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살길은 무엇인가(2200.2023.7.16)
사55:6-13
할렐루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 임재하셔서 우리 예배를 받으십니다. 오늘도 주의 전에 나오신 여러분 모두에게 하늘의 위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혹시라도 삶의 현장에서 상처와 상한 마음을 가지고 오셨으면 말씀 듣다가 위로와 치유함을 받으시고, 질병과 싸우는 중이라면 여호와 라파 치료의 하나님을 만나서 치료받는 시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삶이 힘들고 지쳐서 오셨다면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은 새 힘을 얻으시기를 축복합니다. 무엇인가 계획하고 기도중에 있는 것이 있다면 응답받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삶이 해결되고 성령이 충만하여 기쁨과 감사와 웃음이 넘쳐나는 유쾌한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우리가 봉독한 본문 사55장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초청장입니다. 구약시대 이사야 선지자는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들이 죄로 말미암아 심판 받을 것을 경고하셨습니다. 그리고 포로로 잡혀 갈 것을 경고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사40장에 들어가면 그들이 회복될 것을 선포하십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그들을 용서하고 받으신다고 약속하면서 돌아오라고 하십니다.
이사야 55장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부족을 깨닫는 자들에게 좋은 것을 줄터이니 하나님의 초청에 응하라는 말씀이고 초청에 응한 사람에게는 어떤 좋은 것을 주겠다는 내용들입니다. 우리는 이미 이 초청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초청에 참여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귀한 체험과 은혜를 받아야합니다.
1-5절은 목마른 자는 물로 나오라는 초청의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의 ‘물’이란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하는 ‘복음’ 이라고 하셨습니다. 초청을 하시되 아무런 자격이나 조건을 달지 않으셨습니다. 유식한 자도, 무식한 자도, 늙은 자도, 어린 아이도, 가진자도, 가난한 자도 아무나 이 초청에 응하면 됩니다. 그러면 값없이 포도주와 젖을 사 먹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포도주는 기쁨을 말함이고 젖은 영양을 말함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을 만날 만한 때에 찾고 가까이 계실 때에 불러야 합니다. 즉 하나님을 만날 만한 때와 하나님께서 가까이 계시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슨 일이든지 기회가 항상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인생에서도 기회가 항상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한번 온 기회는 영영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시간은 인생을 기다려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가까이 계시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가까이 계실 때에 하나님을 불러야 합니다. 항상 기회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하나님을 주님으로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었습니다.
요즘에는 초청장이 많이 옵니다. 결혼, 장례, 축하행사 등등, 그런데 초청장이 왔다고 다 갈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내게 초청장을 보냈다는 것은 그만큼 나를 알고 있고 오실만한 사람이라 생각해서 보냈을 텐데 그냥 무시하기도 참 어렵습니다. 초청장을 받고 오게되면 빈손으로 올 수는 없습니다. 저도 초청을 받으면 빈손으로 가지를 못합니다. 근데 이상한 것은 우리 상주감리교회에서 행사를 하면 사람들은 많이 오는데 빈손이 더 많습니다. ㅎㅎㅎ웃고 맘니다. 봉헌예배때에도 사람은 많이 왔는데 ㅎㅎㅎ 감리사 취임때에도 그랬고 이번에 부흥단장 취임때에도 많이는 오셨는데 ㅎㅎㅎ 축하해주러 온것만 해도 감사한 일입니다. 어떤 분은 상주왔으니 곶감달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축하금은 0원 ㅎㅎㅎ 상주교회 오면 그냥 먹을 수 있다고들 생각해서 그냥 옵니다. 오면 그냥 안가고 간식도 많이 해놓아도 다 싸 가지고 갑니다. ㅎㅎㅎ 그래서 우리 상주교회는 남들을 잘 섬기는 복된 교회입니다. 여러분이 섬긴 것 만큼 남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잘 섬겨드리는 것입니다. 맞으면 아멘 합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이사야 선지자가 외치던 그 시대와 너무나도 흡사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우리도 죄가 관영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이 임박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타락해도 보통 타락한 것이 아닙니다. 동성애를 죄가 아니라 합니다. 간통도 죄가 아니라 합니다. 신문을 보고 방송을 보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곧 망할 세상 같아 보입니다. 정말 무서운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찌해야 합니까? 하나님은 이런 세상에서 살고 있는 상주감리교회 성도들에게 초청장을 보내고 계십니다. 그 내용인즉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죄악의 길에서 돌아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멀리서 찾기 어려운 곳에서 그들을 부르신 것이 아니며 가까이 계셔서 그들이 부르면 언제든지 응답하시고 만나주실 준비가 되어 있으십니다. 여기서 ‘찾으라’는 것는 예배의 자리로 찾아 가는 것을 의미하고 ‘부르라’는 것은 나의 무능력함을 인정하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여 찾으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 천국복음을 전하게 하셨지만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고 도리어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들이 거부한 그리스도의 복음은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 이후로 모든 이방 나라로 퍼져갔고,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찾고 부르는 자들은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우리 죄인들이 이 죄악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모든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뿐입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떻게 살아야 멸망하지 않고 살길이 열리는 것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살길은 무엇인가요?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기를 축원합니다.
1.인생의 길을 걸으며 하나님을 제때에 올바로 만나야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인생의 길을 잘 걸어가고 계십니까? 정확하게 알고 가는 길이든, 알지 못한 채 무작정 가는 길이든, 우리는 각자의 인생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이 인생길을 감에 있어서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우연’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각자 정해진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욥처럼 어떤 사고가 갑자기 우리를 덮치고 불행이 살금살금 우리가 가는 길로 다가오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건 겉으로만 그렇게 보일 뿐입니다. 이런 것들이 불운이라고 느껴지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숨겨진 은밀한 각본을 읽을 수 없고 하나님의 최종 목적을 정확하게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참된 믿음이 찾아오면 우연과 불운은 우리 곁에서 영원히 사라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연과 불운은 성령님으로 거듭난 사람들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특별한 보살핌을 받는 귀한 존재이기에 우연이나 불행이 우리를 넘어뜨릴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특별한 돌보심을 받고 있는 사랑스러운 아들이요, 딸들입니다. 귀한 보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의심해서는 안됩니다. 어떤 형편에 있든지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왜 만나야합니까?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구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꼭 만나야 합니다. 오늘 본문 사55:6절‘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하나님을 만나야 하는 절대적인 애원이며 절규의 메시지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절대적으로 만나야 할 하나님을 애원하고 절규하며 찾고 부르며 몸부림치고 간구하는 일들이 무한의 시간에 속한 것이 아니라 한정된 시간적 공간에서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축복은 모두가 구원과 연결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고 부른다는 이유는 나 스스로 내 인생을 책임지고 구원할 능력이 없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나의 연약함을 하나님께 고백하는 것입니다. 인간들이 하는 일에는 항상 한계라는 담이 있습니다. 그중에 생명과 사망의 문제가 그렇습니다. 사람이 생명을 창조할 수 없습니다. 반대로 사망을 영원한 생명으로 구원할 수도 없습니다. 사람의 생명과 사망에 대하여 하나님은 간단하게 설명해 주시고 계십니다. 롬5:12절‘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히9:27절‘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사망을 이길 수 없는데 이길 수 없는 사망이 내 앞에 있는 이유는 바로 죄 때문입니다.
죄 때문에 사망에서 벗어 날 수 없는 우리를 죄에서 벗어나 참 생명이 되게 할 수 있는 길을 하나님이 주시고자 만날만한 때에 찾고 가까이 계실 때 부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요11:25절‘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요14:6절‘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20:31절‘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했습니다.
죄로부터 오는 사망의 결과는 너무 큽니다. 인생을 송두리째 뿌리까지 뽑아 꺼지지 않는 불속에 집어던지는 최고의 적이 바로 죄라는 것입니다. 이 죄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 하나님을 찾으며 부르는 것입니다. 이렇게 찾고 부르는 일들을 지금 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이렇게 고백합니다. 시6:5절‘사망 중에서는 주를 기억하는 일이 없사오니 스올에서 주께 감사할 자 누구리이까’ 우리가 숨 쉬고 있는 이 순간이 바로 하나님을 만날만한 때요 또 가까이 계신 지금이 바로 내가 살아 숨 쉬는 이 순간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다른 종교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신이 인간을 찾아온 종교라는 것입니다. 다른 종교는 사람이 신에게 찾아가는 종교인데 우리 기독교는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셨고 그분이 직접 자신의 백성에게 찾아와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이 그분을 제대로 맞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요1:11절‘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치 아니하였으나’라고 말합니다. 빛이신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 왔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죄 가운데 매여 살기에 그를 싫어했을 뿐 아니라 그분의 초청을 무시하고 거절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돌아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 부르심에 응답하고 반응해야 합니다.
무엇으로요?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본문 6절‘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하나님은 만날 만한 때가 있습니다. 그분이 우리와 가까이 있을 때에 만나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영접한 그 순간 하나님을 만난 것이고 그러기에 이미 만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만남이 한번으로 그쳐서 되는 것이 아니고 늘 지속적으로 진행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매주일 설교 때마다 나는 누구며 하나님은 누구며 하나님이 내게 무엇인가를 말하고 계시는가를 들어야 하고 믿어야 하고 반응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 우리는 늘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까? 그것은 우리 인간은 하나님을 만날 때에 모든 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입니다. 그분만이 우리 문제의 해결자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지속적으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까요?
예배를 통해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만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그 말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우리 상주감리교회 성도는 그분은 늘 만나야 합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예배 속에는 기도와 찬양과 말씀이 있습니다. 그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는 일이 없다면 그 예배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예배는 강의를 들으러 오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는 사람을 만나러 오는 것도 아닙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러 오는 것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만나야 합니다’ 우리 예수님은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육신을 입고 오셨습니다. 그분은 스스로 말씀으로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가운데 계셨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기록된 말씀인 성경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신구약 전체의 주인공이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했습니다. 그러기에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야만 온전히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 만나야 합니다’오늘 본문에 가까이 계실 때 하나님을 불러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늘 우리와 함께 계시고 가까이 계십니다. 그러기에 그분과 대화를 해야 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잘못 생각하는 것 중의 하나는 ‘하나님은 저 먼 곳에 계신다’그러기에 내 형편과 사정을 잘 모르신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큰 오해입니다. 사실 하나님은 우리 옆에 그리고 가까이 계십니다.
구약 성경에 보면 요나는 니느웨로 가지 않고 다시스로 갔습니다. 거기를 가면 거기에는 하나님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야곱도 벧엘에서 돌베개 비고 잠자다가 꿈에 하나님의 천사들을 보고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제야 하나님은 여기도 계신다고 고백하고 돌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도 그분을 늘 체험하지 못하고 산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도를 안 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만한 때는 언제입니까? 지금입니다. 그러면 만나지 못할 때는 언제입니까? 가까이 계시지 않을 때는 언제입니까? 그것은 심판의 때입니다. 성경은 고후6:2절‘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라고 했던 것입니다. 지금은 은혜받기 좋은 때고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때이지만 언젠가는 그럴 수 없는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지금 만나시기를 축원합니다.
바로 이 시간 이 순간이 주님을 만날 때입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아직 나는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다’고 느끼는 분이 계십니까? 그렇다면 이 시간 잠간 눈을 감으세요. 그리고 따라서 하세요. ‘하나님 이 시간 주님을 만나기를 원합니다. 지금도 내 옆에 계신 줄 믿습니다. 이 시간 내가 죄인임을 자백하오니 나를 용서하시고 내 주인이 되어 주시옵소서. 십자가에 죽으신 그 죽음이 나를 대신한 죽음임을 믿습니다. 이제부터 주님만을 섬기며 살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아멘 하나님은 우리가 주님을 모시여 드리기를 원하십니다. 지금 이 시간 주님을 모셔드리시기를 축원합니다.
2.우리는 너무 연약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찾고 구해야 합니다.
신앙은 이론이 아니고 실제입니다. 하나님은 죽은 하나님이 아니고 살아계십니다. 그러기에 찾아야 합니다. 부르짖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분은 즉시 우리 속에 거하시면서 우리의 주인이 되시고 그 순간부터 나의 주인은 예수님이 되는 것임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스스로 본인을 생각해보면 사람은 참으로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에 대하여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생각하는 것도 자기 스스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 사람의 한계입니다. 하고 싶은 것도 자기 스스로 다 하지 못합니다. 가지고 싶은 것도 자기 스스로 다 가질 수 없습니다. 포기 하고 싶은 것도 자기 스스로 포기가 안됩니다. 용서하고 싶은데도 그 용서가 스스로 안됩니다. 사랑하고 싶은데도 사랑이 안됩니다. 스스로 안되는 것이 되는 것에 비하면 너무 많습니다.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참으로 연약한 존재입니다. 이렇게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의존 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의존 자가 되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을 찾고 부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려면 죄를 단호히 끊어 버려야 합니다. 7절‘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이 본문의 핵심은‘회개’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죄 문제를 해결 받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 죄값 때문에 예수님이 죽어야 할 정도로 중요합니다. 그래서 그 죄를 해결 받는 방법은 회개를 통한 사죄입니다. 기독교는 회개의 종교입니다. 그러면 회개가 뭡니까? ‘회개’란 단순히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는 정도가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서 가르친 대로 ‘악인의 길을 버리고’,‘불의한 생각을 버려야’합니다. 한마디로 나를 얽어매고 있는 무서운 죄악을 단호하게 끊어버려야 합니다. 그러려면 먼저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생각이 바뀌어야 사람이 바뀝니다. 생각이 바뀌지 않고는 회개란 없는 것입니다.
왜 바뀌어야 할까요? 우리는 악인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는 짓이 늘 죄를 짓고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그 길을 버려야 합니다. 그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주님은 지금까지 우리가 가던 길에서 180도 돌아설 것을 요구합니다. 죄를 무서워하지도 않고 죄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알던 우리의 삶을 바꾸어야 합니다. 죄라면 아주 치를 떨어야 합니다. 그래야 죄를 버릴 수 있고 새로운 것을 담을 수가 있습니다.
홍수로 도로가 끊겼습니다. 그래서 길이 낭떠러지기로 변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것을 모르고 그 길을 전속력으로 달려갑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우리들은 어찌해야 합니까? ‘남들이야 죽던 말든 내버려둬하고 그냥 간다면 그것은 살인입니다. 누군가는 옷을 벗어 흔들면서 길을 막아야 하잖습니까? 스톱!, 스톱! 소리치며 막아야 하지 않습니까’ 우리 인생길 끝에서 지옥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고 달려갑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을 향해 멈추라고 하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를 무시하고 달려갑니다. 결국 그들의 종착점은 지옥입니다.
참으로 다행으로 그분의 멈춤 신호를 받고 그분이 인도하는 길을 간다면 거기에 살길이 있는 것입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죄를 포기하라 합니다. 악한 생각을 버리라고 하십니다. 끊을 것은 끊어야 합니다. 끊고 돌아서는 것이 회개입니다. 회개가 없는 신앙은 아직도 살아있는 신앙이 아닙니다. 사실 알고 보면 하나님은 이미 모든 준비를 끝내고 기다립니다. 하나님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에게 용서의 보증을 해두셨습니다. 그러니 누구든지 그를 영접하고 하나님께 회개하고 나오기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교회에서 중요한 모임이 있어서 가고 있는데 차가 밀리지 않아야 겨우 시간에 맞출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도중에 교통량이 점점 많아지면서 차들이 점점 느려지더니급기야 완전히 멈춰 섰습니다. 목사님은 중얼중얼 하나님이 인내심을 시험하려고 하시나 차창 밖을 내다보며 빨리 가야 하는데 속이 부글 부글 끓은데 차들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잠시 후 차가 왜 정차 되었는지 알았습니다. 길 옆에 고장난 차가 한 대 서 있었습니다. 비상등을 깜빡이며 서 있는 그 차에 가까워질수록 저런 고물차를 끌고 나와서 이 난리야 당신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피해를 입는지 알기나 해 나도 너 때문에 모임에 늦게 되었다 분노가 치밀어 오른 목사님은 도끼 눈을 하고 창문을 열고는 중얼거리면서 고장난 차를 째려보고 갑니다.
고장난 차 가까이 왔을때에 이럴 수가 자동차에 자기교회의 범퍼스티커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자세히 보니 자기네 교회 권사님이 자기를 보고 웃으며 손을 흔들었습니다. 눈이 마주쳤습니다. 얼떨결에 목사님도 웃으며 가장 친한 친구인척 손을 흔들었으나 저 사람이 만일 나의 생각을 알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하니까 너무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합니다. 누구에게나 이런 비슷한 일이 다가 올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생각을 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과 너무 다르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전능하신 분만이 우리의 의존 자가 되야 하는 것은 당연한 사실입니다. 세상에 있는 의존 자는 모두가 부족한 의존 자들입니다. 권력가도 지식자도 능력자도 모두가 부족한 사람입니다. 나의 모든 필요와 요구를 채워줄 능력자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와 요구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미리 준비해 주시는 여호와 닛시 이십니다. 미리 준비하시는 하나님, 이런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이야말로 완벽한 삶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본문8-9절‘이는 내 생각이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사람이 연약한 것은 생각이 하나님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 다릅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행함이 포함된 생각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에는 결과가 포함된 생각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생각은 생각 그 자체로 끝입니다. 생각만 하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결과의 산물은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생각에 결과를 포함하십니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시는 분이 아니시라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길은 우리와 다릅니다.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하나님의 생각은 높습니다. 우리 인생들의 생각과는 견줄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게 되는 순간들을 보면 대부분 질병에서 자신들의 연약함을 보게 됩니다.
다음은 천제지변에서 인간의 무능함과 연약함을 인정하게 됩니다. 그리고 환경에 지배를 받으면서 인간의 연약함을 인정하게 됩니다. 건강하던 몸이 병들었을 때, 쓰나미와 같이 지진과 해일을 만났을 때, 잘나가던 사업실패로 모든 재산을 잃었을 때 등등 사람들이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게 되는 일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연약해 할 수밖에 없는 인생들의 두려움을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을 찾고 부르라고 하는 것입니다. 렘33:3절‘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하나님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일들을 알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아무리 두려운 일이 닥치더라도 그 일을 대처하고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만날만한 때에 찾고 가까이계실 때 부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에 건강 또는 자연재해 또는 환경으로 두렵게 밀려오는 어떤 문제들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가까이 계시는 하나님을 찾으시고 가까이 계시는 하나님을 부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은 외면치 않으시고 반드시 우리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비밀을 알게 하셔서 연약한 우리를 강하고 담대하게 하셔서 인생을 승리하게 하실 것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님들은 하나님의 생각이 어떠하실지 알기 위해서 항상 기도와 말씀과 예배를 중심으로 사셔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들을 주님 앞에 모두 내려놓고 항상 기쁨과 기도와 감사로 승리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주님의 말씀을 듣고 돌이키기면 하나님이 형통을 보장하신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돌아서기만 하면 모든 것은 하나님이 책임집니다. 아버지 품을 떠난 탕자를 보세요. 그가 전 재산을 잃고 거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아버지 품으로 돌아가자 결심합니다. 품꾼의 하나로 받아달라고 하자 하면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랬더니 아버지는 그에게 새 옷을 입히고 신발을 신게 해 주고 가락지를 끼워줍니다. 한마디로 신분을 회복시켜 주었다는 것입니다. 정말 신기한 것은 과거를 묻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 우리 과거를 아시기 때문입니다. 회개하고 돌아서는 순간 다 씻어지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긍휼과 용서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책임지신다는 것입니다. ‘회개한다고 다 용서 될까’의심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걱정을 마세요. 하나님은 형통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찾고 부르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로 하나님의 말씀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은 그의 마음과 생각에 하나님의 것으로 채워져 있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과 생각이 세상에 나가게 되면 세상은 변화를 가져다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헛된 말씀이나 파괴의 말씀 부패의 말씀이 아니라 빛의 말씀이며 소금의 말씀이고 밀알의 말씀인 것입니다. 세상 부패를 막고 어둠에 빛을 비추어 주시고 땅에서 썩어 많은 열매를 맺되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는 열매로 풍성하게 맺게 하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생각의 말씀이신 것입니다. 사람의 생각이 아무리 차원 높은 것이라 할찌라도 하나님의 생각에는 절대 미치치 못하는 것들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으로 세상과 더불어 삶으로 본문12-13절과 같은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하여 내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삶인 것이며 또 하나님께서는 이런 하나님의 세상을 만들어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사는 하나님의 나라와 백성들을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인간이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오면 온 세상이 변하고 심지어 산들이 노래하고 나무가 손바닥을 치듯이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 예수님을 영접하고 회개하고 돌아오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불러서 결국 하나님의 실체를 발견하고 경험한 하나님의 사람은 세상 권력과, 지식과, 건강, 그리고 풍요로운 물질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상황이 어떠하든지 환경이 어떠하든지 그 선 자리가 어떠하든지 오직 기쁨으로 나아갑니다. 그 사람은 평안히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습니다. 산들과 언덕뿐만 아니라 만물들이 노래하고 손뼉 치며 나를 반기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전에는 내 삶의 주위에 가시나무같이 나를 찌르고 아프게 했던 것들로 가득 했었다면 이제는 잣나무로 바뀌어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상주감리교회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코에 호흡이 있는 지금 하나님을 찾으시고 기도할 수 있는 지금 기도하시고 예배드릴 수 있는 지금 철저하고 온전하게 예배드리고 주일성수, 십일조 할 수 있을 때 온전히 주일성수, 십일조 생활하시기 바랍니다. 전도 봉사할 수 있는 지금 전도하고 봉사하시기 바랍니다. 회개할 수 있는 지금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여러분의 기도를 들으시고 지금 여러분의 예배를 받으시고 여러분의 회개를 받으시기 원하십니다. 지금 여러분의 전도와 봉사를 기뻐하십니다. 지금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은혜 주시고 능력 주셔서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쓰임 받을 만한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하시기 위해 세상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임마누엘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지금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을 만날 만한 때이며 가까이 계셔서 부르면 곧 만날 만한 때입니다. 소경 바디매오가 예수를 부르시고 하나님을 만나므로 한 순간에 그의 인생이 행복과 축복으로 반전된 것처럼 여러분의 삶에 가시나무가 자라던 곳에 기쁨과 축복의 잣나무가 무성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사55:13절‘가시나무가 자라던 곳에 잣나무가 나게 하려면’,사55:7절‘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고 했습니다. ‘여호와께로 돌아오라’는 말씀을 보면 하나님을 떠났던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씀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넓게는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떠난 모든 사람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교회를 떠나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떠나지 않고도 예수님을 떠난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에 출석하여 예배는 드리지만 이미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멀어진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제멋대로 생각하고 제멋대로 말하고 제멋대로 계획하고 살면서 자기가 원하는대로 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으신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사람들에게 오늘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즉 나를 찾으라, 나를 부르라, 돌아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긍휼을 약속하시고, 보장을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믿을 수 있고 믿는대로 받을 수 있는 약속입니다. 그런가하면 형통케 하시고 인도하시고 대신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하나님을 철석같이 믿고 하나님께서 상주감리교회 성도님들에게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하신 이 말씀을 마음 깊이 새겨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되셔서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전인구원의 축복을 받아 누리시며 승리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