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정씨(羅州丁氏) 항렬표(行列表) 및 해설
12세(世)부터 40세 까지의 항렬표
시 조 : 윤종(允宗)
2세 : 혁재(奕材)
3세 : 양(良)
4세 : 신(信)
5세 : 준(俊)
6세 : 공일(公逸)
7세 : 원보(元甫)
8세 : 세(世), 안서(安瑞), 광서(光瑞)
9세 : 안경(安景)
10세 : 연(衍)
11세 : 자급(子伋)
12세 : 수(壽)ㅇ, ㅇ륜(倫)
13세 : 옥(玉)ㅇ, 관(貫)ㅇ,
14세 : ㅇ업(業), 응(應)ㅇ, 한(漢)ㅇ,
15세 : ㅇ국(國), 윤(胤)ㅇ, ㅇ립(立), 세(世)ㅇ, 덕(德)ㅇ,
16세 : 호(好)ㅇ
17세 : 언(彦)ㅇ
18세 : 시(時)ㅇ
19세 : ㅇ도(燾), 도(道)ㅇ
20세 : ㅇ신(愼), ㅇ중(重)
21세 : 지(志)ㅇ
22세 : 재(載)ㅇ, ㅇ조(祖)
23세 : 약(若)ㅇ, 의(義)ㅇ
24세 : ㅇ교(敎), 학(學)ㅇ
25세 : 대(大)ㅇ--------------------- 할아버지
26세 : ㅇ섭(燮) ------------------- 아버지
27세 : 규(奎)ㅇ ------------------- 나
28세 : ㅇ진(鎭) ------------------- 아들
29세 : 해(海)ㅇ, 순(淳)ㅇ
30세 : ㅇ영(榮), ㅇ식(植)
31세 : 우(愚)ㅇ, 희(憙)ㅇ
32세 : ㅇ배(培), ㅇ균(均)
33세 : 현(鉉)ㅇ, 호(鎬)ㅇ
34세 : ㅇ구(求), ㅇ수(洙)
35세 : 동(東)ㅇ, 상(相)ㅇ
36세 : ㅇ걸(杰), ㅇ열(烈)
37세 : 재(在)ㅇ, 기(基)ㅇ
38세 : ㅇ종(鍾), ㅇ탁(鐸)
39세 : 태(泰)ㅇ, 영(永)ㅇ
40세 : ㅇ표(杓), ㅇ근(根)
해설
항렬이란 같은 혈족 간의 상하 대수(代數) 관계를 표시하는 계열(系列)을 말하는 것이며, 그것을 구분하는 글자를 항렬자(行列字)라고 한다. 그러니까 항렬이 하나만 높은 분이라도 이는 아버지와 동항동렬(同行同列)이라는 점에서 공경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항렬자가 언제부터 생겨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애초에는 항렬자가 없었다. 삼국시대에는 성(姓)도 아직 없었는데 어떻게 항렬자가 있었겠는가? 고려시대부터 성이 갖추어지기 시작하였고, 그 후로 시대를 따라 내려오면서, 형제를 둘 이상 여러 명을 둔 경우에, 이름이 외자일 때는 한자(漢字)의 부수(部首)를 갖게 해서 이름을 짓는 관습이 있었고, 이름이 두 글자일 때는 그 중 한 글자는 같은 글자를 사용하는 관습이 나오기 시작한 것으로 보여 진다. 그런데 이런 관행은 아마도 고대 중국으로부터 들어온 듯하다. 당송팔대기로 유명한 송대의 소식(蘇軾) 소철(蘇轍)의 형제가 그러하였고, 명대의 삼원(三袁)으로 이름난 문호 원종도(袁宗道) 원굉도(袁宏道) 원중도(袁中道) 삼형제가 또한 그러하였음을 보면 곧 알 수가 있을 것이다.
항렬은 대체로 일.이.삼.사.오.(一二三四五)의 수자(數字)나, 갑.을.병.정.무(甲乙丙丁戊)의 오갑(五甲), 또는 화.토.금.수.목(火土金水木)의 오행(五行), 또는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의 덕목(德目) 등의 순서에 따라 항렬자를 정한다.
우리 나주정씨의 경우는 오행에 따르고 있기 때문에 화생토(火生土)이니 섭(燮) 자 아래는 규(奎) 자이고 토생금(土生金)이니 규 자 아래에는 진(鎭) 자이고, 금생수(金生水)이니 진 자 아래에는 해(海) 자 또는 순(淳) 자이고, 수생목(水生木)이니 해와 순 자 아래에는 영(榮) 자 또는 식(植) 자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런 방식을 계속 되풀이 해 나간다. 그리고 매 항렬자는 다 화토금수목 다섯 글자의 변방(邊蒡)이 들어 있거나 그 변방 글자의 성질을 내포하고 있는 글자로 되어 있어야 한다. 이상에서 보듯이 섭(燮) 규(奎) 진(鎭) 해(海) 식(植) 등의 글자에는 다 불화 자, 흙토 자, 물수 자, 나무 목자가 들어 있어서 오행의 뜻이나 성질을 분명히 나타내고 있다.
나주정씨는 시조로부터 약 10세에 이르는 즉 고려시대 말에 이르기까지 아마도 이름에 항렬자를 거의 쓰지 않았던 것 같고, 비록 썻다고 하더라도 형제가 거의 없었으니 항렬자를 사용할 여건이 못 되었을 것이다. 그 중에 오직 8세 한 세대에만 삼형제가 있어서 서(瑞)자를 항렬자로 사용한 듯하지만 확실치는 않다. 그러다가 조선조로 들어오면서 비로소 항렬자로 이름을 짓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10세에서부터 15세에 이르는 동안은 월헌공파를 제외하고는 각 파에서 쓰는 항렬자가 서로 달라 통일되지 못하였다. 아마도 서로 내왕하기가 쉽지 않아 소통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16세기경부터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항렬자 사용이 거의 정착되었다고 보여 진다.(전 성균관대 총장 문학박사 정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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