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1-15 중앙선데이
대구 화남초등학교 이정서 교사는 요즘 한 주에 한 차례 정도 에듀넷(www.edunet.net)에 접속한다. 에듀넷은 교육부가 1996년 만든 사이버 교육 포털 사이트다. 수업에 참고할 만한 자료를 찾기 위해서다. 이 교사는 “학생들은 에듀넷을 잘 모르고 교사들도 민간 유료 사이트에 가입해 수업에 필요한 자료를 더 많이 찾아 활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해 개통 20년을 맞은 에듀넷은 하루 이용자 수나 회원 수 모두 한창 잘나갈 때의 10분의 1 규모로 쪼그라들었다. 하루 이용자 수는 49만 명에서 4만 명으로, 회원 수는 627만 명에서 42만 명이 됐다. 교사들 중엔 에듀넷 아이디가 없는 사람도 꽤 된다. 서울의 한 중학교 교사는 “아이디가 뭐였는지 기억도 안 난다”고 말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교육 안 바꾸면 미래 없다
교육부가 2004년 사교육비를 줄이려는 목표로 도입한 사이버가정학습(현재 사이버학습) 시스템도 지금은 이용자의 반응이 신통치 않다. 하루 평균 로그인 인원수도 2009년 36만여 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추락해 지난해 말 4만 명 수준이 됐다. 그런데도 사이버학습 운영비로 지난해 46억원(국비·지방비)이 들어갔다.
에듀넷·사이버학습·EBS 수능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공교육 이러닝(e-learning) 정책은 교육 기회를 균등하게 제공하고 사교육 부담을 줄일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다. “이러닝은 이제 교육기회 확대와 교육격차 해소에 기여할 것”(안병영 전 교육부총리)이라는 전망도 있었다. 2010년엔 전국 초·중·고교에 설치된 IPTV로 사교육비를 줄이겠다는 계획도 나왔다.
실제로 정부의 이러한 투자는 학생이 어디에 살든 지역의 구분 없이 교육 기회를 확대하는 데 기여했다. 예를 들어 중학교 1학년 학생이 수업시간에 배운 수학의 거듭제곱 단원을 공부하다가 생긴 궁금증을 풀려면 에듀넷 같은 무료 사이트 등에 들어가면 된다. 해당 단원에서 익혀야 할 핵심 내용, 평가 문제까지 다 얻을 수 있다. 그 내용을 내려 받아 직접 풀어보고 몇 점을 받았는지 체크도 가능하다. 문제 해설도 있고, 오답노트도 만들 수 있다. 학생의 입장에서 열의가 있고 원한다면 언제, 어디서나 정보를 얻을 기회는 열려 있다. 다만 교육부 등이 운영하는 공공 인터넷 사이트는 민간 분야 사이트에 밀려 점점 선택을 받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최근 들어 인터넷 등 정보기술(IT)과 PC나 태블릿PC 등 디바이스가 확대 보급되면서 학교의 디지털 환경 변화는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서울 창덕여중 수학 담당 안영석 교사도 이런 변화를 체감한다. 이 학교는 여느 학교와 달리 무선 인터넷 환경이 갖춰져 있고 수업시간에 학생들은 태블릿PC를 사용한다. 안 교사는 “예를 들어 마이너스(-)와 마이너스(-)를 곱하면 왜 플러스(+)가 되는지 기본적인 개념을 이해시키거나 문제를 풀게 한 뒤 학생들에게 그 결과에 대해 피드백을 주는 데 디지털 기기를 활용하면 도움이 많이 된다”고 말했다.
[수준이 아니라 개별이다]
그렇다면 신기술은 이처럼 기회의 확대를 넘어 사교육비 경감 등의 효과를 낼 수 없을까. 에듀넷·EBS 수능 인터넷 등이 시행된 이후에도 좀처럼 사교육비 부담은 줄어들지 않았다. 김진숙 한국교육학술정보원 연구위원은 “디지털 네트워크와 모바일 정보기기가 확산되면서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선 학습의 개인화와 맞춤화가 가능해진다”며 “이렇게 되면 기술이 그동안 해결하지 못했던 개인 간 격차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인터넷이 중심이 된 3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교육은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에서 학생의 수준별로 이뤄졌다. 교실이나 온라인에서도 학생의 수준을 상·중·하 등으로 구분하고 비슷한 수준끼리 모아 가르쳤다. 하지만 같은 수준의 학생들끼리도 학습 속도나 성취 수준, 이해 정도는 판이하다. 교사가 학생 한 명마다 붙어 일일이 관여하지 않으면 결국은 같은 수준의 교실에서도 낙오하는 학생이 생길 수밖에 없다. 김진숙 연구위원은 “인공지능(AI)이나 빅데이터가 등장하면서 단순한 수준 구별이 아니라 학생 개개인에 맞춰 학습을 지원할 수 있는 길이 열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AI를 활용해 학생에게 맞춤형 학습을 제공하는 대표적인 서비스는 미국의 드림박스 러닝(Dreambox Learning)·뉴턴(knewton) 등이다. 드림박스는 수학 강좌를 게임처럼 구성한 게 특징이다. 미국 내 실사용자는 1500만 명인데 이들이 수학을 학습하는 과정에서 보이는 학습 이력을 모두 데이터로 구축했다. 이를 기반으로 교사에게도 학생 개개인의 성취도 현황, 학습량 등의 정보를 제공한다. 뉴턴 역시 학생들이 무엇을 알고 있으며, 어떤 방식으로 공부할 때 성과를 보이는지 분석해 각 학생에게 맞는 학습 콘텐트를 제공한다. 같은 공간(교실)에 있어도 학생마다 각기 다른 수준의 학습을 진행할 수 있는 것이다. 미국 애리조나주립대는 뉴턴 방식을 적용해 수학·기초물리학·생물학·화학 강의를 뜯어고쳤다. 이주호(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애리조나주립대는 학생이 학습하는 수준에 맞춰 개별화된 적응학습법을 도입해 중도탈락이나 수강 철회 비율을 대폭 낮췄다”며 “학생의 모든 수업 관련 정보가 데이터베이스에 쌓이고 학생이 학위를 취득하는 데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기계가 찾아주는 등 빅데이터·AI 기술을 대학 교육에 적용했다”고 소개했다.
[같은 교실, 각기 다른 교육]
국내 벤처가 개발한 노리(KnowRe)는 교사 한 명이 학생 여러 명을 가르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를 빅데이터로 해결하려 한다. 이 프로그램은 현재 미국 중·고교 80곳이 사용하고 있다. 미국 오하이오주 샌더스키 카운티에 있는 블레이어고교도 그중 하나다. 앨런 스피어 교사도 8학년 수학을 가르칠 때 하루에 30~50분씩 노리를 사용했다. 학생들은 노트북으로 노리에 접속해 수학 문제를 풀면 스피어 교사는 자신의 노트북에서 각각의 학생이 어떻게 문제를 풀고 있는지 모니터링한다. 어떤 학생이 현재 배우는 단원의 어떤 부분을 이해하지 못하는지 알 수 있다. 그는 “해마다 정규 수업을 따라오지 못하는 미달 학생이 발생하는데 노리를 써서 미달 학생의 75%를 구제한다”고 말했다. 서울 신한중 2학년 이환희(15)군도 최근 수학의 인수분해 단원을 노리 프로그램으로 해결했다. 이군은 “태블릿PC를 이용해 문제를 푸는데 풀다가 틀리면 선생님이 나와 개념을 설명해주고, 좀 더 쉬운 문제를 풀게 한 다음 다시 어려운 문제를 풀게 한다”고 말했다. 노리는 지난해부터 EBS ‘수목달(수학목표달성)’과 사교육업체 대교의 ‘서밋 수학’ 프로그램에서 사용 중이다. 김용재 노리 대표는 “학생의 학습활동은 빅데이터로 수집되고, 소프트웨어 알고리즘에 의해 맞춤형으로 학생이나 교사에게 제시되며, 이를 바탕으로 개인 간 격차를 줄이는 교육이 이젠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신기술을 공교육에 곧바로 투입할 수 있을까. 미국에서도 일부 실험적 학교에서 교육 혁신이 일어나고 있다. 칸 아카데미 설립자로 유명한 샐먼 칸이 2014년 만든 칸랩 스쿨, 구글 직원이었던 맥스 벤틸라가 2013년 설립한 알트 스쿨 등이 그 사례다. 박준성 교육부 기획담당관은 “교육청별로 미래 학교 모델을 선정해 지원하고 있다”며 “효과가 높은 학교 모델을 발굴해 확산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취재팀: 강홍준 사회선임기자, 강기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