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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학년도에 우리 집에 경사가 있었다. 용만이가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에 합격해서 서울대생이 된 것이다. 서울대에 대학원까지 6년간 다녔다. 박사과정도 서울대에서 하겠다던 용만이가, 1997년 우리나라가 부도 사태에 직면하여 IMF의 지원을 받게 되면서, 그 동안 해외에서 활동하던 많은 우수 인력들이 국내로 스카우트 되어 들어왔었는데, 그 인력들이 줄줄이 다시 해외로 빠져 나가는 것을 보고, 박사과정은 유학 가서 하겠다고 하고, 2000년 6월에 미국 남가주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박사과정을 마치고 계속해서 미국의 로렌스 버클리 국립연구소에 연구원으로 취직이 되어 지금까지 미국에서 살고 있다. 2003년 2월에 결혼하여 2003년 10월 1일에 유민이, 2005년 9월 15일에 이안이를 낳아, 네 식구가 샌프란시스코 근처 Walnut Creek에서, 이제는 영주권까지 받고 살고 있다.
1993년에 해지도 드디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생이 되었다. 개성이 강한 해지도 무난히 공부하여 1999학년도에 전남대학교 컴퓨터정보학과에 특차로 합격하여 대학생이 되었다. 3학년까지 마치고 캐나다에 가서 6개월간 어학연수를 하고 돌아와서, 다시 복학하여 졸업 후, 삼성전자에 취업이 되어 수원에서 살게 되었고, 2009년 5월에 결혼하여 2011년 2월에 민채, 2013년 7월에 은채를 낳고 계속 수원에서 건강하게 잘 살고 있다.
1남 1여의 자녀를 양육할 수 있는 복을 받아 그 성장과정이 바람직하게 이루어져 갔음을 지켜보면서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아이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 주었고, 스스로 자신들의 삶을 계획하고 이루어감을 보면서, 자녀의 축복을 주신 하나님께 계속 감사하는 우리 부부의 삶이었다. 용만이와 해지도 모두 1남 1여의 자식을 낳아 양육하고 있기에 참으로 바람직한 가족 구성을 이루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뿐이다.
★1994학년도부터 95학년도까지는 광주 충장중학교에서 근무 했다. 고등학교에서 15년 이상 근무한 교사들을 모두 중학교로 전보시키는 인사 방침에 따라, 17년간 근무한 나도 대상이 되어 중학교로 발령을 받았기 때문이다. 사립 고등학교들은 교사가 젊은데, 공립 고등학교에는 나이 많은 교사가 너무 많은데 따른 인사 방침이었다. 광주가 전라남도와 분리 되지 않았을 때, 광주시로 들어오려면 전남에서 적어도 10년 이상의 경력을 쌓아야 가능했기에, 그에 따른 부작용이 있었다. 1986년 광주시가 직할시가 되어 전남과 분리되면서, 광주시내 학교 교사들의 나이가 많았던 것이다. 독립된 광주시에 신규 교사들의 발령이 시작되면서 시내학교에도 젊은 교사들이 많아졌는데, 대학 입시교육이 치열한 상황에서 고등학교에는 무경험자들을 배치할 수가 없었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일정 기간 중학교에서 경력을 쌓은 젊은 교사들이 생겨나고, 학부모들의 요청과 사립학교와의 경쟁에 고등학교 교사들이 젊어져야 될 시대적 요청이 있었던 것이다. 나이는 많아졌어도 입시지도에 노련한 교사들을 학교는 보내기 싫었고, 교사들도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시대적 분위기에 어쩔 수 없었다. 충장중학교는 집에서 5분 거리에 있었다. 광고에서와 마찬가지로 출퇴근이 편리하고, 중학교에서의 생활은 고등학교에서의 생활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한가하고 여유가 있었다. 많은 선생들이 출퇴근 등에 사용하는 승용차를 가지고 있었는데, 나는 필요가 없어 가지고 있지 않았었다. 그런데 중학교로 가면서 승용차를 구입했다. 출퇴근에는 필요가 없었지만, 시간에 여유가 있었기에 레저용으로 우선 소형차인 프라이드 베타를 구입 했다. 이후, 시간이 있으면 아내와 승용차로 돌아다녔다. 범위가 전국적이었다. 당일치기, 1박 2일, 때에 따라서는 2박 3일을 돌아다녔다. 자동차 운전이 재미있었다. 계속 운전을 하고 다녀도 별로 피곤하지를 않았다. 중학교에 2년간 근무하면서 길들여진 여행은, 다시 1996학년도에 광주여자고등학교로 옮겨간 후에도 계속되었다. 기행문 한 편이 저장되어 있는 것을 옮겨본다.
★ 김동순 집사 부부와 2박 3일 여행 1997년 7월 30일 - 8월 1일
7월 30일 아침 8시가 조금 지나 김동순집사 부부와 함께 여행길에 올랐다. 호남고속도로, 경부고속도로, 중부고속도로를 지나면서 휴게소에서 한 번 쉬었고, 영동고속도로에 접어들어 가남휴게소에서 점심을 먹었다. 영동고속도로 하진부에서 국도로 접어들어 오대산을 향해 갔다.
맨 먼저 오대산의 방아다리 약수터에 들려 톡 쏘는 탄산수 맛이 나는 약수를 맛보았다. 약수터에 도착했을 때 마침 소나기가 내려 김 집사만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서 약수를 떠왔고 다른 사람은 차안에 있었다. 다음에 월정사에 들렸다. 높은 탑 앞에서 사진도 찍고 여기저기 절 구경을 하였는데, 무슨 박물관 공사가 한창이었다. 절 옆에 흐르는 계곡에서 손발도 담구며 깨끗한 물에 접했고, 곧게 뻗은 아름드리 나무숲이 아주 좋았다. 많은 수의 여행객들을 볼 수 있었다. 월정사 구경을 하고 소금강을 향해 갔다. 진고개를 넘어 가는데, 지리산 성삼재 몇 개를 넘어가는 것 같은 높고 험한 고개였다. 진고개 정상 휴게소에서 쉬면서 경찰전적기념탑이 있는 곳에 올라 보기도 했다. 소금강에 도착하니 오후 7시경으로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아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는 곳은 가지 않고, 돌아서서 나오다가 옥수수 장사 아줌마를 만나 옥수수를 사면서 민박을 물어보니, 자기 집이 바로 민박집이라고 해서 방 2개에 3만원 계약을 하고 민박집에 들어갔다. 미닫이로 가운데를 막고 있는 상 하방 같은 방 두 개를 얻어놓고, 다시 차를 타고 나와, 산채비빔밥과 동동주 한 병으로 넷이 저녁식사를 하고 소금강 계곡에 올랐다. 시간이 지나 어두워진 탓인지 입장료 받는 사람이 없어서 계곡을 따라 오르다가 무릉계라고 써진 곳에서 맑고 깨끗한 물에 남자들은 목욕을 하고, 여자들은 손발을 담구고 놀았다. 부드러운 물에 목욕을 하고나니 몸이 개운하고 좋았다. 즐거운 한 때였다. 다시 민박집에 돌아와 여행의 첫날을 마감했다. 민박집에는 우리말고도 승용차가 6대 가 더 있었고 서너 가족들이 더 있었는데 할머니도 끼어 있는 팀, 자녀들이 함께 있는 팀들이 있었고, 어떤 팀은 자녀들을 위해 물가에 텐트를 쳐 놓은 것도 보았다. 건전한 가족여행객들이 모두 밥을 해 먹는 것 같았다. 우리는 해 먹을 준비를 안했기에, 31일 아침을 민박집에 부탁해서 사먹었다. 감자로 경단을 만들어서 끓여준 국이 처음 먹어보는 음식이었고, 주인아줌마가 직접 산에 다니면서 채취했다는 산채나물 등이 있는 아침식사를 하고, 7:30분쯤 민박집을 출발해서 강릉으로 향했다.
주문진을 거쳐 강릉에서 먼저 오죽헌에 들렸는데, 이른 시간이라 문을 열지 않아 겉만 구경하고, 입구에 핀 백일홍 꽃이 아름다워 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경포대해수욕장으로 갔다. 아침 이른 시간이라 바다 쪽에서 해가 강하게 비치기 시작했고, 파도도 제법 있는 바닷가 모래밭을 거닐며 사진만 찍고 모래밭을 걸어본 것으로 만족하고, 해수욕장을 떠났다. 강릉에서 다시 영동고속도로로 대관령을 넘었다. 대관령휴게소에서 영동고속도로 준공기념탑이 있는 곳에 올라가 강릉 시내를 바라보니 자욱한 운무와 나무들이 시야를 가리어 보이는 것이 없어 서운 했다. 맑은 날에 보면 강릉시가지와 동해바다가 보이는 전망이 좋은 곳인데 볼 수가 없었다. 다시 하진부에서 국도로 접어들어 정선을 향해 갔다. 정선에서는 아오라지 유원지에 들어갔는데 입장료가 비싸고, 우리는 그 곳에서 오래 머무를 수 있는 처지도 못되어 그냥 둘러만 보고 돌아섰다. 화암동굴에 가서 동굴 안에 들어가니 시원해서 땀이 전부 식고 추운기가 들었다. 10도씨 내외의 온도를 굴 안에 있는 온도계가 나타내고 있었다. 여름여행에 동굴 구경은 청량제로 아주 좋았다. 굴밖에 나오니 여자들 몇이 우리에게 무슨 서명을 하라고 했다. 건전한 가족 형성을 위한 캠페인을 하고 있는 단체인 것 같아 거기에 서명을 하고, 포도주 한 잔을 부부가 나누어 마시면서 서로 정조를 지키고 건전 가정을 꾸려 갈 것을 맹세하는 형식을 갖추었다. 화암동굴 앞에서 맹세기념으로 즉석 사진을 찍어 주기도 했다. 공짜 사진이 즐거웠고 가벼운 농담도 하게 했다. 다음으로 화암약수터에 들려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황기백숙이라는 닭요리를 시켰더니 1시간 이상 걸려서 많이 지체했고, 역시 탄산수냄새로 톡 쏘는 진한 사이다 맛의 약수를 많이 마셨다. 오후 4시경 약수터를 출발할 수 있었다. 사북을 거쳐 정암에 있는 정암사에 도착하니 오후 5시경이었지만, 상당히 높은 곳에 있는 수마노탑이 있는 곳까지 올라갔다 왔다.
정암사를 출발하여 높은 태백산 고개를 넘어 경북 지역으로 접어들었다. 험한 고개, 구불구불한 산길이 많은 강원도와 경북 북부지역일부, 충북 산간지역을 다니다 보니 나의 운전 실력이 많이 늘었을 것 같기도 했다. 봉화군 지역을 지나면서 경북 영풍군에 있는 부석사를 향해 갔다. 중간에 휴게소에서 쉬면서, 길가에 널려 있는 주먹보다 약간 큰 수박을 보았다. 봉화 복수박이라고 굉장히 많았는데, 수분이 많고 맛도 좋아, 두 집이 한 상자씩 사서 집에까지 가지고 왔다. 휴게소에서 수박을 사면서 길을 물으니 주인인 듯한 남자가 아주 자세히 길을 가르쳐 주었다. 특히 부석사는 걷지 않고 뒷길을 통해 차로 오를 수 있는 길까지 자세히 가르쳐 주었다. 휴게소를 출발하여 오전약수가 있는 물야를 지나 부석면에 도착하니 완전히 어두워져서 코리아나호텔이라는 간판을 보고 들어갔더니 마침 방이 꼭 두 개 있다고 해서 6만원을 주고 방 두 개를 예약하고, 호텔 내에 있는 식당에서 한정식으로 저녁식사를 했다. 제법 시설이 좋은 여관이어서 모처럼 따뜻한 물로 몸을 씻고 TV도 시청하다가 하룻밤을 편안히 쉬었다. 다음날인 8월 1일 아침에 7시경 부석사에 갔더니 이른 시간이라 입장료도 받지 않았고, 휴게소에서 가르쳐 준 길로 자동차로 절까지 갔으며, 조용한 아침시간의 절 구경은 안성맞춤이었다. 넓은 문루 위에서 두꺼운 요를 깔고 앉아 참선을 하고 있는 불자들이, 조용한 모습으로 한쪽 방향을 응시하면서, 앉아 있는 모습들은 경건하게 보였고, 우리의 마음을 숙연하게 하기도 했다. 영안루 무량수전 앞에서 적어가지고 간 김삿갓의 시를 함께 읽기도 했다.
“평생에 여가 없어 이름난 곳 못 왔더니, 백발이 다 된 오늘에야 영안루에 올랐구나, 그림 같은 강산은 동남으로 벌려 있고, 천지는 부평같이 밤낮으로 떠 있구나, 지나간 모든 일이 말 타고 달려오듯, 우주 간에 내 한 몸이 오리마냥 헤엄치네, 인간 백세에 몇 번이나 이런 경관 보겠는가, 세월이 무정 하네 나는 벌써 늙어 있네. ”
부석사에서 김 집사에게 차를 가지고 내려오라 하고 우리는 걸어서 내려오면서 절 앞에 펼쳐 있는 사과밭 사이를 오다가 방금 따 가지고 왔다는 자두와 복숭아, 사과 등을 약간씩 사가지고 먹으면서 내려 왔다. 경북 봉화, 영풍, 영주 근처를 다니는데, 사과밭이 많았고 길가에는 수박과 옥수수, 그리고 꿀 장사들이 많았다. 부석사에서 아침식사를 간단히 하고, 풍기군에 있는 소수서원에 들렸다. 아침 9시 첫 손님으로 입장하여 조용한 서원 경내를 거닐었고 울창한 소나무 숲과 500년 된 은행나무 등을 보았다. 서원을 출발하여 죽령고개(소백산)를 넘어 단양으로 향했고, 맨 먼저 노동동굴에 들렸다. 고수동굴, 천동동굴은 들어가 본 적이 있기에 노동동굴에 갔더니 구불구불 가는 길이 험했고, 차 두 대가 겨우 비끼는 좁은 길로, 승용차를 가진 자들만이 갈 수 있는 곳이었다. 수직 동굴로 산 아래 입구가 있고 산 위에 출구가 있어서 굴속에서 등산을 하는 것이었다. 시원하고 진기한 굴 안의 각가지 모습들, 만들어 놓은 인공 계단을 오르면서, 3000원의 입장료가 비씨지 않다고 했다. 도담산봉에서는 유람선을 타려고 했는데 기다려야할 시간이 너무 많아 포기하고, 옥수수를 11,000원어치 사서 싫건 먹으면서 단양을 떠났다. 충주댐 물과 월악산 줄기를 따라 달리는 드라이브는 너무 기분이 좋았다. 아름다운 월악산이 전망되는 댐 가의 장회나루터 휴게소는 머무르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월악산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점심을 먹었다.
단양에서 괴산을 지나 증평에서 중부고속도로로 진입하려다가 증평에서 국도를 따라 청주로 오면서 중간에 초정약수에 들렸다. 약수온천 지역이었다. 약수를 마시는 곳인 줄 알았는데, 온천지역임을 확인 했고, 온천수가 모두 약수여서 물만 얻어 마시고 왔다. 청주 시내를 통과하면서 길이 막혀 시간이 걸렸고 서청주에서 진입한 중부고속도로는 시원했으나 경부고속도로와 만나면서 지체가 시작되어 회덕 분기점까지 서서히 오다가, 호남고속도로에 진입하면서 시원하게 달렸으나, 중간에 전북지역에 와서 두 차례 앞이 안 보일 정도의 소나기를 만나면서 시간이 지체되기도 했다. 고속도로 갓길에 많은 차들이 운행을 하지 않고 소나기를 피하고 있기도 했다. 밤 8시가 넘어 백양사휴게소에 도착하니, 국수 외에는 파는 것이 없어 할 수 없이 국수로 저녁식사를 했다.
두 번째 날 정선군내를 누비고 다닐 때, 전부가 휴양지로 도로와 함께하는 강가에 즐비한 텐트들, 물속에서 즐기는 사람들, 그리고 휴게시설들, 높은 산과 숲을 보면서 참으로 좋은 고장이라고 생각했었다. 돈 있고, 시간 있고, 차 있으면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곳이 아닌가? 우리나라 참 좋은 나라라는 생각이었다. 이틀간은 내가 운전 했고 마지막 날은 김 집사가 하다가 마지막에 내가 또 하기도 했다. 첫날 505km, 둘째날 248km, 마지막날 458km 운행 했다. 휘발유 값이 약 7만 원정도 들었다. 자동차 사 가지고 최대 장거리 운행을 해 보았고, 잘 써 먹은 여행이었다. 편리하고 좋았다. 3일간 4인이 48만 원정도의 경비를 사용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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