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그 바다
김연화
내 파란 두려움은 먹구름이다
소중한 이 내게 등 돌리고
한 치 앞 모르게 막연할 때
무작정 차를 몰아 도착한 바다
청회색 하늘 낮아
소용돌이치는 검푸른 너울
바다 위 날던 물새 사라진 새벽
잠포록하게* 잠든 물결 너머
무엇 하나 할 수 없는 무력한 마음
내 노란 그리움은 황톳길이다
구부러진 밭고랑 느릿느릿 황소걸음
흙탕물 사이 미꾸리 쫓던 날랜 발걸음
약주 한잔 걸친 할배 비트적거리며 내민 곶감
소원 실어 날리던 민들레 씨앗
난로 위 줄지어 선 양은 도시락
짜부라진 냄비 가득 어묵 꽂이
버들가지 사이 개나리 꽃잎
아렴풋이 떠오르는 추억의 편린
노란빛 그리움 발치에 머물 때
저만치 달아나는 파란 두려움
* 잠포록하다 : 날이 흐리고 바람기가 없다
값없는 기쁨
김연화
넘칠 듯 쓰러질 듯
불안한 마음 일렁일 때
그에게 끌리듯 찾아간 자드락길
조붓한 길 보잘것없는 풍경
값없는 기쁨이
삶의 생채기를 핥는다
온 땅을 못 박던 소나기 그치고
새 유리 끼운 청명한 하늘
상흔을 지우는 구름 연고
커다란 위안 주는 자그만 사치
작은 몇 걸음으로
큰 도약을 한다.
절대적 환대를 꿈꾸며
김연화
작년 가을 개봉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괴물>이 연일 화제다. 이와 함께 ‘누가 괴물인가?’라는 질문이 많은 사람에게 회자되고 있다. 우리는 모두 사람대접받고 살고 있나? 지금도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사람이 사람대접받지 못하고 괴물 취급받는 경우가 왕왕 발생한다. 이런 현상은 왜 나타나며, 사람이 사람이기 위해 필요한 조건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답을 주는 책을 만났다. 문화인류학자 김현경의 『사람, 장소, 환대』(문학과지성사, 2015)다. 저자는 이 책에서 사람, 장소, 환대를 중심으로 하여 사회 개념을 재정의한다.
“학술 논문에도 대중적인 에세이에도 속하지 않는 새로운 글쓰기 형식을 실험하고 있다.” 저자 소개에 나온 말이다. 실제로 책을 읽어보면 이 말을 실감할 수 있다. 이 책은 앞선 학자들의 이론을 인용하고 거기에 비판을 하기도 하면서 자신의 논지를 전개해 나가는 전형적인 학술 논문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그와 동시에 우리가 일상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사건을 예시로 들어 내용에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준다.
저자는 책을 통해 성원권에 대해 말한다. 어떤 개체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성원권의 획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성원권의 획득은 사회라는 장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며 이는 ‘환대’를 통해 가능하다. ‘환대’란 그 자리에 딸린 권리를 준다는 뜻이다. “환대받음에 의해 우리는 사회의 구성원이 되고, 권리들에 대한 권리를 갖게 된다.”(p.207)
사회의 경계는 인정투쟁 속에서 다시 그어진다. 환대받음에 의해 사람으로 인정받았으나, 그 공간을 벗어나게 되면 다시 사람이 아니게 된다. 주어진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우리는 지속적으로 인정투쟁을 한다. 상호작용의례를 행하며 사람다움을 확인해주고 또 확인 받는다. “사회는 각자의 앞에 펼쳐져 있는 잠재적인 상호작용의 지평이다.”(p.58)
저자는 자크 데리다가 제시한 ‘절대적 환대’를 이야기하면서 사회란 본디 절대적 환대를 통해 성립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절대적 환대’는 다음의 세 가지 형태로 이루어진다.
첫째, 신원을 묻지 않는 환대이다. 모든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사람으로 인정되며, 원칙적으로 평등하다. 그러므로 사회는 그가 어떤 사람이든 신원을 묻지 않고 가치를 매기지 않은 채 동등하게 환대해야 한다. 당연히 여기서 차별이란 있을 수 없다. “타자를 사람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그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에 대한 질문을 괄호 안에 넣은 채 그를 환대하는 것을 말한다.”(p.211~212)
둘째, 보답을 요구하지 않는 환대이다. 우리는 출생과 동시에 사회 안으로 들어온다. 모두가 벌거벗은 몸으로 오기 때문에 환대에 보답하는 것은 사실상 가능하지 않다. 설령 후에 무언가를 돌려주더라도 그것은 그들로부터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그들이 우리에게 준 것을 모두 빚으로 계산하고, 완전한 청산을 요구한다면, 우리는 그들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p.216)
마지막으로, 복수하지 않는 환대이다. 이는 상대방의 적대에도 지속되는 환대를 말한다. 복수하지 않는 환대는 이미 우리 형법 안에서 실정적인 원리로 작용하고 있다. 법을 어긴 사람에게 벌은 주지만, 그것이 복수를 뜻하지는 않는다. 사회의 성원권도 그대로 유지된다. “어떤 사람을 절대적으로 환대한다는 것은 그가 어떤 행동을 하든 처벌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어떤 경우에도 그의 사람자격을 부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p.229~230)
저자는 절대적 환대가 불가능하다면 사회 역시 불가능하다고 말하며, 이를 공공성과 연결한다. 자신의 집에 찾아온 낯선 사람을 덮어놓고 환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환대의 주체가 개인이 아닌 사회라면 이런 일이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하기에 환대에는 공공의 노력이 필수로 요구된다. “아동학대방지법을 만드는 일, 거리를 떠도는 청소년들을 위해 쉼터를 마련하는 일, 집 없는 사람에게 주거수당을 주고 일자리가 없는 사람에게 실업수당을 주는 일은 모두 환대의 다양한 방식이다.”(p.204)
현시대 우리에게 절대적 환대가 가능한 조건은 이미 갖추어져 있다. 사람을 소유물로 취급하던 노예제도 사람 간의 가치를 매기던 신분제도 폐지된 지 오래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절대적 환대가 불가능한 이유는 환대의 주체인 사회가 제시하는 보수적인 기준 탓은 아닐까? 현재 사회의 기준은 내국인, 이성애자, 남성에 맞춰져 있다. 이런 사회에서 외국인, 동성애자, 여성과 장애인은 사회의 기준 밖에 있는 자들이다. 이들은 사회 속에 머물 수 있는 자격을 조건부로 얻으며, 끊임없이 인정투쟁을 해야 한다. 그럼에도 울타리 밖으로 밀려나기 일쑤다.
자유민주주의는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 평등을 추구한다. 모든 사람이 국가나 타인으로부터 부당한 간섭을 받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동시에 성별, 종교, 신분 등에 따라 차별 받지 않고 동등하게 대우받도록 하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이러한 자유민주주의 역사 속에 형식적 평등은 자리 잡았지만, 실질적 평등이 이루어지고 있는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신자유주의의 모순은 상호작용 질서의 차원에서 (즉 상징적으로) 모든 인간의 존엄성을 주장하면서, 구조의 차원에서 사람들에게서 자신의 존엄을 지킬 수단을 빼앗는다는 것이다.”(p.161)
우리는 환대에 의해 사회 속으로 들어가고 비로소 사람이 된다. 사람이 된다는 것은 장소(자리)를 갖는다는 것을 뜻하며, 환대는 자리를 내어주는 행위이다. 형식적 평등을 넘어 실질적 평등이 이루어지는 사회, 인정투쟁으로 사람 자격을 갈구할 필요 없이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 모든 사람이 절대적으로 환대받고 있다고 느끼는 사회를 염원하며 이 책이 많은 사람에게 두루 읽히기를 바란다.
<프로필>
* 미래엔수학 & 논술교실 운영
* 청소년 진로강의, 굿네이버스 세계시민교육, (주)즐거운예감 아트코치, 이천교육공동체 이사, 이천시자원봉사교육강사단 단장
* 저서로 『만남에서 맛남으로』, 공저로『글을 쓰다, 삶을 짓다』, 『감상과 사유, 글이 되다』, 『문화재따라 글따라』가 있다.
첫댓글 접수합니다.
넵!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