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 정리 Bible Summary- 성경 전체 내용의 파악 1
할렐루야! 국내외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국내외 왕래가 잦아들고 그리고 우리나라도 모든 면에서 조용히 집에서 기도하며 이 어려운 시기를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시라고 간청을 하고 국가의 통제에 잘 따르면서 조속히 극복하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풀어 주셔서 모든 분들이 건강을 회복하고 이 질병이 정복이 되게 하소서! 믿음의 백성의 간절한 골방 기도와 진지한 성경연구로 질병의 극복과 함께 작은 나라에서 함께 서로 사랑하며 정의롭게 살고 거룩을 회복하게 하소서! 모든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올바로 이해함으로써 하나님의 법과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의나 나라가 확장되게 하소서! 영어로도 번역을 했으니 온 세상의 분들과 같이 성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게 하소서! 새로운 성경의 이해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가 온 땅에 이루어지게 하소서!
샬롬!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두가 집에서 예배를 드리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속히 이런 위기가 잘 지나가기를 기도합니다. 오늘은 전번 구약성경의 역사서를 예언서와 시가서를 같이 통째로 공부를 하자고 제안했고 그리고 모세 5경과 시편과 그리고 욥기를 동시에 보는 것에 대해서 간단히 서론격으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성경 전체를 간단하게 정리를 해보았습니다. 성경을 읽는데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고 믿습니다. 파워포인트로 자료를 만들었습니다. 설명도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보면서 간단하게 드리겠습니다. 긴 성경을 짧게 요약을 했기에 부족한 부분도 있겠지만 짧은 지면으로 온 성경 전체를 간단하게 그리고 쉽게 파악을 할 수가 있으니 꼭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우선 표지입니다. 오천만의 로마서에 성경 정리를 한다는 말이고 저는 데이비드 킴 목사로 소개가 되어 있습니다. 그다음 파워포인트를 한글과 영어로 같이 보시겠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과 말씀이 우주의 생성과 만물의 창조와 앞서서 존재하고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계신 분이심을 밝히고 있는데 출애굽기 3장 14장에 스스로 계신 분으로 하나님께서 자신을 모세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모습으로 계시는데 위가 삼위이고 이 삼위는 하나로 되어 있다고 합니다. 성경에서 삼위일체라는 말은 없지만 신학적으로 이를 밝히고 성당과 교회가 즉 가톨릭과 개신교회가 이 부분에 있어서 서로 차이가 없습니다. 어려운 교리입니다.
그런데 이 신학적인 가르침 없이도 우리는 하나다라는 표현이 요한복음에 있고 창세기에도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닮은 사람을 만들자라고 하시며 하나님께서 우리로 계시며 그리고 하나로 계심을 성경을 통해서 알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하나로 계심과 일체 이심을 알 수 있는 세상의 실체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선 가정의 예를 보면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자녀로 구성이 되어 있고 서로 다른 실체이지만 또 하나로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자녀의 아픔은 곧 부모님의 아픔이 되고 자녀의 기쁨이 곧 부모의 기쁨이 됩니다. 같이 살면서 서로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이런 사랑이십니다. 그리고 가정은 질서가 있습니다. 부부도 질서가 있고 부모와 자녀도 질서가 있습니다. 서로 함부로 버릇없이 굴지 않고 서로 존중하며 서로 순종합니다. 그리고 인종도 흑인 황인 백인으로 되어 있고 미국과 같은 나라는 서로 다르지만 하나가 되려고 합니다. 다양성을 존중하며 하나가 되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미국의 모습을 복을 많이 주시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다라고 하셨고 아들을 보면 아버지를 보는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삼위일체의 교리를 이렇게 부분적이나마 이해를 합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세상은 질서가 있는 가운데 조화를 이루면서 창조가 되어 있고 이 질서로 인해서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공자가 본 예적 질서와 하나님의 질서는 완벽하게 서로 일치는 하지 않지만 참으로 세상에 큰 질서를 주신 분이 공자님이시고 공자가 없었더라면 세상은 참으로 무질서했을 것이라는 후대의 분의 지적은 완벽히 맞는 말이라고 인정합니다. 공자님은 비록 유교적인 예적 질서를 세우려고 하셨지만 성경을 읽어보면 많은 부분에서 일치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참으로 예수님의 진리가 전파되기 전에 세상의 질서를 세우려고 하신 위대한 분이십니다. 지금의 세상은 참으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많다고 하지만 성경의 질서도 추구하지 않고 있고 유교적 예적 질서도 완전히 무너뜨린 상태에서 오직 물질만 보고 달려가고 있으니 참으로 한탄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고 성경의 올바른 이해를 하지 못한 일부 목사나 신학자의 믿음에 대한 강조로 믿음 하나로 모든 성경의 문제를 해결해서 천국에 가려고, 사랑도 버리고 정의도 버린 너무나 안타까운 신자가 가득한 세상이 되었으니 인간 공자가 이루려고 애를 썼던 과거의 인간의 정도 없고 그렇다고 예수님의 사랑과 정의도 찾아볼 수가 없는 세상에서 우리는 미세먼지와 싸우고, 그리고 빈부의 격차와 싸우고, 그리고 최근에는 신종 바이러스와도 싸우고 있으니 참으로 이 모든 문제를 다 지고서 사는 길은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고서 예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길 외에는 답이 없는 줄로 믿습니다. 숨이 떡떡 막히는 현실입니다. 죽고자 하는 자는 살 것이고 살고자 하는 이는 죽을 것이다라는 말씀으로 너무 살고자 하시지 말고 그냥 죽고자 하는 자세로 멀리 보지 마시고 오늘 하루 주변을 사랑하며 배려하면서 살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속히 오셔야 할 것입니다. 정말로 성도가 힘이 들어야 예수님을 기다립니다. 북한의 옥에서 아무런 희망도 없이 하루하루 사는 성도들은 오직 예수님께서 속히 오셔서 자신을 구해줄 것 외에는 달리 바람도 소망도 없을 줄로 믿습니다. 온갖 자유를 다 가진 우리가 가장 시급하게 해야 될 일이 북한의 복음화와 갇힌 자의 석방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들과 지구를 창조하셨습니다. 창세기 1장 1절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영문은 태초에 하나님이 하늘들과 땅 즉 지구를 창조하시니라로 되어 있습니다. 텅 빈 우주 공간과 지구만 있는 상태가 있었습니다. 요한복음에는 태초에 말씀이 있고 이 말씀이 세상의 만물을 창조하셨다고 하는데 이 말씀이 곧 예수님이신데 육신을 입고서 이 땅에 오셨다고 합니다.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시고 그리고 이 세상의 창조주가 되시는 분이 우리의 구주가 되시며 우리에게 사복음서에서 여러 가지 명령을 내리고 있습니다. 이건회 회장이 병에서 완전히 회복하고서 어떤 사람에게 가서 네 소유를 다 팔아서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주고서 내게로 와서 나의 일을 하라 내가 먹는 것 입는 것 다 책임지고 그리고 백배나 더 유익을 주겠노라 하면 이를 따라서 가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있을 것입니까? 삼성에 취직이 되고 10억의 재산을 팔아서 나누어주면 1000억을 주겠노라 하고 그리고 이를 약속하고 공증하고 그리고 반드시 자신이 선택한 사람에게 그렇게 한다면 모든 사람이 10억의 재산을 팔아서 나누고 곧 1000억의 돈을 받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자 청년에게 이렇게 권유했습니다. 네 소유를 다 팔아서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주고 나를 따르라 부자 청년은 예수님을 직접 대면하는 역사상 가장 큰 영광을 누렸지만 이런 예수님의 말씀도 믿지 못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창조주가 되시는 예수님도 믿지 못하고, 그리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지니신 그리고 인간의 생과 사와 화와 복을 주관하시는 그리고 역사의 주관자가 되시는 예수님을 믿지 못했습니다. 예수님, 사람 예수님은 보이나, 작아 보였고 그리고 자신이 가진 소유는 너무나 크고 값지게 보였습니다.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되 풍성히 얻게 하리라는 말씀도 믿지를 못했습니다. 12제자들과 같이 믿고 따르지 못해서 천국에서 영원히 상급과 면류관을 받고 왕 노릇 하는 영광을 보지를 못했습니다. 지금의 우리도 이렇게 작은 물질에 정신이 나가서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죄의 그늘이 너무나 짙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흙으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를 하셨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서 사람을 만들자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홀로 사람을 만드신 것이 아니라 함께 하셨습니다. 성경 전체를 보면 어떻게 사람을 만들었는지 답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당연히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태초에 계셨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장에 말씀이신 예수님에 대해서 설명을 하십니다. 만물이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만물의 창조주가 예수님이십니다. 그리고 사람을 흙으로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저는 직접 손으로 우리를 빚으신 분이 예수님이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서 생령이 되었다고 합니다. 동물과 사람의 만드는 재료는 흙으로 같지만 이런 생기를 불어넣는 과정이 동물은 없기에, 동물은 죽으면 흙으로 가고 사람은 육체는 흙으로 가지만 영혼은 하나님께로 간다는 것입니다.
사랑과 정의와 그리고 거룩의 모습을 가진 사람도 역시 그분을 닮게 사랑하고 정의롭게 살고 그리고 거룩하게 살며 영생을 지니신 하나님의 모습대로 영원토록 살도록 만들어졌고, 에덴은 옷을 벗고 살아도 좋을 정도의 기후와 완벽한 먹거리와 그리고 동물과도 잘 지내는 죽음이 없던 공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죄가 들어옵니다. 사탄의 유혹을 이기지 못한 여자와 아담의 범죄로 죽음이 들어왔고 에덴에서는 추방이 되었으며 그리고 이제는 남자는 거친 들판에서 노동을 해야 되고, 여자는 출산의 고통을 겪으면서 살다고 죽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운명이 여기서 결정이 되고 우리도 그렇게 살다가 죽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악만 가득한 세상에 가끔은 하나님께서 보내셨는지 아니면 죄를 범한 아담의 피눈물 나는 교육에서인지 아무튼 에녹과 같이 하나님의 마음에 쏙 드는 분이 세상에 오시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데 이 분은 실패한 아담과 같지는 않습니다. 아담이 실패를 했지만 모든 인간이 다 실패를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 중에는 에녹과 같은 분이 또 성경에 있으니 이런 분들은 모두가 죄악에 물이 들어도 착하게 사니 하나님의 위로가 되는 분들이십니다. 모든 사람이 다 죄인이라는 로마서의 주장도 맞지만 이렇게 올바른 사람도 존재했습니다. 노아는 그 이름과 같이 하나님께는 위로가 되는 존재였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함을 인정을 받고 그 자녀와 자부와 아내와 같이 오직 지구상에서 홍수에도 살아남았습니다. 그리고 이들로부터 민족들이 생기고 인종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바벨탑 사건으로 언어가 혼잡케되고 지구상으로 흩어져 살게 되었습니다. 우리 민족도 그때 흩어져서 중동을 지나서 인도를 지나서 그리고 동남아와 필리핀을 거쳐서 한반도의 남쪽으로 이동을 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고인돌의 분포를 보면서 해 봅니다. 보실까요?
제가 진화론자가 그린 그림을 빨간, 녹, 하늘색으로 따로 한반도로 이동의 통로로 그렸습니다. 비단길, 초원의 길, 바닷길이 그 이동로인데 바닷길은 제가 그려 넣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북쪽으로 한반도에 사람이 들어온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삼국유사, 삼국사기, 그리고 위지 동이전이나 한서 지리지를 보면서 추측을 하는 것이고 또 초원의 길이 있고 비단길이 있기에 그렇게 보는 것입니다. 어찌 되었던 사람이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이동이 된 것을 창세기를 통해서 아는 사실입니다. 비옥한 초승달 지역의 밀의 이동을 보면서도 진화론은 아프리카를 인류의 기원으로 보고 있는데, 성경의 노아의 홍수와 민족의 이동이 올바르니 진화론의 원숭이 주장은 멀리하시기 바랍니다. 창조론에 바탕을 두어야 역사가 해석이 되고 진리가 보입니다. 이제 고인돌을 통해서 모두가 창조론으로 속히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역사는 신석기 청동기를 거쳐서 철기시대의 역사가 존재합니다. 삼국시대 이전의 고조선이나 부여 혹은 고구려 그리고 삼한을 거쳐서 백제와 신라의 역사로 들어갑니다. 학교에서 그렇게 배웁니다. 고조선 2333년 역사를 뒷받침하는 어떤 유물이나 혹은 기록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역사는 기원후의 역사를 주로 연구를 합니다. 그리고 진화론의 주장으로 신석기 타제석기 구석기 시대를 구분해서 약 수십만 년 전으로 올리나 세계의 학계는 인정을 하지 않습니다. 이제 고인돌의 분포와 이동로를 보겠습니다.
먼저 그림은 세계사에서 보는 인류의 기원에 대한 연도입니다. 문화적인 측면의 연도입니다. 그리고 고인돌의 세계 분포도가 그다음입니다. 고인돌은 지구상에 약 7만 기가 남아 있다고 합니다. 한반도에 약 4만 개가 있다고 하는데 고인돌로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유적이 있는 나라가 한국입니다. 그리고 전남지방에 가장 많이 분포가 되어 있다고 하고 약 기원전 1000년대쯤의 유적으로 보고 주로 무덤으로 사용이 되었고 기념물이나 경계석으로 사용이 되었다고 합니다. 기원전 1000년 경에 한반도에 청동기를 사용하는 셀 수도 없는 사람이 살았음을 증명하는 어떤 사람도 부정할 수가 없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약 3천 년 전에 너무나 많은 사람이 이 땅에 살았습니다. 성경으로 이런 사실이 풀리지, 죽어도 진화론으로 풀 수가 없는 사실입니다. 원숭이에서 진화된 한반도에 살던 어떤 원숭이 닮은 사람이 이런 문자도 기록도 없는 수많은 무덤을 만들었다고 하면 절대로 이 문제를 해결이 불가합니다. 그러나 제가 보여드린 자료만 보아도 어느 정도 금방 답이 나옵니다. 성경의 진리 됨과 능력이 여기에 나타납니다. 문화적인 측면에서 사람이 살던 시기를 지도로 연도를 표시를 했는데 4가지 문명의 분포와 연대가 표시가 되어 있습니다. 이 이상의 연대를 아무리 올리려고 각국이 죽을 고생을 다해도 이 정도로 정리가 된 것을 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에덴동산의 아담의 삶과 그리고 그 후손의 삶의 기록을 성경을 통해서 보면 그대로 그 내용이 다 맞습니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시작된 인류가 노아 홍수와 바벨탑을 거치면서 유럽과 아프리카로 퍼져나갔습니다. 그리고 우리와 같은 셈족은 서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와 인도와 중국과 그리고 동남아로 퍼져나갔습니다. 고인돌의 연대를 보면 위의 4대 문명의 연대와 비슷합니다. 고인돌의 유적도 문명의 확산과 같은 연대를 따라서 이동이 되는데 우리는 땅끝으로 약 기원전 1000년 경의 연대로 보고 일본은 기원전 약 400년 정도로 본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동로는 바다입니다. 바다 주변에 주로 고인돌이 분포하고 그리고 연대가 메소포타미지역으로 갈수록 높아지고 있고 일본의 가장 후대의 것으로 보고가 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바벨탑 사건 이후에 이동으로 우리 민족이 인도와 동남아와 그리고 필리핀과 그리고 흑조류를 따라서 전남 남부지역으로 들어왔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이 부분은 제 오천만의 로마서 성경적인 세계사에 자세하게 있는데 여기서 다시 간단하게 설명을 합니다.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의 다음 영화의 소재가 충분히 된다고 믿습니다.
우리의 역사는 고구려와 신라와 그리고 백제의 역사로 시작을 합니다. 그 이전의 어떤 기록도 남아 있지도 않고 유적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청동기 시대의 고인돌을 그냥 청동기인의 유물로 알고 기록이 없기에 모두가 등한히 했습니다. 그런데 없어진 것을 포함하면 약 10만 기의 고인돌이 한반도에 있었고 그리고 그 고인돌이 사람의 무덤으로 밝혀졌다면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완전한 창조된 지금의 우리와 똑같은 모습과 지능을 지닌 사람이 살았다면, 이는 너무나 중요하고 그리고 반드시 이해를 해야 되는 부분이 있는데 원숭이의 진화된 청동기인의 무덤으로 이 문제를 풀려고 하면 천년이 지나도 절대로 풀 수가 없는데 성경을 통해서 이렇게 쉽게 재미있고 그리고 정확하게 풀리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전라도는 우리의 고향입니다. 저는 경상도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성경을 통해서 그리고 남은 유적을 통해서 보면 전라도는 모든 대부분의 한반도에 사는 사람의 고향이 되는 것입니다. 고인돌의 분포와 연대와 그리고 이동로를 보면 정확하게 전라도로 한반도에 사람이 처음 들어온 것을 알 수가 있으니 기존의 모든 역사의 학설이 다 고쳐져야 하는 것입니다. 너무나 정확한 증거를 부정할 사람도 별로 없을 것이기에 세계적인 영화의 소재가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더 설명이 필요가 없고 그냥 그림만 보면 전라도가 모든 한국인의 고향이 됨을 알 수가 있습니다. 땅을 정복하라 모든 동물과 식물과 바다의 고기들을 다스리라는 말씀을 가슴에 안고 땅끝 한국으로 오신 우리의 조상이 있었습니다. 고인돌이 증명합니다. 10만기가 넘었는데 약 4만 기가 아직도 있고 이 무덤들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농사를 짓고 구들장을 사용하고 그리고 쌀농사를 짓던 고인돌족은 지금까지 그 문화가 조금도 변함없이 지속이 되고 있으니 저도 그랬고 대부분의 농촌의 약 50년 전의 사람들이 다 그렇게 살았습니다. 다만 무덤만 고인돌로 하는 문화가 사라졌습니다.
처음에 상륙한 한반도는 사람이 없었을 것으로 봅니다. 어쩌면 북쪽으로 사람이 들어와서 살기도 했을 수가 있을 것이지만 고인돌로 무덤을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전라남도에서 산을 개간하고 물이 곁에 있는 지역에서 그리고 돌로 무덤을 만들 수 있는 지역을 찾아서 터를 잡았습니다. 쌀로 농사를 짓고 바다엔 물 반 고기 반 생선이 넘쳤고 그리고 갯벌에 조개와 온갖 먹거리가 하나님의 창조의 모습대로 넘쳤습니다. 강도 역시 마찬가지이고 산과 들에는 나물과 과일이 넘쳤습니다. 그리고 집터를 닦고서 집을 흙이나 돌로 짓고 구들을 놓고 그리고 나무로 땔감을 삼았습니다. 그리고 볍씨를 봄에 뿌려서 여름의 더위에 자라게 하고 그리고 가을에 추수를 하고 긴 겨울을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집에서 친구를 만나고 가족과 같이 평안하게 살았습니다. 중국에서 침략도 없고 일본에 아직 사람도 없을 수도 있었습니다. 땅은 비옥했고 살기에 너무나 사계절은 좋았고 밤은 해가 떨어지면 시작이 되어서 젊은 부부는 곧 자녀를 적어도 10 명 정도 낳고 인구가 늘고 살기에 조금 어려우면 조금 다른 쪽으로 이동을 하면 되었습니다. 전북으로 경남으로 그리고 충남으로 경북으로 이동을 한 모습이 고인돌의 분포로 그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천년을 그렇게 천국의 삶을 살았던 민족이 우리입니다. 중국에서 침략도 적어도 바다를 건너서 한 번도 없었을 것이고 일본은 침략을 할 꿈도 못 꾸던 시기에 쌀밥과 생선과 나물과 구들의 난방과 물도 어디서든지 마실 수 있는 깨끗하고 그리고 공기도 깨끗하여 여름밤에 마당에 누우면 별이 하늘에서 한가득 쏟아지는 너무나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우리 조상은 적어도 천년은 살았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완벽한 평화와 완벽한 먹거리 그래서 병원도 약도 없이 적어도 모두가 80세는 살았을 것입니다. 이는 최근의 우리 시골의 그 모습입니다. 그리고 최근 2천 년 동안 적어도 1000번의 외침이 있고 그리고 지금도 심히 다른 나라는 우리를 불안하게 보지만 우리가 여전히 평안히 별로 걱정 없이 사는 것은 그때 천년의 완벽한 평화를 즐긴 조상의 평안이 2천 년의 외침도 극복하고 여전히 평안하게 살게 하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더 자세한 내용을 성경적 세계사 고인돌 설명에서 보시기 바랍니다.
이제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성경을 통해서 이런 내용을 알게 되니 성경을 깊이 잘 읽고 묵상하고 이해해서 실천하는 삶이 얼마나 능력이 있는지 모릅니다.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하나님께서는 이삭과 야곱과 그리고 요셉을 거쳐서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 땅에서 키워내십니다. 비옥한 땅에서 번성한 이스라엘을 모세의 인도로 출애굽 하여 율법과 성막을 시내산에서 받습니다. 그리고 40년을 광야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법 즉 말씀으로 사는 법을 배웁니다. 그리고 비로소 가나안 땅을 향해서 여호수아가 전진을 합니다.
모세 오경을 율법으로도 불립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지켜야 할 법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순종의 복과 불순종의 저주의 내용이 주를 이루고 10계명과 이를 더욱 세분화해서 설명한 약 613 조문의 계명이 있습니다. 몽테스키외가 법의 정신에서 법을 관통하는 중심 사상이 있다고 했듯이, 율법도 그 중심 사상이 법의 정신과 같이 있으니 이를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셨습니다. 사랑과 의와 신이라고 하셨습니다. 왜 율법의 정신이 이와 같습니까? 죄로 물든 인간이 만든 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하나님, 정의로우신 하나님, 그리고 거룩하시고 믿을 수 있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법이기에 하나님의 정신 혹은 하나님의 뜻이 그 법에 그대로 나타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법을 전공하신 분이 알고 싶으시면 성경의 율법 즉 모세 오경을 잘 읽어보시면 됩니다. 하나님의 성품이 그대로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리고 죄에 대한 용서가 있습니다. 피 흘림과 죽음을 통한 제사를 통해서 죄의 용서가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만남의 장소로서 성막이 있습니다. 그리고 제사장과 재판장의 계급이 있습니다. 제가 행정고시를 대학 대학원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비록 사법시험이 아니라 법을 전적으로 공부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헌법을 잘 배우고 행정법, 그리고 민법의 일부와 국제법 등의 법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법학개론도 배우고 로마법도 조금 배웠습니다. 율법은 세상의 어떤 법보다 앞서고 정의롭고 평등한 세상과 그리고 모두가 행복하게 사는데 가장 앞선 법입니다. 인간이 만든 지금 세상의 어떤 법과 비교를 해도 모든 면에서 완벽한 법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율법을 작은 조항부터 중심이 되는 조항까지 잘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613조항의 법은 10계명으로 요약할 수도 있고 이를 다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두 가지로 요약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정의에 대해서 세상의 어떤 철학자나 윤리학자가 설명하는 정의보다 더욱 완벽하고 온전한 정의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이 율법을 잘 배운 이스라엘이 전 세계에서 가장 앞선 민족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반드시 이스라엘 민족과 같이 잘 배우고 실천을 해야 되는 모든 믿는 이의 국법이 모세 5경의 율법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율법이 로마서의 잘못된 이해를 통해서 외면 시 되는 것을 절대로 하나님의 뜻도 예수님의 뜻도 바울 사도의 뜻도 아님을 모든 한국의 목사와 성도와 신학자는 아셔야 합니다. 반드시 잘 이해를 해야만 됩니다. 저도 마찬가지로 잘 배워야 될 줄로 믿습니다. 돌로 쳐서 죽이라는 법조문과 벌이 있습니다. 간음의 죄도 그렇습니다. 지금 국가는 쌍방의 의사가 일치를 하면 간음도 벌하지 않게 하였습니다. 잘 아는 어떤 도지사의 사건에서 우리는 도지사와 비서가 같이 잠자리를 한 것은 인정하는데 과연 이 일이 서로 합의가 된 것인가 혹은 강제인가를 따질 때 합의가 있었다면 죄가 되지 않는 현행법에 따라서 도지사는 자유롭게 되는데 그렇지 않다고 해서 구속이 되었습니다. 부부가 다른 남자나 여자와 잠자리를 같이 하는 것이 간음이고 이런 죄는 성경에서 구약에서 돌로 맞아 죽게 되어 있는 죄입니다. 한국에서는 과거에는 간통이나 간음으로 부부 외의 성행위를 벌을 했는데 이제는 하지 않고 있습니다. 서로 합의를 하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낙태의 금지법도 위헌으로 결정이 났습니다. 세태를 따라서 국가의 법도 바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극히 싫어하시는 일에 대해서 국가가 허용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돌로 쳐서 죽이라고 한 죄는 그만큼 심각한 범죄입니다. 어떤 부부가 살았습니다. 두 자녀를 두었습니다. 남자가 다른 여자와 잠자리를 하고 그리고 그 부부는 이혼을 하고 남자는 다른 여자(바람을 피운)와 살게 되었고 여자도 다른 남자와 재혼을 했습니다. 자신의 두 자녀는 남자에게 맡기고 일생에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한 자녀는 새엄마와 아버지와 살다가 자살을 했습니다. 참으로 큰 비극이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 줄을 그 바람을 피운 남자는 알고서 그런 짓을 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도지사의 부인은 자신을 제쳐두고 동의가 있었나 혹은 강제냐를 다투는 두 남녀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모릅니다. 자신의 남편이 다른 여자와 같이 잠자리를 한 것을 온 세상이 다 알게 되었으니 참으로 그분의 입장을 법은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세상은 탁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일을 직접 경험하신 분은 돌로 쳐서 죽이라는 하나님의 법이 결코 과하지 않음을 잘 알 것입니다. 그래서 국가가 못하는 처벌을 배신을 당한 남자나 여자가 스스로 행하고 감옥에 가는 예를 우리는 가끔 봅니다. 국가들이 왜 이런 일을 허용을 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법을 배우신 분들은 왜 이런 법을 새롭게 만들어서 죄를 조장하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반드시, 국가의 법을 통해서 허용이 되었다 하더라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엄한 벌은 절대로 면해지지 않고 그대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행동에 따른 가족의 불행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현명한 자는 절대로 순간의 유혹에 빠져서 가정을 망치고 그리고 자신의 모든 것을 잃는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엄청난 불행이 기다리고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알든 모르든 우리가 믿던 믿지 않던 율법의 조항을 그대로 천지가 없어져도 일점 일획 변치 않고 존재하고 그리고 그대로 시행이 되고 있습니다. 혹자가 예수를 믿으면 과거의 죄, 현재의 죄, 그리고 미래의 죄가 다 용서가 된다라고 주장을 하는데 성경에 이렇게 설명한 구절이 어디에 한 구절이라도 있는지 확인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만약에 성경에 없는 이런 내용을 용서를 했다고 주장하면 사기꾼이 되는데 이도 성도를 죄악으로 몰아넣는 사기꾼이 될 수가 있음을 아셔야 합니다. 우리나라에 많은 목사들이 이렇게 소리높여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3장 21-26절의 말씀을 보시면 틀림없이 과거의 죄를 용서했다고 하십니다. 기독교가 들어온 지 약 130년이 넘었지만 성경에 대한 진지한 공부는 아직도 너무나 부족하고 신학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하나 신학도 너무나 한계가 많이 있고, 가톨릭 신학과 개신교의 신학은 어떤 부분에 있어서 너무나 다른 부분이 있는데 어느 한곳이 정확하게 맞으면 다른 한곳은 틀리게 되는 것입니다. 둘 중에 한 곳은 그 분야에 있어서 틀리는 것입니다.
모세 5경의 율법은 순종의 축복과 불순종의 저주를 중심으로 설명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순종하면 축복 불순종하면 저주가 온다고 믿고 행합니다. 순종을 하고자 하고 순종을 하는데 복이 오지 않으면 참으로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그리고 목자들도 신앙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대부분 설명을 합니다. 그리고 의인의 고난에 대한 욥기는 성경의 배치상 역사서 뒤에 있어서 모세 5경과는 멀리 있는 다른 내용인 줄 우리는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성경공부를 순서대로 하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할 수가 있고 저도 그렇게 오랫동안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통째로 성경을 보면 욥기는 분명하게 창세기의 아브라함 시대의 내용입니다. 그런데 역사서 뒤에 있으니 홀로 떨어져 있는 것과 같이 생각하게 됩니다.
통째로 공부의 위대한 위력은 욥기를 모세 5경과같이 생각을 하는 데서 발휘가 됩니다. 순종의 축복과 불순종의 저주의 주된 법이 있지만 또 같이 고찰을 해야 되는 부분이 있으니 의인의 고난에 대한 부분입니다. 즉 의인은 율법에 순종하는 사람에게 붙이는 말인데 순종하는 자가 축복이 아니라 불행이 올 수가 있는데 이는 저주의 상황이 벌어진 것이기도 합니다. 이를 욥과 그 친구들은 절대로 이해를 하지 못했습니다. 욥은 자신이 절대로 죄를 범치 않았다고 합니다. 친구는 네가 하나님께 죄를 범했기에 벌을 받은 것이니 회개를 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 두 주장이 욥기 전체를 관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탄이 시험을 한 것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중에 나타나셔서 욥과 친구를 책망하십니다. 뭐하고 하십니까? 고난이 오는 의미와 이유를 알지 못한 채 하나님을 원망한 욥을 책망하십니다. 그리고 욥이 불의해서 벌을 받는다고 욥을 다구친 친구들도 책망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욥기를 통해서 모세 5경의 순종의 복과 불순종의 저주에 대해서 다른 부분이 있음도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정의롭게 살면 반드시 복을 받지만 또 때로는 불이익도 당하고 큰 손해도 보고 또 큰 낭패와 실패도 볼 수가 있는데 이때 하나님을 원망치 말고 조용히 참고서 잘 견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난이 끝이 나면 그 고난을 통해서 큰 영적이인 그리고 육적인 유익이 있으니 잘 인내를 하라는 것입니다. 정의를 행하는 것을 쉬지 말고 잘 견디라는 것입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선을 행하면서 견디면 틀림없이 축복이 온다는 말씀이 욥기의 내용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이를 반드시 모세 5경과같이 이해를 하고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순종을 하는데 축복이 아니 오고 고난이 오는 것을 반드시 그럴 수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고, 또 수용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40년 광야 생활을 벌로 주셨지만 반드시 거쳐야 하는 이스라엘의 삶의 여정이기도 했는데 이는 율법과 말씀을 주시고 이 말씀을 배울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성도를 그렇게 훈련을 시키시고 있습니다. 시련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법을 배우고 순종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구약이나 신약이나 똑같은 과정이 기다리고 있는데, 예수를 믿으면 곧 축복이 오는 것과 같이 가르치고, 또 믿으면 축복이 금방 오지 않으면 이상하게 생각하고, 또 고난이 오면 이해가 되지 않고 이럴 때 욥과 똑같이 신앙생활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위로를 할 친구가 도리어 추궁을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반드시 이렇게 성경을 통째로 보아야 하고 그리고 신앙생활도 각오를 잘 해야 됩니다.
간단히 정리하고 설명을 하고자 파워포인트로 만들었는데 이렇게 설명이 길어졌습니다. 모세 5경 정도 진도가 나갔습니다. 시편의 창조 시편이 있고 모세의 시도 있습니다. 그리고 모세를 보면서 이스라엘의 구원을 보면서 예수님의 모습과 신약에서의 구원에 대해서 알 수가 있습니다.
모세의 사역은, 왕으로서의 사역과 제사장으로서의 사역과 그리고 예언자로서의 사역을 동시에 감당하는 것이었습니다. 한 직분도 감당하기가 어렵고 역사상 잘 하신 분이 드문데 모세는 거의 완벽하게 약 40년 동안이나 왕의 역할을 감당하고 제사장의 역할을 감당하고 그리고 선지자의 역할을 감당을 했으니 모든 성경의 인물 중에서 가장 예수님 닮으신 분이십니다. 목사가 아무리 커도 제사장에서 벗어나기 어렵고, 왕은 혹은 대통령은 왕의 직분만 감당하는 것이고, 그리고 예언자는 지금 시대에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막중한 역할을 40년 동안 죄를 짓지 않고 잘 수행을 했으니 다시는 나오기 어려운 분이십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통한 구원은 신약에서의 구원을 잘 설명해 줍니다.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은 지금은 세상에서 마귀의 종이 되어 살던 하나님의 백성이고, 유월절 어린 양의 피는 예수님의 보혈과 십자가의 대속이고, 홍해를 건너던 것은 물세례로 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는 성령의 인도로 볼 수가 있습니다. 광야에서의 삶은 우리 성도의 일생의 삶과 같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의 구원을 통해서 신약의 구원을 더 잘 이해를 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세의 기록이 자신에 대한 기록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레위기의 율법이나 기록은 예수님의 사역에 대해서 너무나 잘 이해를 할 수가 있게 합니다. 김경열 목사님의 '레위기 제대로 읽기'는 레위기를 통해서 예수님의 사역을 잘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 줍니다. 레위기를 통해서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받은 고난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역사서 통째로 보기와 예수님의 오심과 교회의 성장에 대해서 같이 생각해 보겠습니다. 건강에 유의하시면서 골방 기도를 힘써 같이 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