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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재가불교의 이론과 실천”의 작성 후기
한동안 박사학위 논문을 작성하느라고 블로그나 카페에 글을 쓰지 못했다. 뒤늦게 시작한 학업이라 어려움이 많았다. 특히 논문의 주제를 ‘재가불교 이론과 실천’으로 설정하고 보니 선행논문이 적어서 논문작성에 어려움이 많았다. 처음 시작은 참고자료로 부족한 선행논문을 재가 불교계에서 활동 중인 재가불교 지도자님들을 직접 찾아뵙고 인터뷰로 자료를 확보하려고 계획했는데 코로나19로 이마저도 원활하지 못했다. 처음 시작은 ‘백 봉 김기수와 보림회’는 그래도 부산 보림선원과 산청 보림선원을 찾아가 인터뷰를 할 수가 있었고 선사님(禪師)들의 배려로 많은 자료를 확보할 수 있었다. 아쉬운 것은 뒤로 계획하고 있던 서울 보림선원은 끝내 찾아가지도 못한 것이다. 더욱 아쉬운 것은 ‘좋달 이희인과 선도회’는 코로나19로 인하여 인터뷰할 기회조차 여의치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필자와 인근에 있는 선도회 부산 선원은 찾아가 인터뷰를 할 수가 있었고 선원장님의 배려로 좋달 이희익선사의 저서와 선도회에 관한 문헌들을 확보할 수가 있었다. 특히 선원장님의 안내로 이상호 박사님의 생수선(生修禪) 논문과 박사님과의 통화는 인터뷰 아닌 인터뷰가 논문작성에 큰 용기와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재가불교의 이론과 실천’의 근원(根源)은 ‘미천 목정배와 대한불교법사회’이다. 필자는 미천 대법사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미천의 제자이다. 미천의 세제불교에 매료되어 재가불교를 선택했고 세제불교를 계승하기 위하여 박사과정을 선택했다. 논문작성과정에서 한때 논문 주제를 ‘미천 목정배와 세제불교’로 송두리째 바꾸려고 생각해보았으나 논문의 객관성과 보편성확보를 고려하여 ‘한국 재가불교 이론과 실천’으로 확정한 것이다. 세제불교에 관한 논문은 차후(此後)로 미루어 두었다. ‘미천 목정배와 대한불교법사회’에 관한 자료는 다양하고 많았다. 필자가 소속된 신행 단체이기도 하지만 오랜 세월 미천 미천대법사를 지근(至近)에서 모셔온 대한불교법사회 편집장인 정충모 이사님의 아낌없는 배려와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충모 이사님은 코로나19로 전화 인터뷰를 통한 많은자료들을 메일로 보내주었다. 노동식 이사장님의 인터뷰를 비롯하여 보충 자료와 교정까지 챙겨주었다. 필자의 박사학위논문은 주위의 배려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더욱 지도교수님을 비롯한 여러 교수님의 보살핌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일찍이 논문작성에 경험이 없었든 필자는 많은 자료를 수집하여 매주 수십 장의 원고를 작성하여 교수님들께 제출하고 가르침을 받았다. 특히 지도교수님은 그 많은 원고를 하나하나 살펴보고 일일이 지도해 주셨다. 필자의 박사학위는 주위 분들의 도움이 만들어낸 결정체이며 모두의 박사학위이며 박사학위의 영광을 다 함께하고자 한다. 필자는 박사학위 논문작성과정에서 1200여장의 원고를 쓰기도 하고 버리기도 했다. 1,200장 원고 중에 300장은 논문이 되고 900장은 휴지통에 버려진 것이다. 노트북의 아이콘을 정리하다 보니 900장 원고 중 일부는 남아 있었다. 그중에서 재가불교를 설명할 수 있는 일부 자료를 취합하여 공개하고자 한다. 편리 상 딱딱한 논문형식을 지향하기 위하여 각주는 생략하기로 했다.
1. 인도불교
불교의 발생지는 북인도 네팔지역이다. 불교의 출발은 교주 석가모니로부터 시작된다. 석가모니는 고대인도 전통 계급 제도인 사성계급(四姓階級)중 두 번째인 크샤트리아 출신이다. 당시의 인도 종교는 브라만교가 대세를 이루고 있었다. 베다교에서 발전한 고대인도 종교 브라만교는 사제(司祭)계급인 브라만이 지배적 위치와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며 최고신(神) 브라만에 대한 중요성을 가지는 의미에서 브라만교 혹은 바라문교라고도 한다. 브라만교는 원래 인도의 토속신앙이 아니다. 기원전 1500년경, 페르시아 북부 유목민족인 아리아족이 가축의 먹이를 구하기 남하하는 과정에서 원주민인 드라비다족과의 전쟁을 일으켜 승리한 아리아족에 의해 형성된 새로운 종교이다.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의 4계급으로 나누어지는 이 제도는 철저히 출생으로 신분이 결정되었으며 계급 간의 이동이나 결혼 등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했다. 사제 계급인 브라만, 군인 혹은 정치적 지배 계급이었던 크샤트리아, 농(農) 공(工) 상인(商人)인 바이샤는 침략자인 아리아족이 차지했으며 노예 계급이었던 수드라는 비(非) 아리아족인 원주민인 드라비다족으로 이루어졌다. 이 신분제도는 당시의 인도 일상생활, 풍습, 사상 전반을 폭넓게 지배했다. 지금까지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브라만교는 자연숭배라는 원시종교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들은 특히 제물을 바치는 것을 강조했는데 가족 단위로 제사를 올리기도 하고 전 부족이 대규모로 희생물을 바치기도 했는데 그 과정에서 사제인 브라만들의 횡포가 심했다. 신(神)과의 소통을 멀미로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브라만들의 사술(邪術)이 극에 달했다. 이러한 횡포에 염증을 가진 사문(沙門)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브라만교는 만인을 함께 포용할 수 있는 종교가 아니라 제사장인 사제만을 위한 종교임을’ 감지한 것이다. 살생을 일삼는 제례와 엄격한 사제(브라만)만을 위한 브라만교의 계급 제도와 특히 날로 심해지는 사제계급의 횡포는 하층민들에게 분노의 대상이 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항하여 새로운 세력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브라만교의 횡포와 사술(邪術)의 종교의식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새로운 종교운동이 일어났는데 이것이 우파니샤드 철학이다.
이들은 제물을 바치는 종교의식에 의해서가 아니라 참된 지혜를 통해 열반에 도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들 신흥 사문들은 우선 브라만사회의 전통부터 배척하고 나섰다. 전통 브라만사회에서는 한 개인의 일생을 4단계로 나누어 살아가고 있었다. 청년 시절에는 스승의 지도로 베다를 학습하는 학습기(學習期)를 거쳐 가정을 이루고 가장으로서 의무를 다하는 가주기(家主期)와 가정을 아들에게 물려주고 숲속에 은거하는 임서기(林棲期)를 지나 무소유로 탁발(托鉢) 수행하는 유행기(遊行期)로 이어오는 브라만 4주기 삶을 배척한 것이다.
혁신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이들은 브라만의 세습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수행을 선언했다. 브라만 4주기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시기를 선택하며 계급도 불문하고 인정하는 사상에 새로운 종교관을 가진 사문과 사상가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들은 수행방법에 따라 유행자(遊行者), 둔세자(遁世者), 걸식자(乞食者) 이름으로 명명하기도 했다. 이들 사문은 베다의 절대적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유행자는 일정한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두루 편력하면서 수행하였고 둔세자(연각)는 숲에서만 수행하고 걸식자(성문)는 설법의 보답으로 보시 된 음식으로만 생활했다.
이들 사문은 특권의식부터 내려놓고 일반 민중 속으로 파고들었다. 우선 언어부터 브라만의 특권 귀족 언어인 산스크리트어를 사용하지 않고 일반 민중의 언어인 프라크리트를 사용하였다. 이러한 자유 진보적 종교운동은 신흥도시로 성장을 시작한 갠지스강 중류 지역을 중심으로 발생하기 시작했다. 혁신적인 자유사상을 가진 많은 사상가와 사문들에 의해서 출가 유행의 새로운 종교 활동이 활발히 발전하였으며 석가모니도 이들 가운데 한 사상가였다. 이들 사상가 중에서 석가모니의 위대한 깨달음을 통해서 종교로 발전한 것이 불교이다.
불교 교주 석가모니 역시도 브라만의 4주기를 무시하고 바로 임서기(林棲期)에 뛰어든 자유사상가이다. 그렇게도 간곡한 부왕(父王) 정반왕(淨飯王)의 출가 만류에는 이와 같은 사상적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부왕의 간곡한 만류를 거절하고 감행한 붓다의 출가에는 브라만교의 규범에 대한 거역이라는 위대한 혁명적 결의와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다. 붓다의 위대한 출가는 위대한 깨달음으로 연결된다.
석가모니의 위대한 깨달음이란 당시 사회에서는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사상인 만인(萬人) 평등사상이다. 당시 인도 사회의 절대적 권위인 베다의 산물인 사성제(카스트)를 단호히 부정하고 빈부귀천에 구애받지 않고 남녀노소가 다 존귀하고 평등하다는 깨달음의 사상을 설파하고 다녔다.
사람뿐만 아니라 일체중생이 모두 다 존귀 평등하다. 생명이 있는 유정뿐만 아니라 생명이 없는 무정마저도 모두 다 존귀하고 평등하며 불성(佛性)이 있다고 설파하고 다녔다. ‘베다’의 특별한 신(神)이 존재하여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빈부귀천 남녀노소와 관계없이 누구라도 깨달음을 구(수행)하고 증득(證得) 하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가르침에는 사문, 사상가, 수행자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이들 중에는 이미 출가한 전업 수행자와 사문, 사상가들도 있었지만, 세속에서 가정을 지키면서 수행하는 겸업 수행자들도 있었다. 붓다의 최초제자는 가정을 지키면서 수행하는 재가불자이다.
그러나 승단의 결집과정은 처음 비구로 출발하여 비구니로 출가 교단으로 확장되고 후에 우바새 우바이들이 참여함으로써 사부승단(四部僧團)으로 완성되었다. 이렇게 살펴볼 때 불교는 이 사부승단이 평등한 여건으로 출발한 종교이다. 다만 수행여건에 따라 출가와 재가로 나누어 수행하고 수행의 궁극적 목적은 깨달음을 통하여 아라한이 되는 것이다. 이들 아라한을 선지식이라고도 한다.
2. 초기불교에서의 재가불교의 위상
붓다의 위대한 깨달음이란 일체중생이 계급과 신분과 관계없이 누구나 마음을 닦으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불교의 위대함도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일체중생이 모두가 평등하고 공평하다는 가르침이다. 불교에서는 깨달음을 얻은 사람을 아라한이라고 불렀는데 초기 경전을 살펴보면 깨달음을 증득한 붓다와 그 제자들을 다 같이 아라한이라고 호칭하고 있다. 최소한 초기 불교에서는 출가와 재가의 차별이 없었다. 붓다는 마음의 평화와 깨달음을 얻는데 남녀노소와 빈부귀천을 따로 구분하지 않았다. 일체중생 출가 재가 모두를 대상으로 가르치고 있다. 이처럼 붓다의 가르침을 따라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 등 모든 사부대중이 해탈과 자비의 길을 닦는 아라한 불교 수행을 통하여 500제자 1200 아라한을 비롯한 수많은 깨달음을 성취한 성자(聖者)들이 탄생하였다. 초기 경전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Aṅguttara Nikāya, A, AN)(11) 제14장 ‘으뜸 품’에서 붓다는 제자들 가운데 각 분야에서 으뜸가는 80명의 아라한의 탁월한 면면들을 구체적으로 칭찬하고 이를 일일이 열거하고 있는데 이 공신력 넘치는 ‘칭찬’ 덕분에 80대 제자들은 일종의 닉네임이 생겼다. 첫 번째부터 네 번째까지는 각 방면에서 으뜸인 비구 47분을, 다섯 번째는 비구니 13분을, 여섯 번째는 우바새 10분을 일곱 번째는 우바이 10분의 아라한들이다. 이를 붓다의 10대 제자에 비유하여 붓다의 80대 제자라고 경전에서는 전하고 있다. 80명의 제자 가운데 비구뿐만 아니라 비구니도 있고 재가자인 우바새와 우바이도 있다. 이로 미루어 알 수 있는 것은 초기 불교에서는 비구만이 붓다의 제자가 아니라 사부대중 모두가 붓다의 제자임을 알 수 있다.
이뿐만 아니다. 아예 재가불자만이 거론한 경전도 있다. 증일아함경』 제3권의 청신사품(淸信士品)과 청신녀품(淸信女品)에는 출가의 십대제자를 헤아리는 것과 같은 양식으로 10명의 재가불자들을 찬탄하고 있다. ‘청신사품’에 나오는 십대제자들은 다음과 같다.
1, 처음으로 법의 약을 얻고 성현의 진리를 깨달은 이는 바로 삼과(三果)의 장사꾼이요,
2, 지혜 제일은 바로 치타[質多] 장자요,
3, 신덕(神德) 제일은 바로 건제아람(健提阿藍)이요,
4, 외도를 항복 받는 이는 바로 굴다(掘多) 장자요,
5, 깊은 법을 잘 설명하는 이는 바로 우파굴(優波掘) 장자요,
6, 늘 앉아 참선하는 이는 바로 가치아라바(呵侈阿羅婆)요,
7, 악마 궁전을 항복 받은 이는 바로 용건(勇健) 장자요,
8, 복과 덕을 많이 가진 이는 바로 사리 장자요,
9, 큰 시주(施主)는 바로 수닷타[須達] 장자요,
10, 일가친척이 많은 이는 바로 민토(泯兎) 장자이니라."
이처럼 해서 붓다는 분야별로 40명의 우바새를 열거하고 찬탄하고 있다. 또한 ‘청신녀품’ 에서는 분야별로 30명의 우바이를 열거하고 있다.
1, 내 제자 중에 첫째 우바이로서 처음으로 도의 증득을 받은 이는 난타타바라(難陀陀婆羅) 우바이며,
2, 지혜가 제일이기로는 구수다라(久壽多羅) 우바이고,
3, 언제나 좌선을 즐기기는 수비야녀(須毘耶女) 우바이며,
4, 지혜의 뿌리가 분명하기로는 비부(毘浮) 우바이고,
5, 능히 설법을 잘 하는 것은 앙갈도(鴦竭闍) 우바이며,
6, 경전의 뜻을 잘 연설하는 이는 발타사라수염마(跋陀娑羅須焰摩)우바이고,
7, 외도를 항복받는 것은 파수타(婆修陀) 우바이며,
8, 음향이 맑고 또렷한 것은 무(無憂) 우바이고,
9, 능히 갖가지로 논의하는 것은 파라타(婆羅陀) 우바이며,
10, 용맹스럽게 정진하는 것은 수두(須頭) 우바이다.5)
이렇게 보면 초기 불교에서는 출가와 재가의 동등한 입장에서 수행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물론 종교는 세속적인 것을 떠나 출가의 성스러움을 지향하는 신앙 행위이다. 모든 종교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라도 출가 그 자체는 대동소이하다. 그러나 불교는 신(神)을 신앙의 대상으로 하는 대부분의 사제(司祭) 종교와는 달리 깨달음을 궁극의 목적으로 하는 수행종교이기 때문에 재가자들의 깨달음을 향한 위상도 동등했다.
이와 같은 위상은 대승불교(大乘佛敎)로 발전하면서 사부대중이 어떠한 차별도 없는 동등한 자격의 보살이 되는 보살불교가 새로운 불교로 정립한 것이다. 히라카와 아키라(平川彰 도쿄대학교수 1915~2002)의 불탑기원설(佛塔起源說)에 따르면, 대승불교의 흥기(興起) 그 자체야말로 불교사에서 진정 재가(在家)가 주연(主演)으로 등장하는 전후후무(前無後無)한 사건이라고 평가된다. 히라카와 아키라(平川彰)는 대승불교 흥기의 세가지 원류를 말하고 있는데, 이를 도식화하면 불멸후(佛滅後) 재가불자에 의한 사리공양(舍利供養) → 부파교단과 병행하여 존재했던 불탑신앙 집단의 찬불신앙적(讚佛信仰的)불교 → 초기의 대승불교로 정리해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이같은 분위기 속에서 대승경전이 찬술되었음을 생각할 때, 대승불교에서의 재가의 위상은 사뭇 달라지리라는 것을 쉽게 관측할 수 있다. 대승에 이르면 우바새․우바이는 설법을 듣는 청법자(聽法者)와 설법을 청하는 청법자(請法者)로서 소극적인 변두리 불교가 아니라 유마거사(維摩居士)와 승만부인(勝鬘夫人)처럼 당당히 설법자(說法者)로서 적극적인 포교활동을 전개하는 중심불교의 주인공 역할의 위치에 서게 된다. 부처님 앞에서 부처님을 대신하여 부처님처럼 경(經)을 설하는 설주(說主)로 등장한다. ‘유마경’의 유마거사 ‘승만경’의 승만부인 등이 우바새와 우바이로서 설주(說主)가 되어 대승불교의 이치를 설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보살불교로 상징(象徵)되는 대승불교 경전의 성립에는 어떠한 형태로든 재가의 영향력이 있었을 것으로 보아야 한다. 경전에 등장하는 보살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모두가 재가불자일 가능성이 크다. 그중에서 지혜를 상정하는 문수사리 보살도 재가불자로 보아야 한다. 더욱이 문수(선재)동자는 화엄경 입법계품에서 53선지식을 찾아 수행의 여정(旅程)에 오르는데 53선지식 중에 여러 명의 재가제자들이 등장하여 선재의 설법에 응하고 있다. 53선지식 중에서 재가자는 우바새 16명, 우바이 7명 동남 동자와 동녀 6명의 총 29명의 선지식이 등장한다. 화엄경에서도 과반(過半)의 재가 선지식으로서 설주(說主)의 책임을 맡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대승불교에 오면 출가와 재가의 이원적(二元的) 분별이 사라지게 되며, 이들을 아우르는 대체 개념으로써 ‘보살’이 등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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