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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죄, 죽음, 구원, 영생”
Scripture: 창4:5-14
Word: 창4:7
הֲלֹ֤וא אִם־תֵּיטִיב֙ שְׂאֵ֔ת וְאִם֙ לֹ֣א תֵיטִ֔יב לַפֶּ֖תַח חַטָּ֣את רֹבֵ֑ץ וְאֵלֶ֙יךָ֙ תְּשׁ֣וּקָתֹ֔ו וְאַתָּ֖ה תִּמְשָׁל־בֹּֽו׃
Wrong translated Bible:
7 οὐκ ἐὰν ὀρθῶς προσενέγκῃς, ὀρθῶς δὲ μὴ διέλῃς, ἥμαρτες; ἡσύχασον· πρὸς σὲ ἡ ἀποστροφὴ αὐτοῦ, καὶ σὺ ἄρξεις αὐτοῦ. – LXX
7 If thou doest well, shalt thou not be accepted? and if thou doest not well, sin lieth at the door. And unto thee [shall be] his desire, and thou shalt rule over him. - KJV
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개역한글
Word Parsing:
חַטָּ֣את (hata’th: 죄): “חַטָּאָה (hata’ah: 죄가 되는 것, 죄, H2403)”의 여성 단수 명사.
ἥμαρτες (hemartes: 당신은 죄를 지었습니다): “ἁμαρτάνω (hamartanw: sin, G264)”의 부정과거 직설법 능동태 2인칭 단수 동사.
죄(명사): 종교 또는 도덕법에 따라 잘못된 것으로 간주되는 행위.
죄 (명사): 양심이나 도리에 벗어난 행위. 잘못이나 허물로 인하여 벌을 받을 만한 일. 기독교 하나님의 계명을 거역하고 그의 명령을 따르지 아니하는 인간의 행위.
Yah-Bible:
Translation: 7 “If you do well, will you not lift up? And if you do not do well, sin lies at the door. And it desire is for you, but you should rule over it.”.
번역: 7 “네가 바르게 행하면 받아 들여지지 않았겠느냐? 네가 바르게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그 욕망이 네게 있으니 너는 그것을 다스려라.”.
Interpretation: “행하다”는 제사 뿐 아니라 모든 행동을 말한다. 즉 카인이 제사를 바르게 행했더라면 야웨는 그의 제사를 받아들였다는 뜻이다. 제사를 드리는 것처럼 모든 행동을 바르게 행하지 않으면 죄가 양심의 문에 엎드려 죄의 욕망을 네게 행하게 되기 때문에 너는 죄를 다스려 죄의 욕망을 표출하지 않도록 하라는 말씀이다.
*Commentary: 죄는 명사 이고, 죄를 짖다는 동사 이다.대부분 명사의 어근은 동사 이다. 그러나 “죄”라는 명사는 “죄 짖다”라는 동사의 어근 이다. 쉽게 풀어 해석하면, 죄가 행하는 것이지 행하는 것이 죄가 아니라는 말이다.
이해가 안되면, 이 글을 끝까지 읽어보라.
1. Introduction:
페이스북 친구로 부터 아주 귀한 질문을 받았다.
첫째, 성경에서 말하는 죄란 무엇인가? 인간에게 그 죄가 있는가?
둘째, 구원은 어떤 것인가? 인간에게 구원이 필요한가? 구원이 필요하다면 왜 필요한가?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구원의 방법(길)은 하나인가, 아니면 변해 왔는가?
셋째, 인간은 어떤 존재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사실 진정한 기독교라면 이 세가지 질문은 벌써 해결되었어야 한다. 그런데 기독교는 끊임없이 이 세가지의 질문을 하고있는 종교가 되었다.
그 이유는 아무도 원어 성경인 타나크를 읽지 않기 때문이다.
이 세가지 질문은 원죄라는 기독교만의 특이한 교리에 종속 되어있다. 때문에 “죄”가 무엇인가를 정확히 정의하면, 모든 질문이 해결될 것이다.
이 글은 원어 성경인 타나크를 근거하여 작성된다는 것을 독자들에게 미리 알린다.
2. 성경에서 말하는 죄:
질문1. 당신은 죄를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죄”에 대한 당신의 정의를 말해보시오.
국어 사전을 찾아보면, “죄란 명사로 양심이나 도리에 벗어난 행위, 잘못이나 허물로 인하여 벌을 받을 만한 일, 기독교 하나님의 계명을 거역하고 그의 명령을 따르지 아니하는 인간의 행위”라고 쓰여있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이 정의하는 “죄”이다.
기독교인들은 일반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정의하고 있는 “죄”로 성경에 나온 죄를 해석하고, 그들의 신앙에 적용한다. 이렇게 죄를 해석하고 적용하여 나온 교리가 바로 원죄론 이다.
때문에 이 원죄론으로는 위에 질문한 세가지의 질문을 해결할 수가 없다. 그럼 성경에서는 “죄”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가를 살펴보자.
질문2. 당신은 “죄”라는 단어가 처음 나오는 성경 구절이 어디인지 알고 있는가?
기독교인이 된지 60년된 목사의 아내에게 물어보았다. 그녀의 대답은 혹시 ‘아담이 선악과를 따 먹었다는 창3장에 나오지 않을까! 라고 말한다. 찾아보지 않고는 거의 모든 기독교인들의 대답은 동일할 것이다. 이것이 기독교인들의 현실이다.
죄라는 단어는 창4장7절에 처음 나온다. 읽어보자.
“הֲלֹ֤וא אִם־תֵּיטִיב֙ שְׂאֵ֔ת וְאִם֙ לֹ֣א תֵיטִ֔יב לַפֶּ֖תַח חַטָּ֣את רֹבֵ֑ץ וְאֵלֶ֙יךָ֙ תְּשׁ֣וּקָתֹ֔ו וְאַתָּ֖ה תִּמְשָׁל־בֹּֽו׃
7 “네가 바르게 행하면 받아 들여지지 않았겠느냐? 네가 바르게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그 욕망이 네게 있으니 너는 그것을 다스려라.”
이 구절에 사용되고 있는 “חַטָּ֣את (hata’th: 죄)”는 죄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명사 이다.
“죄가 문에 엎드려”는 어떤 문인지 모르지만 죄가 “그 문” 앞에 엎드려 있다. 이 성경 구절을 잘 생각해보면, “문”은 “카인의 마음의 문”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 욕망”은 죄의 욕망 이다. 죄의 욕망이 “네게 있으니”는 죄의 욕망이 카인에게 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욕망을 가진 죄가 카인의 마음 안에 있다는 뜻이다. “너는 그것을 다스려라” 이 말을 잘못 해석하면 욕망을 다스려라고 해석한다. 바른 해석은 죄를 다스려라는 뜻이다.
질문3. 당신은 한번 생각해 보라. 욕망을 가진 것이 죄인가?
욕망을 가진 것이 죄는 아니다. 욕망은 부족함을 느껴 무엇을 가지거나 누리고자 탐하는 마음을 말한다. 사람은 모두가 욕망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창4장7절은 너의 욕망을 다스리라는 말이 아니라 너의 문 앞에 엎드려있는 죄를 다스리라는 뜻이다.
창4장8절을 읽어보자.
“וַיֹּ֥אמֶר קַ֖יִן אֶל־הֶ֣בֶל אָחִ֑יו וַֽיְהִי֙ בִּהְיֹותָ֣ם בַּשָּׂדֶ֔ה וַיָּ֥קָם קַ֛יִן אֶל־הֶ֥בֶל אָחִ֖יו וַיַּהַרְגֵֽהוּ׃
카인이 그의 형제 헤벨에게 말했고, 그들이 받에 있더라 카인이 일어나 그의 형제 헤벨을 처 죽였다.“
"וַיַּהַרְגֵֽהוּ (wayahargeho: 그리고 그를 죽였다)”는 전치사 “וַ 그리고” + 미완료 진행형 3인칭 남성 단수 동사 “יַּהַרְגֵֽה 그가 죽였다“ + 3인칭 남성 단수 “וּ 그를“으로 우연 또는 실수로 동생을 죽인 것이 아니라 철저한 계획을 가지고 동생을 죽였다는 뜻이다. 즉 죄를 다스리지 못하면 죄를 마음에 가진 사람은 사람을 죽이거나 해롭게 하는 결과를 행위로 나타내는 것이다.
때문에 마음에 품는 것과 생각하는 것 또는 계획하는 것이 죄가 아니라 사람을 해롭게 하는 결과를 나타내는 행위가 죄 이다. 그래서 동사로 “죄 짖다”라고 말하고, 죄 지은 자를 “죄인”이라 한다.
결론적으로 ‘아담에게서 죄를 찾는 것은 잘못된 신학이다. ‘아담은 선악과를 따 먹었을 뿐이지 그는 범죄하지 않았다. ‘아담은 야웨의 말씀에 불순종한 것이지 죄를 지은 것은 아니다. 그런 ‘아담을 기독교에서는 ‘아담이 범죄하여 사람이 죽게 되었다고 해석하여 원죄론을 만들었다.
창3장을 정확히 바르게 읽어야 원죄론이 잘못된 사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창3장3절을 읽어보자.
“וּמִפְּרִ֣י הָעֵץ֮ אֲשֶׁ֣ר בְּתֹוךְ־הַגָּן֒ אָמַ֣ר אֱלֹהִ֗ים לֹ֤א תֹֽאכְלוּ֙ מִמֶּ֔נּוּ וְלֹ֥א תִגְּע֖וּ בֹּ֑ו פֶּן־תְּמֻתֽוּן׃
신들이 정원 중앙에 있는 나무의 과일은 너희가 죽지 않기 위해 너희는 먹지 말고, 아무것도 만지지 말라 말했다.”
이 구절을 잘못 읽고 해석하면, “야웨는 왜 선악과를 만들어 사람이 먹고 죽도록 했는가?” 라는 질문을 만들게 된다. 그러나 바르게 읽고 해석하면, “죽기 싫으면 먹지마!”가 된다. 즉 사람이 죽고 안죽고는 죄와 아무 상관이 없다. 사람의 선택에 관한 문제이다.
때문에 성경에서는 ‘아담의 불순종을 죄라고 말하지 않는다.
3. 성경이 말하는 회개와 용서:
질문4. 죄인은 용서 받을 수 있는가?
기독교인들에게는 “용서”라는 단어가 매우 큰 복음이 된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어떤 죄인도 다 용서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안하지만, 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어떤 죄인도 다 용서 받을 수 있다는 말은 없다.
창4장13절을 읽어보자.
“וַיֹּ֥אמֶר קַ֖יִן אֶל־יְהוָ֑ה גָּדֹ֥ול עֲוֹנִ֖י מִנְּשֹֽׂא׃
카인이 야웨께 말했다, 내 죄악이 내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큽니다.”
우리는 회개하면 용서 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회개는 죄인이 무엇을 어떻게 잘못했는지 자복하는 것을 말한다. 창4장의 내용을 읽어보면, 카인은 분명 회개했다.
질문5. 카인은 누구에게 회개했나?
야웨에게 회개했다.
질문6. 카인의 회개가 바른 회개일까? 바른 회개는 누구에게 해야하는가?
진정한 회개는 범죄자가 피해자에게 회개해야 한다. 기독교인들은 피의자가 피해자에게 회개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누가 피해자인지 전혀 모르고 있다.
질문7. 범죄자 카인의 피해자는 누구인가?
헤벨 이다. 그런데 왜 카인은 야웨에게 회개하는가? 이것은 엉터리 회개 이다. 기독교인은 자신이 죄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예수에게 회개한다. 그리고 모든 것을 용서 받았다고 한다. (개뿔)
질문8. 카인은 야웨로부터 용서 받았나?
야웨가 카인을 용서했다는 말이 없다. 아니 야웨는 카인을 용서하지 않았고, 용서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야웨는 카인의 피해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질문9. 죄인인 당신을 예수가 용서했다고 말했나?
성경 어디에도 예수가 당신을 용서했다는 말은 없다. 왜냐하면, 당신은 예수에게 어떤 잘못도 하지 않았다.
4. 성경이 말하는 형벌:
창4장13절의 “עֲוֹנִ֖י (‘aoniy: 죄악)”을 한글 개역과 KJV에서는 “내 형벌 my punishment)”로 번역 되어있다. 형벌은 죄를 용서했다는 뜻이 아니라 죄의 가치를 평가하여 가치에 상응하는 댓가를 치루게 하는 것이다.
때문에 형벌은 “회개, 용서”와 상관없이 반드시 죄인은 치루어야 할 댓가 이다.
5. 성경이 말하는 구원:
질문10. 구원은 어떤 것인가?
창19장19절을 읽어보자.
“....לְהַחֲיֹ֖ות אֶת־נַפְשִׁ֑י …. 내 혼을 구원하시고 …”
역시 “구원”을 말하기 전에 먼저 “구원”의 정의를 알아야 한다.
국어 사전에는 구원을 “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구하여 줌”이라고 쓰여있다. 영어 사전에는 구원을 “위험이나 어려운 상황에서 사람이나 사물을 구하는 것” 이라고 쓰여있다.
물론 기독교 용어로는 구원을 “인류를 죽음과 고통과 죄악에서 건져 내는 일.”이라고 쓰여있다.
그러나 성경에는 구원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를 살펴보자.
구약에는 “구원”이라는 단어가 총373번 사용되고 있는데 모두 환난, 전쟁, 기근 그리고 어려운 환경과 함께 사용되고 있고, 죄와 죽음과 함께 사용되는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반면, 신약에는 구원이 총157번중 죄와 관련하여 10번을 사용하고 있고, 나머지는 믿음과 관련하여 20번, 환경과 처지와 관련하여 127번이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죄와 관련하여 사용된 10번도 구원된 상태를 정확히 묘사하고 있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죄인을 죄에서 구원하면 그가 의인이 되는 것인지, 아니면 영생을 하는 것인지 전혀 알 수 없다.
질문11. 인간에게 구원이 필요한가?
결론적으로 구원은 어려운 환경과 처지에 빠져있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구원이다.
질문12. 구원이 필요하다면 왜 필요한가?
때문에 구원은 사람에게 꼭 필요한 것이나 어려운 환경과 처지에 빠져있지 않은 사람은 구원이 필요없다.
질문13. 구원이 필요한 자는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
물에 빠진 자은 물에서 건져내면 된다. 병든 자는 병을 치료하면 된다. 어려운 처지와 형편에 처한 자는 어려운 처지와 형편으로부터 탈출하면 된다. 그래서 물에 빠진 자, 병든 자 그리고 어려운 처지와 형편에 처한 자들은 구원 받아야 할 자들이고, 구원 받아야 할 자를 건져주고, 치료해 주고 그리고 탈출 시켜준 자를 구원 자라고 한다.
그런데 기독교적 구원관에서는 구원 받을 자도 구원 자도 없다.
질문14. 성경은 선악과를 따 먹은 ‘아담을 죄인이라고 규정했는가?
아니다. 성경은 ‘아담을 죄인 이라고 규정하지 않았다. 단지 신학자들이 죄인이라고 규정했을 뿐이다.
창3장10-13절을 읽어보자.
질문15. 죄인은 아니지만, ‘아담은 자신의 잘못을 야웨께 회개했다. 야웨는 회개한 ‘아담을 용서하셨나?
아니다. 용서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선악과를 따 먹은 것은 죄를 지은 것이 아니라 ‘아담 스스로가 죽음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질문16. 성경은 ‘아담이 선악과를 따 먹어 죽음을 선택한 것이 원죄라고 규정하고 있는가?
아니다. 성경은 ‘아담의 선택을 원죄로 규정하지 않는다.
겔18장20절을 읽어보자.
“הַנֶּ֥פֶשׁ הַחֹטֵ֖את הִ֣יא תָמ֑וּת בֵּ֞ן לֹא־יִשָּׂ֣א ׀ בַּעֲוֹ֣ן הָאָ֗ב וְאָב֙ לֹ֤א יִשָּׂא֙ בַּעֲוֹ֣ן הַבֵּ֔ן צִדְקַ֤ת הַצַּדִּיק֙ עָלָ֣יו תִּֽהְיֶ֔ה וְרִשְׁעַ֥ת [רָשָׁע כ] (הָרָשָׁ֖ע ק) עָלָ֥יו תִּֽהְיֶֽה׃ ס
범죄한 그 혼은 죽을 것이다, 아들은 아버지의 죄악을 대신하지 않을 것이고, 아버지는 아들의 죄악을 대신하지 않을 것이다, 의인의 의도 자기에게 있을 것이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 있을 것이다.”
질문17. 성경은 아버지의 죄는 아들이, 아들의 죄는 아버지가 대신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럼 당신의 죄를 예수가 담당할 수 있는가?
히9장28절을 읽어보자.
“οὕτως καὶ ὁ χριστός, ἅπαξ προσενεχθεὶς εἰς τὸ πολλῶν ἀνενεγκεῖν ἁμαρτίας, ἐκ δευτέρου χωρὶς ἁμαρτίας ὀφθήσεται τοῖς αὐτὸν ἀπεκδεχομένοις εἰς σωτηρίαν.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번째 나타나시리라..”
벧전2장24절을 읽어보자. “ὃς τὰς ἁμαρτίας ἡμῶν αὐτὸς ἀνήνεγκεν ἐν τῷ σώματι αὐτοῦ ἐπὶ τὸ ξύλον, ἵνα ταῖς ἁμαρτίαις ἀπογενόμενοι τῇ δικαιοσύνῃ ζήσωμεν· οὗ τῷ μώλωπι ἰάθητε.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신약의 2개의 구절에 예수가 “많은 사람의 죄, 우리 죄”를 담당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과연 신약과 구약에 기록된 구절 중 어는 구절이 옳은지 살펴보자.
질문 18. 예수가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당하셨다면, 지금 우리는 의인인가? 아니면 죄인인가?
아무도 자신이 의인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왜냐하면, 누구도 신약의 2개의 구절을 믿지 않으니까. “현실적으로 모두가 죄인이고, 죽어서는 예수로 말미암아 천국에 가서 의인으로의 삶을 살아가니까 신약의 2개의 구절은 옳은 말씀이다.”라는 개똥 같은 소리는 하지 말자.
예수는 죄인인 당신을 용서 할 수도 없지만, 당신의 죄를 대신하여 담당할 수도 없다. 다시 말하면 죄는 당신의 선택 사항일뿐 당신을 구원 할 장소도 아니다. 다시 말하면 죄는구원 받아야 할 환란, 전쟁, 기근 등 어려운 환경이나 처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어떤 개똥 같은 기독교인은 롬6장23절을 인용하여 반박하고 있다.
“τὰ γὰρ ὀψώνια τῆς ἁμαρτίας θάνατος, τὸ δὲ χάρισμα τοῦ θεοῦ ζωὴ αἰώνιος ἐν Χριστῷ Ἰησοῦ τῷ κυρίῳ ἡμῶν. 죄의 삯은 사망이요 신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
성경을 잘 읽어야 한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했지, 죄에서 구원한다고 하지 않았다. 사망 곧 죽음은 구원 받아야 할 장소이다. 죽음에서 구원 받으면, 영생 즉 영원히 산다. 영어로 eternal life 이다. 예수는 창조주 하나님 이시니, 성경책으로 예수를 가두려하지 말라 어찌 창조주를 인간이 만들 글자로 평가하려하느냐! 라고 말하는 개똥같은 기독교인도 있다.
질문19. 죄에서 구원 받으면 영생하는가?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근거 없다.
질문20. 구약에는 죄에서 구원 받지 않았어도 영생한 자가 있다. “חֲנוֹךְ (hanok: 하놐, 창5장24절, H2580), אֵלִיָּה (‘Eliyah: 엘리야, 왕하2장11절, H452)”이다. 그런데 신약에는 죄에서 구원 받고 영생한 자가 있는가?
없다. 죽어서 천국가고, 죽어서 영생한다고 주장하는 기독교는 거짓 이다.
질문21.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구원의 방법(길)은 하나인가, 아니면 변해 왔는가?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는 구원이라는 단어에 어떠한 다른 의미를 갖지 않은 평범한 단어이다. 그러나 헬라어 신약에서는 구원이라는 단어에 어떠한 특별하고 큰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여 특별한 단어로 사용되고 있는 구절들이 몇개가 있다 (마1:21, 9:22, 16:25, 19:25). 이런 몇개의 구절들은 구원의 뜻이 명확하지 않은 구절들이다.
이것은 기독교 구원관의 초점에서 해석되어진 구원의 방법(길)일 뿐 실재 기독교인들은 전혀 모르고 핵깔려하고 있다.
6. 인간론:
질문22. 인간은 어떤 존재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단어를 바꾸어 사람이라고 하자. 사람은 어떤 존재인가? 설명하기 어럽다. 존재론적 사람을 설명하기 위해 질문을 한다.
창1장1절을 읽어보자.
“בְּרֵאשִׁ֖ית בָּרָ֣א אֱלֹהִ֑ים אֵ֥ת הַשָּׁמַ֖יִם וְאֵ֥ת הָאָֽרֶץ׃
처음에 신들이 그 하늘과 그 땅을 창조하셨다.
질문21. “אֱלֹהִ֑ים (‘Elohiym: 신들, H430)”은 신들(Gods) 인가? 아니면 신 (God 하나님) 인가?
אֱלֹהִ֑ים (‘Elohiym: 신들, H430)”은 문법적으로 남성 단수 명사 “אֵל (‘El: 신, H410)”의 남성 복수 명사 이다. 때문에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라고 번역하고 해석하면 틀린 번역, 틀린 해석이다.
창1장26절을 읽어보자.
“וַיֹּ֣אמֶר אֱלֹהִ֔ים נַֽעֲשֶׂ֥ה אָדָ֛ם בְּצַלְמֵ֖נוּ כִּדְמוּתֵ֑נוּ וְיִרְדּוּ֩ בִדְגַ֨ת הַיָּ֜ם וּבְעֹ֣וף הַשָּׁמַ֗יִם וּבַבְּהֵמָה֙ וּבְכָל־הָאָ֔רֶץ וּבְכָל־הָרֶ֖מֶשׂ הָֽרֹמֵ֥שׂ עַל־הָאָֽרֶץ׃
신들이 말했다, 우리가 우리의 형상 안에서 우리의 모습대로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공중의 새와 온 땅의 동물과 땅에 기는 모든 것들을 다스리게 하자.
“בְּצַלְמֵ֖נוּ כִּדְמוּתֵ֑נוּ 우리의 형상 안에서 우리의 모습대로”, 참 이해하기 쉽지 않은 단어이다. 이해하기 쉽게 말하면, 신들이 사람을 신으로 만들었다는 뜻이다. 즉 “사람은 신 이다”이다. 이것을 증명하는 성경 구절이 시82편6절 이다.
“אֲֽנִי־אָ֭מַרְתִּי אֱלֹהִ֣ים אַתֶּ֑ם וּבְנֵ֖י עֶלְיֹ֣ון כֻּלְּכֶֽם׃
내가 말했다, 너희는 신들이며, 너희 모두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자녀들이다.
질문22. 사람은 신인가? 신이 아닌가? 예수만 신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신이다. 때문에 야웨도 “‘아담의 아들(단10장16절)” 이라고 한다.
질문23. 기독교에서는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고 한다. 정말 의인은 없는가?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기독교일 뿐이다. 성경은 의인이 많이 있다고 말한다 (창6:9, 18:28, 민23:10, 신25:1 등.).
질문24.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당연히 의인으로 살아야 한다. 질문25. 사망에서 구원 받으면 영생 하는가?
당연히 사망에서 구원 받으면 영생 한다. 하지만, 구원과 영생을 연결하여 해석하는 것은 잘못된 이론이다.
7. Conclusion: 야웨의 혼을 가지고 의인의 삶을 사는 자는 영생한다.
원죄론을 만들어 모든 인류를 죄인으로 만들고,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겁박질하여, 오직 믿음으로 구원 받고 영생할 수 있다고 거짓말하며, 사기치는 기독교로부터 자유를 찾는 형제 자매들이 되기를 소망한다.
죽음:
히브리어 원어 성경인 타나크에는 사람은 신으로 창조 되었다. 때문에 사람은 영생한다. 그러나 선악과를 따 먹은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 사람이 반드시 죽는다는 것은 죄를 지어서 죽는 것이 아니라 최초 사람인 ‘아담이 선악과를 따 먹었기 때문에 ‘아담부터 그의 후손은 모두 죽게 되었다는 뜻이다.
때문에 카인처럼 죄를 지은 사람도, 하벨처럼 죄를 짖지 않은 사람도 모두 죽는 것이다.
죽음의 뜻은 “혼과 육”이 본향으로 돌아가고, 영이 소멸되는 것을 말한다.
영생:
타나크에는 영생을 정확히 표현하고 있지는 않지만, 영생하는 사람(신들)의 모습을 표현한 구절들을 살펴보면 알수 있다.
아브라함과 모쉫 앞에 나타난 야웨와 두 신의 모습을 보면, 모두 사람의 모습이다. 음식을 먹는다. 홀연히 나타난다. 홀연히 사라진다. 모습을 보이지 않을 때가 많다. 어떤 사람은 말 소리를 듣지만, 어떤 사람을 우뢰 소리로 듣는다.
영생의 뜻은 “육체”가 “영체”로 바뀌거나 “육체”는 흙으로 돌아가고 “영체와 혼”이 신들에게 돌아가 신들과 함께 존재하는 것을 말한다. 실재 타나크는 사람을 “영”으로 표현하고 있다.
구원:
타나크에 나타난 구원은 “환난, 전쟁, 기근, 그리고 어려운 환경과 처지에서 벗어나는 것을 구원이라고 말한다. 죄에서 구원한다는 말은 없다.
오직 믿음으로: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말은 무슨 말인가? 무엇을 믿는다는 말인가? 예수를 믿는다? 예수의 말을 믿는다? 예수가 구원자 인것을 믿는다? 예수가 신의 아들 인것을 믿는다? 예수가 죄를 사해 주시는 것을 믿는다? 예수 믿으면 천국 간다? 예수 믿으면 영생한다?
질문26. 당신이 믿는 믿음 중 이루어진 믿음이 하나라도 있다면 이야기 해보시오.
질문27. 요11장26절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예수의 12제자 중 영원히 죽지 않은 자가 있는가? 있다면 누구?
예수 안믿는 구약의 인물 중에는 영생한 자가 있지만, 예수 때부터 지금까지 영생한 자는 하나도 없다.
지금도 의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자들은 많이 있다. 의인으로 산다고 모두 영생하는 것은 아니다. 죄인으로 산다고 모두 죽는 것도 아니다.
영생하는 자는 “야웨의 혼(נְשָׁמָה nshamah: 혼, H5397)”을 가진 “사람(אָדָם ‘Adam, H120)”으로 의인의 삶을 산 자들이다. “짐승의 혼(נֶפֶשׁ nepesh: 혼, H5315)”을 가진 “사람(אֱנוֹשׁ ‘Enosh, H582, 창6장4절)은 죄인의 삶을 사는 자들로 절대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자들이다.
때문에 우리가 영생하기 위하여 예수를 믿고 죄에서 구원 받아 천국에 가야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혼을 가지고 의인의 삶을 사느냐 아니면 죄인의 삶을 사느냐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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