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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점 견내량 |
km |
거제대교 건너 견내량마을 -견내량 안내 비석: 견내량 소개 -영생약방: 흥남에서 피난 온 최약사의 집 |
오량초등학교 |
300m |
신거제대교 아래에 있으며 1946년 개교하였다. |
수산물유통센터 |
400m |
신거제대교 바로 밑에 있으며, 거제도에서 생산되는 수산물과 특산물 판매하는 곳이다. |
오량마을 |
1,200m |
신거제대교에서 300m 쯤에서 보면 동부둔덕안내판이 보인다. 그곳에서 우회전하면 오량마을이다. 직진하면 거제관광안내소와 오량성과 마주친다. |
오량성(오량역) |
1,600m |
오량마을 입구에 느티나무가 3그루 있고, 그 주변이 오량성이다. 성벽을 새로 만들었으며 마을전체가 성안에 있다. |
갈림길 |
1,700m |
오량마을회관을 지나면 갈림길이 나온다. 직진하면 신광사(구 백담사)가 나온다. 직진하지 말고 ‘향토방’이란 표시판을 보고 좌회전하여 따라가면 된다. 계속 ‘향토방’이란 표시판이 길을 안내한다. |
오량저수지 |
2,600m |
향토방표시판을 따라 가노라면 저수지가 나온다. |
오량황토찜질방 |
3,700m |
저수지를 따라 조금 가노라면 산속의 궁전이 있다. 2만평의 농장에 유자를 심고, 향토찜질방을 하며 숙박시설도 갖추어져 있다. |
갈림길 |
4,300m |
직진하면 의종이 거주했던 폐왕성 길이고 좌회전하면 둔덕면 상서로 가는 길이다. 상서가는 길로 간다. |
갈림길 |
6,400m |
3갈래길이 나온다. 오른쪽으로 간다. |
상서마을 |
7,500m |
상서마을 포장도로와 만난다. 마을 골목길을 따라 직진한다. |
유지마을회관 |
8,400m |
둔덕 큰길인 청마로와 만난다. 도로변에는 중앙에 느티나무가 있고, 그 옆에는 회관이 있다. →좌회전 |
유지삼거리 |
8,700m |
좌회전하면 사곡삼거리 가는 길이다. 옥동마을 향하여 직진한다. →직진 |
옥동마을 |
9,800m |
유지-덕리-옥동마을이다. 이곳이 버스종점이다. →포장도로를 따라 직진. 봉은사와 정인사 절이 있다. |
옥동농장 |
10.6km |
우측으로 가면 옥산농장이다. →계속 직진 |
옥산재 |
11.3km |
우측으로 가면 산방산 가는 임도이다. →계속 직진 |
옥산 농장 |
13.0km |
옥산재부터 옥산농장까지는 비포장도로로 길이 험난하다. 승용차는 겨우 다닌다. →계속 직진 |
옥산버스정류장 |
14,0km |
계속 직진하면 거제로 가는 큰길과 만난다. |
화원교 |
14,9km |
도로변에 거제농산물수출영농조합이 있다. 왼쪽으로 계룡산이 보이고 그 아래 화원과 귀목정 마을이 보인다. |
사거리 |
15,0km |
사거리에서 거제면사무소로 좌회전한다. |
거제현 관아 |
16,0km |
거제면사무소 주변이 거제현관아들이 있는 곳이다. 거제기성관, 거제동헌(면사무소),거제질청, 거제향교, 반곡서원 |
조선시대에 주로 유배를 많이 보냈는데 그 이유는 당파싸움과 왕권보존이라는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일반 잡범은 거제가지 오지를 않았다. 일반적으로 유배 오는 이를 죄인(罪人)으로 취급하는데 대부분 그러하지를 아니했다. 자기의 주장이나 사상을 굽히지 않거나 바르고 정직하게 살아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유배기간은 고작 1~2년 정도였다. 죄의 경중(輕重)에 따라 형벌도 다른데, 중벌(重罰)은 위리안치(圍籬安置)라 하여 집밖에 탱자나무나 가시가 많은 나무를 심어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했으나 대부분 유배객들은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었다.
거제 유배생활 중 이행(李荇)은 가장 많은 시(詩)를 남겼는데 그는 18세에 과거에 급제하여 27세 때까지 문안한 관직생활을 하다 연산군 폐비 윤씨의 존호에 연루되어 29세 때 거제도 고절령(고자산치)아래에 위리안치 되어 관노의 신분으로 양치는 일을 하고 살면서 120여수의 시를 남겼다.
거제도 유배길은 삼남대로와 통영별로 코스를 따라 왔다. 즉 남대문-수원-천안-공주-논산-삼례역(완주군 삼례)-전주-남원-함양-산청-진주-고성-통역-거제 오량역 ( 약1,000리)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는 대부분 삼남대로로-통영별로로 거쳐 견내량을 건너 오량역으로 오게 되었다. 소요기간은 10일 전후이다. 1689년 김진규는 여러 말을 갈아타고 왔기에 약 10일 걸렸고, 1881년에 유배 온 이유원은 말 한 마리로 왔기에 20여일 걸렸다.
치소가 어디 있느냐에 따라 유배길도 달리 하는데 오늘은 오량역에서 옥산재를 넘어 거제읍내로 가는 길로 답사해 보기로 한다.
~의종이 울고 오던 견내량을 지나 오량성을 돌아가며~
견내량마을에서 거제대교를 보고 있노라니 고려의종(1170)에 울고 오는 것 같다. 통영과는 560m로 코앞에 있지마는 이곳은 물결이 세기 때문에 옛날 나룻배가 건너기에는 쉬운 곳은 아니다. 견내량은 고려 제18대 의종왕 24년 상장군 정중부의 숭문주의에 반란을 일으켜 거제도 유배될 때 건너온 다리라 하여 전하도(殿下島)라고도 하며, 사공이 노를 젓는 나루터였다.
견내량 비석 맞은편에는 영생약국이란 간판이 보인다. 6.25가 나자 흥남에서 피난 와서 약방을 경영하면서 거제에서 어린이 병을 잘 고친다는 소문이 나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현재도 약방을 하고 있다. 일명 견내량 최약사라 하며 지금도 약방을 경영한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에 ~~~. 6.25 피난시절의 얘기를 듣고 싶으면 최약사에게 물어보시길!
여기에서 신거제대교로 직진하지 말고 바로 다리 밑에 보면 큰 건물이 하나 보인다. 이곳이 얼마 전 문을 연 수산물유통센터이다. 거제에서 생산되는 활어, 건어물 그리고 특산물을 판매하는 곳이다. 다리 밑을 가거나 다리 위를 가다 보면 오량마을이 나온다. 다리에서 불과 300m 거리이다. 거제관광안내소 가기 전에 오량마을이라는 안내판이 보인다. 그곳으로 우회전하면 마을 어귀에 느티나무 세 그루가 있고 주변에는 성곽이 보인다. 이어서 오량마을회관이 보이는데, 이곳에 가면 안내 비석에 오량마을의 역사가 새겨져 있다.
관련기록에 의하면 고려시대 이곳에 역(驛)을 처음으로 설치하였다가 고려말 폐지되고 고성 송도역에 합해졌다. 그 뒤 조선 세종7년(1425)8월에 복원되고 조선 연산6년(1500)에 역에 보(保)를 설치하면서 석축성(石築城)으로 축조하였다고 한다. 둘레는 1,150m 로 거의 원형대로 보존이 되고 있다. 주민들은 문화제보호지역으로 건물의 재.보수가 힘들어 불평이 많다. 이곳에 역(驛)으로 선정된 이유는 조선전기까지만 하여도 견내량 해안선이 오량성 근처까지 연결되어 거제도의 육지를 연결하는 최상의 입지적 조건이라 생각된다.
한양을 출발하여 20여일 걸려 이곳에 도착하여 오량역에서 날이 저물어 가지 못하고 하룻밤을 지세며 말고 쉬고 사람도 쉬어 갔을 것이다. 오량역은 한양에서 오가는 사람들의 거제도 첫 기착지일 것이다. 성벽을 막 벗어나면 작은 팻말이 보인다. 직진하면 신광사라는 절이 있고, 왼쪽 ‘향토방’이라는 간판을 따라 농노 길을 가면 유배길이다. 저 멀리 바라다 보이는 백암산 아래 신광사 토굴속에는 신라 때의 불상 ‘연화좌상불’이 있다. 시간이 되면 그곳을 한번 방문해 보는 것도 좋을 상 싶다. 거제에서 가장 웅장하고 화려한 절이다.
~산굽이 돌고 돌아 둔덕면 상서 마을로~
이제부터는 ‘황토방’이라는 팻말을 따라 직진하면 된다. 길은 포장도로와 비포장도로가 혼합되어 있으나 도보나 자동차로 가기엔 별 불편함이 없다. 견내량에서 2,660m 거리쯤엔 오량저수지가 나온다. 저수지 입구에는 ‘황진석선생추모비’가 있다. 해방 전후로 하여 우리나라 농토는 땔감부족으로 산야가 온통 붉은빛으로 물들어 천수답(天水畓)이 대부분이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황진석씨가 사비를 들여 이 저수지를 축조하고 그 완공을 보지 못하고 돌아갔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옛날 부자들은 돈을 벌면 무조건 자기 재산으로만 생각하지 않고, 이웃을 위하여 다리도 놋고 학교부지도 희사한 사례가 많다. 그런데 요즘 부자들은 재산을 모아 자식에게 물러주는 일에만 신경을 쓰는 것 같다. 우두봉과 백운산에서 내려온 물로 가득찬 이곳에는 적막감만 돈다.
출발하여 3,700m 거리에 오량황토찜질방에 도달했다. 이런 산골에 왠 찜질방이 있는가 싶어 안으로 들어갔다. 주인은 유자밭에서 유자를 따고 있었는데 그 규모가 상당히 크다. 거제에서 이런 깊은 산중에 이런 시설이 있다는 것은 특이하다. 주인과 대화를 하다 보니 지금부터 30여 년 전 폐암에 걸려 시골에서 마지막 생을 보내려고 이곳에 왔다고 한다. 인간의 생명은 하늘에 달려 있는 것이라 생각하고 눈만 뜨면 밭을 일구고 지렁이도 잡아먹고 굼벵이도 다려 먹고 하여 2년 만에 완치하였다고 한다. 무서운 질병도 자연에게는 이기지 못하는 것일까? 현대의술도 고치지 못하는 것을 자연치유법으로 고칠 수 있다니???
길가에는 좀처럼 보기 힘든 용담, 오이풀, 자주쓴풀들이 보이고 찜질방 주변에는 가을 들국화를 심어 가을 냄새가 물씬 풍긴다. 앞산 감나무골에는 빨간 단풍이 들어 가을을 더욱 영글게한다. 점심을 얻어 먹고 나니 너무 멋쩍어서 노래를 한곡 했다. 섬은 섬을 돌아 영영칠백리~~~~, 그런데 반응이 없다. 하도 이상하여 아줌씨들에게 물어 보니 모두 통영인들이라고 한다. 거제분들은 조선소에 다니는 자제분들이 많아 생활이 고달프지 않아 이곳에서 일하기를 싫어한다고 했다. 역시 거제는 잘사는 지역인가?
이제 사람 하나 없는 깊은 산골을 간다. 길가에는 억새와 잡목들 그리고 산새들만 조잘거린다. 조금가노라니 세 갈래 길이다. 이리가면 고향이요/ 저리가면 타향인데/이정표 없는 거리/ 헤매 도는 삼거리길~~~. 김상진 ‘이정표 없는 거리’ 가사 말이 생각난다. 콧노래를 부르며 좌측으로 행한다. 물론 오른쪽으로 가도 되지만 오른쪽은 폐왕성가는 길이다. 물론 여기에서 상서길을 가지 말고 폐왕성가는 길로 가도 될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유배길 답사이니까 될 수 있는 되로 제 길을 찾아가보자. 임도로 차나 사람이 갈만한 곳이나 오늘이 두 번째, 한사람도 만나지 못했다.
5,5km에 지점이 고갯마루이다. 구름도 자고 가는/ 바람도 쉬어가는/ 추풍령 굽이마다 한많은 사연~~~. 남상규의 추풍령 노래를 흥엉거리며 목을 추긴다. 지금은 임도가 나서 별로 멀지 않고, 좀 쉬운 길이나 옛날에 길도 좁고 돌멩이가 많아 시골길 가기는 매우 힘들었다. 한양에서 고대강실 높은 집에 권세를 누리면 단란하게 가족과 지내던 생각을 하면, 유배길은 한없이 고달프고 生이 후회스러울 것이다. 한양을 떠난지 15일, 가족이 그립고 친구가 그립고, 고향이 그리울 때다.
다시 발길을 재촉한다. 고부랑고부랑 깊은 산길에는 적막강산이다. 산새도 울지 않고 고라니도 산돼지도 보이질 않는다. 한동안 가노라니 삼거리길이다. 6,4km 삼거리 길에는 이정표도 없다. 또 김상진 노래가 떠오른다. 여기서 오른쪽길을 따라 내려간다. 7,6km 지점, 더디어 상서마을 포장도로에 도착했다. 길가는 할아버지에게 물어보니 이 길이 옛길이 맞다고 한다. 함덕길을 따라 가노라니 더디어 ‘청마로’ 길가 마주치는 유지마을 회관 앞이다. 길 중앙에는 느티나무 한그루가 버티고 있다. 왼쪽 옥동을 향하여 발길을 옮긴다. 8,7km 지점에 또 삼거리길이다. 오른쪽으로 가면 사등삼거리, 고현가는 길로 언양로라 한다. 덕리를 지나 더디어 둔덕면의 동쪽 끝 옥동마을에 도착했다. 이곳은 버스 마지막 종점으로 산방산가는 또 다른 곳이다. 윗마을 옥동마을 입구에는 마을수호신을 모시는 큰 포구나무(팽나무) 가 버티고 있고 산방산 오르는 입구에는 봉은사와 정인사가 있다.
나는 이곳을 자주 찾는다. 그 이유는 산방산을 가기 위해서요. 다른 하나는 봉은사 절을 찾기 위해서요. 또 다른 이유는 둔덕천의 발원지이기 때문이다. 이 느티나무 옆집에는 친분이 있는 환경연합 운동을 했던 윤미숙씨가 살기 때문이다. 많은 거제인은 질타하지만 나는 좀 다른 생각이 든다. 자연을 살리고 인간을 살리는 문제만은 같이 공유하지 않는가? 하는 방법에서는 약간 다를지 모르지마는???
~ 옥동마을을 지나 옥산재를 넘어 거제현으로~
옥산마을은 위골, 골옥산, 양지몰 등로 불렸고, 옥산고개 옆에 옥녀봉이란 산이 있어 그 모습이 옥녀(玉女)의 몸과 닮았다하여 옥동(玉洞)이라고 불렸으며, 옛날 의종왕이 쫏겨왔을 때 죄인의 감옥이 있어 옥토라 전해지지만 알 길이 없다. 의종왕과 둔덕, 역사적인 고장을 지나 옥산재를 향한다. 계속 직진하면 11.3km 지점에 팻말이 보인다. 오른쪽으로 가면 산방산 임도가는 길이다. 산방산가는 코스는 여러 곳이 있으나 이곳으로 하여 차를 타고 계속 가다가 길이 막히면 걸아가면 20여분 만에 정상에 오른다. 이곳 옥산 고갯마루까지 포장도로이며 그 이후부터는 험한 산길이다.
이곳 마지막 고갯마루에서 유배자들은 또 한숨을 내쉬었을 것이다. 고향찾는 백성들은 고향마을이 보이는 고갯마루에 올라서면 자기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머금으며 가슴 한 가운데 흥분의 기운이 쏫아 난다. 그러나 이들은 어떠한 생각이 들까? 지금 같으면 형무소를 가는 기분일 것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 머나먼 유배길 (10~30일)을 오느라 심신이 지쳐 ‘에라 모르겠다. 빨리 가서 잠이나 자자’ 라고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견내량을 출발한지 11.5km 한 두 세시간 지났을까. 이제 목적지가 가까워 온다. 여기서 옥산까지는 비포장도로로 자가용이 가기에도 불편한 곳이다. 13.0km 지점에 가면 옥산농장이 나온다. 닭을 방사하는 곳이다. 옥산리(玉山里)는 옥산, 동림, 화원, 귀목정 4개의 행정리로 되어 있다. 옥산은 옛날 옥산 서북을 막아주는 백암산의 바윗돌에서 구슬이 났다하여 이름지어졌다. 이 마을 중에 특이한 이름이 하나 있다. 즉 귀목정이다. 얼핏 들으면 귀머거리란 단어가 떠오른다. 귀목정(貴木亭)라는 마을 이름은 느티나무 옆에 정자가 있음을 말함이다. 그런데 느티나무라고 하는 귀목은, 貴木이 아니고 櫷木이다. 무언가 잘못된 표기가 아닌가?
어느 듯 거제현이 있던 곳에 다 달았다. 거제현(거제면사무소)으로 들어오는 입구 15.0km 지점에서 좌회전하여 직진하면 거제면사무소가 나온다. 여기는 옛날 거제현이 있던 자리로 지금도 거제현관아 건물들이 그대로 있다. 거제기성관, 거제동헌(면사무소),거제질정 등이다.
거제동헌이란 거제현의 관아건물로 사용하였는데 동헌(東軒)이란 외아(外衙)와 수령의 가족들이 거주하는 내아(內衙)로 나누는데 공무집행을 하는 외아가 외아의 동족에 있으므로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리고 그 옆에는 거제기성관이 있다. 거제기성관은 진주촉석루, 통영세병관, 밀양영남루와 함께 영남 사대 누각 중의 하나이나 거제민들은 별로 중요 시 여기지 않는다. 여기에 가면 거제현령과 암행어사 그리고 여러 비석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거제기성관은 1489년 거제7진의 통활영으로 고현에 있었으나 임란 시 소실되고 1663년 이곳으로 옮겼다. 삼도수군통제영이 생기므로 이곳 거제기성관은 객사로 사용되었다.
그 바로 옆에는 거제질청이 있고, 조금 떨어져 거제향교와 반곡서원이 몰려있어 역사 공부의 장이 되고 있다. 잘은 몰라도 이곳에 도착한 유배자들은 동헌에 가서 신고를 하고 동헌에서 배치하는 곳에 가서 생활하였다고 보여 진다.
< 참고 : 고영화의 유배길 >
왼쪽 길은 둔덕에 현이 있었을 때이고, 우측은 고현에 현이 있었을 때이고, 중앙이 거제에
현이 있었을 때인 것 같다.
견내량은 의종왕이 건넜다하여 전하도라고도 한다.
울며헤진 흥남부두, 6.25의 산증인 최약사가 운영하는 곳
2010년 11월 개장한 거제수산물 유통센타, 신거제대교 바로 아래에 있다.
통영에서 거제대교 막 넘어오면 바로 이런 안내판이 보인다. 직진하지 말고 동부.둔덕쪽으로 우회전
오량마을 전경, 가운데 느티나무가 보이고 정면으로 성곽이 보이며, 왼쪽으로는 거제관광안내소가 있다.
느티나무가 있는 곳에서 300m거리에 갈림길이 나온다. 직진하면 신광사 좌측 농로로 간다.
이곳에서 부터는 향토방이라는 안내판을 따라가면 된다.
마을회관에는 오량마을에 대한 간단한 역사가 적혀 있다.
오량성(오량역) 조감도
오량저수지 입구에는 비석이 있다.
황진석씨가 만든 오량저수지
깊은 산속에 자리잡은 오량황토찜질방 , 앞에 있는 식물이 빠나나와 닮은 파초라는 식물이다.
찜질방에서 400~500m 가다 보면 삼거리길이 나온다. 좌회전
산 길을 1km 가면 또 삼거리 길이 나온다. 우회전
유지마을 큰길과 만났다.
또 삼거리 길, 거제 옥동으로 직진 (왼쪽으로 가면 사등, 고현)
옥동마을지나 산고갯마을 부근에 있는 안내판, 오른쪽으로 가면 산방산 정상. 직진
험한 옥산재를 넘으면 옥산마을 약2km (비포장도로)
거제면에 들어 서면 안내판이 보인다.
거제면 바로 옆에 있는 거제 기성관
주변의 식물들, 일명 들국화라고 하는 감국
오량황토찜질방의 유자들
겨울을 알리는 애기동백
거제 사람들이 망개라고 하는 청미래덩굴
거제에서 가끔 볼 수 있는 용담.
첫댓글 와~ 선생님!! 유배길따라 언제 다 답사하셨는지요^^ 전국 어디에도 없는 유배길, 홍보 많이 해서 알려졌으면 좋겠습니다.^^
유배길 답사등 거제 문화유산을 널리 홍보하시면...
많은 분들이 그길따라 걸어갈것입니다,
"거제 역사의 박물관 옥건수 선생님" 시에서 뭔가를 지원해 주셔야 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