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나면 언제라도 답답한 도심을 훌쩍 떠나 교외선 전철을 타고 바람을 쐬러 나선다. 내가 즐겨 찾는 곳으로 용문 방면에 양수리 역에서 내려 갈 수 있는 세미원이다. 연꽃단지로 유명하며 언제나 관광객들이 연꽃을 감상하러 몰려든다. 매년 열리는 연꽃 축제가 올해도 7월 초에서 8월까지 어김없이 시작 된다. 매번 꽃은 놓치고 잎이나 마른 대궁에 맺힌 연밥만 보다가 이번은 제대로 때를 맞춘 것 같다. 세미원이란 이름이 관수세심 관화미심(觀水洗心 觀花美心)에서 ‘물을 보며 마음을 씻고 꽃을 보며 마음을 아름답게 하라’는 뜻으로 세미원(洗美園)이 됐다고 한다.지상의 뭇꽃들이 다 아름답지만 연꽃은 더러운 흙탕물에 뿌리를 내리고 최상의 고운 빛깔로 피어난다는 게 더욱 값지게 다가온다. 활짝 피기 전에 긴 대궁에 맺힌 꽃봉오리가 하늘을 향해 솟구친 모양새가 고고한 기품마저 풍긴다. 백련은 초록 바다에 떠 있는 눈송이라면 홍련은 초록 바다를 밝히는 등불처럼 은은하다. 연못 한 가운데에 심청황후의 형상을 꾸며 놓은 게 효녀 심청이가 인당수 깊은 물에 빠져 용왕님께 나아갈 때 연꽃송이에 싸여 궁궐에 데려간 이야기를 상징화한 듯하다. 그리스 신화에도 비너스 여신은 파도에 밀려 바닷가에 하얀 연꽃송이에 (사실은 조개껍질)에 싸여 눈부신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을까.연꽃 정원에 웬 추사 기념관이 세워졌을까하여 ‘약속의 정원’이라고 이름 붙인 추사 김정희(1786년 - 1856년)의 기념관에 들렸다. 제주도 여행 중에 추사가 위리안치된(탱자나무 가시 울타리) 유배지를 방문한 기억이 있어 반갑기도 했다. 여기에서 테마는 추사와 우선 이상적(1804년-1865)의 아름답고 맑은 사제지간의 정을 느끼게 하는 것과 세한도의 탄생과 보존이라는 스토리텔링이 아닌가 싶다. 국보로 지정된 세한도는 추사가 유배 기간에 제자 이상적에게 고마운 심정을 표현한 작품이다. 제자는 역관 출신으로 청나라를 들락거리며 사재로 모은 귀한 책과 문방구류를 스승에게 배편에 실어 전달했다. 권력의 자리에서 물러나면 대부분 돌아보지 않는 게 인지상정인데 그는 끝까지 스승에 대한 공경과 사랑, 신뢰를 보여 주었다. 스승은 이런 제자에게 유명한 세한도 작품을 그려 주게 된다. 소나무와 잣나무가 한 겨울 추위 속에 단칸 초가집을 지키고 있는 듯한 그림. 아마 자신의 쓸쓸한 처지를 드러냄이 아니었으랴. 그림에 찍힌 낙관에 장무상망(長毋相忘 오래도록 서로를 잊지 말자)이란 글귀를 적어 놓았다.세한도를 받아 든 제자는 청나라의 16명의 학자들에게 자랑 삼아 보여 주고 감상문(제찬)을 한 마디씩 쓰게 하였고 그들은 모두 호평을 아끼지 않았다. 귀중한 이 그림은 세월이 흘러 일본인 수집가의 손에 넘어 가 영영 고국에 돌아오지 못할 뻔 했다. 진도 출신 손재형 서예가(1903년- 1981년)가 수소문 끝에 일본으로 건너 가 무릎 꿇고 사정하여 겨우 되돌려 받고 나오자마자 2차 세계 대전중에 수집가의 집이 폭격을 맞아 불타버렸다고 한다. 한 발만 늦었으면 세한도의 운명도 끝나버렸을 지경에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고국의 품에 무사히 돌아오게 되었다. 추사 선생을 사랑하는 제자로서 손재형 선생님의 헌신적 노력이 얼마나 귀중함을 느끼게 한다.최근에 읽은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은 모리 교수와 제자(미치 앨봄)의 감동적인 사제 관계를 엿보게 하는 내용이다. 모리 교수는 사지를 쓰지 못하다가 죽게 되는 루게릭 병 환자이었다. 그는 졸업후 16년 만에 찾아 온 제자와 14회에 걸쳐 화요일에 만나 마지막 강의 형식으로 책(논문)을 남긴다. 늙고 병든 어려운 처지의 스승을 아무도 찾지 않는 가운데 수제자이었던 미치는 옆에서 정성을 다해 돌보고 녹음을 통해 스승의 자서전을 펴낸다. 인생을 주제로 한 모리 교수의 강의 내용은 죽음과 나이 드는 두려움, 탐욕, 결혼, 가족 사회, 용서, 의미 있는 삶에 대한 것으로 이루어진다.모리 교수가 남긴 많은 메시지 가운데 ‘죽음은 생명이 끝나는 것이지 관계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라고 역설한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우리가 가졌던 사랑의 감정을 기억할 수 있는 한 우리는 진짜 우리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잊혀 지지 않고 죽을 수 있다. 내가 가꾼 모든 사랑이 거기 그 안에 그대로 있고 모든 기억이 여전히 거기 고스란히 남아 있는 한 나는 계속 살아 있다. 나와 관계된 모든 사람들의 마음 속에. 스승은 제자에게 죽기 전에 자신과 화해할 것을 가르친다. 그리고 다른 사람도 용서하라고 강조한다. 죽음은 우리가 자연의 일부로 받아들인다면 결코 소란 떨 일이 아니라고 한다. 그는 평범한 일상을 소중히 여기라고 얘기하며 자신이 24시간만 건강할 수 있다면 평범한 일상을 누리는 것으로 바랄 게 없다고 말한다. 자기 인생을 의미 있게 살려면 자기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을 위해 바칠 것을 얘기한다. 자신이 중병을 앓고 있지만 이로 인해 다른 가족의 삶을 망가뜨리는 일은 있어선 안 되고 심각한 피해를 주고 싶지 않다고 한다. 마침내 스승은 숨을 거두고 약 석 달 남짓의 대화를 통해 한 권의 유서 같은 책은 완성 된다.나의 중학교 때 홍일점 여교사이었던 분과 고희가 지난 현재까지 인연을 이어 오고 있다. 매년 5월이면 스승의 날에 선생님을 찾아뵙고 점심을 함께 나눈다. 결혼도 하지 않은 채 독신으로 살며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실버 요양원에 들어 가 조용히 여생을 보낸다. 만나 뵈러 갈 때마다 미리 나와 기다리시던 분이 올해부터 달라지셨다. 수녀님의 얘기론 선생님께 약간 치매 기가 온 것 같다고 귀 띰 해 준다. 그렇게 얘기도 잘 하고 총명하시던 분이 세월 앞에서 그만 무너지고 있다. 점심을 드시면서 선생님은 아마 우리와 같은 사제 관계도 찾아보기 힘들 것 같다고 내게 연신 감사하다고 말씀하신다. 사춘기 시절 문학 소년이었던 내 가슴에 찾아 온 한 분과 이렇듯 오랜 세월 마주한다는 게 행복이 아니랴.인생길에서 단 한 명이라도 기억 속에 간직할 사제 관계가 있다면 얼마나 맑고 향기로운 연꽃 향 같은 장무상망일까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