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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마음의 변화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https://www.youtube.com/watch?v=efWPP6p0JI8
롬 12:1-2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저는 지난번 이 시간에 새롭게 함을 받아 라는 제목으로 이 말씀을 찾았습니다.
오늘 다시 같은 말씀을 가지고 마음의 변화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을 생각하면서 은혜를 나누려 합니다.
사실 마음을 새롭게 함을 받는 것이나 변화는 같은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 새롭게 함을 받는 것이 어떤 것인지 함께 나누었습니다.
행동의 변화와 마음의 변화 둘은 그리스도인들은 반드시 이루어야 할 과제라 생각합니다.
그럼 행동의 변화가 중요할까요? 마음의 변화가 중요할까요?
둘 다 중요하지만 꼭 꼬집어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어떤 것이라고 말씀들을 하실래요.
마음의 변화라고 대부분 말씀해 주셨는데 왜 마음의 변화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들 하십니까?
예 마음의 있는 것이 밖으로 들어 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 24:48-49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동무들을 때리며 술 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충성된 종과 악한 종에 대한 비유로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악한 종이 왜 악한 행동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까?
마음에 생각하기를 이라고 합니다. 생각이 먼저 변질 되면 어떤 행동이 따른다는 것입니까? 악한 행동이 따른다.
그래서 사실은 행동을 고치려는 것 보다 무엇을 고치는 것이 순리입니까? 마음을
그래서 오늘 우리는 마음의 변화에 대하여 함께 생각해 보자는 것입니다.
마음의 변화와 관련된 증언의 말씀중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음식 39.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의 은혜로 변화되기 전에는 모든 일에 절제를 실천하지 못할 것이다”.
오늘 음식물에 관한 권면에도 두 가지를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마음의 변화는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다는 것과
절제 생활은 마음의 변화를 받고 난 다음 이루어진다.
우리 성도님들 행동의 변화 우리 생활의 변화를 원하시나요?
마음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되길 소망합니다.
절제의 생활을 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까?
음식물에 대하여서도 정말 성경이 말하는 그런 식생활을 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이미 여러분들의 마음들은 성령에 의하여서 노크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분들은 말씀을 들으면서도 저 말씀은 아직 나와 거리가 먼 말씀이야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마음의 변화를 먼저 받아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절제의 생활을 하고 싶지만 좀 더 적극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는 분들도 좀 더 마음들이 주님의 영으로 채움 받은 마음으로 변화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이 마음의 변화이죠.
성경이 말하는 마음의 변화가 어떻게 일어나는 지를 살펴보려 합니다.
마음의 변화는 하나님의 선물임
먼저 드릴 말씀은 이미 드렸듯이 마음의 변화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 선물인 변화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서 마음의 변화가 일어날 수가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우리 여러분들의 마음들은 다 변화 되었습니까?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그런 선물을 왜 받지 않으셨나요?
이미 여러분들은 다 잘 아시고 계시고 마음의 변화를 받아서 예수님처럼 살고자 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마음들은 불안합니다.
이유는 변화된 내 모습은 보이지 않고요. 악한 그 전의 내 모습이 자꾸 살아나서 나를 자꾸 죄가운데로 끌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까?
우리가 그렇게 존경하고 정말 예수님을 많이 닮은 사람들 중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바울이 어떤 고민을 털어 놓았습니까?
롬 7:15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
바울의 마음이 변화함을 입었으니 원하는 것이 선한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무엇이라 합니까? 원하는 것은 하지 아니하고 원하지 않는 것을 하고 있다.
이것이 밖에서 하는 것일까요? 마음에서부터 시작된 것일까요?
그 다음 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롬 7:17 “이제는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이것을 하는 것은 내가 아니고 무엇이라 합니까? 내 속에 거하는 죄라고 합니다.
그 죄가 내 속 어디에 있을까요? 그것이 습관을 통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습관은 마음에 통제를 받도록 하여야 하고 마음은 성령으로 새롭게 함을 받아야 한다.
바울은 날마다 죽노라고 말합니다.
우리도 날마다 죽어야 합니다. 그리고 죽고 그것으로 끝나버리는 것이 아니고요.
우리는 날마다 부활하여야 합니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장소가 우리 마음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마음을 지키고 변화함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이런 말씀을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잠 4:23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온전한 변화함을 받기 위하여서 우리도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증언의 말씀을 다시 이런 말씀을 주십니다.
음식 39 “환경은 개혁을 일으킬 수 없다. 그리스도교는 마음에 개혁을 일으킨다. 그리스도께서 내부에서 역사하신 결과가 변화된 지성의 지시 하에 외부로 나타날 것이다. 계획을 외부에서 시작하여 내부로 역사하게 하려는 노력은 항상 실패하였으며 언제나 실패할 것이다. 그대에게 관한 하나님의 계획은 모든 어려운 문제들이 있는 바로 그 곳, 즉 마음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하면 마음에서부터 의의 원칙들이 나올 것이며 내부는 물론 외부도 개혁된 것이다”
어떤 분들은 마음의 변화를 위하여 환경이 바뀌면 변화를 받을 수가 있다고 생각하고 환경을 바꾸려 시도합니다.
물론 환경에 따라서 마음의 변화가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환경의 변화로 인하여 마음의 변화가 일어난 성공적인 예 중에는 요셉이 있습니다.
요셉이 종으로 팔려가는 그 환경의 변화를 통하여 증언의 말씀은 응석 부리던 아이에서 사려 깊은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 되었다고 말하고 있는 내용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환경의 변화는 자신이 시도한 것이 아니라 사탄이 요셉의 꿈이 무산되도록 요셉의 형제들을 선동하여 만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 까지도 하나님께서는 사용하시어서 요셉의 마음에 변화가 일어나도록 역사하셨습니다.
음식 39쪽에는 그리스도께서 내부에서 역사하신 결과로 변회된 삶의 모습이 외부로 나타나게 된다고 하죠?
외부에서의 어떤 변화의 시도는 항상 실패하였다 라는 것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쉬운 예로 열매를 맺히기 위하여 가지가 노력한다고 하여서 좋은 열매를 맺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하여서는 좋은 영양분이 공급되어야 하는 것처럼 우리의 외적 열매들도 우리의 마음의 변화로 인하여 이루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그리스도의 내재로서 이루어질 수가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날마다 순간마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마음에 모셔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의 변화는 일어 날 수 밖에 없음을 성경과 증언의 말씀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 사랑하는 재림성도님들 우리 다 예수그리스도를 우리 마음에 순간마다 모시고 우리의 삶의 주인이 되게 하시고 우리 마음의 변화를 주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다듬어지고 변화함을 받게 되길 축복합니다.
두려움이 거룩한 변화를 준다
두 번째는 두려움이 거룩한 변화를 줍니다.
두려움이 거룩한 변화를 준다고요? 이 말씀에 동의가 되시나요?
두려움은 오히려 변화에 방해가 되는 것이 아닙니까 라고 반문 할지 모르겠습니다.
성경올려드립니다.
고후 7:1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가운데서 무엇을 온전히 이루라고 합니까?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라.
그리고 그 다음에 따라서 일어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게 하자.
사랑하는 성도님들 하나님을 두려워 하게 되길 바랍니다.
제가 말씀드린 이 두려움은 하나님을 무서워 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 재림 성도님들을 다 세천사의 기별에 대하여 잘 알고 계시죠?
공중을 나는 첫 번째 천사가 무엇이라 외칩니까?
계 14:7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첫 번째 천사는 하나님을 두려워 하라는 말씀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세천사의 기별이 창조주를 두려워 하라는 말씀으로 시작하고 있다고 하여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왜 하나님을 두려워 하라고 하십니까? 무엇이 가까이 되었다고요? 심판이 가까이
종말에 살고 있는 재림성도들은 이전에 살았던 재림 성도들과 많이 다릅니다.
무엇이 다릅니까?
이전에 살았던 재림 성도들은 그냥 믿음만 지키면 어떤 면에서 되었습니다.
가지고 있는 빛을 전하면서 신실하게 살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재림 직전에 살아가고 있는 자들은 좀 다르다는 것입니다.
증언의 말씀 올려드립니다.
마지막날 사건들 39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교회 안에 당신을 드러내시고자 바라 마지 않으신다. 그리스도의 성품이 그의 백성에게서 완전히 재현될 때에는 그는 당신의 것을 찾으시려고 강림하시게 될 것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우리는 고대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촉진시키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특권이다. 그의 이름을 믿노라고 하는 자들이 그에게 영광을 돌리는 열매를 맺는다면 온 세상에는 얼마나 속히 복음의 씨가 뿌려질 것인가. 최후의 큰 수확은 속히 익을 것이요 그리스도께서는 귀한 곡식을 거두시려고 강림하실 것이다”
그리스도 재림 직전에 살고 있는 자들에게 무엇이 나타나기를 그리스도께서는 바라신다고 하십니까? 그리스도와 같은 성품이
왜 그리스도의 성품이 나타나기를 그리스도께서는 바라실까요?
그래야 오실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왜 그리스도와 같은 성품을 가진 자들이 나타나야만 그리스도께서 오실 수가 있을까요? 그리스도의 지나친 욕심이십니까?
어떻게 우리의 삶에서 예수님과 같은 성품이 나타나도록 바라실까?
성경은 불가능한 것을 말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또한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기다리십니다.
저는 이 말씀도 자주 인용합니다.
합 2:14 “대저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하리라”
저는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성품이 그리스도와 같이 되었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럴 때 세상 사람들은 그들을 보고요 수 많은 사람들이 진리의 백성들과 연합하기 위해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그런 일들을 우리는 늦은비라는 성령의 선물을 통해 완전하게 이루어질 것임을 믿고 있습니다.
그날 수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고요.
그리고 이 교회 안에서 긴가 민가 하는 사람들은 그날에 어둠 속으로 떨어져 나가게 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그렇게 될까요? 저는 이미 답을 말씀드렸습니다.
고린도 후서의 말씀을 다시 올려드립니다.
고후 7:1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
사랑하는 성도님들 하나님을 두려워 하길 바랍니다.
그런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고 깔보고 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손에 들려 있는 사탕을 보지 말고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무엇보다 무엇을 원하고 있다고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우릴 위해 준비해 두셨다는 하늘이 좋아서 믿음을 지키는 척을 합니다.
사랑하는 귀하신 성도님들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아니면 영원한 생명을 사랑하십니까?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무엇을 선택하시겠습니까?
모세는 산위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 멸하고 너로 하여금 큰 나라를 이루게 하시겠다고 제안 하셨을 때 하나님 차라리 저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제하여 주시고 이 백성을 살려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러한 모세의 기도가 백성을 위해서 였습니까?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 였습니까?
그는 자신은 멸망 당한다고 하여도 하나님의 성호가 이방인들에게 더럽힘을 받는 것을 싫어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자들은 이러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차원이 높은 이야기 입니까? 이해하기가 힘이 듭니까?
말 1:6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비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비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까 하는도다”
고대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은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고 오히려 멸시하였다고 합니다.
신약시대의 제사장들 스스로 그리스도인들이라고 하는 백성들을 향해 주님께서는 다시 말씀하십니다.
내 이름이 멸시를 받는다고요.
이런 말을 들은 제사장을은 놀라서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의 이름을 멸시 하였습니까 라고 합니다.
오늘 여러분들에게 너희가 하나님의 이름을 멸시하였다고 한다면 여러분들은 우리가 어떻게 라고 하시지 않겠습니까? 아니면 그냥 인정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을 두려워 하게 되길 바랍니다. 하나님을 멸시하지 말길 바랍니다.
말라기서의 그 다음 내용들을 쭉 읽어보신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것이고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인지 알게 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 하라는 말씀은 다른 말로 대신 한다면 하나님을 존경하라는 말씀입니다.
그 말씀은 하나님을 우리의 삶에 첫째 자리에 두라는 말씀입니다.
돈을 좀 벌고 난 다음 하나님을 첫째 자리에 두겠습니다 하시겠습니까?
아이들 좀 크고 난 다음 하나님을 첫째 자리에 두겠습니다 하실 것입니까?
여러분들이 오늘 그러한 마음을 갖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존경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는 코로나 펜데믹으로 인하여서 더 빨리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신속하게 복음이 전해 지고 있는 것을 느낍니다.
다행히 우리 교회 성도님들 중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수단과 방법을 사용하시는 것을 볼 때 저의 마음은 상당히 기쁨니다.
우리 하나님의 마음은 얼마나 기쁠까요?
하나님을 내 삶에 첫째로 모시는 사람들의 행동은 그렇게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이제 정말 진리를 찾는 자들이 이 교회에 들어오게 될 때 여러분들은 그런 자들에게 자리를 내어 주는 자리에 있을 것입니까?
그들의 손을 잡아 환영하는 자리에 있게 될 것입니까?
다시 증언의 말씀을 하나 더 올려드립니다.
음식 40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과 당신의 성령의 증언들을 통하여 그들에게 주신 빛에 따라 할 수 있는 대로 하나님의 요구에 가깝게 표준을 높이는 자들은, 하나님의 지혜로우신 계획에 배치되게 살고 있는 자들이 하나든지, 둘이든지, 또는 많은 무리든지 그것에 관계 없이 친구나 친척들의 소원에 따르고자 그들의 행로를 바꾸지 않을 것이다”
이 말씀이 무슨 말씀인지 이해가 되시나요?
하나님의 백성들이 말씀과 증언을 통하여 주어진 말씀의 빛을 따르기 위하여 표준을 높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친척이든지 가족이든지 그들에 의하여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변하여지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교만중 최고의 교만은 말씀에 대한 불순종이라고 말씀을 드린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자들은 그들의 삶에서 불순종은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하늘은 나를 위해 어떤 일을 감행하셨는데 내가 세상을 두려워 하여서 불 순종의 길을 갈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진정한 의로 선교도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사람들을 통하여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진리의 증거도 그 마음에 예수그리스도의 마음이 있는 사람들을 통해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 사랑하는 장유교회 성도님들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더러운 세상에서 깨끗함을 받고 온 세상을 밝힐 진리의 등불들로 들어나고 우리 여러분들을 통해 자기를 비우시고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 예수의 성품이 온전히 들어나는 삶이 되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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