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양이 에게
초우 / 박소연
보드라운 살결
숨골이 오르내리는 옆구리
깜빡깜빡 눈 키스에
녹아내리는 마음,
가르릉 가르릉 코를 골 듯
나른한 눈,
까칠한 애정표현
보근 보근 털 뭉치 같은 너
사랑이 커질수록
아파오는 마음 한켠
"털 날려, 내다 버려"
오는 이마다 한마디, 나처럼 가슴 철렁하지?
걱정 마,
잘 살아보자 집사를 믿어봐,
필자에게는 몇 년 전에 얼떨결에 맡게 된 고양이가 한 마리 있다.
그전까지는 검은 고양이가 밤 열두 시에 시체를 세 번 뛰어넘으면 시체가 벌떡 일어선다거나,
고양이는 영물이라는 옛 어른들의 말을 많이 듣던지라, 고양이에 대한 무서움으로 데리고 와서도 쉬이 정을 주지
못하고 쩔쩔맸던 기억이 난다.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으며 여기저기서 버림받던 새끼 고양이가 3번의 입양과 파양이라는 우여곡절 끝에
만나게 된 집사마저 고양이 공포증이 있던 인간이었으니 녀석에게도 굉장히 힘든 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개를 몇 마리 키워본 경험으로, 강아지 키우듯 대하니 처음에는 이 녀석의 까칠한 반항이 끝이 없었다.
온 손은 흉투성이에 집안은 쑥대밭이 되어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다. 도대체 고양이를 왜 키우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밖에 풀어놓고 싶을 만큼 서로가 적대적이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또다시 1년이 지나서야 유대감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지금은 이 녀석이 뭘 원하는지 뭐가 불편한지 서로의 생활습관과 패턴을 분석해 그 녀석의 뜻을 유추해 볼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산아” 하고 부르면 야옹~ 하고 꼬리를 세우고 달려오는 모습과 말끝마다 야옹 거리며 말대꾸하는 모습이,
꾹꾹 이를 하다 품에 파고들어 잠든 뒤통수를 바라보며, 감사함을 느낀다. 가끔은 어리광부리듯 웅얼웅얼 보채는 녀석의 소리가
엄마 엄마하고 들릴 때도 있다.
요즘엔 인면수심의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티브이 등을 통해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다.
음식물 쓰레기와 함께 봉지에 넣어 쓰레기통에 버려진 강아지의 소식을 접하거나, 학대로 인해 생사를 오가는 동물들의
소식을 들을 때면 주책 맞게도 눈물부터 흐른다.
생명은 소중한 것이다, 쇼핑하듯 샀다가 싫증 나면 버리는 물건이 아니다. 끝까지 거두어 줄 수 없으면 최소한
그 아이들에게 아픔을 주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요즘 산이와 난 너무 행복하다. 그 녀석이 털을 흩어대고 다녀도, 혹은 물어서 병원에 갈지라도 말이다.
곁에 와줘서 아주 고맙단다 요 작은 야수야.
* 산이- 필자가 기르는 고양이 이름,
* 집사- 동물이 주인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한다는 뜻에서 기르는 사람을 집사라 함
첫댓글 정들이는 시간이 길어서 힘들었겠어요.
내가 동반 동물을 기르지는 못하지만
이해가 되네요
아직은 어른들께서 집안에서 동물을 키우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큰 것 같습니다.
동물 카페해도 될듯, ㅎㅎ
박시인이나 노시인이나 동물이라면 남부럽지 않으니,
^^ 곁에 머무르는 인연에 이렇게 글도 쓰고 사랑도 하니 감사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