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안산다수(夾岸山茶樹) 유잔완만홍(猶殘睕晩紅) 언덕 여기저기 있는 동백나무들 아직도 간간히 붉은 꽃이 남았네
다산 정약용(1762~1836)선생이 전남 강진 다산초당과 백련사 사이에 난 오솔길을 산책하다가 떨어지는 동백꽃을 아쉬워하며 지은 시다.“어찌해야 비단장막을 가져다가(那將錦步障) 연화풍을 막을 수 있을까(遮截楝花風)”라는 두줄을 더했다. 연화풍은 곡우절기의 마지막 꽃소식을 알려주는 바람(花信風)이다. 이를 고비로 봄은 가고 여름이 시작된다. 이미 동백(冬栢)이 아니라 춘백(春栢)인 셈이다. 당신은 유배지 남도에서 만난 혜장(惠藏1772~1811)선사와 의기투합 했다. 비 내리는 봄밤에 홀연히 초당으로 찾아온 스님을 향해‘(동백)숲을 뚫고 횃불이 왔다(穿林一炬來)’고 할 정도로 의지했다. 횃불 역시 붉은 동백꽃 이미지를 그대로 차용한 것이다.
다산은 동백나무를‘산다수(山茶樹)’라고 했다. 동백꽃의 중국식 표기는 산다화(山茶花) 혹은 다화(茶花)다. 즉 동백은 잣나무(栢)류가 아니라 차나무과(科)라는 사실을 문자로 증명한 것이다. 또 고려말 이규보(1168~1241)거사는 다른 시각에서‘동백(冬栢)이란 이름은 옳지않다(冬栢名非是)’고 했다. 겨울지조의 상징인 잣나무(栢)는 푸른 잎만 가졌다. 하지만 동백은 푸른 잎은 물론 붉은 꽃까지 갖춘 화려한 모습으로써 겨울지조를 지켰다. 따라서 동백의 지조가 잣나무 지조보다 한 등급 더 높다. 그럼에도 잣나무(栢)의 아류로 오해할 수 있는 동백(冬栢)이란 작명은 틀렸다는 입장을 피력한 것이다.
동백이 있는 절을 춘사(椿寺)라고 한다. 춘(椿 스바끼つばき)은 일본식 한자다. 일본 교토 지장원(地藏院지조우인)은 유명한 동백절(椿寺)이다. 이 사찰에는 다섯가지 색깔과 여덟겹의 꽃잎(五色八重)을 자랑하는 진귀한 동백나무가 있는 까닭이다. 임진란 때 조선에서 강제로 반출한 것이다.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1537~1598)에게 진상된 것을 다시 지장원에 기탁했다고 기록은 전한다. 1992년 뜻있는 사람들의 노력으로 일부 몇 그루를 분양받아 고향인 울산지방으로 옮겨 심었다는 전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