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8년6월13일-14일(土,日)雲雨
▲백두대간14차(피재~매봉산~싸리재...황지...화방재)
해봉,메아리(12+19=31명)
♠참 고
▲함백산(咸白山)
위치 : 강원 정선군 고한읍과 태백시의 경계
높이 : 1,573 m 내용 출처 : 두산세계대백과
높이 1,573m. 부근은 국내 유수의 탄전지대이며, 산업선인 태백선 철도가 산의 북쪽
경사면을 지난다. 오대산(五臺山:1,563m) 설악산(雪嶽山:1,708m) 태백산(太白山:1,567m)
등과 함께 태백산맥에 속하는 고봉이다.
북서쪽 사면에는 신라시대에 건립한 것으로 알려진 정암사(淨巖寺)가 있는데, 이곳에는
정암사 수마노탑(水瑪瑙塔:보물 410)과 정암사의 열목어 서식지(천연기념물 73)가 있다.
▲금대봉(金臺峰)
위치 : 강원 태백시 창죽동, 정선군 고한읍, 삼척시
높이 : 1,418m
내용 출처 : 두산세계대백과
한강과 낙동강의 발원지인 검룡소와 용소, 제당굼 샘을 안고 있는 의미 깊은 산으로
금대라는 말은 검대로, 신이 사는 곳이라는 뜻이고 또한 금이 많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산중에는 주목을 비롯하여 각종 원시림이 빽빽히 차 있고 창죽마을의 진산이다.
이 산과 대덕산(1,307m) 일대 126만 평은 환경부가 자연생태계 보호지역으로 정한
곳으로 그만큼 생태계가 잘 보존되어 있는 곳이다. 천연기념물 하늘다람쥐가 서식하는
것을 비롯해 꼬리치레도롱뇽의 집단 서식지가 있으며 식물도 풍부해 모데미풀 한계령풀
대성쓴풀 가시오갈피 등 희귀식물이 많이 자라고 있다.
이 산 기슭에 있는 제당굼샘과 고목나무샘물골의 물구녕 석간수와 예굼터의 석간수에서
솟는 물이 지하로 스며들어 검룡소에서 다시 솟아 나와 514km의 한강발원지가 된다.
지금까지 오대산 우통수가 한강의 발원지라고 알려져 있었으나 오대천과 창죽천의 합수
지점인 정선군 북면 나전리에서 도상실측을 한 결과 창죽천이 약 32km나 더 긴 것으로
밝혀졌다.
그래서 국립지리원에서 한강의 발원은 강원도 태백시 창죽동 금대봉 기슭이라는 공인을
받게 된 것이다. 둘레 20여m에 깊이를 알 수 없는 검룡소는 석회 암반을 뚫고 올라오는
지하수가 하루 5천 톤 가량 용출하고 있으며 솟아 나온 물이 곧바로 20여m의 폭포를
이루며 쏟아지는 광경은 장관을 이루고 있다.
산행의 시작인 싸리재는 이 산과 함백산(1,578m)을 가르는 백두대간 위의 고개로 38번
국도가 지나간다. 주능선만 접어들면 어렵지 않게 정상에 오를 수 있어 가벼운 마음으로
산행을 할 수 있다.
산 정상에서 무턱대고 표지기를 따라가면 백두대간 능선으로 들어서게 되므로 왼쪽의
등산로로 들어서서 두문동재를 향해 가야 한다. 싸리재에서 시작, 정상을 거쳐 분주령-
대덕산-살개목-큰골로 내려오는 코스는 산행 시간만 6시간이 걸린다.
태백시에서 싸리재를 넘어 고한읍이나 사북읍까지 다니는 버스는 하루 15회 있으며
싸리재까지는 15분이 걸린다. 하산지점인 안창죽마을까지 다니는 버스는 하루 2회밖에
없으므로 35번 국도까지 걸어 나와서 태백시와 하장면을 운행하는 버스를 이용한다.
안창죽마을에서 국도까지는 걸어서 30분이 걸린다. 국도의 창죽정류소에서 태백시까지
버스를 타면 30분 걸린다.
♥ 정암사(淨巖寺)
강원 정선군 동면(東面) 태백산에 있는 사찰.
종파 : 대한불교 조계종
창건시기 : 636년(선덕여왕 5)
창건자 : 자장
내용 출처 : 두산세계대백과
대한 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月精寺)의 말사이다. 자장(慈藏)이 636년
(선덕여왕 5)에 당(唐)나라에 들어가 문수도량(文殊道場)인 산시성 [山西省] 운제사
(雲際寺)에서 21일 동안 치성을 올려 문수보살을 친견(親見)하고, 석가의 신보(神寶)를
얻어 귀국한 후 전국 각지 5곳에 이를 나누어 모셨는데, 그 중 한 곳이 이 절이었다고
한다. 신보는 석가의 정골사리(頂骨舍利)와 가사, 염주 등인데, 지금도 사찰 뒤편 천의봉
(天衣峰) 중턱에 남아 있는 보물 제410호인 수마노탑(水瑪瑙塔)에 봉안 되어 있다고 하여,
법당에는 따로 불상을 모시지 않고 있다.
기록에 따르면 이 절은 1713년(숙종 39) 중수했는데 낙뢰로 부서져 6년 뒤 중건하였고,
최근에 새로 두세 차례 중건하였다. 이 사찰에는 천연기념물 제73호인 정암사열목어서식지
(淨巖寺熱目魚捿息地)도 있다.
♧산행 코스
05시50분 피재
07시05분 매봉산
10시00분 금대봉
10시20분 싸리재
-----
11시55분 태백시 황지
-----
13시15분 화방재
15시15분 후미 마지막 하산
총 9시간25분
☞☞☞일기예보 탓인가 아니면 월드컵, 대 맥시코전 시청 때문인가.
두 산악회가 합쳐, 평소보다 한 시간 늦게 밤 11시에 출발했는데도
관광버스 안은 31명 밖에 되지 않습니다.
경부고속도로 영천 나들목을 빠져 국도를 달리다
12시40분경, 회원들의 성화로 월드컵 예선전을 보기위해
어느 고개의 쉼터에 정차, TV를 시청합니다.
하석주가 선취골을 넣자 버스안과 쉼터 안이 동시에 환성이 터졌으나
후반 전에 한골 먹고 연이어 두 꼴을 먹자 TV를 끄고 힘없이 출발합니다.
안개구름 속에 비를 뿌리는 피재에 도착한 것이
05시45분. 피재‘삼강(낙동강 한강 오십천)이 발원하는 삼수령 피재입니다.’
간판이 비에 축축이 젖어있는데 대원들은 바쁘게 우의로 무장하고
05시50분, 박 대장을 선두로 왼쪽 콘크리트 포장의 임도를 따라 올라갑니다.
비는 계속 부슬부슬 내리고
06시30분, 왼쪽으로 난 사이 길로 올라갑니다.
지름길이었는지 철조망을 넘고 다시 임도를 따라 올라가다
06시40분, 비도 피할 겸 고랭지 밭 관리컨테이너 막사가 보여
선두가 그 안으로 들어갑니다.
컨테이너 안은 비어있고 먼저 도착한 사람들은
준비해온 아침식사를 하고 있습니다.
약 10분간 식사를 마치고 비가 더 뿌려 심상치 않은 날씨에
바지도 우의로 겹쳐 입습니다.
촬영은 비 때문에 깨끗이 포기,
캠코더 보호를 위해 비닐로 포장하여 배낭에 넣고
가시거리 약 5m의 짙은 안개구름 속 밭고랑을 가로질러
등로에 올라섰는가 했더니 흐린 시야에 등로는 다시 살아지고
가로질러 내려간 끝이 또 다른 고랭지 컨테이너 창고 앞.
이번은 큼직한 자물통이 굳게 채워져 있어 그 앞에서 우왕좌왕합니다.
박 대장, 임 대장을 비롯한 집행부 몇 사람이 대간 길을 찾는다고
주변을 수색하는데 빗방울은 더욱 굵어지고
신발 안은 벌써 물이 스며드는지 감각이 심상치 않습니다.
거의 30분을 비를 맞으며 지체하자
여기저기서 불평이 쏟아져 나옵니다.
“우리 여기서 이럴게 아니라 도로 빽, 하입시더!”
“그래도 집행부의 지시를 따라야지 좀 더 기다려 보입시더.”
그리고 약 10분이 지나자 저쪽에서 고함소리가 들려옵니다.
“이쪽으로 오세요!”
대간 길을 고랭지로 개간하는 통에
지형지물이 바뀌어 도무지 비와 안개구름 속에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이제 비도 잦아지고
해서 배낭에서 캠코더를 꺼냅니다.
등로를 따라 잰걸음으로 비 맞은 숲을 헤치며 올라가니
07시05분, 박 대장이 갈림길에 서서 왼편을 가르치며 소리칩니다.
“매봉산 정상이 조금만 가면 있습니다. 가 보실 분은 갔다 오세요.”
하지만 다시 내리는 비와 안개구름으로 시야가 흐려
깨끗이 포기하고 오른쪽으로 꺾어 가다
다시 비가 내려 캠코더를 배낭 속에 넣습니다.
비와 짙은 안개구름과 좌우 숲속을 앞사람 뒤만 따라가는데
해발 1279m의 비단봉은 언제 넘었는지 알 수 없고
그냥 비속에 앞사람의 등산화 뒤만 보고 따라갑니다.
쑤아밭령, 1233봉, 1256봉도
큰 기복 없이 수월하게 통과합니다.
10시, 철탑아래 흰 페인트칠한 목비 앞에 올라섭니다.
‘양강 발원 봉’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금대봉(金臺峰)입니다.
한강과 낙동강의 발원지인 검룡소와 용소,
제당굼 샘을 안고 있는 산으로
금대라는 말은 검대로, 신이 사는 곳이라는 뜻이고
또한 금이 많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많은 대원들이 그 우중에 기념촬영에 여념이 없는데
저도 배낭에서 캐논과 캠코더를 꺼내어 바쁘게 촬영하지만
렌즈가 습기 때문에 화면은 엉망입니다.
장비를 다시 배낭에 넣고 10시방향의 임도를 따라
‘싸리재’(두문동재)로 내려갑니다.
비는 계속 내리고
10시22분, 부슬비와 안개구름으로 덥힌 싸리재에 내려섭니다.
국도 38번 아스팔트 포장도로변에
‘고원의 도시 태백시입니다.’ 큼직한 간판이,
맞은편엔 ‘함백산’이라는 큼직한 입간판이 시선을 끕니다.
많은 대원들이 도로 건너편에서 웅성이고 있습니다.
빗발은 다시 굵어지고 이 상태로는 촬영은커녕 캠코더도
빗물에서 보호할 수 없어 깨끗이 산행을 포기하기로 합니다.
10시30분, 박 대장, 임 대장을 비롯한 아버지를 따라온
초등학교 4학년 어린이등 10여명을 제외한 나머지 대원들은
안 대장의 가이드로 함백산을 향해 잿빛 능선으로 올라갑니다.
잔류 팀은 비를 피하기 위해 근처에 있는 휴게실로 들어갑니다.
철판 용접으로 만든 불이 타고 있는 난로 가에 둘러앉아
젖은 장비와 옷을 말리며 간식을 하고
따뜻한 어묵과 국수를 시켜 몸을 대웁니다.
11시38분, 대기하고 있는 관광버스에 올라 태백시로 향해 내려갑니다.
구곡양절의 내리막 도로를 얼마나 내려왔을까.
안개구름과 비속을 어느 사이 빠져나와
약 20분 뒤 태백시내로 들어갑니다.
충분한 시간. 전화위복의 시간으로 만들기 위해 박 대장과 임 대장에게
우선 낙동강 발원지라는 ‘황지’를 촬영하고 오겠다고 이르고
길을 찾아 나섭니다.
시가지 한가운데 공원처럼 가꾸어 놓은-‘黃池’
라고 음각해 놓은 큼직한 석비가 버티고 앉아
나그네를 불러드립니다.
조용한 낮 시간, 경내는 ‘洛東江 千三百里 예서부터 시작되다’
라고 음각한 약 5m 높이의 입석비가 시선을 끕니다.
그 옆으로 석축으로 만들어 놓은 둘레가 100m인 상지, 중지, 하지로 구분되며
1일 5,000톤의 물이 용출하고 있다는 맑은 연못 속에 물고기들이
유영을 하고 있습니다.
황지에 관한 아래와 같은 전설이 있습니다.
옛날 황부자 집터가 연못이 되었다하여 황지(黃池)라고 부르기 전에는
하늘 못이란 뜻으로 천황(天潢)이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황부자 전설은
시주를 청하는 노승에게 시주 대신 쇠똥을 퍼 주었는데
며느리가 보고 놀라 시아버지의 잘못을 빌며 쇠똥을 털어내고
쌀을 한 바가지 시주하니
"이 집의 운이 다하여 곧 큰 변고가 있을 터이니 살려거든 날 따라 오시오.
절대로 뒤를 돌아다 봐서는 안된다."
라는 노승의 말을 듣고 뒤따라가는데
도계읍 구사리 산등에 이르 렀을 때
자기 집 쪽에서 갑자기 뇌성벽력이 치며 천지가 무너지는 듯한
소리가 나 놀라서 노승의 당부를 잊고 돌아다보았다.
이 때 황부자 집은 땅 밑으로 꺼져 내려가 큰 연못이 되어버렸고
황부자는 큰 이무기가 되어 연못 속에 살게 되었다.
며느리는 돌이 되어 있는데 흡사 아이를 등에 업은 듯이 보인다.
집터는 세 개의 연못으로 변했는데
큰 연못이 집터, 중지가 방앗간 터, 하지가 화장실 자리라 한다.
이런 경관들을 캠코더에 담은 뒤 식당으로 되돌아와
5000원짜리 곰탕으로 식사를 하고
13시, 화방재로 출발합니다.
우측으로 황지천인지, 철광석 탓인가
황갈색으로 변색한 하천을 끼고 오르다
약 15분 뒤, 봄이면 진달래와 철쭉으로 물들어 꽃방이 된다는
해발 936m의 화방(花房)재에 오릅니다.
예전에는 정거리재 라고도 했는데 어평재라는 이름도 있습니다.
조선왕조의 단종이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영월 청령포에서 죽임을 당하고
그 혼령이 태백산으로와 산신이 되었을 때 이곳을 지나오셨다하여
왕이 지나간 재, 어평재로 부르기도 한답니다.
주유소에 차를 주차, 밖으로 나와
대원들이 넘어올 안개구름이 덥힌
수리봉을 바라봅니다.
14시40분, 수리봉 자락인 도로 건너편의 비탈진 숲속에서
A팀의 선두구릅 6명이 내려옵니다.
김 대원등 밝은 표정이지만 아랫도리는 모두 흥건히 젖어있고
몇 사람은 손을 흔들지만 상당히 지쳐있습니다.
뒤를 이어 서너 팀이 도착하고
15시15분, 김성수, 이진복, 홍일점 아주머니등 5명이 마지막으로 내려옵니다.
그렇게 비를 맞았지만 무척 땀을 많이 흘렸는지
수도가에서 김성수, 이진복은 웃통을 벗고
엎드려 시원하게 서로 등물을 칩니다.
간단한 간식을 하고
15시40분, 부산을 향해 화방재를 내려갑니다.
얼마 달리지 않아 푸른 하늘에 햇살까지 비춥니다.
박대장과 운전기사의 친절로 달리는 차안에서
주변경관을 촬영하며 가는데
특히 구문소 앞의 일시 정차, 기암괴석위의 정자,
‘나제통문’같은 자연 암벽 터널 통과 시에는
서행하며 촬영의 편의를 봐줍니다.
지난번 산행시 촬영한 비디오를 시청하며
모두 느긋하게 달립니다.
좌우측으로 철로, 터널, 철교를, 때로는 계곡을 끼고
31,35번 국도를 달리다 넛재등 서너 개의 고개를 넘고
마지막 고개를 넘을 때는 사방이 확 트여
순간 비행기를 타는 느낌도 받습니다.
대부분의 회원들은 깊은 잠에 빠져 있지만
귀로의 경관을 촬영하는 즐거움은
이 방면에 빠지지 않는 사람은 잘 모르리라.
청량산 옆을 지나 도로 가운데
당당하게 버티고 있는 느티나무를
도산서원 옆을 지나, 안동을 거쳐
영천 나들목으로 빠져 나와
부산T/G를 통과한 것이 21시30분.
비록 비 때문에 완주는 못했지만
‘황지’와 중부지역의 빼어난 경관을
캠코더에 담은 것 만 으로도
만족하는 하루였습니다.
산 벗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