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지난 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요1:5)는 <함께 나누는 말씀>에 대한 기도입니다. 이 기도를 긍휼히 여겨주시옵소서
빛이 혹시 코로나19 팬더믹은 아닐까? 폭우는 아닐까? 폭염과 가뭄은 아닐까? 태풍은 아닐까? 산불은 아닐까? 해수면의 상승은 아닐까? 이 모두가 창백한 푸른 점이 보내는 마지막 경고는 아닐까? 여섯 번째 대멸종에 대한 계시는 아닐까? 45억년 지구의 역사에서 100년이라는 극히 짧은 시간 속에서 인간의 지구에 대한 파렴치한 약탈과 착취가 더는 참을 수 없다는 광대무변 우주의 소리는 아닐까? 인간들의 어리석음과 무지를 일깨우기 위해 빛은 혹시 기후위기의 재앙으로 하나밖에 없는 생명들을 거두고 있는 것은 인간들의 욕심과 탐욕을 당장 멈추고 가난한 이웃과 나라 가난한 생명을 돌보라는 절규는 아닐까? 가난의 희생과 고통이 그들의 죄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부자와 부유한 나라의 지구에 대한 패악질에 대한 오만한 죄를 대신 짊어진 골고다의 언덕에 매달린 십자가는 아닐까? 주님의 은총으로 내려주시는 빛을 눈이 있으되 보지 못하고 귀가 있으되 듣지 못하고 속죄양의 울부짖음을 외면하고 오늘도 우리는 생명의 터전 지구를 파헤치며 녹색성장이라 구라를 치고 지속한 가능한 발전이라는 악마의 속삭임에 놀아나며 강을 막아 강의 생명을 죽이고 산을 허물고 바벨탑을 세우겠다고 하고 바다를 메워 비행장을 만들겠다하고 있습니다. 칼을 쳐서 보습으로 평화를 일구어야 할 시대에 전쟁을 부추기는 군사연습놀음을 하며 하늘과 땅과 바다와 산과 들은 지옥의 불구덩이로 처넣고 있습니다. 불의가 판을 쳐 불평등한 세상이 되었어도 재난의 불평등을 겪고도 가난의 탓을 개인의 무능으로 몰아 가난한 이웃을 멸시하고 가난한 나라를 배척하고 오직 의보다는 돈을 쫓고 돈을 따르고 돈에 굴복하고 숭배했습니다. 일찍이 주님은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정의를 구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필요한 줄 알고 마련해 준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이제 단호한 결단을 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가 어둠 속에서 있었음을 깨닫고 빛을 향하여 힘찬 발걸음을 옮길 수 있고 어둠은 스스로 물러나게 될 것입니다. 파괴와 약탈 착취로 생명을 죽이는 삶이 아니라 서로 공존하고 공생하면서 평화롭게 소박하고 가난하게 사는 삶이 정의이며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웃이든 비인간이웃이든 남의 것을 빼앗아 풍요를 탐하는 이제까지의 체제와는 전혀 다른 삶을 상상하고 만들어야 합니다. 924기후정의행동은 그 걸음의 시작입니다. 조직합시다! 연대합시다! 토론합시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를 존중하는 삶인 또 다른 세상은 있습니다. 주님! 부디 저희들의 어둠이 빛으로 깨닫는 은총을 내려주십시오. 이 모든 말씀을 예수님과 기후위기로 고통 받고 있는 모든 가난한 생명들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