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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제문화관광 해설 발표일 : 조편성: 7조 조구성: 조장, 자료연구, 현장답사, 자료작성 제목: 장승포 어제와 오늘
담당: 평가; 주의점: 10포인트, A42장 | |
장승포 어제와 오늘 | 제1장: 1900년대 이전의 장승포 제2장: 1900~1945 일제강점기의 장승포 제3장: 1950~1960 6.25전쟁과 장승포 제4장: 1970~현재의 장승포 | |
고대국가 | -서기677년신라문무왕17년 거제군을 상군이라 하고 3속현을 두었다. 아주현,남수현(송변현),명징이현(명진현)두었다. 장승포는 아주현의 한마을로 크게 각광을 받지 못했다. 장승포는 신석기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장승포에는 유물과 유적이 거의 전무하다. 장승포 주변에는 옥녀봉,능포동봉수대가 있으며, 능포동지석묘와 마전동지석묘가 한 개씩 있다. 이런 이유는 장승포항은 아름다운 美港이나 태평양 바람을 직접람 접하는 지역이라 사람이 살기에는 어려운 곳이었기 때문이다. | |
일제강점기 | 장승포는 난류와 한류가 만나는 지점으로 세계의 3대 어장 중 하나이다. 이런 환경을 미리 내다본 일본은 1883년7월 조선과 일본 사이에 체결된 조일통상장정으로 어로를 합법화하였다. 이 당시 조선은 통나무어선(퉁구맹이)으로 노와 닻을 이용하여 원시적ㄷ인 어로행위였으나 일본은 발동선과 냉동선을 갖춘 근대적인 어업기술로 거제어민들은 날품팔이 신세가 되었다.
일본 어민들은 황금어장인 거제도 전역으로 확대되었으나 그 중 장승포에는 수많은 일본어민들이 들어와 하나의 촌락을 이루었다. 1914년에는 일본어민이 점점드러나 152호에 641명이나 되어 조선의 어업인구 980가구3,900명의 1/6수준이었다. 그리하여 장승포 1,2구에는 우체국,관공서,잡화상,음식점,목욕탕,식료품고리대금업자 와 심지어는 유곽촌(기생집)이 10개 들어셨다. 200녀대 거제 조선산업이 활성화될 때 어떤이는 ‘ 거제가 가면 똥개도 만원짜리 물고다닌다’는 초크가 있었다. 하루 저녁잘만잡으면 집한채 생기고, 이리던져도 한망태 저리던져도 한망태 그래서 나온말이 거제바다는 ‘물 반 고기 반’이라는 말이 생겼다. ~ 그 대표적인 건물은 1876년12월1일 일본인 오따슈지로, 이리사귀요이시스루가 일본인 어민들을 집단으로 이주시켜 장승포1,2구는 일본인집들이 즐비하였으며, 장승포우편소(이리사촌入佐村 우편소)이 생겨났다. -장승포우편소(1876년12.1 -장승포이리사촌(입좌촌) 1976.12.1. 이리사키요이시스루 일본어민들 입주,일본인 집단 거주 동네 -일본전신사무국:1881.10.11. -장승포방파제: 장승포 1구,5구 방파제완성)1933.9.8.~1939.10.5. -일본이 상업지: 흑목여관, 이라사 상점,음식점,월미옥,유곽촌(기생집) -납골당: 1934는 태풍으로 일본인 100여명이 죽자 이를 매장하기 위해 장승포, 지세포,구조라,칠천도,성포,송진포에 납골당을 설치하였다. 현재도 본국으로 송환하지 못하고 있는 유골들을 본국으로 돌려보내야 하며, 이와함께 대동아전쟁때 일본을 끌려간 청년 학생들의 유골문제도 함께 고려해 봐야 할 것이다.
장승포신사..일본신사97,000개이며 1억700만명 -신도: 모든 사물에 정련이 있다고 믿는 일본전통종교~ -야스쿠니신사: 신도의 사당(줄어서 신사) 기독교→교회, 천주교→성당,불교→절, 일본종교→신사 1869년 국가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신사 〔일본 신사: 일본의 전통 종교 “신도” 〔야스쿠니신사: 제2차세계대전 A급 전범 14인의 위패 모신곳. 처음에는 국가를 지킨 호국영령을 안치하는 곳이였으나 1978년 A급 전범 14인의 위패 모심으로 문제가 됨. 일본여행 중 야스쿠니신사에서 기념촬영하거나 꽃다발을 바치는 행위를 하면 안된다.
TIP: 현재 일본 잔제들이 남아 있는 장승포지역을 복원시켜 관광지화 하는 문제는 앞으로 관계자의 논의가 있어야 할 것이다. | |
한국전쟁과 애광원 | <6.25전쟁과 흥남철수작전> 6.25전쟁이 일어나던 즈음 거제도 인구는 100,000여명, 피난민100,000여명,전쟁포로 170,000여명 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흥남철수작전..김치5 -세브란스병원 거제분원...1951.1.7 -전쟁의 상흔이 남아있는 애광원...1952.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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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약하는 장승포 | -거제군 환군과 장승포 -거제도 뱃길...여객선,카페리 -대우조선입주와 경기활성화 -지심도, 외도 유람선 / 거제도 횟집 1번지 -도시재생 뉴딜사업..도시재생대학 -장승포-능포 벚꽃길/ 능포 조각공원 -역사외 문화가 함께하는 장승포 둘레길 | |
일주코스 | ♣ 일주 코스: 장승포 1구 바닷가-일본신사자리-장승포해안도로-능포양지암조각공원 (장미공원,늘푸른공원,해맞이공원,잔디공원)-일본인납골당-거제문화예술회관-애광원-5구방파제-여객선터미널-지심도 여객선 터미널-신부시장-장승포 2구 풍경(중국집, 냉면집, 우체국, 일본집 들)-장승포 수협과 바닷가 풍경- 장승포 1구 등대 ( 총 10km 2시간) | |
참고자료 | 잊혀지지 않는 장승포 산사태
장승포유람선 터미널을 지나 거제문화예술회간을 지나 옛날 길인 승용차도로를 걷노라니 옛 거제중고등학교 건물이며 뒤에 장승포시청 자리에 발길을 멈쳤다. 이곳에는 대우조선에서 부지를 매입하여 지금은 장승포주변의 예술단체동아리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그 한곳에 아름다운디카세상에 머물고 있는 서성원작가를 찾았다. 우리나라 쾌적사진의 대가이며 사진의 진짜고수이다. 별다른 직업이 없어 사진에만 전념하기 때문에 생활에 어려움이 많다. 그나마 이곳도 내년에 대우조선에서 새로운 건물을 짓는다고 하니 둥지 잃은 갈매기 신세다. 거제도에서 자리를 잡으려고 안갖힘을 셨으나 결론에 도달하지 못하고 거제를 떠나 다른 곳으로 간다고 하니 가슴이 아프다. 현재 거제에서 예술활동을 하는 사람 중 전국적인 인물이며 우리나라의 보배이다. 자금만 따라주면 미국에서 전시를 하려고 계획도 했으나 모든 것은 하늘에 맡겨 놓고 때를 기다리는 모양이다. 거제예술단체나 거제시에서 관심을 가지고 이 문제를 해결해야하나 앞이 캄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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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촌 횟집과 아름다운 장승포 항구
한일합방은 1910년이나 일본은 그보다 50년 전 남해안 일대는 서서히 일본의 침략 야욕에 휘말리고 있었다. 1876년 12월1일 일본 후꾸오까현에 사는 이리사 키요이시스가 거제도로 오면서 장승포항을 둘러보고는 “ 장승포만은 수심이 깊고 일반선박이 드나들기에 좋다. 하지만 태풍이나 강한 바람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 라고 생각하여 장승포 1구(구촌)와 5구(마전동)쪽에 연장 220m의 방파제를 축조했다. 그러나 자즌 태풍으로 방파제가 훼손되어 1933년 방파제공사를 착공하여 1939년10월5일 준공식을 개최하였다.
사라호 태풍과 매미태풍으로 큰 피해가 있었으나 지금은 보완을 하여 거의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다. 이곳은 外海와 접하기 때문에 물이 항상 깨끗하여 철마다 낚시가 잘된다.
두개의 방파제가 마주보고 있으며 바다를 향해 오른쪽이 5구방파제, 왼쪽이 1구방파제 입니다. 철따라 벵에돔.감성돔.숭어.노래미.볼락.우럭등이 잘 잡히며 내.외항 평균수심은 5~7m, 조류는 완만한 편입니다. 6월말 장마가 시작되기 직전부터는 숭어가 청개비, 크릴을 물고 늘어져 엄청난 손맛에 많은 사람들이 방파제를 빽빽히 들어차게 되며, 7월~10월 중순까지 벵에돔의 입질과 함께 9월말부터 감성돔 낚시가 시작되지요. 차량을 이용한 진입이 쉽고 장승포항 의 야경이 일품이라서 겨울을 제외하고는 야간 가족나들이 낚시터로서 아주 제격인 곳입니다.
5구 방파제와 1구 방파제 주변에는 싱싱한 횟집이 즐비하다. 특히 1구(구촌) 방파제 주변에는 많은 횟집과 식당들이 많다. 전복전문집, 해녀집, 장어집, 항만식당 등이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하여도 부산-거제 쾌속정이 다녀 아름다움을 더했으나 거가대교 개통으로 이제는 불꺼진 항구다. 그러나 아직도 외도. 해금강 유람선과 지심도가는 도선이 있으며, 멸치 잡는 철이 되면 항구는 만원이다. 특히 장승포 야경은 끝내준다. 오메가 형태로 생긴 항구에는 거제문화예술회관이 중앙에 위치하며, 양쪽 등대와 항구의 등불은 한 장의 사진으로 표현하기가 아쉽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