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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파랑길 28일. 38.39코스 (강릉교-경포대-사천진항) .
◈ 구간 거리 및 소요시간 : 26.7km. 9시간 57분.
◈ 일시 : 2021. 06. 07 (월). 4차 7일. 아내동행.
◈ 지도.
◈ 트랙.
◈ 일정정리.
05 : 58. 강릉의 포시즌모텔 출발. 옥천오거리에서 좌측으로 가서.
06 : 14. 강릉남대천을 강릉교로 건너가서 좌측으로 남대천변 도로를 따라간다.
06 : 26. 월드컵교사거리. 우측으로 조금나가 성덕초교 정문앞을 지나며 좌측 골목길로 언덕을 넘어간다.
06 : 38. 4차로 사거리를 건너 금호어울림쪽 2차로를 간다.좌측에 금호어울림 버스정류장.
앞쪽에서 오던 트래커가 횡단보도를 다시 건너간다. 부산서 오신분인데 책을쓸려고 해파랑길을 세번째
보충 답사를 하는데 강릉은 이정표가 없어 1시간째 헤매고 있단다. 잠시 동행한다.
06 : 43. 2차로에서 우측 세멘길로간다. 좌측은 금호어울림아파트.
06 : 48. 좌측 금호어울림끝에서 오는 도로공사중인데 앞 절개지를 오를수없어 우측으로 돌아 올라간다.
06 : 54. 임도따라 올라간 능선위 임도삼거리. 만덕지맥 마루금이다. 좌측으로 가며 한동안 지맥길과 같이간다.
06 : 57. 좌측 금호어울림쪽으로 내려가는길이 있고 처음으로 묵은 이정표(성덕초교1.7km)
07 : 10. 쇠종골사거리. 우측으로 6차선도로옆 인도를 따라간다.
07 : 14. 만덕지맥은 계속 도로따라가고 해파랑길은 우측으로 꺽어 세멘길따라 산모랭이를 돌아 나간다.
좀가면 남향진해변 3.3km . 성덕초교 3.2km. 강릉바우길 6구간 이정표.
07 : 21. 한옥팬션인 학동마을 대장골집. 우측 건너편은 비행장과 군부대인듯.
07 : 34/40. 강원도교육연수원쉼터에서 부산분은 먼저 가시라 하고 휴식.
07 : 42. 병산교. 다리를 건너가지 않고 섬석천 좌측 둑길을 따라간다. 둑밑의 감자밭이 엄청크다.
07 : 54. 남향진교로 섬석천을 건너간다.
좌측은 만덕지맥의끝자락인데 엄청 큰 골재공장이 있고 죽도봉이 코앞이다.
08 : 05. 남향진해변. 남향진마을 표지석, 강릉산림항공관리소. 동해지방해양경찰청항공대.
공군제18전투비행단입구를 지나왔다.좌측으로가며 울릉도가는 배인지 여객선이 간다.
08 : 15.솔바람다리앞 해파랑길 38.39시종점 안내판 .강릉바우길과 해파랑길스템프함. 아라나비는 폐업한듯.
솔바람다리로 만덕지맥끝자락을 보며 강릉남대천을 건너간다.
앞 죽도봉은 만덕지맥할때 올랐으니 생략하고 우측으로 돌아간다.
08 : 34. 강릉항.울릉도가는 여객선을 타는곳이다.
08 : 36. 안목해변과 안목커피거리가 이어진다. 중간중간 솔숲과 옛군참호가 있다.
09 : 13.딴봉마을 산책로. 송정해변에서 나란히가고있는 좌측 솔밭을 간다.
09 : 56. 리조트앞 강문해변 . 조각품들. 편의점 찾아 물과 음료수 사고(2850).
10 : 09.솔밭길끝 쉼터. 강문해변을 간다.
10 ; 23. 강문항 솟대다리를 건너간다. 경포호와 경포천물이 바다로 나가는 곳이다.
10 : 35. 해안데크길을 따라가다 좌측으로 꺽어 경포호쪽으로 간다.
10 : 37. 경포호를 우측에 끼고 도로따라가다 경포교를 건너 스카이베이 경포호텔을 보며 잠시쉬고
좌측의 경포천을 따라간다.
11 ; 07. 좌측으로 교산교와 난설헌교를 건너간다.
11 : 12. 허균. 허난설헌기념공원.한바퀴돌아 다시 이곳으로 나온다.
허난설헌 동상을 지나 허균. 허난설헌기념과은 문이 닫혀있고 생가터를 둘러보고 나간다.
11 : 39. 깨끗하게 정비된 경포호 산책로를 따라가며 좌측의 가시연습지.
11 : 59.강릉3.1독립만세기념탑. 계속산책로를 따라 돌아간다.
12 ; 08. 강릉경포대. 보물 2046호. 도로 좌측 언덕위에 있다.
12 : 18/13 ; 11. 경포대아래 까막장집에서 까막장정식으로 점심(14000*2).
13 : 18. 에디슨.참소리.영화박물관. 들어가보지는 않았다.
13 : 23. 경호정. 1927년창회계를 조직하고 건립.
13 : 25. 상영정. 1886년 16인이 상영계를 조직하고 건립.
13 : 27. 금란정.강원도문화재자료 5호. 조선말기 김형진이 건립.
13 : 34. 방해정. 강원도 유형문화재 50호.삼국시대 고찰인 인월사터에 1859 이봉구가 지음.
13 : 39. 홍장암. 경포호숫가 바위로 기생 홍장과 관리 박신의 사랑이야기를 담고있다.
13 ; 54. 경포정류장. 사천쪽에서 오는 버스를 환승하는곳이다.
14 ; 09. 경포해변. 우측엔 스카이베이 경포호텔. 백사장옆 데크길을 간다.
14 ; 20. 좌측 도로로 나가 도로옆 인도를 따라가며 잠시후 인공폭포와 안현교를 지난다.
14 : 31. 우측에 바다정원.
14 ; 40. 순긋해변입구.
14 : 56. 순포정류장. 이길은 313번 333-1번이 다닌다.
15 : 05. 삐딱한 건물.
15 : 09. 도로와 나란히 가는 우측 소나무숲길로 간다.
15 ; 16. 사천해변.
15 ; 29. 사천진항으로 가는길이 물길에 막혔다 . 되 돌아 나간다.
15 ; 35. 박수량효자비.
15 : 37. 사천천을 하평교로 건너간다.
15 : 50. 사천진항.
15 : 53. 사천진항위 사진정 정자앞 해파랑길 39.40시종점 안내판과 스템프함. 강릉바우길안내판.
오늘은 여기까지. 좌측 버스정류장을 간다.
15 : 55. 사천진리 종점정류장. 여기오는 버스는 경포해변에서 사기막마을가는 931번뿐이다.
나가는차는 번호바꿔 931-1으로 하루 15번 다닌다. 정류장앞 편의점에서 물사고(950)
16 : 05. 931-1번버스타고(1260*2)
16 : 21. 경포정류장도착하여
16 : 26. 202-1번으로 환승(2520). 경포호를 우측으로 도는 버스는 202-1. 좌측으로 도는버스는 202-2번
17 ; 03. 강릉여고앞 하차. 김밥집에서 김밥2줄(4000).편의점에서 우유와 빵사고(4700)
포시즌모텔에서 2박(오늘은 \ 30000)
05 : 58. 강릉의 포시즌모텔 출발. 35번국도시점인 옥천오거리에서 좌측으로 가서.
35번국도시점인 옥천오거리.
06 : 14. 강릉남대천을 강릉교로 건너가서 좌측으로 남대천변 도로를 따라간다.
강릉남대천.
06 : 26. 월드컵교사거리. 우측으로 조금나가 성덕초교 정문앞을 지나며 좌측 골목길로 언덕을 넘어간다.
월드컵교 건너편엔 장이 섰다. 매일아침에 선단다.
성덕초교 정문앞에서 좌측 골목으로.
06 : 38. 4차로 사거리를 건너 금호어울림쪽 2차로를 간다.좌측에 금호어울림 버스정류장.
앞쪽에서 오던 트래커가 횡단보도를 다시 건너간다. 부산서 오신분인데 책을쓸려고 해파랑길을 세번째
보충 답사를 하는데 강릉은 이정표가 없어 1시간째 헤매고 있단다. 잠시 동행한다.
06 : 43. 2차로에서 우측 세멘길로간다. 좌측은 금호어울림아파트.
06 : 48. 좌측 금호어울림끝에서 오는 도로공사중인데 앞 절개지를 오를수없어 우측으로 돌아 올라간다.
뒤돌아 본 금호어울림아파트와 지나온길.
06 : 54. 임도따라 올라간 능선위 임도삼거리. 만덕지맥 마루금이다. 좌측으로 가며 한동안 지맥길과 같이간다.
06 : 57. 좌측 금호어울림쪽으로 내려가는길이 있고 처음으로 묵은 이정표(성덕초교1.7km)
07 : 10. 쇠종골사거리. 우측으로 6차선도로옆 인도를 따라간다.
07 : 14. 만덕지맥은 계속 도로따라가고 해파랑길은 우측으로 꺽어 세멘길따라 산모랭이를 돌아 나간다.
좀가면 남향진해변 3.3km . 성덕초교 3.2km. 강릉바우길 6구간 이정표.
07 : 21. 한옥팬션인 학동마을 대장골집. 우측 건너편은 비행장과 군부대인듯.
07 : 34/40. 강원도교육연수원쉼터에서 부산분은 먼저 가시라 하고 휴식.
07 : 42. 병산교. 다리를 건너가지 않고 섬석천 좌측 둑길을 따라간다. 둑밑의 감자밭이 엄청크다.
07 : 54. 남향진교로 섬석천을 건너간다.
좌측은 만덕지맥의끝자락인데 엄청 큰 골재공장이 있고 죽도봉이 코앞이다.
남향진교에서 죽도봉.
남향진교에서 만덕지맥끝모습.
남향진마을 표지석. 좌측은 컨벤션,우측 도로따라간다.
요런집도있고
08 : 05. 남향진해변. 남향진마을 표지석, 강릉산림항공관리소. 동해지방해양경찰청항공대.
공군제18전투비행단입구를 지나왔다.좌측으로가며 울릉도가는 배인지 여객선이 간다.
08 : 15.솔바람다리앞 해파랑길 38.39시종점 안내판 .강릉바우길과 해파랑길스템프함. 아라나비는 폐업한듯.
솔바람다리로 만덕지맥끝자락을 보며 강릉남대천을 건너간다.
앞 죽도봉은 만덕지맥할때 올랐으니 생략하고 우측으로 돌아간다.
아라나비는 폐업한듯
해파랑길 38.39시종점 안내판 .
강릉바우길과 해파랑길스템프함.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때 마스코트 수호랑,반다디다.
솔바람다리와 죽도.
솔바람다리에서 만덕지맥끝모습.
솔바람다리에서 강릉항.
솔바람다리에서 강릉남대천.
죽도봉 오르는길과 솔바람다리
08 : 34. 강릉항.울릉도가는 여객선을 타는곳이다.
08 : 36. 안목해변과 안목커피거리가 이어진다. 중간중간 솔숲과 옛군참호가 있다.
강릉커피거리.
강릉커피거리.
09 : 13.딴봉마을 산책로. 송정해변에서 나란히가고있는 좌측 솔밭을 간다.
차도를 건너서는 다시 솔밭이 이어진다.
09 : 56. 리조트앞 강문해변 . 조각품들. 편의점 찾아 물과 음료수 사고(2850).
10 : 09.솔밭길끝 쉼터. 강문해변이 이어진다.
솔밭길끝 쉼터.
강문해변.
10 ; 23. 강문솟대다리를 건너간다. 경포호와 경포천물이 바다로 나가는 곳이다.
경포호물이 나오는곳.
뒤돌아 본 강문해변.
경포대해수욕장이 이어진다.
10 : 35. 해안데크길을 따라가다 좌측으로 꺽어 경포호쪽으로 간다.
여기서 좌측 경포호로 나간다.
경포해수욕장은 계속 이어지고
도로건너 요 골목으로 나가면
10 : 37. 경포호를 우측에 끼고 도로따라가다 경포교를 건너 스카이베이 경포호텔을 보며 잠시쉬고
좌측의 경포천을 따라간다.
경포교앞인데 하늘그네 정기전 포스타. 챔피언은 상금 100만원.
경포교. 요런 자전거 대여소가 몇군데 있다.
경포호물이 이곳으로 나가 오리배 타는곳뒤에서 경포천을 만나 강문솟대다리밑으로 나간다.
쉬면서 본 스카이베이 경포호텔.
우측 경포천. 좌측 경포호.앞쪽 강문솟대다리.
11 ; 07. 좌측으로 교산교와 난설헌교를 건너간다.
다리에 있는 앙간비금도.
<앙간비금도>는 허난설헌이 유년시절 강릉에서 가족과 함께 생활하던 때를 그린 그림으로 추정된다. 그림과 함께 왼쪽에는 ‘한견고인서’라는 글씨와 함께 허난설헌의 이름이 적혀있다. ‘한견고인서’는 ‘한가할 때에는 옛 사람의 글을 읽으라’는 뜻인데, 특히 고서를 즐겨 읽었던 허난설헌의 생각을 적은 것으로 보인다.
그림을 살펴보면 왼쪽에는 세 그루의 나무가 있고 그 옆으로 작은 초막이 그려져 있다. 앞으로는 물가가 펼쳐져 있고 너머에는 둥근 산들이 겹쳐져 있는데, 인상적인 것은 하늘을 나는 몇 마리의 새들과 이를 바라보는 두 사람이다. 여덟 마리의 새는 저마다 자유로운 방향으로 날아가고 있고 머리에 두건을 쓴 채 지팡이를 짚은 이와 오른 손을 들고 고개를 들어 새를 바라보고 있는 어린아이가 아래에서 손을 잡고 있다.
허난설헌의 시에서 새는 이상향에 이르기 위한 수단으로 자주 사용되었다.
허난설헌에게 새는 자신의 분신이 되어 현실의 불안과 부자유를 벗어나는 수단이자 외로운 자신의 모습과 대비되는 금슬 좋은 이상적 관계의 상징이기도 했다. 자신이 꿈꾸는 새, 하지만 새처럼 자유롭게 날지 못하고 그저 바라보아야 하는 어린아이는 허난설헌 자신에 다름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손을 꼭 잡고 있는 남성은 행복했던 유년시절 자신에게 행복과 자유를 선물해준 그녀의 아버지 초당 허엽이 아니었을까.
[네이버 지식백과] 앙간비금도 (KBS 천상의 컬렉션)
허난설헌의 본명은 허초희다.
허난설헌은 조선중기 문신으로 동과 서로 사림들이 붕당된 후 동인의 영수가 된 허엽의 딸로 태어났다. 양천 허씨이며 어렸을 때 이름은 초희였다. 당시 여성들이 거의 제대로 된 이름을 가지지 못하였던 데 비해 허난설헌이 초희라는 어엿한 이름을 가진 것으로 볼 때 그녀의 집안은 당대 여타 사대부 가문에 비해 여성에게 관대하였던 것 같다. 허엽은 동인 중에서도 북인계에 가까운 인물로 북인들은 대개 그 사상적 기저가 성리학 이념 하나에만 고착되지 않고 여러 분야에 비교적 열려 있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 허엽 가문의 학문에 대한 열린 가풍은 딸 허난설헌에게 남자와 똑같은 교육기회를 주었으며, 아들들에게는 자유로운 사상을 가질 기회를 마련해주었다. 당대 뛰어난 문인으로 평가받은 허성, 허봉이 허난설헌의 오빠이며 [홍길동전]으로 유명한 허균이 허난설헌의 남동생이다.
허난설헌의 글씨와 그림 [앙간비금도]. <출처: wikipedia>
가족 중에서 허난설헌에게 가장 영향을 많이 미친 사람은 둘째 오빠 하곡 허봉으로, 허봉은 여동생의 문재를 일찍이 알아보고 이를 독려하였다. 그는 자신의 친구이자 당대의 가장 뛰어난 시인 이달에게 여동생의 교육을 부탁하였다. 이달은 뛰어난 문학성을 가졌으나 양반가의 서자로 태어나 벼슬길이 막힌 불운한 시인이었다. 그는 당시풍(唐詩風)의 시를 잘 지어 선조 때의 삼당파시인으로 이름을 떨쳤는데 허난설헌과 허균 남매를 가르쳐 그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어렸을 때부터 천재성을 드러낸 허난설헌은 나이 8세 때 [광한전 백옥루 상량문]이라는 한시를 지어 주변의 어른들을 놀라게 하였다. 시는 신선세계에 있는 상상의 궁궐인 광한전 백옥루의 상량식에 자신이 초대받아 그 상량문을 지은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었다. 이 시에서 어린 허난설헌은 현실의 어린이의 한계와 여성의 굴레를 모두 벗어버리고 가상의 신선세계에서 주인공이 되는 자신을 과감히 표현하여 신동이라는 칭송을 들었다. 이렇듯 허난설헌은 훗날 조선후기 문인 서포 김만중이 논하였듯이 가문과 스승의 격려 속에서 조선시대 규중의 유일한 여성시인으로 성장하여 갔다.
허난설헌은 15세에 김성립과 결혼했다. 김성립은 안동 김씨로 그녀보다 한 살이 많았다. 김성립은 5대가 계속 문과에 급제한 명문 가문의 자제였다. 당시 사림들이 동인과 서인으로 붕당된 상황에서 동인은 또다시 북인과 남인으로 분리되기 시작하였는데 김성립은 남인계에 속한 인물이었다. 당시 남인은 북인보다 사상적으로 성리학에 더 고착되어 있었고 보수적이었다. 자유로운 가풍을 가진 친정에서 가부장적인 가문으로 시집 온 허난설헌은 시집살이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양반가의 여성에게조차 글을 가르치지 않았던 당시의 분위기 속에서 시를 쓰는 며느리는 시어머니에게 달갑지 않은 존재였다. 허난설헌의 시어머니는 지식인 며느리를 이해하지 못했고 갈등의 골은 깊어갔다. 남편 김성립은 그런 그녀를 보듬어주기보다는 과거공부를 핑계 삼아 바깥으로 돌며 가정을 등한시하였다. 뛰어난 오빠와 남동생을 보고 성장한 허난설헌에게 평범한 김성립은 성에 차지 않는 인물이었을지도 모른다. 8세 때 이미 신동이라고 소문난 아내를 김성립은 버거워했다. 허난설헌의 남동생 허균은 훗날 자신의 매형인 김성립에 대해 “문리(文理)는 모자라도 능히 글을 짓는 자. 글을 읽으라고 하면 제대로 혀도 놀리지 못한다”고 평하였는데, 이 평에서 알 수 있듯이 김성립은 무뚝뚝하고 별다른 재기는 없는, 고집 세고 고지식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허난설헌은 결혼 초기에 바깥으로 도는 남편을 그리는 연문의 시를 짓기도 하였으나, 어느 순간 김성립과의 결혼에 회의를 느끼고 남성 중심 사회에 파문을 던지는 시를 짓기도 하였고, 때로는 이 세상이 아닌 다른 신선의 세계를 동경하며 현실의 불행을 잊으려 하였다. 그러는 사이, 허난설헌의 친정은 아버지 허엽과 따르던 오빠 허봉의 잇따른 객사로 몰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허난설헌은 두 명의 아이를 돌림병으로 잇달아 잃고 뱃속의 아이를 유산하는 불행을 당한다. 이때의 슬픔을 그녀는 [곡자]라는 시로 남겨놓았다.
여성의 재능을 인정하지 않는 시어머니의 학대와 무능하고 통이 좁은 남편, 몰락하는 친정에 대한 안타까움, 잃어버린 아이들에 대한 슬픔 등으로 허난설헌은 건강을 잃고 점차 쇠약해져 갔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시로서 자신의 죽음을 예언했다.
碧海浸瑤海 푸른 바닷물이 구슬 바다에 스며들고
靑鸞倚彩鸞 푸른 난새는 채색 난새에게 기대었구나.
芙蓉三九朶 부용꽃 스물 일곱 송이가 붉게 떨어지니
紅墮月霜寒 달빛 서리 위에서 차갑기만 해라.
그 예언은 적중해 허난설헌은 부용꽃 스물 일곱 송이가 지듯이 27세의 나이로 목숨을 거두었다. 그녀의 남편 김성립은 허난설헌 사후 남양 홍씨와 재혼하였지만 곧이어 터진 임진왜란에서 의병으로싸우다 전사하였다.
허난설헌은 죽을 때 유언으로 자신이 쓴 시를 모두 태우라고 하였다고 한다. 그녀가 남긴 시는 족히 방 한 칸 분량이 되었다고 한다. 허난설헌의 시집은 그녀의 유언에 따라 유작들을 모두 태웠다. 그러나 허난설헌의 동생 허균은 찬란한 천재성을 가진 누이의 작품들이 불꽃 속에 스러지는 것이 안타까워 그녀가 친정 집에 남겨놓고 간 시와 자신이 암송하는 시들을 모아 [난설헌집]을 펴냈다.
1606년 허균은 그 시집을 조선에 온 명나라 사신들에게 일람하게 하였다. 당시 명나라 사신 주지번은 허난설헌의 시를 보고 매우 경탄하였다. 그리고 이를 중국에 가져가 중국에서 [허난설헌집]을 발간하였다. 그녀의 시는 일약 중국에서 큰 인기를 끌게 되고 중국의 문인들이 앞을 다투어 그녀의 시를 격찬하게 되었다. 중국에서 애송되던 허난설헌의 시는 18세기에 가서 동래에 무역차 나온 일본인의 손에 의해 일본으로 전해졌다. 그녀의 시는 1711년 일본의 분다이야 지로[文台屋次郞]에 의해 간행되어 크게 인기를 끌었다.
난설헌의 시는 조선후기 사대부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재평가되어 그녀를 규방의 유일한 시인이자 뛰어난 천재로 인정하였다. 다만, 중국에서 발간된 그녀의 시들 속에 중국의 당시를 참고한 듯한 부분이 일부 발견되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허난설헌의 작품인가 하는 논란이 있기도 하였다. 그녀의 시집이 동생 허균에 의해 간행된 만큼 편집에 있어서 일부는 허균의 생각이 반영되었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조선중기, 여성에게 가장 혹독했던 시기에 주옥같은 시를 남기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그녀의 뛰어남을 가릴 수는 없을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허난설헌 [許蘭雪軒] - 조선중기 천재 여성시인 (인물한국사, 김정미, 장선환)
다리 기둥엔 홍길동
11 : 12. 허균. 허난설헌기념공원.한바퀴돌아 다시 이곳으로 나온다.
허난설헌 동상을 지나 허균. 허난설헌기념관은 문이 닫혀있고 생가터를 둘러보고 나간다.
난설헌 허초희동상
허균. 허난설헌기념관.
허난설헌 생가터.
교산교에서 본 경포천.
경포호.
11 : 39. 깨끗하게 정비된 경포호 산책로를 따라가며 좌측의 가시연습지.
11 : 59.강릉3.1독립만세기념탑. 계속산책로를 따라 돌아간다.
이곳을 모두 둘러보며 간다.
12 ; 08. 강릉경포대. 보물 2046호. 도로 좌측 언덕위에 있다.
일찍이 강릉 사람들은 경포대에서 볼 수 있는 여덟 경치를 일러 경포팔경이라 부르며 풍광을 즐겨왔다. 경포대에서 보는 해돋이와 낙조와 달맞이, 고기잡이배의 야경, 노송에 들어앉은 강문동, 그리고 초당마을에서 피워 올리는 저녁 연기 등이 경포팔경에 속한다. 특히 누각 안 호수를 바라보는 쪽 면에다 단을 하나 더 높여놓은 것은 경포호를 보는 시야를 좀더 넓히려는 배려이다.
경포대’(鏡浦臺)라는 현판은 전서체로 쓴 것과 해서체로 쓴 것 두 개가 있다.
전서체는 조선 후기의 서예가 유한지가 쓴 것이고, 해서체는 조선 순조 때 승지를 지낸 명필 이익회가 쓴 것이다.
‘제일강산’은 명나라 사신 주지번 또는 조선 전기 4대 서예가의 한 사람인 양사언이 썼다고 하는데 확실치 않고,
뒷부분의 파손된 두 글자는 후세 사람이 써서 덧붙인 것이다.
그 밖에도 숙종의 어제시, 명문으로 알려진 조하망의 상량문 등 여러 명사의 시와 글귀가 남아 있다. 율곡이 10세 때 지었다는 「경포대부」(鏡浦臺賦)도 판액돼 있다. “하늘은 유유하여 더욱 멀고, 달은 교교하여 빛을 더하더라”(天悠悠而益遠 月皎皎而增輝) 「경포대부」의 한 구절).
출처: https://yul6629a.tistory.com/1328 [산경표를 따라서] 가서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