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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do domus Sanctæ Mariæ Theutonicorum Ierosolimitanorum
□ 기사단의 모습
튜턴 기사단은 군사 교단으로서 그 조직 구성은 독특했지만 교단 기사들 개개인의 무장은 당시 보편적인 중세 서유럽의 기준에 충실하였습니다. 기사단은 서구 전사들과 별 다름없이 무장했고 전술도 비슷했습니다.
그러나 기사단이 위치한 곳은 동유럽 변경지대였고 이 지역에서의 성전이라는 독특한 상황은 동시대의 서유럽과는 다소 구분되는 기사단의 특색을 만들어냈습니다. 두드러지는 특징은 기사단의 일부 무장이 이교도의 군장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점과 대량의 석궁을 전쟁터에 동원했다는 점입니다. 일러스트에서는 잘 묘사되지 않지만, 이러한 석궁은 보병뿐만 아니라 기사 형제의 부무장으로도 애용되었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2번의 기사는 독특한 의상과 함께 날개 장식을 한 그레이트 헬름(Great Helm)을 발치에 두고 있습니다. 일러스트에서는 1300년대의 모습으로 나와있으나, 원래 이 그림은 그보다 시기가 앞선 13세기 중반의 음유시인인 탄호이저(der Tanhauser)의 세밀화를 기초로 그려진 것입니다. 탄호이저는 튜턴 기사단원의 기사형제라기보다는 한시적으로만 교단에 봉직하는 반 형제(할프브루더Halbbruder) 자격으로 프리드리히 2세의 제 6차 십자군 원정에 종군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3번의 전사는 그레이트 헬름을 쓰고 기사의 방패와 창을 들고 있지만 회색 튜닉과 그 위에 그려진 타우 십자가로 인해 그가 기사단의 서전트라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평민 계급 중에서 군사 교단의 삶을 택한 사람들로, 일상생활에서나 전장에서 기사 형제들의 뒷바라지를 맡았습니다. 그가 들고 있는 방패와 창은 자신이 수행하는 기사 형제의 장비일 것입니다.
그레이트 헬름을 쓰고 있는 1번의 튜턴 기사는 기마 궁수의 화살에 말을 잃었습니다. 그는 서전트의 지원 사격의 도움을 받아 쿠만 족 기병과 싸우는 중입니다. 멀리 웃통을 벗고 도리깨를 든 남자는 정착지의 농부입니다.
쓰러진 말 뒷 편에는 기사단의 서전트가 석궁을 장전하고 있습니다. 튜턴 기사단의 군사활동에서 석궁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전쟁무기였습니다. 그 것은 이 발사 무기의 강력한 파괴력이 무척 효율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기사단의 주요 상대가 이교도였으므로 1139년의 라테란 공의회가 의결한 사항, 즉 기독교인을 상대로 사용할 수 없다는 금지령에서 자유로웠기 때문이었습니다.
훗날 기사단은 발트 지역에 자체적인 공장을 만들어 대량의 석궁을 조달하게 됩니다. 일례로 1396년 라그니트(Ragnit)의 무기 공장 하나에서만 7000개의 석궁과 1150개의 복합 석궁을 조달한 기록이 남아있으며, 15세기 초반의 프러시아에서는 각 전투원에게 지급된 분량을 제외하고도 예비용 석궁 4500개와 석궁용 볼트(Bolt) 1백만 발이 재고로 남아 있었습니다. 문헌적, 고고학적인 증거들은 튜턴 기사단의 전쟁에서 석궁이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는지를 증명하고 있다고 합니다.
13세기 후반 경의 튜턴 기사의 모습입니다. 갑옷에 그려진 문양은 타우 십자가처럼 보이지만 실은 머리에 쓴 사슬 두건 때문에 십자가의 윗부분이 가려진 것 같습니다. 다만 타우 십자가를 단 서전트 중에서는 기사 못지않게 무장하고 중무장 기병 역할을 담당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이 기사는 그레이트 헬름을 쓰고 하얀 천이 갑옷 위에 리벳으로 고정된 코트-오브-플레이트(Coat-of-Plate)를 착용하고 있습니다. 코트-오브-플레이트는 이후로도 계속 개량되어 14세기 동안 튜턴 기사들에 의해 널리 사용되었지만, 그레이트 헬름은 14세기 2/4분기 이후 발트 연안의 전쟁터에서 착용하는 일은 거의 없어졌습니다.
기사의 주변에는 다양한 무장과 깃발들이 있는데, 21번에 하얀색 사자가 그려진 깃발은 기사단의 가장 중요한 콤투라이였던 쾨니히스베르크를 표시한 것입니다. 또한 이 기사는 붉은 줄무늬의 사자가 그려진 방패를 들고 있는데 이것은 튀링겐과 헤쎈 가문의 문장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개인 문장을 착용할 수 없는 기사단 규정에 어긋나긴 하지만, 문장의 주인공은 튜턴 기사단 5대 기사단장인 콘라트 폰 튀링겐 백작이었고 튜턴 기사단에 합류한 최초의 대 귀족이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예외가 인정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14세기의 이 기사는 코트-오브-플레이트와 함께 랜스 홈이 달린 동유럽 풍의 방패를 들고 배서닛(basinet) 투구를 쓰고 있습니다.
배서닛은 14세기 2/4분기부터 나타난 투구 양식으로 시야를 가리지 않고 호흡을 방해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가볍다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또한 투구에 사슬 드림(aventail)을 달아 별도의 사슬 두건을 쓰지 않고도 목 부위에 대한 방호력을 제공했고, 배서닛 위에 그레이트 헬름을 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투구에 열고 닫을 수 있는 바이저를 달아 얼굴을 방어할 수도 있었습니다.
이 기사는 여전히 사슬로 몸의 많은 부분을 보호하고 있지만 점차 플레이트로 보호되는 부분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팔 부분에 착용한 건틀렛과 정강이 앞쪽에 덧대어 다리를 보호할 수 있는 정강이 받이는 플레이트로 되어 있습니다. 14세기 말이 되면 코트-오브-플레이트는 철판 흉갑, 즉 브레스트 플레이트(breast plate)로 대체되기 시작했고, 신체의 각 부위의 방호도 점차 판갑으로 대체되면서 플레이트 아머의 시대가 도래하게 되었습니다.
그림 좌측의 튜턴 기사는 대 기사단장으로서 15세기 1/4분기의 무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샐릿 형태의 투구를 쓰고 플레이트 아머를 착용하고 있습니다.
2번의 인물은 대 기사단장의 깃발을 들고 있지만 기사형제가 아니라 성직자 형제의 신분입니다. 이러한 성직자 형제는 단위 수도원에서 기사단의 성무(聖務)를 주로 맡았고 기사형제(리터브루더)의 바로 밑에서 기사단의 두 번째 계급에 속했습니다. 그림에 묘사된 인물은 페터 폰 두이스부르크, 또는 두스부르크로 14세기 초에 튜턴 기사단과 프러시아를 다룬 ‘프러시아 땅의 연대기(크로니콘 테라에 프루시아에 Chronicon terrae prussiae)’를 집필한 작가이기도 했습니다.
3번의 튜턴 기사는 배서닛을 쓰고 플레이트 아머를 입은 전형적인 14세기 후반의 튜턴 기사로, 일러스트의 모습은 폴란드의 노베미아스토(Nowemiasto) 교회에 있는 쿠노 폰 리벤슈타인(Kuno von Liebenstein)의 추모 기념패를 토대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그는 큼직한 파비스 방패를 들고 있는데 이러한 방패는 주로 도보 전투를 위해 사용되었을 것입니다.
비록 기사단의 무장은 서유럽의 군사 전통에 그 기반을 두고는 있었지만, 동시에 그들은 발트 지역 전사들의 군 장비로부터도 일부 영향을 받았습니다. 리투아니아의 카리스(Karys, 전사)와 전투 중인 튜턴 기사의 뾰족한 투구는, 말 그대로 ‘뾰족 투구(페킬후베 Pekilhube)’, 혹은 ‘프러시아 투구’라고 불립니다.
이 투구의 독특한 형식은 본래 이슬람 권에서 탄생하여 동유럽의 스텝지역을 통해 발트해 연안까지 전해진 유구한 것입니다. 튜턴 기사단은 중동 지역에서도 이 양식의 투구를 보았겠지만, 실제로 영향을 받은 계기는 이교도 프루스 족과의 싸움이었던 것 같습니다. 프러시아의 정복자인 튜턴 기사들은 이러한 이교도의 뾰족한 투구를 도입하여 여기에 바이저를 달아 프러시아 투구라고 부르며 직접 쓰고 다녔습니다.
기사단은 기병용 방패에서도 이교도들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림의 튜턴 기사단장이 착용하고 있는 방패는 발트지역에서 흔히 쓰이던 사각 방패인 스키다스(Skydas)를 모방한 것입니다. 일종의 파비스 방패인 스키다스를 튜턴 기사들은 프러시아 방패(Prusche Shild)라고 불렀습니다. 보통 이 방패는 중간에 요철이 수직으로 솟아있어 손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으며, 방패 구석에 구멍을 뚫어 기병 돌격 시 랜스를 안치하는 용도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튜턴 기사들은 대략 1360년을 전후하여 프러시아 방패를 들고 전장에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이처럼 기사단은 이교도들의 무장에서 영감을 받아 자신들의 무장에 조금씩 반영하였습니다. 투구와 방패뿐만이 아니라 이교도들의 창과 검의 양식도 일부분 도입했고, 발트 지역의 작고 튼튼한 조랑말인 슈베이크(Sweik)를 적극 사육하여 경기병용 군마나 보급품 운송을 위한 짐말로 유용하게 사용하였습니다.
이러한 장식들은 가문의 문장을 형상화 하거나, 뿔이나 날개와 같이 강인한 이미지를 부착해 자신의 모습을 과시하고 적들에게 위압감을 주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벽화에서 묘사된 튜턴 기사들은 각자의 개인적인 문장을 방패에 새겨 넣고 있는데, 사실 이 것은 기사단 규정에는 어긋나는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이러한 그림은 튜턴 기사 자신들의 실제적인 모습이라기 보다는 자기과시의 욕구를 예술적으로 표현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종종 튜턴 기사단의 대 기사단장들은 휘하 기사들의 ‘복장 단속’을 위해 금지령을 내려야 했으며 역설적으로 이것은 교단의 복장 규정이 잘 지켜지지 않았다는 반증이기도 했습니다.
다시 시대를 앞서 돌아와, 세속기사와 함께 전장으로 출정한 13세기 후반~14세기 초반의 튜턴 기사 입니다. 기사단 군대의 기사들은 보통 튜턴 기사뿐만이 아니라 기사단령의 세속기사들이 함께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 기사는 호버크를 착용하고 기사단 문장을 표시한 크레스트를 투구 위에 올렸으며 그 아래에 천으로 만들어진 맨틀을 늘어뜨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레이트 헬름은 무게가 무겁고 시야가 좁아진다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14세기 초반까지 개량의 노력이 이어졌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착용 빈도가 줄어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레이트 헬름은 그 독특한 모양으로 인해 기사도의 상징으로 여겨졌으며, 따라서 그림에서와 같이 투구 위에 크레스트를 올리거나 리벳으로 다양한 장식을 달아 의장용으로 명맥을 유지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캐틀햇 투구는 실전에서 상당히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이 투구의 넓은 차양은 떨어져 내리는 화살이나 볼트에 대해 더 나은 방호력을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착용자로 하여금 넓은 시야를 제공했습니다. 캐틀햇은 14세기 후반이 접어들면서 서서히 배서닛 투구에 그 자리를 내어주기 시작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4세기에 이 투구가 차지하는 비율은 상당했습니다. 1404년 당시 마리엔부르크 무기고에 저장된 투구 500점 중에서 250점이 캐틀햇이었고, 이러한 높은 비율은 16세기까지도 계속 이어져 가히 튜턴 기사단의 국민투구라 할만 했습니다.
코트-오브-플레이트 역시 14세기 내내 상당한 비율로 사용되었습니다. 1391년 마리엔부르크 성 무기고의 갑옷 목록에는 약 450점의 코트-오브-플레이트를 확인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 비율은 브레스트 플레이트의 사용 빈도가 늘어나면서 조금씩 떨어진 것으로 보이며, 1404년이 되면 이러한 유형의 갑옷은 324점으로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14세기 후반~15세기 초의 튜턴 기사와 세속기사입니다. 세속기사는 전통적인 삼각 방패에 바이저가 없는 배서닛을 쓰고 있지만, 앞에서 그를 이끌고 있는 튜턴 기사는 랜스 홈을 만든 방패를 들고 바이저가 달린 배서닛을 쓰고 있습니다. 이러한 바이저는 앞 부분이 뾰족하게 튀어나온 돼지 얼굴, 또는 훈디스코겔 (Hundiskogel)이라고 하는 개 주둥이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바이저의 종류는 이렇게 뾰족한 것뿐만 아니라 보다 부드럽게 곡면 처리된 형상도 있었습니다.
또한 이 기사들은 기존의 코트-오브-플레이트가 아니라 브레스트 플레이트를 가슴에 걸치고 있으며, 팔과 다리 부분에도 딱 맞게 만들어진 플레이트를 걸쳐 방호력을 강화하였습니다. 플레이트 아머의 방어 범위는 이후로도 조금씩 늘어나게 됩니다.
기사단 국가의 종반부인 16세기의 튜턴 기사입니다. 풀 플레이트 아머를 걸친 서구 기사의 최종 완성형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기는 기사단 국가가 붕괴하던 시기로 강력한 군사력은 이미 먼 과거의 일이었습니다. 1525년에 프러시아가, 1562년에는 리보니아의 기사단이 세속화 되었고, 그리하여 기사단 국가는 종말을 맞이했습니다.
독일로 물러난 잔존 기사단은 합스부르크 가문을 도와 오스만 투르크를 상대로 나름대로 성전을 계속했습니다. 비록 그 군대의 규모는 전성기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줄어들어 1591년 당시 기사단이 동원한 군대는 고작 기병 151기와 보병 100명에 불과했지만, 18세기가 되어 십자군 운동이 완전히 사멸될 때까지 이교도에 대한 성전이라는 기사단의 공식적인 목표는 계속 고수되었습니다.
□ 끝마치며
더 이상 튜턴 기사들은 발트해에서 말을 달리지 않게 되었지만 그들의 군사유산은 후대 독일 군대에 차용되어 각종 상징이나 훈장의 형태로 자주 보게 됩니다. 그들의 존재는 독일 인들에게는 동방의 ‘야만족’에 맞선 서구의 개척자와 수호자의 이미지로, 그리고 동유럽 인들에게는 잔인하고 탐욕스러운 침략자의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창건한 토루인(토룬), 엘브롱(엘빙), 칼리닌그라드(쾨니히스베르크), 클라이페다(메멜), 크비진(마리엔베르더), 바르토쉬체(바르텐슈타인), 소베츠크(틸지트), 옐가바(미타우), 다우가필스(뒤나부르크)와 같은 많은 도시들은 아직도 그 자리에 남아 기사단이 이 지역에 끼친 영향력의 무게를 말없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이 기사단을 다루는 것은 어려운 작업이었던 것 같습니다. 영문 원서나 싸이트를 전적으로 의지하는 과정에서 오역과 오류를 범했을 위험이 크고, 특히 인명이나 지명의 표기에서 많은 혼란이 눈에 보입니다. 한편으로는 폴란드나 리투아니아 측의 자료들이 영문으로 번역되어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래도 어설프게나마 이 소재를 건드려 보았다는 정도에서 위안을 느끼며 시리즈를 마치겠습니다.
참고자료 :
Northern Crusades (Eric Christiansen)
A history of the Crusades (Jonathan Riley-Smith)
Arms and Armor in the medieval! Teutonic Order's state in Prussia (Andrzej Nowakowski)
The Teutonic Order of Holy Mary in Jerusalem (Guy Stair Sainty)
Horses and Crossbows:Two Import!ant Warfare advantages of the Teutonic Order in Prussia (Sven Ekdahl)
Teutonic Knight (Osprey Publishing)
The Knights of Christ (Osprey Publishing)
Tannenberg 1410:Disaster for the Teutonic Knights (Osprey Publishing)
http://en.wikipedia.org/wiki/Teutonic_Knights
http://de.wikipedia.org/wiki/Deutscher_Orden
http://en.wikipedia.org/wiki/Monastic_State_of_the_Teutonic_Knights
http://www.imperialteutonicorder.com/
http://www.crystalinks.com/teutonicknights.html
http://www.crwflags.com/fotw/flags/de_to.html
http://www.warfareeast.co.uk/main/Medieval_Germany.htm
http://www.damian-hungs.de/Deutschordenspriester.html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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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많이 부탁드리구요. 기사단장이라는 지위가 처음에는 주교 아래였던 것으로 들었는데, 나중의 지위는 어떤가요? 기사단장의 가톨릭 교회 조직 내에서의 직속 상관이라면...??
기사단장은 교황 직할로 알고 있습니다. 동시에 튜턴 기사단장의 경우에는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신하이기도 하지요. 그리고 기사단령의 주교들과 기사단은 원칙적으로는 동일한 위계질서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주교와 기사단의 서열과 권력범위가 명확하지 않았다는 점은 리보니아에서 특히 말썽을 일으켰지요.
Sweik는 독어식 발음으로 슈바이크 아닙니까?
슈바이크가 맞습니다. (orz)
수고하셨습니다 아 그리고 저도 독일어 공부해봐서 알겠지만 저는 독일어가 영어보다 알아듣기도 쉽고 단어도 거의 그대로 읽으면 되고 문법도 정해져있지요 참 놀랐습니다 참 쉬었습니다 물론 여성 남성격 그런 것도 있었지만 영어 보다는 규칙에 거의 맞아 떨어지는 신기한 구조인 것 같습니다 그것에 비해 영어는 너무 혼란 스럽지요 단어도 로망스 게통의 언어와 기존의 게르만 언어의 혼합 단어의 발음에 있어서도 통일이 없고... 그런 것에 또 비하자면 한국어는 참.... 아무튼 수고 하셨습니다
독일어의 규칙성과 조어의 간단함은 대단하다는 생각입니다. 대신 구어체는 지역별로 차이가 많이 난다더군요. 독일어 부전공 주제에 자신 있는 건 데어 데스 뎀 덴(-_-) 밖에 없지만 아무튼 그렇습니다.^^;
저희 영어 선생님이 독일어가 딱 부러져서 좀만 열심히 해도 잘 할 수 있다고 한 말이 기억나는군요. 하지만 영어도 못하는데 독일어는 무슨..(OTL;;)
그동안 잘봤습니다.
수고많으셧습니다. 덕분에 튜턴나이트와 당시 동유럽의 상황에 대해 자세히 알수있었습니다.
늦었지만 정말 잘봤습니다 (__)
잘봤습니다. 아랍인의 눈으로 본 십자군전쟁 -- 이란 책 보세요 재미있을겁니다.
잘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