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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 로 시작하는 아름다운 노래가 있다.
“가을”, “편지”
말만 들어도 가슴이 울렁거리고 가슴이 따뜻해 지는 단어다. 편지를 써본 지가 언제 였던가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하긴, 요즈음은 편지라는 말보다 메일이란 말을 주로 쓰니 앞으로 수년 후엔 아이들에게는 더욱 생소한 단어가 될지도 모른다.
“옥체후 일향만강 하옵시고” 로 시작하는 서찰이라든가 “ 문안 글월 올립니다” 라고 하는 말을 지금 아이들이 알아들을까?
“편지” 종이 위에 손으로 직접 쓴 편지에는 오늘날의 전자 메일이 감히 가질 수 없는 깊은 정감과 글쓴이의 내음이 숨어있다.
글씨를 잘 쓰든 못 쓰든 깨끗한 종이에 손수 펜을 잡고 투박한 손으로, 또는 아름다운 하얀 손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써내려 감을 상상할 때, 그리고 편지를 봉하고 우체통에 살며시 넣음을 그려볼 때 오늘날의 전자메일과는 다른 친밀감과 잔잔한 정감이 더욱 우러 나올것이다.
끌리는 여학생 손에 살짝 쥐어주고 달아난 쪽지 편지, 누나의 학생 가방에 살짝 넣어진 모르는 남학생 으로부터의 쪽지편지, 괴발개발 삐뚤한 글씨로 쓴 서랍에 보관 되어진 내 아이의 초등학교 시절의 같은반 여자친구 카드편지, 사랑하는 연인에게서 온 사모의 정이 담긴 편지, 현존하거나 기억 속에서만 남아 있더라도 오래된 모든 편지는 아름다운 추억이요 보물이다.
어릴때 집을 떠나 서울에서 유학생활하는 나에게 열심히 공부하며 촌음을 아껴 쓰라는 당부와 함께 오밀 조밀한 사랑과 우려의 정을 행간에 숨기시고 보내신 아버지의 그 멋진 명필 편지는 지금 생각해도 다시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그리운 편지다.
사십년동안 불러보지 못한 단어.......... 아...버...지.....
외로울 때나 집이 그리워 질 때엔 아버지의 편지를 읽고 또 읽곤 하며 그리움을 달래곤 했던 기억이 난다. 부모님 또한 우리들의 편지를 그렇게 간직하며 객지에 있는 어린 자식들을 그리워 하셨을 것이며 내가 그랬듯이...우리의 편지를 몇 번이고 들여다 보곤 하셨을 것이다. 아직도 사무치게 그리운 모습이요 애절한 그리움의 추억이다.
학창 시절에 흔히 하듯이 “국군장병 아저씨께”로 시작하는 위문 편지를 쓴 적이 있었다. 성심껏 써낸 내 편지에 전방의 한 군인아저씨로부터 답장이 왔다.
나는 꼬박꼬박 답장을 하곤 하였으며 계속 편지들이 오고 가며 그 국군장병아저씨와 형과 아우처럼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인 편지교류로 이어져 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서 대학 신입생 시절 어느날, 드디어 그는 제대군복을 입은채 전방에서 바로 나와 제일 먼저 날 찾아와 주었다.
비록 우린 첫 대면이었지만 오랜 지기처럼 형 동생 하면서 신촌 기차역 앞의 어느 허름한 술집에서 첫 해후를 하였다.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동안의 오고 간 사연들과 군생활에서의 이러 저러한 이야기도 들으면서 나는 난생 처음으로 마신 막걸리에 취하고 또 그 형의 찾아 온 정에 취하여 마침내 산마루에 있는 집에까지 업혀서 오게된 일도 있었다.
제대군인 유 하사가 제일 먼저 나를 보고 싶어 찾아 온것 은 진심 어린 편지의 교감 때문이었고 또한 그 마음을 알기에 술잔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며 난생 처음으로 대취했을 것이다. 마음을 움직이는 편지의 생명은 진정성이다.
40년전... ... 연인을 두고 떠나온 그리움이 핏빛으로 녹아드는 가슴 시린 편지들과, 부모 형제들과 스승과 제자들과 친구들간의 정과 사랑을 담은 모든 편지는 가을 햇살에 빛나는 아침 이슬처럼 우리들의 마음에 녹아 영혼을 살찌게 하는 더 없이 아름답고 소중한 추억거리이며 마음 창고의 보석이다.
군대 시절, 어렵고 지루한 생활 속에서도 나에게 힘이 되고 격려가 되었던 것들은 가족이나 연인으로부터 온 편지들이었고, 괴로운 것은 또한 그것과의 단절이었다. 망망대해를 수 개월 동안 항해하는 선원들에게는 사랑하는 가족이나 연인의 소식을 담은 편지와 소식들이 더없는 보물이요 생명수다.
“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햇살이 아름답고 하늘이 푸르른 이 아름다운 계절에 눈을 감고 마음을 더 없이 순화하여 그리운 벗에게나 그리운 사람에게 전자메일이 아닌 아나로그식의 따뜻한 편지를 써 보는 것은 어떨까? 하이얀 종이 위를 사각사각 달려가는 만년필로 마음과 정을 그려내는 편지 씀을 상상하면 마음이 설레인다.
농익은 뜨거운 열정의 편지가 아니라도 담담하게 우정을 이야기 하고 안부를 묻는 아나로그식 편지에는 라디오 아나운서의 표준 발음 대신 구수한 정감의 사투리 같은 포근함과 따스한 마음이 녹아있고, 전자메일 활자나 전화와는 다른, 쓰는이의 체취와 실존감, 살아 숨쉬는 정이 오래도록 시간을 초월하고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 가을엔 편지를 꼭 써 보리라, 햇살이 더없이 아름다운 이 가을엔….
-sigma- |
첫댓글 '창작수필 문인회' 회원이신 김영일 님의 글이 좋아 창수 카페 '살아가는 이야기'에서 옮겼습니다.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편지를 쓰고 싶은 가을이기에...
저도 월남전에서 작전에 투입될 적에는 몽달귀신이 안되려고
연인의 편지를 수첩에 넣어 다녔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