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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혈 여행 12번째 (대전 천동 인단산 및 대전천 알바위 성혈)
답사일자 : 2013년 12월 24일 화요일 맑음
답사코스 : 돌까마귀산악센터/천동인단산/대전천알바위/돌까마귀산악센터
답사인원 : 돌까마귀님,해피투게더님,안여종대표님,느낌표!
돌까 형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인단산 성혈답사 가 있으니 12시 산악센터로 오라고, 계남 정미소와 물레방아 로 유명한 진안 백암리 답사를 잡아 놓고 있었다. 물론 목적은 범바우 성혈을 보기 위해서였다. 그렇지만 전화 오기 하루 전 돌까 형님께서 인단산 선답시 발견한 성혈사진을 핸드폰으로 받았을때의 흥분이 채 가라 않기 전이라 어찌 거절 할수 있으랴, 밤잠을 설치고 부리나케 문창동 돌까마귀 산악센터 문을 두드린다. 1시간 전에...
둘이 마시는 커피 한잔에 정감이 오고 간다. 78년 부사동 청란여고 뒤 즉 까막산(보문산) 중턱에 연탄 부엌에 방 한 칸 딸린 집에서 살림을 시작 했다. 중간에 다리를 다쳐 운동과 치료 목적으로 보문산을 오르다 대전둘레산길잇기를 알게 되었다. 대전 둘레산길의 인연이 대청호 호반 길 개척의 계기가 되었다. 호반길은 발전을 거듭하여 대청호 오백리길로 재탄생 되어 지금은 대전 둘레산길과 같이 대전의 대표 둘레길 로 자리 메김을 하고 있다. 대전둘레산길 잇기 개척자 안여종 대표의 산성 사업 으로 산성을 알게 되고 또한 성혈도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산길도 좋다. 산성 또한 돌 하나 하나의 정감 넘치는 맛 또한 좋다. 그렇지만 바위 구멍 매력 또한 대단하다고 힘주어 말하는 돌까마귀님 이다. 나도 경험 했으니 그 말뜻을 어찌 모르랴 하나 하나 발견 했을 때의 희열은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그 누구도 모른다.
해피투게더님 과 안여종 대표님이 도착 하여 우선 점심을 해결 하기 위해 근처 식당으로 이동 한다.
돌까마귀 산악센터-대전의 대표 둘레산길 이라 할수 있는 대전둘레산길 잇기, 대청호 오백리길 등 대전의 산에 대한 정보는 이 곳을 방문 하면 모두 해결 할 수 있다.
산악센터 안에는 소박 하지만 다양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먼저 추억의 산악 뱃지가 눈에 들어 온다.
문창 동사무소 앞 논두렁 추어 칼국수집
줄을 안설려나 모르겠네..!!
예?..
먹어 보면 알겠지만 일명 맛집으로 유명한 집이기 때문이지!
김치를 곁들인 정갈한 밑받찬에 칼국수 한그릇 이지만 딱 받아 놓으면 먹음직 스러움에 놀라고 동시에 우~신음 소리가 절로 나온다. 과연 다 먹을수 있을련지 걱정 부터 앞서기 때문이다. 맛은 물론 이거니와 가격도 오천원으로 저렴 하다. 산악센터 방문 고객들을 꼭 이곳으로 안내 하는 이유를 알겠다.
문창 동사무 앞 논두렁 추어 칼국수집-문창동에서는 가격도 저렴한 유명한 맛집 이다.
추어 튀김 또한 감칠맛 이 뛰어 나다.
논두렁 추어 칼국수 집을 나와 문창 동사무소옆을 끼고 대전천 돌다리를 건너 효동 사거리 까지 간다.
효동사거리 구 TJB 방송국 건물 앞 을 지나 건너편으로 보면 작은 구멍 가게 영진상회 골목길이 천동 인단산 초입이다. 지도를 보면 분명 산 이름 으로 기재 되어 있다. 재미 있는 것은 그 옆으로 오빠나루란 또 다른 산이 있다는 점이다. 처음엔 무슨 술집 이름이 크고 유명해 지도에 까지 이름이 올랐나 했더니 돌까형님이 마을 사람들에게 확인한 결과 산 이름 이란다. 오빠나루 (141.4m)로 삼각점이 있는 정식 대전의 산 이름이다.
골목을 들어서 우측 경사면을 오르면 인단산이다. 86년 아시안 게임이 있던 해쯤 대전천 알바위 에서 신나게 목욕하고 한 다름쳐 올랐던 그 산이다. 물론 돌까마귀 형님 이야기다. 그 당시 바위구멍에서 놀았던 그 추억을 더듬어 지금은 공식적으로 답사팀을 안내하는 입장이다. 무심코 지나쳤던 그곳이 문화유산 이라니 말이다.
올라 가면서 등로 우측에 만나는 조그마한 바위에 2개의 성혈이 새겨져 있다. 조금더 올라 가면 깨끗하게 치워져 있고 2개로 갈라져 있는 바위가 나오는데 그곳에서 알듯 모를듯 한 재미난 성혈이 새겨져 있다. 이 곳 답사시 그 곳에는 논문에도 분명 성혈 이야기가 있어 더 있을거라는 안여종 대표님의 말에 바위에 올라 눈을 쓸어 내리자 나타나는 바위 구멍, "성혈이다" 심마니가 산삼을 발견 하고 "심봤다" 외치는 그 순간에 비교 하면 될까, 뒷 머리에서 발끝까지 찌릿하게 전률이 타고 내려 가는 그 순간을 어찌 잊히랴, 무려 2시간 동안 치우는 작업임에도 힘든줄을 몰랐다고 한다. 계족산 매봉골에서 작업중 화장실에서 나오다 어..? 바위에 자연적으로 구멍이 숭숭 나 있네... 이것 봐라... 위로 올라 가니 돌이 놓여져 있고 돌을 치우자 동전 5개가 나오고 그 동전을 치우자 마자 눈에 들어오는 바위 구멍, 놀라 소리치는 소리에 그 밑에서 일하는 인부들이 무슨 큰 일이 난줄 알고 뛰어 올라왔다 하니 그 감동은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는 일이다. 참고로 매봉골 성혈 바위위에 놓여져 있던 동전은 2002년도 100원짜리 동전 이라고
바위 밑으로는 그을린 자욱이 있고 김현경이라는 각자도 있다. 옆으로 깊은 구멍이 나있고 위로는 2개의 구멍이 합하여져 알듯 모를듯한 그림 형상을 만든 모습이다.
가오리 모습 같기도 하고 재미 있는 모습이 정감 있게 다가오는 성혈 바위이다. 인단산 2호 성혈 이다. 오늘의 목적지 인단산 정상에 오른다.
정상 못미쳐 공터에는 선돌과 제단이 있는데 일제 시대 일본 사람들의 기도 터 라고, 제단터을 우측으로 돌아서면 나 예수 석 이란 바위가 나온다. 직역 하면 나는 예수 돌이란 글로 나를 대하기를 하느님과 같이 하라는 말로 해석 해야 되나 위대한 예수님을 같다 붙일려니 난감한 일이다. 다시 위쪽으로 올라 가면 절벽을 깍아낸 공터가 나온다. 일제시대 우리나라 지맥의 기를 끊기 위해 바위를 깍아 내고 쇠말뚝을 박은 곳이라고 한다. 바로 그 위가 인단산 정상으로 눈 맛이 그만인 산이다. 대전 시내방향으로는 나무에 가렸지만 대전천 방향은 식장산과 서대산 만인산이 대전천과 같이 한눈에 들어오는 조망이 뛰어난 산이다.
나 예수 석
위 바위에 있는 2개의 구멍은 더 살펴 봐야 할듯
정상 올라 가면서 만나는 바위에 2개의 구멍이 있으나 고민을 해봐야 될것 같고 정상에 도착 하면 굉장한 성혈들이 펼쳐 진다. 먼저 길게 3등분으로 연결된 바위가 주 성혈 바위로 절벽 쪽으로 두개의 바위에도 성혈이 새겨져 있다. 주 바위 왼쪽으로 1개의 성혈이 새겨져 있는데 굉장히 크다. 그리고 오른편 "여"자란 각자가 새겨진 바위면에는 3개의 성혈이 새겨져 있고 주 바위에는 7개의 성혈이 새겨져 있다. 절벽쪽 내려 가면서 왼편 바위에 2개의 성혈, 절벽위 바위에 2개의 성혈이 새겨져 있어 인단산 정상 성혈수는 15개이다. 통칭 인단산 정상 성혈은 2군으로 나누어, 인단산 1호 성혈 그리고 절벽위 바위에는 있는 성혈은 인단산 두꺼비바위 성혈로 명명 되었다.
인단산 1호 성혈, 왼편으로 1개, 중앙에 7개,오른편에 3개의 성혈이 새겨져 있다.
인단산 정상은 작지만 눈 맛이 뛰어난 산이다.
인단산 정상 메인 성혈 바위 왼편 성혈
인단산 정상 메인바위 오른편 "여" 자 각자가 있는 바위 성혈
인단산 정상 1호 성혈 바위에서는 토속적이고 민속적인 향기가 물씬 풍겨난다고 안여종 대표님이 말씀 하신다. 그리고 절벽 두꺼비 바위 성혈은 매우 앙증스러움이 넘쳐 나는 성혈로, 예적 감각이 뛰어난 사람이 의도를 같고 새겼다는 생각이 드는 성혈이다. 한참을 봐라 봐도 그져 미소가 지어지는 것은 무슨 까닭인지 알지 못하게 만드는 성혈이다. 익산 범산 범 바위도 범 앞모습에다 약간의 손질로 마침 범모양을 하고 있는 바위가 있다. 돌까 형님이 가지 작업 하기전 그림자가 비쳐진 상태에서는 귀엽고 ,사랑스럽고 ,앙징스러운 ,확 껴안아주고 픈 이름 모를 아가 동물 같다. 두꺼비 바위 성혈이라고 명명된 것이 아까울 정도 이다.
인단산 1호 성혈 바위로 메인 위치에 있다. 왼편으로 1개,오른편으로 3개의 성혈을 둔 바위를 거느리고 있다.
토속적이고 민속적인 느낌이 물씬 풍긴다고
절벽 내려 가면서 왼편에 있는 2개의 성혈
너무 이뻐서 독립적 이름을 같게된 성혈바위이다. 과연 여러분들은 어떤 모습을 연상 하십니까..
인단산 정상 성혈 답사를 마치고 천동 벽화마을 옆길을 따라 대전천 알바위로 내려 간다. 고추밭인가 어..? 안여종 대표가 손을 가르킨다. 붉은 기와가 밭 여기 저기에서 출토 된다.무늬가 있는 기와 조각을 물으니 어골 무늬 기와 란다. 내눈에는 나뭇잎 무늬로 비쳐 지는데 어골 무늬요..? 물고기 뼈 모양 을 어골 무늬란다. 참 쉬운말로 하지..고려시대 기와로 아마 이곳 주위가 집터 였지 않나 한다. 붉은 기와는 밖에서 구워 산소와 접촉되어 붉고, 검은 기와는 가마로 구워 검은 색을 띤다고 설명을 들어도 잘 모르겠다. 검은 기와보다 붉은 기와가 더 앞선다는 것 밖에는, 지금 대전의 문화을 이끌어 가고 있는 사람중에 한사람으로 처음엔 하천과 환경 단체에서 첫 발을 내딧었고 지금은 또래 학교(역사체험학교라면 될까) 에서 강사로도 활동 중이며 (사)문화유산울임 대표를 맡고 있다. 대전의 문화산업을 더욱 활성화 시켜 사회적기업으로 키우고 싶다는 속뜻도 잠시 피력 한다. 벽화마을 앞 도로를 건너 대전천 알바위에 도착 한다. 이곳 알바위는 돌까마귀 형님의 놀이터 였으니, 남자는 이쪽에서 여자는 저쪽에서 목욕하던 추억이 어린 곳이다. 예전 이 곳에서 바위구멍을 봤다고 하니 확실히 성혈이 있다고 봐야 하겠다.
이 밭길로 내려 가면 오른편으로 천동 벽화 마을에 닿는다.
어골무늬 기와편
천동 벽화 마을
가오동,산내로 이어지는 도로를 건넌다.
대전천 알바위
대전천 알바위 성혈 1호에는 5개의 성혈이 새겨져 있다.
우리의 알바위에는 칠월칠석날 자정에 부녀자들이 알바위를 찾아가 일곱구멍에 좁쌀을 담고 치성을 드린 다음 좁쌀을 한지에 싸서 치마폭에 감추어 가면 아들을 낳는다는 민간신앙이 성행했었다고 한다. 지금도 그렇겠지만 예전엔 자식에 대한 기대가 무척 컷다고 한다. 자식 쑥쑥 낳고 평범하게 사는 그 모습이 자식이 없는 사람에게는 평생의 소원이 되는 것이다. 그 뜻이 고스란이 담겨 있는 알바위 인지 모르지만 5개의 성혈이 대전천 알바위에 새겨져 있다. 이곳이 대전천 알바위 1호 성혈 이다. 이것이 마지막 인줄 알고 성혈 사진전에 비치할 성혈돌을 챙겨 산악센터로 내려 가던중 6개의 구멍이 확 눈에 들어 옴과 동시에 "성혈이다" 모두가 소리친다. 새로운 성혈이 탄생 되는 순간이다. 대전천 알바위 2호 성혈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나 가며 쳐다 보고 있다.
그게 뭐여..??
예 성혈 이라고 말대로 바위 구멍 입니다.
바위구멍..??
왜 거기다 파..
뭐라고 설명 해야 되나
무신 뜻이 있는겨...?
옳거니.. 그렇니까 이 구멍은 아들 많이 낳게 해 달라고 소원을 빌던 구멍 이예요
혹시 이런 구멍을 만들어 보신적 있으세요
없어..근데 왜 바위에다 구멍을 파면서 빌어...
뒷 이야기는 안 들은 걸로 하겠다 . 많은 사람들이 하천 걷는 모습을 보니 우리나라도 많이 행복해 졌구나 하는 것을 느낀다.
우리나라에는 대전과 같이 성혈연구모임이 있어 공식적으로 활동하는 단체가 있는지 모르겠다. 아마 없는 걸로 알고 있다. 농담으로 성혈 발견 자체는 새로운 역사가 쓰여지는 일이라고 대전 최초를 넘어 우리나라 최초의 성혈역사가 만들어 지는 일이라고...그래서 유독 대전에만 많은 성혈들이 보고 되는것인지 모르겠다. 대전의 성혈 분포도를 보면 고인돌 에서보다 자연 암반위에서 발견되는 것이 훨씬 많다. 그래서 성혈은 고인돌 에서보다 자연암반에 더 많다는 사실도 대전 성혈 분포도를 보면서 느끼는 새로운 사실이다. 더 이상 성혈은 대전천에서 발견 하지 못하고 문창동 산악센터로 발길을 잡으며 새로운 성혈 답사를 마친다.
대전천 알바위 2호 성혈
대전천 건너 보이는 산이 대전 천동 인단산 이다.넉넉 3시간여동안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뜻 깊은 답사 길 이었다.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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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어골문토기가 아니고 기와입니다. 어골문은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기와 무늬입니다.
다양한 사진 감사합니다. 함께해서 늘 고맙습니다.
예 기와 조각 이었군요 어골문은 대표적 고려시대 기와 무늬다 또 하나 배우고 갑니다 . 고맙습니다.
답사기 내용에 돌까마귀가 너무 높이 날았으니 곧 떨어질때가 된듯 ㅋㅋㅋ
떨어지면 안되지요...아직도 할일이 많은데...덕분에 멋진 성혈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