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방[5141]두보시 陪裴使君登岳陽樓(배배사군등악양루)
陪裴使君登岳陽樓(배배사군등악양루) - (杜甫)
배사군을 모시고 악양루에 올라
湖闊兼雲霧(호활겸운무)
광활한 동정호에 운무 뒤덮혔더니
樓孤屬晩晴(루고촉만청)
누각이 외로이 해질 무렵 개인 풍경 속에 있습니다.
禮加徐孺子(례가서유자)
절 예우하심이 서유자보다 더하신데
詩接謝宣城(시접사선성)
사군의 시는 사조에 가깝습니다.
雪岸叢梅發(설안총매발)
눈 쌓인 언덕에 떨기 이룬 매화가 피어나고
春泥百草生(춘니백초생)
봄 진흙 속에서 온갖 풀이 돋아나고 있을 때.
敢違漁父問(감위어부문)
제가 감히 어부의 뜻을 어기리까?
從此更南征(종차갱남정)
이곳으로부터 다시 남쪽으로 가렵니다.
陪배=모시다2.용서를 빌다3.곁에서 도와주다
徐孺子서유자=東漢시대 名士, 이름은 稚치. 字는 孺子유자.
謝宣城사선성= 謝脁사조,산수시인 사영운과 함께 '대소사'로 불린다.
선성의 태수를 지냈으므로 사선성이라고도 한다.
영명체의 대표적인 작가이다.
그의 작품은 음운의 조화와 정련된 형식을 추구해
당대 율시·절구의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
특히 산수경물을 묘사하는 데 뛰어나 명작
〈만등삼산환망경색 晩登三山還望京色〉에서 봄날 강가의 해 저무는
경치를 묘사한, "남은 노을 흩어져 비단을 엮고,
맑은 강물 고요히 명주인 듯하여라!"라는 구절은 후세에 즐겨
애송되고 있다. 당나라의 많은 시인들이 사조의 시를 중시했는데,
이백(李白)은 자신의 시에서 여러 차례 그를 칭찬하고 있다.
※이 시는 769년 봄에 두보가 악양에 머물고 있을 때 지어졌다.
배사군은 이 무렵에 악주자사를 지낸 배은을 지칭하는 듯하다.
두보는 배사군을 칭송하면서 경치를 묘사하는 한편
남쪽으로내려가고 싶다는 자신의 희망을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