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엔 날이 매우 추웠는데 오늘은 하나도 춥지 않았다. 올 겨울 내내 이랬으면 좋겠다.
그러나 겨울은 추워야 또 겨울답다.
그래도 나는 올 겨울이 춥지도 않고 눈도 안 왔으면 좋겠다.
눈이 오면 안 되는 이유를 대어보라면 음...
제일 큰 이유는 운전을 할 수 없다는 점이다.
눈이 오면 길이 얼어붙을 테고, 그러면 난 발이 묶인다.
몇 년 전 겨울에 빙판길 언덕에서 미끄러져 차가 뒤집히는 사고를 겪은 이후로
눈이 오거나 길이 얼어붙으면 운전대를 잡지 않는다.
그러나 그 철칙도 해야 할 의무 앞에서는 무너진다.
그래도 가급적이면 길이 얼어붙었을 때는 운전대를 잡지 않는다.
올 겨울엔 정말 눈이 안 왔으면 좋겠다.
눈이 오더라도 금방 녹아버렸으면 좋겠다.
길이 얼면 안 된다. 그러면 영화를 보러 갈 수 없게 된다.
그러니 눈아 눈아, 제발 올 겨울엔 조금만 와라.
매주 토요일 저녁 6시면 '시네마 천국'이 열린다.
지난 주 토요일에 본 영화는 '일 포스티노'.
'일 포스티노'에는 시와 바다와 음악, 그리고 사랑과 우정이 있다.
지중해 연안의 작은 섬에 사는 사람들은 바다를 작업장으로 해서 살아간다.
'마리오'의 아버지도 어부다. 하지만 '마리오'는 어부로 살기가 싫었나보다.
그는 글을 쓸 줄도 읽을 줄도 안다.
글을 안다는 것은 외롭다는 말과 같다.
마리오는 임시 우편 배달부로 취직을 한다.
그가 담당해야 할 사람은 오직 한 명, 바로 '파블로 네루다'다.
순박한 청년 마리오는 네루다를 통해 '은유'의 세계, 곧 '시'의 세계로 들어간다.
'시'는 특별한 게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모든 게 다 '시'다.
마음을 기울이고 들여다보면 모든 존재는 다 아름답고 또 슬프다.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눈이 바로 시인의 눈이고
슬픔의 눈물이 바로 '시'다.
낙엽을 태웠다.
처음엔 조심스러워서 조금씩 태웠지만
이내 마음이 풀어져서 잔뜩 긁어다가 마구 태웠다.
연기가 나고 불길이 피어올랐다.
산불감시인이 찾아왔다.
그는 내게 낙엽 때문에 고생하지 말고 아예 나무를 베어버리길 권했다.
나무를 올려다봤다.
까치집을 안고 있는 아름드리 참나무는 하늘을 향해 곧추 서있다.
누가 먼저일까.
우리 집이 먼저일까 아니면 저 참나무가 더 먼저 여기에 터를 잡았을까.
처음 이 땅에 터을 닦았던 집주인은 왜 저 참나무를 베어버리지 않았을까.
바람이 불고 천둥 번개가 내리치면 참나무가 집을 덮칠지도 모르는데
그 어른은 왜 나무를 그냥 두고 지켜봤을까.
그 때도 저 나무는 어른 나무였을까.
손을 대기 힘들 만큼 큰 나무여서 그냥 놔둔 걸까.
막걸리 한 잔 부어주고 베어버리면 괜찮다며 나더러 나무를 베길 권하는 산불감시인에게
이러타 저러타 별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나는 속으로 나무가 먼저이지 않을까란 생각을 했다.
첫댓글 일 포스티노.. 어떤 영화나 보고나면 남는 여운이 있지만 지난 토요일에 만난 우체부 마리오와 시인 파블로 네루다와의 인연.. 그안에서 싹트는 삶이 엮어내는 우정은 가슴속에서 뜨끈한 무언가가 끓어 올랐습니다.
우리 모두는 시인이다.. 우리의 삶은 시다.. 동감합니다.
다만 개인적으로 그 시적 표현을 그럴싸하게 그려내는 재주가 없음을 통탄합니다..^^
다시 한번 미감님의 글과 사진을 통해 행복했던 꾼방에서의 영화... 일 포스티노.. 떠올려봅니다.감사~~^^
함께하지 못해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일 포스티노..꼭 한번 찾아봐야겠네요..^^*
토요일밤 마다의 울길벗님들과의 작은 영화축제........^^
빵빵타고 달려가는 순간부터 행복임을~~~~~~^^
미감님 집 앞에 서 있는 참나무... 도토리도 많이 매달고, 잎도 수없이 틔우는 나무(상수리나무)를 그려보자니
이런 시가 생각나요.
철분을
많이 함유해 벼락을 잘 맞는다는
상수리나무
빽빽한 나무들 사이 숨어 있어도
벼락을 부르는 천성을 감출 수 없어,
헝클어진 머리로 비를 부르며
뿌리째 타들어가는데
오늘도 그 나무, 폭우 속에서
하릴없이 사랑를 부르네
세상에는 단 한 가지 이유만으로
절멸하는 것들이 있어,
하필이면 그런 곡절을 달고 태어났을까
천성을 탓할까 봐
上帝를 탓할까 봐
상수리나무 그 나무
그 맑은 날들
제 몸에 쌓은 사랑이
毒이 되는 것을 알았을까
그래서 침묵했을까
어느 벼락에 맞아 죽을까
무엇을 몸 속에
쌓고 살길래 나는
상수리나무 한 그루 남지 않은
이 숲에 끌려와 서 있네
- 류외향 詩 '사랑' 전문
사연이 이러하니('세상에는 단 한 가지 이유만으로/ 절멸하는 것들이 있'다는)' 미감님, 집앞의 참나무를 베는 일은 오래 두고 생각해 볼 일이라는 생각이 불현 드는군요. 강화도 시인 함 시인도 아마 같은 생각일?
나무가 먼저이지 않을까란 생각을 가지신 미감님.
오래도록 그 나무 보면서 지내실걸 같습니다
흰구름님 시 참 좋습니다
상수리 나무에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그날은 수줍고 어눌한 마리오의 조곤조곤한 말투가 어찌나 당당해 보이는지요
시와 한층 더 친숙한 날이 되었지요
우리 모두 당할 수 없는 마리오 앞에 선 네루다의 모습이 참 정겨웠습니다
그 날은 교수님과 시인님이 계셔서 마음까지 풍성한 날이었습니다~~
영화와 시, 그리운 벗들이 있어 행복한 천국, 바로 시네마 천국이더군요
아바타 같은 SF 대작은 3D스태디움 에서 봐야 되겠지만
'일포스티노' 같이 마음을 울리는 긴 여운이 있는 영화는
꾼방같이 소박한 공간에서 감상하는것이 더 운치가 있더군요.
모든 것이 어우러져 행복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강화나들길 브라보~. 시네마 천국 브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