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가 우리를 키워주네
글쓴이 : 조영미( 마을에서는 채송화라는 별칭으로 불립니다.
서수원 칠보산 자락에 자리잡은LG빌리지 아파트에 살면서 아이 넷을
키우고 있습니다. )
수원의 서쪽끝에 자리잡은 칠보산은 일곱가지 보물이 숨겨져 있다고 해서 '칠보산'이다. 칠보산 자락에 유일하게 서 있는 LG빌리지 아파트를 처음 봤을 때, 수원시에 이런 곳이 있나 싶었다. 그래도 명색이 수도권에 있는 '시'인데, 산 자락에 아파트 수십동이 달랑 서 있을 뿐, 주변은 온통 파란 모가 자라고 있는 논이고 밭이었다.
2004년 봄, 대안초등학교를 준비하는 모임이 있다고 해서 한번 두번 발길하던 이곳에서 나는 지금 6년째 살고 있다. 2005년 봄이 시작될 무렵, 결국 일년 간의 준비 끝에 수원에서 처음으로 대안초등학교인 '칠보산자유학교'를 개교하게 되었고, 학교를 따라 우리 가족은 이곳으로 이사 왔다.
고립된 섬같이 다니는 버스도 별로 없고, 주변에 상권도 거의 없던 이곳은 정말 시골스러웠다. 불편함도 있었지만, 사람들은 여유롭고 자연과 가까워 보였으며, 전에 살던 텅빈 놀이터와 달리 아이들이 북적였다. 길을 지나다 보면 서로 모여 앉아 아이들를 먹이고 놀리는 엄마들도 많았고, 웃으며 인사를 나누는 사람들도 많았다. 문만 닫으면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누가 사는지도 알 수 없는 도시의 아파트 생활에 익숙하던 나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꼬박꼬박 인사를 하는 같은 라인 아이들이나 어른들을 만나며 좋은 동네라고 생각했지만 좀 어색했다.
5월이 되자, 두꺼비논 펀드 이야기가 나왔다. 일찍 알을 낳고 산으로 올라가는 두꺼비들이 살 수 있도록 물을 가두었다가 제초제와 농약을 치지 않고 계약재배하는 두꺼비논을 함께 마련하자는 펀드였다. 거둔 쌀은 나누어 준다고 하여 아이들 급식으로 쓰면 되겠다며 자유학교 차원에서 신청을 하고 모내기하러 나오라 하여 별 준비 없이 나갔다.
산에 면한 작은 논에 아이와 어른이 바글바글 했다. 어른들은 언제적 이야긴가 싶게 양쪽 끝에서 모줄을 옮겨주는 대로 손으로 모를 심고 있었고, 아이들은 진흙투성이가 되어 올챙이가 가득한 논에서 장난치며 놀고 있었다. 고운 논흙은 뻘 같았고, 물은 햇볕에 데워져 차갑지 않았다. 아이들은 놀다놀다 결국 논바닥에 주저 앉아 물장구를 치기도 하고, 서로에게 물을 튕기며 마치 개울에서 놀 듯 놀았는데 이상한 것은 그만 나와라, 더러워진다며 야단치는 어른이 없다는 점이었다.
한두번 손으로 김을 매주고, 가을이 되어 벼를 베는 날, 두꺼비논 논두렁에서 작은 음악회가 열렸다. 논두렁에 세운 긴 장대엔 오색천이 휘날렸고, 인근 중학교 아이들이 나와 악기 연주를 선보였고, 동네 아줌마가 시를 낭송했다.
마른 논에서 어른들은 낫을 들고 직접 벼를 베었고, 아이들이 하고 싶어하면 옆에서 하나하나 알려주며 벼를 베어 보게 하였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베어 놓은 벼를 한아름씩 들고 한 곳에 모아 주었고, 기념으로 집으로 가서 걸어 놓겠다고도 했다. 우리 집에도 그 때 거둔 볍씨들이 작은 유리병에 담겨 있다.
8월 한가위가 다가오자 학교운동장에서 강강술래를 한다는 방송이 몇 차례 나왔다. 이 동네에 자리잡은 공동육아 어린이집과 방과후, 자유학교에서 함께 한가위 행사를 한단다. 보름이 다가오는 둥근 달이 뜨자, 어디선가 흥겨운 풍물소리가 울려퍼졌고, 풍물패가 길놀이를 시작하자 여기저기서 아이들이 먼저 뛰어 나왔다. 아이들로 시작하여, 엄마, 아빠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모여들며 어느새 길놀이를 끝내자 학교운동장은 사람들로 꽉 찼다. 대강 봐도 500명은 넘어 보였다. 운동장에서 동네 사람들이 손을 잡고 둥글게 돌며 춤추고 노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여기가 21세기가 아닌 수백 년을 거슬러 올라간 조선시대 같기도 했다.
언제나처럼, 한판 놀이가 끝나자 떡과 안주, 술이 나누어졌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모여 앉아 흥겨워하던 모습을 보며 현관문만 닫으면 '노 터치'를 서로 묵인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이 여겼던 아파트에 대한 학습된 무력감 넘을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을 갖게 하였다. 이런 마을에서 내가 살고, 아이를 키워갈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설레었다. 나만의 생각이 아니라 적어도 그 시간을 함께 한 사람들은 공감할 것 같았다.
다음해 정월보대보름이 다가오자, 마을은 또한번 술렁거렸다. 길놀이패가 마을 사람들을 인도한 곳은 근처의 논이었다. 하늘에 떠 있는 얼음덩이 같이 시퍼런 보름달과 어른 키의 두배가 될 정도의 웅장한 달집이 활활 타오르는 풍경은 어디서도 보지 못한 것이었다. 사람들은 깨끗한 마음으로 소원을 빌었고, 어둠 속에서도 달집의 불빛에 의지해 반가운 얼굴을 알아보며 인사를 나눴다. 마을 전체가 한해가 시작됨을 축하하는 것 같았다.
우리 아파트는 이렇게 새해가 되면 정월대보름 행사를 시작으로, 봄이 되면 두꺼비논 모내기, 가을이 되면 한가위 잔치와 두꺼비논 벼베기를 함께 하며 한해의 흐름을 같이 한다.
어떻게 이런 아파트 문화가 만들어 졌을까 생각해 본다. 입주 당시, 아이를 믿고 맡길 곳을 고민하던 부모들이 공동육아 어린이집(사이좋은어린이집)을 열었고, 일년 뒤 졸업한 아이들을 위해 곧바고 공동육아 방과후(사이좋은 방과후)를 만들었다고 한다. 일반초등학교와 방과후의 이질성 사이에서 고민하던 부모들이 대안초등학교(칠보산자유학교)를 일구었고, 장애를 가진 아이를 대안초등학교에서 키우던 부모들이 장애대안중등학교(배움터 마당)를 열었다. 방과후에서 아이를 함께 키웠던 부모들이 친구가 되어 계속 만나는 모임(방과후명예방)이 생겼고, 아이들을 위한 공간은 있는데 청소년들의 공간이 없다며 교육나눔 공동체(둠벙)을 만들었다. 환경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마을 미술선생님이 작업실을 개방하며 어른과 아이들의 공방이자 환경교육센터가 된 곳이 '도토리교실'이고, '한살림'에서는 쓸모 없어진 옷이며 장난감, 신발 등을 사고 팔 수 있는 초록장터를 해마다 몇 차례씩 열고 있다.
이런 작은 공동체도 있지만, 그때그때 재미난 모임도 생긴다. 얼마 전, 정말 귀한 술을 맛보게 되었다. 수원의 새날의료생협 한의사님께 전통주를 배우는 모임이 있었는데, 근 두달의 정성 끝에 술을 뜬다며 맛보러 오라는 것이었다.
허름한 도토리교실 방에 둘러 앉아 정성으로 빚은 술을 나눠 마시며, 얼굴만 알고 지냈던 사람과도 마음을 트게 되고, 서로의 꾸밈없는 모습을 보며 친구가 되어갔다.
동네에 장구를 잘 치는 사람이 있었다. 이사온지 얼마 되지는 않았는데 마당발이라 이래저래 아는 소식이 많았다. 칠보지역 고유의 장구가락이 있는데, 예전에 농악대에 계셨던 할아버지가 아직 살아 계시다는 이야기가 발단이 되어 '칠보가락전수회'가 만들어졌다. 매주 수요일 저녁이면 어김없이 모여 장구를 배운다. 뒷풀이가 더 좋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생전 장구 칠 것 같지 않아 보이던 전형적인 도시남녀들이 더운 여름에도 빠지지 않고 나가는 걸 보며 나도 배우고 싶어진다. 이번 한가위 잔치 때는 칠보가락전수회가 길놀이에 나선다고 한다.
이 동네 사람들은 내 아이를 키우기 위해 이 동네에 왔는데, 시간이 지나 보니 내가 커 있더라는 말을 많이 한다. 또, 인생 고민, 자식 고민을 동네 아저씨, 아줌마들이랑 나눈다며 직장에서 자랑한다는 사람도 있다. 그러면, 다들 믿지 못하겠다면서도 엄청 부러워 한단다. 정말인데 . . .
이곳 아파트에 와서 작은 공동체 생활을 경험하면서 너와 나, 내 자식 남 자식이라는 경계를 조금씩 허물게 된 것 같다. 시간이 필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기분 좋은 일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선배 엄마, 아빠들의 사는 모습에서 변화는 시작되었다. 엄마들은 언니, 동생, 친구가 되어 서로를 대했고, 아빠들은 형님, 동생이 되어 서로를 대했다. 아이들도 누구의 아이인지 중요하지 않았고, 자기 자식처럼 관심을 보이고 보듬어주고 챙겨 주었다. 그게 참 부러웠고, 나도 그런 인간관계 속에서 살고 싶어졌다.
처음엔 좀 특별한 사람들만 모인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오랜시간 같이 살다보니 나와 똑같은 사람들임을 알게 되었다. 특출난 사람이 있어서 이런 공동체가 자꾸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서로 배우며 변해간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필요한 것은 계산과 가식을 떨친 모습으로 시간을 들여 지속적으로 만나야 한다는 것 정도.
이제는 동네 사람 누구에게나 경계심이 점점 옅어져 갔다. 그래서, 누굴 만나든 긴장되지 않고 편안하다. 전보다 사는 게 편해졌다.
벤치 옆자리에 누군가 앉아도 불편하지 않고, 내 아이를 보며 웃음짓는 할아버지, 할머니께 그분들의 살아온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길을 걷다보면 단지 하나를 지나오면서도 아는 척할 만한 사람이 많아졌고, 그런 우연한 만남이 즐겁고 반갑기에 목적지만 생각하며 걷기보다는 아는 사람 없나 하며 천천히 사람들을 살피며 걷게 되었다.
요즘, 우리 마을은 한가위 준비로 서서히 바빠지고 있다. 얼마 전에는 마을의 크고 작은 공동체들이 다 모여 한가위 행사 역할을 나눴다.
버리기 아까울 만한 마을신문을 소박하게나마 만들어보자며 마을신문 창간준비호 팀도 점차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고, 우리 사는 칠보산 마을을 행복하게 가꿔가기 위해 마을 전체가 참여할 수 있는 큰 모임도 한발 한발 준비하고 있다.
아파트에 살면서 내가 더욱 성장하는 경험, 든든한 이웃이 많아지는 경험, 경계심이 허물어지고 편안해 지는 경험이 가능할까? 사람들과의 관계가 삶의 활력이 되고, 재미난 일을 도모할 만한 사람을 확인해 가며 즐거운 상상을 하는 게 가능할까?
오늘, 내가 누리는 풍요로움의 주춧돌이 되어 준 작은 공동체들과 앞으로 마을에서 함께 살아갈 사람들이 고맙다. 낮지만 푸근하게 우리를 감싸주는 칠보산도 고맙다.
자유학교 선생님들은 말씀하신다. "칠보산이 우리 아이들, 반 넘게 키워준다 ."고 . . . 성장이 끝났다고 생각했던 어른들을 우리 아파트마을이 키워준다는 생각, 나만 하는 것은 아닐거다.
아파트가_우리를[칠보-조용미(채송화).hwp
첫댓글 이 글은 엘지빌리지에 살고 있는 채송화님이 지난달 '작은것이 아름답다'에 보냈던 원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