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소시오크라시(sociocracy)-존 벅ㆍ샤론 빌린스>라는 책을 틈틈히 읽고 있다.
소시오크라시는 삶과 일을 둘러싼 환경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힘을 사람들에게 부여하는 일종의 통치방식(형태)이다.
socio의 발음은 sociology의 앞부분과 같고, cracy는 democracy의 뒷부분과 같다.
탄생지인 네덜란드 말로는 sociocratie(소시오크라시)다. 라틴어 어원으로 보면 socio(소키오) 또는 socius(소키우스)는 '동료'를 뜻한다.
이 말은 소시오크라시는 동료들이 한 집단에 속한 동반자로서 함께 자치할 수 있도록 해 준다는 것이다.
그 예로 꿀벌을 들어 표현하였다.
꿀벌들은 자기 조직하여 한마음으로 일함으로써 일상의 과제를 마친다. 그들 사이에는 계층구조가 존재하지 않고 각자 나이와 유전자 구성에 따라 임무를 구성한다.
여왕벌은 하루 2,000개의 알을 낳으며 벌집 개체군의 성장의 중추이지만 '여왕'처럼 군림하지 않고, 꿀벌들은 새로운 집이 될 만한 곳을 찾기도 하고, 식량원을 찾고 만들때에도 춤을 추고 날개짓을 할뿐 더이상의 어떤 것도 하지 않는다.
즉 각자의 일을 공동의 목표에 맞추어 하고, 못하는 동료의 일을 다른 꿀벌들이 대체해서 한다. 협치를 한다고 할까?
물론 꿀벌들이 협치나 자치를 알지는 못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 소시오크라시라는 책을 보면서 특히 다가온 용어는 '동의(consent)'와 '합의(consensus)'라는 말이었다.
이 책에서는 '동의(consent)'는 개인 입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호불호에 의한 찬성이 아니라 "집단 공동의 목표에 비추어 마땅히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을 승인하는 행위"라고 정의하였다.
또 '합의(consensus)'는 "최선의 답을 찾기 위해 꽤 많은 노력(시간)을 기울이는 행위"라고 정의하였다.
아직 이 책을 다 읽지는 않았지만, 난 이 2개의 용어의 정의가 너무 가슴에 와 닿았다.
포괄적이고 동의에 기반을 두며, 효율적인 조직을 만드는 자치의 방식을 취하는 소시오크라시에서 '합의'의 방식을 쓰지 않는다고 한 부분이 나에겐 쇼킹했다.
난 늘 '합의'의 방식을 추구했다.
소수의 한명까지 그(그녀)의 의견이 중요해서 시간을 많이 썼고, 그 시간 때문에 정작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은 말도 꺼내지 못하고 끝날때도 있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공동체에 가서 '동의'의 방식을 쓰고 나니 마음도 편안하고, 훨씬 효율적이면서도 우리의 목표도 달성할 수 있었다.
이제는 이런 표현을 쓴다.
"우리 공동체가 ~~한 것을 위해서 ~~이 필요한 것 같은데, 이것에 대해서 견딜수 없이 힘든 사람은 표현해 주세요. 그렇지 않고 참을만 하다고 하신 분들은 동의한 것으로 여기고 다음 순서로 넘어가고 싶습니다.~~"
처음엔 익숙하지 않았다. '혹시 내가 그(그녀)의 소중한 의견을 묵살한 것은 아닐까?'등 여러가지 생각이 있었지만, 나의 마음이 편안하고 열린 상태에서 공동체원들에게 동의를 물으니 그들도 흔쾌히 승낙하였다.
요즘 꽤 여러 곳을 다녔다.
학교 교육, 학교 갈등조정, 경찰 교육, 경찰서 대화모임 등 일주일에 3~5번을 다녔다.
조금 피곤하고, 힘에 부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집에 오면 쉬지 못하고 주부로서 해야 할 일이 또 있고~~
게다가 갱년기를 지나고 있는 나이까지 한몫 하는것 같다.
그럼에도 틈틈히 이런 귀중한 책을 보는게 나의 소소한 삶의 취미인것 같다.
이 책 내용을 일일이 다 소개하지 못했으니 궁금하신 분들은 꼭 한번쯤 읽어 보시면 좋겠다.
특히 조직을 민주적이면서도 효율적이게 통치하고 싶으신 분들은...
많은 영감을 받으시리라 믿는다.
오늘도 평안이 그대들과 함께 하기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