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첫 장애인 총학생회장 이경환씨]
세살 때 엄마 따라간 정육점서 고기 가는 기계에 오른팔 잃어
물리학부 입학 후 학생운동 빠져 경고 4번 맞고 제적됐다 재입학
불량원룸 리스트, 식당메뉴 등 생활밀착형 공약으로 당선
8일 서울대 제56대 총학생회장에 당선된 이경환(28·물리천문학부 05학번)씨는 왼손잡이다. 타고난 것도, 의식적으로 노력한 결과도 아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는 오른손이 없다. 오른팔 팔꿈치 아래가 없는 지체 장애인이다. 서울대 총학생회 역사상 장애인 총학생회장은 그가 처음이다. 작년 11월 낮은 투표율 탓에 선거가 무산된 뒤 다시 치러진 이번 선거에서 그는 득표율 52.8%로 33.9%를 얻은 상대 후보를 크게 앞섰다. 그가 내세운 건 '자취생 길라잡이 책자 발간' '불량 원룸 블랙리스트 작성' '학생식당 메뉴 공모전' 같은 생활 밀착형 공약이었다. 그가 한 손으로 쇠파이프를 들고 폭력 시위 현장을 누볐던 '친북 좌파'였다는 게 믿기지 않는 변신이었다. 그에겐 한때 이념적으로 완벽한 왼손잡이였던 시절이 있었다.
이씨가 오른손을 잃은 건 세 살 때였다. 1989년 어느 날 어머니를 따라간 시장 골목 정육점에서였다. 주인은 고기를 갈아내는 연육기를 가게 앞에 내놓고 장사를 하고 있었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칼날이 신기했던 어린 경환이는 무심코 오른손을 집어넣었다. 손은 짓이겨졌다. 세균 감염 우려 때문에 팔꿈치 아래까지 잘라냈다. 악몽이라 믿고 싶었던 부모 앞으로 아들의 장애인등록증이 날아들었다. '3급 장애인.'
이씨가 오른손을 잃은 건 세 살 때였다. 1989년 어느 날 어머니를 따라간 시장 골목 정육점에서였다. 주인은 고기를 갈아내는 연육기를 가게 앞에 내놓고 장사를 하고 있었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칼날이 신기했던 어린 경환이는 무심코 오른손을 집어넣었다. 손은 짓이겨졌다. 세균 감염 우려 때문에 팔꿈치 아래까지 잘라냈다. 악몽이라 믿고 싶었던 부모 앞으로 아들의 장애인등록증이 날아들었다. '3급 장애인.'
- 8일 오후 서울대 정문에서 총학생회장 이경환(27)씨가 왼주먹을 쥐어 보이고 있다. 오른팔 팔꿈치 아래가 없는 3급 지체장애인인 이씨는 이날 서울대 총학생회장으로 선출돼 임기를 시작했다. 이씨는 대학 입학 후 ‘데모꾼’으로 살았으나, 광우병 촛불집회 때 ‘지금까지의 활동이 잘못됐다’고 깨닫고 운동권에서 벗어났다고 한다. /윤동진 객원기자
아들에게 장애라는 약점을 채워 줄 최고의 간판이 생겼다는 기쁨도 잠시. 스무 살 이경환은 부모 바람과는 정반대 길로 접어들었다. '멋지게 보인다'며 자발적으로 민주노동당 대학생 당원이 됐다. 평택 대추리 미군 기지 확장 반대 시위, 한·미 FTA 반대 시위 등 전국의 시위 현장을 찾아다녔다. "대추리에선 4시간 동안 전경들과 대치하다 머리가 깨져 병원에 실려갔지요. 한 팔로는 긴 죽창을 들 수 없어 왼손으로 쇠파이프를 들었죠." 그 시절 그는 세상을 다 안다고 생각했다. "국가는 자본가들 편이고, 미국은 제국주의 국가고, 남한에는 정통성이 없고, 북한은 국제사회의 약자였지요." 데모꾼 생활은 그에게 4개의 '별'(학사 경고)을 달아줬다. 2008년 학교에서 제적됐다가 이듬해 겨우 재입학했다.
그가 친북 좌파와 결별한 건 2008년 광우병 소고기 촛불 시위 때였다. 보름 동안 매일 10만명이 거리를 메운 현장은 운동권에 '대목'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우리 운동권의 말이 안 먹히는 거예요. 구호를 외치면 '선동하지 마라'고 하더군요. '내가 지금까지 해온 일들이 대중과 함께하지 못하는 일이었구나'하는 생각, '대중이 이렇게 싫어하는 당을 왜 유지하냐'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 일로 데모꾼 생활을 접었다. 지금의 그는 "한때나마 북한이라는 나라를 옹호했다는 게 부끄럽다"고 말한다. 그는 2012년부터 20·30대를 위한 노동조합인 '청년유니온'에서 청년들을 위한 사회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주거(住居)나 교통문제처럼 가장 시급한 문제에 대해 운동권 학생회가 아무 얘기도 하지 않는 걸 보고 총학생회장 출마를 결심했다"고 했다. 이번 학기 이씨는 단 1학점만 수강한다. 수영 과목이다. 한 팔로 수영까지 하는 그가 못하는 일이 하나 있다. 신발끈 묶기다. 그의 꿈은 '병원비 걱정 없는 세상'을 만드는 시민운동가. "데모꾼이 돼 전국을 돌아다닐 때 병원비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너무나 많이 봤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