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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48 이성한 (neopol )
이대단상14: 그곳에 오리지널이 있었네 3.. 04/06 20:02 136 line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칠전팔기니 오똑이 인생이니 하는 말도 무수히 들어 봤습니다.
그러나 칠전팔기니 오똑이니 또는 어머니와의 그리운 만남이니 전부
기회가 주어져야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물론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고, 기회는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쟁취하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오리지널> 최초등반에 실패했다고
이대앞을 온통 헤메고 다니면서 그 놈의 기회를 스스로 만든다는 것은
여간해서는 인간의 탈을 쓰고 할 짓은 못된다는 것이지요.
생각해 보십시요.
지나가는 이대생에게 "저랑 같이 오리지널에서 맛있는 오징어튀김이나
씹으면서 인생을 논해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라던가 "저 시간있으면
요앞에 오리지널에서 쫄면이나 한 그릇 같이 안하실래요?" 한다면
열에 다섯은 "너 혼자 먹으세요!"하면서 뒷걸음을 칠 것이며, 나머지
중에서도 서넛은 "집에 가서 발이나 씻으세요" 할 것이며, 남은
하나도 "별 미친 놈 다 보겠네!" 하고 말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선 지네들끼리 시시덕거리며 "저런 놈들땜시 정의사회구현이
안되는 것이여!" 하면서 졸지에 흥분들을 하시겠지요.
(요즘에는 시도때도 없이 세계화를 외쳐대는 분위기지만, 당시에는
밤낮없이 "정의사회구현"이었었지요.)
좌우지간에 <오리지널> 가보겠다고 길에서 헌팅을 할 수도 없었던
일이고, 너같이 헷소리나 늘어 놓는 녀석에겐 소개고 나발이고 없다고
이를 갈던 선배에겐 차마 또 한 번의 기회를 부탁드릴 수도 없더군요.
정말로 어쩔 수 없었던 시대상황이었습니다. 보다 더 솔직하게 말씀
드리자면, 어차피 포기한 새출발, 튀김을 먹느니 깡소주를 까는게
훨씬 신나는 일이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런 식으로 <오리지널>은 제 뇌리에서 아스라히 사라져 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어렴풋해지는 기억과 함께 보람찬 대학생활에
대한 결심이니 기대니 하는 것들도 함께 바래져 가고 있었지요.
그리곤 어느날, 가장 친하게 지내던 친구 한 놈이 도서관 5층 창문을
깨고 밧줄을 타고 내려오던 바로 그 날, 던질게 없어서 학생식당 숟가락
과 젓가락을 집어던지고 이따금씩 라면국물이 그득 담긴 스텐레스
양재기까지 집어던졌던 그 날, 허파에 가득찬 최루탄 가스를 소주로
씻어내며 저는 어둑어둑해져 가는 신촌거리를 그저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신촌역 앞 창고건물의 이층계단에 앉아 신촌을 오고가는
사람들을 그저 멍하니 지켜보고 있었습니다.(지금 그곳에는 이화호프라는
맥주집이 들어서 있군요. 신촌역 앞 광장은 졸지에 주차장으로 변해
있구요.)
오고가는 사람들에게야 모두들 각자의 생각들이 있을테고, 그
한가하거나 때로는 바쁜 걸음걸음마다에는 저마다의 사연들이 담겨
있을테지요. 저는 어쩌면 단지 먼 발치에 서있는 단순한 국외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습니다. 어쩌면 내가 던진 짱돌은
나 자신에게 던져진 것이 아니었나 하는 느낌도 듭디다.
그러면서 모든 것이 우스워지더군요.
내가 읽은 책, 내가 만난 사람들, 내가 흥분하던 사건들, 내가 같이
울 수밖에는 없었던 사연들, 내가 배운 잡다한 헷소리들, 그리고
내가 품어왔던 온갖 꿈들, 그리고, 그리고.......
갑자기 섬광같은 빛이 번쩍이며 무언가가 제 머리를 스쳐 갔습니다.
"아! 배고프다!"
그렇습니다. 팔팔한 20대 초반에 점심을 건너 뛰고 저녁시간이 얼추
지나고 있다는 것을 느낀 것은 바로 그 때였습니다. 자살만이 유일한
선택이라고 주장했던 쇼펜하우어도 하루 세 끼 밥만큼은 건너뛰지 않고
꼬박꼬박 쳐먹었습니다. 세상만사 째려 보고 비뚜로 보고 꼴리는대로
보지 않고는 못견디던 라깡도 밥만큼은 꼬박꼬박 챙겨 먹었습니다.
가장 절박한 수준에서의 분배를 주장하던 로울스도 비아프라 주민들이
굶어 죽어갈 때도 제 밥만큼은 챙겨 먹었던 것입니다.
하물며 쇼펜하우어도 라깡도 로울스도 아닌 제가 왜 끼니를 걸러야 하는
것입니까? 술이야 음료는 될지언정 끼니꺼리는 안된다는 성경말씀도
있지 않습니까? 전 굳게 결심했습니다. 아니 정말 악에 받쳐 다짐했습
니다.
"그래 뭔가 먹어 보자!!!!!"
무언가를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오래 동안 잊고 지내던
2<오리지널>의 기억이 과거의 여인처럼 제 기억에 떠오르더군요.
아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우리 누이처럼 모든 것을 포근히
안아 줄, 아니 그보다는 제 허기짐을 아주 싼값으로 해결해 줄
<오리지널>이 그 곳에 있을 것입니다. 엎어지면 코닿을 거리에 바로
<오리지널>이 있을 것입니다. 물론 신촌역에서 <오리지널>까지 걸어
가지 않고 엎어져서 코닿고, 엎어져서 코닿는 몰상식한 방법으로
찾아간다면 제 코는 쌍코피와 함께 아작나고, 지나가던 행인들은
떡볶이 값이나 하라며 몇 푼 던져줄런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차피 어둑어둑해져 가는 시간, 이제는 두려움의 근원인 떼거리
여인네들도 대부분 집으로 돌아 갔겠지요. 이 참에 <오리지널>을 가
보자. 설사 수억의 여인네들이 그곳에 앉아 있으면 또 어떠리!
어차피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모습 자체에 사랑해 줄 아무런 건덕지도
없고, 그냥 묵묵히 앉아 우적우적 고구마 튀김이나 씹어 먹고
달라는 대로 돈이나 주고 나오면 되는 것이 아닌가? 막상 결심을 굳히고
나니 눈에 뵈는게 없어지더군요. 무서울 게 없었습니다.
"(그래 가자. 고지가 바로 저긴데 예서 말 수는 없다.)"
저는 약간은 휘청이는 걸음걸이로 대현골을 향해 나갔습니다.
대현골 7부 능선에 자리잡은 <오리지널>을 향해 나갔습니다.
먹는게 남는거 아니겠느냐는 생각으로 그 곳을 향해 나갔습니다.
가다가 약간의 오바이트가 있었지만 그냥 후르륵 삼켜 버리고 나아
갔습니다. 매캐하고 신 맛은 있었지만 <오리지널> 가서 냉수로 씻어
내자는 생각을 하니 별 너절한 기분은 안 들더군요.
그곳에 <오리지널>이 있었습니다.
멀찌감치에서도 <오리지널> 간판은 보였습니다.
그토록 오래 동안 찾아 올 수 없었던 너, 내 마음 속의 그 대,
이제 드디어 너를 만나는구나! 비록 너의 대문간에 노란 손수건은 걸려
있지 않아도 좋아라. 내가 너를 알고 이제 너 또한 내 코묻은 돈을
받아 챙길 수 있을 터인데.....
여기가 바로 <오리지널>이었습니다.
"내부수리중인 관계로 일시 휴업합니다. 죄송합니다."
종이에 대충 휘갈긴 글씨 밑에는 <사장 백>이 아닌 <주인 백>이라는
말꼬리도 달려 있었습니다.
이 그지같은 주인아! 왜 그 모래 같이 수많은 날들을 놔두고 요따위
날만 골라 내부수리를 한단 말이냐! 정말 이럴 수가 있단 말이냐!
오, 신이시여! 튀김의 신이시여! 떡볶이의 신이시여! 쫄면의 신이시여!
정녕 저를 이렇게까지 거부하십니까?
내가 정말 그렇게 미워?
오리지널 2차 등정의 실패기 요기까집니다....
다음에 또 뵙죠.
웃자고 하는 이야긴데 우습다고 하시는 여러분들께 고마움의 마음은
전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약간 찜찜하기도 합니다.
제 글이 우습다는 것인지, 저 인간 하는 꼬라지가 우습다는 것인지....
#8213 이성한 (neopol )
이대단상15: 그곳에 오리지널이 있었네 4.. 04/08 17:48 187 line
어제는 속칭 National Drinking Day, 국가가 정해준 술마시는 날
이었습니다. 매달 적어도 세 번은 맘놓고 술마시라고 국가에서 지정해
준 날, 즉 10부제에 걸린 날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술을 마셨습니다.
국가시책에 적극 호응하자는 의도도 있었지만, 술마실 이유가 없어
억울하다는 기분으로도 술을 마셔대는 판인데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좌우간 닭갈비 안주로 일차를 하고, 닭똥집 안주로
이차를 하고, 오늘 아침에는 쓰라린 속을 계란국으로 씻어낸 후 출근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양계장 협회에서는 감사의 전화
한 통이 없더군요. 이런 고객관리로 어찌 우루과이 라운드에 대처할런지
심히 걱정(?)스럽습니다.
좌우간 이런 쓰잘데 없는 걱정을 하는 중에도 저 화사한 주말의 봄날은
여전히 제 곁에 머물러 있군요. 어차피 저 속으로 뛰어들 수 없는 것이
지금의 형편이라면 어쩌겠습니까? 낙서나 해야죠....
<오리지널>은 어쩌면 저하고는 평생 인연이 닿지 않는 장소는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그러나 저는 인연이 안되면 전연이랑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전연도 어려우면 근연, 또는 욘연도 시도해 봐야
하겠지요.(인연은 알겠지만 전연, 근연, 욘연은 웬 오타냐구요? 이래서
글보다는 말이 좋은 법이지요. 연음법칙을 염두에 두고 큰소리로 읽어
봐 주세요. 그래도 잘 이해가 안되시면 별~들에게 물어봐 주세요.)
<오리지널> 등정에 두 번씩이나 실패하고 나니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
오르더군요. 아예 노골적으로 열까지 나기 시작합디다. 물론 열병으로
몸져 누울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대신에 이건 장난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오리지널>을 극복하지 못하고는 난 평생을 후회속에서
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생기더군요. 이상한 집착이 오기와 함께
생겨난 것입니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고 합니다. 남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성에가 끼일 수 있는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굳은
의지를 표명하자 비단 한을 품지 않더라도 자기 동네에서는 오뉴월에도
항상 눈보라가 날린다고 알라스카에 있는 에스키모 친구가 전화를 걸어
주었습니다. 별 쓰잘데 없는 말을 속담이라고 쓰고 있는 나라도 다
있다는 견해도 아울러 표명해 주었습니다. 별 쓰잘데 없는 일에 쓰잘데
없는 신경쓰면 국제전화요금이 아깝지 않느냐고 제가 대답해
주었습니다. 수취인 부담으로 거는 거니까 날밤이나 새면서 이야기하자고
그 녀석이 껄껄껄 웃으면서 이야기 하더군요. 에라, 이렇게 국제적인
망신까지 당한 판인데 이제 <오리지널>은 결코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그 날 이후로 만나는 사람들마다 <오리지널>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대학생활과 <오리지널>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대현골과 <오리지널>의 의미에 대해서, <오리지널>을 통해 본 이대생의
모습에 대해서, 그리고 <오리지널>이 나를 거부했던 이야기들 까지도
낱낱히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마지막에는 "그러니까 우리 <오리지널>에
가서 떡볶기나 같이 먹자"는 간곡한 애원까지도 곁들였습니다.
내가 참석했던 수많은 모임들에서도 전 <오리지널>에 대한 이야기를
결코 빼놓지 않았습니다. 동문회에 가서도, 써클에 가서도, 할머님 칠순
잔치에서도, 심지어는 수업시간에도 <오리지널>을 입에 붙이고
살았습니다. 10년이 지난 지금 철식이 아빠가 된 친구 성재는 당시의
나의 모습이 장엄하다 못해 처절하기까지 했다고 언젠가 동문들이 모인
술자리에서 제게 말해 주었습니다. 한 가지 일에 몰두하는 나의 모습이
차라리 아름답기까지 해 보였다고 애가 둘인 미경이도 은근한 눈빛으로
나를 보며 말했습니다. 그 정도의 열정으로 차라리 여자를 사귀지,
왜 그렇게 오징어 튀김에 집착했었는지 아직도 이해가 안된다고 병석이도
한마디 했습니다. 먹는 것에 목숨걸라는 것이 우리 집의 가훈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저 자식은 아직도 그 오징어 튀김 이야기냐고, 넌
질리지도 않냐고 과대표였던 상우가 말했습니다. 너 한 번만 더 떡볶기
이야기 하면 차라리 이민이나 가 버리겠다고 학교 앞에 고급 식당을
차렸다가 분식집 쫄면땜에 쫄딱 망해 버린 진영이도 이야기했습니다.
물론 그 날 저희들의 술안주는 오징어가 아니라 세발낙지였습니다.
모두들 세발낙지를 한 손에 움켜쥐고 오물오물거리면서도 대화의 주제가
10년전 제가 떠들고 다니던 <오리지널 가보자>는 이야기였다니 제가
생각해도 그 때 심하긴 심했었나 봅니다.
하늘도 무심하지는 않았던지, 마침내 제 열성에 감복해서 모임 애프터로
<오리지널>을 가자고 결정한 써클팀이 나타났습니다. 그 모임은 이대
사회학과 학생 서넛과 저희 과 학생 서넛이 함께 하던 TIME지 읽기
모임이었습니다. 사실 그녀들과 우리들은 정말 각별한 사이였습니다.
원래 타과, 또는 타교생과의 스터디 모임은 구성원간에 각별한 관게가
형성되지 않고는 오래 끌지 못하는 법입니다. 특히 여학생들과의
모임은 더더욱 그러한 법입니다. 정말로 죽고 못 살 정도의 각별한
관계가 되어 스터디 모임이 쌍쌍파티가 되던가, 아니면 피아간에
정말로 <각>자 <별>볼일 없는 각별한 사이가 유지되어야만 모임도 오래
유지되는 법이지요.
그런 점에서 이대 사회학과 여학생들과 저희 과 학생들은 상당히 후자에
근접해 있는 각별한 사이였습니다. 오죽하면 모임이 계속되는 동안
단 한 번도 애프터가 없었으며, 주어진 양만 끝나면 칼같이 다른 약속
들을 잡아서 바람같이들 사라졌겠습니까? 그렇게 냉냉하던 모임에서
애프터를 한 번 해 보자는 것도 의외였고, 더구나 그 애프터 장소를
성한이가 그렇게 목메어 외치던 <오리지널>에서 하자고 한 것도
기대 이상이었던 것이지요.
저는 감격에 겨워 목이 메었습니다. 한 명 한 명의 손을 붙잡고
고맙다고 인사를 했습니다. 예닐곱명째가 되자 아예 눈물이 앞을 가려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그 친구들도 자못 감격했던가 봅니다.
죽은 놈 소원도 들어 주는데 산 자식 소원을 드디어 들어 주게 된 것이
스스로도 대견했던가 봅니다. 목이 메어 어쩔 줄 모르는 제게 한
여학생이 <크리넥스>를 꺼내 주었습니다.
"성한아, 코나 닦아라. 그리고 제발 콧털 좀 짜르고 다녀라."
"그래, 콧털만 짜르겠냐? 아예 머리털두 뽑아 주마."
(말이 씨가 되었는지 지금 제 머리는 불모지댑니다. 어느날부턴가
거울 앞에 브루스 윌리스가 나타나던가 싶더니, 이젠 조만간
율 부린너가 아침마다 들여다 보는 거울 속에 등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는 굴다리 앞에 있는 <에로이카>에서 차 한 잔씩을 시켜 놓고
이악물고 4시간 가까이 엉덩이에 종기나도록 앉아 있었고, 시도 ㎖도
없이 냉수를 시켜 먹었으며, 주인 언니가 급기야 테이블 근처에 와서
대걸레질을 해댈 즈음, 소원이던 <오리지널>을 향해 자리에서 일어
섰습니다. 저는 크리넥스로 코를 풀면서 따라 갔습니다.
내부수리를 하고, 한 칸짜리 매장을 두 칸으로 벌리는 사업확장을
한 덕에 <오리지널>은 무척이나 깨끗한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아주 세련된 폼으로 의자에 펄썩 주저 앉았습니다.
정말로 정말로 힘들게 찾아 온 <오리지널>이었습니다.
저는 일순 허탈해지기도 하고 감개가 무량하기도 해서 느긋이 그 기분을
즐기자고 세상에서 제일 편한 자세에서 등을 기대었습니다.
그런데 오리지널의 의자에는 등받이가 없었습니다. 다행히 날렵한
운동신경 탓에 뒤로 자빠지면서도 코는 깨지지 않았습니다.
액땜도 더럽게 하네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그토록 힘들게 찾은
<오리지널>인데, 요 정도의 해프닝도 없어서야 되겠느냐고 저를
달랬습니다. <오리지널>의 메뉴는 눈이 부셨습니다. 신라호텔 부페에도
없는 다양한 메뉴들이 사면 벽에 가득 붙어 있었습니다.
말로만 듣던 <오징어 튀김>의냄새, 곳곳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고추장 범벅을 한 라면 사리를 먹고 있는 여인들, 어떤 여인네는
떡볶기 양념에 고구마 튀김을 찍어 먹는 새로운 식생활문화도 보여
주었습니다. 저희도 주문을 했습니다. 마음같아서는 종류별로 모두
먹어 보고 싶었지만, 회비를 계산해 본 총무동지께서 즉석떡볶기
4인분과 튀김 섞어서 4인분, 그리고 라면사리 추가로 두 개를 시키는
것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습니다.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여기가 바로 <오리지널>인데요....
"그리고 아줌마, 여기 소주 두병만 주세요..."
"여긴 술은 안파는데요..."
"어?! 식당에서 술도 안 팔아요?"
제 친구 중의 한 놈이 개념없이 말했습니다. 그 자식은 점심먹으러
독수리 분식에 가서 수제비를 시켜도 양반은 반주를 해야 하는 법이라며
꼬박꼬박 소주를 챙겨 마시던 친구였습니다.
"여긴 술 안 팔아요."
"그럼 사다가 먹을테니까 잔이나 갖다 주세요.!"
"여기서 술마시면 안되는데요!"
"아줌마, 우리가 술을 사다 먹건 말건 아줌마가 무슨 상관이에요?"
"그럴려면 차라리 딴데 가서 드세요..."
"야, 우리 처음으로 회식하는건데 술 한 잔 없이 무슨 맛으로 하냐?
차라리 딴데가서 술이나 한 잔 하면서 이야기 하는게 어떠니?"
또 다른 녀석도 거들었습니다.
"그래도 모처럼 성한이가 가자고 해서 온건데 그냥 여기서 먹자!"
에구, 이쁜 것! 여자의 본심은 결정적인 순간에 나타난다더니, 평소에
제게 지나치게 각별했던 그 녀의 본심을 확인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책상을 넘어가서 뽀뽀라도 해 주고 싶었습니다.
"그럼 여기서 일단 먹구 이차루 술마시러 가자."
저도 한 마디 했습니다.
"안돼! 회비가 모자라!!!!!!!"
총무를 맡고 있는 여학생이 이야기했습니다.(에구 이 갈리게 미운 것!)
"그래, 그럼 요 밑에 할머니집에나 가자!"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어쩔시구리! 니들 정말 이럴꺼냐? 아무리 민주주의 사회라고 먹는것도
다수결이냐? 저는 그 날, 할머니집에서 동태찌개에 공기밥을 꾸역꾸역
먹고 소주를 깠습니다. 회비가 좀 남았으니까 해물잡탕이나 더 시키자고
총무가 이야기했지만 회비는 아껴야 한다고 이악물고 반대하면서
그냥 갓김치로 깡소주를 마시자고 했습니다.
너혼자 깡소주 마셔라, 우리는 안주 시켜 먹겠다는 친구들이 그렇게
야속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렇게 해서,
3차 <오리지널> 등정은 베이스 캠프까지 치고 물러서게 되었던 것입니다.
정말 젠장할!이었습니다.
#8740 이성한 (neopol )
이대단상16: 그곳에 오리지널이 있었네 5.. 04/19 09:59 168 line
오랜만입니다...
지긋지긋할 정도로 정신없는 시간들이었습니다.
무위도식을 인생의 소박한 목표로 설정하고 살았던 제게
지난 열흘간은 이게 사람이 사는건가 싶을 정도였습니다.
4월말에 직장에서 조금 큰 행사를 개최한다고 해서 그런가 보다 했더니
그런가 보라구 행사진행 총책임을 제게 맡기데요. 그런가 보는게
어떻게 보이는 건지 지금 적나라하게 실감하는 중입니다.
좌우간 행사가 끝날때까지는 제정신이 아니게 보내야 할것은 같구..
그렇게 살기는 싫구 어째야 좋을런지 모르겠습니다...
예상치도 않았던 조회수의 행진이 계속되어가는 것도 어㎎든 심란한
상황이구요... 처음에는 메일주신 분들에게 일일이 감사의 글을 보내
드렸습니다만, 제 코가 석자다 보니깐 관심주시는 분들께 개별적으로
고마움(?)의 인사마저도 드릴 수 없는 상황이 조금은 안타깝군요...
오리지널에 대한 글들을 채 못 끝낸 상태에서 한 열흘을 건너 뛰다 보니,
<도대체 오리지널이 어디냐?>,
<아무리 낙서라도 그렇게 맛대가리 없는 식당에 대해서 주절거릴 수
있는것이냐? 니말 믿구 갔다가 쫄딱 망했다(세상에 증말 믿을 놈..)>,
<도대체 오리지널 주인으로부터 얼마를 받은거냐?(나눠먹자)>
<지방이라 가볼수가 없는데 오리지널 튀김을 소포로 붙여 줄
수 없겠느냐?(물론 돈은 니가 내라)>
등등의 반응을 보여 주신 분들께 부디 오늘의 글(?)을 참조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리지널 이야기는 오늘 뭔 일이 있더라도
쫑내겠습니다...
한두번도 아니고 무려 세번씩이나 오리지널 등정에 실패한 저로서는 사실
별달리 할 말도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세번째 등정은 완전히 꼴대 앞에서
주저앉은 상황이라 하늘을 원망할 수도 없었던 것이지요. 아무리 진인사
대천명이라 한다 한들, 안되는 것은 안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깨끗이 포기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는 여자 막지 말고, 가는 여자
잡지 말라는 공자님 말씀도 있듯이, 오리지널이 내 돈은 안받겠다는데
뭐 하릴없이 짝사랑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인간 가증스러워지더군요. 그렇게 오리지널의 오징어튀김을 입에다 달고
다녔던 제가, 그 이후로는 아예 대현골마저도 쳐다 보기 싫어지더라
이겁니다. 미워 보이면 며느리 뒷굼치가 계란처럼 보이는 것두
밉다면서요? 오리지널에 대한 적개심이 뭉게뭉게 피어 오르다 보니깐,
오리지널을 즐겨 애용하시는 이대생 전부가 미워 보이더라 이겁니다.
물론 제가 이대생들을 전부 미워하거나 말거나 이대는 그때나 지금이나
대현골에 잘 자리잡고 있으며, 제가 이를 갈거나 말거나 오리지널은
여전히 그곳에 있긴 합니다만...
좌우간에 전 그 이후로 레코드나 카세트테이프를 오리지널로 구입해 본
경험이 없습니다. 전부 빽판이거나 구루마판이죠. 컴퓨터 소프트웨어도
오리지널 정품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전부 복사판, 해적판, 쌔벼판
이랍니다. 우리 집 벽에 붙어 있는 그림 중에도 오리지널은 단 한 작품도
없으며, 글을 써도 오리지널 창작은 하나도 없이 전부 짜집기이며,
심지어는 여자를 사귀다가도 이 여자가 오리지널 애인이 될듯 싶으면
눈물을 머금고 헤어짐의 인사를 하여야 했던 것입니다.(요 부분에선
잠시 솔직해집시다. "여자를 사귀다가도 이 여자를 오리지널 애인으로
삼자고 결심하면 그 여자가 저를 황선홍이 똥볼 차듯 차버렸습니다.")
그렇게 전 오리지널을 미워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이 가슴에 증오의 칼을 갈게 되면 세상만사가 모두 나를 적대시하는
것으로 착각하게 되는 법이지요. 저두 그렇게 변해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어머님께서 짐짓 엄숙한 표정으로 제게 한 통의 편지를 내미셨습니다.
펜팔을 하는 것도 아니었고, 편지질(?)까지 할만큼 가까운 사이의 여자도
없는 터에, 다 끼리끼리 모인다고 쓰잘데 없이 편지나 써댈 동성의
친구 하나 없었던 제겐 상당히 의외의 편지였습니다.
'혹시 국민학교때 썼던 국군장병 아저씨께 보낸 위문편지의 답장이 지금
온 것이 아닐까?'
뭐, 요따위 생각을 하면서 뜯어 본 편지는 바로
<입영을 위한 신체검사 통지서>더군요. 국방부인지 서울지방병무청인지는
지금 잘 기억이 안나지만, 제 날짜에 맞추어 안나오면 죽을 줄 알라는
친절한(?) 초청의 말씀과 함께, 대충 몸 깨끗이 씻구 쪽팔리기 싫으면
속옷이라도 갈아 입고 오라는 안내말씀도 동봉되어 있더군요.
어머님은 그 편지를 보시면서 빚독촉장이 아닌 것에 일단 안도의 한숨을
내쉬셨으며, 아버님께서는 이제는 그 동안 피같은 돈 쪼개서 냈던
방위세를 환불받으실 수 있겠다는 기대 섞인 표정으로 그 편지를 낭독
하셨습니다. 누나는 아무런 반응도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남자
사귀느라고 정신이 팔려서 지 하나 뿐인 동생이 군대를 가는지 마는지
아무런 관심도 없었던것이었습니다.
오직 한 분, 할머님께서 "저 어린 것(?)을 어케 그 험한데 보내냐"고
지나가는 말씀으로 걱정을 해 주셨을 뿐입니다....
어쨌거나 신체검사 받는다고 당장 군대가는 것도 아니고, 설사 입대를
하더라도 외박, 특박, 휴가가 있으며, 정 답답하면 영내이탈, 미귀,
탈영 등등을 통해서 얼마든지 제 존재를 알릴 수 있는 판이라 전
별다른 감흥을 갖지 않았던 것입니다. 다만 한 가지, 어쨌거나 목욕은
하고 가야겠다는 생각만을 했을 뿐이었던 것입니다.
혹시 같이 갈 놈이 없나 싶어 몇몇 친구녀석들에게 신검통지서를받은
이야기를 해 보았지만, 제 친구 중에는 서울 중구청에 호적을 보관하고
있었던 놈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신검일자를 며칠 앞둔 어느날,
전 한 두 달 정도를 만나다 헤어진 어떤 여성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물론 헤어진 이유는 위에서 밝힌 바로 그러한 이유때문
이었습니다. 애인하자는데 "난 그냥 지금처럼이면 좋겠어"라던가,
"친구사이로 지내는게 어때"라던가, "얘가 왜 이렇게 주제파악을
못하는 것이니" 따위의 말을 듣는다면, 당연히 헤어질 수 밖에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 여성은 제게 "왜 갑자기그런 농담을 해요"라는 말로 저의
애인하자는 제의를 세련되게 거부했던 여인네였습니다.
"갑자기 왠일로 제게 전화를 다 하셨어요?"
저는 이 여자가 이젠 농담과 진담을 구별할 수 있게 되었나 싶었습니다.
"그냥요, 어떻게 지내나 궁금해서요."
"별걸 다 궁금해 하시네요. 그럼 저 요즘 요따위로 산다고 신문광고라도
한 번 올릴까요?"
"여전하시네요..."
어쩔시구리... 여전하다구? 뭐가 여전한 것이냐? 그럼 내가 전에 너
만날때 언제 어디서 만나자구 신문에다 구인광고라두 했단 말이냐?
내가 홍서범이냐? 니가 조갑경이냐?
"여전하긴요. 너무 갑자기라서 조금 당황해서 그랬을 뿐이죠."
"어쨌든 정말 웬일로 제게 전화를 다...?"
"혹시 내일이라도 시간 좀 있으세요?"
"물론 없죠..."
저는 이 참에 한 번 튕겼습니다. 뭐 어차피 헤어진 사이구, 만나봐야
마땅히 할 일두 없을터에, 혹시라도 레포트 부탁이라도 하거나, 집 이사
가는데 짐이나 날라 달라는 부탁이라도 할런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아니, 사실은 보다 솔직하게 말해서 나는 뭐 맨날 한가하냐?하는 반발심
같은 것때문이었죠...
"그럼 모레는요?"
얼라리... 장난이 아니네? 도대체 이 여인이 왜 이렇게 집요하게 나를
만나자고 하는 것이냐? 모레는 신검전날이라 목욕도 해야 하구(워낙 간만
에 방문하는 목욕탕이라 엄청 시간이 걸릴 것으로 각오하고
있었습니다.), 다음날 정시에 도착할려면 초저녁부텀 잠을 자둬야 할
판인데.... 에라 모르겠다. 삼수갑산을 가더라도 날 버리고 간(?) 여자는
만나줘야 한다. 그것이 군인의 길(?)이다... 저는 신검받으러 가는
주제에 벌써 대한민국 육군이등병 폼을 잡았던 것입니다.
"무슨 일인진 모르지만 중요한 일인가 보죠?"
"네, 꼭 한 번 만났으면 해서요..."
아. 이 처자는 한창 만날때는 그렇게 이놈아 저놈아 하더니 그래도
헤어져 있던 중에 인간이 되었구나 존대말을 다 배우고. 하기사
나도 한찬 만날때는 그렇게 이년아 저년아(?) 하더니 그래도 헤어져
있던 티를 내느라 대뜸 반말을 못하긴 했었지.....
그래서 우리는 약속을 정했던 것입니다.
그녀는 제가 그 어려운 시간을 쪼개서 약속시간을 내준(?)것에 정말로
감지덕지한 모양이었습니다. 전화기를 통해서 울려 나오는 그녀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리는 것까지 감지될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음... 쓰다 보니 너무 길어지는군요....
이럴 수가... 안되겠습니다. 오늘 쫑을 낼려구 그랬는데 지긋지긋한
이야기 한 번 더 늘려 쓰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구 여하튼 이대동 분위기 갈수록 살벌해지는 것 같아 좀 안
좋네요. 여긴 낙서나 올리는 곳은 아닌 것 같네요. ㉤나부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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