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4장 34-35절
34.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그들에게는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35.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지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라
사도 “바울의 가르침이 그리스도교 ··교회 내에서, 많은 반(反)여성 편견의 근거로 사용되어 왔다.” 뉴질랜드, 오클랜드의 세실리 러시턴 판사는 1993년 초에 키프로스에서 열린 영연방 법률 심의회에 제출한 한 문서에서 그와 같이 말하였다. 이 여판사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디모데에게 보낸 서한에는 바울의 생각이 이렇게 나타나 있다. ‘여자가 가르치거나 남자에 대하여 권위를 행사하는 것을 나는 허락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잠잠해야 합니다.’”—디모데 전 2:12, 「신세」.
바울은 여자의 역할이나 지위에 관해 기록하였을 때, 단지 개인적인 견해를 표명한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것인가? 전체적으로 볼 때, 바울의 서한 혹은 편지는 참으로 반여성 편견을 반영하는가? 바울이 디모데에게 한, 위에 인용된 말은 어떤 경우에 적용되는가?
바울의 신임장
스물일곱 권의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 중 열네 권은 바울이 쓴 것이다. 바울이 여러 언어로 말하는 기적의 능력을 가졌다는 것은 그에게 성령이 작용하였다는 증거다. 그에 더하여, 바울은 초자연적 환상에 대해 증언하였다. (고린도 전 14:18; 고린도 후 12:1-5) 자기 희생적인, 온 영혼을 다한 그리고 사랑에 찬 그의 본은 동시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따뜻한 형제 애정의 밀접한 띠를 형성하게 하였다. (사도 20:37, 38) 여자에 대해 말한 것을 포함하여, 바울의 기록들은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것으로 가르치기에 유익한 모든 성경’의 일부를 구성한다.—디모데 후 3:16, 「신세」.
바울의 편지에 나오는 여자들
바울이 여성을 인정해 주고 존중하였다는 증거가 그의 기록 전반에 걸쳐 풍부하게 들어 있다. 되풀이하여 그는 회중과 가정의 여러 가지 역할과 관련하여 여자들을 언급한다. 그는 자기 편지 중 하나에서 그리스도인 목자의 바람직한 특성을 유모가 나타내는 특성에 비하였다.—데살로니가 전 2:7.
사도 바울은 여러 편지에서 많은 그리스도인 자매의 이름을 언급하며, 그들을 따뜻하게 칭찬한다. 로마에 있는 회중 성원들에 대한 그의 안부에는 “주 안에서 수고한” 어떤 여자들에게 특별히 보낸 안부가 포함되어 있었다. (로마 16:12) 바울은 유오디아와 순두게와 관련하여 빌립보에 있는 형제들에게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부녀들을 [도우라]”고 격려하였다. (빌립보 4:3)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에서, 바울은 젊은이인 디모데의 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의 본이 되는 믿음을 인정하였다.—디모데 후 1:5.
그러면 그리스도인 자매들이 바울에 대해 어떻게 느꼈는지를 알려 주는 것이라도 있는가?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울은 개인적으로 친밀한 교제를 누렸던 아굴라와 브리스가 부부에 대해, 아굴라뿐만 아니라 아내인 브리스가도 바울의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놓았”다고 증언하였다.—로마 16:3, 4.
반여성 편견?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권하되 아비에게 하듯하며 젊은이를 형제에게 하듯하고 늙은 여자를 어미에게 하듯하며 젊은 여자를 일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하라.” (디모데 전 5:1, 2) 바울이 디모데에게 한 이 말은 여성에 대한 건전한 존중심을 반영하지 않는가? 바울은 그리스도인 회중의 남자와 여자에게 동일한 수준의 존귀함을 부여한다. 그는 이렇게 기록하였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라디아 3:28; 사체로는 본지에서.
결혼 생활에서 하나님께서 정하신 역할과 관련하여 바울은 이렇게 기록하였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에베소 5:22, 23; 비교 고린도 전 11:3) 그렇다. 남편과 아내 각자의 역할은 다르다. 그러나 이것은 한 배우자가 열등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역할은 상호 보완하는 것이며,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일은 도전이 되는 일이지만, 그 도전에 응한다면 가족의 복지가 증진된다. 더 나아가 남편의 머리 직분은 압제적이거나 사랑이 없는 방법으로 행사되어서는 안 된다. 바울은 계속하여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몸 같이” 해야 하며, 아내를 위해 기꺼이 큰 희생을 치러야 한다고 기록하였다. (에베소 5:28, 29) 자녀들은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에게 순종해야 한다.—에베소 6:1, 2.
또 주목할 만한 것은 바울이 부부 관계에 대해 한 말이다. 공평하게도 바울은 이렇게 썼다. “남편은 그 아내에게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찌라 아내가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이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느니라].”—고린도 전 7:3, 4.
“여자[는] ··· 잠잠해야 합니다”
서두에서 인용한 디모데 전서 2:12에 나오는 바울의 말을 고려해 보면, 그가 여자의 ‘잠잠함’을 주장한 것은 반여성 편견에서 나온 것인가? 그렇지 않다! 여기서 요구되는 ‘잠잠함’이란 회중에서 가르치는 일이나 영적 권위를 사용하는 일과 관련되며, 이 요구는 앞서 언급한 하나님께서 규정하신 남녀 관계에 대한 존중심에서 나온 것이다.a
이것은 여자가 하나님의 진리를 가르치는 자가 될 수 없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바울은 젊은 여자들에게 “선한 것을 가르치는 자들”이 되라고 연로한 여자들을 격려하였다. 디모데를 가르친 유니게와 로이스의 본을 따라 그리스도인 어머니들은 자기 자녀들을 경건한 방법으로 훈련해야 한다. (디도 2:3-5; 디모데 후 1:5) 오늘날 여호와의 증인의 회중에 있는 수많은 그리스도인 여자들은 공개적으로 좋은 소식을 전파하며 남녀를 제자로 삼는 일에서 유오디아와 순두게의 본을 따름으로써 영적 성취감을 얻는다.—시 68:11; 마태 28:19; 빌립보 4:2, 3.
이제, 어떤 평가를 내리겠는가? 바울의 기록을 전체적으로 볼 때, 그가 반여성 편견을 가졌다는 비난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는가?
a 디모데 전서 2:11(「신세」)의 “온전히 복종하는”이라는 표현에 관해 성서학자 W. E. 바인은 이렇게 말한다. “이 권고의 의도는 정신과 양심을 양도하거나 개인이 판단해야 할 의무를 포기하라는 것이 아니다. ‘온전히 복종하는’이라는 말은, 예를 들어 그 다음 구절에 나오는 것처럼, 권위를 침해하지 말라는 경고이다.”
바울은 정말 여성혐오자였을까?지중해의 눈으로 본 바울/케네스 E 베일리 지음/김귀탁 옮김/새물결플러스
렘브란트가 1635년에 그린 사도 바울의 초상화. 바울은 고린도전서를 통해 음행, 근친상간, 파당 짓기, 우상제물을 먹는 것 등 온갖 문제를 안고 있던 고린도교회에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고 권면했다.
오늘날 고린도전서를 둘러싼 논란은 크게 고린도전서의 수신자 범위와 바울의 여성차별주의자 혐의라는 두 가지 쟁점을 두고 벌어진다. ‘지중해의 눈으로 본 바울’(새물결플러스)의 저자 케네스 베일리는 고대 히브리어 문헌에 대한 전문적 이해, 1세기 지중해의 문화적 배경, 4세기 이후 아랍어 시리아어 히브리어 등 23권에 달하는 역본을 통한 비교분석을 바탕으로 오해를 풀어나간다.
먼저 고린도전서가 ‘고린도교회만을 위해 쓴 특수한 편지냐, 아니면 고린도교회를 포함해 전체 교회에 보낸 편지냐’ 여부가 문제가 된다. 고린도교회만을 위해 쓴 편지로 보게 되면 고린도전서에 담긴 바울의 신학적 관점은 오늘날까지 적용될 수 있는 보편성을 상당 부분 잃게 된다. 실제로 많은 현대 신학자들은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있는 음행, 근친상간 등 특수한 문제를 다뤘으며, 내용이 뚝뚝 끊어지는 것 같은 인상을 주고 있어 “돌아다니며 쓴 편지”라고 주장한다.
베일리는 이에 대해 고린도전서가 전체 교회에 보낸 편지라 주장한다. 고대 히브리어 문헌은 ‘평행법’이라는 독특한 수사구조를 가진다. 오늘날 흔히 쓰이는 구조는 ‘A-B-C’의 미괄식이나 ‘C-B-A’의 두괄식이다. 하지만 히브리어 문헌은 ‘A-B-C-B′-A′’와 같이 평행 구조를 취하며 가운데에 핵심 주장을 서술한다.
이 같은 주장에 의하면 편지가 중간에 끊어지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은 바울이 히브리어 문헌의 구조적 특성을 반영해 정교하게 고린도전서를 구성했기 때문이다. 결국 고린도전서는 정교한 다섯 개의 논문으로 짜인 한 편의 치밀한 신학적 저술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다음은 바울이 여성차별주의자라는 혐의점에 대한 갑론을박이다.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고전 11:3) 같은 발언은 맥락 없이 들을 경우 “바울은 여혐(여성혐오주의자)”이라는 일부 주장의 핵심 근거가 된다.
베일리는 우선 여자와 남자가 교회에서 같이 기도하고 예배하는 일에 참석하고 있었으며, 바울은 여자가 기도하고 예언하는 것을 멈추는 게 아니라 머리에 두건을 쓰라고만 했다고 설명한다. 여성의 일방적인 복종보다 성(性)의 구별에 초점을 뒀다는 것이다. 특히 머리에 두건을 쓰지 않는 것은 당시 문헌과 남겨진 조각상 등 지중해의 문화적 맥락을 고려할 때 신전 창녀들의 모습이었다고 저자는 추정한다.
이어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고전 11:3)는 구절에 대해서는 머리를 뜻하는 그리스어 ‘kefale’을 지배하는 권위가 아니라 원천이라는 의미로 해석한다. 이에 따르면 남자는 여자보다 우월한 존재가 아니라 먼저 난 존재일 뿐이다. 만약 먼저 난 순서대로 존귀하게 여겨진다면 인간은 앞서 지어진 식물이나 짐승보다 비천한 존재가 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고전 11:9) 역시 여자가 남자에게 일방적으로 복종해야 할 것처럼 오해될 소지가 있다. 베일리는 ‘위하여’를 뜻하는 그리스어 전치사 ‘dia’는 다른 역본에서 ‘때문에’로 번역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보면 여자는 인간 ‘때문에’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남자를 구원하기 위해 보냄 받은 존재가 된다. 곧 바울은 여성의 일방적 복종을 주장한 게 아니라 남녀평등과 상호의존을 주장한 인물이 되는 것이다.
저자는 항로를 조금만 벗어나도 강한 경고를 하는 방식이 아니라 미지의 물결을 따라 방치된 섬과 어귀를 탐험한 뒤 충실한 기록을 남기는 길을 택했다고 말한다. 경직된 해석의 틀을 벗고 지중해 인근을 항해하는 기분으로 고린도전서 속으로 여행을 떠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