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벩송이 소르본 대학에 두번이나 교수 신청을 했으나 기존 교수들의 임용투표에서 한번은 상위가 과반수를 넘지 못하여 다음 한번은 적은 표차로 교수로 임용되지 못하여, 벩송에게는 소위 말하는 직접 지도하는 제자는 없다. 그런데 꼴레쥬 드 프랑스에 고전문헌학의 대강(전임자가 병으로 강의 못함)을 하다가 바로 근대철학의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 강의들에서 초기의 시간 관념의 역사, 기억의 역사, 자유의 역사 등을 4년에 걸쳐 강의했다. 그 시민 강좌의 강의실에는 넘쳐나는 일반 수강자들 중에 학생은 10명이라고 하는데, 그 중에서 벩송의 견해를 충실하게 따라간 사람은 그 중에서도 시인 샤를 빼기와 에밀 브레이어였다. 설에 의하면, 강의를 들었던 샤를 빼기는 당시 동창생인 파리주교(추기경)를 만나서 카톨릭의 교리를 벩송의 철학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리고 브레이어는 그의 "철학사(7권)" 속에 벩송의 강의가 그대로 녹여 놓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증거는 시인 샤를 빼기가 개인 비용으로 법정 속기록사 2명을 불러서 벩송의 강의를 그대로 받아적어 두었다. 이 강의록이, 샤를 빼기 집안에서 흘러나와 2017년부터 출판되었다. 이 강의록의 세가지 역사적 전개의 서술방식이 브레이어에 그대로 전수되었다고 나는 본다. 브레이어는 벩송의 수강자로서 제자이며, 도덕과학 아카데미의 회원이 될 때도 벩송의 자리를 이어받았다. 이보다 더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마실에서 "천사흘밤 이야기"의 4권의 {강의록들}을 일년에 걸쳐서 번역하면서 긴 이야기를 올려 놓았으니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한가지 더, 들뢰즈의 철학사 전반의 견해에는 에밀 브레이어 이외도 스토아학파의 견해에 대해 골드 슈미트가 등장하는데, 골드 슈미트의 스토아학파에 대한 박사논문의 지도교수가 에밀 브레이어 였다. 플로티노스의 견해를 전달하는 벩송, 브레에어, 골드슈미트, 들뢰즈로 이어지는 철학이 스토아 철학을 바탕으로 하는 "전복의 철학"이다. 벩송은 서양철학사가 2500여년 동안에 "전도된역사"라고 한다. 전도는 사유의 전환을 요구하는 것이고, 전복은 혁명을 의미하는 것이다. (57LLC)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앵글로 색슨에게 스피노자의 의미와 다른 의미가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이 파일을 빼서 각주를 꼭 읽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57LLC)
철학사(Histoire de la philosophie)(1938),
브레이어(Bréhier, 1876—1952)
- 제4권. 17세기, Le dix-septième siècle 1-273
제6장, 스피노자 Spinoza 139-175
1절 생애, 환경, 작품들 La vie, le milieu et les oeuvres, 139-
스피노자가 활동한 터전은 암스테르담의 유대인 거리이며, 그가 살았던 터전은 매우 복잡했다. 종교적 선입관들이 거기에 지배했으나, 밝혀야 할 몇 가지 미묘한 차이들(des nuances)도 있다. 스피노자가 소속했던 포르투갈계 유대인들은, 자들이다. 위협적인 종교재판을 피하기 위하여 스페인에서 자신들과 같은 신앙을 가진 자들과 더불어 16세기 말경에 암스테르담에 정착하였다. 그들은 자신들과 더불어 네덜란드 유대인들과 아주 다른 정신을 가져왔다. 이들은 거의 모두가, 카톨릭으로 개종한 유대인들 공동체인 마란 분파들(Les marranes)의 후손들이며, 말하자면 1492년 페르난도/페르디낭 2세(Fernando II, fr. Ferdinand, 1452-1516)의 칙령에 의해 자신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카톨릭교도로서 실천을 했던 자들인데, 가슴 속에는 유대인들로 남아있었다. 이런 상황들에서 그들 종교의 전통적 교육은 그들에게 금지되었고, 그들은 헤브루 언어도 경전들의 탈무드 주속들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런 그들은 암스테르담에서 [유대] 공동체를 발견했는데, 그 공동체에서 카발라의 신비주의 연구가 거의 전면적으로 지배하고 있었다. 거기서부터 암스테르담의 유대인들에게 17세기 전반부에서 일어난 정신적 갈등들이 나온다. 논리학, 형이상학, 의학을 아는 유대인들은 랍비 교육에 저항했다. 이들 중에는 1585년에 포르투갈의 오포르토(Oport)에서 태어나서 1615년에 홀란드로 이민 온 코스타(Uriel da Costa, 1585–1640)은 영혼 불멸성을 부정했고, 모세 율법과 “자연법” 사이에 발견된 모순들 때문에, “모세의 율법은 인간적 발명이다”라고 썼다. (139)
스피노자는 1632년에 태어났으며, 암스테르담의 유대 상인의 아들이다. 그는 매우 깊고 또한 순수히 헤브루 방식의 교육을 받았다. 사람들은 그런 교육을 공동체의 모든 어린이들에게 시켰다. 계속해서 7학년을 거쳐야 했는데, 거기서 그는 헤브루 언어를 배우고, 그리고 모세, 열왕기, 선지자들의 책들을 읽었으며, 마지막으로 탈무드 연구를 했다. 랍비의 직능을 이어갈 운명에 처한 그는 학교를 졸업하고도 연구를 계속햇다. 그가 카발라와 중세의 몇몇 유대 철학자들을 알 수 있는 것은 그 찰나에서였다. 그들 중에서, 그가 그의 편지(XII)에서 한번 인용한 크레스카스(Crescas, 1340경-1411)가 있는데, 그는 14세기에 신의 완전성은 인식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l’amour)속에 있다고 가르쳤다. 그리고 피조물의 완전성은 그가 이 사랑에서 갖는 일부에 의존한다. 이런 학설은 프란체스코파의 학설들과 잘 부합하며, 우리가 윤리학의 마지막에서 재발견하는 학설이다. 스피노자가 옛 헤브류인들에 대해 말하면서 암시할 수 있었던 이들은 마이모니데스(Maimonides, 1135-1204) 또는 조아르(Zohar)의 어떤 주석가이다. 그들은 신을 보았는데, 그의 오성과 오성의 대상은 동일하다고 보았다(윤리학, II, 7, 부명제). 생각하는 주체와 생각된 대상이라는 사유의 동일성에 대한 플로티누스(Plotin, Πλωτῖνος, 205-270)의 주제인데, 이 주제는 이렇게 스피노자에게까지 이르렀다.
부유한 유대 상인 집안의 손자이자 아들인 그는 1654년에서 1656년에는 가계의 이끌었다. 그는 시 당국에 의해 유대인 공동체서 추방되어(사람들이 자주 말했듯이 신학자들에 의해 추방된 것이 아니다), 암스테르담을 떠나 레이드로 향했다. 조금 시간이 지난 후에 라 에(La Haye)에서 살았으며, 그는 렌즈 깎는 직업의 수입들로 살았으며, 그 수입들에 아마도 그가 자신의 상업 가계[상점]의 수입을 보탰을 것이다. 사실 이라면, 사람들이 지금 그를 믿듯이, 그는 출발에서부터 중재인들에 의해 상점을 운영했다. 공동체 추방에 앞서서부터 그는 자주 크리스트교 환경들을 자주 방문했고, 그는 거기서 자신을 세속 과학들로 입문시켜주는, 친구들과 계승자들과 같은, 스승들을 발견했다. 의사인 엔덴(Van den Enden, 1602-1674)은 그에게 물리학, 기하학, 데카르트의 철학을 가르쳐주었다. 이 의사는 17세기에 이탈리아와 르네상스의 독일에서 매우 널리 퍼져있던 신지학의 신봉자였는데, 그 신지학에 따르면 신 밖에는 아무 것도 현존하지 않는다. 엔덴을 통해서 스피노자는 브루노(Bruno, 1548-1600)를 알 수 있었다. 브루노는 그보다 한 세기 앞서, 실체의 통일성, 신과 자연의 통일성을 주장했고, 그는 스피노자의 윤리학에 거의 옮겨졌을 법한 이런 정식을 썼다. “제1원리는 그것의 모든 속성들 속에서 무한하며, 이 속성들 중의 하나가 너비이다” (140)
크리스트교 환경들에서 사람들은 우리가 이미 주목했던 두 가지의 특성들이 연대적이라는 것을 안다. 즉 독단[교리]이 거의 벗겨진 크리스트교와 완전한 관용의 정신이다. [전자에서] 요컨대 크리스트교는 사변적이라기보다 실천[실행]적이며, 신의 자연에 관해 사색하기보다 복음의 규범들에 따라서 살아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 예를 들면 메노주의자들(Mennonites)의 분파가 있다. 이 분파는 이미 한 세기를 현존하고 있었다. [후자에서] 전쟁에 참여하기를 금지하기와 더불어 모든 공적 기능에서 모든 폭력의 포기는 교회성직, 모든 교회성사, 심지어는 세례도 거부하기와 연결되어 있다. 더불어 크리스트의 신적 계보와 크리스트의 구원과 삼신성을 제외하고 모든 독단들[교리들]의 부정하기와도 연결되어 있다. 동료파들(les collégiants)에서 스피노자는 시몬 드 브리스(Simon de Vries, 1624–1708), 로테르담의 직물상인 브레덴부르크(Johannes Bredenburg, 1643–1691)과 같은 친구들을 발견했다. 동료파들은 도르트레이트 공의회(1619)가 성립된 이후에, 코드(les frères Van den Kodde, s.d., [3형제])형제들에 의해, 건전한 정신이 모든 경건한 인간에게 스스로 계시된다는, 그리고 경전을 해석하기 위한 신학자들의 필요 않는다는 보장에 근거하여, 정초되었다. 이 종파들은 충분히 관용적이기에 그들 가운데서 모든 공동체의 신봉자들을, 즉 카톨릭교도에서부터 소치니파들까지도 인정하였다.
실행하는 크리스트교는 교리적 신학과 독립적인 종교적 사색가들에게 자유로운 영역을 남겼다. 림보르흐(Philipp van Limborch, 1633–1712)는 그의 크리스트 종교의 진리에 대하여(De veritate religionis christianae, 1687)에서 영원한 구원에 관하여 자기 시대의 여러 견해들을 분류하기를 원하며, 세 그룹으로 나누었고, 크리스트교인의 그룹, 유대인의 그룹, 무신론자들(athées) 또는 이신론자들(déistes)이라 불리는 자들의 그룹이다. 그가 말하기를 “나는 이들을 통합했다. 왜냐하면 무신론 또는 이신론이란 단어들이 동일한 의미를 갖기 때문이 아니라, 매우자주 이신론은 무신론과 이제 막 다르기 시작했기 때문이고, 이신론자라고 말하는 자들은 일반적으로 내재적으로 무신론자들이기 때문이다. 이 양자들은 신을 인정하지 않지만, 적어도 그들은 신을 자연적이고 필연적인 작동자[동인]으로 변화시켰다. 이리하여 그들은 근본적으로 종교를 뒤집어 놓았다. 게다가 모든 계시 작용을 거부하면서 그들은 삶의 확실한 규칙을 갖지 않는다. 또는 만일 그들이 그것을 갖는다면, 그것은 자연에서 원리들을 연역하는 규칙 보다 더 완전한 규칙이 아니다.” 림보르흐는 자연주의에서 가시적인 악의와 구원에 관한 모든 사색작업들을 혼동하였다. 그 구원의 사색작업들은 교리의 신학과 독립적이며, 사람들은 구원의 사색작업으로부터 이어서 즉시 스피노자주의와 친화성을 느낀다. 동료파들(les collégiants)은 린스버그에서 일 년에 두 번 모였으며, 예수(Jésus) 선교의 초자연적인 성격, 성문 경전의 권위, 기적의 실재성 등을 토론하기에 어떠한 거리낌도 없었다. (142)
이런 자유로운 사색은 크리스트교 덕목들의 실천을 동방하고 있고 모든 고백으로부터 독립적이다. 자, 바로 이런 점에서, 스피노자는 자신의 정치론(Traité politique)(1675-1677)에서 공적인 권력들에게 모든 사람들에게 가능성을 보장할 것을 요구한다. 반면에 데까르트는 신학자들에게 영원한 구원을 다루는 것을 일임했으며, 군주들에게 공적인 업무들을 고려하기를 맡겼으며, 그리고 각자에게 자기의 구별된 영역을 요구했다. 이에 비해 스피노자는, 마치 각자의 환경 속에 있는 모든 사람들처럼, 철학, 종교, 정치라는 세 가지 문제들의 근본적 통일성을 주장했다. 그의 철학은 윤리학에서 사회이론을 포함하고 있으며, 철학적 인식에 의해 이론 구원의 이론에서 완성된다; 그의 신정론(Traité thélogico-politique, 1670)은 실증 종교들의 처방 방식들에 복종하기만큼만 나아가는 인간들에게 예약된 구원의 길들을 지적한다; 결국 그의 정치론(Traité politique)(1675-1677)은 각자에게 사유할 자유를 남겨놓은 국가의 조직화를 묘사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안다. 스피노자가 공적인 업무들에 현실적으로 참여하지 않았지만, 쟝 드 비트(Johan de Witt, fr. Jean de Witt, 1625-1672)의 열렬한 지지자였다. 비트의 정부는 이런 1672년까지, 즉 오렌지 당이 승리한 날까지 이런 관용을 보장했다. (142)
스피노자는 자기의 독립성을 양도할 수 있게 하는 모든 것을 조심스럽게 피했다. 그는 꽁데 공(le Grand Condé, 1621-1686)으로부터 존경을 받았는데, 꽁데 공은 1673년 네덜란드 원정 동안에 스피노자가 그를 방문해 달라고 초대했다. 스피노자는 연금과 프랑스 체류를 거절했다. 같은 해에 엘리자베스(Élisabeth de Bohême, princesse palatine, 1618-1680)의 오빠인 팔라틴의 선거 제후((Charles-Louis Ier du Palatinat, 1617-1648)는 그에게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교수 자리를, 그 교수직에서 그가 자기 철학을 자유롭게 가르칠 수 있도록, 제안했다. 그 또한 거절했다. 자신의 허약한 건강이 그의 활동을 각별하게 제한해야만 했다는 것을 덧붙여야 한다. 즉 폐병 때문이다. 이 질병의 발병으로, 많은 안정과 휴식을 필요로 했다. 그의 생애는 매우 잘 절제되고, 소박하고, 단순하였지만, 금욕자의 삶은 아니었고, 환자의 삶이었다. 환자에게는 건강이 매우 값진 것이다. 그는 1677년 마흔넷의 나이에 세상을 떴다.
스피노자는 자신의 철학에 대해 단번에 두 가지 보고서를 썼다. 그는 크리스트교 친구들을 위하여 소론을 작성했다. 그런데 우리에게 단지 홀란드어로 된 두 번역본만이 남아있다. 윤리학(Ethique)(기하학적 순서로 증명된 윤리학(Ethica, ordine geometrico demonstrata, 1677)의 작성은 여러 번 수정되었다. 1661년 올덴부르크(Oldenburg, 1619경-1677)과 드 브리스(de Vries, 1624–1708)에게 보낸 편지들은 현재 형태와 배치에서 다른 윤리학의 첫 부분의 개요를 보여준다. 그리고 1665년에 그는 당시에 세 부분만을 포함하는 이 저술을 거의 완성했다. 그러나 1670에서 1675년에 현재 저술의 마지막 세 부분을, 즉 정념들, 예속, 자유를, 생겨나게 하는 셋째 부분을 수정했다. 이런 두 저술들 이외에도 스피노자는 1662년에 앞서 방법에 관한 논저(미완성이지만), 즉 지성/오성 개성론(Tractatus de intellectus emendatione)을 썼다. 신정론(Tractatus theologicopoliticus: Traité thélogico-politique)은 1665년에서 1670년 사이에 작성했고, 1675년에서 1677년 사이에 정치론(Tractatus politicus: Traité politique)(미완성)을 작성했다. 이 긴 기간 이전에 1656에서 1663년 사이에 그는 젊은이의 용도에 맞게 데카르트 철학의 진술로서 데카르트의 철학원리들(Renati Descartes principia philosophiae, 1663)를 썼다. 이 책의 제2부인 「형이상학적 사유들(Cogitata metaphysica)」은 철학적으로 사용된 용어들을 동시대에 맞게 설명하고 있다. 스피노자는 그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단지 1663년에 데카르트의 철학원리들(1663)과 그 부록으로 「형이상학적 사유들」을, 그리고 1670년에신정론(1670)만을 출간 했다. 그러나 1677년부터 유고전집(Opera Postuma) 속에 윤리학, 오성 개선론, 정치론이 나왔으며, 또한 중요한 편지들이 불행하게도 수정되고 가필되어 나왔다. (143) (56WMJ)
2절 오성 개선 (la réforme de l'entendement) 143-
스피노자의 학설만큼이나 열정을 또한 분개를 자극했던 학설은 없다. 보다 달리 이해되었고 다양하게 판단되었던 학설도 많지 않다. 그의 동시대인들에게서 스피노자는 [신의] 섭리(Providence), 목적인들, 임의적 자유를 부정하는 자였다. 그리고 경전들의 권위에 대한 비판자이며, 개체들이 그 속에 잠겨져 있는 범신론의 저자였다. 자주 일어난 사건들처럼, 동시대인들은 체계의 긍정작업들에 의해서보다 부정작업들에 의해서 더 많이 충격을 받았다. 그럼에도 그 부정작업들은 긍정작업의 이면이었다. (143)
그의 학설 일체에서 파악해보면, 스피노자의 학설은 신의 인식에 의해 구원의 학설이다. 철학의 목표는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선(善)을 탐구하는 것이다. 그 선의 발견은 영원을 위하여 연속적이고 최고의 환희를 즐기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철학]은 데카르트와 베이컨 철학들의 계보에서 있는 것 같지 않다. 이 철학자들은 철학을 신앙에 유보하기 위하여, 인간의 마지막 목적의 문제를 따로 놓았다. 스피노자주의는 외적으로 우리가 긴 역사 전체에서 만나게 될 신플라톤주의 기원인 신지학들 중의 하나와 닮았다. (144)
스피노자의 초기의 진행방식은, 중세에 매우 많았던, 신의 사랑에 대한 이론가들의 진행방식이다. “이 모든 정념들(슬픔, 갈망, 걱정, 증오 등)은 우리들의 몫인데, 우리가 소멸하는 것들을 사랑할 때‥… 그러나 영원하며 무한한 것으로 가는 사랑은 영혼을 순수 환희로, 모든 슬픔이 제외 된 환희로 기른다.” (예수-크리스트의 모방(II, 7, 1)은 이렇게 말한다. “Qui adhaeret creaturae, cadet, cum labili; qui amplectitur Jesum firmabitur inaevum” 그리고 16세기에 레온 헤브류(Léon l'Hébreu, 1460경-1521)는 이런 최고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이런 용어로 설명했다. “만일 사랑이 신체적이고 물질적인 사물들 속에서도 또한 있다고 하더라도, 사랑은 단지 사물들에 속하지 않는다. 그러나 존재, 생명, 오성, 선함과 아름다움과 같은 다른 모든 완전성은 정신적 존재자들에 의존하고, 비물질적인 것들로부터 물질적인 것으로 내려간다. 이리하여 사랑은 우선 그리고 본질적으로 알수 있는 세계 속에 있으며, 이로부터 물체의 세계로 내려간다.” 오성 개선론의 도입부에서 제기되어 있는 실천적 문제는, 그의 철학의 나머지 전체를 끌어가는 윤리학의 마지막 명제들에서 만나게 되는 해결책의 문제이다. (144)
그럼에도 스피노자는 막연한 경험들의 분위기와는 아주 멀리 있다. 신앙심, 금욕주의 열정 등의 경험적 분위기는 전통적으로 신적 사랑의 이론과 연결되어 있었다. “사랑은 인식에 근거한다. 따라서 무엇보다 먼저 오성을 치유할 수단을, 그리고 오류 없이 또 가능한 한 가장 잘, 사물들을 성공적으로 인식한 방식으로 오성을 순화할 수단을, 생각해야 한다.” 오성의 권능을 증가시켜야만 한다. 스피노자의 출발점은 여기서 데카르트적 방법의 성찰이다. 즉 진리들에 대한 방법적 연쇄작업이 있다. 그 연쇄 작업은 명석 판명한 관념들에 의해 시작하고 또한 경계 없는 오성의 풍부성을 드러낸다. 이러한 연쇄작업에는 분리되고 조각난 인식들과 대립된다. 이런 인식들은 정신적인 어떠한 주도권도 없이 감관들과 상상작용에서 온다. 그가 신플라톤주의에 매우 반대되는 방식으로, 인간 정신은 감각적 사물들의 인식으로부터 지적 인식으로 마치 인식의 모델의 이미지처럼, 정도의 차이에 의해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적 인식 속에 단번에 자리를 차지해야만 한다고 생각할 때, 이런 의미에서 그는 데카르트주의자이다. 이러한 것이 오성 개선론의 진행의 의미이다. 이 책에서 그는 인식들을 다양한 분류들(diverses classes)로 따로 떼어 놓았는데, 이는 자기 목적에 맞게 이용할 수 있는 분류들만을 유지하기 위해서 이다. 가장 낮은 단계에서 듣고-말하기에 의한 인식(la connaissance par ouï-dire)이 있다. 그 인식을, 나는 태어나는 날부터, 일반적인 방식으로, 전통에 의해 나에게 도달한 모든 것으로부터 가졌다. 그 인식 위에 막연한 경험에 의한 인식(la connaissance par l’expérience vague)이 있다. 그 인식은 과거의 비슷한 경우들의 우발적인 접근으로부터 온다. 이리하여 예를 들면 나는 인간은 죽는다는 것을 안다. 그러고 나서 내가 결과에 의한 원인을 갖는 인식(la connaissance que j’ai de la cause par son effet)이다. 이리하여 감각작용의 사실로부터 나는 영혼과 신체의 통일을 연역한다. 이런 모든 인식들은 인식들 자체에서 끝나고, 스스로 무기력하게 병치된다. 그리고 이 인식들은 오성의 힘들을 증가하는데 이용할 수 없기 때문에 내던져진다. 아주 다른 인식이 있다. 결과가 원인에 의해 연역되는 인식(la connaissance par laquelle un effet est déduit d’une cause)이며, 이는 마치 도형의 정의로부터 나온 도형의 성질들과 같다. 또한 다른 인식이 있는데, 내가 몇 가지 명제들로부터 갖는 확실하고도 직관적인 인식(la connaissance intuitive et certaine)이다. 이것들이 바로 풍부한 인식들이다. 상인(le marchand)이 있는데, 주어진 세 가지 성질들에 비례하여 넷째 성질을 찾기 위하여, 사람들이 그에게 가르쳤던(ouï-dire) 규칙을 그는 적용한다. 또는 [다른 한편] 그는 단순한 경우들에서 조작에 성공하였기 때문에, 보다 복잡한 경우들에서 그가 발견했던(expérience vague) 절차를 이용한다. [그리고] 그는 발견할 많은 양에 관해서 수학자만큼이나 확실한 결과들에 이른다. 물론 수학자들은 규칙을 증명했으며(la connaissance de l’effet par la cause), 직관적으로 아는 자이며, 만일 1, 2, 3과 같이 단순한 자료들이 있다면 찾게 된 숫자가 6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상인은 더 이상 나가지 않는다. 반면에 데카르트는 이 비례들에 대한 성찰에서 고등한 정도의 방정식들을 해결하는 수단을 발견한다. (145)
스피노자에게 확실한 인식의 획득이 방법의 발견에 앞선다고 가르친 것은 또한 데카르트였다. 데카르트가 말하는 “잘못 행해질 수 없는” 자연적 힘에 의해서, 직관과 연역에 의해서, 오성은 자발적으로 새로운 인식들을 발견한다. 그리고 방법은, 이 결과들에 도달하게 허락했던 질서에 관한 반성 속에 원초적으로 있다. 오성개선론의 뒤따르는 주제 속에서 이어지는 것은 전반적으로 이러한 발전들의 본질적인 것이다. 마치 공예가가, 보다 완전하게 철을 벼리기 위해 모루를 사용하기에 앞서서, 처음에는 자연적 도구들로 철을 두드렸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성은 도구들을 벼리기 위하여 타고난 자신의 권능을 이용하고, 그 도구들을 가지고 자기의 탐구를 밀고 나간다. 방법이 탐구와 효과적인 지적 조작작업을 앞서지 않는다. 방법은 이것들을 뒤따른다. 방법은 지식의 지식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것들을 아는 지식에 앞서서 관념들에 의해서 사물들을 안다. 원의 관념은 중심과 원주를 갖는 한 사물의 인식이다. 그러나 이런 관념 자체는 중심도 원주도 없다. 그리고 관념은 원 자체의 완전히 판명한 것(chose)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원의 관념을 인식함이 없이도 원을 인식할 수 있다. 방법은 자기 차례가 되어서 관념의 관념일 뿐이다. 말하자면 진실한 관념에 대한 반성이며, 이런 한에서 이 관념은 다른 인식들을 획득하기 위한 도구 또는 규칙이다. 거기에 사물들 자체로 가는 새로운 정신을 옛 철학으로부터 구별하는 모든 것이 있고, 그 옛 철학은 개념의 분석들에, 그리고 견해들에 근거하는 영속적인 변증법에 멈추었다. (146)
데카르트의 규칙들의 방법은 의심을 통해서 성찰들로 완성되었다. 방법은, 질서의 규칙에 의하여 어떻게 확실함들이 새로운 인식들을 생겨나게 할 수 있는 지를 증명하기 위하여, 정신의 자연적인 확실함들에서 출발한다. 의심은 확실함이 아닌 모든 것 배제하는 안전한 수단이다. 의심은 수단으로, 방법적 의심의 장치를 넘어서, 코기토(Cogito, 나는 생각한다)를 그리고 신에 의한 확실성의 보증을 사용한다. 데카르트에 의하면 그의 작품 둘째 부분은, 오성이 명석 판명하게 지각하는 것에 동의하는 의지를 준비하기 위하여, 필수불가결하다. [그런데] 스피노자는 여기서 데카르트를 포기한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진실한 관념은 확실성을 그 자체에서 갖는다. 확실성은 “사물의 객관적 본질”일 뿐이며, 말하자면 그것이 오성 속에서 재현되는 것과 같은 사물일 뿐이다. 따라서 진실한 관념들을 소유하는 정신은 이것들을 진실로 아는 데 부족할 수 없다. 진실로 어떠한 진지한 의심으로는 이것들[진실한 관념들]에 도달할 수 없다. 그리고 어떠한 보증도 그것들에 필연적이지 안다. 허위 관념들과 진실한 관념을 혼동하는 것을 회피하기 위하여, 허구적인 관념(idea ficta), 거짓 관념, 의심스런 관념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으로 충분하다. (146)
진실한 관념과 다른 관념들 사이에 이런 구별은 스피노자주의의 토대이며, 이는 마치 진실한 것들과 변질하지 않는 자연의 학설이 데카르트의 학설인 것과 같다. 만일 사람들이 정신에 의해 [관념들이] 담금질된다고 의심할 수 있다면, 신의, 실체의, 너비의 관념들과 같음 관념들은, 즉 윤리학의 전체는 무너질 것이다. 스피노자가 다음의 선(線)들 상에서 예견했던 난점이 있다. “사람들은 아마도 다음처럼 생각할 것이다. 사물의 관념을 벼린[주조한] 후에 그리고, 관념이 자연 속에 잘 현존하다고 의지적으로 자유롭게 주장한 후에, 이어서 우리는 관념이 달리 있다고 생각할 수 없다는 [앞의 추론으로부터] 결론에 이른다.” 스피노자는 정신의 이런 “부조리(absurdité)”에 멈추지 않는데, 이때 이 정신은 자기-자신을 기만하는 것이고 또한 “자기의 고유한 자유를 구속하는 것이리라.” 그러면 이런 신뢰가 어디에서 오는가? 허구적 관념은 무엇보다 먼저 그것의 비결정성[비규정성]에서 재인식된다. 우리는 의지에 따라 허구적 관념의 대상을 마치 현존하는 것 또는 현존하지 않는 것처럼 상상할 수 있다. 우리는 임의적으로 우리가 자연을 잘 못 인식한 존재에게 이런저런 술어를 부여할 수 있고, 예를 들어 영혼의 사각형이라고 상상할 수 있다. 허구의 관념은 대안을 허락하는 관념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한 존재의 진실한 관념을 갖는다면, 이 비규정성은 사라진다. 자연의 전 과정을 인식했을 수 있는 자에게서, 한 존재의 현존은, 필연성이든지 또는 부가능성이든지 간에 있어야 할 것이고, 그 자는 영혼이라는 것이 사각형인체 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147)
거짓 관념도 마찬가지 종류의 것이다. 거짓 관념은 주어에게 그것의 자연[본성]으로부터 연역되지 않는 술어를 부여한다. 왜냐하면 정신은 이런 자연을 판명하지 않고 혼동된 방식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의심은 이런 오류로부터 생겨난다. 데카르트의 과장된(hyperbolique, 쌍곡선의) 유명한 의심이 가능한 경우는, 예를 들어, 사람들이 속이는 신의 가능한 현존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진실한 관념은 전적으로 규정된 관념이며, 사람들이 그 관념의 대상에 대해 긍정하거 또는 부정할 수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이유(la raison)를 포함하는 관념이다. 예를 들어 잘 조정된 메카니즘의 관념은, 한 노동자가 분명하게 그것의 부분들의 연결을 생각할 때 이 메카니즘이 실현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그 노동자의 정신에서는 진실한 관념이다. 그것은 외적인 실재성과 상응하지 않는다. 그것은 진실의 형식을 구성하는 “내속적인 특성”이다. (147)
스피노자는 이쯤에서 권능(잠재성)을 생각한다. 오성은 그 자체에 의해서 수학적 과학들 속에서 진실한 관념들을 형성할 권능을 갖는다. 스피노자는 단순한 관념들로부터 출발한다. 이 관념들은 진실일 수 있을 뿐인데, 왜냐하면 이 관념들은 단순하기에 완전히 결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너비, 양, 운동과 같은 것들이다. [다음으로] 그는 단순한 관념들을 연결해서 복잡한 관념들을 형성한다. 그러한 것으로는 공(球, 구)공이 있다. 구는 직경의 주위에서 반원의 회전으로 생겨난다. 많은 관념들이 있는데 그 관념들의 각각은, 정신이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공리들을 결코 통과하지 않게 하면서도, 복잡하게 규정된 본질이다. (148)
그러나 오성의 권능은 수학의 권능에 제한되지 않는가? 거기서 바로 거기에서만이 영혼은 “정신적 자동인형”이지 않는가? 그 정신적 자동인형은 오성의 법칙에 따라 작용하는데, 반면에 자연의 인식 속에서 영혼은 “환자(un patient, 참는 자)의 조건 속에 있으며” 감관들에 복종되며 또한 “상상이 생겨나는 조작들, 그리고 오성의 법칙들와 전혀 다른 법칙들에 따라서 생산되는 조작들”에 복종된다. 한마디로 오성에 의한 자연의 인식이 있는가? 문제를 미래에 해결하도록 허락할 것은 문제의 조건들에서 방법적 분석이다. 자연의 인식이 오성에 속할 수 있을 경우란, 만일 자연의 모든 결과들의 보편적 원인이라는 실재적 본질을 표상할 수 있는 경우이며, 이는 마치 원의 본질이 원의 성질들의 원인이라는 방식에서와 같다. 우리의 정신이 가능한 만큼 완전하게 자연을 재생산할 수 있다고 할지라도, 이러한 본질의 관념으로부터 객관적으로 오성 속에서 모든 다른 사물들의 관념이 흘러나올 것이다. 자연에 대한 가지성의 주제는 그의 원리의 연역법에 의하여, 마치 처음에 비슷하게 보일 수 있었던고 하더라도, 철학에서 신플라톤주의의 새로운 침입이 아니다. 사실상 신플라톤주의의 설명은 일자(l’Un) 또는 제1자(Premier)로부터 감각적 세계까지 하강하는 위계질서에 의해서, 지속의, 생성의, 소멸의 세계로 간다. 수학적 가지성의 조건들을 모르는 거짓 가지성(알 수 있는 가능성), 거기에서 영원한 진리들로부터 사람들은 영원한 진리들만을 연역할 수 있다.오성이 원리의 객관적 본질로 연역한 자연(la nature)은 “변화에 복종하는 단일한 사물들일 연쇄일 수 없고, 오직 고정되고 영원한 사물들의 연쇄(la suite des choses fixes et éternelles, seriem rerum fixarum oeternarumque)일 뿐이다.” 고정되고 영원한 사물들이란 무엇인가? 그것을 이해하기 위하여, 데카르트의 물리학을 생각해보자. 그의 물리학은 자연의 밑바탕에 고정되고 영원한 본질들을, 즉 너비, 운동보존, 충돌법칙과 같은 것을 놓았다. 스피노자에게서 “고정되고 영원한 사물들”은 법칙들의 일체이다. 마치 자연의 영속적 구조처럼 형성하는 법칙들이며, “법칙들에 따라서 단일한 모든 사물들이 정돈되기에 이른다” 따라서 이런 고정 사물들(rex fixae), 즉 그 사물들은 또한 개별적인 본질들이며, 잘 정의 되고, 잘 규정된 진리들이다(마치 수학들에서, 직선 또는 원의 본질은 규정된 본질이듯이). 비록 자연 전체 속에서 제시된, 고정 사물들은 보편자들의 역할 한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149)
방법적 규칙은, 마치 유출설의 형이상학이 그렇게 바랐던 대로, 스피노자에게 감각적 세계를 연역할 것을 금지하였을 뿐만 아니라, 스피노자는 고정 사물들로부터 일체를 연역하는 것을 더 이상 주장(플로티노스의 방식에 따라, 일자로부터 알 수 있는 세계를 파생하게 한다)하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동시에 모든 것을 생각하는 것으로부터, 그러한 것은 인간 오성의 힘들을 더욱더 넘어선다.” 마치 수학에서 사람들은 연쇄 고리가 끝도 없이 게다가 고리가 하나의 전체를 형성하지도 않고서, 진리들을 서로 서로 연역하듯이, 스피노자는 고정 사물들의 가각에서 단지 연쇄의 고리만을, 또는 진행의 찰나만을 보며, 전체의 부분을 보지 못한다. 그러나 마치 수학들에서 또한 스피노자의 연역은 우연(le hasard)히 가는 것이 아니라, 그의 출발점이었던 문제의 해결로 방향을 잡는다. 즉 인간 자연의 문제, 그 자연의 권능의 문제, 그 자연과 신과의 통합의 문제의 해결로 방향을 잡는다. (149) (57LKA)
3절. 신 Dieu 149 - [Ethique, I에 대한 설명]
이리하여 윤리학의 철학의 윤곽은 오성 개선론에서 전개되었던 방법적 요청들로부터 생겨날 것이다. 우선 제1원리의 이론 즉 신의 이론이다. 모든 것은 그것에 의존한다. 그러고 나서 인간적 자연의 지위의 규정작업인데,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신적 자연으로부터 연역되었던 고정되고 영원한 사물(res fixae et oeternae) 속에서 우리 자신이라는 단일한 본질의 규정작업이다. 스피노자는 윤리학의 내부 계획에 정확하게 지적한다. “제1부에서 사람들은 신을 고려해서 모든 사물들의 의존을 일반적인 방식으로(d’une façon générale)지시한다. 제5부에서 사람들은 동일한 사물(la même chose)을 지시하나, 그러나 정신의 본질을 고찰함으로써 지시한다(V. 명제 35, 부명제).” 수학적 틀, 보다 정확하게 정의들, 공리들, 명제들을 가지고 있고 또한 스피노자에 의해 채택되었던 유클리드 기하학의 틀은, - 마치 「반대들에 응답들」에서 그 틀의 모델을 제공한 데카르트에게서 스피노자가 채택한 것처럼 - 발명의 절차가 아니라 일단 발견된 진리의 전시작업의 절차일 뿐이다. 그것의 증거를 1661년에 올덴부르크(1619경-1677)에게 보낸 편지와 윤리학의 결정적 재작성과 비교에서 찾을 수 있다. 사람들은 재작성의 윤리학에서 명제로 변화되는 공리를, 변경된 정의들의 순서를, 소개된 새로운 정의들을 본다. 이런 종합적 진술은, “이법들의 질서”가 아니라 “물질들의 질서”에 따라서 우리가 전통적 형이상학의 앞에 있다는 것을, 암시할 수 있고 또한 믿게 할 수 있다. 오성 개선론의 독서는 이미 우리에게 잘못을 깨닫게 함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그 독서는 신이란 용어의 발견 속에서, 방법의 요청의 결과를 알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독서는 스피노자 사유가 근본적으로 분석적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예고하게 하며, 그리고 독서는 점점 더 깊은 방법으로 자연과 인간이 오성에 의해 파악될 수 있는 조건들을 찾는다. (150)
오성의 중요한 특성들 중의 하나는 “그것이 부정적인 관념들이기에 앞서 긍정적인 관념들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유한한 관념은 부정적 관념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사물 전체를 자기 류에서 유한하다고 부르는데, 그 사물 전체는 다른 사물에 의해 동일한 자연으로 끝날 수 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말하기를] 물체는 유한하다고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여전히 더 큰 것을 생각하기 때문이다(E, I, 정의 1).” 그리고 일반적으로 “모든 규정작업은 부정적이다.” 특히 긍정적 관념이란, 신의 관념이며, “절대적으로 무한한 존재이며, 다시 말하자면 무한한 속성들을 [천부적으로] 부여받은 실체이다. 속성들의 각각은 영원하고 무한한 본질을 표현한다.” 긍정적이다, 왜냐하면 관념은 실체이며, 다시말하면 “자체로 있는것이며 그리고 자기의에 의해 생각하는 것이며, 그것의 개념은 다른 사물의 개념을 필요호 하지 않는 것[무엇]이며, 개념이 그것으로부터 형성되어야 할 것[사물]이다.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가 아니고, 오성이 도달할 수 없었을 사물들의 감춰진 바탕이며, 고유함들과 우발적 사고들 파악하는데 만족하는 바탕이다. 데카르트는 사람들이 자신의 중요한 속성 덕분에 명석 판명하게 실체의 본질을, 예를 들어 너비에 의한 물체의 본질을, 인식한다고 가르쳤다. 스피노자는 데카르트의 뒤를 따라서, 그것[실체]의 속성을 오성이 실체의 본질을 구성하듯이 실체로부터 지각하는 것[사물]이라고 정의한다. (150)
거꾸로 데카르트는 실체의 관념의 긍정성을 두 번 부정했다. 우선 마치 너비와 사유처럼 - 이 둘의 각각은 각자에 의해 생각되는 속성들이며 - 두 속성들 사이에 실재적 구별은, 우리에게 두 개의 구별된 실체들, 즉 영혼과 신체라고 결론짓도록 강요했다. 실체를 속성에 제한하는 것, 그것은 실체의 실재성을 제한하는 것이다. 따라서 신, 즉 절대적으로 무한한 존재는 무한한 속성들을 가질 것이고, 그것들의 각각은 자기의 무한성을 표현한다. 두 가지 무한으로서 너비와 사유는 신의 속성들 중의 두 가지이다. 데카르트는 사유하는 실체와 너비있는 실체는 자체적으로 현존하지 않으나, 신적 실체에 의해 생산되어야 한다고 또한 믿었다. 진실로, “신은 현존하는 실체의 자연에 속한다.” 왜냐하면 자기에 의해 생각된 존재, 그것은 현존하기 위하여 자기 다른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151)
“너비는 신의 한 속성이다.” 자, 이것이 주제들 중의 하나이다. 이 주제들은 스피노자의 동시대인들에게 가장 충격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것은 물체적 신을 만드는 것이 아니었던가? 그리고 신에게 분할가능성과 수동성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스피노자의 단언은 오직 데카르트의 물리학 덕분에만, 그리고 그 물리학이 오성의 대상으로서 너비와 상상작용의 대상으로서 너비 사이에서 행한 구별작업 덕분에만 이해할 수 있다. 물체들로 분할된 부분들로 조성된 것은 상상된 너비이며, 너비는 그 부분들의 유한한 합계이다. 그러나 오성에게서 너비는 무한하며 분할불가능하다. “물체들은 너비로부터 조성하는 부분들이 전혀 아니며, 오히려 제한작용들(les limitations)이다. 신체들 사이에 구별은 실재적인 구별이 아니라, 오히려 양상적 구별이다.” 사람들은 “실체의 감화작용들을, 말하자면 다른 사물로 있는 무엇을, 이 사물에 의해 생각되는 무엇을” 양태들이라 부른다. 물체들[신체들]이 물리학자의 눈에는 너비의 양태들이며, 이 너비를 통하여 사람들은 물체를 생각한다. 그러나 물체들에 의해 생각되어야만 할 너비의 부분들이 아니다. 스피노자의 주제는, 왜냐하면너비가 알 수 있는 가능성의 원리이기 때문에, 그 경우에만 가능하다. (151)
우리는 이 때문에 더 잘 이해할 것이다. 스피노자에 의하면 유일하고 보편적 실체로 알 수 있는 가능성은 하나인 전체(c’est tout un)이다. 이 경우에, 실체와 그의 속성들의 연관은 주어와 술어의 단순한 연관이 아니라 조건에서, 오히려 분가분의 실체가 각 속성 속에서 양태들의 현존을 고려하는 이유(la raison, 근거)이라는 조건에서 이다. 모든 속성들 속에는 이것들의 본질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토대가 있다. 그것은 그 자체들로 있는 양태들을 이유[근거]있게 하는 역량(la capacité)이다. 그런데 이런 알 수 있는 가능성(가지성)은 속성의 자연에 의존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가지성은 질서이기 때문이다. 그 질서에 따르면 속성들의 각각에서 양태들이 서로 서로 흘러나오고, 그 각각은 속성들의 구별에도 불구하고 동일할 수 있다. 데카르트의 기하학은 어떻게 관념들 사이의 한 질서가 너비의 감화작용들 사이의 질서와 동일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허락 해준다. 왜냐하면 곡선의 성질들은 곡선의 방정식에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마치 곡선의 성질들은 그것의 자연[본성]과 실질적으로 의존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비록 곡선과 그것의 방정식이 유일하고 동일한 존재로서 간주할 수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유일하고 동일한 질서인 한에서 이것들의 존재를 구성하는 것이다. 따라서 실체의 단위는 보편적 가지성을 의미한다. 이는 실체가 주어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무엇보다 각 속성으로 펼쳐지는 유일한 질서의 뿌리라는 조건에 이다. “관념들의 질서와 연결은 사물들의 질서와 연결과 동일한 것이다(II, 명제 7).
크리스트교의 독단론이 우리에게 창조적 신에 대해 말하는 모든 것, - 그 신은 자유 의지에 의해 사물들을 생산할 것을 스스로 해결하면서, 그리고 자기 의지를 선의 최종원인에 복종시키는데, - 그러한 모든 것은 우화(un fable)이다.이 우화 속에는 인간변형주의가 이방종교가들의 신들에게서 만큼이나 또한 명백하다(flagrant). 신은 원이이다, 이것은 진실이다. 그러나 원인은 이유(la raison, 근거)이다(causa sive ratio). 이 이유가 우리에게 결과를 이해하게 해 준다. 이런 의미에서 신은 효과적 원인이며, 본질들의 원인이며, 현존들 만큼이 많은 전체이며, 자기 원인 또는 절대적으로 제1원인이며, 자연의 법칙들에 따라서 작용하는 원인 또는 동일한 사물이 무엇이며, 자유 원인이다. 말하자면 원인 그 자체에 의해서만 효과일 뿐이다. 또한 내재적 원인이며, 다시 말하면, 그것의 행동은 자기의 외부 존재로 이행하지 않는다. 따라서 신은 철학자들이 자연이 부른 것과 다르지 않다. 신 즉 자연(Deus sive nature)이다. (152) (57LKB)
4절. 인간적 자연 La nature humaine 152. - [Ethique, II, 인간에 대한 설명]
방법의 셋째 요청은, 정신이 무용한 노력들을 소진하지 않는 방식으로, 사물들을 정돈하는(ordonner, 질서지우다) 것이다.말하자면 연역법을, 인식이 우리가 잘하는 방식(notre bien, 우리의 선)에 도달하는데 쓰이도록 하는 사물들만을 향하여 인도하는 것이다. 이런 인간적 자연의 인식[지성의 인식]이다. 그리고 둘째 부분에서부터는, 윤리학이 인간적 자연에 사용되며, 이는 인간적 자연이 신의 자연과 속성들로부터 연역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우선 무한한 세계의 용어를, 다음으로 유한한 세계의 용어를 도입해야만 한다. (152)
신의 무한한 속성들로부터 우리는 두 가지만을, 즉 너비와 사유를 인식한다. 각각은 단순하고, 무한하며, 영원하다. 그런데 인간의 자연은, 영혼과 신체로서, 우리를 지속, 변화, 다양성, 탄생과 소멸 속에다가 위치시킨다. 어떻게 변화가 너비를 태어나게 할 수 있었는가? 사람들은 이 문제가 플라톤주의로부터 파생되는 모든 철학들의 선택이었다는 것을 안다. 어떻게 그 문제가 스피노자 속에 변형되는지를 알아보자. 사람들은 데카르트에게서 운동 덕분에 너비의 용어가 물리학을 태어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운동만이 물체를 서로 서로 구별하게 하고, 물체들은 너비인 한에서는 구별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이 운동의 양이 일정하고 또한 운동의 소통 또는 분배(이것만이 물체를 구별하게 하는데)의 법칙들은 영원한 진리이라는 것을 또한 안다. 이러한 운동의 일정양은 스피노자에 따르면, 너비 속성의 양태 또는 감화작용이며, 마치 속성 자체처럼 영원한 양태이며, 그리고 “무한한 양태”인데, 왜냐하면 그것은 “그것의 일체에서 파악된 우주의 국면”(facies totius unversi)에서 변질할 수 없는 것을 지칭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연적으로 사유 속성 안에는 “객관적으로” 자연의 변질하지 않는 전체 질서를 포함하는 전 우주의 국면(la facies totius unversi)인 한 양태가 있다. 이 무한한 양태, 이것이 바로 “무한한 예지(intellect)”이며 또는 “객관적으로” 신의 관념과 함께, 신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속성들의 무한성과 양태들의 무한성을 포함하는 신적 예지이다. 이 무한 양태들은 마치 변질하지 않는 동일한 질서의 표현(expression)과 같으며, 그 표현은 각 속성에서 다른 국면을 취한다. 따라서 양태들은 마치 “절대적으로 다가오는 원인”과 같은 신을 갖는다. 그것은 우리에게 신과 그의 속성들인 생산하는 자연(natura naturans)으로부터, 양태들 속에 있는 생산된 자연((natura naturata)로 이행하게 한다. 그러나 이 양태들은 우리를 영원한 것과 무한한 것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지 못한다.
만일 우리가 이제 너비의 유한한 양태, 즉 물체를 고려한다면, - 이 물체가 너비의 덩어리 일 뿐이며, 그것의 부분들은 이러한 연관속에 있는 운동들로부터 생기를 얻는 것도 그리고 한부분에서 다른 부분으로 이러한 비례 속에서 소통되는 것도, 일체가 어떤 지속이 일어나는 동안에 계속 고집하는 것과 같은데, - 우리는 물체를 속성의 영원한 본질에 결부시키는 유한한 양태 속에서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다. 이 물체의 현존은 다른 물체들속에서 다른 유한한 양태들로서 자기 이유[근거]를 찾는다. [그 때에] 다른 물체들은 이 물체와 운동을 소통했었고, 그리고 이것들의 원인성에 의해 그 물체를 현실적으로 있는 것[무엇]을 만든다. 이 다른 유한한 양태들은, 이들의 차례가 되어, [또] 다른 유한한 양태들로서 자기들의 이유를 갖고, 이렇게 무한히 계속된다. 너비의 양태들이 진실인 것은 마찬가지로 사유의 양태들 또는 관념들에도 진실이다. 왜냐하면 속성들의 상호소통에 따라서, 사유 속에서 대상들의 질서는 너비 속에서 실재성들의 질서를 재생산하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다음에 이른다: 유한 양태는 무한한 양태와 속성의 현존과는 아주 다른 현존하는 방식을 갖는다. 무한 양태와 속성은 영원성 또는 존재의 무한한 향유(joussance infini de l’être, infinita essendi fruitio)를 소유하며, 이 향유에서 본질은 현존과 뒤섞인다. 반대로 유한한 양태는 자기 본질 속에서 파악되어서 단지 가능하며, 만일 다른 양태가 그 양태를 생산한다면 현존하기 시작하여, 다른 양태가 그것을 배척하자마자 현존하기를 끝낸다. 따라서 지속 속에서 현존은, 분질로부터 구별인 한에서 현존이며, 그 현존은 자기 바깥에서 자기 존재의 원인성을 갖는 유한한 존재에게 오로지 속한다. 따라서 유한한 양태는, 외적 원인성과 지속과 더불어, 부족(une déficience)에 의해서 오로지 스스로를 특징 짓는다. 그리고 이러한 것처럼, 유한 양태는 신의 속성의 자연으로부터 무매개적으로 연역될 수 없으며, [그럼에도] 신의 속성의 귀결들은 신의 속성 자체처럼 영원하다. 신이 바로 그것[속성 또는 양태]의 원인이며, 왜냐하면 그것의[en, 귀결들] 원인인 유한한 양태는 어떤 방식으로 변모된 신 자체이지만, 그러나 멀어진 원인(causa éloignée, causa remonta)이기 때문이다. (154)
이리하여 사람들은 인간적 자연과 그것의 특성들을 생각한다. 인간은 신체와 영혼으로 만들어졌다. 말하자면 신체의 관념으로 이루어진 너비의 현실적 양태와 사유의 현실적 양태로 만들어졌다. 스피노자는, 보편적 메카니즘 가운데서 한 신체의 불가분성이 무엇이 될 수 있는지를 생각하기에 힘썼다. 그것은 한 기계의 불가분성이며, 그것의 차이나는 부분들은 외적 원인들에 의해 배치되어있으며, 그 만큼이나 부분들은 항구적인 질서에 따라서 운동을 서로 소통한다. 불가분자[개체] 그 자체는 다른 개체들로 형성된다. 그리고 인간 신체는 이리하여 다른 기계들로 이루어진 매우 복잡한 기계이다. 신체적 기계에는 사유 속성 속에서 관념이 상응한다. 이 관념은 대상으로 작동 중인 개체만을 갖는다. 신체와 더불어 시작하고 끝나는 것이 영혼이며, 그리고 이 영혼은 사유의 다른 유한한 양태들에서 자기 바깥에서 자기원인을 갖는다. 사유의 유한한 양태들은 신체의 원인이라는 너비의 양태들에 상응한다. (154)
영혼의 모든 성질들은 이러한 정의, 즉 영혼은 신체의 관념이다라는 정의로부터 연역된다. 스피노자에게서 관념(l’idée)은 마치 영혼의 외부에서 판단의 동의를 기다리는 “화폭 위에 그려진 벙어리 이미지”처럼 있는 것이 아니다. 관념, 즉 신적 속성의 양태는 양태 그자체로 자기 대상의 현존에 긍정적이다. 그리고 관념은 이 현존이 다른 관념의 현존에 의해 배제되지 않는 한 스스로를 주장한다. 사람들이 설명해야할 것은 긍정작업이 아니라 오히려 부정작업 이다. 관념은 부정적인 것을 배제하는 점에서, 긍정적인 것이 있다는 것에 의해 설명된다. 따라서 신체의 관념은 신체의 반사[반영]이 아니라, 바로 사유 속에서 그것의 현존의 긍정과 주장이다. 게다가 이런 관념은 신체 그 자체가 조성[구성]되는 만큼 조성되어 있다. 영혼의 불가분성[개체성]은, 영혼이 이해하는 다양한 지각작용과 더불어 신체의 불가분성과 다른 자연이 아니다. (155)
그러나 영혼이 유한한 양태이라는 사실로부터, 영혼이 그자체로부터 갖는 관념, 영혼이 신체로부터 갖는 관념, 영혼이 외적 물체로부터 갖는 관념은 부적합한(inadéquates) 관념들이라는 결과에 이른다. 하나의 관념이 적합하다(adéquate)는 것은, 관념의 대상과 동시에 사람들이 이 관념의 원인 또는 이유(raison)를 인식할 때이다. 한 관념이 반대의 경우에는 부적합하다. 그런데 유한한 양태의 관념, 이 양태에 제한된 관념은 필연적으로 부적합하다. 왜냐하면 본질에 의해서 유한한 양태는 그 자체 바깥에서 자기 원인을 갖는 양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혼이 자기자체로부터 갖는 관념은 부적합하다. 왜냐하면 사유의 유한한 양태로서 영혼은 다른 유한한 양태 속에 자기의 원인을 갖기 때문이다. 영혼이 신체로부터 갖는 인식은 부적합하다. 왜냐하면 이 신체의 현존과 구성은 이것을 벗어나 있는 외적 신체들의 영향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결국 영혼은, 신체들이 영혼의 고유한 신체에 인상을 만들어주는 한에서, 외적 물체들을 인식한다. 그리고 외적 지각작용은 이렇게 외적 물체들의 자연 보다 더 많이 우리 신체의 자연에 의존한다. 게다가 이런 귀결에 이른다: 만일 어떠한 이유 때문에 외적 인상이 없을 경우에, 우리 신체가 마치 그것이 이런 인상으로부터 당시에 배치되었던 것처럼 새로이 배치되기에 이른다면, 우리는 마치 그것이 현재 배치되었던 것처럼 외적 물체를 지각한다. 이로부터 기억 또는 상상작용이 나온다. 이런 이유로 기억의 이미지는 마치 지각작용과 아주 마찬가지로, 그것의[기억의] 대상의 현실적 현존을 함축한다. 이 기억의 대상은, 기억이 다른 관념들에 의해 배제될 경우에만 부인될 수 있다. (155)
따라서 인간은 자신이 완전히 모르는 자연의 과정에 의존한다. 인간은 자기의 자연 자체에 의해 자기 자신에게 인식불가능성이다. 스피노자에게서 유한한 존재, 이것은 지속 속에 현존하는 것과 동시에 인식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우리의 현존을 설명하는 유한한 양태들을 탐구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헛된 기획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유한 양태들] 그 자체가 인식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것이 우리가 인간 자연에 대해 갖는 첫째 용어[개념]이다. (155)
그런데, 영혼 그자체로 이해 불가능하기도 하고, 또한 일체를 묶을 수 없을 정도로 분리되고 떨어져 나온 조각인, 이런 제한된 영혼에서, 스피노자는 이법이 태어나야만 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의 증명과정을 잘 이해하기 위하여, 스피노자가 형식적으로 배제한 인식불가능성의 두 용어가 정신에 현재해야(présentes)만 한다. 첫째는 인식 가능한 세계에 대한, 마치 일종의 감각적 세계의 이상적 이전(transposition)과 같은, 신플라톤주의의 용어이다. 둘째는 보편자들의 용어이며, 이 보편자들이란 오성이, 감각적 세계로부터 출발하여 추상작업의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도달한 인식 가능한 세계의 지워져버린 여러 종류의 이미지들이다. 이런 두 종류의 인식가능성은 결국에는 감각적 세계와 이것들의 연관 속에서 서로서로 생각될 수 있는데, 하나는 인식가능성의 원본(modèle)로서, 다른 하나는 인식가능성의 추출(extrait, 추상)로서 이다. 그런데 스피노자는, 자연의 과정에서 영혼은 단지 절단되고 혼동된 관념들만을 소유한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생각했다. 데카르트 자신은, 다른 모든 관념들과는 분리되어 있으면서 그것들의 인식불가능성을 그것들 자체 안에서 운반하는, 절대적 관념들 속에서 아주 다른 인식불가능의 전형을 인식하게 하였다. 그러한 인식불가능성으로 너비의 관념과 사유의 관념이라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스피노자는 인간적 자연으로부터 절대적 관념들의 영혼 속에서 현전(la présence)을 연역했다. 데카르트에게서 이 절대관념들을 특성화하는 것, 그것은 이 관념들이 있는 그대로 매우 제한된 존재에서는 전적으로 현재일 수 있다는 것이다. 형이상학적 성찰들에 따르면 사유는 정념 또는 고통 속에서, 또한 지적인 개념작업에서 고려될 수 있으며, 사유는 전적으로 이것의 표출들 중의 각각의 표출에 있다. 마치 너비의 전체적 자연이 너비의 할당량들의 각 할당 속에 발견된다는 것과 마찬가지 이다. 그런데 전체 속에서와 동시에 부분 속에 발견된다는 것으로부터, 우리는 스피노자가 증명하듯이, 하나의 적합한 관념을 필연적으로 증명했다. 우리는 필연적으로 너비의 속성과 사유의 속성의 적합한 관념들을 가질 것이고, 따라서 마찬가지로 우리는, 관념이 절단되고 혼동되었다고 할지라도, 너비의 양태로부터 또는 사유의 양태로부터 하나의 관념을 갖는다. [게다가] 우리는 신에 대한 적합한 관념을 갖는다. 그 신의 자연은 양태들의 각각에서 전적으로 현재이다. 적합한 관념들은 공통 용어들(notions communes)이다. 왜냐하면 이 적합한 관념들은 개체 전체 속에 동등하게 함축되어 있기 때문이며, 이것들의 일체는 이법(la raison)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는 마치 합리적 존재같은 인간의 용어[개념]에 도달한다. (156)
따라서 인간에게는 인식하는데 여러 방식이 있다. 인식의 첫째 종류는 인간이 자연의 일상적 과정에 의해서 갖는 부적합한 관념들로 이루어져 있다. 부적합한 관념들로 이루어진 인식에는 감관들의 지각작용도 있고, 단순한 계속에 의해 그 자체들 사이에 연결되는 이미지들도 있다. 둘째 종류 또는 둘째 이유(raison)는 공통 용어들로 그리고 사람들이 그것으로 연역하는 모든 것으로 이루어졌다. 이런 인식에는 이 인식의 대상이 지속에서 추출된것이고, 사물들을 “영원성의 어떤 형식 하에서” 파악하게 한다. 마지막으로 윤리학의 나머지 전체가, 어떻게 인간의 자연 속에서 인식의 셋째 종류가 태어나는지를 제시할 것이다. 이 셋째 속에서 영혼은 자기 자체에게 인식가능하게 된다. (157)
인간 자연에 대한 이런 개념작업은 데카르트의 개념작업과 딱 잘라 구별된다. 스피노자는, 어떻게 인가니 자기의 자연 덕분에, 때로는 오류에 굴복하고 때로는 진리에 도달하는지를 증명한다. 데카르트는 인간에게서 오류를 회피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가정하며, 오성의 명석 판명한 관념들에게 동의를 한다. 데카르트의 오류 이론의 뿌리는 관념에 대한 그것[오성]의 거짓 개념작업이다. 관념을 단순한 그림 또는 이미지로서 간주하였기에, 그는 이것 이외에, 긍정하고 또 부정하는 빈 능력(ce pouvoir vide)을 인정해야만 했으며, 그것을 그는 의지라고 불렀다. 이 “의지”는 데카르트가 오해하여 가르쳤던 용어들 중의 하나일 뿐이다. 주장하고 부정하는 능력, 이 능력과 더불어 믿음과 의욕은 우리의 관념들의 각각에 속한다. 오류는 부적합한 관념에 근거한 동의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오류는 적어도 어떤 연관 하에서, 그것이 적합한 관념에 의해 배제되지도 부정되지도 않는 한에서, 부적합한 관념 자체이다. 예를 들어 오류는, 태양이 2백 발자국의 거리에 있다고 우리에게 평가하게 하는 지각작용인데, 기하학자가 진실한 거리를 증명하지 못하는 한에서 그러하다. 따라서 오류는 지각작용이 아니다. 그것을 수정할 진실한 관념의 부재이다. 그리고 오류를 동반하는 의심의 부재는 진실한 관념에 찬동과 동일한 것이 아니다. 전자는 우리의 무능의 징표이고, 후자는 우리의 능력의 징표이다.
따라서 스피노자가 인간 이론에 도입한 것은 새로운 지적 균형이다. 그는 정당화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증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데카르트는 정당화 한다. 그는 자기 방법을 정당화하는데, 그 방법을 인간의 선과 연관시킨다. 그는 오류로부터 신을 정당화하는데, 오류를 인간의 의지의 탓으로 돌릴 수 있다고 제시한다. 그는 정념들을 정당화하는데, 정념들에서 인간을 애호하여 자연의 제도화의 일종을 보게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카르트에게서 자유 의지들, 즉 신 또는 인간들이 있으며, 이것들[자유의지들]이 선(善)이라고 제기된 목적을 탐구하면서 작동한다. 스피노자는 증명한다: 즉 인간이 오류에 굴복하든지 진리를 탐구하든지간에 인간은 정신적 자동인형(un automaton spirituale)이라 한다. 그리고 우리가 곧 보게 될 것인데, 그는 정념들을 인간의 자연으로부터 연역한다. 목적에 따라 활동하고 자유의지의 용어[개념], 선과 악의 용어는 절단되고 혼동된 착각의 용어들이다. (157) (57LK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