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어느덧 8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저는 어제까지 근 한 달 가까이의 시간을 강화도 옆 교동도의 작은 공소에서 보냈습니다.
지금껏 보낸 이 교동도에서의 시간들은 제 인생에 큰 기쁨이고 축복이었습니다.
밤하늘에 샐 수 없이 박혀 있는 별들을 보기위해 성당 마당 평상에 침낭을 깔고 누워 밤하늘을 바라보며 마냥
행복해 했었고 여든넷의 할아버지 신부님과 포도주를 마시며 교회와 삶에 대해 늦은 시간 까지 이야기를 나눴으며
(큰 작품을 만들라고 재밌게 살라고 말씀하셨을 때에는 살짝 눈물도 났습니다.)
또 때론 공소 신자들이 싸온 고구마며 호박, 달걀에 굶주린 배를 채울 수 있어 기뻤고, 가끔 오르는
산에서 바라본 북녘의 땅에 더욱 관심 갖게 되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조만간 여러분과 함께 살러 가야 하는데 예행연습 하는듯한 기분도 들어 더더욱 좋았습니다.
원래는 기도책을 집필하려 이 섬에 들어왔건만 목표에는 살짝 어긋났어도 이런 어긋남이라면
그래도 환영하고 싶다는 생각도 듭니다.
혹시나 궁금해 하실 분들을 위해 저의 일상을 옮겨 보았습니다.^^
오늘 복음은 지난주에 이어 예수님께서 당신의 다가올 죽음을 예고하시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수난 예고가 끝나기가 무섭게 베드로가 예수님을 꼭 붙들며 말립니다.
“맙소사, 주님! 그런 일은 주님께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수난에 인간적인 안타까움을 감출 수 없던 것이겠지요.
그러나 연민의 감정이 앞선 베드로였지만 이내 얼이 빠질 정도로 예수님께 혼이 납니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여러분 지금까지 살아오시면서 이보다 더 심한 말 들어보신 분
아마 사도 베드로 말고 태근 베드로였다면 상처 받아서 그 길로 냉담에 빠졌을지 모릅니다.
지난 주에는 그토록 띄워 주시며 하늘 나라의 열쇠까지 주시겠다더니
오늘은 사탄이라니요
그러나 예수님의 이 단호한 말씀 속에는 분명한 가르침이 있습니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그 가르침이란 신앙의 중심은 언제나 인간이 아니라 하느님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느님을 섬기는 것이지, 하느님이 인간을 섬기는 게 아닙니다.
신앙이라는 것이 단지 내 개인 적인 복을 얻기 위한 것이라면 점을 치고 굿을 하는 것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요?
자기 자신이 중심이 되다보면 대게는 ‘적당한 것’, ‘좋은 게 좋은 것’에 머물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는 순간 우리의 영적 성장은 퇴보하고 마는 것이지요.
우리의 성장을 가로막는 사탄이 오늘도 우리 안에서 ‘적당히 살라.’고 속삭입니다.
그럴때 우리는 복음의 예수님처럼 이렇게 힘차게 외쳐야 합니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걸림돌에 대해 조금 더 말해 보려 합니다.
우리 삶에서 걸림돌이 없을 수 없지요? 여러분에겐 어떤 것이 걸림돌입니까?
해야 하지만 하기 싫은 그 무엇. 뭐가 있을까요?
사춘기 둘째 아들, 육아, 명절 음식 준비 ....
삶에서 오는 모든 장애와 불편을 불평과 원망만으로 본다면 그것은 걸림돌
그러나 그 순간에도 처한 상황을 통해서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는다면 그것은 디딤돌
십자가를 지고 간다는 것은 걸림돌을 디딤돌로 여기겠다는 것
인터넷 상에 올라와 있는 이야기 들려드립니다.
나와 아내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나는 오른손잡인데 아내는 왼손잡이다.
그래서 습관에 따라 국그릇을 왼쪽에다 잘 갖다 놓는다. 별거 아닌 것 같은 그 차이가 신경을 건드린다.
거기다 나는 종달새 형이다. 새벽시간에 일어나서 설친다. 늦잠을 자면 무조건 게으르다고 여긴다.
그런데 내 아내는 올빼미 형이다. 밤새 부엉부엉하다가 새벽녘에야 잠이 든다. 도대체 맞는 구석이 없다.
나는 물 한 컵을 마셔도 마신 컵을 즉시 씻어 둔다.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이고, 언제 해도 할 일이며 제가
다시 손을 댈지 모를 일이 아닌가 말이다.
그런데 내 아내는 그게 안 된다.
찬장에서 꺼내 쓸 그릇이 없을 때까지 꺼내 쓰다가 한꺼번에 씻고 몸살이 난다.
나는 미리 준비하는 스타일이다. 그런 나와 달리 아내는 떠나야 할 시간에 화장한다고 정신이 없다.
다가가서 보면 참으로 가관이다. 화장품 뚜껑이라는 뚜껑은 다 열어 놓고 있다.
나는 그게 안 참아진다. 나도 모르게 버럭 화를 낸다.
"아니, 이렇게 두고 외출했다 집에 돌아오면 향 다 날아가고, 뭐 때문에 비싼 돈 주고 화장품을 사.
차라리 맹물을 찍어 바르지."
그렇게 아내를 다그치고 몰아세울 때 하늘의 음성을 들었다.
'잘하는 네가 해라, 이놈아. 안되니까 붙여 놓은 것 아니냐.'
너무 큰 충격이었다. 생각의 전환, 그렇게 나 자신을 아이스 브레이킹(Ice breaking)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게 있다. 나의 은사는 무얼까? 하지만 뜻밖에도 너무 간단하게 은사(gift)를 알 수 있다.
내 속에서 생겨나는 불평과 불만 바로 그것이 자신의 은사인 것이다.
일테면 내 아내는 물건이 제자리에 놓여 있지 않고 종이 나부랭이가 나뒹구는데도 그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니까 불편한 게 없다. 오히려 밟고 돌아다닌다.
하지만 나는 금방 불편해진다. 화가 치민다.
이 말은 내가 아내보다 정리정돈에 탁월한 은사가 있다는 증거다.
이 은사를 주신 목적이 상대방의 마음을 박박 긁어 놓고 마음에 상처를 입히는 무기로 사용하라는데 있지 않다.
은사는 사랑하는 사람을 섬기라고 주신 선물이다. 바로 그 때 내가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내 아내한테는 뚜껑 여는 은사가 있고 나에게는 뚜껑 닫는 은사가 있다는 사실을…
그때부터 아내를 대하는 내 태도가 바뀌었다.
아내가 화장한다고 앉아 있으면 내가 다가가 물었다.
"여보, 이거 다 썼어? 그러면 뚜껑 닫아도 되지? 이거는? 그래, 그럼 이것도 닫는다."
이제는 내가 뚜껑을 다 닫아 준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그렇게 야단을 칠 때는 전혀 꿈적도 않던 아내가 서서히 변해 가는 것이다.
잘 닫는 정도가 아니라 얼마나 세게 잠갔던지 이제는 날 더러 뚜껑 좀 열어달라고 한다.
아내의 변화가 아닌 나의 변화,
그렇게 철들어진 내가 좋아하는 기도가 있다.
"제가 젊었을 때는 세상을 변화시킬만한 힘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중년이 되었을 때 인생이 얼마나 덧없이 흘러가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와 함께 평안히 살도록 인도해 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늙어 여생을 돌아보게 되었을 때 저는 저의 우둔함을 깨달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지금 드리는 기도는 저를 변화시켜 달라는 것입니다.
만약 제가 처음부터 이런 기도를 드렸더라면 제 인생은 달라졌을 것입니다."
오늘 제 2독서의 말씀이 이를 보충합니다.
여러분은 현세에 동화되지 말고 정신을 새롭게 하여 여러분 자신이 변화되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 분별할 수 있게 하십시오.
이제 노래 한 곡 들려드립니다.
고인의 기도
최민순 시, 신상옥 곡, 노래
1. 주여 오늘 나의 길에서 험산 산이 옮겨지기를
기도하지 하지 않아요 주여 기도하지 않아요
다만 저에게 고갯길 올라가도록 힘을 주소서
다만 저에게 고갯길 올라가도록 힘을 힘을 주소서
2. 주여 내가 가는 길에 부딪히는 돌이 저절로
굴러가길 원치 않아요 굴러가길 원치 않아요
그 넘어지게 하는 돌을 오히려 발판으로 만들어 가게 하소서
그 넘어지게 하는 돌을 오히려 발판으로 만들어 가게 가게 하소서
3. 주여 넓고 편한 길 그런 길 바라지 않아요
좁고 험한 길이라도 주와 함께 가길 원해요
주와 함께 가도록 더더욱 깊은 믿음 주세요 믿음 주세요
주와 함께 가도록 더더욱 깊은 믿음 주세요 믿음 믿음 주세요
곧 만나게 될 여러분의 본당 신부가
2014/08/29/20:33
*다음 번으로 넘어가면 고인의 기도 음원을 올렸습니다.
성가는 한분도 안 듣고 강론만 읽고 가시는군요.ㅉㅉㅉ
첫댓글 신부님 말씀 너무 마음에 와 닿네요~~ 정말 감사 합니다~!
하루 빨리 뵙고 싶습니다~~
그리되리라고 믿고 기다리도록 해요^^*
걸림돌을 디딤돌로 여길수 있도록...
저도 바뀌었으면 합니다
걸림돌이 디딤돌이 되어 다른 사람들도 딛고 지나갈 수 있는
솔리나로 바뀔 수 있습니다.
무한한 잠재 능력이 제게는 보이는데 솔리나 자매님께서는 모르시나봐요.
Learn from yesterday,
live for today,
hope for tomorr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