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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전에 올라가면(2258.2024.7.14)
미4:1-5
할렐루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 임재하셔서 우리 예배를 받으십니다. 오늘도 주의 전에 나오신 여러분 모두에게 하늘의 위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혹시라도 삶의 현장에서 상처와 상한 마음을 가지고 오셨으면 말씀 듣다가 위로와 치유함을 받으시고 질병과 싸우는 중이라면 여호와 라파 치료의 하나님을 만나서 치료받는 시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삶이 힘들고 지쳐서 오셨다면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은 새 힘을 얻으시기를 축복합니다. 무엇인가 계획하고 기도중에 있는 것이 있다면 응답받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삶이 해결되고 성령이 충만하여 기쁨과 감사와 웃음이 넘쳐나는 유쾌한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지난 7월8일 월요일-수요일까지 상주에 엄청난 비가 하루 종일 내렸습니다. 8일 오전에는 적십자병원 가서 건강검진을 받고 오후에는 교회 2층에 비가 새는지 안새는지 둘러보고 문틀 사이로 비가 들어오기도 하여 닦아냈습니다. 그리고 오후내내 사무실에서 설교준비를 했습니다. 매일 폭염과 열대야가 계속 되는 무더위 속에 상주감리교회 모든 성도들의 건강과 평안을 축복합니다. 그런데 낮에는 정말 뜨겁지만 아침 저녁이면 제법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요즘 새벽기도 하러 나오면 서늘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머지않은 장래 뜨거운 햇살이 그리워지는 계절이 올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마지막 가는 여름 무더위도 잘 이겨내시는 상주감리교회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름이면 주부들의 고민과 고통이 불 앞에서 요리를 하고 음식을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열악하고 힘든 환경 속에서 신앙 좋은 여집사님이 드리는 기도가 있어서 소개하고자 합니다. 물론 여러분 중에 이런 글을 인테넷으로 알고 있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읽어드리면 이런 기도입니다.
부엌에서 드리는 기도
소금을 치면서, ‘세상의 소금이 되게 하소서’ 설탕을 사용하면서, ‘꿀 같은 말씀 사모하게 하소서’ 고춧가루를 치면서, ‘성령의 불로 타오르게 하소서’ 깨소금을 뿌리면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하게 하소서’ 밥을 푸면서, ‘육의 양식과 함께 영의 양식도 풍성히 채우소서’ 국이나 반찬을 그릇에 담으면서, ‘주의 잔치상에 귀한 그릇으로 쓰임 받게 하소서’김치를 담으면서, ‘주님, 이 김치가 익어서 맛을 내듯이 저도 당신 안에서 제대로 익어 주의 맛을 세상에 전하게 하소서’식사를 마치고 그릇을 씻으면서, ‘제 안의 모든 죄악도 깨끗이 씻으소서’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뜨거운 불 앞에서도 하나님께 쉼 없이 기도하는 이 믿음 좋은 여집사님 처럼 항상 기도하는 삶을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서도 순간 순간 주님만을 생각할 수 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주님만을 생각하며, 그 주님께서 감사하고 기도하며 응답받는 복된 삶을 성도님들 다 되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마지막 날이 되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전으로 몰려오는 역사가 일어날 것이며, 이방인들의 입에서는 ‘우리 모두 하나님의 전에 올라가자’는 고백이 터져 나오고야 말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입니까? 이방인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 사람들이 하나님의 전에 올라가며, 그들의 입에서 하나님의 전에 올라가자는 말이 터져 나올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러나 분명히 미가 선지자는 이방인들이 이런 거룩한 고백을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평화를 원하지만 그렇치 못한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지금 세계에는 전쟁으로 인하여 몸살을 앓고 있는 곳도 있습니다. 전쟁이 있고 전쟁이 그칠 날이 없고 계속 전쟁의 위험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또 모두의 마음속에는 항상 평안이 있기를 바라면서도 바라는 평안이 아니라 근심, 걱정, 때로는 두려움, 이런 많은 공포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다시는 전쟁이 없는 평화가 언제 어떤 길로 올 수 있을까요?
평화는 오직 사랑으로만 이루어집니다. 사랑만이 이것을 가능케 하고 십자가의 사랑만이 사람을 변화시키고 나 자신의 평화를 이루게 만듭니다. 강퍅한 마음을 녹입니다. 전쟁을 쉬게 합니다. 아가페의 사랑, 엄청난 사랑만이 전쟁을 쉬게 합니다. 통일을 이루게 합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내 제자가 될 것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거룩한 산 시온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이 내려오시는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가서 주님을 만나야 할 것이며,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곳으로 올라가자고 권면해야 할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바로 미가 선지자가 말하는 이방인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유대인의 피를 타고난 사람들이 아니기에 이방인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전에 올라가면 어떤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을 아는 이방인들이기에 하나님의 전에 올라가야 할 것이며,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우리 모두 하나님의 전에 올라가서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은혜를 받자’고 외쳐야 할 것입니다.
1.하나님의 말씀의 도를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우상 숭배 등과 같은 범죄로 말미암아 나라를 멸망시키시고, 바벨론 포로가 되게 하셨지만, 그것은 이스라엘을 새롭게 하고, 회복시키시며, 궁극적으로 왕이 되셔서 친히 다스리고자 하는 계획과 섭리의 과정입니다. 이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의 심판과 징계를 기쁨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 바랍니다. 또한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말씀밖에 없습니다. 말씀만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입니다. 말씀만이 구원의 능력이요 창조의 능력입니다. 사람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바꿉니다. 전쟁을 쉬게 합니다. 말씀이 충만한 곳에 하나님의 축복이 있고 말씀이 고갈될 때에 어느 순간에 사람이 삐걱거립니다. 실의에 빠지고, 절망하고, 낙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십자가의 말씀으로 십자가의 도로 충만하게 될 때에 거기 구원의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에 올라가면 하나님께서는 어떤 은혜를 부어주시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전에 올라가야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전에 올라가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위대하신 하나님의 말씀의 도를 가르쳐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은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거룩한 집이기에 그곳에 올라가면 하나님에 관한 도를 배우게 될 것입니다.
1절‘말일에 이르러는 여호와의 전의 산이 산들의 꼭대기에 굳게 서며 작은 산들 위에 뛰어나고 민족들이 그리로 몰려갈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끝 날에 무슨 일이 있을 것을 선언하고 있습니까? 시온 산, 곧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것 위에 뛰어나고 굳게 서게 될 것입니다. 1절‘끝 날에 이르러는 여호와의 전의 산이 산들의 꼭대기에 굳게 사며 작은 산들 위에 뛰어나고’ 그리하면 누가 그곳으로 몰려온다고 했습니까? 민족들과 많은 이방 사람들입니다. 1절‘민족들이 그리로 몰려갈 것이라 많은 이방 사람들이 가며’ 즉 만민이 그리로 몰려와서 하나님의 도를 배우고 그의 길로 행하게 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또 2절에 말하기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믿고 순종할 것입니다. 믿고 순종하는 거기에 놀라운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다시는 전쟁이 없을 것입니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농기구를 만들게 되고 다시는 전쟁이 없을 것이다. 두려워할 자가 없다, 얼마나 귀한 말씀입니까? ‘칼 매닝거’라고 하는 유명한 심리학자의 이러한 결론이 있습니다. 현대인의 모든 정신적 질병의 근본적 치유책은 오직 사랑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이것을 인정하셔야 됩니다. 이 외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 그 무거운 마음, 그 증오의 마음, 그 질투하는 마음, 이 악한 마음을 바꾸어 놓을 수 있는 길은 사랑밖에 없습니다.
어떤 방식을 통해 이 같은 구원의 역사를 일으키실 것입니까?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으로 퍼져나가는 주의 복음을 통해서 입니다. 행1:8절‘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요4:22절‘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그 결과 무엇이 임하게 됩니까?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입니다.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서 심판하시고 징계를 행하시는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위하시는 것은 참된 평화와 사랑이 넘치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3절‘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고’라는 말씀과 같이, 하나님께서는 전쟁이 끊이지 않던 곳에서 사람들이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기를 원하십니다.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않고 다시는 서로 싸우지 않기를 바라십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이 우리를 창조된 원래 모습으로 회복시키시는 것이며, 하나님이 우리들의 아버지가 되어 주셔서 우리와 함께 영원히 거하시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미가 선지자는 하나님의 전에 올라가는 많은 이방인들의 모습에서 유대인들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아름다운 모습이 나타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맡고 있던 유대인들 가운데는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서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하나님이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칠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고 말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다는 자부심은 대단했지만, 그들은 자부심만 대단했지 그들이 맡고 있는 말씀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하나님의 전에 올라가서 말씀을 듣는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그 가치와 의미를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전에 올라가는 이방인들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비록 유대인들보다는 늦게 하나님을 찾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이 어떤 역사를 나타내는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입만 열면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말씀의 도로 우리에게 가르칠 것이며 우리는 그 길로 행할 것이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으로 올라가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의 전으로 올라오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전으로 올라오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들의 마음에 넣어주어서 우리를 일으켜 세우실 것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내가 누구인지, 왜 살아야 하는지 그 모든 비밀을 깨닫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왜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전인 교회에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는 일에 마음을 열고 집중하지 않아서 그런 것입니다. 교회에 나왔습니다. 무엇에 집중해야 할까요? 사람을 만나 교제하는 일에 집중해야 할까요? 물론 그것도 필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는 일에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은 무슨 말씀을 들려주실까’기대하는 마음으로 올라가면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가 이해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자세하게 풀어서 가르쳐주실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상주감리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신령한 말씀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이 선포되던 27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하나님은 살아계시기에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쉬지 않고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말씀 듣기를 좋아하고 사모하여 성전에 오시기를 바랍니다.
사람이 구원 받는 참 길은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치는 길밖에 없습니다. 미4:1절‘말일에 이르러는 여호와의 전의 산이 산들의 꼭대기에 굳게 서며 작은 산들 위에 뛰어나고 민족들이 그리로 몰려갈 것이라’,‘말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시작된 신약시대를 말합니다(히11:1-2). ‘여호와의 산’이란 역사적으로 시온산을 가리키지만 여기서는 영적으로 사용된 말로 율법이 흘러나오고 그의 보좌가 있는 그리스도의 교회를 가르킵니다. 물론 예루살렘에서 그리스도의 첫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산 꼭대기에 굳게 선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교회가 세상에 높이 들리울 것과 견고하게 세워질 다윗의 집을 연상한 말입니다. ‘작은 산’이란 세상 나라들을 상징하며 ‘민족들이 몰려온다’는 것은 많은 민족들이 교회안에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놀라운 사실을 깨닫고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본문이 가르친 교회를 보시면 교회의 탁월한 위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산들의 꼭대기에 세워졌습니다. 산이란 세상 나라들을 말하므로 그리스도의 교회는 어떤 국가나 권력이나 종교에 비해 탁월하다는 것입니다. 최고의 사랑, 최고의 생각, 최고의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라는 말씀(마5:14)같이 어디서나 결코 숨길 수 없는 존재로 성장할 것입니다. 교회의 견고함은 무엇에 비교할 수 없습니다.
교회는 반석위에 굳게 세워져 음부의 권세가 결코 흔들 수 없습니다. 무엇으로 굳게 세워지는가?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세워졌지만 인간 편에서는 그를 믿는 믿음으로 굳게 세워졌습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그것을 모르고 교회를 굳게 세우는데 웅장한 건물, 위대한 사람, 교묘한 세상 조직으로 교회를 세우고자 합니다. 그러나 그것 모두는 모래위에 세운 교회가 되어 교회의 기능을 상실되고 그곳에 하나님은 떠나고 껍데기만 남게 됩니다.
교회는 모든 종족 신분을 떠나 세워졌습니다. 교회가 빛을 발하자 흑암에 살던 백성들이 큰 빛을 보고 사망에 그늘진 땅에 거하던 이방 민족들이(시9:2) 교회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단순히 민족적 종교로서 예루살렘 성전 자리에 옛 성전의 복원을 꿈꾸었으나 이제는 모든 민족 종족을 초월하여 세계 방방곡곡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이것을 바라보는 선지자의 눈은 얼마나 감격하였겠는가?
미4:2절‘곧 많은 이방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서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라’이 말씀은 오늘 구원받은 우리들이 가질 참 모습을 보여줍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이사야의 예언 2:3절의 성취에 대해서 눅24:47-48절‘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했습니다.
메시아가 이 세상을 통치하실 때 나타난 현상은 이렇습니다. 구령의 열정으로 불타게 됩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자’는 절규를 하게 됩니다. 구원받은 백성들이 온 세상을 향하여 외치고 증거하는 것으로서 복음을 듣고 구원의 축복에 동참하기를 힘써 권유하는 것입니다. 지식이 널리 보급됩니다. ‘그가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메시아의 가르침을 받으면 그 나라에 합당한 인격과 생활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친히 하나님의 영을 모든 영혼에게 부어주시므로 진리의 말씀을 깨닫게 하며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온전케 하며 분별케 합니다. 그의 통치는 지식을 밝혀주는 통치입니다. 그 영향력이 닿는 곳마다 오류와 미신, 우상숭배의 베일이 벗겨집니다. 그리하여 사11:9절‘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때까지’널리 널리 퍼져나갑니다.
순종이 따르게 됩니다. ‘우리가 그 길로 행하자’참된 지식은 사상과 행위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아는 것은 행하는 것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리하여 진리의 영향력이 닿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분명코 고차원적인 도덕성이 자리잡게 되어 순종이 수반됩니다. 빌1:6절‘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빌2:13절‘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우리는 이제 육신의 소욕에 이끌려 살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에 이끌려 살아야 할 것입니다. 무시로 기도하며 성령의 소욕을 좇아사는 삶이 거듭난 성도의 삶인 것입니다.
2.약속하신 회복은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자리에서 시작되는 회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진정한 회복은 지금 현재의 삶의 회복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하나님께서 의도하시는 진정한 회복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죽어서 들어가는 천국에 가는 것입니까? 아니면 삶을 달관한 이들처럼 세상과 상관없이 초현실적인 기쁨을 추구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그저 이 땅에서 복 받고 부유한 삶을 누리는 것입니까? 오늘 본문의 4절‘각 사람이 자기 포도나무 아래와 자기 무화과나무 아래에 앉을 것이라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회복은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자리(Sitz im Leben)에서 시작되는 회복입니다.
여러분, 평화가 어디에 있습니까? 오늘 본문 성경에 아주 귀한 해답을 주십니다. 말일에 있을 일입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 산에 올라가자’,‘여호와의 산에 올라가자’ ‘성전’입니다. 성전 중심의 신앙입니다.‘여호와의 산에 올라가자’ 시73:17절‘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저희 결국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이 세상에는 모순이 많습니다. 불의한 자도 많습니다. 있을 수 없는 사건들이 있습니다. 도대체 어찌 이런 일이 있는가? 선한 자는 안되고 악한 자는 잘되고 모순이고 부조리하고 고민이 많습니다. 그러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 결국을 알았나이다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일에 하나님의 성전을 어느 나라나 곳곳마다 견고히 건축케 하였는데, 이것은 완전한 평화의 왕국을 이루기 위하여 인격을 양성하는 것을 목적한 성전입니다. 구약 시대에 양을 잡아 제사하던 성전은 완전한 인격을 이루는 것보다도 완전한 것이 올 때까지 영자적인 역사이었습니다. 그러나 독생자의 거룩한 피로 산 백성들이 모여 예배하기 위하여 곳곳마다 세워진 성전은 민족적 국경의 차별 없이 누구든지 그 성전에 들어가서 완전한 인격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날까지의 역사는 영혼을 완전케 하는 것을 목적했지만 여호와의 산에 가서 야곱의 도를 배우는 역사는 야곱의 길을 행하는 사람으로서 그 몸까지 구원을 받는 완전 인격을 하나님께로부터 받게 됩니다.
그리스도가 다스리시는 곳에는 참 평화와 화합을 이루게 됩니다. 3절‘그가 많은 민족 중에 심판하시며 먼 곳 강한 이방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고’ 사탄이 통치하는 이 세상나라에서는 끊임없는 싸움과 분쟁으로 만신창이가 되었다 그러나 이제 평화의 왕이신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에서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의 천국인 것입니다. 이 예언은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완성 될 것이나 초림으로 이 역사는 이미 개인으로부터 서서히 시작하여 국가에 전 인류 역사에 미치고 있습니다.
세상 나라는 평화를 주장하고 부르짖으나 언제나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서 무력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전쟁 준비가 국가 정책에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은혜의 나라는 오직 그의 말씀과 성령의 역사로 다스립니다. 그때 백성들은 순종함으로 충성함으로 복종하고 이때 그들을 바르게 하시고 깨닫게 하심으로 다스립니다. 지금 이 은혜의 나라는 약속대로 벌써 시작되었고 확장되어가고 있지만 완전히 성취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이 나라는 완전히 성취될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다스리지 않는 곳은 비록 그곳이 교인의 심령이나 교회나 기독교 국가라 하더라도 측량할 수 없는 정도로 무자비한 행동을 자행하였습니다. 진정한 자기 포기가 없는 한 위선입니다.
하나님의 전에 올라가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하늘의 신령한 평화를 부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거룩한 곳이기에 그곳에 올라가면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하늘의 신령한 평화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미가 선지자는 하나님의 전에 올라가면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하늘의 신령한 평화를 엄청나게 맛보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전에 올라가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해 주시며 하늘의 평안을 부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괴롭히던 강한 이방 나라들을 반드시 판결해 주실 것이며, 사람들로 하여금 칼을 쳐서 농기구를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게 함으로써 이 나라와 저 나라가 서로 치지 못하게 하실 것이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도 않게 하실 것이며, 각기 자기들의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 앉아서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평안을 누리도록 해주실 것이며,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도록 역사해 주실 것입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정경입니까? 이렇게만 된다면 사람들의 입에서는‘행복하다’는 말이 저절로 쏟아져 나오고야 말 것입니다.
진정으로 하늘의 참된 평안을 누리기를 원하십니까? 그러시면 하나님을 찾아 하나님이 계신 성전으로 올라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신령한 평안을 누리려면 무조건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서 하나님을 만나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에 올라가서 하나님을 만나면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하늘의 신령한 평안을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남들보다 더 좋은 것과 더 많은 것을 가지면 평안을 얻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하지만 사람의 행복은 절대로 소유의 많고 적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에 하나님이 부어주신 평안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없어도 그 마음에 하나님이 부어주신 평안만 있으면 그 사람은 하늘의 평안과 즐거움을 누리며 만족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왜 이 땅에 전쟁이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일어나는 것입니까? 그것은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이 평안을 주시는 하나님을 이 땅에서 자꾸만 몰아내서 그런 것입니다. 평안을 주시는 하나님만 계시면 전쟁이 없을 것인데 사람들이 자기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평안을 부어주시는 하나님을 몰아내기에 이 땅에는 전쟁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이 땅에 사는 동안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참된 평안을 누리기를 원하십니까? 그러시면 하나님의 전으로 올라가서 하나님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분명히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하늘의 평안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대하 14:7절을 보면 아사왕은 ‘우리가 우리 하나님을 찾았으므로 이 땅이 아직 우리 앞에 있나니 우리가 이 성읍들을 건축하고 그 주위에 성곽과 망대와 문과 빗장을 만들자 우리가 주를 찾았으므로 주께서 우리에게 사방의 평안을 주셨느니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전에 올라가서 하나님을 찾으면 누구든지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하늘의 신령한 평안을 맛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다스리는 나라는 사회적인 안정을 누릴 수 있습니다. 미4:4절‘각 사람이 자기 포도나무 아래와 자기 무화과나무 아래 앉을 것이라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의 입이 이같이 말씀하셨음이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백성들이 누릴 이상적 삶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재림으로 이루어질 나라는 얼마나 평화스러운 나라인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때는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니 하나님과 화평케 된 연고요 또한 대인관계에 있어서도 그러한 사랑과 희락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없는 평화는 거짓 평화요 그리스도 없는 믿음은 거짓 믿음이요 양심의 회복이 없는 삶은 복음이 아직 역사하지 못한 화인 맞은 양심 그대로 있는 삶입니다. 바른 삶과 죄에 대한 능력있는 싸움, 겸손한 삶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산 증거입니다.
3.하나님의 이름을 붙들고 살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싸워 주시되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 호소하는 사람을 책임지시고 보호하십니다(욜2:32). 사람 자체는 무능하지만 여호와의 이름으로서 완전 승리를 이루게 되는 것은 여호와께서 하나님의 이름을 존중히 알고 부르짖는 자를 구원해 주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어떠한 어려운 일이 올 때에 하나님의 거룩한 성호를 입으로 부르게 된다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역사가 없이는 하나님을 찾는 용기조차 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순종하는 자라면 하나님의 신이 함께 하시므로 여호와의 이름으로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은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서 호소하는 사람을 가장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큰일은 여호와의 이름을 불러 승리하는 일이라고 봅니다. 인간이 볼 때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가장 미약한 것 같지만 승리가 그 사람에게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완전 승리는 인간 종말에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일이 있으므로 평화왕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에 올라가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붙들고 가장 능력 있는 삶을 살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이름을 붙들고 가장 능력 있는 삶을 살도록 우리를 도와주실 것입니다. 5절에 ‘만민이 각각 자기의 신의 이름을 빙자하여 행하되 오직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빙자하여 영원히 행하리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세상 만민들은 각각 자기들이 믿는 신들의 이름을 붙들고 행하지만 하나님의 전에 올라가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붙들고 행한다는 것입니다. 왜 세상 모든 만민들은 자기들이 믿는 각자의 신들의 이름을 부르며 행하는데 하나님의 전에 올라가는 사람들은 오직 하나님의 이름만을 부르며 그 이름으로 행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전에 올라간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이름을 넣어주며 그 이름을 붙들고 살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전에 올라가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이름을 우리 마음에 넣어주고 그 이름을 붙들고 가장 능력 있는 삶을 살도록 도와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전에 올라가는 자에게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큰 축복 중에 하나인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할 수가 있겠습니까? 감히 죄인이 어찌 하나님의 이름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전에 올라가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의 탁월하신 이름으로 행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이름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엄청난 능력이 숨어 있습니다. 다른 신들의 이름에는 그런 능력이 없지만 하나님의 이름에는 그런 탁월한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이름을 붙들고 행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아무 것도 없는 매우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평생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능력을 나타내며 가장 능력 있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은 성전 미문에 앉아서 구걸하던 앉은뱅이를 예수의 이름으로 완벽하게 고쳐주었습니다. 그들은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외치며 앉은뱅이를 고쳐주었습니다. 그들은 구걸하는 앉은뱅이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지만 그들에게는 예수라고 하는 이름이 있었기에 그 이름을 나누어 주었던 것입니다.
어떤 이름으로 행하기를 원하십니까? 우리는 예수라는 이름을 통해서 생명을 얻었기에 예수의 이름으로 행해야 할 것이며, 그 이름을 드러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누구보다도 가장 능력이 있는 삶을 살아갈 수가 있을 것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말씀을 듣고 깨닫는 은혜헤가 임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전으로 올라가는 거룩한 주의 종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거룩한 장소가 하나님의 전입니다. 이 전이 바로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거룩한 장소입니다. 우리가 찬송을 부르고 기도하고 말씀을 보고 사랑을 나누는 장소가 하나님의 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전으로 올라가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에 올라가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의 도를 가르쳐주실 것이며, 하늘의 신령한 평화를 부어주실 것이며, 하나님의 이름을 붙들고 가장 능력 있는 삶을 살도록 도와주실 것을 믿고 하나님의 전으로 오시기를 즐겨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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