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성이재(福星峙, 601.4m)
장수군 번암면과 남원시 아영면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산줄기는 시리봉과 봉화산을 잇고 물줄기는 낙동강과 섬진강으로 이어진다.
복성(福星)마을로 연유해서 생긴 이름인데 그 유래가 전해오고 있다.
복성이마을은 장수군 번암면 논곡리와 남원시 아영면 성리 사이에 있는 조그만한 산골마을로 행정구역으로 장수군 번암면논곡리에 속한다.
엣날에 변도탄 이라는 기인(奇人)이 있었는데 나라의 군량미를 관리하는 양관(糧官)으로 있었다.
그가 어느날 천기를 보고 삼년내에 국가에 큰 전란이 있을 것을 알았으며, 앞으로 닥쳐 올 전란에 대비하여 국방을 튼튼히 할 것을 상소 했으나 평화시에 흑세무민(黑世誣民)한다는 이유로 삭탈관직을 당했다.
변도사는 할 수 없이 피난처를 물색 하던 중 지리산을 의중에 두고 천기를 보니 북두칠성의 복성(複星)이 갑자기 남쪽에서 비치므로 별빛을 따라 지리산 쪽으로 가다가 별 빛이 멎은 곳에서 쉬었다.
이곳이 오늘날 복성부락에서 약간 떨어진 복성이라는 곳이다.
변도사는 이곳에 움막을 짓고 피난때 가지고 왔던 많은 양곡을 가루로 만들어서 벽과 천장을 발랐다.
이삼년 뒤에 마침내 나라에 큰 전란이 일어났다.
외적의 침입으로 임금께서는 몽진길에 오르고 왕족과 중신들은 이리저리 흩어졌다.
어느날 구름처럼 몰려드는 피난민 틈에 허기가 지고 노독으로 기진맥진한 왕족일행을 발견하고 벽을 떼어서 죽을 쑤어 먹게 하여 목숨을 구하였다.
또한 전쟁이 끝날 때까지 아군을 위하여 움막에 발랐던 쌀가루를 군량미로 사용하였다.
몇 년 동안 계속되었던 전란은 끝이 나고 한 사람 두 사람 이곳에 정착하면서부터 복성마을이 형성됐다고 한다.
변도탄이 피난올 때 군량미를 가지고 온 죄는 크지만 국가 위급시 국가를 구하는 군량미로 긴요하게 사용했기 때문에 임금께서 죄를 사하고 오히려 상을 내렸다고 한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남원시 송동면의 변씨가 변도탄의 후예라는 설도 있다.
인월시외버스정류장에 있는 남원시내버스 시간표 : 흥부마을에 있는 구상정류장에서 복성이재까지 약 2km 이다.
산행을 마치고 흥부미을까지 걸어가서 버스를 탈까 하다가 버스시간도 잘 모르기에 인월택시를 호출하였다.
택시는 약 15분 후에 도착을 하였고 택시를 타고 인월시외버스터미널까지 갔다.(요금 13,000원)
인월에서 17:25에 동서울로 가는 버스표(요금 20,000원)를 구매하고 터미널 화장실에서 대충 씻은 후 옷을 갈아입었다.
8시간이상 산행을 하면서 삼각김밥 3개로 때웠기에 출출하여 식사를 하려니 시간이 30분이 채 남지 않았다.
마침 터미널 앞에 중국집이 있기에 짜장면 한그릇을 바삐 먹고 버스에 올랐다.
인월을 출발한 버스는 함양에서 잠시 대기하다가 18:00에 출발을 하였다.
함양을 출발한 버스는 21:00가 조금 지나서 동서울에 도착을 하였고 전철을 이용해서 귀가하였다.
이제 대간길도 4구간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