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바쁘다. 바쁘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은 강박증이 퍼져 있다. ‘잉여’의 존재가치가 잘못 이해되도록 자본주의 체제는 이미 거부할 수 없는 승자독식으로 구조화 되었다. 어린이부터 청소년, 그리고 전 세대가 느슨한 시간을 견디지 못한다. 여유 있는 시간 앞에서 안절부절이다. 마치 많은 이들의 기억 저 편으로 밀어 넣었을 그 잃어버린 시간들이 고개를 들이대는 듯하다.
“나의 죽음, 또 잊은 거니?”
내가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 모든 것은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거다. 시간이 해결해 주는 것은 없다. 단지 잊혀 질 뿐이었고 거기에 나의 동조가 있을 뿐이었지. 왜? 어떻게 해서 만든 내 스펙인데, 얼마나 치열하게 경쟁해서 얻은 직장인데, 나 하나 챙기기도 열나 힘들다고. 그래, 그렇게 한국사회는 바쁜 시간을 지나왔고, 국가의 경제 성장 속에서 약자는 치밀하게 소외되었다.
"학기 중에는 할 공부와 읽을 책들로 너무 바쁘고 시간이 부족해서 몰랐어요. 방학이 되어 내 시간이 너무 많아지니까 학점에만 매달린 듯한 나의 모습이 보여지구요. 과연 무엇을 위한 시간들이었는지요.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모르겠어요."
대학 2학년에 재학 중인 J의 하소연에 한국사회에 퍼져있는 강박과 불안감들을 본다. 어디 그니 뿐일까 싶다. 모든 세대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 지도 모르는 채 본능적으로 달리고 있나 보다. 삶을 사유할 수 없는 이 곳은 은폐된 진실들의 소리들로 어지럼증을 일게 한다. 그저 공부만 잘 하면 성공적인 삶이 열릴 것이라 여긴 그들은 이제 왜 사느냐고 묻기까지 겁을 잔뜩 집어 먹은 얼굴로 있다. 이제까지 귀 기울이지 못했던 내면의 울림이었나 보다. 청춘의 시절이 땅에 묻혀버린 듯해도 기억으로 남을 시간임에는 틀림없다.
우석훈의 『내릴 수 없는 배』는 정치인들이 술래잡기 놀이를 하듯 정치 놀이를 한다는 생각에 치미는 화로 계속 감정정리를 미루었던 책이다. 모든 문이 닫힌 이 배에서 망망대해로 뛰어들 용기가 없다는 의미로 느껴지던 내게 묻는 j의 말에 한참을 고민해야 했다. 삶의 의미. 그것은 살아가면서 스스로 찾아내어야만 만날 수 있는 것이기에, 부디 내일을 위해 오늘을 저당 잡혀 사회를 향한 관심이 멈추지 않기를 바란다. 젊은 세대에게 현실은 또 다른 도피처가 되고 있다.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는 막다른 골목 앞에서 주저앉아야 하나.
해방 이후, 지속적으로 한국사회의 진실들은 왜곡되거나 은폐되어 왔다. 사회 각 분야에 퍼져있는 이 기운들을 저자는 카뮈의 ‘페스트’로 설명을 한다. 소설이기에 가능할 것이라 여기는 누군가에 의해 폐쇄된 사회, 오랑의 상황은 세월호참사에서 드러난 어둠의 경로로 탈출할 수 있는 이들을 떠올리게 한다. 지금 우리는 페스트에서 탈출을 거부하고 오랑에 남아 '떠날 수 있음에도 떠나지 않았던 이' 랑베르와 같은 선택, '어둠의 경로' 그 진실을 밝히는 일을 해야만 한다. 예견된 참사일 수밖에 없는 근거들이 몇 년을 거쳐 진행되어 왔다.
세월호참사, 그 현실 앞에서 흥정을 하는 정치적 논쟁만 무성하다. 오랜 잠에서 덜 깨어 멍한 상태에 있던 나를 이루는 장식품들과 의식들이 일시에 소리를 지른다. 세월호참사와 이어질 또 다른 참사들을 품고 있는 한국사회는 위험사회이고 그것을 알리는 경고가 끊임없이 되풀이 되고 있다. 진실이 드러나는 일들을 가로 막는 이들과 이를 말하고자 하는 이들, 경계 저 너머에 대중들의 무관심과 사회적약자들의 소외가 있다. 이 책에서 만나는 이야기들은 곧 진실이라는 이름으로 박제되어 역사 저 편에서 허우적거릴 것만 같다.
한 사람의 죽음은 수많은 이야기를 남기곤 한다. 세월호참사의 그 죽음을 지켜보는 5천만은 결코 그 죽음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가 없다. 서해 바다 한 가운데 서서히 그러나 무겁게 침몰하는 생명들을 잡아 올릴 수 없었던 그 시간 이후, 한국사회의 시간은 멈추어 버렸다. 재난이 불러오는 그들의 고통스런 이야기와 기운들은 일상처럼 우리들의 삶과 함께 있어왔지만 4월 16일 세월호의 침몰은 132일째 현재 진행 형으로 있다. 심장 한 조각 도려낸 사월의 봄, 그 먹빛 바다는 아직도 생생하기에 더 처절하다.
첫댓글 읽어보고 싶은 책이었는데....본김에 후딱 읽어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