고 계신다는 사실에 저는 감사를 드립니다. 비록 아주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 벌어진다고 해도 하나님이 계시다는 그 사실은 제게 희망을 줍니다.
질문. 아내가 외도를 해서 이혼했는데, 지금 사탄의 조종을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아내를 다시 신뢰해야 할까요?
대답. 나를 실망시킨 사람을 다시 신뢰한다는 것은 자동차의 자동 창문이나 라디오를 켜는 것처럼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신뢰가 무너졌을 때, “그래, 나는 상처받았어. 이제 스위치를 돌려서 다시 믿어 보도록 하지”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일정한 과정을 거쳐야지요. 그렇습니다. 신뢰는 회복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며 기도와 싸움과 노력을 요구하는 일입니다. 당신의 상처가 깊다면 기독교 상담가나 전문가에게 도움을 부탁하는 것도 좋습니다.
질문. 정말 괴롭습니다.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어요. 저는 삼십대 여자이고, 제 아이들은 각각 일곱 살, 세 살입니다. 제가 어떻게 이 아이들에게 과거를 잊고 용서하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애아빠가 우리를 버렸어요.
대답.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자녀들도 당신처럼 괴로워할 겁니다. 저는 오늘밤 우리가 나눈 이야기대로 한 번 노력해 보시도록 격려하고 싶습니다. 그 사람을 용서하며 떠나보내는 일을 배우십시오. 자녀들은 당신을 보면서 배울 것입니다.
저도 마법의 지팡이를 흔들면서, 더 이상 이혼하는 일이 없을 것이며 모든 부모가 아이를 사랑하고 모든 부부가 서로에게 헌신할 것이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가정이 깨졌을 때의 고통이란 상상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친히 고아들의 아버지가 되시며 깨진 가정과 단절된 관계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저는 여기에 희망을 갖습니다.
진부하고 단순한 말로 들릴지 모르겠습니다만, 당신의 삶 속에서 이 과정을 잘 밟아 나가면서 다른 이들의 도움을 받거나 지원 그룹에 참여하여 하나님께 집중하시도록 격려하고 싶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분이라면, 그분을 받아들이고 성경의 기초 위에서 자녀들을 돌보며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 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 상황을 이기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물론 교회도 당신을 도울 것입니다. 교회에는 고통받는 가정을 도와야 할 막중한 의무가 있습니다.
실패를 어떻게 감당해야 하나?
질문. 저는 언제나 잘못만 저지릅니다. 저도 제가 싫은데 어떻게 하나님이 저를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제 삶은 실패작인 것 같습니다. 저는 주님께 헌신하고 있지만, 하나님께 실망만 드리는 것 같아요.
대답. 당신은 저를 포함해서 여기 있는 사람들의 느낌을 대변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끊임없이 실망시키는데 어떻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전공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조건적인 사랑을 생각합니다. 우리는 자녀들에게 이렇게 말하지요. “나는 널 사랑한단다. 네가 나를 부끄럽게 하지만 않는다면”, “나는 널 사랑해. 음식을 예의바르게 잘 먹는다면” “나는 너를 사랑한단다. 네가 이런저런 일을 한다면”. 이렇게 우리의 사랑에는 많은 조건이 따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조건을 붙여 사랑하지 않으십니다. 내가 선하든 악하든 상관없이 동일하게 사랑하십니다.
우리는 중요한 가치를 지닌 존재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를 놓고 씨름합니다. 우리가 자신의 가치를 외모나 학벌이나 업무 수행 능력이나 직업에 두기 때문입니다. 나는 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들을 못하기 때문에 그 사람만큼 귀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모든 인간은 가치있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두 가지 이유 때문에 가치가 있습니다. 첫째, 우리가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천부적인 가치를 부여합니다. 둘째,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그의 아들을 보낼 만큼 사랑받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아들을 십자가에서 죽게 하고 다시 살리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실패자이지만 하나님은 그래도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이 사실에 용기를 얻으십시오.
질문. 제 삶에서 한 번 잘못 선택한 뒤에 저는 좀더 건전한 삶의 방식으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저를 향해 계획을 갖고 계시다는 것을 알지만, 내 마음대로 살려는 자세를 버리고 하나님의 계획을 신뢰하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좋은 조언을 해주실 수 없습니까? 저는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저에게 많이 실망하고 있습니다.
대답. 하나님께 굴복하며 그를 신뢰하는 일에 대해 사람들을 헛갈리게 만드는 신학 용어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을 받아들이는 것,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 또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모두 한 가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곧 하나님이 나를 주장하시며 나의 삶에서 최우선순위를 차지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믿는 사람에게 상처를 받을 때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는 능력이 자주 손상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은 주로 가정에서 일어납니다. 수잔 섬머가 쓴 <비밀지키기>라는 책이 생각납니다. 만약 당신이 가정에서 학대받고 자랐다면, 예를 들어 아버지가 술에 취해 당신을 때리면서 온갖 나쁜 소리를 해댔다면 그 기억은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께 돌아오기가 어렵고, 때로는 하나님을 건전한 방식으로 신뢰하기전에, 이전 관계에서 입은 상처와 고통을 처리해서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하고 과거에서 놓여나며 고통을 넘어서는 법을 배우는 일이 필요합니다. 고통을 처리하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데 이르는 한 방법입니다.
성경은 이 신뢰가 성경을 듣는 데서 온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는 시간을 가짐으로써 우리의 믿음을 북돋을 수 있습니다. 당신도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내게 두 번째 기회를 주실까?
질문. 주위의 사람들이 모두 술을 즐기는데, 저는 이 일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어떻게 해야 다시 새롭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대답. 시편에는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의 지혜를 따르지 말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으며 조롱하는 사람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들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해로운 일에서 벗어나려고 한다면 그런 일을 하는 사람과 관계를 맺는 일에 주의하는 것이 좋다는 뜻입니다. 회복한다는 것은,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화해를 이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긍정적인 친구들의 영향을 받는 일이 중요합니다. 술 마시는 것이 문제가 된다면, 알코올 중독자 재활치료 모임에 참여하십시오. 당신을 격려해줄 수 있는 사람들과 어울리십시오. 성경은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람을 사랑하며 좋을 일을 하도록 서로 격려하십시오.” 당신은 좋은 일을 하도록 계속 동기를 부여해주는 사람들과 가까이 지낼 필요가 있습니다. 당신의 삶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술을 즐기거나 마약을 하거나 당신이 벗어나고자 하는 삶을 사는 친구들과 완전히 결별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질문. 내가 12살이 되도록 성적, 정신적으로 학대를 당하는 동안 그 완벽하신 하나님은 어디에 계셨습니까? 하나님이 제게 두 번째 기회를 주시는 것은 좋다고 하지만, 어떻게 내가 하나님께 두 번째 기회를 드릴 수 있겠습니까?
대답. 간단명료하게 대답하기가 어렵군요. 저도 하나님이 어디 계셨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지금 거기 계시다는 것은 압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당하든 하나님은 우리 삶을 치유하실 수 있다는 것도 저는 압니다. 정말 힘겨운 경험을 한 분들에게 제가 드릴 수 있는 유일한 위로는, 하나님이 자발적으로 자기 아들을 보내어 그 아들을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철저하게 학대당하게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놀라운 모습으로 사랑을 보여주심으로써 하나님은 이 혼란스럽고 끔찍한 세상에 희망을 주셨습니다.
당신은 하나님께 두 번째 기회를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큰 위험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당신이 어린 시절에 빼앗겼던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치유와 은혜와 희망과 의미를 당신의 삶 속에 보여주실 수 있습니다. 솔직히 이런 경우를 대할 때면 그렇게 사람들을 학대하며 고통스럽게 만드는 사람들을 하나님이 터미네이터처럼 처치해 주시기를 바라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놀라우심은 그분의 사랑과 용서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저는 당신이 하나님께 두 번째 기회를 드리도록 격려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끔찍한 경험에서 벗어나 상처 입은 다른 사람들에게 다가가 그들을 도울 길을 찾게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