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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海 水平線 해돋이
- 江陵 해변에서 -
고 광 창
1970년대 중반(1976?) 광주시내에 근무할 때 일이다. 교육부(문교부) 지정 사회과교육 연구학교인 江陵초등학교 연구 발표회에 참석하라는 공문을 받았다. 10여 년 전 軍복무시절 1군사령부가 있는 原州는 공무 출장 차 몇 번 다녀온 일은 있지만 강릉 땅은 밟아 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한편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 너무 멀고 생소한 곳이어서 어떻게 가야할지 몰라 잠시 걱정을 했었다.
함께 참석할 사람 4명 중 낯익은 이름이 한 사람도 없었는데 이틀이 지나자 나와 함께 갈 어떤 선생님(다음에 알고 보니 광주시 사회과 서클회장)한테서 전화가 왔다. 광주에서 참석자가 4명임으로 함께 가자는 것이다. 이틀 후 다방에서 4사람이 만났다. 通姓名을 하고보니 출생연도가 나만 40年代이고 나머지 분들은 모두 30年代였다. 그 중 한 사람이 자기 乘用車가 있고 사회과 서클 회장은 차는 없지만 운전은 가능하다고 하니 강릉까지 승용차를 가지고 가되 코스는 경상북도와 강원도의 동해안 지역이 경치가 좋으니까 그쪽 방면으로 가자고 했다. 서클 회장과 車를 가진 분은 서로 잘 아는 사이인 것 같았다.
우리 4명 대표는 가장 연장자인 사회과 서클 회장이 맡고 차 주인이 운전을 주로 하되 가끔씩 서클 회장이 교대해 주기로 했다. 잔심부름은 물론 내가 맡았다. 이렇게 해서 교육부지정 연구발표회에 참석할 광주시 대표단(?)이 구성되었고, 4명이 카풀(car pool)을 하게 되었다.
<강릉 가는 길목에서>
아침 일찍 광주에서 출발해서 순천 진주(이때는 대구 광주 간 고속도로가 개설되기 전)를 거쳐 창원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이 때 먹은 ‘창원 단감’ 맛이 잊혀지지 않는다. 울산을 거쳐 포항에서 1박을 했다. 호미(虎尾)곶 일출 광경을 보고 싶다고(이때는 상생의 손이 만들어 지기 전) 숙소 주인아주머니에게 이야기 했더니 ‘해돋이 장소까지는 여기서 택시로 20여 분 걸리는데 내일 아침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라서 어려울 겁니다.’ 한다. 아침에 일어나니 이슬비가 내려서 어디 가지를 못하고 이곳이 ‘영일만’인지라 최백호의 ‘영일만 친구’라는 노래만 불렀다. ‘거친 바다를 달려라 영일만 친구야 ---“ (나는 그 노래를 몰라 듣기만 했다)
강릉가기 위해 차에 오르면서 간식용으로 ‘과메기’와 ‘오징어포’를 샀다.
포항에서 울진까지는 도로가 비좁고 도로 노면이 고르지 않아 운전하시는 두 분 고생이 많으셨다. 영덕에서는 철은 아니지만 유명한 ‘영덕 대게’를 먹었다. ‘대게’란 대나무를 닮았다 해서 지은 이름이라는데 겉보기와는 다르게 먹을 양이 많고 맛도 아주 좋았다.
영덕에서 울진을 지나 동해시에 오니 노폭도 넓어지고 노면 상태도 좋아 마음이 놓였다. 휴식도 취하고 저녁 식사를 할 겸 동해시에서 내렸다. 도시는 작지만 조용하고 깨끗했다.
<江原道, 關東, 嶺東, 江陵>
옛날고려시대 때 함경도를 關北지방, 평안도와 황해도를 關西지방, 서울 경기 지역을 ‘關內’라 하였는데 강원도는 관내도의 동쪽이란 뜻에서 ‘關東’이라 불렸다. ‘關東8景’이란 강원도에 있는 경치가 아름다운 정자나 호수 8개를 말하는데 8개중 2개는 북측 금강산에 있고 남측에 있는 6개중 1개가 강릉 ‘경포대‘다.
조선시대 때 한반도는 처음에는 8도로 나뉘어 있었는데 인구가 많아지자 행정상 필요에 의해서 전남, 전북처럼 다시 남북으로 나뉘었다. 하지만 강원도는 인구가 많지 않아 남북으로는 나뉘지 않았지만 강원도 한 가운데를 백두대간이 남북으로 지나고 있어 大關嶺의 동쪽을 嶺東 서쪽을 嶺西로 구분하여 부르고 있다.
그러므로 ‘關東’은 고려시대 때 강원도의 이름이고 ‘嶺東’은 오늘날 강원도에서도 대관령 동쪽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嶺東지방은 천혜적인 자연 조건과 유무형의 많은 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는 전국적인 관광지인데 그 중심에 江陵이 자리하고 있다. 강릉은 영동 지방의 행정문화의 중심지로서 江陵의 江과 原州의 原을 합쳐서 江原道라 할 정도로 대표적인 도시다. 강릉은 관동팔경의 하나인 경포대가 있고 신사임당과 이율곡 등 인물을 배출한 곳이기도 한다.
<江陵 바닷가 해돋이>
가는 도중에 이곳저곳을 구경하면서 가다보니 강릉도착이 좀 늦었다. 강릉초등학교를 찾아가서 그 부근에 숙소를 정하려고 몇 군데 알아보니 빈방이 없단다. 연구발표회 참가자 때문인 것 같았다. 할 수 없이 좀 변두리 지역으로 나와서 방을 구했다.
이튿날 아침 주인아주머니가 문을 두드리면서 깨운다. 어서 나가라는 것이다. ‘웬일이세요?’ 했더니 ‘손님들 모두 ’해돋이 구경‘ 나가셨다’는 것이다. ‘해돋이 구경요?’ 우리 일정에는 해돋이 구경이 없었기 때문에 뜻밖이었다. 해돋이 하면 ‘정동진’을 생각했지 강릉은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여관 아주머니가 재촉하는 바람에 양말도 신지 못한 채 서둘러 나오니 소나무 많이 있는 곳을 손으로 가리키며 그곳으로 곧장 가라고 한다, 발걸음을 재촉하여 좀 걸어가니 소나무가 줄지어 서 있고 바로 거기가 모래밭이고 바닷가다. 어둠속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수평선을 보니 하늘과 수평선 모두 은빛인데 조금씩 붉게 물들여 가고 있었다. 누구하나 말하는 사람이 없이 숨죽이는 순간 은빛 하늘과 푸른 바다가 엄청 붉게 변하더니 드디어 태양이 뾰족히 머리를 내민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태양이 솟아나오니 하늘, 바다 온 세상이 모두 빨간빛이다. 와! 아름답다. 황홀하다! 장엄하다! 순간 나는 뭐라 할 말을 잊고 두 손을 모아 가슴에 얹고 있었다. 정말 아름답다! 이처럼 아름다운 모습을 나는 처음 본다. 이 역사적인 순간을 더 오래 보고 싶은데 내 바람과는 다르게 빨간 빛이 점점 사라지더니 이윽고 해가 둥근 모습을 완전히 드러내는 순간 야! 하는 탄성과 함께 박수갈채가 쏟아진다. 꽃도 완전히 개화되기 바로 직전이 가장 아름답다고 했는데 아쉽다. 황홀한 순간을 더 오래 보고 싶었는데 ---
어둠을 걷어내고 새 희망을 비추는 웅장하고 강렬한 빛이 장관이었고 찬란히 떠오르는 모습이 단연 압권이었다. 바다의 水平線에서 떠오르는 찬란한 태양은 地平線 일출 모습과는 비길 수 없는 경외(敬畏)로움이 있는 것 같다. 강릉 해변에서의 수평선 해돋이는 나에게는 잊지 못할 큰 감동이었다.
우리가 오는 도중 이곳저곳 해찰(?)을 하며 오다 보니 이곳에 좀 늦게 도착했고 학교 인근에 방을 구하지 못해 이곳 해변까지 왔는데 뜻밖에 해돋이를 보게 되다니 전화위복이라고 까지는 말할 수 없지만 우연도 이런 좋은 우연은 자주 있었으면 좋겠다. 우연도 좋은 우연으로 ---
매년 정월 초하룻날 일출을 보기 위해 구름처럼 많은 인원이 모여드는 이유는 새해 첫날 떠오르는 태양 빛의 감흥을 받아 각오를 새롭게 함은 물론 내가 바라는 것이 잘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간절함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거창한 희망을 내걸지 않고 소박하게 ‘내가 잠시 머물다 간 자리를 보다 깨끗하고 아름답게 가꿔놓고 가자’라고 했고 또 우리 가족 모두 무탈하기를 바랄뿐이다.’했다.
서클회장이 광주에서는 사진기를 가져오셨다는데 숙소에서 해돋이 보러 황급히 나오는 바람에 사진기를 못 가지고 나왔다고 아쉬워했으나 각자 머릿속 망막에 일출 모습을 저장해 놓았으니 그것으로 만족하는 수밖에 --
10월의 아침 강릉 해변 기온은 싸늘하기 까지 했다. 발길을 서둘러 숙소로 오는 도중 다른 일행들 몇 사람이 주고받는 얘기는 해안선에서 뜨는 해는 우리가 보통 보는 해보다 크기가 크다 아니다 이었는데 더 크다는 쪽 얘기는 바다 위 공기 속 수분과 다른 성분이 섞여 더 크게 보인다고 과학적인 증거가 있다고 했다.
나는 숙소로 오는 도중 내 머릿속을 꽉 메우고 있는 건 태양의 크기가 아니라 地動說에 대한 의문이었다. 과학적으로는 지동설이 맞는 걸로 되어 있고 나도 믿고 있었지만 오늘 나는 해가 푸른 바다 저쪽에서 떠오르는 것을 분명히 보았다. 분명히 해가 움직였다. 자연 현상이 내 눈을 속이는 건지 내가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이때 내 뒤통수를 망치로 쾅! 하고 치며 내가 나에게 말한다. ‘해돋이를 보더니 地動說을 못 믿겠다고? 에라 이 무식한 놈아! 네가 잠시 錯視 현상을 일으킨 거야 ‘地動說’은 16세기 중반 ‘코페르니쿠스’가 주장한 후 科學的으로 입증된 萬古不變의 眞理야! 지금 네가 착각한 이 시각에도 지구는 계속 돌고 있어! 알았니?‘ 나는 하늘을 보고 혼자 웃는 수밖에 ㅎㅎㅎ
숙소에 돌아와서 주인아주머니께 ‘덕분에 해돋이를 잘 보았노라고 감사하다’고 말씀 드렸더니 주인아주머니가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인다. ‘일반 국민들이 강원도 해돋이 장소를 ‘正東津’으로만 알고 있는데 이는 잘못도 큰 잘못이란다. ‘正東津’이라는 말은 옛날 한양 경복궁의 ‘正 동쪽에 있는 나루’ 라는 뜻이고 ‘해돋이 명소’하고는 관련이 없는데 그쪽 지역 주민과 그곳 상인들이 해돋이 명소로 소문을 내고 있단다.
우리가 방금 다녀온 곳이 송정해수욕장인데 강원도 해돋이 명소는 따로 있는 게 아니고 바닷가 해변이 모두 명소란다. 다만 태양이 떠오르는 순간 구름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희비가 엇갈릴 뿐이란다. 해돋이도 관광객의 당일 운수소관(運數所關)이란다. 아주머니가 상당히 유식하고 유머 감각도 풍부했다. ‘해돋이’도 ‘운수소관’이라고? 그럼 우린 오늘 운수대통 했네!
여하튼 연구학교 발표회에 참가하러 왔다가 뜻밖에 푸른 바다 속에서 이글이글 타오르는 일출을 보았으니 큰 감동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연구학교 발표회에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연구학교 참관>
우선 참가자수에 놀랬다. 5~6군데에서 접수하고 유인물을 나누어 주고 있는데 접수창구마다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사회과 서클 회장님 말씀에 의하면 교육부(문교부)지정 연구학교가 각 시•도마다 1~2개 씩 뿐이기 때문에 전국에서 많은 회원이 참석한단다.
개회식 때 보니, 교육부, 강원도교육청, 강릉교육청을 물론 지역 국회의원, 도의원 등이 두루두루 참석했다. 접수창구에서 나누어준 봉투 속 학교 요람을 보니 강릉초등학교는 개교한 지 80여 년이나 되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이곳 명문학교인 것 같았다. 수업 공개는 각 학년별로 2개 반씩 했는데 참석인원이 워낙 많다보니 교실 출입하기가 어려웠다. 서클 회장님이 우리 일행 수업 참관을 안배해 주셨다. 1•2학년, 3•4학년, 5•6학년으로 세 사람이 나누어서 보고 회장님은 전체를 한 번 둘러보기로 했다.
나는 3•4학년 수업을 참관했다. 수업 방법은 대부분 사회과에 적합한 ‘조사 발표학습’이었다. 학습과제를 잘게 쪼개고 학생들을 몇 개조로 나누어 조사를 한 다음 그 내용을 4절지 크기의 종이에 정리하여 발표하는데 여러 학생들이 발표에 참여하여 질문을 주고받는 모습을 보니 그동안 학습훈련을 많이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사 발표 학습’다웠다.
연구발표가 끝나자마자 우리는 광주로 돌아오기 위해 바로 차에 올랐다. 머나 먼 이곳 강릉까지 왔다가 시내 구경도 못하고 가려니 아쉬움이 없지 않았지만 4일간 출장이라 시간에 쫓기니 다른 방법이 없었다. 뜻밖에 이곳 강릉 바닷가에서 해돋이를 보았으니 그걸로 만족하는 수밖에 ---
<광주로 돌아오는 길목에서>
울진에 도착하자 회장님이 말씀하신다. ‘울진은 관광명소가 많은 곳인데 관동 8경에 들어가는 ’월송정’이라는 누각이 있고 ‘불영사’라는 사찰이 있는데 시간 관계상 그곳 중 한 곳만 선택해서 가기로 합시다.‘ 하니 모두 ’불영사‘를 가자고 한다. 숙소를 정해 놓고 불영사 계곡으로 가는 도중 회장님이 설명한다. ’佛影‘이란 부처의 모습이란 뜻인데 ’부처의 모습과 비슷한 모양의 바위가 연못에 비쳐 부처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서클 회장님이 이 지역에 대한 사전 공부를 많이 해 오셨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런 점은 나도 본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보니 ’불영사‘라는 사찰이 있고 그 앞에 연못이 있는데 그 곳에 앞에 있는 산의 바위 모습이 비쳐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바위 모습이 부처의 모습을 닮았다고 하기에는 내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다. 관광 명소로 삼기 위해서 억지로 붙인 것은 아닌지?
저녁을 먹고 나서 서클 회장님 중심으로 오늘 강릉초등학교 수업참관 이야기를 나누었다. 각자 자기가 보았던 학년의 참관 소감을 얘기하고 회장님이 그 내용을 정리해서 총평을 해 주셨는데 시간이 지나 다 잊어버렸지만 다음 세 가지는 기억에 남아있다.
첫째, 사회과 地理 영역에서는 저학년에서 고학년으로 갈수록 ①우리 가정 ⇒②우리 마을 ⇒③우리 고장 ⇒④우리나라 의 순으로 ‘地域 擴大法’을 적용하는데 오늘 이 규정이 잘 적용된 것 같다.
둘째, 사회과에서 학습 방법은 ‘조사 발표 학습’이 가장 좋다. 그것을 다른 말로 ’사회 탐구학습‘이라 하는데 오늘 대부분 이런 학습 방법을 선택했다. 학생들 학습훈련도 잘 되어 있었다.
셋째, 지역사회의 과제를 교실 안으로 끌어들여 학생들이 지역사회 과제에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은 대단히 바람직 한 것이다. 수업 말미에 학교나 우리 고장을 위해 우리가 할 일을 발표하게 했는데 그 발표 내용도 참 좋았었다.
이번 연구발표회를 통해 강원도 특히 영동지방에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관광지가 많다는 것을 전국에 홍보하는 효과를 톡톡히 보았다. 또 ‘오늘 우리 회원들에게 나누어 준 봉투 속에 강릉 시장이 준 선물(손수건)이 있는데 거기에 강릉 시내 관광지 사진이 찍혀있습니다. 교육장도 아닌 시장이 왜 우리에게 선물을 주었겠습니까? 이건 선물이 아니라 강릉 관광지를 소개한 홍보물인 것입니다. 이번 연구발표회에 참석하여 많은 것을 배우고 많이 느끼고 갑니다.‘ 한다.
우리들 발표 내용도 참고로 하셨겠지만 내용을 잘 정리해서 말씀 하시는 걸 보니 역시 사회과 서클 회장다운 분이시다. 나는 여기서 느꼈다. 서클 회장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걸 ---
참관 소감 발표 시에 알게 된 것은 승용차를 가져 오신 분은 현재 광주시 사회과 서클 회원이고 또 다른 분은 광주시로 전입 되기 전 시군에서 사회과 연구학교 연구 주무자였다고 한다. 어쩐지 말하는 솜씨가 다르다 했지 --- 나만 빼놓고는 모두 사회과 전문가였네 ㅎㅎㅎ
나는 오늘 연구발표회를 통해서 배운 것보다 사회과 서클 회장님 말씀을 듣고 더 많은 걸 배운 것 같다.
<연구학교 참가 광주시 대표단 해단식(?)>
다음날 오후 광주에 도착하여 해단식(?) 겸 만찬을 같이 했다. 모두 異口同聲으로 ‘덕분에 무탈하게 잘 다녀왔습니다, 고맙습니다.’였다. 특히 운전을 해 주신 두 분에게 고맙다는 인사도 곁들였다.
내 개인적으로는 사회과 교육에 대한 견문도 크게 넓혔지만 서클 회장님의 말씀 한 마디, 행동 하나하나를 보면서 많은 걸 보고 배웠다. 이번 출장 기간 4일이 나에겐 개인적으로 참 유익한 시간이었다. 강릉 해변에서 떠오르는 해돋이를 보면서 소박하게 다짐했듯이 내가 바라는 것은 오직 ‘내가 잠시 머물다 간 자리를 보다 깨끗하고 아름답게 가꿔놓고 가자’이다. 거창한 희망과 포부를 말해 보았자 ‘作心 三日’이란 말처럼 보나마나 사흘도 못가고 하루나 이틀 뒤면 잊혀 질 것이 뻔한데 뭐 ㅎㅎㅎ
‘강릉 바닷가 수평선 해돋이’만을 추억으로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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