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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가 와가(Wagga Wagga) 가는 길
강애나
끝 간 데 없는 하이웨이
파란 하늘
솜털 꽃 위에 장식된 무지개 선녀
낯부끄러운 듯
우뚝 솟아 하늘 가린 전봇대
처량하기만 하다.
길섶 카펫에 노란 들꽃
바람이 간지러워 자지러진다.
점박이 누렁 들소 떼
한가하게 풀을 뜯는데
심술궂은 구름이 퍼붓는 빗방울
하얀 양떼들 살 맞대어
옹기종기 울안으로 들어간다.
어둠이 물러가자
눈부신 해가 명랑하다.
호주의 꿈
장정윤
눈도 안 오는 시드니는 해마다 더 추웠다
피아노를 치던 가냘픈 K의 손이
약품 먹은 마포자루를 꾹 움켜잡고
재빨리 과거를 닦아내고 있다
지우는 것에 이제 좀 능숙해 져서
웬만한 일쯤은 끄떡없다고 했다
시꺼먼 쓰레기 봉지 아가리를
제 입 틀어막듯 잽싸게 묶고
텅 쇳소리 이질감 나는 철제 통에
휙 하고 집어 던질 때면
뱃속 밑바닥에서 기어오르는
묘한 희열이 있었다
마디마디 저리는 삼백팔십 달러
새로 살 아들의 가방 생각에
어설픈 미소가 얼굴에 피어나면
누렇게 땀 절은 작업복은
라커에 누워 가늘게 조용히 울었다
눈(雪) 없는 시드니의 바람에 뼈마디 시리다
펜대를 굴리던 지식인 J의 손이
이름 모를 타일들의 색깔도,
반짝임도 외면 한 체
무릎이 호소하는 통증도 못 들은 체
흰 줄에 목숨 걸린 듯
줄 따라 한 장 한 장 세월을 덮는다
각진 모서리들
제 각을 맞추라고
회색의 우울이 반죽으로 남아져 있어
칼처럼 능숙한 흙손은 타일의 심장을 잘라낸다
탁 하고 떨어지는 조각에
어제 다친 새끼손가락이 걱정 됐다
어미 없이 자란 딸애가 병원에 가라고 했다
찢어진 작업화 틈새…… 허락 없이
침범한 시멘트의 눈물
퉁퉁 부은 발가락들이 울고 있었다
편견
백 아벤티노
기차를 타고 시내로 들어간다
이곳 시드니 철길엔 나무가 서 있다
시드니 기차는 2층 기차다
시드니 하늘은 무척 푸르다
천고마비 외던 여덟 살 적 고향 하늘이다
시드니엔 호주인이 없다
바닥을 기는 내 눈에 보일 호주인은 없다
한 무리의 아이들이 기차로 들어온다
이것저것 두루두루
우왕좌왕 왁자지껄
한동안 시끄럽다
한국어로 떠드는 말 엄마 욕 아빠 욕
기차 속 호주인들
모르는 채 버려둔다
시드니 록스에는 악어고기를 피자 위에 덮어준다
캥거루도 덮어준다
시드니 록스는 개발제한구역이다
여기에는 호주인도 볼 수 있다
시드니 물은 거꾸로 돈다
멀찍이 서서보는 할머니의 눈에
나는 그저 청소부일 뿐
허드렛일 도와주는 잡역부일 뿐
넥타이를 매어도
동화되지 않는 거꾸로 도는 물일 뿐
학교에는
신문에는
양심도 있고 평등도 있고 정의도 있다
그런데 호주인은 없다
모두 국적 다른 이방인만 있다
그래도 내 아들은 로이어 될 것이고
내 딸은 닥터가 될 테고
그래서 손주는 시인이 될 텐데
멀찍어 서서 보는 내 모습도
남들에겐 우리를 거꾸로 매달아 돌리는
호주인으로 보일까 그 먼 훗날에
박쥐
한혜진
어지러워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하고 있어
어두컴컴한 동굴은
더 이상 싫어
날카로운 햇살
바늘처럼 온몸에 꽂혀도
시신경 마비되어 다시는 볼 수 없다 하여도
밝은 햇볕 아래
당당하게 날개를 펴고 싶은,
비록 우아한 날개 짓은 하지 못하지만
거꾸로 매달려 세상을 보면
바로 돌아가는 듯,
고정관념을 버려야 해
하늘 높이 날아올라 구름 위까지 가고 싶어
뜨악한 표정으로 올려보는 저 시선들
의식하지 않으려 해
같은 민족 등쳐먹는 인간도 벌겋게 두 눈 뜨고
뻔뻔히 직립하는데
잿빛 날개 퍼덕이며
욕망을 배설한다해도
화살표 눈길을 쏘아 올리는 일은 하지 못하리
결국,
스포트라이트 받으며
무대 위로 등장하는 스타처럼
지상의 시선을 사로잡아
까맣게 까맣게
흡수해버리고 마는
그들만의 한낮, 퍼포먼스
빌라우드, 데이빗 강 그 후 10년
김오
산들바람이 부는 날
파라마타 강은
바람난 계집의 몸뚱이처럼
산들거리며 흐르는데
가벼운 총성이 들려온다
철조망 안에 강물이 스며든다
작은 물가에도
구석에선 소용돌이가 일고
세월과 하늘
친구에게 깨어진
시드니의 희망이 날을 세우고
지나가는 바라문디를 찌른다
스트라, 캠시, 이스트우드에
소문이 무성하다 밤이면 숫돌에
쇠가 감겨 서걱대는 소리
사람들이 하나둘
내일을 맞으러 집으로 돌아간다
강물은 꿈쩍도 않고
바라문디의 사랑을 갈라놓고
철조망 밖에서 일어나던 회오리는
강가의 돌멩이들 눈가나 적신 채
주저앉아만 가고
속으로 속으로 돌개바람을 가라앉히며
고개 숙이고 가방에 라면을 넣고
속옷과 양말 그리고 김치
아내와 남편을 만나러 갈 수 없는
초조한 얼굴들
꾸역꾸역 가방에 밀어 넣고 길을 나선다.
추(錘)
장정윤
큰딸애가 웬 일인지 늦는다
학교에서 와야 할 시간에 안 오니
스트라스필드 광장 어딘가를 돌아다니는가 싶다
돌다가 서버린 세탁기를 째려보다
빨래판에 제일먼저 애들 교복을 비비고
풍덩풍덩 헹구어 냈다
널고 있던 애들 교복이 그날따라 더 낡아 보여
휑한 가슴에 무거운 추 하나 달린다
불안의 전화벨이 추를 건드린다
“이민경찰이야! 빨리 움직여. 지금 당장!”
목소리가 아직도 쟁쟁한 수화기를 집어 던지고
못내 질질 끌려 가는 두 딸과 달리는 여자
추가 숨가쁘게 두근댄다
광장에 가득 찬 그녀의 눈빛은 큰애를 찾는다
그러나
등 뒤로 덮쳐 올 사냥꾼은 너무도 무서웠다
-그래? 미안하다. 큰애야 잡히지만 말아줘?
그녀는 마음으로 기도했다
달리고 달려 교회 문을 들어설 때
모발폰이 울린다
“엄마 어디야? 나 지금 친구네 집이거든?”
추의 진동이 차츰 사그라진다
왈칵 눈물이 터져 아이들을 부둥켜 안았다
이불도 없이 자던 그날 밤
다섯 번 종소리의 울림
양안전
화가 조 린치는 송이송이 구름을 따서
시드니 바다에 띄우고
채색의 세상도 바다에 그렸다
가난도 굶주림도 없는 채색세상을
여러 그루 나무를 바다에 심고
채색세상도 바다에 세웠다
아파도, 늙어도 근심 없는 채색세상
그리고 자기를 그렸다
한 마리 물고기 되어, 그 속에서
자유롭게 헤엄치고 싶어
다섯 번의 종소리가 울린 후
바다의 품안으로 들어갔다
두 주머니의 술병과 돌멩이는
두 편(片)의 압랑석(壓浪石)이 되어
파도와 물결을 누르고, 린치는
자기가 그린 그림 속으로……
바다 속에서, 눈부신 채색세상을
현실세계에 쿵! 부딪쳐 봤다
너덜너덜한 세상은 쩍! 금이 갔다
린치의 친구 케네스 슬레저는, 죽은
채색세상을 깊이 슬퍼하며 긴 시를 썼다
Five Bells…… 오늘은 그 시를 들고
죽음 이후의 바다를 오래 바라본다
오페라하우스 벽면에 걸린
같은 제목의 그림 앞에서 묵상한다
인생의 가치, 그가 추구한 예술인생의 가치
예술의 울림, 시의 울림
문학 예술가들의 사회에 대한 봉헌, 작용
호주, 오늘의 사회제도에
다섯 번의 종소리가 준 영향의 무게
호주 한인시문학의 주제적 특성
김정훈(문학박사 상지대 강사)
들어가는 말
호주 한인문학은 중국이나 일본·미국·CIS 지역의 한인문학과는 다른 많은 차별성을 드러내는데, 이는 이주 환경과 조건의 상이함에서 기인하는 것이라 하겠다. 1970년대부터 이루어진 호주 이민은 대부분 대학 교육을 마친 지식인 출신으로, 경제적 또는 정치적 이유를 전제로 한 자발적·선택적 이민의 양상을 보여준다. 이들은 이민 후에도 한국과의 소통과 왕래가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출신지(한국)를 밝혀도 특별한 차별적 피해를 공개적으로 당하지 않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또한 호주 한인사회는 이민 역사가 비교적 일천한 탓에 이민 1세대와 1.5세대로 구성되어 있고, 근대적·자본주의적 삶에 익숙한 모습을 보여준다. 광복 이전 시기에 대부분 타의에 의해 조국을 떠나 갖가지 역경을 감내하며 정착한 중국·일본 등지의 한인들과는 다른 이주·이민 배경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재 호주 한인들은 의식에서도 다른 지역 한인들에 비해 많은 차이점을 드러낸다.
무엇보다도 재 호주 한인들은 자신이 지니고 있던 한국인으로서의 경험과 정체성을 포기하려고 하지 않는 특이한 성향을 내보인다. 이것은 단순히 ‘한국’이라는 국적의 유지 여부 문제가 아니라, 이민자로서의 일정한 ‘의식’의 분리와 단절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특이한 현상이다. 말하자면, 재 호주 한인들은 자신이 현실적으로 한국인임을 포기하지 않은 상태에서 거주국 주민으로 살아가려고 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언제 어디서든 전화와 인터넷으로 고국의 친지·친구들과 연락할 수 있고, 고국의 국민투표에도 참여할 수 있으며, 고국에서 방영되는 TV 쇼와 드라마를 손쉽게 즐길 수 있고,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고국에 다녀올 수 있는 현실, 이전에 비해 급격히 높아진 한국의 위상 등에서 연유한다. 이 때문에 이들은 고국과의 연결과 복귀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데서 빚어지는 ‘단절 및 포기’ ‘정체성의 재정립’ 현상이 눈에 띄게 약화되어 있는 반면, 오히려 거주국과의 심정적 동화는 보다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것은 광복 이전 다른 지역에 이주한 한인들이 겪어보지 못한 개인적 소외감과 부적응의 토로, 이민자간의 갈등 등 다양한 문제점을 야기한다. 특히 재 호주 한인들은 여러 언어와 문화가 공존하는 다문화 사회 호주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자기 정체성 문제를 보다 심각하게 고민하는 모습을 보인다. 호주 한인시문학에는 바로 이러한 이민자들의 내면 풍경이 풍부하게 담겨져 있다.
상처 들여다보기와
치유하기
호주 한인시문학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은 한국을 떠나 이민을 하게 된 이유나 이민 이전에 당한 자신의 개인적 상처를 자주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다른 지역의 한인시문학에서도 이런 소재를 다룬 작품을 찾아볼 수 있지만, 그 내용이 개념적인 것이고 그것마저도 매우 드물다. 이에 반하여, 호주 한인시문학에서는 그 빈도수가 높을 뿐 아니라, 매우 구체적임을 확인할 수 있다. 부도를 맞은 날 장맛비로 홍수까지 당한 기억을 되뇌고 있는 주선영의 「장마」, 난관에 봉착한 상황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고국을 등지고 이민길에 나섰던 일을 담은 공한나의 「벼랑 끝에 다시 서기」, 김용규의 「어항 속의 고래」(이상 『한인문학』 3집) 등이 그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상처를 돌아다보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다음 시를 보자.
나는 울었네
그 해 여름 비바람 몰아치는 둑길을 따라
걸으며 살아 말없는 이들의 눈길이 아쉬워
멀리 김포 벌판의 서치라이트 아직 까맣게 숨죽이고
허전한 내 청춘의 푸른 옷깃만 나부낄 때
나는 뒤돌아보지 않았네 걷다가
지치면 돌아가면 되지 그러나 못내
내 손등 엎어놓은 개화산 작은 언덕을 바라보며
떠나고 싶다 버리고 말리라
저 뒤틀어진 소나무 얼크러진 텃밭을 떠나
벌판의 피뢰침 되리 걷고 걸으며
울었네 그날이 내 삶의 변두리쯤 되었으니
-박철, 「눈물의 시드니」 부분
내면의 사연이야 어찌 되었든,[1] 시인은 뜻하는 바대로 되지 않는 현실에 절망, “떠나고 싶다 버리고 말리라”는, “벌판에 피뢰침 되리”라는 결심을 하고 고향을 떠나 억압과 착취가 없다는 ‘러키 컨트리’ 호주에 온다. 그가 떠나온 고향은 “비바람 몰아치는 둑길” “서치라이트 아직 까맣게 숨죽이고” “뒤틀어진 소나무 얼크러진 텃밭”에 “살아 말없는 이들”이 움츠리고 사는 곳이다. 반면, 그가 도착한 호주는 “따뜻한 나라”이며, 무엇보다 “복지”가 좋은 나라이다. 하지만 호주에서 그를 맞아 시드니의 유명 장소를 안내해 주던 이는, 술에 취해 “여긴 천국이 아니에요 천국이”라며 호주가 한국에서 막연히 생각하는 것처럼 살기 좋은 곳만은 아니라고 속내를 털어놓는다. “조국 떠난 지 이미 오래/ 망망대해 바라본 지 여러 해건만” 그의 시선은 여전히 한국에 붙박여 있다. 이리저리 한국의 상황에 대해 불평을 해도 여전히 그는 ‘호주인’이라기보다는 ‘한국인’인 것이다.
이 시에서 시인은 세 번 운다. 고향을 떠나면서, 그리고 고향을 그리며 우는 안내인을 보며, 그리고 여유 있는 삶을 즐기는 호주 사람들을 보며, 그는 세 번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첫 번째 눈물은, “이틀 전만 해도 가투를 하고/ 동료들 매 맞는데 앞장서지 못한” 자신, 그러면서도 그 현장을 떠나 호주로 온 자신에 대한 자괴감과 동료들에 대한 미안함에 흘리는 눈물이다. 두 번째 눈물은, 시집의 표제(標題) 시 「밤거리의 갑과 을」에서도 보듯, 이국에 와서도 여전히 고국에서의 의견 대립,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다는 것을 새삼 인식하게 되고, 굳게 결심하고 고향을 버리고 떠나왔건만 여전히 버려지지도 떠날 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흘리는 눈물이다. 세 번째 눈물은 “알 수 없습니다. 이들보다 우리는 몇 배 더 노동하고/ 밤잠을 줄이면서 노심초사하건만”이라고 외치다 “노랑머리 두 젊은이가 입 맞추는” 장면을 보고, “도시의 변두리이건만 삶의 한가운데 선” 그들과 달리 “걷다가/ 지치면 돌아가면 되지”란 마음으로 스스로 “삶의 변두리”로 빗겨서버린 자신이 부끄러워져서 흘리는 눈물이다.
그에게 있어 호주의 삶은 무작정 고국을 떠나온 것을 후회하고, 다시 삶의 중심에 서게 만드는 새로운 인식의 장소가 된다. 견딜 수 없는 현실을 극복하고 다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갖기 위해 선택한 것이 호주로의 이주였다. 이 경우 떠나올 때의 상황을 온전히 들여다보는 것은 새로운 출발에 있어 필수적인 통과의례가 된다.
이처럼 호주 한인시문학에서 자신이 이민해야만 했던 이유를 되새겨 보는 것은, 이민할 때의 기대와는 달리 이민 후의 예상치 못한 현실적인 어려움에 봉착하여 내면에서부터 허물어져가는 자신을 추스르고, 적극적으로 현실에 대처해 나갈 의지를 새롭게 다지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로맨틱 유토피아의
환상 깨기
재 호주 한인들이 이민지 호주에서 느끼는 첫 감정은 아무래도 이국적인 주변풍경의 특성과 그 아름다움에 대한 경탄이다. 이것은 낯선 곳에 갔을 때, 우리가 느끼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다음 시를 보자.
점박이 누렁 들소 떼
한가하게 풀을 뜯는데
심술궂은 구름이 퍼붓는 빗방울
하얀 양떼들 살 맞대어
옹기종기 울안으로 들어간다.
-강애나,
「와가 와가(Wagga Wagga)
가는 길」 부분[2]
이 시에서 묘사하고 있는 호주의 자연은 말 그대로 평온과 평화로움 그 자체이다. 여기에는 어떠한 갈등이나 다툼도 존재하지 않는다. 들꽃은 바람과, 하이웨이는 파란 하늘과, 심지어 빗방울과 들소·양떼도 그저 서로 어우러져 놓여 있다. 이러한 무갈등의 평화로운 정경은 재 호주 한인들이 많이 모이는 스트라스필드 광장의 한때를 그리고 있는 김소은의 「스트라스필드 광장」(『한인문학』 3집), “푸르른 능선을 따라 평화롭게 노니는 양떼들/ 한 폭의 풍경화를 그”리는 곳에서 “행복한 여행자”가 되어 머물고 싶다는 이혜숙의 「가을연가」(『한국문학』 2호) 등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의 시에 그려진 호주의 자연풍경이나 사람들의 모습은 우리가 막연히 생각하는 낭만적 이상향으로서의 호주 모습, 윤필립이 처음 봤던 호주 시드니의 인상[3]과 많이 닮아있다. 하지만 이런 시들에 담긴 정경은 어딘가 삶의 체취가 탈색되어버린 듯한 느낌을 준다. 와가 와가나 스트라스필드 광장이라는 장소가 환기하는 이국정취가 아니라면, 이들 시에 나타나는 것은 이민자의 일상이라기보다는 낯선 풍광을 바라보는 여행자의 시선에 가깝다. 내가 주가 아니라, 풍경이 주가 된 까닭이다.
한편, 이와는 달리 이민자의 삶의 현장을 노래한 시도 다수 발표되고 있다.
스트라스필드 광장을 삥 두르고 서있는 플라타너스는 영국에서 유배당한 죄수들(convicts)과 먹고살기 위해서 건너온 산업사회의 잉여인간들이 향수를 달래보려고 옮겨 심은 지구북반구의 고향나무, 커다란 이파리들에 눈물 그렁그렁 하다.
(중략)
휴전회담이 진행되던 그해 여름 어느 해질 무렵, 그 나무 아래 그림자 길게 드리우며 서 있던 어린 여자아이의 뼈만 앙상한 몰골과 누렇게 뜬 젊은 여자의 초점 잃은 얼굴이 아리게 떠오른다. 전차와 대포를 실은 군용기차가 흰옷 입은 사람들을 깔아뭉개면서 질주하는 영화장면도 떠오른다. 내 일찍이 망각의 저편으로 밀어붙이며 굳게 봉인(封印)했던 수많은 전쟁의 어둡고 잔인한 기억… 기억들이다.
-배상호, 「플라타너스 그늘
아래서」(〈햇살〉) 부분
김소은이 평화로운 정경으로 묘사하던 바로 그 스트라스필드 광장에서 배상호는 오히려 광장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플라타너스와 그 그늘에 주목한다. 시인은 플라타너스에서 “유배당한 죄수들”과 “먹고 살기 위해서 건너온 산업사회의 잉여인간”들의 향수를 보고, 그 그늘에 숨은 듯 앉아 있는 이민자의 형상을 찾아낸다. 그리고 한국전쟁 때 기지 앞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 “뼈만 앙상한 몰골”로 서 있던 여자아이와 “누렇게 뜬” “초점 잃은” 젊은 여자의 얼굴을 그 형상 위에 오버랩한다. 그가 그리고 있는 이민자의 모습은 결코 화려하지도 행복하지도 않다. 그는 광장의 평화로운 정경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그곳에서 쫓겨나와 보여지지 않는 어두운 그늘 속에서 살아간다. 낯선 상황 속에서 하루하루 생존을 위한 치열한 전쟁을 치러나가는 것이 이민자의 삶이고, “눈부신 햇살만 가득”한 스트라스필드 광장의 한복판에 나서 편하게 그 한때를 즐기지 못하고 주변에 둘러서 있는 “플라타너스 그늘 아래…… 그늘보다 짙은 어둠으로 앉아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 또한 이민자의 실상인 것이다. 그리고 “군용기차가 흰옷 입은 사람들을 깔아뭉개면서 질주하는 영화 장면”을 잇달아 제시하면서, 시인은 이런 상황이 결코 이민자 자신이 선택한 것이 아님을 말하고 있다. 짝을 찾아 광장을 맴도는 비둘기들의 여유로움을 부러워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처럼 환상이 구체적인 개인의 현실과 만나게 되면, 동화의 마법은 신기루처럼 잔인하게 풀리게 된다.
피아노를 치던 가냘픈 K의 손이
약품 먹은 마포자루를 꾹 움켜잡고
재빨리 과거를 닦아내고 있다
지우는 것에 이제 좀 능숙해 져서
웬만한 일쯤은 끄떡없다고 했다
(중략)
마디마디 저리는 삼백팔십 달러
새로 살 아들의 가방 생각에
어설픈 미소가 얼굴에 피어나면
누렇게 땀 절은 작업복은
라커에 누워 가늘게 조용히 울었다
-장정윤, 「호주의 꿈」 부분
이 시에 등장하는 K는 이민 오기 전 “피아노를 치던” 이였고, J는 펜대를 굴리던 지식인이었지만, 호주에서는 각기 청소부와 타일공으로 살고 있다. 「라면이 주는 희망」(〈내게로〉, 2007.7)의 화자는 기계공학도였지만, 호주에 와서는 진공청소기 수리를 하고 있다. 그들이 이런 사회적 신분 전락에도 견딜 수 있는 것은 자식의 성공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곳에서 소수민족으로 살아가야 할 이민자의 입장에서 다수집단과 경쟁할 수 있는 무기는 ‘학벌’과 ‘재산’ 뿐이고, 이것은 자식에 대한 기대로 이어진다. 이 시에서 K가 힘든 노동을 견딜 수 있는 것도 “마디마디 저리는 삼백팔십 달러”로 “아들의 가방”을 새로 사 줄 생각 때문이다. 자식에 대한 기대 때문에 “누렇게 땀 절은 작업복”을 입고도, 무릎이 아프고 “찢어진 작업화 틈새”로 들어온 시멘트 독에 발가락이 퉁퉁 불어도, “어설픈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것이다. “내 아들은 로이어 될 것이고/ 내 딸은 닥터가 될 테고/ 그래서 손주는 시인이 될 텐데”[4] 하는 마음인 것이다. 하지만, 「시드니의 여름-아들의 가출」(〈내게로〉, 2009.1)에서 보여주듯, 이민 생활이 길어질수록 부모의 기대와는 달리 가치관의 차이로 인해 자식과의 갈등은 더욱 커져만 간다.
시인이 ‘눈도 안 오는 시드니는 해마다 더 추웠다’ ‘눈 없는 시드니의 바람에 뼈마디 시리다’라고 소제목을 단 것처럼, 이민자들이 겪은 하루하루의 삶은 여전히 고단하고 힘겹기 짝이 없다. “만 리 하늘 날아와 뒤돌아 볼 엄두도 못냈다/ 날이 새면 눈꺼풀 꼬집으며 걸레질 쳤다/ 눈앞에 흔들리는 빈혈 속에서도 땅을 팠다”[5]는 것이 어느 특정한 한 사람 만의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막연히 호주로의 이민을 꿈꾸는 이들에게 “나무도 호수도/ 바람과 모래로 만들어진 신기루[6]”라고, “자신의 눈물에도/ 칼날을 들이밀어야[7]” 한다고 경고한다. 이들에게 호주는 더 이상 ‘럭키 컨트리’가 아닌 것이다.
이처럼 호주 한인시문학에는 호주의 아름다운 풍경에 대한 순수한 찬탄을 그린 작품이 있는 한편, 호주 사회의 중심에 서지 못하고 주변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한인 이민자들의 애환과 분노를 형상화한 작품도 다수 발표되고 있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후자처럼, 기대와 현실과의 괴리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을 토로하는 작품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창밖에서 바라보기와
비켜서기
이민을 하게 된 이유가 경제적·사회적 성공을 꿈꾸는 것이든, 도피나 탈출이든, 또는 새로운 삶의 개척이든 간에, 이민은 “순두부에서 간수 빼듯/ 부기 덜어야” 되는 것이며, 그래서 대부분 “무중력 상태의/ 우주인들”[8]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 이민자이다. 그래서 그는 언제나 해소되지 않는 자신의 외로움, “몇 겹을 감싸고 동여매지만/ 스멀거리며 파고드는 외로움”[9]을 달래줄 “포근한 눈송이가 그려진” “따뜻한 엽서”[10] 한 장이 그립다.
이민자들이 고향을 떠나 온 것은 윤필립의 말처럼, “한 그릇의 밥”과 “보다 나은 삶”을 위해서[11] 일 것이다. 한 마디로 “보다 가능성이 높은 곳에서 보다 잘 살아보자”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호주 속의 무지렁이, 주변인간, 아웃사이더일 뿐. 이들이 원했던 삶의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다.
멀찍이 서서보는 할머니의 눈에
나는 그저 청소부일 뿐
허드렛일 도와주는 잡역부일 뿐
넥타이를 매어도
동화되지 않는 거꾸로 도는 물일 뿐
-백 아벤티노, 「편견」 부분
시인은 “시드니엔 호주인이 없다/ 바닥을 기는 내 눈에 보일 호주인은 없다”고 외친다. 학교에서는 양심이나 평등·정의 등을 이야기하지만, 현실에서 이런 가치들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아시아계 이민자들과 호주 백인들은 서로 “멀찍이 서서 보는” 관계일 뿐이다. 기차 안에서 한국 유학생들이 예의 없이 떠들어도 호주인들은 그냥 “모르는 채 버려”둔다. 현실 속에서 인종차별의 ‘컬러 라인(color line)’은 여전히 실존[12]하며, “의붓아들”[13]이라고 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그들과 이민자들 사이에는 메울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한다. 시인은 심지어 우리의 자손들이 호주에서 높은 지위를 얻는다 하더라도 여전히 그들과 우리는 “멀찍이 서서 보는” 관계로 남지 않을까 하는 의심까지 하고 있다. 사실 이것은 “정책적으로는 다민족 다문화주의를 표방하고 있지만, 교묘히 유색 아시아 인종을 차별하는 호주 당국의 이중성”[14]에 기인한다. “복지국가, 이상향을 꿈꾸며 이민 온 유색인종은 (중략) 백인, 그들만의 파라다이스에 그림자를 드리운 밑그림에 불과”[15]한 것이다. 때문에 이러한 현실에 대한 반란을 꿈꾸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어두컴컴한 동굴은
더 이상 싫어
날카로운 햇살
바늘처럼 온몸에 꽃혀도
시신경이 마비되어 다시는 볼 수 없다 하여도
밝은 햇볕 아래
당당하게 날개를 펴고 싶은,
(중략)
하늘 높이 날아올라 구름 위까지 가고 싶어
-한혜진, 「박쥐」 부분
한혜진은 스스로를 박쥐처럼, “어두컴컴한 동굴”에 갇혀 사는 존재, 밝은 햇볕 아래 돌아다니는 것이 허용되지 않은 숙명을 지닌 존재라고 인식한다. 하지만 “같은 민족 등쳐먹은 인간도 벌겋게 두 눈 뜨고/ 뻔뻔히 직립하는” 세상은 이미 잘못된 것이다. “거꾸로 매달려 세상을” 보는 것이 오히려 바로 보는 것이 된다. 나아가 이런 세상이라면, “스포트라이트 받으며/ 무대 위로 등장하는 스타처럼” “밝은 햇볕 아래/ 당당하게 날개를 펴고” “하늘 높이 날아올라 구름 위까지 가고 싶”다는 욕망을 드러낸다. 비록 그 대가가 “날카로운 햇살/ 바늘처럼 온몸에 꽂”히고 “시신경이 마비되어 다시는 볼 수 없”는 것이라 하더라도. 단 한 번의 날갯짓이 영원히 햇볕에 나가지 못하고, 앞을 보지 못하는 것이라면 이것은 지나치게 가혹한 처사다. 이것은 이 세계에서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전제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호주 사회에서 살아가는 많은 한인 이주민들이 겪는 공통적인 사회적 좌절이다. 때문에 이 시에서 한혜진이 ‘박쥐’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른 호주 한인문학에서 자신들을 ‘그림자’로, ‘유령인간’으로 설정하는 것[16]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문제를 호주 사회에서 은연중에 보여주는 인종 차별(?)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한인 이민자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 또한 언제까지 회피할 수는 없다. 우선,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나서서 가능한 한 호주 사회 속으로 뚫고 들어가 상황을 변개해 보고자 하는 실천적 행동의 미약, 그리고 한국에 대한 지나친 관심, 즉 의식 자체가 한국과 강력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그것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17]
여기에 상황을 좀 더 어렵게 만드는 것이 호주 한인사회 내부의 갈등이다. 한인사회가 합심하여 한 목소리를 내어도 부족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한인사회는 규모가 증대되면서 많은 갈등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호주 한인시문학에는 이러한 갈등의 모습을 다양한 목소리로 들려주고 있다.
강물은 꿈쩍도 않고
바라문디의 사랑을 갈라놓고
철조망 밖에서 일어나던 회오리는
강가의 돌멩이들 눈가나 적신 채
주저앉아만 가고
속으로 속으로 돌개바람을 가라앉히며
고개 숙이고 가방에 라면을 넣고
속옷과 양말 그리고 김치
아내와 남편을 만나러 갈 수 없는
초조한 얼굴들
꾸역꾸역 가방에 밀어넣고 길을 나선다.
-김오, 「빌라우드,
데이빗 강 그후 10년」 부분[18]
이 시에 등장하는 ‘데이빗 강’은 호주에서 태어난 한인2세로, 1995년 당시 호주에서 일어나던 ‘공화국 운동’을 잠재우기 위해 방문한 찰스 왕세자를 출발 신호용 딱총으로 위협하는 일을 벌인다. 당시 맥콰리 대학 문화인류학과에 다니던 그는, 연구차 들린 캄보디아 난민수용소 빌라우드에 갇혀 있는 어린이들의 참상을 목격하고, 그들을 돕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지만 여의치 않자 이런 충격요법을 택한 것이다. 시인은 데이빗 강의 사건 10년 후인 현재 빌라우드에 새롭게 갇혀 있는 한인 불법이민자들과 그들 가족의 애타는 마음을 전하고 있다. 이들이 갇히게 된 것은 “세월과 하늘/ 친구에게 깨어진 시드니의 희망”, 그리고 “스트라, 캠시, 이스트우드에/ 소문이 무성하다 밤이면 숫돌에/ 쇠가 감겨 서걱대는 소리”라는 구절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같은 한인들에게 당한 배신 때문이다. 호주 내 한인사회의 갈등이 매우 심각한 상황임을 알 수 있다. 같은 한인에게서 상처와 고통을 당한 경험은 이외에도 겉과 속이 다른 건물 기술부장의 이야기를 담은 강영숙의 「등 뒤에 칼을 꽂고」(이상 『한인문학』 3집), 김오의 「캠시2·3」(『캥거루의 집』) 등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따라서 이제 시인은 “서로서로 양보하지 않는/ 현실의 냉혹함을 인식하며/ 꽉꽉/ 채우고 채워/ 하얗고 단단한/ 육 쪽 마늘로/ 태어나야 해”[19]라고 외친다. “따뜻함과 타협해서”는 쪼가리도 아니게 된다고 말한다. “유리창 밖에서 그들 모두 서로에겐 피사체일 뿐”[20]이므로, 같은 민족이라고 믿어서도, 외로움에 지쳐 스스로를 내팽개쳐도 안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호주 한인시문학에는 이민자, 특히 비백인계 이민자들을 대하는 호주 당국의 이중적·차별적 태도에 대한 실망과 항의, 나아가 이런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단결된 모습을 보여주기는커녕 오히려 서로 갈등을 일으키기만 하는 한인사회에 대한 실망감 등이 다양한 형태로 표출되고 있다.
주변인들과
함께 하기
호주 사회의 중심에 서기란 하늘의 별 따기이고, 그래서 대부분 주변인으로 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 재 호주 한인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자신들처럼 좌절과 고통의 삶을 살고 있는 주변 인물들에게로 맞춰진다. 갑자기 해고당한 벗과 슬픔을 함께 나누고, 원주민(에보리진) 여인 캐시와의 추억을 잊지 못해 괴로워하는 동포 청년의 이야기에 주목하는 것[21]이 그러하다. 그 가운데 가장 많이 보이는 것이, 이런저런 사정으로 불법 체류자가 된 이들이 겪는 고통을 다룬 작품들이다.
“이민경찰이야! 빨리 움직여. 지금 당장!”
목소리가 아직도 쟁쟁한 수화기를 집어 던지고
못내 질질 끌려 가는 두 딸과 달리는 여자
추가 숨가쁘게 두근댄다
광장에 가득 찬 그녀의 눈빛은 큰애를 찾는다
그러나,
등 뒤로 덮쳐 올 사냥꾼은 너무도 무서웠다
-그래? 미안하다. 큰애야 잡히지만 말아줘?
-장정윤,
「추(錘)」 부분
이 시는 이민청의 불시 단속을 피해 달아나야만 했던 어느 불법 체류자의 긴박한 하루의 심정을 시계추의 바쁜 움직임에 빗대서 이야기하고 있다. 표현의 적절성에는 다소 문제가 있지만, 큰딸이 귀가할 시간이 지났는데도 학교에서 돌아오지 않아 걱정하던 때 갑작스럽게 울린 불법체류 단속 경고 전화를 받고 같이 있던 두 딸을 데리고 정신없이 피하는 모습, 여전히 소식이 없는 큰딸에 대한 걱정, 무사히 도피한 후 이어진 무사하다는 큰딸의 전화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모습, 그제서야 왈칵 눈물이 쏟아져 나와 아이들을 부둥켜안고 울고 만 화자의 초조했던 심정이 이 시에는 실감나게 그려져 있다. 1996년 자유당 소속 존 하워드 수상이 집권하면서 전면화된 반(反)아시안 정서와, 검거·수감·추방으로 인한 가족의 이산(離散) 등에 대한 불법 체류자들의 두려움을 이 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현재 호주에 있는 한인 불법 체류자들은 1976년에 있었던 ‘사면령’의 재현을 노리고 들어온 이들이나 기술이민을 꿈꾸다 갑작스런 정책 변경으로 인해 하루아침에 불법 체류자 신분으로 전락하게 된 이들이 대부분이다. 최근의 호주 한인시문학에서는 이러한 불법 체류자들에게 관심을 두고 이들의 힘겨운 사정과 불안한 심정을 형상화하면서, 이들의 문제를 우리의 문제로 함께 생각해 나가고자 하는 모습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위에 인용한 시와 함께, 김명동의 「불법 체류자」(『한국문학』 2집)나 오석규의 「자유」(『호주일보』 2010.9.17) 등이 이런 경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또한 이런 가운데, 김오의 「비가 오는데요」(『캥거루의 집』)에서처럼 불법 체류자 가족의 불안한 삶을 묘사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 속에서도 조금씩 자라나는 희망을 말하면서, 이들에게 용기를 주고자 하는 모습도 드러난다.
나아가 이러한 시선은 단지 같은 재 호주 한인들에게 머물지 않고, 호주 사회에서 소외된 모든 이들에게로 확산되는 모습을 보인다.
풀잎마저 바스락거리는
붉은 땅에
전사한 아들 그리며
쌓은 미래의 종소리
울리는 자 없어
막힌 가슴
쓸어 내리는구나
사암으로 지은 교회당
켜켜이 쌓인 한
삭히는구나
-공수진, 「윌카니아(Wilcannia)의 종탑」(『호주기독신문』, 2010.2.4)
부분
이 시는 백인들에 의해 땅을 빼앗기고 내쫓긴 호주 원주민의 슬픈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다. 시인은 원주민 마을에 있는 허물어진 종각에 걸린 종의 사연을 듣고, 원주민들의 “켜켜히 쌓인 한”이 풀리도록 “종은 자주 울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 소리가 울려 퍼져나가 막힌 가슴이 터지고, 기어코 속죄의 그날이 와서 “시냇물 소리 앳닢 틔우고/ 아이들 노래 꽃망울 터트리는/ 살 깊은 초록 땅”이 될 것이라는 희망을 담아서.
이 시뿐 아니라, 비 오는 날에도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남은 꽃을 팔고 있던 노인의 모습을 담고 있는 윤필립의 「비의 탱고」(『시드니』), 공수진의 「홈리스 노인 D」(『조선문학』, 2009.12), 치매에 걸려 아무도 돌보지 않아 방치된 82살의 노인이 밤마다 어린 시절 무용복을 입고 춤추던 행동을 행복하게 반추하는 모습을 따뜻한 시선으로 잡아낸 박경(박경숙)의 「수족관 앞의 여인」(『한인문학』 3집), 핏덩이 때 입양된 한국인 입양아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유영재의 「해나(Hannah)에게」(〈호주문학협회〉), 호주 크리스마스 섬 임시수용소에 갇힌 보트 피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떠나가 돌아오지 못하는 아랍계 호주인 K의 이야기를 담은 공수진의 「착지(着地)」(『호주한국일보』, 2010.10.14)를 비롯하여 에보리진의 슬픔을 이야기하는 김오의 「아보리진 마을」(『캥거루의 집』), 김학두의 「카고바」(『한국문학』 2집), 장정윤의 「왓슨스 베이(Watson's Bay)」(〈내게로〉, 2006.4.15), 이기순의 「나 그리고 그대」(〈내게로〉, 2006.8) 등의 시들이 한결같이 호주 사회에서 소외된 주변인들에게 시선을 돌리고 있다.
호주 한인시문학에서 소외된 사람들에 대해 관심을 보이고 이것을 문학을 통해 지속적으로 보여주려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에 대해 양안전(양봉숙)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화가 조 린치는 송이송이 구름을 따서
시드니 바다에 띄우고
채색의 세상도 바다에 그렸다
가난도 굶주림도 없는 채색세상을
여러 그루 나무를 바다에 심고
채색세상도 바다에 세웠다
아파도, 늙어도 근심 없는 채색세상
그리고 자기를 그렸다
한 마리 물고기 되어, 그 속에서
자유롭게 헤엄치고 싶어
다섯 번의 종소리가 울린 후
바다의 품안으로 들어갔다
(중략)
바다 속에서, 눈부신 채색세상을
현실세계에 쿵! 부딪쳐 봤다
너덜너덜한 세상은 쩍! 금이 갔다
-양안전,
「다섯 번 종소리의 울림」 부분
이 시는 1939년 29살의 나이로 시대의 우울에 빠져 시드니 하버에서 바다에 뛰어들어 자살한 존 린치(John Lynch)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시대에 문학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말하고 있다. 그의 친구인 케네스 슬레저가 이 이야기를 시로 남긴 후 평생 동안 절필했고, 최근 화가 존 올슨이 오페라하우스 벽에 그림으로 재현해냈는데, 양안전은 존 올슨의 그림에서 존 린치의 자살은 “가난도 굶주림도 없는” “아파도, 늙어도 근심 없는” 세상에서 “자유롭게” 살기를 꿈꾼 적극적 행위이며, 당시의 “너덜너덜한 세상”에 대해 행한 항의라고 해석한다. 그의 꿈이 바로 ‘복지국가, 다문화주의 호주’가 지향해온 모습이라면, 지금은 그 정신이 훼손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 시인의 의구심이다.
백 아벤티노가 말하듯 학교에서는 양심이나 평등·정의를 가르치지만(「편견」, 『한인문학』 3집), 이미 이런 가치를 현실에서 찾기는 어렵다. 때문에 존이 신호로 삼은 “다섯 번의 종소리”는 오늘날에도 “문학 예술가들의 사회에 대한 봉헌, 작용”을 요구하는 울림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양안전은 존 린치의 일화를 통해, 당대의 호주 한인문학이 지향해야 할 방향이 바로 ‘다문화국가로서의 호주’라는 가치를 지켜나가는 것이며, 이를 통해 당당히 한국문학의 일원이자 호주문학의 일원으로서 설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김오를 비롯한 재 호주 한인 시인들이 최근 데이빗 강의 사건을 다시 상기하고, 자신들의 주변에서 소외되고 핍박받는 이들에 대한 관심을 보이는 것도 이런 생각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상에서 보듯, 최근 호주 한인 시문학은 불법 체류자나 호주 원주민 등 호주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을 소재로 삼아, 이들의 애환과 이들을 대하는 호주 당국의 정책적 문제에 대해 관심을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이제까지 호주 사회가 추구해온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를 묻고, 점차 퇴색되어가는 그 가치를 잊지 말고 재현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호주 주류사회에 보내고 있다. 또한 이것은 호주 한인이 더 이상 호주 사회의 주변인이 아니라 중심으로 함께 나아가겠다는 의지를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나오는 말
호주 한인시문학은 이민자들의 내면 풍경, 이민 생활에서 겪는 실제적인 체험들을 다양한 시각으로 그려 보이고 있다. 이민 오게 된 사연, 이민 이전에 당한 개인적 상처, 이국적인 주변 풍경에 대한 경탄, 고향에 대한 그리움, 주변인으로서의 고뇌와 좌절 및 항의 등이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이것을 주제적 경향에 따라 ‘상처 들여다보기와 치유하기’ ‘로맨틱 유토피아의 환상 깨기’ ‘창밖에서 바라보기와 비켜서기’ ‘주변인들과 함께하기’의 네 항목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이런 가운데 호주 한인시문학이 점차 단순히 이민자 개인의 애환과 외로움을 토로하는 데에서 벗어나 주변의 삶으로 관심을 확산하면서 스스로를 호주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정당히 자리매김하고자 하는 노력을 찾아볼 수 있었다.
다만, 그런 가운데서도 한국인의 정을 반복적으로 재현하고 있는 사모곡 또는 애향곡류의 작품들이 여전히 많이 발견되는 것은 다소 아쉬움을 남긴다. 현지 사회에 뿌리내린 시민의 모습이 아니라, 떠돌이 이민자로서의 내면 풍경이 자주 표출되고 있는 것 역시 그러하다. 이는 호주 한인문학 단체들이 한국문단에 등단하는 것을 지향하고 있는 현실[22]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라 아니 할 수 없다. 퇴영적인 모국 지향적 의식에서 벗어나 한국인의 정체성을 담보하면서 현지 문단에 뿌리내리는 새로운 형태의 도전이 전제될 때 비로소 호주 한인시문학은 세계문학의 일원이 될 수 있으며, 한국문학에 새로운 자극과 변화를 추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 문단과의 긴밀한 관계 유지는 서로를 위해 중요하고도 필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문단과의 교류는 호주 한인시문학 발전에 일정 부분 기여하게 될 것이고, 이를 통해 한국문단은 한국문학의 영역과 자장을 확대 심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문단에 지나치게 의존, 경도하게 되면 그만큼 호주 한인시문학만의 독자성과 차별성을 잃게 될 것이 분명하고, 이것은 호주 한인시문학은 물론 한국문단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 아닐 것이다.
[주]
[1] ‘시힘’ 동인으로 오랫동안 시인과 함께 활동해 온 고운기는, 당시 시인이 가투를 하다 (건강이 좋지 않아) 형제의 도움으로 요양하기 위해 호주로 가게 되었다고 한다. 즉, “몸이 치명적인 줄 알면서도 정다운 사람과 만나면 으레 과음을 해버리고 마는 성격 때문에 그는 결국 한동안 이곳을 떠나 있기로 작정했던 것”이라 한다. 고운기, 「오늘의 눈물과 미래적 전망」, 박철, 『밤거리의 갑과 을』, 실천문학사, 1993, 119쪽.
[2] 강애나, 『시크릿 가든』, 오늘의문학사, 2008.6. 42쪽.
[3] 윤필립은 이민 초기, 호주에 대해 “내 것을 빼앗길 일도 남의 것을 빼앗을 일도 없는 나라, 그야말로 민주주의가 살아 숨 쉬는 나라”(16쪽)로, “시드니는 환상의 끝에서 어른거리던 신기루였다. 금방 구름 위로 차오를 것 같은 하버브리지와 두둥실 노 저어 갈 수 있을 것 같은 오페라하우스, 억압과 착취가 없는 세상, 호주는 녹색바다에 떠 있는 거대한 무지개”(14쪽)로 생각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윤필립, 『시드니에는 시인이 없다』(이하 『시드니』), 고려원, 1995
[4] 백 아벤티노, 「편견」, 『한인문학』 3집, 144쪽
[5] 김명동, 「내 아들아」, 『호주일보』, 2008.9.12.
[6] 김오, 「불안한 발자국」, 『캥거루의 집』, 시평사, 2005.11. 29쪽.
[7] 김오, 「캠시4」, 위 책. 50쪽.
[8] 공한나, 「이민열차1」, 『한인문학』 3집, 124쪽.
[9] 김충석, 「겨울창가」, 『한인문학』 3집, 42쪽.
[10] 이동일, 「남반구엔 겨울이 없다」, 〈햇살〉, 2006.
[11] 윤필립, 「투명한 꿈들을 머리에 이고」, 위 책. 169쪽.
[12] 김명동, 「내 아들아」, 『호주일보』, 2008.9.12.
[13] 안상기, 「캔버라 단풍」, 『한국문학』 3집, 2010.10. 253쪽.
[14] 윤정헌, 「호주한인문학연구」, 657쪽. 권혁하도 그의 시 「가난한 햇살」(『한인문학』 3집, 60쪽)에서 이것이 호주 당국의 아시아 차별 정책에 기인하고 있음을 넌지시 지적하고 있다.
[15] 윤정헌, 위의 글, 660쪽.
[16] 앞에서 인용한 배상호의 시나 신비현의 「유령인간」(『한인문학』 3집)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17] 이것은 “그동안 나는 결코 내 생애에서 짧다고 할 수 없는 세월을 호주에서 살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이켜보건대 호주를 한 번도 내 나라라고 꿈속에서나마 생각해 본 기억이 없는 것 같다.”(이효정, 「조국 나들이」, 『시드니의 여름노래』, 교음사, 1998.4. 74쪽) 등의 언급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18] 김오, 『캥거루의 집』, 시평사, 2005.11. 52-53쪽.
[19] 한혜진, 「마늘」, 『한인문학』 3집, 48쪽.
[20] 한혜진,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한인문학』 3집, 46쪽.
[21] 윤필립, 「의자가 하나밖에 없는 식탁」, 『시드니』, 26-32쪽.
[22] 호주한국문학협회 회원들의 작품을 정기적으로 게재하는 『호주일보』 〈문학공간〉이 “교민 여러분의 창작활동과 고국 문단 등단에 좋은 길잡이가 되기를 바란다.”라는 안내말을 내세우는 이유도 여기에 기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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