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2559년도 사월초파일 법문
오늘은 불기2559년도 부처님 오신 날 사월초파일 입니다.
사월 초파일이 되면 불자들이라면 누구나 할 것 없이 자신이 다니는 원찰原刹은 물론이고 평소에 인연이 있는 절에 가서 부처님께 연등 공양을 올립니다.
고려시대에는 정월 보름날이 되면 나라의 큰 행사로 지정하여 연등회燃燈會를 베풀었으며 때때로 사찰에서는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부처님 오신 날에 연등을 밝히듯이 마음에 어두운 것을 떨쳐버리고 밝은 깨달음으로 나아고 져 발원하며 등불을 밝히고 있습니다.
연등을 밝히게 된 유래는 너무나 유명한 빈녀貧女의 일등一燈에서 유래됩니다.
부처님 당시 마가다국에는 난다라는 아주 가난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여인은 아침 먹으면 점심을 걱정해야 되고 점심을 먹으면 저녁을 걱정해야하는 매우 가난에 찌든 여인 이었습니다.
부처님과 제자들이 수행하는 기원정사는 천이백 명 이상이 기거할 수 있는 7층짜리 목조 건물이었는데 그 당시 고대의 목조건물로써 7층 건물이면 어마어마한 규모의 수행 도량이었던 것입니다.
어느 날 이곳 기원정사에서 커다란 법회가 있었는데 국왕인 아사세 왕을 비롯하여 대신 귀족 장자등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과시라도 하듯이 크고 화려한 등불을 부처님께 올리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다른 사람들의 크고 휘황찬란하고 큰 연등 보다 작고 보잘것없는 등을 올린 난다를 크게 칭찬하였으며 더욱이 다가오는 세상에 반드시 성불할 것이라고 수기도 내려 주셨습니다.
국왕이나 대신 귀족 그리고 장자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크고 장엄한 등을 올렸지만 자신의 재산중 매우 미미한 것에 불과한 등불을 올린 것이고 난다라는 여인은 비록 초라하고 자그마한 등을 올렸지만 자신의 전 재산인 동전두닢을 털어서 정성을 다하여 등불을 올린 것입니다.
혹자는 돈이 없어서 머리를 잘라 팔아서 기름을 사서 등불을 올렸다는 설說도 있지만 하여튼 몹시 가난한 여인이 자신의 온 정성을 쏟아서 부처님께 등불 공양을 올린 것만큼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새벽녁이되자 등불을 관리하는 소임을 맡은 신통제일 목련존자가 부채로 등불을 끄기 시작했는데 다른 등불은 모두 다 꺼지는데 오직 등불 하나가 아무리 부채를 세게 부쳐도 꺼지지 않으므로 부처님께 여쭈었습니다.
“부처님 이시어 다른 등불은 모두 잘 꺼지는데 등불 하나는 제가 아무리 끄려고 해도 꺼지지 않으니 참으로 이상하기만 합니다.”
“그럴 것이다. 그 등불은 사위성에서 가장 천하고 가난한 거지 여인의 한 종지의 보잘것없는 등불이지만 지극한 정성을 곁들여 발원하였느니라. 과거를 참회하고 미래를 위해서 서원을 세웠으며 또한 그녀는 과거 생에 부처님에게 공양한 공덕을 지은 인연이 깊기 때문이니라.”하셨습니다.
그러자 목련존자는 이상한 생각이 들어 또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습니다.
“부처님 이시어 그 거지 여인이 과거세에 부처님에게 공양을 올린 공덕이 많다면 어째서 금생에는 저렇게 천박하고 가난한 과보를 받을 수 있습니까, 이상합니다.”
“그것은 그럴만한 연유가 있느니라. 잘 들어보아라.
아주 먼 옛날 과거 비바시 부처님께서 재세시在世時에 한 청신녀가 있었는데 그에게는 상당한 재산과 권력도 있었느니라.
그는 어느 날 부처님 과 제자들에게 반식공양飯食供養을 올리려고 자기 집으로 초청을 하였으나 마침 그날에는 부처님께서 다른 불자집 의 공양초청을 먼저 받았기 때문에 그 날짜에는 선약先約이 있어 갈 수 없다고 하자 그 청신녀는 갑자기 화를 버럭 내며 말을 하기를
‘어떤 빌어먹을 거지같은 것이 먼저 공양초청을 하여 나로 하여금 공양초청을 거절당하게 하는가!?
그 작자는 오백생동안 거지 노릇이나 하거라!.‘하며 심한 악담을 하였느니라.
그리고 한참 후에 부처님과 제자들에게 공양을 올렸느니라.
그 때에 먼저 공양청을 한 불자에게 오백생동안 거지가 되라고 악담을 하였던 그 청신녀가 바로 오늘 등불을 올린 거지여인이니 그는 부처님께 먼저 공양청을 한 사람에게 악담한 과보로 오백생 동안 거지의 과보를 받았던 것이니라.
그러나 그때에 부처님께 공양을 올린 공덕으로 기원정사에 등불을 밝히게 되었으며
그 인연으로 다음 생에는 국왕이나 장자로 태어날 수도 있으며 이웃을 돕고 선행을 닦으면서 수행을 하면 부처가 될 것이니 그 이름이 수미등광여래 라고 하느니라.“ 라고 부처님께서는 인과응보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하고 계십니다.
이렇듯 무심코 내뱉은 한마디의 말이 자기 신세와 운명을 좌우한다는 것 을 알 수 있습니다.
구시화문口是禍門이라고 입을 잘못 놀리면 재앙의 문이 되는 것입니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도 있습니다.
말 한마디로 사람이 죽기도 하고 살기도 하는 것입니다.
요즘 세간에는 한 기업인이 정치인들과 연루되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으로 온 국민과 나라가 시끄럽습니다.
이 사건의 중심에 서게 된 한 나라의 국무총리라는 사람은 말 몇 마디를 두서없이 실언失言하는 바람에 아직까지 죄의 실상이 밝혀지지도 안했는데도 공직에서 물러나야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며 본인에게는 일생일대의 씻을 수 없는 치욕과 마음의 깊은 상처를 받게 되는 것 입니다.
작년에는 세월호 침몰사건으로 인하여 온 나라가 공황상태에 빠지고 국민들의 경제활동에도 크나큰 타격을 주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인간의 지나친 욕심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먹고 산다는 삶이라는 과제의 멍에에 묶이어 자기가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르고 하루하루 나침판 없는 배처럼 맹목적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생업生業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으로 재물과 명예의 노예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천만년 살 것도 아닌데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것이 인간의 욕심인 것입니다.
궁궐 같은 큰 저택에 살아도 잠을 잘 때에는 방한 칸이면 충분하고 재산이 아무리 많다 한들 하루에 밥 세끼 이상은 먹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던 길을 잠깐 멈추고 지금 자신이 가고 있는 길이 궤도에서 벗어나서 가고 있지는 않는가 하고 자신을 뒤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 될 것입니다.
삼계유여급정륜三界猶如汲井輪
삼계를윤회하는것이 돌고 도는 두레박과 같아서
백천만겁역미진百千萬劫歷微塵
백천만겁 윤회한 것이 티끌수 처럼 많이 했네.
차신불향금생도 此身不向今生度
이 몸을 금생에 제도 안하면
갱대하생도차신 更待何生度此身
어느 생을 기다려 제도 하리오
중생은 자신의업에 따라 끊임없이 욕계의 육도윤회는 물론이고 색계 무색계를 반복하여 태어나는 것을 윤회(輪廻)라고 합니다.
이렇게 윤회하는 것이 마치 우물 안의 두레박과도 같다는 것입니다.
두레박이 우물 밑의 물을 담아서 퍼 올리면 물을 비우고 또 물을 푸기 위해서 우물 밑으로 내려갑니다. 이렇게 두레박이 물을 위로 퍼 올리고 또 내려가기를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욕계 색계 무색계를 수직으로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지옥과 천상 사이를 윤회 하는 것을 끝도 한도 없이 수없이 반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금생에 이 몸을 제도 하지 못하면 어느 생을 기다려 다시 이 몸을 제도하겠습니까?
인간이 끝없는 윤회를 하면서 사람의 몸을 받았을 때 수행 정진하기를 게을리 하여 자기를 제도하지 못하고 악도에 떨어지게 된다면 다음 생에 사람의 몸을 받기란 기약할 수 없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길을 안내하는 안내자에 불과한 것입니다. 길을 가고 안 가는 것은 전적으로 본인의 책임인 것입니다.
금생에 사람 몸 받아서 불법을 만난 것을 천만 다행으로 생각하고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정신 차리어 생업에 종사하면서라도 쉬지 말고 꾸준히 수행을 하여 생사윤회를 해탈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처님과 같이 세간과 출세간의 이치를 모두알고 우주의 이치를 깨우쳐 대자유인이 되려면 탐 진 치 삼독은 물론이고 집착하는 마음을 여의어야 하는 것입니다.
집착하는 마음은 편견과 고정관념을 낳고 모든 고통의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중생들은 재물과 명예 그리고 권세와 자식에 얽매이어 고통스럽게 살고 있지만 그것이 당연한 것처럼 살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비유를 들겠습니다.
인도의 깊은 산골마을에서는 야생의 원숭이를 잡아 집에서 길들여 애완용으로 시장에 팔아서 생계의 수단으로 삼는 부족이 있다고 합니다.
원숭이를 잡는 방법은 생각보다는 아주 간단하고 재미가 있습니다.
그 방법은 항아리를 덫으로 이용하는 것입니다.
목이 좁은 항아리에다가 질긴 끈으로 묶고 그 끈을 나무에 매어놓은 다음 항아리 안에다가 호두나 땅콩 등 견과류를 넣어두고 항아아리 입구 주변에 견과류를 뿌려놓으면 원숭이는 항아리 속에 있는 견과류를 먹기 위해 항아리 속으로 손을 집어넣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먹을 것을 움켜진 주먹쥔 손은 아무리 애를 써도 목이 좁은 항아리 주둥이에서 손을 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영리한 원숭이지만 견과류 몇 개를 놓지 않으려고 손을 꽉쥐는 바람에 사람에게 잡히고 마는 것입니다.
사람이 다가가면 손에쥔 견과류를 놓고 잽싸게 도망가면 자유의 몸이 되어 다시 나무위로 돌아갈 수 있건만 욕심이 판단을 흐리게 하여 우리 안에 갇힌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되는 것 입니다.
원숭이가 움켜진 손을 놓는 다는 것은 쉬운 것 같지만 결코 쉬운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재물과 명예 권력을 탐하여 놓지 못하는 것 도 똑같은 이치인 것입니다.
문제는 집착하는 마음입니다.
원숭이가 견과류에 집착하여 스스로 덫에 걸리어 사람의 손에 잡히는 것처럼 인간역시 돈과 권력 명예에 집착하여 윤회의 바다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바로 그것인 것 입니다.
사람들의 모든 죄악은 집착하는 마음에서 단초가 되어 비롯되는 것이고 내가 지어서 내가 받는 자작자수自作自受인 것 입니다.
집착에서 벗어나는 길은 오로지 집착하는 마음을 내려놓는 방하착放下着 하는 길밖에 없는 것입니다.
나는 오늘 부터 모든 것으로부터 마음을 내려놓고 방하착을 해야 되겠다고 맹세를 한다고 해도 방하착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방하착”을 해야 된다는 것이 념念이 되어 그 것 또한 집착이 되는 것입니다.
[도道]란 “한다” “안 한다”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방하착이란 정법을 부단히 수행한 결과로써 얻어지는 것이며 행行해도 행行함이없는 비어있는 행위行爲가 됬을때 가능한 것 것입니다.
행위는 있되 행위자가 없을 때 진정한 방하착이 되는 것입니다.
생각은 있되 생각하는 사람이 없는 것, 그것을 무위無爲라고도 합니다.
우리 모두 먹고사는 일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자신의 마음을 밝히는 것이 무엇보다도 시급하니 본인의 환경과 처지에 맞는 수행법을 택하여 열심히 수행하시길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번뇌,집착, 욕심의 잡초를 뽑아 행복한 삶으로 가는길,
청정한 마음을 밝히기위해 열심히 수행하겠습니다.
스님! 법문 고맙습니다. ()()()
관심을 가지시고 동참해 주시어 감사합니다.
문수사와의 좋은인연 감사합니다.
원덕스님..수원불자 속세의 번뇌 망상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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