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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철학의 여러 단계들(1912),
브륑슈비크(1869-1944), P. 592.
제1부 구성의 시대 Période de constitution 01
제1권 산술학Arithmétique. 03
제2권 기하학Géométrie 43
제3권 무한소 분석Analyse infinitésimale 153
제2부 근대 시대 Période moderne 251
제4권 비판철학과 실증주의 La philosophie critique et le posivitisme 253
제12장 칸트의 수학적 철학 La philosophie mathématique de Kant 253
제13장 오귀스트 꽁트의 수학철학 La philosophie mathématique d‘Auguste Comte 282
제14장 과학적 토대들의 변형 Transformation des bases scientifiques 302
단원 A. 합리적 역학의 개념작용. La conception de la mécanique rationnelle. 304.
단원 B. 비유클리드 기하학들Les géométries non euclidiennec 310
[1절] 사케리의 선구자들 Les précurseurs de Saccheri 313,
[2절] 신부 삭케리 Le P. Saccheri. 315
[3절] 로바체프스키와 리만 Lobatchevski et Riemann 318
[4절] 메타기하학 Les métagéométries 321
단원 C. 분석학 과 연속성L’analyse et la continuité 325
[5절] 18세기에서 문제 Le problème au XVIIIesiècle 325
[6절] 뽕슬레에게서 연속성 La continuité chez Poncelet 327
[7절] 꼬쉬의 연속성 La continuité chez Cauchy 330
[8절] 분석의 자치 L’autonomie de l’analyse 334
제5권 산술학의 진화 L’évolution de l’arithmétique 341
[5권 서론]341
제15장 수의 독단론 Le dogmatisme du nombre 344
[1절] “수의 법칙” La “loi de nombre” 345
[2절] 상징론의 이론 La theorie du symbolisme[상징주의] 348
제16장 산술학의 유명론 Le nominalisme arithmétique 354
[1절] 분석론의 산술화 작업 L’arithmétisation de l’analyse 354 .
[2절] 유명론에로 이행 Le passage au nominalisme 359 §212. §213. §214.
[3절] 유명론의 진술 L’exposition nominaliste 365 §215
제6권 수리계산의 운동 L’mouvement de logistique 369 §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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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 근대 시대 Période moderne 251
제5권 산술학의 진화 L’évolution de l’arithmétique 341
제16장 산술학의 유명론 Le nominalisme arithmétique 354
1절 분석론의 산술화 작업 L’arithmétisation de l’analyse 354
§210. [분석론에서 나온 자연수가 아닌 것들(무리수, 분소(무한소수), 허수)을 산수학 체계에서 수용하다. 꼬쉬(1789-1857)에서 메레(1835-1911)로. - 행렬(허수를 포함한 복소수계산)의 기호들도 (실수)수의 규칙을 따르는 수들이다. ]
이때부터 산술주의(l‘arithmétisme)은, 마치 기술자들의 학설처럼 새로운 형식 하에 우리에게 소개된다. 기술자들은, 그들의 진술이 형이상학적 논쟁의 모든 구름들을 걷어내면서, 명석판명한 관념들의 영역에서 스스로 움직인다고 이해한다 (354)
이런 학설 속에서 – 메레가 아마도 이런 학설의 주도자였다.그의 개인적 영향이 처음에 매우 제한적이었다고 할지라도, 적어도 이 학설에 대해 그는 가장 직접적이고 가장 체계적인 진술을, 무한소 분석의 새로운 강의의 서두에서소개했다. - 완전수와 비합리수[무리수] 사이에 중간 항으로 쓰이는 것은, 분수(fraction)라는 여전히 직관적인 용어가 아니라, 상상계(immaginaire)라는 순수하게 추상적인 용어이다. (354)
꼬쉬의 대수분석학의 강의(Cours d’analyse algébrique(1821)의「전문(Préface) 」에서, 그리고 마치 그가 그것을 그자신이 말하는 것처럼, “아마도 처음에는 약각 딱딱한 명제들을”을 발언하는 위험이 있었더라도, 꼬쉬는 원칙적으로 제시하기를 “상상적[허수] 방정식은 단지 실재적인 양들 사이에 두 방정식의 상징적[기호적] 재현일 뿐이다”이런 개념작업은 – 이것이 아마도 꼬쉬를 완전하게 만족시켜 주지 못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것을 곧 볼 것인데, 그는 상상적인 양들의 기하학적 정당화와 대수학적 정당화를 계속적으로 시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 메레의 진술과 더불어 그것의 정확성과 그것의 범위를 획득한다. (355) 메레에 따르면, “만일 기하학적 몇몇 노선도들이 이런 양들[허수들]을 위하여 매우 간편한 표기법을 제공한다면…, 통계적이거나 또는 다른 방식 이거나 간에 어떤 현상과시각적 이미지를 제공하는 곡선사이에 보다 두 종류의 사물들 사이에 더 많은 연관(rapports)들이 있다.”
“기호 √-1의 의미를 꿰뚫기 위해헛된 노력들을 행할 이유가 없다. 그 기호는 효과적[계산상]으로 어떤 의미도 갖지 않는다. 왜냐하면 부정의 양[음수 -1]은 자승의 근을 갖지 않기 때문이다.”√-1에 의해 표시되는 양은 실재적이고 규정된 질서에서 배열된 수들(a, b, [c, ...])의 조합과 다른 것이 아니다. 이 실재적 수들에게 사람들은 선천적으로규칙들의 어떤 수를 적용하기에 편하다. 이 규칙들은 일상적 산술학의 규칙들과 더불어 유비에 의해 생각된 것이고, 결합법칙성과 교환가능성을 검증한다. (355)
여기에서 곱셈의 규칙을 강조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 규칙은 상상적인 량의 특성을 제공한다. “(b’, b’’)에 의해 (a’, a’’)의 생산물은 (a’b’-a’’b’’, a’b’’+ a’’b’)를 다루면서 형성된다.”만일 우리가 이런 규칙을 상상적 양(0, 1)의 제곱[넓이, 자승]을 형성하기 위하여 적용한다면, 우리는 다음을 얻는다.
a’ = b’ = 0
a’’ = b’’ = 1
그리고, 이어서 (0, 1)2 = (0-1, 0+0) [이고]
말하자면 허수의 표현(0, 1)의 거듭제곱은 –1에 동등하다. 그리고 만일 우리가 표현 i (0, 1)와 같은 특수한 상징[기호]에 의해 지칭한다면, 우리는 상상적 표현 전체 속에 요소(facteur)처럼 들어가게 할 수 있다면, 우리는 i2 = -1이라는 관계를 얻는다. 메레가 말하듯이, 이런 관계 덕분에, “우리들의 기호 i는 –1의 제곱근을 … 잘 대리[재현]한다. 그러나 상상적 양(-, 0)의 자리에 맞는 명백한 협약에 의해서 쓰여진–1의 제곱근을 재현한다. 이것은 아주 다른 것이다.” (a, b)라는 실행에서는 a + √-1b, 즉 a + ib라는 형식을 취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모방체들(simulacres)”에게 물체를 부여했다는 것을 잘 이해하는 것이고, 그 모방체들로부터 사람들은 내려가는데 … “ 기꺼이 또 노력 없이 통속적 계산의 실재성들에게로 [내려간다]” (356) .
상상물들의 계산은 일상 산술학의 확장이다. 계산은 일련의 협약들의 의하여 선천적으로 정당화된다. 이 협약들은 어떠한 모호함에도 어떠한 애매함에도 동의[제공]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실재적인 수들이 그것들의 유일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356)
§211. [꼬쉬의 해결방안(1821년): 비합리수들에서 극한의 경우에 오차가 있더라도 오차 범위를 찾아낼 수 있어서 극한에서 계산은 성립한다.]
동일한 질서의 개념작업이 합리적인 것[유리수]에서 비합리적인 것[무리수]의 이행을 생각하는 것을 허락한다. 여기서 또한 꼬쉬는 예고자[선구자]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람들이, 이미 17세기 수학자들에게서 특히 월리스(1616-1703)에게서 발견했던 한계(la limite)의 완전한 산술적 개념작업을 실증과학에 정의상으로 도입했던 것은 그의 덕분이다. 1821년 [분석학] 강의에서 이렇게 표현되어 있다. “계속적으로 동일한 변수[변항]에 속성를 부여했던 가치[값]들은 무한정하게 고정된 값에 접근할 때, 사람들이 원하는 만큼 약간만 그 값과 다르게 함으로써 끝나게 하는 방식으로 [접근할 때], 이 후자의 값은 모든 다른 값의 극한(la limite)이라 불리어진다.”따라서 극한은 계속적으로 변항에 할당되었던 정확한 값들의 도움으로 정의된다. 을 극한 자체는 정확한 값을 획득하는데, 이때는 극한이 ε보다 열등한 양의 값만큼 - ε(엡실론)이 아무리 작다하더라도 - 변항의 규정된 그만큼의 값과 다를 때이다. (356)
그러나 이런 개념작업은 난점을 해결하는데 아직 충분하지 못하다. 난점은 우리가 막 인용했던 구문 속에서 무매개적으로 나타난다[소개된다]. 꼬쉬가 쓰기를, “이처럼, 예를 들어 비합리수[무리수]는, 극한들에 점점 더 가까이 간 값들을 제공하고 다양한 분수들의 극한이다.” (356)
이러한 점에서 이해해야만 하는가? 극한을 정의하는 근사치 과정에 앞서서 그리고 그 과정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비합리적 수의 현존은 이미 가정되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 귀결로서 그것의 기원을 다른 곳에서, 즉 기하학적 재현을 제공하는 이미지들 속에서, 찾는 것이 편하다는 것을 이해해야만 하는가? 또는 분석학의 혁신을 주도했던 논리적 운동이, 오히려 극한의 용어로서 성공했던 절차 덕분에, 순수하게 산술적 지평 위에서 비합리적 수의 관념을 태어나도록 인도하지 않는가? (357)
사람들은, 극한의 크기가 합리적 양이라는 경우에, 극한의 용어를 제한하면서 시작할 것이다. 이 경우에 용어들은, 사람들이 합리적 양들과 다른 양들을, 즉 말하자면 산술학의 일상적 계산작업들에 의해 정의된 수들과는 다른 것이 결코 아닌 양들을 가정해야 함이 없이, 자연적으로 연쇄로 이어져있다. 우리는 변수에 할당된 무한한 수적 가치들에 의하여 형성된 수열(la suite)을 고려할 것이다.
v1, v2…vm
그리고 우리는 [이 표기법을] 점진적인 변화 가능한 것(variable progressive), 즉 변수(variante)의 일반적 이름 하에서 이해한다. 만일 어떤 배열 m으로부터 차이인 vm+p – vm는 합리적 수인 ε보다 절대적 가치에서 - ε(엡실론)이 아무리 작다고 하더라도 - 보다 작다면, 사람들은 변수가 수렴이라고 말할 것이다. 우리는, 계산들을 요약하기 위하여, 적합한 기호들에 의해 수렴하는 변수들을 재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U에 의해 수열 u1, u2 … um라는 수열의 수렴하는 변수를, 마치 어떤 배열 m으로부터 U - um <ε처럼, ε(엡실론)이 어떤 것이라고 하더라도, 지칭할 것이다. U가 합리적 양이 되어 있을 때, 우리는 담론을 요약하는 것과 다른 것[사물]을 행했을 것이다. U - um <ε라는 것과 같은 합리적 양인 U가 없을 것이라는 경우에 무엇이 일어날 것인가? 그러면, 사물들을 아주 엄격하게 취급함에 있어서, 사람들은 극한(limite)을 말할 권리를 갖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um+p - um <ε라는 비동등[부등성]으로부터 결과하는 변수의 수렴을 표현하기 위하여, 이번에서 절대적 시뮬라크르가 될 새로운 시뮬라크르(모방체)를 창조할 수 있고, 비합리적 양[무리수], 즉 허구적 양 또는 불가공통분모인[공약불가능한] 양을 마치 우리가 효과적[실질적] 극한을 만들 수 있을 것처럼, 다룰 수 있을 것이다. “수렴하는 변수가 어떤 극한을 향하지 않을 때, 사람들은 변수에게 극한의 이상수(une idéale)를 할당하고, 사람들은 이것을 공약불가능한(incommensurable) 수 또는 양이라고 명명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것이 실재적으로 현존하는 경우와 동일한 기호에 의해 그것(이상수)을 재현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어떤 변수의 수렴을 표현할 수 있고, 그 수렴은 (경우에 따라서 효과적이고 또는 이상적인)어떤 극한을 향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357)
이리하여 합리적 수들의 무한정한[정의 없는] 수열(la suite)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즉
1/2
1/2 + 1/22
1/2 + 1/22 + 1/23
․․․․․
1/2 + 1/22 + 1/23 …1/2n
[이 수식은] 수열이 표현하는 수렴하는 변수를 갖는다. 그 수열은 극한에서 단위(l’unité)를 갖는다.
반대로, 수렴하는 변수가, 즉
1/1
1 + 1/1.2
1/1 + 1/2 + 1/1.2.3
․․․․․
1/1 + 1/1.2 + 1/1.2.3 + …1/1.2.3.…n
[이 수식이,] 사람들이 비합리적 수[무리수]를 창조하면서 변수에게 극한들 중의 하나를 허구적으로 할당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극한을 갖지 않는 경우가 있다. 여기에서 비합리 수는 수렴하는 변수를 표현하는 급수의 값들에 의해 엄격하게 정의될 것이다. (358)
요약하자면, 수학적 항목들의 조합에 의하여, 엄격하게 상상적 용어[허수]와 비합리적 용어[무리수]를 정의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런데 이렇게 정의된 이 두 용어들은, 메레(1835-1911)가 분석학을 생각했던 대로, 분석학을 구성하는데 충분하다. 이런 분석학의 도구는, 테일러(1685–1731)의급수(la série)처럼, 변수의 승수[지수]들에 따라 진행하는 급수들로 된 함수들의 발전이다. 그러나 수평은 [분석학의] 상상적 변수들[허수들]의 입문에 의하여 펼쳐지는데, 이 입문은 꼬쉬(1789-1857)의 영광의 자격[제목]들 중의 하나이다. 라그랑쥬(1736-1813)가 “가설”의 상태에 남겨놓았던 분석적 함수들의 이론은, 메레가 쓰기를, “실재성”이 되었다. 또는 펠릭스 클라인이, 독일에서 크로네커(Kronecker, 1823-1891)와 바이에르스트라스(Weierstrass, 1815-1897)와 더불어 완성되었던, 평행하는 운동에 적용한 표현을 다시 다루기 위하여, 분석학은 산술화되었다.v (358)
2절, 유명론에로 이행 Le passage au nominalisme 359
§212. [분석학의 산술화: 수들의 협약적이고 허구적인 체계가 점점 추상수학에 가까이 다가간다. 추상화의 여러 형식들과 방식들에서, 계산의 차이가 양적 차이가 아니라 질적 차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시기에 와서야! - 르누비에(1815-1903)에서 메레(1835-1911)로. ]
분석학의 산술화(l’arthmétisation)는 수학의 산술학적 해석을 자연적 귀결로 삼는다. 그러나 이것은 르누비에의 산술주의와 깊은 의미에서 다르다. (359)
르누비에에게서 산술주의는 철학적 본질의 학설이다. 기본적 산술학은 거기에서 오로지 명석하고 이의제기할 수 없는 과학의 전형일 수 없다. 그런데 이 산술학은 철학이 우주에 관하여 투사하는 임무를 갖는 지성성의 형식을 폭로하는 특권을 소유한다. 수는 탁월하게도 범주이다. 수의 원리는, 여기까지 형이상학의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그 자체로 파악된 세계의 구조를 규정하기 위하여,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에 창조적 권능의 필연성을 증거 하기 위하여, 충분할 것이다. (359)
그러한 빛의 섬광은 수학의 다른 부분들을 모호하게 했다. 양의 이해를 위하여 산술학 속에 재결합된 조건들로부터 출발하면서, 르누비에는 무한소 분석을, 마치 소위 말하여 양의 과학에 대해 폭로하는 것처럼, 더 이상 간주하지 않는 데로 이끌었다. 그가 그 자체로 척도을 허용할 수 없었던 것 대신에 규정되 연관을 대체 할 수 있었던 것은, 임의적이고할당할 수 없는(arbitraireet inassignable) 것에 내속하는 비규정작업을 이용하면서, 인위적인 것의 대가일 뿐이었다. 인위적인 것[기교]은, 인위적인 것 자체의 관점으로부터, 말하자면 사람들이 협약들의 체계와 허구들의 체계 속에서 움직이는 한에서, 정당화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실재성에 접근되자마자(그리고 사람들이 거기서 어떤 적용을 끌어내기 위하여 그것[인위적인 것]을 만들로록 강요되었다), 그것은 산술학의 신뢰를 이루었던 엄격한 정확성을 박탈당한 체, 마치 근사치의 방법처럼 나타날 것이다. (359)
분석학의 산술화는 불안정하고 허약한 이런 상황에 끝장을 내었다. 완전수들과 양(陽)의 수들의 계산은 무한소 계산의 지성을 위하여 기준점으로 이용한다. 그러나 이것은 감각적 이지미가 만족해하는 현실적인 재현작업 과잠재적이고 허구적인 재현작업 사이에 대립을 만들기 위해서가 더 이상 아니다. 이것은 무한소 계산으로부터 소위 말하는 산술학의 계산들에게로 구성적인 계산작업들을 다시 연결하기 위해서, 즉 어떻게 산술적 추론들의 정확성과 엄밀성이 추상 수학의 모든 분과학문들에게 점점 가까이 이동되는지를 제시하기 위해서이다. 다른 말로 하면, 메레의 학설 속에서 조작되었던 실재성에서 허구로 이행은 신-비판주의에서 동일한 귀결을 갖지 않는다. 그 이행은 과학의 정상적인 리듬과 단절하지 않는다. “기본 산술학의 완전수들은, - 그 완전수들 위에서 수적인 적용들에 의해 요구된 모든 계산 작업들이 정의상으로 오로지 배타적으로 굴러가는데, - 또한 이론적 사색들의 바탕에 개입된 유일한 수들이다. 그러나 몇몇 계산 작용들로부터 자주 일어나는 불가능성은, 분석적 변형론[변환론]들의 메카니즘 속에서 욕망할 수 있는 획일성을 심하게 흔들 것이다. 이 불가능성은, 만일 사람들이 수들 과 진실한 계산작업들 대신에 허구들을 대체하면서 장애물을 뒤집어 업지 못한다면, 연속적인 제한들에 대한 진술들을 복잡하게 할 것이다. 이 허구들의 계산을 위하여 이런 불가능성이 결코 제시되지 않을 것이고, 또한 허구들의 계산으로부터, 장애물을 필요로 할지라도, 사람들은 어떠한 노력 없이도 실재성에로 회귀한다. 특히 그러한 것이, 메레가 계속하여 말하듯이, 분수들(la fraction)의 기원이다.” (360)
3/5은, 말하자면 3을 5에 의해 나누는 것은, 수가 아니다. 왜냐하면 5에 의해 곱하기[더하기 빼기]하여 3을 보여주는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3 과 5라는 두 수들은 함께 재통합될 수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통합은, 우리 마음에 들게, 상징 3/5에 의해 재현[대리]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형식에게, 사람들은 조합들의 몇몇 규칙들 적용하는 것이 편하다. 이 규칙들은 완전수들을 규제하는 덧셈과 동등성의 법칙들에 근거하여 복사되어 있으며, 그리고 3 과 5는 차례로 3/1 과 5/1의 형식 아래 놓여 질 수 있는 것과 같고, 또한 3/1 또는 5/1라는 상징[기호]들의 표현들에 관한 그 결과들은 진실한 수 3 과 5의 진실한 수들 위에서 얻어진 결과들과 동일하다는 것과 같다. (360)
이리하여 양[+]의 완전수들의 계산은 조합들[연산계산들]의 특별한 경우가 된다. 사람들은 이 조합들을 분수 표현들(les expressions fonctionaires)에 적용할 것을 결심했다. 그리고 이로써 새로운 계산은 수학의 영역에서 통합되고, 과학의 넓혀짐(un élargissement)을 표시한다. “잡다한 종류들의 분석학들은 구별된 세계들을 구성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석학들의 정의는 이러한 연관들 소에 있다. 즉 어떤 종류의 수들에 관하여 집행하는 모든 계산은 이 다음 종류의 수들에 관하여 평행하는 계산의 도움으로 효과적으로 될 수 있다.”이런 구성의 법칙은 새로운 양들인 “인조들[모조들]”을 형성하게 허락해준다. 협약적인 규칙들의 도움으로 덧셈과 뺄셈의 기호들을 조합하면서, 사람들은 계산을 형성할 것이다. 그 계산에는 불가능한 분수는 없었고, 그 계산에서 사람들은 그 계산을 절대적(absolues) 값들로 되돌아가게 할 것이다. 이러한 것이 [양화된 것이 아니라] 질화된(qualifiées) 값들의 계산일 것이고,이런 계산으로부터 사람들은 우리가 지적했던 절차에 의해서 비합리적)[무리수의] 또는 상상적[허수의] 값들의 계산으로 이행할 것이다. (361)
요약하자면 양의 완전수들의 산술학이 기본적 주제를 제공했다. 이로부터 사람들은 변수들의 풀림에 참여했다. 변수[변항]들은 우선 이것들의 복잡성에 의해 그리고 이것들의 명백한 비실재성에 의해 당황하게 하였으나, 그러나 이것들의 조화의 비밀을 전하였는데, 바로 그때 알맞은 표현은 기초적 주제에 맞는 변수들의 연관을 표시했다. 르누비에에게서 유한한 것과 불연속적인 것의 무한소로 이행을 표시했던 변증법적 대조 대신에, 산술주의의 이 둘째 형식은 초기의 리듬의 점진적인 넓혀짐으로 대체 했다. (361)
§213. [수의 영역의 확장: 정수(자연수) 형식은 여러 형식들 중에 예외적인 한 형식일 뿐이다. 새로운 체계의 창조: 복소수. ]
순수하게 기술적인(technique, 제조(製造)적, 제작적) 관점에서, 진보는 이의 제기할 수 없다. 분석학의 길은 신중하지 못한 수학자들이 지난날에 길을 잘못 들게 했던 형이상학적 문제들(les problèmesmétaphysiques)로 당황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론적 관점에서 난점들은 해결되었다기보다 오히려 회피된 것으로 보였다. 사람들은, 수학적 대상의 현존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곧 바로 말할 것이다. 그러나 또 곧바로 사람들이 양의 완전수들의 영역 안에 있다고 따르면, 또는 비합리수, 부정수, 상상수[허수] 영역 안에 있다고 따르면, 반대되는 질서의 두 가지 이유에서라는 것을 덧붙여야만 한다. 영역들 중에서 첫째 영역에서 문제는 제기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이미 해결했다고 가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산술적 수들은 주어진 실재성들이고, 몰크(Molk, 1857-1914)가 말했듯이, 자연 과학들의 대상들에게 비교할 수 있는 실재성들이다. 다른 영역들에서 문제가 문제는 제기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문제를 제기할 거리[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기본적 산술학을 저넘어서, 과학의 개념들은 어떠한 종류의 객관성을 주장될 수 없다. “개념들은 수로부터 나온 이름일 뿐이다. 실제로 이것은 순수한 상징[기호]들이다.” (361)
비슷한 이론은 이런 과학 자체의 단위(l’unité, 통일성)를 이해하기를 금지한다. 사람들은 이런 과학에 대하여 이론이 동질적 조합들간에 서로 서로 연관하여 하나의 체계처럼 실천적으로 표출되는 것을 이제 막 확정하였다. 회피할 수 없은 연속[급수]에 의해서, 이론이 반성의 앞에서 새로운 문제를 일으켰다. 또는[한편] 수의 용어가, 오성의 형식에 상응하든지 자연의 실재성에 상응하든지 간에, 내속적이고 필연적인 진리를 소유한다. 그러나 이런 진리가 적분에도 또 소위 말하는 산술학적 수의 긍정성에도 연결되어 있는데, 대수학과 분석학이 서로 토대를 이루고 있는 일반화된 형식들에 이전[변환]될 수 없다는 것이다. 진리의 영혼이었던 진리의 개념작업은 산술화 하는 이론을 포기하였다. 이때는, 관계들의 다발에서 자연적 현상들의 확장과 섬세함을 전개할 그것의 소질을 가장 잘 검토하는 수학적 분과학문들에게 내속하는 가치를, 과학들 속에서 사변적 정신의 풍부성과 더불어, 이해하는 것이 문제일 때이다. 또는[다른 한편] 추상 수학의 모든 부분들은, 효과적으로[실질적으로] 정확성과 엄밀함의 동일한 성격을 과학으로 삼는다. 과학의 이론은, 수학이 해석해야만 하는 실재성을 존중하면서, 산술학, 대수학, 분석학이란 차이들 사이에서 수준의 동등성을 재확립하고자 고려한다. 그러나 이런 동등성은 가장 적에 고양된 수준 위에서만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때 완전수[정수]는 일반화된 형식들 속에 흡수될 것이다. 완전수는 이런 형식들어부터 특별한 경우가 될 것이다. 수는 형식의 상징적(기호적) 성격에 참여할 것이다. 추상수학은 전적으로협약적이고 추상적인창조작업이 될 것이다. (362)
따라서 자연수들과 인위적 표현들의 병치[복소수]는 산술주의 운동에서 임시적 정지(멈춤)만을 구성한다. 산술주의가 퓌타고라스학자들의 실재론까지 거슬러 올라가야할 것이고, 또는 산술주의가 유명론과 회의론의 경사를 내려가야 할 것이다. (362)
§214. [산술주의는 기호(상징) 또는 추상 체계로 확장이다. 그런데 수의 법칙이 정수[자연수] 이외에서 수의 대상이 실재적인가? 라는 문제를 낳는다. 추상적이라고 하더라도 계산의 논리적 과정을 성립한다.]
그런데 이리하여 대안이 소개되었는데, 우리가 산술주의의 형성과 진화에 대해 이미 말했던 것은, 19세기의 과학자들이 피할 수 없을 정도로 둘째 편을 들어야만 한다는 것을 예견하는 것이다. 꼬쉬의 권위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논리학도 산술학도 그 자체로 소위 말하는 수의 법칙(loi de nombre)에서 흥미 없다는 것이 분명하다. (362)
명제: 전체는 부분보다 더 크다(le tout est plus grand que la partie). 명제는 고대로부터 기하학의 공통 용어[공리]들 가운데 끼어들었으며,르누비에에 따르면 “마치 분석적 판단 또는 동일성처럼 간주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덧붙이기를, 전체의 관념은 엄격하게 그리고 배타적으로 수학적 의미에서 파악되어야만 한다.”이러한 것은 아직 충분하지 못하다. 수학적 의미는 긍정수들[유리수들]을 산술학에 제한되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이미 부정수들[무리수 허수] 에서는, 공리는 결함이 있다. a + b가 a 보다 더 작을 수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는 다음을 보게 된다. 사람들은 ‘전체는 부분보다 더 크다’는 명제를 가지고 가능적인 것의 규범을, 실재적인 것의 기준을 만들기를 거부하면서, 양의 수이며 한정된 수들의 계산에 알맞은 규칙들에 모순을 말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로부터, 사람들이 내속적이고 절대적인 모순 속에 떨어진다는 결론을 내릴 권리가 없다…기본적인 산술학을 보편적 과학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도, 또한 산술학을 통제하는 원리들을 논리학의 필연적 법칙들에 동화하게 하는 것이라 아니라도 말이다. (363)
게다가 거북한 사정, 즉 산술학적 진리와 논리학적 진의 이런 동화는, 유한한 수들의 산술학 과 집합의 논리적 계산 사이에 근본적 발산이 있다는 바로 그 정확한 [관]점 위에서 생산된다. 만일 5에 7을 보탠다면, 합계 12는 부분들의 각각 보다 더 크다. 그러나 만일 내가 프랑스인들의 집합을 노르만인들의 집합에 보탠다면, 이 두 집합의 합계는 부분들의 각각보다 전혀 더 크지 않다. 게다가 17세기부터 라이프니츠는 이런 논평을 명증하게 내놓았다. 이때 그는 소위 동어반복(tautologie)의 법칙을 정식화하였을 때이고,그가 이 법칙으로 덧셈의 적용을 분명하게 표시하였다. 그가 “양자택일적 계산(calcul alternatif)”이라 불렀던 것에서, 요소들의 조성작업이 논리적 외연의 질서에 따라 이루어지는데, “철자(lettre) 그 자체로 조성 작업하는 것을 고려하는데 있지 않다.” (363)
그러나 기본적 산술학 그 자체를 물으면서, 사람들은 수의 법칙이 확립되었던 토대가 빠져나감을 본다. 만일 산술학이 우리에게 센다는 것을 가르쳐준다면, 우리가 유한해서도 전부를 셀 수 있는지를 아는가 하는 질문에 – 그 질문이 산술학을 넘어서거나 또 우리를 넘어서거나 - 산술학이 무차별하게[무관심하게] 남아있었다는 것은 분명하지 않는가? 더 멀리 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심지어 만일 우리가, 사물의 자연[본연]에 의해 제기된 문제는 완전수들의 계산 만에 의해 해결되어 한다는 것에 일치한다면, 우리는 수들의 자연적 급수(suite) 속에서 사람들은 산술학의 이름으로 배제한다고 주장했던 무한을 다시 발견할 것이다. “산술학에서 불가사의하지 않아야 하는 무한이란 용어는 이것으로 환원된다. 즉 완전수 각각 이 다음에, 그것과 다른 수가 있다.”라이프니츠가 말했듯이, 동일한 이유가 존속하기에, 사람들은, 둘(2, deux)의 용어 속에 이미 무한을 함축하지 않는다면, 1(un) 다음에 2(deux)를 제시하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분수 1/2를 생각하기 위하여 단위(l’unité)에서 출발하면서 사람들은, 갈릴레이의 호기심 많은 논평에 따르면, 무한한 수의 전형을, 즉 단위를 만들도록 인도하는 무한정한분할 가능성을 거부할 수 없다. (364)
우리들에게 있어서, 따라서 “수의 법칙”은 산술학 속에서도 논리학 속에서도 근(根)을 더 이상 갖지 않는다. 그 법칙은 아마도 난점들 속에서 자기의 기회 원인을, 즉 부정적[음]의 질서의 원인을 가졌을 것이다. 이 난점들을 19세기의 초반세기에 원리의 진술과 무한소 계산의 적용들의 진술이 만나게 할 것이다. 그리고 르누비에 그 자신이 다음을 지적했는데, 그의 학설의 “회전하는(pivotale)” 관념은 “의미 위에 그리고 가능한 합리적 정당화 위에 연장된[이어진] 성찰을, 즉 기하학에서 초월적 방법들을진행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꼬쉬와 르누비에의 사유가 헤엄치는 과학적 분위기 속에서 해결의 긍정적 이유[근거]를 탐구할 각오가 되어있을 것이다. 달톤(Dalton, 1766-1844)과 뒤마(Dumas, 1800-1884)를 지배했던 화학적 개념작업은 그리고 퓌타고라스 또는 데모크리토스의 사변적 이론들을 근대 실험과학의 중심으로 끌어온 개념작업은, 유한주의에서 나온 무의식적이지만 진실한 영감 원천일 것이다. 어쨋거나 이 개념작업만이, 우리에게 무매개적 동일화작업을 설명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 동일화를 르누비에는 관계의 일반관념 과 조성의 규정된 연관 사이에서 확립한다. 동일화는 신비판주의의 원리이고, 신비판주의로부터 새로운 단자론(1898)에까지 발전을 이끌었다. (364)
그런데, 19세기 과정에서 물리-화학 과학들의 진보는 원자론적 유한주의의 정신들들 넘어섰다. 반면에 꼬쉬에 의해 성립했던 작품의 성공이 다음을 알게 하는 데, 대수학과 분석학의 다양한 부분들이, 표현들의 정의들(소수, 음수, 허수, 무리수) 위에 근거한 그리고 그것의 계산을 허용하는 계산작업에 근거한, 협약들의 이중 체계의 도움으로 아주 엄격하게 진술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때부터 결론이 나온다. 대수학을 위하여 분석학을 위하여 충분한 것은 산술학에서도 충분하게 될 것이다. 19세기의 과학자들이 권위를 불러오기에 만족했던 경제 원리(le principe d’économie)의 이름으로, 직관의 대상을, 즉 자연적 실재성을 거기서 본다고 허용했던 모든 것을, 수적 조합들의 체계에서 필연적인 성격들만을 유지하기 위하여, 수의 용어로부터멀리해야 할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가능한 한 비용을 적게 들여 완전수[정수]들의 산술학을 기초하기 위하여, 사람들은 세고 있는 과정의 법칙들(les lois du processus nombrant)과 세어졌던 사물의 현존(l’existnce de la chose nombrée)을 해체해야 할 것이다. 지성을 위하여 이 법칙들로부터 소수들과 허수들의 계산에서 성공했던 방법을 모방하면서, 사람들은 조작하는 상징주의의 규칙들을 애매함이 없이 고정하기 위하여 필수적인 조건들의 최소치(le minimum)를 규정할 것이다. (365)
3절, 유명론의 진술 L’exposition nominaliste 365
§215. [헬름홀쯔에서 서수와 기수 사이의 구별이 없다. 헬름홀쯔 이래로 기술과학적 탐색에 보태어 생리심리학적 수의 개념의 연구가 제기된다. 헬름홀쯔의 유명론적(또는 단자론적?) 수 개념작업과 프와까레의 협약론적 수 개념작업이 20세기 초반의 직관주의를 낳을 것이다.]
그러한 것이 헬름홀쯔(Helmholtz, 1821-1894)가 1887년 그의 논문 「인식론적 고찰로서 수와 측정(Zahlen und Messen erkenntnistheoretisch betrachtet, 1887)」에서 수행했던 임무이다. “우리는 수들을 임의적으로 선택된 일련의 기호들인 것으로 고려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수들에게 규칙적인 계속의 자격으로 계속의 규정된 양태를, 또는 습관적 표현에 따라 자연적 계속의 규정된 양태를 적용한다.”또한 애매한 표현에 의해 속게 내버려 두지 않는 것이 좋다. 자연적이라고 할 수 있었던 것, 그것은 주어진 실재성들의 매거(le dénombrement), 즉 안짤(die Anzahl)이다. 수의 과학은 그러한 전혀 아닌 것을 만들지 않아야 한다. 수적 기호들의 질서는 여러 입말들(les langues)에서 철자들의 순서와 마찬가지로 협약적이다. 일단 일정한 방식으로 채택되고 사용된 이 순서는 정상적이고 규칙적인 겉모습을 동등하게 다룬다.
르화(Edouard Le Roy, 1870-1954)와 뱅상(Georges Vincent, 1872–1955)이 이것을 정신적으로 말하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가 기호들이라고 부를 무한히 작은 소묘들(dessins)을 창조했다. 그리고 이 이것[소묘, 기호]들이 아무리 작다고 하더라도, 기호들은 우리가 곧 지적할 형성의 법칙에 따라서 규칙적으로 계속해서 이어진다. 그 첫째 기호들은 [다음처럼] 개별적으로 주어진다.
, 0, 1, 2, 3, 4, 5, 6, 7, 8, 9. (367)
게다가 그것들은 배열된 것으로 가정되었다. 이들(르화, 뱅상)이 쓰기를, “우리는, 모든 다른 기호를 앞서 있는 기호를 제외하고, 기호들 각각이 기호들 각각을 계속적으로 나아가게 한다. … 사람들이 무한정하게 이 놀이(ce jeu)를 이어갈(연장)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아무것도 정신에게 외적인 것의 고려를 개입시키지 않는 순수하게 논리적 계산작업 안에 멈춤(un arrêt, 정지)을 부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창조된 계열(la série)의 각 기호는 하나의 상징(un symbole)이다 …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양(+)의 완전수들의 급수(la suite)라고 부르는 것이다. 산술학은, 정신이 이 상징들 위에서 행하는 것을 즐길 수 있는 계산작업들의 이야기와, 다른 것이 아니다.” (366)
그러므로 덧셈은 순수하게 순서적[서수의] 열거(l’énumération) 속에 다시 들어가야 할 것이다. “(a+b)에 의해서 나는 계열의 수를 지칭한다. 그 계열 위에서 나는, 내가 하나(un)을 (a+1)로서 또 둘(deux)을 (a+2)로서 등등으로 센다면, 내가 b에까지 세었던 것에까지 떨어진다.”이런 덧셈의 정의는 이것[덧셈]의 본질적인 두 가지 법칙들을 증명하도록 해준다.즉 교환법칙(commutative), 즉 a+b = b+a, 결합법칙(associative), 즉 (2 + 3) +4 = 2 + (3 + 4) = 9. 왜냐하면 이 법칙들이 진리로서 a = 1을 삼는 것을 세운다는 것이 쉽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부터 사람들은 다음을 연역하는데, 법칙들이 진리를 a = 2, a = 3 등등으로 삼는다 라는 것이다. (366)
이리하여 헬름홀쯔는, 어떠한 종류의 직관에 호소함이 없이, 그리고 심지어는 동질적 단위들의 모음의 관념을 형성함이 없이,산술학적 계산 작업들의 이론을 기초하였다. 이제 우리가, 마치 그리스 알파벳의 철자들처럼 ε에까지, 구별된 항목들의 모임(le groupe)의 현전 앞에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우리는 우리의 순서적 계열의 기호를 모임의 항목들 각각에게 상응할 수 있고, 그리고 수 n에까지 계열을 덮을 수 있다[감출 수 있다]. 상응의 결과에 어떠한 것도 변하지 않고서도, 철자들의 모임 안에서 내가 이웃하는 두 가지 철자들의 순서를 교대[치환]할 수 있다는 것을 보는 것이 쉽다. 만일 그러하다면, 점점 더 교대(cette permutation, 순열)를 점점 넓히면서, 나는 스스로 어떠한 전도(l’interversion)도 허용할 수 있다. 빈칸도, 반복도 없다면, 동일한 모임은 있는 그대로 어떤 질서[순서]에서 파악되어 나에게 동일한 수(le même nombre)를 부여할 것이다. 이 동일한 수가 열거된 수(dénombré)일 것이다. (366)
매거의 심리학적 작동(l’acte psychologique)은 완전히 묘사되었다. 그런데 이런 서술의 정확성은, 헬름홀쯔의 유명론적학설 또는 더 좋게 말하자면 협약주의적 학설이 효과적으로 그 묘사에 부여한, 범위에 관하여 착각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계열과 모음의 상응에 관한 수의 관념을 기초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순서적 계열은 수를 구성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서수적 개념작업을 이미 다른 곳에서 실시된 기수적 개념작업으로 이행을 나중에 재발견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다. 이리하여 검증작업을 허용할 수 있는 관계를 확립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다. 반대로 헬름홀쯔의 목표는 소위 말해서 기수의(센다는) 수에 대한 용어를 면제하는 것이다. “어떠한 편에서도 … 순수 수의 이론에서 헬름홀쯔는 그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단위(l’unité)의 관념도 불러오지 않는다.” (367)
순서 계열에 마주하여, 지각작용 속에서 소개된(현재화 된) 구체적 집합[일체]과 다른 것이 아무것도 없다. 계산의 추상적인 형식들 과 어떤 경험과 같은 자료들 사이에 접근이 단순하게 요청보다 더 많은 구실을 준다. 열거하는 계열과 열거해야할 모음 사이에 상응은 놀이의 규칙(une règle de jeu)처럼 도입된다. 이 규칙은 가설에 의해 모든 반대를 회피하는데, 왜냐하면 가설에 의해서 규칙은 절대적으로 임의적이기 때문이다. 산술학은 정의상으로 과학의 모든 가치를 부인한다. 왜냐하면 과학은 적어도 진리에 대한 주장이기 때문이다. (367)
따라서 산술학이 답보할 수 있었던 진화의 순환되었다. 양의 완전수(자연수)로 지성적인 것과 실재적인 것 종합을 행한 수의 개념작업으로부터 출발된 순환은, 또한 수학적 진보의 도구였던 수의 일반화의 고려에 의해, 초기 개념작업을 제거하는 데로 인도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수학적 사색들의 일체에서, 임의적 정의작업들과 합의적 규칙들에 근거한 상징적 조합의 체계만을 단지 보았다. 이로부터 19세기의 마지막 몇 년을 장식했던 일종의 지적인 소란[추문]이 나온다. 수학이 그 방법들의 엄격성을 완전하게 하였고, 동시에 수학이 물리적 우주에 대한 정복을 위하여 보다 섬세하고 보다 강한 무기를 다루었다. 그리고 수학철학은 과학이 소유한 진리를 근거 있게 만드는데 무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학철학은 실용적(pragmatique) 흐름[과정] 속에서 자기를 잃어 갔으며, 수학철학은 “해일(raz de marée, 이항移項)”의 국면을 부여하여 그것의 힘을 흐름에까지 중복시켰는데, ‘해일’이란 용어는 실용적 흐름에 무관하게 거칠지만 심오한 말투를 정당화하였다. 이 말투[용어]를 쁘왕소(1777-1859)는 샤또브리앙(1768-1848)의 크리스트교의 정수(Génie du christianisme, 1802)의 다음날에, 즉 낭만주의의 여명에 발언했다. “만일 수학들이 진리 자체이기를 그쳤다면, 수많은 조롱거리인 작품들이 매우 신중하게 되었으며, 다수의 작품들 자체가 시작부터 숭고하게 되었다.” (368) - [프랑스 안에서는 루소의 인민 낭만주의와 반 혁명파인 샤또브리앙의 낭만주의를 구별하여, 전자는 자연에서 인간이 인간을 대하는 연민이 있는데 비해, 후자에서 부자 또는 귀족이 인민을 하등으로 취급하여 살피는 동정이라 하는데, 후자의 낭만주의가 독일에서는 사회의 혁명을 이룰 수 없었던 젊은 시인에게서 나온 이상적 또는 공상적 낭만주의라 한다. 벩송은 인간의 자연상 연민이 베푸는 동정과 다르다고 보았고, 레닌이 루소의 낭만주의를 진솔하지만 당시에 실행되기에는 두렵고 무서운 것이라고 평가했다. (59RKD)]
(15:10, 59RK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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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0 퓌타고라스(Pythagore, Πυθαγόρας, 전580-495, 85 ans) 고대 그리스 철학자. 사모스섬 출생, 이탈리아 남부의 메타폰티온(Métaponte, Μεταπόντιον)에서 세상을 떴다. - 메템프쉬코시스(métempsychose, μετεμψύχωσις) 영혼의 이동, 이전, 윤회 사상을 가졌다.
460 데모크리토스(Démocrite d'Abdère, Δημόκριτος, « choisi par le peuple », 460경-370경) 그리스 철학 유물론자, 우주(세계)가 원자와 빈 것(atomes et de vide)으로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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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2 프로클로스(Proclus, Πρόκλος, 412-485) 별명 계승자(« le Diadoque », διάδοχος, successeur), 신플라톤학파의 철학자.
1564 갈릴레이(Galilée, it. Galileo Galilei, 1564-1642) 피사(Pisa)에서 태어나, 피렌쩨의 아르세트리(Arcetri)동네에서 세상을 떴다. 이탈리아 수학자, 기하학자, 천문학자.
1616 존 월리스(John Wallis, 1616-1703), 영국의 수학자. 영국 목사, 미분계산에 기여하였다.
1646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1716), 독일 철학자, 수학자, 논리학자, 외교관, 역사가, 사서. 문헌학자. Nouveaux Essais sur l'entendement humain, 1704(1765 출판)는 로크의 Essai sur l'entendement humain, 1689)에 대한 반박문이다.
1685 테일러(Brook Taylor, 1685–1731), 영국 수학자, 법정 변호사. Methodus incrementorum directa et inversa, 1715. / 라그랑쥬가 1772년 그에게서 미분계산의 기초를 보았다고 한다.
1736 라그랑쥬(Joseph Louis de Lagrange, en it. Giuseppe Luigi Lagrangia, 1736-1813), 이탈리아 수학자, 역학자, 천문학자. 사르데냐 왕국 출신 프랑스 귀화.
1766 달톤(John Dalton, 1766-1844), 영국 화학자, 물리학자. A New System of Chemical Philosophy (1808-1827)(3권),
1768 샤또브리앙(François-René, vicomte de Chateaubriand, 1768-1848), 프랑스 작가, 회상록저자, 정치가. Essai sur les révolutions, 1797): 혁명 중에 미국에 망명, 혁명의 과격성을 비판, 크리스트교의 정수(Génie du christianisme, 1802) ,
1777 쁘왕소(Louis Poinsot, 1777-1859), 프랑스 수학자. 합리적 역학(la mécanique rationnelle)의 기여자이다.
1781 볼짜노(Bernard Bolzano, 1781–1848), 부모는 경건한 카톨릭, 이탈리아출신 오스트리아제국의 프라하에서 활동, 작품은 독일어로 썼다. 수학자, 논리학자, 철학자, 신학자.
1789 꼬쉬(Augustin Louis, baron Cauchy, 1789-1857), 프랑스 수학자, 과학아카데미 회원, 에콜폴리테크니크 교수, 왕당파에 충성서약 거부하고 중립을 유지. 대수학적 분석학 강의(Cours d’analyse algébrique)(1821)
1800 뒤마(Jean-Baptiste, André, Dumas, 1800-1884), 프랑스 화학자, 약학자, 정치가. Traité de chimie appliquée aux arts, Béchet jeune (Paris), 1828-1846, en 8 volumes
1814 젤러(Eduard Zeller, 1814-1908), 독일 철학 사가. 고대철학전문가. Die Philosophie der Griechen in ihrer geschichtlichen Entwicklung (1844-1852). Trad. fr. : Émile Boutroux, 1877-1884.
1815 바이에르스트라스(Karl (Theodor Wilhelm) Weierstrass, Weierstraß, 1815-1897), 독일 수학자.
1815 르누비에(Charles Renouvier 1815-1903) 프랑스 철학자. 철학사의 작품이 있다. Nouvelle Monadologie(avec Louis Prat, 1898: 세포와 세포막, 그리고 감응성Sensibilité을 다룬다. / 프라(Louis Prat, 1861-1942), 르누비에 제자. 페르피냥 대학 교수.)
1821 헬름홀쯔(Hermann von Helmholtz, 1821-1894) 프러시아 생리학자, 물리학자. 유체 동역학, 소리와 열의 지각이론과 열역학에 중요한 기여를 하였다.
[그의 지각이론으로 전자기, 시각, 청각 등을 원자론적 또는 산술적 환원이 가능하다고 믿었던 것이 아닌가? - 프로이트가 무의식적 추억들의 위치와 실재를 산술학적으로 생각한 것이 아닌가? - 마흐(Ernst Mach, 1838-1916)의 전자기파와 소리(파)의 원자론적 해석도 산술학적 토대와 연관이 있을까?]
[브뤼케(Ernst Wilhelm von Brücke, 1819-1892) 독일의 의사, 생리학자. 실험방법도입]
[정신물리학: 페이너(Fechner, 1801-1887)-분트(Wundt, 1832-1920)이론, 인간의 주관적 감각 강도가 물리적 자극 강도의 로그(상용로그)에 비례한다는 이론]
[프레게(Frege, 1848-1925), 그리고 나서야 산술학과 논리학의 동질적 체계를 다룬다.]
1823 크로네커(Leopold Kronecker, 1823-1891), 독일 수학자, 논리학자.
1828 프리드라인(Johann Gottfried Friedlein, 1828-1875), 독일 수학사가. 문헌학자. 보에티우스와 프로클레스 원문 편집. Procli Diadochi in primum Euclidis Elementorum librum commentarii. Ex recognitione Godofredi Friedlein. Leipzig 1873.
1828 뗀(Hippolyte Taine, 1828-1893), 프랑스 철학자, 역사가, 아카데미 회원. 피레네 산맥으로 여행(Voyage aux Pyrénées, 1855)(뗀이 피레네 산맥지역에 의료 치료차 갔는데, 거기서 철학적, 문학적, 역사적 논문을 써서 쓰서, “Revue des deux Mondes”에 발표하였다.)
1835 메레(Hugues Charles Robert Méray, 1835-1911) 프랑스 수학자. ENS출신, 리용대 교수. Sur les propriétés générales des racines d'équations synectiques (thèse de doctorat), Paris, Mallet-Bachelier, 9 juillet 1858, 31 p.
1842 제임스(William James, 1842-1910) 미국 심리학자, 철학자.
1848 딴느리(Jules Tannery, 1848-1910), 프랑스 수학자. 박사학위논문: <Propriétés des intégrales des équations différentielles linéaires à coefficients variables, 1874>. (Notions historiques à la suite des Notions de Mathématiques de Jules Tannery, 1903).
1849 클라인(Felix Klein, 1849-1925), 독일 수학자. 1868년 새로운 공간 기하학(Neue Geometrie des Raumes), 이 공간에 플뤽커(Julius Plücker, 1801-1868)에게 주의를 끌었으며, 플뤼커가 4차원 공간으로 이용했다고 한다. // Cf. 클라인(Morris Kline, 1908–1992), 미국 수학교수, 수학사가. 수학의 대중화에 힘씀.
1850 프링스하임(Alfred Pringsheim, 1850-1941 in Zürich, Schweiz), 아셰키나제 유대계, 독일 수학자. 복소수 및 연분수 전문가. 예술품 수집가.
1853 리끼에(Charles Riquier, 1853–1929), 프랑스 수학자. 과학아카데미 회원. [fr.wiki에 정식 항목이 없다. 이상타.]
1854 푸앵카레(Jules Henri Poincaré, 1854-1912), 프랑스의 수학자. 소르본대학 천문학 교수, 1908년 아카데미 회원. 협약주의(컨벤셔널리즘, 규약주의, 규약설 또는 편의주의), ‘고전 역학의 경우 뉴턴의 운동법칙을 기반으로 하든지 라그랑주 역학으로 하든지 둘 다 옳으며 어느 쪽이 맞는지 진위성을 따지는 일은 의미가 없다.’
Théorie du potentiel newtonien, leçons professées pendant le premier semestre 1894-1895. G. Carré et C. Naud (Paris), 1899. 쁘와송(Poisson, 1781-1840)에 의해 포텐셜의 개념이 도입되었고, 쁘와까레는 1894년 학기에 강의 했으며, 그것을 르화(Le Roy, 1870-1954)와 뱅상(Vincent, 1872–1955)이 정리하여 1899년 출판하였다. 이로서 수 또는 수학의 개념들에 대한 직관주의 등장의 길을 열었다. 수학계에서 벩송이 주목받게 되고 르화는 1912년 새로운 철학을 쓰게 될 것이고 네델란드에서 수학의 직관주의가 등장할 것이다.
1857 몰크(Jules Molk, 1857-1914) 프랑스 수학자.
1858 밀오(Gaston Milhaud, Samuel Milhaud, 1858-1918), 프랑스 철학자, 과학사가 Essai sur les conditions et les limites de la certitude logique, thèse de doctorat, Paris, "Bibliothèque de philosophie contemporaine" Félix Alcan, 1894.
1868 꾸뛰라(Louis Couturat, 1868-1914) 프랑스 철학자. 논리학자, 수학자. La Logique de Leibniz : d'après des documents inédits, Paris, Félix Alcan, 1901.
1870 르화(Edouard Le Roy, 1870-1954), 프랑스 철학자. 수학으로 교수자격. Une philosophie nouvelle: Henri Bergson, 1912) 그는 지구화학자 베르나드스키(Vernadsky, 1863-1945)의 강의(1922 봄-1925여름)를 들었다. / 협력자 G. Vincent(s.d.): 벵상은 찾을 수 없다.(58VMI)
1872 뱅상(Georges Vincent, 1872–1955), 프랑스 수학자. 1894-1895년 소르본 대학교에서 진행된 푸앵카레(Henri Poincaré)의 ‘뉴턴 퍼텐셜 이론(Théorie du Potentiel Newtonien)’ 강의 기록하고, 편집하여, 꼼꼼히 정리하여 1899년 출판했다. - [논리주의와 형식주의와 달리, 20세기를 알리는 또 다른 한 방향(직관주의)이다.] (59RKB)
1879 주르덴(Philip (Edward Bertrand) Jourdain, 1879–1919), 영국 수학자, 논리학자. 러셀(Bertrand Russell. 1872-1970)의 강의 수강자, 제자. 칸토르와 프레게와 교신하며 러셀의 파라독사에 관심.
1882 베르트랑(Joseph (Louis François) Bertrand, 1822–1900), 프랑스 수학자, 경제학자, 과학사가.
(18:09, 59RKD) (15:18, 59RLE)
#덧글:
4권의 중점과 5권의 차이
4권에서 칸트의 이상적 체계 속에서 수학철학을 형이상학으로 만들었다. 결국 인식의 능력과 대상의 관계를 규명하려 한다. 그런데 꽁트에게서 지식은 사물 또는 자연의 움직임을 아는 것이다. 그래서 분석학에서 전자의 경우에는 사물과 대상들을 정태적으로(우주론) 구성하고 조직화한다. 이에 비해 후자의 경우에는 물질과 사건들을 동적으로(우주발생론) 변형론(변환론)을 제기하다. 전자에서 논리를 바탕으로 지식체계를 구성하는 것이고, 이를 사회에 적용하여 국가를 구축하는 데 있다. 후자에서는 물질과 심정의 움직임을 도형이나 수에 의해서가 아니라 대수의 방식에 의해 그래프를 그리면서 표현하려 하며, 미분과 적분에는 기울기만큼이나 운동의 방향이 중요하게 된다.
분석학에서는 형이상학과 동역학의 관심의 차이가 칸트와 꽁트를 갈라놓았듯이, 산술학에서는 프랑스에서는 산술학의 기원을 퓌타고라스로 돌아갔는데, 앵글로 색슨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로 돌아갔다. 왜 프랑스철학이 공화국인데 비해, 앵글로색슨이 제국주의로 향하는지를 보게될 것이다.네오-퓌타고라스주의(néo-pythagorisme) 또는 네오-아리스토텔레스주의(néo-aristotélisme), 전자에는 르누비에와 메레, 후자에는 프레게와 러셀이 연관있다.
(59QMH)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