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비열전 16-1
제16대 인조(이종)의 여자들
인렬왕후 한씨!
장렬왕후 조씨!
후궁 3명, 6남 1녀
인조!
참 거시기(?)한 왕이다.
폭군의 이미지였던 광해가 최근 들어서
좋은 이미지로 재조명 되면서 그에 비해
인조는 더 최악의 나쁜 왕으로 떨어졌다.
반정으로 광해군을 몰아내고
왕위에 올랐는데 자신의 힘이 아닌
서인들의 힘으로 권좌에 오른 인조!
제11대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저 바지왕, 중종이 생각날 것이다.
자고로 제 힘으로 서지 않으면 제대로
힘을 행사하기가 어려운 것이 세상사다.
인조도 바지왕이다.
초기에는 반정공신들에게 기를 펴지 못했고,
숭명배금의 시대착오적인 생각으로
안해도 될 전쟁은 두 번이나 치뤘다.
* 崇明排金(숭명배금) :
명나라를 숭상하고 후금을 배척하는 정책,
저무는 명을 의리 때문에 받들고
새로이 떠오르는 후금을 배척함..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나라 꼴이 말이 안 되게 만든 전쟁이다.
정책의 부재이고..
머리가 없음을 보인 것이다.
옛날에
아주 옛날에..
그런 말이 있었다.
"머리는 뭐 하러 달고 다니냐~?"
ㅎㅎ ㅎㅎ
"모자 쓰려고..."
왕관을 왜 썼는가?
왕관을 썼으면 왕답게 사고하고,
왕답게 행동해야 한다.
그래야 왕의 대접을 받는다..
君君臣臣父父子子
(군군신신부부자자)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애비는 애비다워야 하며..
아들은 아들다워야 한다..
論語(논어) 顔淵篇(안연편)에 나온 말이다.
공자가 제(齊)나라에 들어갔을 때 제나라의
제후인 경공이 공자에게 정치에 대해서 묻자
이에 대한 답변으로 대답한 말이다.
이것은 공자님이 대낮에 빼갈 드시고
취해서 하신 말씀이 절대 아니다.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의 도리를
다해야 된다는 것을 강조하신 말이다.
요새 어느 나라의 실정을 보면
공자님이 2500년 전의 그 나라의
사태를 미리 예견하고 하신 말씀 같다.
깜량!
능력이 안 되는 자를 자리에 앉히고
능력이 안 되는 자가
엉뚱한 짓거리를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깜량을 못 알아봤으니 그 깜량으로부터
엄청난 큰 고통을 당하는 것이다. ㅠㅠ
병자호란과 작금의 사태를 보면
유사한 점이 너무도 많다.
역사는 반복 된다는 말이 우연이 아닌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얼핏보면 현실비판을 하는 것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지도자가 중요하다고 강조하려는 것이었다.
리더는 리더십의 주체이다.
조직에서 리더는 조직의 생사를 좌우한다.
그러면 인조의 왕비들은 어떠했을까?
인렬왕후 한씨!
선조 27년(1594) 7월에 청주 한씨
한준겸과 어머니 창원 황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17살에 한 살 어린 16세의 능양군과 혼인을 했다.
능양군(인조)은 선조와 정이 두텁던 후궁
인빈 김씨 사이에 태어난 정원군이 아버지다.
정원군의 집이 왕의 서기가 깃들어 있다는
소문 때문에 광해군의 경계심을 키웠고
결국 막내인 능창군이 목숨을 잃는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좇겨나고
능양군(인조)이 왕이 되자 한씨도 왕비가 된다.
30세에 평범한 아낙(?)에서
왕비가 되었으니 초고속 승진(!)이다.
인렬왕후 한씨!
왕후 점수로 치면 상위 클라스다.
먼저 여자지만 통이 크셨다.
막내 도련님인 능창군이 역모에 걸려 곤란한
처지에 있을 때 구명운동을 위해 시집올 때
가져왔던 패물을 몽땅 뇌물로 사용했다고 한다.
요새 여자들 같으면 어떻겠는가?
글쎄~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소리라고 할 것이다.
일부를 빼고...
(왜 일부를 이렇게 넣은 이유는 다 알 것이다.
교활한 토끼는 도망갈 구멍을 세개나
파놓는다(교토삼굴)는데 만물의 영장인 내가
최소한 도망갈 구멍 하나 정도는
만들어 놓아야지 않겠는가~?)
그리고 생활이 근면검소했다고 한다.
인조가 지딴에는 왕이 되었다고
후원을 화려하게 하려고 했는데
왕비 한씨가 반대했다고 한다.
잘 나갈 때 조심하라고!
그러고 보니 청주 한씨 여자분들이
좀 괜찮으신 분들이 많은 것 같다.
갑자기 왜 한예진 배우가 생각나는 걸까?
며느리로 삼으면 좋은데 이미
어느 축구선수에게 시집을 가버렸다고 한다.
아깝게시리 청주 한씨를
부인으로 둔 분들에게 축하를 보낸다.
고마우면 댓글로...^^♡^^
두번째 에피소드는..
인조가 왕으로 등극하자 '엎어진 배' 그림을
보여 주면서 "상감, 잘 보세요!
백성은 물이고 임금은 배이옵니다.
백성을 잘 다스리지 않으시면 이 배처럼
된다는 것을 명심하소서!" 했단다.
아마도 맹자님의 말씀을 많이 공부하셨나보다.
역성혁명을 설파하신 것을 보면...
근데 요새도 이 말이 유효한 것을 보면
공자왈 맹자왈하던 옛날 분들이 참 현명하셨다.
세번째 에피소드는 아들 문제다.
비운의 소현세자..
나중에 왕위를 이어받는 봉림대군(효종)
인평대군과 용성대군 넷을 두었다.
소현세자, 큰 아들 결혼문제로
상심한 아들을 위로해야했다.
소현세자가 서로 사랑한 윤규수가 있었는데
아버지가 남인 윤여립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사촌인 윤인발이 이괄의 난 때
그쪽편에서 있다가 역적으로 몰렸다.
정권을 잡은 서인들이 이 혼인을 용납하겠는가?
김자점 등 서인들이 강력반발하자 어쩔수 없이
혼인을 할 수 없었고 사랑에 실패한
윤규수는 목을 메달고 죽어버렸다.
참~ 안타깝다!
그놈의 권력이 뭔지...ㅠㅠ ㅠㅠ
사랑에 찢어진 가슴(broken heart)으로
고통스런 아들의 모습을 보는 엄마의 심정!
안타깝다. 세자가 서인파 강씨와 결혼했지만
부부 사이가 안 좋아서 또 엄마
한씨가 맘이 아펐다. 참 엄마란...
인렬왕후 한씨!
인조 13년(1635) 12월에 42살에 막내
용성대군을 낳고 산후병으로 저 세상으로 가셨다.
참 풍진 세상을 살다 가셨다.
다행인 것은 병자호란(1636)이 일어나기 전에
세상을 떠남으로써 남편이 청태종에게 치욕적으로 항복하는 모습을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참 다행인데 이것도 복이라면 복이다.
다음은 계비 장렬왕후 조씨이다..
내일 또 계속 됩니다 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