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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 方 廣 佛 華 嚴 經
第六會
修因契果生解分
差別因果周
他化自在天宮
如來放眉間光․相光 金剛藏菩薩 入菩薩大智光三昧 十地法門
金剛藏菩薩 說十地法門. 自三十四卷 至三十九卷. 共一品經
二十六, 十地品
序分
1. 說法因緣
2. 삼매에 들다
3. 명훈가피력을 내리다
4. 삼매에서 일어나다
5. 십지(十地)의 강요(綱要)를 말하다
6. 자세히 설(說)해줄 것을 청하다
正 宗 分
7. 제1환희지(歡喜地)를 설하다
(1) 초지법문(初地法門)을 찬탄하다
(2) 제2지를 설해줄 것을 청하다
(3) 제2 이구지에 들어가는 열 가지 마음
(4) 이구지에 머무는 마음, 삼취정계(三聚淨戒)를 말하다
① 섭율의계(攝律儀戒)인 십불선(十不善)을 말하다
② 섭선법계(攝善法戒)인 오종(五種)의 십선(十善)
③ 섭중생계(攝衆生戒)인 이익중생(利益衆生)
㉮ 십불선도(十不善道)의 인과(因果)
㉯ 보살의 원(願)과 행(行)
㉰ 보살이 중생을 교화하는 열 가지의 마음
㉱ 갖가지 중생들을 교화하다
八, 第二離垢地
(4) 住心의 三聚淨戒
③ 攝衆生戒인 利益衆生
㉱ 種種衆生의 敎化
作是念言호대 衆生이 可愍이라 墮於邪見과 惡慧惡欲과 惡道稠林하나니 我應令彼로 住於正見하야 行眞實道하며 又作是念호대 一切衆生이 分別彼我하야 互相破壞하며 鬪諍瞋恨하야 熾然不息하나니 我當令彼로 住於無上大慈之中하며 又作是念호대 一切衆生이 貪取無厭이라 唯求財利하야 邪命自活하나니 我當令彼로 住於淸淨身語意業正命法中하며 又作是念호대 一切衆生이 常隨三毒하야 種種煩惱가 因之熾然호대 不解志求出要方便하나니 我當令彼로 除滅一切煩惱大火하야 安置淸凉涅槃之處하며 又作是念호대 一切衆生이 爲愚癡重闇과 妄見厚瞙之所覆故로 入陰翳稠林하야 失智慧光明하고 行曠野險道하야 起諸惡見하나니 我當令彼로 得無障礙淸淨智眼하야 知一切法如實相하야 不隨他敎하며 又作是念호대 一切衆生이 在於生死險道之中하야 將墮地獄畜生餓鬼하며 入惡見網中하야 爲愚癡稠林의 所迷하며 隨逐邪道하야 行顚倒行호미 譬如盲人이 無有導師하야 非出要道를 謂爲出要라하야 入魔境界하야 惡賊所攝으로 隨順魔心하고 遠離佛意하나니 我當拔出如是險難하야 令住無畏一切智城하며 又作是念호대 一切衆生이 爲大瀑水波浪의 所沒하야入欲流有流無明流見流하야 生死洄澓하며 愛河漂轉하며 湍馳奔激하야 不暇觀察하며 爲欲覺恚覺害覺을 隨逐不捨하며 身見羅刹이 於中執取하며 將其永入愛欲稠林하며 於所貪愛에 深生染着하며 住我慢原阜하며 安六處聚落하며 無善救者하며 無能度者하나니 我當於彼에 起大悲心하야 以諸善根으로 而爲救濟하야 令無災患하고 離染寂靜하야 住於一切智慧寶洲하며 又作是念호대 一切衆生이 處世牢獄하야 多諸苦惱하며 常懷愛憎하며 自生憂怖하며 貪欲重械之所繫縛이며 無明稠林으로 以爲覆障하야 於三界內에 莫能自出하나니 我當令彼로 永離三有하야 住無障礙大涅槃中하며 又作是念호대 一切衆生이 執着於我하야 於諸蘊窟宅에 不求出離하며 依六處空聚하며 起四顚倒行하며 爲四大毒蛇之所侵惱와 五蘊寃賊之所殺害하야 受無量苦하나니 我當令彼로 住於最勝無所着處호리니 所謂滅一切障礙하고 證無上涅槃이며 又作是念호대 一切衆生이 其心狹劣하야 不行最上一切智道하며 雖欲出離나 但樂聲聞辟支佛乘하나니 我當令住廣大佛法과 廣大智慧케호리라 佛子야 菩薩이 如是護持於戒하야 善能增長慈悲之心이니라
㉱ 種種衆生의 敎化
㉱ 갖가지 중생들을 교화하다
"또 생각하기를 '중생이 가련하여 삿된 소견에 떨어졌으니, 나쁜 지혜와 나쁜 욕망과 나쁜 도(道)의 숲이라. 내가 그로 하여금 바른 소견에 머물러서 진실한 도를 행하게 하리라' 하느니라.
또 생각하기를 '일체중생이 남[他]이라 내[我]라 분별하여, 서로 파괴하고 다투고 미워함이 부단히 쉬지 아니하니, 내가 마땅히 그로 하여금 위없이 크게 인자한 가운데 머물게 하리라' 하느니라.
또 생각하기를 '일체중생이 탐하는 데 만족할 줄 모르고, 재물만을 구하며 잘못되게 살아가려 하니, 내가 마땅히 그로 하여금 몸과 말과 뜻으로 짓는 일이 청정하여 옳게 살게 하리라' 하느니라.
또 생각하기를 '일체중생이 세 가지 독한 것만 따르므로 여러 가지 번뇌가 치성하고, 벗어날 방편을 구할 줄을 모르니, 내가 마땅히 그로 하여금 모든 번뇌의 불을 멸하고 청량한 열반의 자리에 있게 하리라' 하느니라.
또 생각하기를 '일체중생이 어리석어 깜깜함과 허망한 소견에 덮이어, 답답하게 막힌 숲 속에 들어가서 지혜의 광명을 잃고, 거친 벌판의 험한 길에서 나쁜 소견을 일으키니, 내가 마땅히 그로 하여금 장애가 없이 청정한 지혜의 눈을 얻어 일체법의 실상을 알고 다른 이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게 하리라' 하느니라.
또 생각하기를 '일체중생이 나고 죽는 험한 길에 있으면서 장차 지옥. 축생. 아귀에 떨어지거나 나쁜 소견에 들어가서 어리석은 숲 속에서 길을 잃고 삿된 길을 따라가며 뒤바뀐 것을 행하리니, 마치 눈먼 사람이 인도하는 사람도 없이 빠져 나갈 길이 아닌데 나갈 길인 줄만 알고, 마군의 경계에 들어가 도둑에게 붙들리고, 마군의 마음을 따르고 부처님의 뜻과는 멀어지니, 내가 마땅히 험난한 곳에서 구제해서 두려움이 없는 온갖 지혜의 성중에 머물게 하리라' 하느니라.
또 생각하기를 '일체중생이 빨리 흐르는 폭류(爆流)에 휩쓸려서 욕계의 폭류, 색계의 폭류, 무명의 폭류, 소견의 폭류[見流]에 들어가 생사에서 소용돌이치고 애욕에 헤매면서 빠르게 솟구치고 심하게 부딪히느라고 살펴볼 겨를도 없이, 탐내는 생각. 성내는 생각. 해치려는 생각을 따라서 버리지 못하는데, 내 몸이라고 고집하는 나찰[身見羅刹]에게 붙들려서 애욕의 숲 속으로 끌려 들어가 탐욕과 애정에 집착을 내고, 나[我]라는 교만의 언덕에 머물며, 육처(六處)라는 동리에 있게 되어 구원할 이도 없고 제도할 이도 없으니, 내가 마땅히 그에게 대비심을 일으키고 여러 선근으로 구제하여 환난이 없게 하고, 모든 물든 것을 떠나서 고요하게 온갖 지혜의 섬에 머물게 하리라'하느니라.
또 생각하기를 '일체중생이 세간의 옥중에 있으면서 고통이 많고, 사랑하고 미워하는 생각을 품어 스스로 두려워하며, 탐욕이란 고랑에 얽매이고 무명의 숲 속에 가렸으므로 삼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나니, 내가 마땅히 그로 하여금 삼유(三有)를 길이 여의고 장애가 없는 대열반에 머물게 하리라' 하느니라. (76)
또 생각하기를 '일체중생이 나[我]라는 데 집착하여 오온(五蘊)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육처라는 동리를 의지하여 네 가지 뒤바뀐 행을 일으키며, 네 마리 독사에게 시달리고 오온이란 원수의 살해를 당하면서 한량없는 고통을 받나니, 내가 마땅히 그로 하여금 가장 훌륭하고 집착이 없는 곳에 머물게 하리니, 곧 모든 장애가 없어진 위없는 열반이라' 하느니라.
또 생각하기를 '일체중생의 마음이 용렬하여 가장 좋은 지혜의 도를 행하지 못하므로, 비록 벗어나려 하면서도 성문승과 벽지불승만 좋아하나니, 내가 마땅히 광대한 부처님의 법과 광대한 지혜에 머물게 하리라' 하느니라.
불자여, 보살이 이렇게 계율을 보호하여 지니며 자비한 마음을 증장케 하느니라."
또 내가 마땅히 그로 하여금 모든 번뇌의 불을 멸하고 청량한 열반의 자리에 있게 하리라' 하느니라. 또 생각하기를 '일체중생이 어리석어서 캄캄해가지고 한치 앞도 못 봐가지고 허망한 소견에 덮이어가지고, 답답하게 막힌 숲 속에 들어가서 지혜의 광명을 잃고, 거친 벌판의 험한 길에서 나쁜 소견을 일으키나니, 내가 마땅히 그로 하여금 장애가 없이 청정한 지혜의 눈을 얻어 일체법의 실상을 알고 다른 이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게 하리라. 악한 사람들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게 하리라.
( 我當令彼아당영피로 除滅一切煩惱大火제멸일체번뇌대화하며 安置淸凉涅槃之處안치청량열반지처하며 又作是念우작시념호대 一切衆生일체중생이 爲愚癡重闇위우치중암과 妄見厚瞙之所覆故망견후막지소부고로 入陰翳稠林입음예조림하야 失智慧光明실지혜광명하고 行曠野險道행광야험도하야 起諸惡見기제악견하나니 我當令彼아당영피로 得無障礙淸淨智眼득무장애청정지안하야 知一切法如實相지일체법여실상하야 不隨他敎불수타교하며)
여러분들도 정말 자신감을 가져야 될 것은
어제도 나고, 오늘도 나고, 내일도 나다.
이것 중요한 얘기죠.
그런데 뭐
'저게 무슨 소리인고...?'
할 지 모르겠습니다.
이건 아주 중요한 소립니다. 사실
어제도 나고 오늘도 나고 내일도 나라는 말은
우리가 49재 지낼 때 잘 쓰는 말로 이런 게 있습니다.
稻痲竹葦도마죽위 無限極數무한극수
三百六十萬億一十一萬九千五百
同名同號 똑같은 이름의 我等導師 金色如來 阿彌陀佛
어제도 아미타불
오늘도 아미타불
내일도 아미타불
본래 내 마음은 지금 번뇌나 현재 상황에 따라서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지만
기쁨도 슬픔도, 선도 악도, 무거움도 가벼움도, 차고 뜨거움이
다 사라져 버리고 정말 모~든 것이 고요한
그것이 자기의 모습이다.
어제도 내 모습
오늘도 내 모습
내일도 내 모습
반야심경에서는 그래서 그런 것을 뭐라고 하죠?
더 보탤 것도 뺄 것도 없다, 不增不減이다.
장(늘)~ 그 사람이다.
장~ 그 사람.
장~ 그 사람에 대해서 기대고 살아야지.
지식적으로 불어나고 솜씨가 늘어나고
그것도 물론 중요하기는 하지만
모든 것은 기반은 그렇지 않습니다.
어제 아래 이제 제가 좋아하는
스티븐 잡스(Steven Jobs)가 또 하나를 발표했습니다.
아이 클라우드( iCloud )라고,
아이 클라우드라고 가상 공간을 하나 발표했습니다.
그것은 존재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아이팟( iPod )이나 아이폰( iPhone )이나
또 다른 기계나 온갖 기계들이
그것 하고 같이 없는 것과 있는 것이 서로 교섭해서 삽니다.
화엄에서는 그런 것을 理事冥然無分別이라고 얘기 하지요.
제가 지금 말씀드린다 하더라도
여러분들께서는 스마트폰도 사용하실 줄 모르고
아이 크라우드도 모르고
아무 것도 모릅니다.
그래서 스티븐 잡스는 불교적인 이론을
자기는 불교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런 세밀한 이론을 잘 모르고 있을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이제는 스마트폰 같은 것 작동하는데
상당히 뭘 배워야 되고 노력해야 되고 힘들었다.
PC를 작동하려는데도 뭘 배워야 되잖아요?
그렇지 않다.
이제는 작동만 시키면 된다.
배울 필요도 없고 작동만 시키면 된다.
텔레비전 채널 돌리듯이 작동만 시키면
모든 IT 기계는 저절로 아이 크라우드에 가서
내가 올려놓은 음악,
내가 올려놓은 문수 파일,
내가 올려놓은 그림,
영화 파일,
얼마든지 동기화 시켜가지고 같이 쓸 수가 있다.
동기화 시킨다.
이런 얘기는 여러분들이
만약에 그런 데 대해서 약간만 이해만 있다 라면
‘아! 정말 화엄의 세계구나!’
옛날도 화엄이고
지금도 화엄이고
앞으로도 화엄인데
신기한 것이 아니라 으레히 그렇게 돼 있다.
자! 으레히 내가 말을 하고
여러분들께서 말씀을 듣고 있는 것처럼
눈이 있으니까 으레히 보는 것처럼
귀가 있으니까 으레히 듣는 것처럼
작동만 하면 돼. 작동만ㅎㅎㅎ
너무 천연스럽고 자연스러워서
‘아~ 점차 점차 마음의 모습과 생각의 모습을 기계가 닮아 가구나!’
이런 걸 많이 느낍니다.
제일 앞서 가는 사람이 지금은 스티븐 잡스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무능력합니다.
이 종교라고 하는 것은
남을 실제적으로 도울 수 있는
알고만 있고 남을 도울 수 없을 때는 무능력한 거고
이 종교인이 알지 못하고 남에게 갈취만 한다면
그거는 폭력입니다. 폭력
종교를 이용해가지고
종교의 권력을 이용해가지고 갈취하는 거는 폭력이고
뻔히 너무나 알고
삼매의 힘이라든지 이 진리의 힘이 너무 아름답다는 것을 알면서도
실제적으로 생활에서 남에게 보탬을 주지 못한다고 하는 거는
무능력입니다. 무능력
스티븐 잡스처럼 어떻게든지 기업을 일으켜서
남들을 생멸적으로도 넉넉하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죠.
자! 이리 보세요!
네. 다 보시네. 보기는...
제가 이렇게 한 번 해보겠습니다.
대단합니까?
아~주 대단합니다.
부처님께서 능엄경에서 이 손을 드시고
兜羅綿手도라면수를 들어가지고 손을 막~ 이렇게 했죠.
(천상의 면을 도라솜(兜羅緜)이라 하고, 부처님의 손이 이처럼 희고 고와서 도라면수라고 함)
대단하다!
이랬습니다.
송장은 이거 하나도 까딱 못한다.
우리 대~단합니다.
이게 다 마음의 작용들이고 확실한 것입니다.
더 이상 안 보태도 넉넉합니다.
조금 임펙트가 약한 것 같네. ㅎㅎㅎ
임펙트가 상당히 약한 것 같아요. 예?
이해하시는 분들은
'와!~ 저 정도!'
이렇게 되는데
송장은 억만 명 모아 놓아도 손가락 하나도 까딱 한 번 못하죠.
그러니까 여기서 여러 가지 해야 된다 해야 된다 나오지만
이 마음은 더 이상 배울 것도 없고
작동만 잘 하되 그 작동을 고장 없이 청정하게 해라.
자! 이게 스마트폰입니다.
요즘 이제 안드로이드폰Android Phone이라 해서
갤럭시 S가 도청 장치로 뚫혔다고 얘기가 나왔습니다.
여기 뉴스 다 들어보셨죠?
저는 웃습니다. ㅎㅎ
컴퓨터가 있으면 으레 바이러스가 있게 되고
사람이 있으면 생각이 있으면
잡념과 번뇌가 탐진치가 따르게 마련이고
모든 것은 뚫혔어.
뚫히게 돼 있습니다.
그 웃기는 사람 ㅎㅎ
다~ 도청이 되고 다~ 뚫히게 돼 있습니다.
제가 지금 여기서 살짝 이렇게 얘기하면
이 얘기가 어디까지 가느냐 하면
우주 끝까지 갔습니다.
미래 끝까지 갔습니다.
그래서 또 다른 형태로 나타날 겁니다.
부처님이 살짝이 혼자서 바라나시에서 법문하셨던 것이
여기에 문수선원까지 와 있습니다.
어떠한 방법으로든.
오늘 제가 말씀드리는 것도
이렇게 더러 이해하신 분도 있고
대부분 또 이해 못하신 분도 계시겠지만
대부분 또 이해하시겠지요.
한 두 사람 모르시겠지만...
솔직하게 얘기해서 대부분 이해 못하시고
한 두 사람 이해하시겠지. ㅎㅎㅎ
그 한 두 사람이 이해하신 분들이
결국 이 불법을 짊어지고 갑니다.
또 나가서 전합니다.
그 중에 또 귀가 트이고 눈이 밝은 사람이 또 전합니다.
그렇게 그렇게 실날같이 아~주 연명해가면서
유구하게 불법이 이렇게 여기까지 전해져 내려온 겁니다.
누구든지 눈 밝은 사람이 또 설명하게 돼 있고
다른 사람은 또 청중으로써 들어주고
또 듣는데도 법경 거사님이 전한다고는 생각은 안 하니까 우리가 ㅎㅎㅎ
뭐 그래도 이제 법경 거사님이 안 계시면
이 자리가 안 채워지잖습니까?
그러니까 법경 거사님 같은 분을
한문으로 碌碌녹록이라 합니다.
따라 해 보세요!
녹록.
저 사람 녹록치 않다, 이렇게 얘기하죠?
녹록하다, 녹록치 않다,
많이 들어 보셨죠?
碌碌녹록이라고 하면
돌 石자 옆에다가 이렇게 彔녹자 쓰는 건데
저 산에 금정산에 돌이 참 많습니다.
쓸 만한 돌도 있고 못 쓸 만한 돌도 있고
쓸 만한 흙도 있고 못 쓸 만한 흙도 있고
쓸 만한 나무도 있고 못 쓸 만한 나무도 있고
쓸 만한 메뚜기도 있고 못 쓸 만한 뭐 어디 벌레도 있고
여러 가지 있잖습니까?
그런데 저 산에 쓸 만한 돌이 아니고 ㅎㅎ
못 쓸 만한 돌들이 부지기수로 많습니다.
그런데 그 돌 다 빼버리면 금정산이 되겠습니까?
안 되지만 아~무짝에 쓸 데 없는 돌 한 개로써
금정산에 자리하는 것을 뭐라고 할까요?
녹록이라 합니다. 녹록ㅎㅎ
녹록하지 않은 사람은
아~주 잘 생긴 사람이고, 옥같은 돌이고,
녹록한 사람은
그냥 발로 틱틱 차도 아무도 들고 가지 않는 그런 돌입니다.
누구라고요? ㅎㅎㅎ
변명하시지 마세요~
특별회원이잖아요.ㅎㅎㅎ
자~ 어떻게 보면 저도 녹록하고 여러분도 녹록합니다.
그런데 우리 녹록이가 없다면
부처님 불법도 이룩되지 못할 것입니다.
녹록도 중요합니다.
저 산에 못난 나무, 못난 돌, 다 빼버리고 나면 산이 되겠습니까?
되지 않잖아요.
이렇게 해서 우리가 좀 못난 소견이라도 서로 어울려서
이 불법의 법회 자리를 이어 나가는 겁니다.
자~ 그 다음에
답답하게 막힌 숲 속에 들어가서,
숲 속이라고 하는 거는 뭐라고 말씀드렸죠?
번뇌의 숲입니다.
지혜의 광명을 잃고, 거친 벌판,
여기 했네요.
내가 마땅히 그들로 하여금 장애가 없이 청정한 지혜의 눈을 얻어 일체법의 실상을 알고 다른 이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게 하리라'
또 생각하기를 '일체중생이 나고 죽는 험한 길에 있으면서 장차 지옥. 축생. 아귀에 떨어지거나 나쁜 소견에 들어가서 어리석은 숲 속에서 길을 잃고 삿된 길을 따라 가며 뒤바뀐 것을 행하리니,
(又作是念우작시념호대 一切衆生일체중생이 在於生死險道之中재어생사험도지중하야 將墮地獄畜生餓鬼장타지옥축생아귀하며 入惡見網中입악견망중하야 爲愚癡稠林위우치조림의 所迷소미하며 隨逐邪道수축사도하야 行顚倒行행전도행호미)
顚倒夢想을 자꾸 행한다, 이 말이죠.
마치 눈먼 사람이 인도하는 사람도 없이 빠져 나갈 길이 아닌데 나갈 길인 줄만 알고
(譬如盲人비여맹인이 無有導師무유도사하야 非出要道비출요도를 謂爲出要위위출요라 하야)
꾀를 내도 꼭~ 죽을 꾀를 내시는 분들이 계세요.
참 안타까운 일이라.
꼭~ 꾀를 내도 죽을 꾀를 내고
우리는 다행히 어떻게! 생각해보면 참~ 신기합니다.
십지품을 들고 앉아 있다!
야!~ 이거는 어마무시한 일이다.
이 책이 만만한 책이 아닙니다.
인도의 그 천재, 천친보살이
원효스님 한 10배나 똑똑하던 스님께서
이걸 다듬고 다듬고 그렇게 좋아하셨던 책이
이 십지품 아닙니까?
그런데 그걸 우리가 이제 눈이 멀어가지고,
여기 나왔네.
마치 눈먼 사람이 인도하는 사람도 없이 빠져 나갈 길이 아닌데 나갈 길인 줄만 알고,
마군의 경계에 들어가 도둑에게 붙들리고
(入魔境界입마경계하야 惡賊所攝악적소섭으로)
도둑이라고 하는 거는 집착심입니다. 집착심.
비유죠.
마음을 다 뺏겨버려.
요새 뭐 처녀 총각끼리도 도둑이라 하던데
그대는 내 마음을 다 훔쳐가 버렸다고 책임지라고ㅎㅎㅎ
마군의 마음을 따르고 부처님의 뜻과는 멀어지니
(隨順魔心수순마심하고 遠離佛意원리불의하나니)
이런 걸 갖다가 背覺合塵배각합진이라.
이렇게 원효스님께서 말씀하셨죠.
깨달음 하고는 위배되고 등지고, 背覺
合塵, 속진 번뇌에는 딱 들어붙어 있는 것
背覺合塵
또 반야심경에는 顚倒夢想
이렇게 얘기하죠.
내가 마땅히 험난한 곳에서 구제하여 두려움이 없는 온갖 지혜의 성중에 머물게 하리라' 하느니라. 또 생각하기를 '일체중생이 빨리 흐르는 폭류(爆流)에 휩쓸려서 욕계의 폭류, 색계의 폭류, 무명의 폭류, 소견의 폭류[見流]에 들어가서 생사에서 소용돌이치고 애욕에서 헤매면서 빠르게 솟구치고 심하게 부딪히느라 살펴볼 겨를도 없이, 탐내는 생각. 성내는 생각. 해코지 하려는 생각을 따라서 버리지 못하는데, 내 몸이라고 고집하는 나찰[身見羅刹]에게 붙들려서,
(我當拔出如是險難아당발출여시험난하야 令住無畏一切智城영주무외일체지성하며 又作是念우작시념호대 一切衆生일체중생이 爲大瀑水波浪위대폭수파랑의 所沒소몰하야 入欲流有流無明流見流입욕류유류무명류견류하야 生死洄澓생사회복하며 愛河漂轉애하표전하며 湍馳奔激단치분격하야 不暇觀察불가관찰하며 爲欲覺恚覺害覺위욕각에각해각을 隨逐不捨수축불사하며 身見羅刹신견나찰이 於中執取어중집취하며)
여기도 비유법입니다.
身見羅刹에게 붙들려서,
우리가 견해라고 하는 거는,
자~ 여기 보셔요.~
이 번뇌라고 하는 게
대체적으로 아까 탐진치 3 가지로 묶지만
또 근본번뇌는 貪 瞋 癡 교만할 慢자, 의심할 疑자, 소견 見자,
6개로 묶습니다.
그런데 이 6개를 10개로는 이렇게 합니다.
탐 진 치 만 의, 이것은 찐득찐득한 번뇌입니다.
탐심 내고,
진심 내고,
삿된 소견머리에다가 치심 내고,
미혹한 생각에 의심하고,
교만하고,
이거는 엿같은 번뇌다.
찐~득 찐~득 해가지고 은~근하게 해가지고
뭐 된장찌게 같아가지고 잘 떨어지지도 않아요.
이거 옷에 물 들듯이 해서
그런데 해운대 앞바다 모래알 같은 번뇌들이 있어요.
톡 털어버리면 털릴만한 번뇌들
身見,
내 몸과 내 소유가 있다고 자~꾸 고집하는 것,
내 이 몸뚱이와 안이비설신의와 내 주변의 환경이 있다고 고집하는 身見
邊見이라고 하는 거는
사람 인생은 죽으면 끝이다.
또 죽어도 靈駕가 영원히 있다.
斷見, 常見, 이거를 갖다가 양쪽에 치우친 見이라 해서 邊見이라.
이쪽 邊이냐, 좌변이냐 나변이냐,
이 邊이냐 저 邊이냐
身見
邊見
그 다음에 見取見,
저처럼 이제 조금 아는 체 하면
공산주의에 떨어지든지 민주주의에 떨어지든지
불교주의에 떨어져가지고 화엄주의에 떨어져가지고
그래 살면 見取見이라.
見에 도취된 생각이라.
하나가 여기까지 오기 전에 하나 더 있었는데 빠져버렸구나...
邪見이 먼저 들어가는데...
사견은 뭐 잘 먹고 잘 살면 그만이지.
내 생각할 때 사람 살다가 그냥 가버리면 그만이야.
줄서기 잘 하면 그만이야.
因果應報가 어디 있어.
있습니다!
인과응보.
여기서 지금 제 이 십지품 강의를 잘 안 듣는 분들은
수많은 세월을 아비지옥에 들어가서 법문을 못 듣습니다.
부처님도 친견 못 합니다.
스님들도 친견 못하고 사람 몸도 못 받고
왜 그러냐 하면
벌 주는 사람이 부처님도 아니고 신도 아니고, 오직 누구죠?
자기 자신이 스스로 소견을 가둬가지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니까
진리를 보지 못하면
그거는 소경이고 귀머거리고 벙어리입니다.
마지막으로 見은 戒禁取見이라는
자장율사 주특기 있죠. 자장율사
이 戒禁取見이라고 하는 거는
계율을 지키고 금하는 것에 도취돼가지고 戒 禁 取 見,
거기에 떨어진 사람들은 지금도 있습니다.
인도에 가면 자이나교라 해가지고
홀딱 벗고 발가벗고 나체로 다니면
욕심이 무소유를 실천한다 이래가지고
또 오신채를 안 먹는다 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정해놓은 법도 대로 계율에 얽매여가지고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을 戒禁取見이라 하죠.
깨~끗하게,
대표적으로 자장율사가 문수보살 친견해야 되는데
친견 못하고 계금취견에 떨어진 곳이 어딥니까?
태백 정암사에서 문수보살 친견한다고 그렇게 3년 기도를 하고
이제 돌아가실 무렵쯤 돼가지고 열심히 정진하고
문수보살 한 번만 더 봤으면 좋겠다고 이렇게 기도하시는데
어떤 노인이 아침에 죽은 개를 지게에 지고 와가지고
"스님요~ 우리집에 개가 죽어가지고 절에 데리고 왔는데
어디에 좀 묻을까요?"
"여기 문수보살 친견하려고 금줄 쳐놓고 깨끗하게 해놨는데
어디 추접은 개 죽은 걸 데리고 절에 왔냐!’
고 나가라고 막~ 고함을 지르고 야단을 쳐놨더니
그래서 노인네가
"알았습니다. 갈게요. 잘 몰랐십니다~"
하는 능주스님 버전으로 ㅎㅎ
딱 돌아나가다가 지게에다 개를 갖다 썩~ 비우니까
그 개가 죽었던 개가 살아서 푸른 사자가 되고
노인네는 그 사자를 타고 떠났다....
푸른 사자 타고 떠나는 그대
누구입니까?
문수 보살
흰 코끼리를 타고 떠나는 그대
보현 보살
붉은 연꽃을 타고 오시는 그대
관세음보살
아우디 타고 혼다 타고 오는 스님 ㅎㅎㅎ
아니 우리도 타야 될 것 아니예요.
청사자를 타든지 코끼리를 타든지 비행기를 타든지 다 타는데
우리는 뭡니까?
차라도 타야지. ㅎㅎ
아!~ 잠깐 이거 정리하고 갑시다.
그러니까 아까 이거 탐 진 치 만 의 견,
이거는 엿같이 해가지고 찐~득 찐득해서 잘 안 떨어지는 겁니다.
身見, 邊見, 邪見, 見取見, 戒禁取見,
이거는 털 수 있습니다.
좀 가벼운 번뇌들입니다.
그래 우리는 대충 보면
자기가 어디에 떨어져 있는지
막 떠들고 있으면 옆에서 쳐다보면
자기는 떨어져 있는지 모르고
이렇게 교리가 정리가 돼 있고
가만히 쳐다보면 공부하는 사람은
'아~ 저 사람 탐심이 많네... 저 사람 진심이 많네...'
사람을 판단해가지고 좋을 것까지는 없지만
같이 휩쓸려 들어가지는 않는다.
약 이름을 정확하게 알아가지고
'이거 먹으면 두통약이네... 저거 먹으면 설사약이네...'
이렇게 제대로 이제 아는 것 하고 똑같다는 거죠.
그러니까 내가 지금 분한 마음이 돋아나고 이러면
아까 저기 고래처럼 확 한 입에 다 먹고
분한 생각이든지 뭐 초잡은 생각이든지 교만한 생각이든지
일체 잡념을 하지 않는 것이
이 십지품 정도에 들어가는 아주 도리겠지만
그래 잘 안되니까 쪼~잔하게 미주알 고주알 따져가지고
세밀하게 관찰해가지고
그거를 없애버리는 것도 괜찮죠.
내가 마땅히 험난한 곳에서 구제해서 두려움이 없는 온갖 지혜의 성중에 머물게 하느니라. 폭류, 뒤에 넘어가가지고 탐내는 생각. 성내는 생각. 해치려는 생각을 내 몸이라고 고집하는 나찰[身見羅刹]에게,
여기 하다가 그랬네요. 그죠?
애욕의 숲 속에 끌려 들어가 탐욕과 애정에 집착을 내고, 나[我]라는 교만의 언덕에 머물며, 육처(六處)라는 동리에도 있게 되어 구원할 이도 없고 제도할 이도 없으니, 내가 마땅히 그에게 대비심을 일으키고 여러 선근으로 구제하여 환난이 없게 하고, 모든 물든 것을 떠나서 고요하게 온갖 지혜의 섬에 머물게 하리라'
(將其永入愛欲稠林장기영입애욕조림하며 於所貪愛어소탐애에 深生染着심생염착하며 住我慢原阜주아만원부하며 安六處聚落안육처취락하며 無善救者무선구자하며 無能度者무능도자하나니 我當於彼아당어피에 起大悲心기대비심하야 以諸善根이제선근으로 而爲救濟이위구제하야 令無災患영무재환하고 離染寂靜이염적정하야 住於一切智慧寶洲주어일체지혜보주하며) (阜 언덕 부)
온갖 지혜의 섬에 머물게 한다,
이 말이 거기 원래 산스크리트 번역에 보면
自燈明 法燈明입니다. 이게
지혜의 섬이라는 게
우리가 왜 폭류에 휩쓸려가지고
막 내려가다 보면 떠내려가다 보면
어디에 붙어야 살 수 있습니까?
섬에 붙어야 사실은 살 수 있거든요.
저~ 위에 얘기가 여기까지 끌어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예요.
왜 그쪽에 난파선이 돼가지고
물에 동동동 떠내려 가다가 어디를 만나야 돼요?
육지를 만나야 되잖아요. 그죠?
그게 바로 자등명 법등명 하듯이
섬을 의지해야 자기가 살 수가 있거든요
또 생각하기를 '일체중생이 세간의 옥중에 있으면서 고통이 많고, 사랑하고 미워하는 생각을 품어 스스로 두려워하며, 탐욕이란 고랑에 얽매이고 무명의 캄캄한 번뇌의 숲 속에 가렸으며 욕계 색계 무색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니, 내가 마땅히 그로 하여금 삼유(三有)를 길이 여의고,
(又作是念우작시념호대 一切衆生일체중생이 處世牢獄처세뇌옥하야 多諸苦惱다제고뇌하며 常懷愛憎상회애증하며 自生憂怖자생우포하며 貪欲重械之所繫縛탐욕중계지소계박이며 無明稠林무명조림으로 以爲覆障이위부장하야 於三界內어삼계내에 莫能自出막능자출하나니 我當令彼아당영피로 永離三有영리삼유하야)
三有는 제가 지난 시간에 9지로 해가지고 설명을 드렸죠?
五趣雜居地
離生喜樂地
定生喜樂地
離喜妙樂地
捨念淸淨地 하고 그 다음에 어디
無所有處
空無邊處
識無邊處, 또 뭐죠?
非想非非想處
해가지고 설명을 드린 바가 있습니다.
여의고 장애가 없는 대열반에 머물게 하리라' 하느니라. 또 생각하기를 '일체중생이 나[我]라는 데 집착하여 오온(五蘊)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육처라는 동네
(住無障礙大涅槃中주무장애대열반중하며 又作是念우작시념호대 一切衆生일체중생이 執着於我집착어야하야 於諸蘊窟宅어제온굴택에 不求出離불구출리하며 依六處空聚의육처공취하며)
六處라는 동네가 누구죠?
안 이 비 설 신 의에 의지해가지고
네 가지 뒤바뀐 행을 일으키며, 네 마리 독사에 시달리고
(起四顚倒行가사전도행하며 爲四大毒蛇之所侵惱위사대독사지소침뇌와)
네 마리 독사는 지수화풍이죠.
오온이란 원수의 살해를 당하면서 한량없는 고통을 받나니, 내가 마땅히 그로 하여금 가장 훌륭하고 집착이 없는 곳에 머물게 하리니, 곧 모든 장애가 없어진 위없는 열반이라' 하느니라.
(五蘊寃賊之所殺害오온원적지소살해하야 受無量苦수무량고하나니 我當令彼아단영피로 住於最勝無所着處주어최승무소착처호리니 所謂滅一切障礙소위멸일체장애하고 證無上涅槃증무상열반이며)
또 생각하기를 '일체중생의 마음이 용렬하여 아~주 쪼잔해가지고 가장 좋은 지혜의 도를 행하지 못하므로, 비록 벗어나려 하면서도 성문승과 벽지불승만 좋아한다.
(又作是念우작시념호대 一切衆生일체중생이 其心狹劣기심협열하야 不行最上一切智道불행최상일체지도하며 雖欲出離수욕출리나 但樂聲聞辟支佛乘단요성문벽지불승하나니)
그냥 법문 듣기 좋아하고
내 혼자 어느 정도 조그만 깨달음만 좋아하고
남을 위해서 爲他人說 하지 않는다는 거지.
남의 괴로움은 내 괴로움이 아니니까 모르는 척 하는 거.
그때 내가 마땅히 광대한 부처님의 법과 광대한 지혜에 머물게 하리라.
(我當令住廣大佛法아당영주불법과 廣大智慧광대지혜케 호리라.)
광대한 법과 광대한 지혜에 머무니까
광대한 중생을 제도할 수가 있겠네요.
불자여, 보살이 이렇게 계율을 보호하여 지니면 자비한 마음을 증장케 하느니라."
(佛子불자야 菩薩보살이 如是護持於戒여시호지어계하야 善能增長慈悲之心선능증장자비지심이니라.)
또 넘어가겠습니다.
주간반하고 진도를 맞춰야 되니까
조금 빨리 제가 하고 있습니다.
(5) 住離垢地功果
① 修行鍛鍊
佛子야 菩薩이 住此離垢地에 以願力故로 得見多佛호대 所謂見多百佛과 多千佛과 多百千佛과 多億佛과 多百億佛과 多千億佛과 多百千億佛하며 如是乃至見多百千億那由他佛하야 於諸佛所에 以廣大心深心으로 恭敬尊重하고 承事供養하야 衣服飮食과 臥具醫藥과 一切資生을 悉以奉施하며 亦以供養一切衆僧하야 以此善根으로 廻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하며 於諸佛所에 以尊重心으로 復更受行十善道法하며 隨其所受하야 乃至菩提를 終不忘失이니라 是菩薩이 於無量百千億那由他劫에 遠離慳嫉破戒垢故로 布施持戒가 淸淨滿足이니라
(5) 이구지(離垢地)에 머문 공과(功果)를 밝히다
① 수행의 단련
"불자여, 보살이 이 이구지에 머물고는 서원하는 힘으로 많은 부처님을 보게 되나니, 이른바 여러 백 부처님, 여러 천 부처님, 여러 백 천 부처님, 여러 억 부처님, 여러 백억 부처님, 여러 천억 부처님, 여러 백 천억 부처님을 보며, 내지 여러 나유타부처님을 보느니라.
여러 부처님 계신 데서 광대한 마음과 깊은 마음으로 공경하고 존중하고 받들어 섬기고 공양하며, 의복과 음식과 와구(臥具)와 의약과 모든 필수품으로써 보시하며, 또한 모든 스님들께도 공양하나니, 이 선근으로써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느니라.
또 여러 부처님 계신 데서 존중한 마음으로 다시 십선도법(十善道法)을 받아 행하며, 그 받은 것을 따르고, 내지 보리를 마침내 잊지 아니하느니라. (77)
이 보살이 한량없는 백 천억 나유타 겁(劫) 동안에 아끼고 미워하고 파계한 허물을 멀리 여의었으므로 보시하고 계행(戒行)을 가지는 일이 청정하고 만족 하나니라."
(5) 이구지(離垢地)에 머문 공과(功果)를 밝히다
① 수행의 단련
"불자여, 보살이 이 이구지에 머물고는 서원하는 힘으로 많은 부처님을 보게 되나니,
(佛子불자야 菩薩보살이 住此離垢地주차이구지에 以願力故이원력고로 得見多佛득견다불호대 )
이구지에 머묾으로 많은 부처님을 보게 되나니,
자~ 계율을 지킴으로 해서
선정의 힘은 어느 정도 이제 서서히 다가가게 됩니다.
그러면 계율 지키는 힘으로 하는 행동 하나 하나가
원과 행이 부처님의 행이니까
계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의 행이요,
定이라고 禪定이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의 마음이요,
戒定慧라고 하는 건, 지혜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의 말씀이라.
이른바 여러 백 부처님, 여러 천 부처님, 여러 백 천 부처님, 여러 억 부처님, 여러 백억 부처님, 여러 천억 부처님, 여러 백 천억 부처님을 보며, 내지 여러 나유타 부처님을 보느니라.
(所謂見多百佛소위견다백불과 多千佛다천불과 多百千佛다백천불과 多億佛다억불과 多百億佛다백억불과 多千億佛다천억불과 多百千億佛다백천억불하며 如是乃至見多百千億那由他佛여시내지견다백천억나유타불하야 ),
나유타는 뭐죠?
한량없는 부처님을 본다, 이런 말씀이죠.
나유타도 숫자죠.
여러 부처님 계신 데서 광대한 마음과 깊은 마음으로 공경하고, 여러 부처님 계신 데서 광대한 마음과 깊은 마음으로 공경하고 존중하고 받들고 섬기고 공양한다.
(於諸佛所어제불소에 以廣大心深心이광대심심심으로 恭敬尊重공경존중하고 承事供養승사공양하야),
이 말은 어느 마음이 기본으로 베이스가 깔려 있는 것입니까?
저 앞에서 直心이라고 배운 바가 있습니다. 그렇죠?
첫째 시간에 유연한 직심,
광대한 직심,
아주 깊은 직심,
직심은 어디서 길러진다고 했죠?
신심이 있는 데서 믿음이 성취되는 순간에,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이것이죠.
내 자신이 쓰고 있는 이 마음이 정말 부처님 같은 마음인데
생각이 이렇게 고귀하고 더 활발하지 못하고
포용력이 너그럽지 못한 것은
업식에 쪼달려가지고 똑같은 용량을 가진 깡통인데
여기 찌들리고 저기 찌들려가지고
왜 청송 막걸리집의 주전자처럼
여기 찌들리고 저기 찌들려가지고 쪼글쪼글하게 돼가지고
막걸리 한 되의 막걸리가 한 반 되쯤
3분의1 되쯤밖에 안 들어가는 막걸리 있잖아요.
우리 마음도 이렇게 부처님처럼 쭉~ 펴져가지고
별로 안 쥐어 박혔으면
본래 마음 본심 그대로 쓸 수 있을 텐데 어때요?
집에서 엄마한테 쥐어볶이고 아버지한테 쥐어뜯기고
마누라한테 쥐어뜯기고 남편한테 쥐어뜯기고
자식한테 뜯기고 친구들한테 뜯기고 하다 보니까
마음이 상처가 너무 많아요.
그리고 우리는 수행하기에 제가 볼 때는 너무 예민해. 사람들이
조금만 맛있으면 쪽쪽거리고 빨아 먹고
조금만 맛이 없으면 페페페 뱉아내고
조금만 더우면 막~ 생야단을 치고 에어콘을 안 켜면 안 돼.
땀이 나는지 안 나는지 그거 모를 정도로 그렇게 살아야 되는데
너무 예민해.
춥고 더운데 예민하고,
있고 없는 데서 돈이 있고 돈이 없고,
사람이 사랑하고 미워하고,
이런 데 너~무 예민해가지고
그 수행 자체가 사실은 안 되는 겁니다.
바람이 불든지 비가 오든지 그렇게 가는 거지.
제가 어릴 때 한 10대 때 보던 영화 같은데
Robert Redford 라고, 한국말은 로버트 레드포드입니다. ㅎㅎㅎ
제레미아 존슨Jeremiah Johnson이라고 하는데
거기 나왔던 스치는,
록키 산맥에서 혼자 이렇게 은둔하고 사는 것 같습니다.
아주 오래된 흑백 영화 같아요.
본 기억이 있죠?
제레미아 존슨,
저~기 이스라엘 발음으로 한다면 예레미아 존슨 되겠죠.
제레미아 존슨인데
그 로버트 레드포드가 주인공인데
‘그대가 유랑하는 길은 그대가 선택한 길
그대가 방황하는 날은 길을 잃은 날
바람이 불거나 천둥이 치거나 언제나 사나이는 유랑한다.
순풍이 부는 곳을 따라서'
그게 국민학교 때 중학교 때나 봐놓았던 글귀 같은데
그런 거나 외우고 있으니까 애가 출가 안할 수가 있나...ㅎㅎㅎ
‘그대가 유랑하는 길은 그대가 선택한 길
그대가 방황하는 날은 길을 잃은 날
바람이 불거나 천둥이 치거나 언제나 사나이는 유랑한다.
순풍이 부는 곳을 따라서’
이 대목 하다가 왜 그게 생각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또 한 번 봅시다.
여러 부처님 계신 데서 광대한 마음과 깊은 마음으로 공양하고 존중하고 받들어 섬기고 공양하며, 의복과 음식과 와구(臥具)와 의약과 모든 필수품으로 보시하며, 또한 모든 스님께도 공양하나니, 이 선근으로써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한다.
(衣服飮食의복음식과 臥具醫藥와구의약과 一切資生일체자생을 悉以奉施실이봉시하며 亦以供養一切衆僧역이공양일체중승하야 以此善根이차선근으로 廻向阿耨多羅三藐三菩提회향아뇩다라삼먁삼보리하며)
금강경 같은 데는 얼마나 공양했죠?
팔만사천나유타제불,
모든 팔만사천 부처님한테 공양했다.
그러니까 우리가 여기서 배울 수 있는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만약에 수행자라고 한다면
진짜 이래 살아갈 때
그렇게 예민하지 않고,
그러면 조금 전에 얘기했듯이 예민하지 말고
어떻게 해야 되느냐?
즐겨야 됩니다.
빠지지 말아야 되면서 즐기는 거죠.
마치 물방개가 물에 빠지지 않고 물위에 떠 가는 것처럼
오리가 물위에 떠 있는 것처럼 물에 침잠하지 않고
그 물위에 자기의 생활 터전을 삼아서
고기도 잡아 먹고 조개도 잡아 먹고
여러 가지 벌레도 잡아 먹고 하면서 강물을 즐기는 오리처럼
생활 터전처럼 그렇게 돼야 되는데
막~ 잠수하듯이 푹~ 빠져서 들어가면 나올 줄 모른다.
어떤 일이든지 도취돼가지고
그리고 발 담글 생각도 안 한다 이거야.
너무 예민해가지고
굶어 죽지 뭐 그러면
수행은 어디에 어려움이 있느냐?
惟有下梢難유유하초난이다.
말초 신경을 발달시키면 그것이 가장 수행할 때 어렵다.
너무 좋은 것 보려 하고
너무 좋은 것 들으려고 하고
좋은 것이라고 하는 거는
안쪽에서 좋고 싫고 분별하는 거를
너무 집착해서 따라 가는
좋아도 그만 싫어도 그만 그렇게 조금 가림이 없다고 하면
마음이 점차 점차 자기 본심을 찾아갈 것이다,
이런 말씀입니다.
그 본심을 찾기 위해서
마음을 조복 받기 위해서
지금 뭘 하고 있습니까?
의복과 음식과 와구(臥具) 의약과 필수품,
무능력하게 살지 말고 능력껏 남을 도와가면서 산다.
그래서 내 마음을 항복받고자 하면
번뇌를 이기고자 한다면
克己復禮극기복례 하자고 한다면
일체중생을 공경하는 것이라고
제가 강의 때마다 주장했습니다.
이 마음을 항복 받는 것은 뭐 한다고 했습니까?
남을 공경하라.
존중하라.
스님께도 공양하나니, 이 선근으로,
거기는 줄 그어야 돼요.
모든 필수품으로 보시하며ㅎㅎㅎ
이 선근으로써 아뇩다라삼먁삼보리 최고의 정신 상태에 회향하게 된다.
돌이켜 회향하게 된다.
또 모든 여러 부처님 계신 데서 존중한 마음으로 다시 십선도법(十善道法)을 받아 행하며, 그 받은 것을 따르고, 내지는 깨달음의 마음을 마침내 잊어버리지 아니 한다.
(於諸佛所어제불소에 以尊重心이존중심으로 復更受行十善道法부갱수행십선도법하며 隨其所受수기소수하야 乃至菩提내지보리를 終不忘失종불망실이니라.)
이 보살이,
이 보리를 마침내 잊어버리지 아니한다고 하는 것은
진짜 신심이 제대로 불 붙으면
다시는 보리에 대해서 내 본심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그 자리를 가 닿을 수 있을까, 노력을 해야 된다.
그러면 마음을 깨칠까 못 깨칠까 이걸 고민할 게 아니라, 뭐죠?
오늘 어떻게 내가 다 정직하게 살 것인가!
이것이 그 길로 잇닿아 있다는 것입니다.
이 보살이 한량없는 백 천억 나유타 겁(劫) 동안에 아끼고 미워하고 파계한 허물을 멀리 여의었으므로 보시하고 계행(戒行)을 가지는 일이 청정하고 만족하나니라."
(是菩薩시보살이 於無量百千億那由他劫어무량백천억나유타겁에 遠離慳嫉破戒垢故원리간질파계구고로 布施持戒보시지계가 淸淨滿足청정만족이니라.)
② 喩鍛鍊修行
譬如眞金을 置礬石中하야 如法鍊已에 離一切垢하고 轉復明淨인달하니라
② 단련된 수행(修行)을 비유하다
"마치 진금(眞今)을 명반[礬石] 가운데 넣고 법대로 연단하면 모든 쇠똥이 없어지고 점점 더 밝고 깨끗해지듯 하느니라."
② 喩鍛鍊修行
단련된 수행(修行)에 비유하다.
譬如眞金을 置礬石中하야 如法鍊已에 離一切垢하고 轉復明淨인달하니라
비여진금 치반석중 여법련이 이일체구 전부명정
② 단련된 수행(修行)을 비유하다
"마치 진금(眞今)을 명반[礬石]이라고 하는 거는
백반 가루 가지고 가운데 넣고 법조대로 이렇게 단련해가지고
진금하고 백반 가루하고 섞어서 그렇게 막 불에 굽는가 봐요.
그러다 보면 진금에 붙어 있던 찌꺼기 쇠똥이 다 없어지고
진금은 어떻게 됩니까?
더욱더 순수한 순금으로 변한다.
이렇게 해놨습니다.
그래서 우리 계율을 지키고 이런 것들은
정해진 법은 아니지만
계율을 잘 지킨다고 하는 것은
마치 백반 가루를 진금 속에 넣는 것처럼
쉽게 여러분들 이해를 돕기 위해서 말씀드리자면
뻘낙지를 가지고 우리가 요리를 할 때
침 한 번 삼키고 하겠습니다. ㅎㅎㅎ
중답지 못하게...
뻘낙지를 요리를 할 때 해금이 있고 막 이렇게 돼 있을 때
뭘로 이렇게 해금을 뽑아내야 돼요?
밀가루를 같이 넣어가지고, 그죠?
문어 같은 것 뻘낙지,
빨판에다가 같이 밀가루를 넣고 이렇게 하면 어떻습니까?
밀가루에 묻어가지고 그 뻘들이 다 씻겨나오듯이
여기도 백반 가루를 금에 넣어가지고 같이 이렇게 하면
금에 붙어 있던 쇠덩어리 찌꺼기 있잖습니까?
백반 가루에 붙어가지고 바깥으로 뽑아져 나오듯이
그렇게 단련을 한다는 것이죠.
계율을 지킴으로 해가지고
그 계율이 하나의 촉매, 매개체가 돼가지고
다른 잡때들을 더 깨끗하게 빼낼 수 있다, 이런 얘깁니다.
마지막으로 한 번 읽어봅시다.
③ 菩薩亦復如是
菩薩이 住此離垢地도 亦復如是하야 於無量百千億那由他劫에 遠離慳嫉破戒垢故로 布施持戒가 淸淨滿足이니라 佛子야 此菩薩이 四攝法中엔 愛語偏多요 十波羅蜜中엔 持戒偏多니 餘非不行이로대 但隨力隨分이니라 佛子야 是名略說菩薩摩訶薩의 第二離垢地니라
③ 보살도 이와 같음을 말하다
"보살이 이구지(離垢地)에 머무는 것도 그와 같아서, 한량없는 백 천억 나유타 겁 동안에 아끼고 미워하고 파괴한 허물을 멀리 여의었으므로 보시와 계행을 가지는 일이 청정하고 만족하느니라."
"불자여, 이 보살이 네 가지로 거두어 주는 법[四攝法] 중에서는 사랑스러운 말이 치우쳐 많고, 십바라밀다 중에서는 지계(持戒)바라밀다가 치우쳐 많으니, 다른 것을 행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마는 힘을 따르고 분수를 따를 뿐이니라.
불자여,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의 제2 이구지를 간략히 말한다 하느니라."
③ 菩薩이 亦復如是라
보살의 마음도 이와 같다.
菩薩이 住此離垢地도 亦復如是하야 於無量百千億那由他劫에 遠離慳嫉破戒垢
보살 주차이구지 역부여시 어무량백천억나유타겁 원리간질파계구
故로 布施持戒가 淸淨滿足이니라 佛子야 此菩薩이 四攝法中엔 愛語偏多요 十
고 보시지계 청정만족 불자 차보살 사섭법중 애어편다 십
波羅蜜中엔 持戒偏多니 餘非不行이로대 但隨力隨分이니라 佛子야 是名略說菩
바라밀중 지계편다 여비불행 단수력수분 불자 시명략설보
薩摩訶薩의 第二離垢地니라
살마하살 제이이구지
③ 보살도 이와 같음을 말하다
"보살이 두 번째 이구지(離垢地),
십지 위치 중에 두 번째 머무는 것도 그와 같아서
한량없는 백 천억 나유타 겁 동안에 아끼고 미워하고
애착을 가지고 아~주 애정이 교차되는 그런 파괴하고 남을 헐뜯고
그런 죄와 허물을 멀리 벗어났기 때문에
보시와 계행을 가지는 일이 청정하고 원만해서 만족된다."
"불자여, 이 보살이 네 가지로 거두어 주는 법,
四攝法은 뭐죠?
잘 챙겨주는 법,
布施攝, 愛語攝, 利行攝, 同事攝이라고 하죠.
남에게 잘 베풀어주는 보시섭,
남에게 고운 말 해주는 애어섭,
그러니까 말로써 남을 잘 거두고 챙기는 것,
그 다음에 또 뭐죠?
남들이 이익되도록 잘 챙겨주는 법,
마지막으로 남이 무슨 일을 하면
그 사람하고 똑~같은 입장이 돼가지고 일을 도와주는 동사섭.
그 중에서 사랑스러운 말이 치우쳐 많다,
이 말은 이 계율을 잘 지키려면
남에게 보시하는 거는 환희지에 많았고
여기서는 계율 지키는 거는
사랑스러운 말을 많이 해야 된다.
남에게 말을 볶는 말 하고 막 무시하고 멸시하고
이런 거는 좀 삼가해야 되겠죠.
악한 말 같은 것 이런 것이
그리고 지금 우리가 이구지 할 때는
말씀이 이제 좀 달라져야 되겠지요.
안녕하세요~ 법경 거사님~ ( 곱게) ㅎㅎㅎ
이렇게 말이 완전히 좀 달라져가지고
보들보들하게 좀 해야 될 것 같다는 거죠.
안되더라도 그렇게 실천하는 거죠.
십바라밀다 중에서는 어딥니까?
지계(持戒)바라밀다입니다.
계율을 지키는 것이 많으니, 다른 것을 행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것은 힘에 따르고 그 분수에 따를 정도만 하고
굉장히 많이 해야 될 것은 뭡니까?
치우쳐 많이 해야 될 것은
지계바라밀 하고 애어섭이다, 이 말이죠.
불자여,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의 제 두 번째의 이구지를 간략히 말한다 하느니라."
해서 오늘은 여기까지 이제 하겠습니다.
각 주
(76)
삼유(三有) : 有, 梵語 bhava, 其義分類如下:欲有 色有 無色有. 義同三界. 1. 欲有, 欲界天 人 修羅 畜生 餓鬼 地獄, 各隨其業因而受果報, 稱爲欲有. 2.色有, 色界四禪諸天, 雖離欲界粗染之身, 而有淸淨之色, 稱爲色有. 3.無色有, 無色界四空諸天, 雖無色質爲礙, 亦隨所作之因, 受其果報, 稱爲無色有 ; 三界悠悠一囹圄 羈鎖生靈受酸楚 本來面目久沈埋 野馬無韁恣飄鼓 欲火燒殘功德林 逝波傾入無明塢 云云(天台圓法師自戒)
(77)
수십선계경(受十善戒經) : 全一卷. 譯者不詳. 收於大正藏第二十四冊. 內容分爲十惡業品, 及十施報品兩部分. (一)十惡業品, 揭示滅除十惡, 持守十善戒之要理;竝擧出納受十善戒 八齋戒等之作法. (二)十施報品, 論述殺生 偸盜 邪淫 妄語 兩舌 惡口 綺語 貪欲 瞋恚 愚癡等十惡之惡報相, 竝說示滅除十惡 持守十善之功德. 『出三藏記集』卷四 『開元釋敎錄』卷十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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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처음 그날 처럼 ~ 봄날의 향기처럼 , 곱게 퍼집니다 .고맙습니다 _()()()_
번뇌를 이기고자 한다면
克己復禮극기복례 하자고 한다면
일체중생을 공경하는 것
고맙습니다 _()()()_
스님께도 공양하나니 이 선근으로.... 옴 살바못자 모지 사다야 사바하...ㅎㅎ. 고맙습니다.()()()
어제도 나...
오늘도 나...
내일도 나...
모든 것이 사라져버리고 나니 고요함 그 자체..
고맙습니다. 지선화 님!!
본심을 찾기 위해서
마음을 조복 받기 위해서
능력껏 남을 돕고 일체 중생을 공경하고 존중하라
십선도를 행하고
깨달음의 마음을 마침내 잊어버리지 아니한다
본심에 대해 의심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정직하게 살 수 있을까 노력한다
_()()()_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나무 대방광불화엄경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