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11장(칭의) 2-3항, 25.3.23, 박홍섭 목사
11장 1항은 칭의를 설명하면서 칭의의 대상을 효과 있게 부르신 자들, 칭의의 방법은 주입이 아니라 전가, 칭의의 원인은 그들의 행위가 아닌 오직 그리스도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전가의 내용은 신자들의 믿음 자체나 순종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순종과 만족이며, 전가의 수단, 즉 칭의의 수단이 하나님의 선물로 주어지는 ‘믿음’이라고 설명합니다. 오늘은 칭의의 수단인 믿음을 설명하는 2항과 칭의의 목적을 말하는 3항을 공부하겠습니다.
1항. 하나님께서는 효과 있게 부르신 자들을 또한, 값없이 의롭다 하신다(롬 8:30, 3:24). 이는 그들에게 의를 주입하심으로써가 아니라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그들의 인격을 의롭게 간주하시고 용납하심으로써 이루어지며, 그들 안에서 이루어졌거나 그들이 행한 어떤 일 때문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때문이다. 또한, 믿음 자체나 믿는 행위, 혹은 다른 어떤 복음적인 순종을 그들의 의로 전가함으로써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순종과 만족을 그들에게 전가하심으로써 이루어지며(롬 4:5-8, 고후 5:19, 21, 롬 3:22, 24=25, 27-28, 딛 3:5, 7, 엡 1:7, 렘 23:6, 고전 1:30-31, 롬 5:17), 그들은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그분의 의를 받아들이고 의지한다. 이 믿음은 그들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다(행 10:43, 갈 2:16, 빌 3:9, 행 13:38-39, 엡 2:7-8).
2항. 이처럼 그리스도와 그분의 의를 받아들이고 의지하게 하는 믿음만이 칭의의 유일한 수단이다(요 1:12, 롬 3:28, 5:1). 그러나 믿음은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람 안에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 구원에 이르게 하는 다른 모든 은혜와 항상 함께 있으며, 그것은 죽은 믿음이 아니라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이다(약 2:17, 22, 26, 갈 5:6).
3항.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순종하심과 죽으심으로 그와 같이 의롭다 하심을 받은 모든 자의 빚을 갚아주셨고, 그들을 대신하여 성부 하나님의 공의를 합당하고, 실재적이고, 완전하게 만족시키셨다(롬 5:8-10, 19, 딤전 2:5-6, 히 10:10, 14, 단 9:24, 26, 사 53:4-6, 10-12). 반면에 성부는 그들 안에 있는 어떤 것 때문이 아니라 값없이 그들을 위해 그리스도를 주셨고(롬 8:32), 또한 그들 대신 그리스도의 순종과 만족을 값없이 용납하셨기 때문에(고후 5:21, 마 3:17, 엡 5:2) 그들의 칭의는 오직 값없는 은혜에서 비롯된 것이다(롬 3:24, 엡 1:7). 이렇게 하신 것은 죄인들의 칭의에서 하나님의 엄정한 공의와 풍성한 은혜가 영광 받도록 하기 위함이다(롬 3:26, 엡 2:7).
4항. 하나님께서는 영원 전부터 모든 택자를 의롭게 하기로 작정하셨고(갈 3:8, 벧전 1:2, 19-20, 롬 8:30), 그리스도께서는 때가 찼을 때 그들의 죄를 위하여 죽으셨고, 그들의 칭의를 위하여 다시 살아나셨다(갈 4:4, 딤전 2:6, 롬 4:25). 그럼에도 정하신 때에 성령께서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실제로 적용하셔야 그들은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골 1:21-22, 갈 2:16, 딛 3:3-7).
5항. 하나님께서는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들의 죄를 계속해서 용서해주신다(마 6:12, 요일ㅇ 1:7, 9, 2:1-2). 비록 그들은 칭의의 상태에서 결코 떨어질 수 없지만(눅 22:32, 요 10:28, 히 10:14), 그들의 죄로 인해 하나님의 부정적 노여움 아래 놓일 수는 있다. 그리고 그들이 스스로 겸비하고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고 믿음과 회개를 새롭게 한 이후에야 하나님은 자신의 얼굴 빛을 그들에게 다시 비추신다(시 89:31-33, 51:7-12, 32:5, 마 26:75, 고전 11:30, 32, 눅 1:20).
6항. 구약 시대 신자들의 칭의는 이 모든 면에서 신약 시대 신자들의 칭의와 하나이며 동일하다(갈 3:9, 13-14, 롬 4:22-24, 히 13:8).
해설
1. 2항은 1항에서 칭의의 수단으로 말했던 믿음을 다시 한번 이렇게 반복합니다. “그리스도와 그분의 의를 받아들이고 의지하게 하는 믿음만이 칭의의 유일한 수단이다” 믿음은 택자들이 그리스도의 순종과 희생을 받아들이고 의지하도록 하나님께서 수단으로 정해놓으신 유일한 수단으로 은혜의 선물입니다. 믿음 외에 다른 어떤 도구들도 그리스도의 순종과 희생을 받아들이고 의지하는 수단이 되지 못하므로 믿음만이 칭의의 유일한 수단과 도구입니다(요 1:12, 롬 3:28). 우리는 믿기 때문에 의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통하여 의로워집니다.
2. 칭의의 유일한 수단이 믿음이지만 칭의를 받은 자 안에 믿음의 은혜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택자들의 구원을 위해 정해놓으신 다른 모든 은혜를 동반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믿음은 홀로 존재하여 다른 기능으로 연결되지 않는 죽은 믿음이 아니라 항상 다른 모든 은혜와 함께 있는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입니다(약 2:17, 22, 26, 갈 5:6). 이를 신앙고백서 제3장 6항은 이미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선택을 받은 자들은 때를 따라서 역사하시는 그리스도의 영에 의하여 그에 대한 믿음으로 효과적으로 부르심을 받고, 의롭다 하여지고, 양자가 되고, 거룩하게 되고, 그의 능력에 의해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도록 보호된다.”
3. 그러므로 하나님의 복음으로 효과적으로 부르심을 받아 죄와 사망 가운데서 거듭난 자들은 반드시 회개와 믿음의 반응을 보이며 하나님은 믿는 자에게 그리스도의 의를 전가하여 주십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의를 전가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양자가 되며, 거룩하게 성화되고, 구원의 영광에 이르기까지 떨어지지 않고 보호받는 견인의 은혜를 늘 함께 입습니다. 믿음은 칭의의 은혜를 입을 때만 수단으로 유효한 것이 아니라 언제나, 항상, 이 모든 구원의 은혜와 함께 사랑으로 역사하기 때문에 만약 믿음이 있다 하면서 행함이 없다고 하면 그 믿음은 거짓 믿음이고,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죽은 믿음입니다(약 2:17, 22, 26).
4. 다른 신조들이 칭의의 수단인 믿음에 대해 어떻게 고백하고 있는지 보십시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61문답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왜 오직 믿음으로만 당신이 의롭다고 말합니까? 내 믿음의 가치 때문에 내가 하나님 앞에 받아들여질만해서가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의 속죄와, 의와, 거룩함만이 하나님 앞에 나의 의인데, 나는 이것을 다른 방법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만 받아들이고 내 것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벨직신앙고백서 22항은 이렇게 말합니다. “만약 모든 것이 그분 안에 있다면,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한 사람은 완전한 구원을 그분 안에서 가지고 있습니다...우리는 믿음 그 자체가 우리에게 칭의를 준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의 의이신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도구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그분의 모든 은택들을 누리도록 우리와 그분의 교통을 유지하도록 하는 도구인데, 그것들은 우리 것이 되었을때 우리의 모든 죄들을 방면하기에 충분하고도 남습니다”
5. 11장 2항이 칭의의 수단인 믿음에 대해 말했다면 3항은 칭의가 그리스의 순종과 희생으로 성부 하나님의 엄정한 공의를 만족시킨 것과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를 동시에 드러내었다고 말합니다. 3항을 다시 읽어보십시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순종하심과 죽으심으로 그와 같이 의롭다 하심을 받은 모든 자의 빚을 갚아주셨고, 그들을 대신하여 성부 하나님의 공의를 합당하고, 실재적이고, 완전하게 만족시키셨다(롬 5:8-10, 19, 딤전 2:5-6, 히 10:10, 14, 단 9:24, 26, 사 53:4-6, 10-12). 반면에 성부는 그들 안에 있는 어떤 것 때문이 아니라 값없이 그들을 위해 그리스도를 주셨고(롬 8:32), 또한 그들 대신 그리스도의 순종과 만족을 값없이 용납하셨기 때문에(고후 5:21, 마 3:17, 엡 5:2) 그들의 칭의는 오직 값없는 은혜에서 비롯된 것이다(롬 3:24, 엡 1:7). 이렇게 하신 것은 죄인들의 칭의에서 하나님의 엄정한 공의와 풍성한 은혜가 영광 받도록 하기 위함이다(롬 3:26, 엡 2:7).”
6. 하나님은 칭의를 통해 하나님의 엄정한 공의와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동시에 드러내십니다. 공의와 은혜는 양립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한없이 자비로운 사람이 동시에 철저하게 공의로울 수 있겠습니까? 철저하게 공의를 따지는 사람이 동시에 긍휼한 마음으로 자신에게 죄를 지은 사람을 대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완전히 공의로우시면서도 완전히 은혜로우신 하나님은 칭의를 통해 이를 가능하게 하셨습니다. 신앙고백서는 먼저 하나님의 엄정한 공의를 강조하기 위해 빚이라는 개념을 사용합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 빚을 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하는데 그렇게 살지 못한 빚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지 못한 벌을 받아야 하는 빚이 있습니다.
7. 아담 이후 죄인 된 인생은 모두 이 빚을 하나님께 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빚을 갚을 수 없는 우리의 현실입니다. 사람 중에는 이 빚을 감당할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감사하게도 성부 하나님은 성자 예수님에게 이 빚을 감당하라 하셨고 그리스도는 당신의 순종과 죽음으로 기꺼이 성부 하나님의 공의를 완전하고 합당하며 실재적으로 배상하셔서 우리의 빚을 다 갚아주시고 해결해주셨습니다(롬 5:8-10, 19, 딤전 2:5-6, 히 10:10, 14, 단 9:24, 26, 사 53:4-6, 10-12). 하나님께서 죄인을 그냥 용서하셔도 하나님의 공의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는 소시니안들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구하는 봉헌으로 봅니다. 하지만, 신앙고백서는 그리스도의 순종과 죽음이 하나님의 엄정한 공의에 대한 완전하고도 합당하고 실재적인 보상이라고 분명하게 밝힙니다. 그렇게 그리스도가 당신의 순종과 죽음으로 우리의 빚을 보상하셨고 성부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순종과 죽음을 통해 우리를 용납해주신 것은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입니다. 그렇게 하실 어떤 이유도 없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은 칭의를 통하여 이렇게 엄정한 하나님의 공의와 풍성한 은혜를 함께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8. 천주교는 하나님께서 의를 주입해서 우리를 의롭게 만든다는 개념으로 칭의에 있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를 심각하게 손상시켰고, 소시니우스주의는 그리스도의 대속적 형벌의 개념을 부인하여 하나님의 공의를 무너뜨렸다면 신앙고백서 11장 3항은 이를 바로잡아서 칭의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공의와 은혜를 균형있게 설명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