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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불나비’,‘쾌지나 칭칭나네’는 올드 팬들이 기억하는 그의 히트곡들. 대박이 터졌던 데뷔곡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에 대해 작곡가 김인배 씨는 “당시 공연윤리 심의에서 ‘김 씨가 루이 암스트롱을 모창 했다’는 이유로 방송금지 당했다”고 증언했다. 고 김상국 씨는 가수활동 시작부터 이처럼 곡절을 겪었다.
부산을 대표하는 연예인 중 한 명으로 통했던 그의 대표곡은 1965년 발표한 영화주제가 ‘불나비’. 지금도 음악애호가들이 대중가요의 명곡으로 손꼽는 애절한 노래다. 지난 추석 때 개봉한 영화 ‘타짜’를 통해 40년 만에 엔딩 곡으로 부활해 사망소식과 더불어 더욱 화제다. ‘타짜’는 흥행몰이가 힘든 18세 이상 등급 영화로는 800만 명을 돌파한 ‘친구’에 이어 현재5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해 2위에 오르는 고속질주를 하고 있다.
화제의 중심엔 여자주인공 김혜수의 농익은 대담한 연기와 더불어 한대수가 리메이크한, 중장년층 관객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불나비’가 한몫을 단단히 하고 있다는 평이다. 이처럼 잊어진 그의 노래가 막 재조명을 받는 시점에 김 씨는 황망하게도 세상을 떠났다.
한대수는 김 씨와 특별한 인연을 가지고 있다. 두 사람은 경남고 동문으로 한 씨는 12년 후배다. 당시 경남고는 경기고와 라이벌관계를 이뤘던 부산의 명문고. 한대수는 “동문들은 거의 정치인이나 사업가들이 대부분인데 김 선배가 경남고 역사상 ‘딴따라’는 너와 나 딱 두 사람이라고 말해 한참 웃었다”고 기억했다. 고 김상국 씨의 장남 태훈 씨는 “아버지는 생전에 ‘딴따라’라는 말을 굉장히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항상 끝까지 노래를 부르고 싶어했다”고 전했다.
한대수는 1968년 귀국했을 때 이백천의 주선으로 김동건 아나운서가 사회를 본 TBC TV의 코디미 노래프로 ‘명랑백화점’에 출연하면서 김상국 씨와 처음 만났다. “솔직히 저는 외국에 오랫동안 살았기에 ‘불나비’ 노래는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그런데 들어보니 비극적인 사랑노래라는 느낌이 팍 들어오더군요.
당시 선배님은 루이 암스트롱의 노래를 허스키하게 참 양호하게 불렀습니다. 당시 최고 인기가수였던 남진, 나훈아와는 전혀 색다른 혁명적인 목소리였죠. 그 특이한 칼라에서 시대를 앞서가는 자유정신이 느껴져 존경했다”며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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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국민가수급 원로가수들이 세상을 속속 떠나고 있는 요즘 ‘가수장’이란 이름이 실종된 것 같다. 과거엔 남인수, 차중락, 배호 등 거물 가수들이 숨졌을 때 국민들도 함께 슬퍼했는데 언제부턴가 전설이 되어버렸다. 대중가요의 불황 탓일까. 대중가요사에 기록될 큰 족적을 남긴 고 김상국 씨의 장례에 가수들조차 발길이 뜸한 것을 보니 원로를 대접하지 않는 가요계의 슬픈 현실이 착잡하게 느껴진다. 가수 최백호는 “시대를 앞서간 음악세계를 선보인 분인데 능력만큼 음악적 평가를 못 받았다. 가수들의 조문행렬도 미미해 이렇게 마음이 허전하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