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6.20 한국NGO신문 10면 민족NGO섹션 보도내용입니다.
<보낸 원고>
[국사교과서, 올해 이것만은 꼭 바꿔라!] 〈16〉
단군사화에서 ‘환국(桓國)’을 살려 번역하라!
박정학/사단법인 한배달 이사장
단군사화와 관련된 세 번째 문제는 ‘환국(桓囯)’을 ‘환인’이라고 번역하는 문제다. 각급 교과서 공히 『삼국유사』에 나오는 단군의 건국이야기를 싣고 있는데 ‘환인의 아들 환웅’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일부 교과서에 실린 『삼국유사』 원본을 확대해서 보면 ‘桓囯’인데 이것을 ‘환인’이라고 번역한 것이다. 이것이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최남선이 조선사편수회 회의에서 지적했듯이 ‘일본인에 의해 의도적으로 고쳐진 것’일 가능성이 있다면 이번에 새로 만들어지는 국정 국사교과서에서는 신중한 검토 과정을 거쳐 꼭 바로잡아야 한다.
교과서와 국편이 함께 변조된 대로 번역하고 있다

교과서의 내용을 살펴보면, 초등학교 사회 5-1에서는 “아주 오래 전 하늘 나라를 다스리는 하느님(환인)에게 환웅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비상교육ㆍ천재교육ㆍ두산동아 편 중학교 역사1에서는 “옛날 환인의 아들 환웅이 있어”, 고교 한국사의 경우 비상교육 편은 “옛날에 환인과 그의 아들 환웅이 있었는데”, 천재교육 편은 “옛날에 환인의 아들 환웅이”라고 하여 단군사화의 내용을 싣고 있는 모든 교과서가 ‘환인의 아들 환웅’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그 원문은 ‘昔有桓囯(謂帝釋也)庶子桓雄’으로서 환인이라는 단어는 보이지 않는다.
일부 교과서에는 『삼국유사』 원본의 사진을 싣고 있는데, 이 사진을 확대해보면 『초등학교 사회 5-1』의 것은 국보 306-2인 규장각본이며, 비상교육 편 『중학교 역사1』에는 기필된 모양이 뚜렷이 보이는 1932년 고전간행회본이 실렸다. 분명히 문제가 있는 부분이다.
이와 관련하여 국사편찬위원회의 한국사데이터베이스를 확인한 결과 문화재청에서 제공받은 원문 이미지는 규장각본(초등학교 책 내용)과 같으며, 이것을 판독하여 인쇄체로 쓴 ‘고서보기’에 들어가면 ‘昔有桓國謂帝釋也庶子桓雄’이라고 하여 ‘桓國’임을 분명해 해놓고, 교감 주석에서 “서울대규장각본과 만송문고본에는 囯으로 되어 있다.”는 설명까지 하고 있다. 그런데 ‘국역’에 들어가면 “옛날에 환인(桓因)제석(帝釋)을 말한다. 의 서자(庶子)인 환웅(桓雄)”이라고 하여 환국(桓國)을 환인(桓因)이라고 번역해놓고 아무런 설명도 없었다. 교과서의 내용과 같으므로 정부와 주류사학계의 시각이라고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2012년 1월에 국사편찬위원회에 질의를 하였더니 “囯자가 당시 國자의 속자가 분명하므로 桓國이 맞는데 囯가 因자와 비슷하여 글자를 잘못 새긴 것(誤刻)으로 보고 있다.”고 답변해왔다(2012.1.19). 알려진 바로는 『삼국유사』에는 오각이 거의 없고, 국보로 지정하는 과정에서도 그런 문제가 제기되지 않았는데, 확실한 근거나 토의과정, 설명도 없이 ‘오각’이라고 판단했다는 것은 매우 무책임한 답변이다.이와 관련, 최남선이 조선사편수회 6차 회의에서 “이마니시(淺人)의 망필(妄筆)에 의해 단군고기 중에 昔有桓國이라고 되어 있던 것을 昔有桓因이라고 고친 것을 인용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으며, 이를 증명이나 하듯 1900년대 초 도쿄대학의 영인본과 활자본이 ‘囯’과 ‘國’으로 되어있으나, 1921년 교토대학 및 1932년 고전간행회 영인본에서는 사진에서 보듯이 손을 댄 자국이 분명하다. 그랬다면 역사적으로 큰 범죄행위다.
‘謂帝釋也’는 후대에 삽입했을 가능성 높다
‘제석을 이른다’는 의미의 ‘謂帝釋也’라는 주석 때문에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는데, ‘제석’이라고 하려면 앞의 단어가 나라가 아니라 사람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부분이 원저자인 일연의 글이 아니라 재발간 과정에서 넣은 것으로 볼 수 있는 자료가 두 개 발견되었다. 조선 후기 문신 남구만(南九萬, 1629~1711)의 시문집 『약천집(藥泉集)』과 영조 때의 학자인 수산 이종휘(李種徽 : 1731 ~ 1797)의 시문집 『수산집(修山集)』에 실린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 이 이야기[단군사화]는 삼한고기에서 나왔는데『삼국유사』에 실린 ‘고기’의 내용을 살펴보면 “옛날 환국 제석의 서자인 환웅…”(此說出於三韓古記云。而今考三國遺事載古記之說。云昔有桓國帝釋。庶子桓雄) <『藥泉集』제29권 雜著 東史辨證 檀君>
• 우리 역사 초창기에 환국 제석의 서자인 환웅이 있었는데 천부 삼인을 받아…(朝鮮之初。有桓國帝釋庶子桓雄。受天符三印) <『修山集』 12권 東史志 神事志>

이 두 자료를 보면 조선 중-후기 사람들인 그들이 본 『삼국유사』 초기본에는 ‘昔有桓國帝釋庶子桓雄’이라고 되어 있었으며, 그것이 『삼한고기』에서 인용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들이 본 『삼국유사』의 내용대로라면 桓자 다음의 글자가 ‘囯’이나 ‘因’자가 아닌 ‘國’자였고, ( )속의 ‘謂帝釋也’라는 주석은 없었다. 따라서 ‘(謂帝釋也)’는 후기 사람들이 새로 발간하면서 삽입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제왕운기』나 『규원사화』의 내용에서 환국제석이 환인임을 알 수 있으므로 역사적 사실로서도 맞아떨어진다.
‘桓因(謂帝釋也)’라 하는 것과 ‘桓國帝釋’이라 하는 것은 역사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는 중요한 문제다. 단군사화에서 단군의 고조선 앞이 환웅의 신시, 신시 앞이 환인(제왕운기 등 다른 책에 근거)의 환국으로 연결되는 역사기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에 대해 교육부 고위공무원이던 성삼제가 2014년 『고조선, 사라진 역사』에서 자세히 밝혀놓았으나 교육부에서는 이를 적극 검토하지 않는다. 올해 새로 만들어질 국정교과서에서는 식민사학의 잔재일 수도 있는 이런 잘못된 해석을 과감히 탈피할 수 있는 열린 마음으로 적극 검토하여 바로잡아야 한다. 자칫 일본의 장난에 놀아나는 우스운 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보도 지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