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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아동문학회 논문집
개도국 교육 후원 사업의 새 모델
- 장기간, 그리고 여러 사람의 관심과 격려를 -
眞月 김 일 환
Ⅰ. 들어가는 말
개도국 후원 사업이 날로 증가하고 있다. 불교계에서도 해외 교육 후원 사업에 많이 동참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통계에 잡히지 않고 있어서 숫자로 나타내지 못함이 유감이다.
최근에 음성 미타사(주지 : 희원 스님)는 미얀마 양곤 남동쪽 딴린시에 있는 띨라와 미타사 사원학교를 대상으로 교육 후원 사업을 했다.
띨라와 미타사 사원학교(교장 : 더 에뚜와디 스님)는 2005년 4월, 1960년대 우리나라 판자촌 같은 집이 군데군데 널려있는 벌판에 문을 연 학교다. 200평 대지에 법당도 교실도 모두 초가집으로 지었으며 당시에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다. 비구 스님에 비해 현저히 지위가 낮은 비구니 스님의 절에는 시주가 들어오지 않았다. 5명 정도의 고아들과 먹고 사는 일이 하루하루 곤욕이었다.
동네 모습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으나 학교 모습은 예전과 확연히 달라졌다. 음성 미타사의 후원 아래, 2017년에는 학교 부지 100평을 구입한 후, 2층 교실 건물 8칸을 건축하고, 2018년에는 이 건물 3층에 기숙사를 증축하였다. 또 본 필자를 자원봉사자로 1년 남짓 파견, 건축 공사를 감독하는 한편, 학생들에게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가르치게 하면서 미타사와 띨라와 사원학교간 교량적 역할을 맡겼다.
학교가 현대식 건물로 바뀌자, 이제는 약 190명 정도의 학생을 수용하는 중규모 정도의 학교로 탈바꿈하였다. 그 중 60명은 절에서 기숙하는 학생 스님이다. 2년 전에 비하면 초고속 성장이다. 띨라와 미타사 사원학교는 중흥을 맞이한 게 확실하다.
건물은 완공됐으나, 교육 후원 사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금년 봄에는 장학생 3명을 선발, 미타사로 50일간 초청, 한국 불교와 한국어를 가르쳐서 귀국시켰다.
필자는 이글에서 필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해외 교육 후원의 새로운 방식을 소개하려 한다. 사실, 미타사가 후원 사업을 시작할 때에는 참고할만한 자료가 없어서 곤혹을 치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본고가 앞으로 개도국을 대상으로 후원 활동을 할 기관이나 개인에게 작으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
Ⅱ. 후원 사업의 준비 과정
후원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몇 가지 필요한 조건이 구비되어야 한다. 쉬워 보이나 많은 시간이 필요한 노력들이다. 이 외에 후원금을 마련할 방법을 마련하거나 후원금을 확보하는 일이 필요한데, 아마도 이것이 가장 힘든 일이 아닌가 한다. 여건이 된다면, 현지에 파견할 자원봉사자도 구해 놓으면 더욱 좋을 것이다.
1. 후원에 대한 확고한 신념
“주지스님, 미얀마 정부는 로힝야족을 무차별 죽이고 있어요. 부처님을 모시는 불교 국가가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그런 나라에게 후원하면 안 됩니다.”
“우리 나라 안에도 도와주어야 할 사람이 많아요. 우리 절 주변에 다문화 학생도 제법 많습니다. 우선 이들을 도와야 합니다.”
무슨 일이건 새 사업은 위험하기도 하고, 반대도 많다.
미타사의 경우에는 초대 주지 명안 큰스님의 유훈이 있어 해외 후원 사업이 좀더 순조롭게 시작할 수 있었다. 명안 큰스님은 입적하시기 5년 전, 미얀마를 둘러보신 적이 있는데 벽도 없는 초가 지붕 아래, 책걸상도 없는 교실에서도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을 보시면서,
“미얀마는 부처님 나라가 아니에요? 부처님 나라 학생들이 공부를 좀더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건물 한 채라도 지어줍시다.”
라고 간절히 기원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현 주지 희원 스님은 스승의 유지를 받드는 한편, 이에 대한 본인의 의지도 뚜렷하여 반대자들도 설득할 수 있었다.
“해방 이후, 가난한 우리나라를 많은 나라가 도와주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이제 가난한 나라를 도울 때가 됐어요. 더구나 명안 큰스님이 시작하신 일입니다.”
후원 사업에 대한 첫 걸음은 신념이다. 물질적 후원금이 준비되어 있다하더라고 사업 초기에, 혹은 도중에 반대에 부딪히면 사업을 포기하거나 사업의 목표와 다른 방향으로 변질될 수 있기 때문이다.
2. 목표 설정
목표가 뚜렷하지 않으면 배는 바다 한가운데를 맴돌 수 있다. 목표에는 사업 성격, 사업 내용, 사업 기간, 그리고 사업 경비 등이 포함되어야 한다.
미타사는 처음부터 교육 사업에 국한했다. 그리고 장기간 후원을 희망했다. 우리는 일회성 반짝 후원보다는 장기간 보살핌이 필요하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아무 것도 없는 사람에게 멋진 아파트를 준다한들 관리비조차 감당하기 힘들어서 살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대상학교가 5년 이내에 자립하도록 학교 경영 컨설팅도 해 주기로 했다.
이를 위하여 하드 웨어면에서는 학교 교실을 지어주고, 소프트웨어면에서 교육의 질을 제고하기 위한 프로그램으로 교사 연수, 교사 월급 보조, 학생 단기 초청, 그리고 한국 문화와 한국어 교육을 하기로 했다.
사업 경비는 초기 예산을 초과하기 십상이다. 특히 후원 내용을 피후원자와 협의하게 되면 사업 경비는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다. 피후원자는 좀더 많은 것, 좀더 좋은 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면 피후원자는 만족스런 후원을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나, 후원자의 경우는 경제난을 겪을 수 있다.
사업 경비를 추가 지출하기 힘든 경우라면 사업 파트너에게 더 이상의 지출은 불가하다고 못 박아 놓을 수 있다. 예산 한도 내에서 교실을 지어달라고 하든지, 예산 한도 내에서 우물 사업을 해 달라고 요구하는 방식이다. 이런 형태의 후원 사업도 널리 시행되고 있는데, 피후원자의 만족도는 떨어지는 편이다. 사업 파트너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설명하기로 한다.
3. 후원 사업 파트너 선정
경험이 없는 개인이나 기관이 해외 후원 사업을 독자적으로 펼치는 것은 불가능하다. 웬만한 학식과 의사 소통력, 그리고 성실성을 갖춘 현지인을 한 명이라도 알고 있다면 문제는 쉬워진다. 그러나 그런 현지인을 미리 섭외 내지 채용한 뒤, 사업을 시작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해외 후원 사업을 도와줄 한국 파트너가 필요하다.
불교 관련 대표적인 파트너 NGO로는 지구촌 공생회와 더프라미스가 있다. 이 두 NGO는 해외 사업 경험이 모두 풍부한 편이다. 미타사의 경우에는 더프라미스와 우연히 인연이 닿아 파트너로 선정했다.
독자적 사업이건, 파트너 이용 사업이건 후원액의 100%가 피후원자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인건비, 부대경비, 운영비 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파트너마다 다르나, 파트너를 사용할 경우, 후원총액의 약 15% 정도의 수수료를 내야 한다. 사업 규모와 여건에 따라 독자적으로 할 것인지, 현지인을 이용할 것인지, 또는 국내 NGO를 이용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Ⅲ. 후원 사업의 실제
준비 과정이 끝났다면 후원을 시작해야 한다. 이번 장에서는 미타사에서 후원한 내용을 중심으로 실제편을 서술하려 한다. 아래에 소개한 내용 이외에 마을회관 또는 마을 도서관 등을 건축하여 기부할 수도 있으며, 근래들어 지역 특산품을 수입하여 주면서 주민 소득을 증대시켜주는 후원도 시도되고 있다.
1. 후원 대상 학교 선정
후원 대상 위치 선정은 후원 기간에 따라서, 그리고 사업 내용의 성격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 장기 후원인 경우는 아무래도 인적 교류도 예상해야 하므로 교통, 의료, 숙박 등 생활 편의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미타사는 처음부터 비구니 스님이 운영하는 사원학교를 후원하기로 했다. 사원학교란 절에서 운영하는 일종의 사립학교인데, 공립학교에도 가지 못하는 학생을 무료로 수용하는 학교라고 보면 된다.
미타사가 비구니 스님 사찰이므로 비구니 스님끼리 소통하는 것이 편하기도 하거니와 미얀마의 비구니 스님 사찰이 비구 스님 사찰보다 지위가 낮은 관계로 후원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는 이유도 컸다. 또한 장기 후원을 계획했으므로 양곤 인근에 있는 학교를 고르기로 했다. 그리고 후원의 취지를 살려서 가장 가난한 마을의 가장 가난한 학교 중에서 선정하고자 하였다. 물론 시골로 가면 더 가난한 학교도 많고 아예 학교가 없는 마을도 있으나 인적 교류의 편의성을 위해서 시골은 대상에서 제외했다.
원하는 선정 조건을 사업 파트너 NGO에게 통보하면 대체로 조건에 근접하는 학교를 탐색해 준다. 하지만 미타사는 파견 예정자를 현지에 보내서 사업 파트너 NGO와 함께 탐색하였다. 예약한 사원학교를 둘러본 후, 교장 스님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 뒤, 미리 작성한 채점표에 점수를 매겼다.
미타사에서 작성한 선정 채점 항목은 학교 위치, 학교 규모, 학교 환경, 새 건물의 필요성, 교장 스님의 인품과 리더십 등이었다.
결국 양곤 중심에서 동남쪽으로 약 20km 떨어진 딴린시의 띨라와 사원학교가 낙점되었다. 띨라와 사원학교는 시내버스에서 내리면 정류장으로부터 약 3km 정도를 걸어가든지 인간 배달 오토바이 택시를 타야 접근 가능했다. 오토바이 택시란 오토바이 꽁무니에 타고 가는 것을 말한다. 헬멧도 없어서 떨어지면 최소 뇌진탕, 아니면 골절이므로 오토바이 기사의 허리를 꽉 잡아야 한다. 처음에는 기사의 때와 땀이 쩐 샤츠가 느껴지고, 다음에는 뭉툭하고 출렁이는 뱃살이 잡힌다. 그 다음은 기사의 축축하고 끈적한 땀과 조바심 나는 승객 손바닥의 땀과 합쳐지면서 묘한 동심일체가 되는 택시라고 보면 된다. 햇살이 어찌나 센 지 머리가 다 뽑힐 것 같은 길을 약 10분 정도 타고 들어가면 띨라와 사원학교에 도착할 수 있다.
2. 건물 건축과 기증
미타사의 경우, 더프라미스를 사업 파트너로 선정, 교실 건축을 맡기었다. 더프라미스가 건축 단계별로 건축 진행 보고서와 비용 청구서를 보내오면 미타사는 보고서를 검토하고 대금을 원화로 송금했다.
주지스님은 이왕 후원하는 것이니만큼 우리 절을 짓듯이 성심을 다하자라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었다. 후원 계획을 수립할 때, 학교 부지 매입 계획은 없었다. 그러나 교실 8칸을 짓기에 학교 부지가 너무 비좁아서 부지 매입비가 추가 소요됐다. 양곤 및 양곤 인근의 토지 가격은 개도국답지 않게 무척 비싸다. 띨라와 학교 부근은 양곤 경계에서 9km 정도 떨어져 있고, 또 황량한 벌판인데도 한화로 평당 30만원을 훨씬 웃돌았다.
공사 후반기에는 필자가 양곤에 도착했고, 자연스럽게 조언할 기회가 생겼으므로 좀더 튼실한 건물이 나오지 않았나 생각한다.
건물은 작년 6월 초에 완공되었으나 준공식은 편한 날짜에 잡다보니 11월 초로 미루어졌다. 미얀마의 경우, 5월 중순부터 10월까지는 우기이므로 이 기간을 피하고 싶은 생각이 가장 컸다.
준공식은 성대하게 열렸다. 띨라와 사원학교 측은 고마움의 표시로 학교 이름을 띨라와 미타사 사원학교로 바꾸었다. 그리고 한 달 동안 학생들에게 공연 준비를 시켰다. 필자는 학생, 교사, 그리고 마을 주민에게 한글반야심경을 가르쳤다. 한글 반야심경을 미얀마 학생 스님의 목탁 소리에 맞추어 한국 손님과 함께 독송했는데, 특히 학생 스님 세 분이 한글반야심경을 외워서 독경하는 모습이 한국 손님의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학교 건물을 다 짓고 나자, 이번에는 기숙사가 문제가 되었다. 사원학교에 있어서 기숙사는 필수적이다. 먼 곳에서 와서 기숙하고 있는 학생 스님이 많기 때문이다. 띨라와 미타사 사원학교의 기숙사는 비좁고 비위생적인 건물이었다. 하지만 후원 계획을 수립할 때, 학교 부지 매입 계획도 없었고, 기숙사 증축 계획도 없었다. 재정도 궁핍했다. 미타사 신도회에서 기숙사 건축비의 일부를 모금하자, 주지스님이 어렵사리 건축비용을 마련하기 시작했고, 금년 2월에 공사를 시작했다. 미타사는 지금까지도 재정이 어려운 상태이지만 주지스님은 한 번도 생색을 내거나 힘들었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
기숙사는 교실 건물 3층에 증축했는데, 이때는 파트너 NGO 없이 공사를 진행했다. 필자가 미얀마에 장기간 거주한 덕택에 믿을만한 미얀마인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업비도 절약할 수 있었지만, 교장 스님은 이 방식을 훨씬 선호했다. 공사에 본인이 어느 정도 개입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보 부족으로 해외 후원 사업은 예산 규모를 정확하게 책정하기가 어렵고, 계획이 제대로 맞아들어가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을 자주 느낄 수 있었다.
3. 교사 연수와 복지
건물 건축과 기증은 후원 규모가 크지만 일회성이라고 본다면 교사 연수와 복지 프로그램은 작지만 장기 프로그램에 해당한다. 건축비와 비교했을 때 매우 저렴하지만 사람과 사람이 장기간 교류하면서 강한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미얀마 초중고 공립학교 교사는 15만짯에서 20만짯 정도의 월급을 받는다. 그러나 사원학교 교사는 정부에서 3만 5천짯만 주고, 나머지는 사원의 형편에 따라서 보태 주는 실정이다. 띨라와 사원학교는 형편이 좋지 않아서 3만 5천짯을 보태어 한 달에 7만짯을 주고 있다. 이는 단순 노동자 초봉인 9만짯에도 미치지 못하는 액수이다. 미타사에서는 교사 월급을 보조하여 공립학교 교사 월급 수준으로 맞추어 주었다.
이 프로그램은 교사의 질과 열정이 교육의 질을 결정한다는 미타사 주지스님의 일관된 신념의 덕분이기도 하다. 교사가 의욕을 가지고, 가르칠 내용을 충분히 연구하고, 열성적으로 가르쳐야 학생들 실력이 늘어난다는 것이었다.
월급을 더 주는 대신 미타사는 교사에게 딴린시에서 최고의 교육을 제공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 이를 위하여 필자도 힘을 보탰다. 한국에서의 교육 경험을 교사 연수 시간에 들려주기도 하고, 그들의 고민을 들어주기도 했다. 또한 그들의 교육 방식을 직접 보고 개선점을 토론하기도 하였다. 교사 5명 중 3명의 수업 방식은 확실히 발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금년도에도 이 사업은 지속되고 있는데, 사원학교의 자립도가 높아져서, 미타사의 부담금을 조금 줄일 수 있었다. 금년도에는 필자가 교사를 직접 대면할 수 없어서 학력 향상을 위한 연구 보고서 형태로 매달 실적을 제출받고 있다. 하지만 교사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하여 보고서 양을 A4 용지 한 면 이내로 제한하고 있다.
4. 한국 문화 및 한국어 교육
후원 사업 중에서 가장 어려운 분야에 해당한다. 인력이 장기간 체류해야 하기 때문이다. 체류에는 갖가지 어려움이 따른다. 우선 의식주를 스스로 해결해야 하고, 그 외에 의사소통, 의료, 교통 등의 문제를 풀어야 한다. 초반부에는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은데, 위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면 가장 중요한 문제로 부각된다.
한국인이 한국어를 몰라서 못 가르치지는 않는다. 영어도 통하지 않는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려면 교수 노하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최고 더위에도 짜증내지 않고 언제나 상냥하게 웃으면서 가르칠 수 있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필자의 경우, 한국어교사 2급 자격증을 취득하였다. 도움이 안 된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는 한국에서의 교사 경험이 더욱 큰 도움이 되었다. 가끔은 한국 노래와 춤을 가르치고, 가끔은 한국 음식도 실습했다.
처음에는 사원학교 학생들만 가르치다가 나중에는 마을 주민까지도 가르쳤다. 무료로 가르친다는 소문을 듣고, 약 40km 떨어진 마을에서도 오토바이를 타고 와서 공부한 학생이 두 명 있었다.
미얀마의 한국어 열기는 대단하다. 한국고용노동부 주관의 한국어 시험에 합격하면 한국 노동자로 입국할 수 있어서 의욕 있는 젊은이들은 한국어에 매우 열심이다. 한국에서 합법적으로 일을 하면, 미얀마에서 1년 걸릴 저축액을 한 달에 모을 수 있다.
교육 대상 학생이 저학력인 경우, 통역자 없이 한국 문화 및 기초 한국어 교육을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통역자가 없다면 한국어 교사가 해당국가 언어를 웬만큼 할 수 있어야 한다. 필자의 경우에는 운이 좋았다. 초기에는 영어를 할 줄 아는 미얀마 아가씨가 통역해 주었고, 후기에는 학교 인근에 한국어를 전공한 아가씨가 살고 있어서, 이 분이 주말마다 자원봉사를 해 주었다. 지금은 그 아가씨가 내 뒤를 이어서 한국어 교육을 하고 있다. 아마도 이 분들의 노고가 아니었으면 제대로 교육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5. 후원 기관 확장
해외 후원을 하고 싶어도 마땅한 후원 대상을 찾지 못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 특히 소액 후원인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필자가 미얀마에서 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필자에게 후원금을 전달하여 달라는 분들이 많았다. 미타사 한 곳에서 후원하는 것보다 여러 후원자가 생기면 후원의 종류도 다양해져서 좋았다. 마치 밥상 위 반찬의 가짓수가 늘어나는 느낌이었다. 학용품, 교복, 청소기, 세탁기, 청소도구, 쓰레기통 등 생각하지 못한 품목까지 기증하는 분들이 있었다.
지인들의 중고 노트북을 기증받아서 전달한 것이 첫 사례였다. 학생들은 물론, 교사들도 컴퓨터를 처음 부팅해 본다고 말할 정도로 미얀마는 IT 교육이 낙후되어 있다.
점심 기부자들이 나타나기도 했다. 평상시에는 학교 주변에 사는 학생들은 집에 가서 점심을 먹고 오후 수업을 받고 있다. 점심을 기부하면 이들도 학교에서 점심을 먹게 되는데, 가정에서 차린 식단보다 훨씬 훌륭했다. 가격도 싸서, 학생과 교직원 등 총 200명에게 드는 돈이 단지 13만짯(한화 12만원 남짓)밖에 들지 않았다. 들어보니, 새 학기부터는 15만짯으로 인상되었다고 한다.
한국청소년연맹의 도움이 컸다. 연맹에서는 미얀마 학생 돕기 모급 행사를 펼쳐서 많은 돈을 보내왔다. 이 모금액으로 띨라와 미타사 사원학교에 전기를 끌어와 설치하고, 선풍기를 교실마다 달았으며 교실 안팎에 조명 시설도 넣었다. 뿐만 아니라, 별도로 학생들에게 한국 학용품을 선물하기도 했다. 학생들이 신이 났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마지막으로 서울 면목동 한성사 스님이 우물을 만들어 기부한 사례가 있다. 미얀마는 물이 풍부하나 식수는 좋지 않다. 지하수라 하더라도 깨끗하지 않은 것이 예사이다. 한성사에서는 지하 30m에서 물을 끌어올리고, 정수 시설까지 갖추어 주었다. 학교 측에서는 이 물을 동네 주민에게 무료로 항시 공급하고 있다.
이번 7월에는 하이 서울 유스호스텔 주관으로 청년 봉사단 13명이 봉사 활동을 펼칠 계획으로 있다.
NGO를 통해서 후원하는 경우, 많게는 후원액의 70%가 운영비에 소모되기도 한다. 그러나 필자를 통해 후원하는 경우에는 100%가 전달되었므로 실제로는 세 배 효과가 났다고 자부한다.
6. 학생과 교사를 한국에 초대
후원 프로그램 중 가장 의미 있는 것은 역시 인적 교류라고 생각한다. 여행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멋진 풍광이 아닌 사람과의 이야기, 사람의 체취, 사람과의 삶이다. 마음과 마음의 교류가 있어야 후원 사업도 지속적인 발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미타사에서는 일종의 외국인 장학 사업을 시작하였다. 우선 띨라와 미타사 사원학교에서 우수한 학생 스님 세 명을 선발하였다. 그리고 방학 기간을 이용, 약 50일간 미타사로 초청하여 한국 불교와 한국어 실습 기회를 제공하였다. 또한 교장 스님을 10일간 초청, 한국의 불교와 선진 문화를 체험하도록 했다.
학생 스님이 체류하는 동안 특색 있는 몇 가지 프로그램도 시행했는데, 유명 사찰과 유적지 탐방, 재가자 가정 투숙, 한국 문화 기관 탐방, 그리고 한국 학교 수업 체험 등이었다. 한국 학교에서도 세계화 교육을 원하고 있으므로 학교 수업 체험 섭외가 그리 힘들지는 않았다. 한국 학생도 미얀마 학생 스님도 대만족이었다. 마지막으로, 미타사에서는 부처님 오신 날마다 청소년들에게 장학금을 주어왔는데, 금년에는 미얀마 학생 스님에게도 장학금을 지급하였다.
손님을 50일간이나 초대한다는 것이 보통 어렵지 않다는 것을 프로그램을 진행한 후에나 알았다. 학생 스님들조차 힘들어하는 것 같았다. 내년부터는 체류 기간과 인원수를 다소 줄일 예정으로 있다.
Ⅳ. 나가는 말
부처님 말씀은 모두 좋은 뜻을 담고 있기에 지금도 사람들 마음에 뿌리를 내리고, 무럭무럭 자라서 씨앗을 맺으며, 그리고 그 씨앗은 더 너른 세상에 생명을 퍼뜨린다. 남을 돕는 일은 부처님의 뜻이다. 그러기에 그 또한 뿌리를 내리고 또 번창하게 된다.
띨라와 미타사 사원학교 학생들도 새 교실, 새 기숙사에서 좋은 뜻이 담긴 씨앗을 가꿀 것이다. 그리고 그 뜻이 생명을 얻어서 다른 사람들의 가슴 속에 고루 퍼지리라 믿는다.
‘안 한 것만 못 하다’라는 속담이 있다. 하지만 후원 사업에서는 그 말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무엇이건 하는 것이 안 하는 것보다 백 배 낫다.
그러나 좀더 진정한 후원이 되기 위해서는 후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후원이란 사전적 의미로는 뒤에서 도와준다는 뜻이다. 진정한 후원이 되려면 후원자의 올바른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부자가 빈자에게 재물을 베푸는 것, 또는 행복한 사람이 불행한 사람에게 행복을 나누어 주는 것, 또는 앞선 사람이 뒤쳐진 사람을 안내하는 것 등으로 생각하면 후원의 진정한 의미가 우러나지 않는다. 또 후원자의 숭고한 뜻이 전달되지 않는다. 잘못하면 후원자의 교만함이 드러날 수 있다. 피후원자와 공감을 나누어야만 피후원자는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끼고 부처님의 길을 함께 걸어갈 수 있다. 그러려면 동등한 입장에서 함께 살아주는 것이 필요하다. 함께 살아주는 것보다 큰 후원은 없다는 생각이 체류 후반부에 들기 시작했다. 자비의 시작점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동체대비(同體大悲)임을 깨닫기 시작했지만, 솔직히 필자도 그렇게 하지 못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한두 번의 후원보다는 장기간, 그리고 여러 사람의 관심이 섞인 후원을 실천하는 것이 공감을 얻기에 좋을 것이다. 교육 후원이 사람을 기르는 사업이고, 사람을 기르려면 여러 사람이 장기간의 관심을 가지고 보살펴야 하는 것이 당연하고도 옳으리라고 본다. 하지만 후원자의 입장이 모두 다르므로 반드시 장기 후원을 고집하지는 않는다.
후원은 곧 보시다. <제법집요경> 아귀품에 “사람이 보시를 행하지 않고 좋은 인과응보, 즉 복을 구하려 한다면, 이것은 등잔도 없이 불을 켜려는 것과 같다. 눈 없는 사람이 사물을 보지 못하는 것과 같이 보시를 떠나서는 행복이란 결과를 낳는 원인을 찾을 수 없다” 하였다. 보시 없이는 행복도 없다는 의미이며, 또한 보시가 성불의 기본 덕목임을 알려주는 말씀이기도 하다. 본 졸고가 해외 후원 사업의 방향과 방법을 조금이나마 쉽게 제시하여, 행복의 한 걸음이 되기를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