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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장소 |
도착시각 |
GPS로 잰 고도(m) |
지도/정상석 고도(m) |
화방재 |
10:11 |
9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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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령각 |
10:48 |
1,1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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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사 |
12:02 |
1,2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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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경사갈림길 |
12:43 |
1,4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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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봉 |
13:00 |
1,575 |
1,567 |
하단 |
13:19 |
1,5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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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간갈림길 |
13:57 |
1,5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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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깃대배기봉 |
14:50 |
1,380 |
1,368 |
두번째 깃대배기봉 |
14:56 |
1,3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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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돌배기 |
15:56 |
1,2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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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끝점(석문동주택) |
18:45 |
5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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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 태백산구간 주요지점에서의 시각과 고도
오늘 태백산구간[화방재-태백산-깃대배기봉-차돌배기]을 걸으면 백두대간을 끝내게 된다. 대간길이라! 남한의 반쪽만 통과한 것인데도 제법 먼 길이었다. 2005년 10월 2일 청옥산 북쪽의 고적대구간을 처음으로 종주한 후 3년 8개월이 소요된 셈이다.
백두대간을 약 80개 구간으로 나누고 그 구간들을 하나하나 줄여 나가는 즐거움은 대간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느끼지 못할 것 같다. 나의 대간산행을 크게 도와준 S산악회를 따라서 당일산행으로 대간을 하게 되면 남쪽의 지리산에서 북쪽의 향로봉까지 78구간에 끝내게 된다. 물론 어떤 구간들은 부득이 하여 무박으로 진행하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산행이 금지된 구간을 통과하기 위해서이다.(백두대간길을 온전히 걷기 위해서는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금지한 구간을 감시의 눈을 피해 통과하는 수 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원래에는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사람들은 한꺼번에 대간길을 연달아서 종주하거나, 밤을 이용한 무박으로 약 30여번에 걸쳐 완주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대간길을 최대한 빠른 시일에 종주하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연이은 종주는 주중에 시간을 내지 못하는 직장인에겐 맞지 않는 스타일이고, 무박의 경우에는 경치를 보지 못하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고안된 것이 당일산행에 의한 백두대간 종주인데 S산악회에서 잘 실행되고 있다. 이 당일종주 방법은 주말에만 시간을 낼 수 있는 직장인에게 맞을 뿐 아니라 백두대간의 경치를 감상하는 데에도 적당한 방법으로 이제는 대간종주 중 가장 널리 실시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많은 장점이 있는 당일산행의 치명적인 약점은 산행횟수가 너무 많다는 점이다. 약 80번의 산행을 꾸준히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내 경우 주로 S산악회를 따라서 매월 1,3주 일요일에 대간종주를 하였지만 산악회의 일요대간 종주스케쥴을 그대로 따라가지 못하게 되었다.
다행히 S산악회에는 내가 주로 나가던 일요대간 외에도, 토요대간(매달 두 번씩 토요일에 시행), 목요대간(매월 2회 목요일 시행)도 있어서 빠진 구간을 보충할 수 있었다. 그래도 안되는 구간은 다른 산악회의 힘을 빌리거나 혼자서 종주해야만 했다. 가장 어려운 방법이 혼자서 종주하는 방법이다. 교통편을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 어렵고 불의의 사고를 만날 수도 있으며, 경비도 산악회를 따라 가는 것에 비해 2배 이상 소요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홀로산행에서야말로 내가 얻는 것이 가장 많은 방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하다 보니 그 구간에 대한 인상이나 경험이 산행후에도 뚜렷이 남게 되고 산행 중에 하게 되는 명상도 그 질이나 깊이가 높고 깊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S산악회를 따라서 백두대간의 종주에 들어선 것은 2005년 10월 2일 청옥산의 고적대구간[연칠성령-고적대-갈미봉-이기령]을 친구 우명길과 함께 걸으면서였다. 그때는 내가 이제부터 대간을 시작하는구나 하는 마음은 없었고, 단지 친구와 여느 때처럼 하루 산행을 즐기는 것으로 해서 S산악회 버스에 동승했던 것이다. 친구는 그때 이미 백두대간을 거의 다 종주하고 몇 개 구간이 남지 않아서 대간완주의 날을 조바심하며 고대하던 때였지만 나에게는 남의 이야기처럼 들렸었다. 그러나 동행한 산객들의 진지한 태도에서 백두대간을 완주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느끼고 알게 되었다.
그후 2주일 후인 2005년 10월 16일 황철봉구간[미시령-황철봉-저항령-마등령]을 또 다시 친구를 따라서 무박산행으로 종주하게 되었다. 아직도 대간완주의 꿈은 생각도 못했고 설악의 단풍을 구경하고 또한 설악의 새벽을 훔쳐 본다는 욕심에서 따라 나선 터였다. 설악산관리공단의 눈을 피해 한밤중 새벽에 미시령에서 시작한 산행은 캄캄한 너덜길에서 난관에 봉착하기도 했지만 어찌어찌하여 너덜갈을 통과하고 마등령근처에서 아침 햇살을 보게 되었다. 마등령근처에서 장엄한 울산바위의 모습과 대청봉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오세암으로 해서 백담사에 오는 동안 설악의 단풍을 감상할 수 있었기에 아직도 그날의 산행은 내게 매우 인상깊은 산행으로 남아있다.
그후 몇번의 대간구간을 따라하게 됨에 따라 재미가 붙게되고, 백두대간 안내서를 하나 사서 내가 간 곳을 붉은 펜으로 그려가며 한 구간 한 구간 종주를 하게 되고, 급기야는 대간의 완주를 넘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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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23일 토요일 이른 아침이다. 6시 10분경, 2호선 구의역 쯤인데 정병기사장으로부터 휴대전화가 온다.
'형님 어딥니까?'
'여기 구의역이니 곧 도착할거요.'
'빨리 오세요. 다들 기다립니다.'
강변역을 나가 동서울터미널에 가니 나를 호위할 호위무사들 아니면 수호천사 네분이 벌써 와서 나를 기다린다. 우명길, 김주홍, 정병기, 김의정여사다. 고마운 일이다. 나의 마지막 대간종주를 축하해 주기 위해 역전의 용사들이 나보다도 먼저 버스터미널에 나와서 기다려 준 것이다.
4인과 반가운 인사를 나눈후 승강장으로 나가서 6시 30분발 태백행 시외버스를 탔다. 날이 흐려서 아침해가 뜨는 광경은 볼 수가 없는데 버스는 중부고속도로를 지나 영동고속도로를 거쳐 제천까지 간 다음 고속도로를 나와 38번국도로 해서 영월 쪽으로 달려간다. 제천 조금 지나서 휴게소에서 잠시 휴식한 다음 새로 뻗은 국도를 신나게 달리는데 영월을 조금 지난 곳에서 부터 도로는 옛날의 좁고 구불구불한 도로 그대로이다. 도로선형 개선공사가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다. 태백에 도착하기 전에 버스는 강원랜드에서 가까운 사북/고한 버스터미널에 정차했는데 자리를 다 채웠던 승객들이 우리 일행과 두사람 정도를 남기고는 다 내려버렸다.
버스 승객들이 대부분 카지노에 가는 사람들이라서인지 아니면 고한/사북의 경제나 인구규모가 태백보다 커서인지 승객들이 거의 다 이곳에서 내리는 이유를 모르겠다. 버스는 이제 반대방향으로 달리더니 높은 고개를 넘고 터널 속을 달린다.(나중에 알고보니 금대봉이 있는 싸리재 밑의 터널을 통과했다고 한다.)
이때 서울로부터 급보가 날아든다. 노 전대통령의 자살소식이다. 전직 대통령이라는 요직에 있던 분이 자살했다니 앞으로의 정세가 심상치 않다. 큰 사건이 일어나긴 했으나 그렇다고 산행을 접을 수는 없을 것 같아 밀고 나가기로 한다. 9시 50분경 우리 버스의 최종 목적지인 태백터미널에 도착하였다. 그리고는 터미널 앞에서 기다리는 택시 중 두 대를 골라서 타고 화방재로 향했다.
날은 아직도 개이지 못한 채이다. 급하게 달려온 택시에서 내리니 화방재인데 시각은 10시 11분이다. 화방재가 오늘의 들머리인데 국도상에 작은 휴게소가 있고 주유소와 민박집이 보인다. 예전에 몇번 와 보았던 곳이라서 낯이 익다. 산행준비를 하고 도로를 건너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올라가는 길은 그리 급한 경사가 진 길은 아니다. 빽빽하게 자란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고 길은 그 가운데로 나있다.
배낭에서 카메라를 꺼내어 경치를 찍으려 하니 메모리가 들어있지 않아 찍을 수가 없다. 사진을 컴퓨터로 옮긴다고 메모리를 빼 놓았었는데 깜박하고 메모리를 다시 끼우는 작업을 빼먹은 것이다. 이제부터 카메라는 무용지물이다. 무게가 1.5kg이나 나가는 무거운 쇳덩어리에 불과해 진다. 찬찬히 준비한다는 것이 어젯밤 늦게 집에 왔고 아침에도 일찍부터 서두르다가 카메라에 다른 일로 빼 놓았던 메모리를 다시 장전하는 걸 잊었던 것이다. 날이 흐려서 촬영에 썩 좋은 환경이 아닌 게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조금 올라가니 숲이 제거된 공터(밭)가 나오고 도립공원 입장료를 받는 매표소가 나온다. 1인당 2,000원이다. 국립공원에는 입장료가 없는데 도립공원에선 꼬박꼬박 챙긴다. 공원의 등급은 도립이 국립에 비해 떨어질 터인데 요금을 받는다는 것이 역설적이다. 하긴 웃기는 행정이 대한민국에서 어찌 이것 뿐이랴마는. 더워진 몸이 열기를 발산하도록 윗옷 한꺼풀을 벗어서 배낭 속에 넣었다.
매표소를 지나서 37분 걸으니 산령각이 나온다. 작은 영각의 문을 열어 보니 호랑이와 산신령 그림이 벽에 모셔져 있는 걸로 보아 이 집은 민간신앙을 위해 만든 장소인가 보다. 일행은 잠시나마 같이 모여서 속도를 조절한 다음 다시 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카메라도 없어 홀가분한 나는 앞장서서 산길을 걷는다. 2008년 1월 1일 신년맞이 산행 때 새벽의 강추위를 무릅쓰고 오르던 길이다. 그때는 추위와 어둠 속에서 계속 오르막길만 갔던 것 같은데 지금 와서 보니 길은 아래로 한참 내려갔다가 다시 오르게 되어 있다. 김주홍, 우명길, 정병기 이 세분은 야생화를 찾아서 카메라에 담느라 늦어지고 있다.
나는 홀로 걸으며 오늘의 숙제를 해나간다. 매일 아침 하는 일인데 오늘은 일찍 집을 나서느라 하지 못했던 일이다. 묵주기도 5단을 바치는 일이다. 오늘은 토요일이니 환희의 신비를 바치면 된다. 매 단마다 성모송을 열번 읊어야 하는데 보통 때는 묵주알을 짚어가며 열번을 세지만 이렇게 걸을 때는 손가락을 하나씩 접었다가 펴면서 열번을 세면 된다. 묵주기도 5단을 끝내는데에는 보통 10분에서 15분의 시간이 필요하다. 묵주기도를 끝내고 간단히 그분께 기도한다. 오늘의 산행이 무사하도록 빌고 소소한 개인사에서 시작하여 가정사를 거쳐 거창한 세계평화까지 그분께 기도로서 부탁드린다.
기도가 끝난 후엔 나만의 상상의 세계에 침잠한다. 여러가지 상념들이 정리되는 시간이다. 추억과 현실과 희망이 뒤섞인 마음속의 실터래를 조심스럽게 풀어가며 정리를 해보는 것이다. 경사가 심하지 않기에 육체에 가해지는 고통이 거의 없기에 정신은 더욱 자유로울 수 있는 편안한 길이다.
이렇게 상상의 나래 속에서 부지런히 내닫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동행이 너무 오지 않는다. 다시 아래로 향해 한참을 가니 일행이 오고 있다. 잠시 멈추어서 물통을 배낭에서 꺼내려는데 배낭에서 액체가 떨어지고 있다. 깜짝 놀라서 배낭을 열어보니 막걸리 병에서 막걸리가 다 새어서 가방안에 흥건하다. 플라스틱병의 마개가 허술해서 샌 것이다. 태백시의 버스터미널 앞 슈퍼에서 정사장이 사비로 사서 나보고 운반하라고 했던 것인데 거의 다 새고 말았다. 가방안의 물건을 다 꺼내고 막걸리를 가방으로부터 쏟고 털어 내었다. 그러나 그 냄새까지는 없애기가 어렵다. 천상 집에 가서 가방을 빠는 수밖에 없다.
잠시후 일행과 함께 안부에 도착하여 잠시 휴식한다. 그리고 누군가가 마련헤 온 과일을 나누어 먹고 물을 마셨다. 그리고는 다시 비탈길을 올라간다.
계속해서 산길을 올려 붙이는데 12시경이다. 유일사가 보이는 곳인데 작게나마 휴게할 수 있는 공간이 나온다. 한번도 가보지 않았던 유일사를 보고 가기로 하고 다들 수직으로 50m 정도를 내려간다. 대웅전이 잇고 선원이 있는데 그 이름이 무이선원이다. 유일사의 唯一과 무이선원의 無二를 합하면 유일무이가 되어 진리는 하나라는 말이 두 번 강조되는 셈이다. 재미있는 이름붙이기이다.
가파른 길을 다시 올라와 정상을 향한다. 사진을 찍느라 세사람은 아직도 뒤쳐진다. 앞장 서서 계속 올라가다 보니 주목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커다란 주목들이 곳곳에서 반겨준다. 이제 정상도 얼마 안남았기에 일행을 기다린다. 이런 속도로 가면 조금 늦을 것 같아 약간은 서두를 필요가 있다.(결국 점심식사 후에는 속도를 내게 된다.) 기온이 제법 차서 겉옷을 꺼내어 입었다.
주목지대를 지나고 조금 더 올라가서 시각은 12시 43분인데, 좌측으로 가면 망경사로 간다는 이정표가 세워진 삼거리에 도착하였다. 구름은 아까보다 더 짙어져 가까운 앞도 잘 보이지 않을 정도이다. 처음 태백에 오르는 세 분(김주홍, 정병기, 김의정)에게는 미안한 일이다. 다음을 한번 더 기대하자고 제안한다. 태백산은 육산으로서 높지만 험하지 않기에 여유있게 산행하는데에는 아주 좋을 것 같다.
구름 안개속을 헤치고 완경사길을 가다보니 홀연히 3면을 돌로 쌓아 만든 제단이 나타난다.(태백 정상 근처에 있는 3개의 천제단 중 하나이다.) 오늘의 최고봉인 장군봉에 온 것이다. 장군봉은 높이가 해발 1,567m라고 하는데 GPS상에는 1,575m로 나타나서 9m의 오차가 있다. 큰 오차는 아닌 것 같아 다행이다. 잠시후 GPS의 높이를 1,567m로 보정했다.
길은 구름 속으로 나있는 듯 시야가 잔뜩 가리워져 있는데 길을 따라서 몇 분간 전진하니 천제단에 도착한다.(태백 정상 근처에 있는 3개의 제단들이 모두 천제단이라 불리워서 혼돈이 일어날 수 있다. 가장 큰 것은 이곳의 제단이어서 나는 이곳을 천제단으로 부르고자 한다.)
3면의 가림벽을 모두 돌로 쌓았고 돌계단을 만들어서 터져았는 앞쪽으로 출입할 수 있게 되어 있고 ㄷ자로 만들어진 공간의 중앙에는 제물을 놓기 위해 지면을 높혀 단을 만들었다. 그리고 위패가 있을 자리 쯤에 한배검이라고 돌로 새긴 작은 비석(위패)이 서 있었다. 각자 한배검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은 다음, 일행은 근처에 세워진 커다란 정상석(태백산이라 새겨 있음) 밑에 가서 단체사진을 찍었다.
이제는 점심식사를 한 차례이다. 조금 밑에 있는 하단에 가면 자리가 있었던 것을 기억하고 하단을 향해 내려갔다. 13시 19분 또 하나의 천제단인 하단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주변에는 이미 다른 산객들이 진을 치고 식사를 하는 중이다. 우리는 조금 더 가다가 장소를 찾기로 하고 길을 더 내려갔다. 마침내 아늑한 장소를 발견하고 짐을 풀었다. 높은 지대인지라 약간은 추위를 느낄 정도여서 바람이 없는 곳을 찾은 것이다. 모두의 도시락을 꺼내 놓고 나누어 먹는 맛있는 식사는 약 30분간 계속되었다.
13시 51분 식사를 하고 길을 떠났다. 6분을 가니 바로 갈림길이 나온다. 13시 57분. 삼거리인데 이곳에서 그대로 진행하면 문수봉으로 가는 길인데 백두대간길은 아니다. 우측으로 가는 길이 부쇠봉으로 통하는 길로서 백두대간길이다. 촘촘히 달린 리본들이 이곳에서 우측으로 가라고 손짓하는 듯하다.
길은 높낮이가 적고 거의 평지와 같다. 부쇠봉으로 올라가도 되지만 부쇠봉을 약간 우회하여 가는 길을 택했기에 길이 완만한 것이다. 여기서부터는 속도를 내기로 한다. 우선 깃대배기봉까지 급히 가보기로 하고 우명길군과 내가 앞장을 섰다. 거의 뛰는 속도로 약 한시간을 전진한 14시 50분, 산림청에서 세운 깃대배기봉이라는 표지석이 나온다. GPS고도가 1,380m이다.
그런데 6분을 더 간 14시 56분, 또 하나의 깃대배기봉 표지석이 나오는데 이번 것은 봉화군에서 세운 것이다. GPS상 높이는 1,360m로 앞의 것보다 12m 낮은 지점이다. 어느 곳이 진짜 깃대배기봉인지 가름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산객들은 누구의 장단에 춤을 추어야 할런지. 답답한 노릇이다. 두 깃대봉 사이에는 대간길을 나무 덱크로 덮어 토양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취했는데 덱크에 탄성이 있어 그 위를 걷는 발의 감각이 제법 부드러운 것이 걷기에 괜찮았다.
깃대배기봉에서 대간 탈출지점인 차돌배기까지는 다시 한 시간을 더 가야 했다. 일행의 후미는 약간 지치기 시작했는지 나와의 거리가 떨어져서 쫓아 오고 있다. 봉우리를 한두번 넘고서 15시 56분, 드디어 대간의 종점인 차돌배기에 도착했다. 여기에 도착함으로써 나의 대간길은 마무리되었다. 먼저 도착한 나는 길옆에 놓인 벤취에 앉아 휴식을 취하며 알행을 기다렸다. 그리고 기다리는 동안 그분께 감사하는 간단한 기도를 드렸다.
잠시 후 일행이 도착하여 대간완주의 인사를 받은 다음 다음 목적지인 각화산을 향하였다. 지친 일행보다 앞장서서 길을 가다보니 능선의 끝에 도달하였는데 거기엔 묘가 하나 있었다. 아래 계곡에선 물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서 능선이 끝나고 계곡으로 들어가기 직전임을 짐작케 했다. 각화산으로 향하는 능선은 간 곳이 없는데 마침 S산악회의 리본이 보였다. 이곳까지와 그 아래의 길은 내가 아는 길로서, 지난번 신선봉구간을 종주할 때에 내가 내려간 길이었다. 다만 이곳부터는 길이 홍수에 쓸려서 지워지고 계곡의 바닥을 다라가야하는데 바위를 넘으며 가는 길이 꽤 험했던 기억이 있다.
이번 산행을 도와준 우명길군이 계획하길, 이곳에서 각화산으로 가는 능선이 있으니 그걸 타고 각화산으로 가면 길이 괜찮을 것으로 생각했었다. 나는 차돌배기에서 탈출하지 말고 대간길을 조금 더 가서 신선봉을 지나 곰넘이재까지 진행했다가 탈출하는 안을 제시했었는데, 각화산과 각화사에 대한 욕심도 있어서 군의 계획에 찬성했던 것이다. 그런데 각화산으로 가는 능선은 보이지 않고 계곡으로 가는 길만 보이니 진퇴양난이다.(나중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각화사능선은 차돌배기에서 약간 북쪽에서 시작된다고 한다.)
되돌아갈 수도 없는 일인지라 계곡을 따라 가기로 결정한다. 계곡의 미끄러운 바위들을 넘고 여울을 여러번 건너며 밑으로 내려갈 수 밖에 없다. 시간이 걸리고 발을 조심해야 하는 위험한 길이다. 이 때 일행 중 한사람이 '아이쿠'하며 돌위에 넘어진다. 바위를 내려가다가 발을 잘못 디뎌 스틱이 부러지고 허리께를 돌에 부딪힌 것이다.
잠시 멈춰서 사태를 수습한다. 다행히 큰 상처는 아닌 것 같아 계속 전진하되 배낭은 정병기군에게 맡겼다. 한참을 버벅거리며 내려가는데 이번엔 배낭 두개를 진 정사장이 넘어진다. 나무줄기를 밟아 발이 미끄러졌다고 한다. 다행히 큰 상처는 없는데 나중에 들으니 카메라 액정이 깨졌다고 한다. 조심해야 할 구간이다.
위험한 계곡의 바닥을 이렇게 고생하며 한 30분쯤 내려가니 드디어 제대로 된 길이 나온다. 포장은 안되었지만 차도 다닐 수 있을 정도의 넓은 길이 개울을 따라서 나있는데 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니 몇번은 개울을 건너게 되어 있었다.
18시 45분 드디어 최초로 보이는 민가에 도착하였다. 별장으로 지은 집 같기도 한데 근처가 수해를 입어서인지 을씨년스럽게 보이는데 그 앞에 마당이 있고 거기에 차들이 몇대인가 주차되어 있다. 더 이상 걷기에는 무리일 것 같아 그집에 머무는 사람에게 춘양까지 라이드를 부탁하기로 한다. 마침 수해복구공사를 하기 위해 그곳에 머무르는 의성에서 오신 분이 자기도 나가는 길이니 춘양까지 탑차로 태워주시겠다고 한다. 우리에겐 행운을 주는 분이다.
우리가 이용한 탑차는 뒤에는 짐을 싣고 앞에는 사람 6인이 탈 수 있는 트럭이다. 좌석에 쌓인 짐을 뒷쪽의 짐칸으로 옮긴 뒤 우리는 차에 탈 수 있었다. 차는 마을과 주변의 수해복구 현장을 통과하고 아스팔트길로 들어서더니 곧 춘양에 우리를 실어다 놓는다.
춘양에서는 시내버스를 이용해 봉화까지 간 다음 다시 버스를 타고 영주에 도착한 것은 저녁 8시가 넘어서였다. 늦은 저녁을 역앞에서 먹고 찜질방으로 향했다. 다음날(24일) 새벽 2시 42분에 영주역에서 청량리가는 열차가 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해서 파란만장한 하루 산행이 끝났다. 그리고 나의 대간종주도 끝났다.
(후기)
대간길이란 조용히 기도하며 걷기에 좋은 길이다. 기도가 끝나면 나만의 명상에 잠길 수 있는 길이다. 대부분이 평화로운 길이되 일부 험한 길도 있다. 속리산이나 공룡능선, 점봉산구간 등에 약간의 위험이 있기도 하나 대체로 가기 편한 산길이다.
친구인 우명길군의 예를 따라 대간길을 마친 셈이다. 끈기를 가지지 않으면 끝내기 힘든 작업이다. 그 끈기라는 것이 헛된 집념은 아니었나 되짚어 본다. 아직 부족한 것이 많다. 대간길에서 찍은 사진들도 정리해 보고 글도 더 써서 보태야 할 것 같다. 그날(5월 23일) 같이 산행해준 분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첫댓글 다시한번 대간종주완등을 축하드리며 항상 배움을 주셔서감사합니다..
대간 길 이야기를 책으로 한 번 엮으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