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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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씨가 꾸미는 술 모노가다리
제 30편: 진로와 참이슬의 역사
(퍼온 글)
지금은 망한 진로그룹 홈페이지에 따르면 진로는 1924년 평남 용강군에 설립된 ‘진천양조상회’에서 시작하였다고 한다. 6·25전쟁으로 인해 남쪽으로 내려온 뒤 51년 부산에서 소주 ‘금련(金蓮)’을, 52년에는 ‘낙동강(洛東江)’을 생산했으며 1954년 6월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서 서광주조를 발족시켜 오늘날의 ‘진로(眞露)’를 탄생시켰다고 한다. 진로라는 제품이름은 생산지인 진지(眞池)의 ‘진(眞)’과 순곡(純穀)으로 소주를 증류할 때 술방울이 이슬처럼 맺히는 것에서 착안하여 ‘로(露)’를 선택해 지었다고 한다.
초창기 진로 상표에는 원숭이를 트레이드마크로 사용했는데 신길동 시대부터 상표에 두꺼비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진로가 인기를 끌게 된 이유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광고를 꼽는다. 1959년말 진로는 당시 최고의 히트곡이었던 야야야 야야야 차차차 ~’로 시작되는 ‘진로 파라다이스’를 국내 최초의 CM송으로 활용해 큰 인기를 끌었다. 한마디로 광고의 승리인데, 이 노래는 당시 군인들은 물론이고 일반 체육대회의 응원가로 불리기도 했다고 한다.
1924년 설립 당시 진로가 처음으로 만든 소주의 알콜 도수는 35도였다. 당초 증류주를 만들던 진로는 1965년부터 희석식 소주 시장에도 뛰어들었는데, 희석식 소주는 곡물을 증류한 알코올 95% 이상의 소주 원료인 주정에 물을 섞어 만드는 것으로 소주의 대량 생산을 가능하게 하였다. 이런 희석식 소주를 내놓으면서 진로는 알콜도수를 30도로 낮추었다.
CM송이 히트치면서 진로가 인기를 끌었지만 당시 국내 소주시장은 전남을 기반으로 한 삼학의 독무대였다. 진로는 이에 '왕관 회수 작전'이라고 불리었던 판촉활동을 펼쳤는데, 소주 판매업소가 왕관처럼 생겼던 진로 소주의 병뚜껑을 가져오면 보상을 해주는 방식이었다. 두꺼비가 안에 그려진 병뚜껑을 갖고 오는 소비자에겐 재봉틀과 금두꺼비 등 당시로선 파격적인 고객 경품행사도 했는데, 수령해 가는 고객들 대부분은 주류 도매상이었다고 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주류 유통은 중간 도매상의 역할이 중요한데, 중간 도매상들에게 경품에 당첨된 소주병을 미리 알려주고 중간에 챙길수 있도록 해 주는 방식으로 은근슬쩍 챙겨준 것이다.(지금도 경품 행사하면 받을 사람은 다 받는다고 하는데 자세히 알지는 못하므로 여기서 그만) 뭐 어쨌든 이러한 판촉활동으로 진로는 삼학과의 경쟁을 10년여간 이끌고 가다가 결국 승리하고 1974년에 25도로 도수를 낮춘 소주를 내놓고 경쟁에서 완전히 승리한다. 아직도 25도 '진로' 소주의 맛을 그리워하는 사람(글을 쓰는 저도 마찬가지)들이 꽤 많아서 할인매장 같은 곳에 따로 출시해 아직도 팔고 있다.
1998년 진로는 23도로 도수를 낮춘 소주를 판매하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참이슬'이다. 보도에 따르면 지금까지 100억 병 넘게 팔았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 한 2,000병 이상은 도와준 것 같은데 억단위에 비하면 정말 새발의 피로 느껴진다. 1997년에 진로그룹이 부도를 맞았지만 '참이슬'만큼은 꿋꿋이 버텼다. 하지만 2003년에는 결국 법정관리로 들어가 2005년 7월 하이트에 인수되었다. 다시 알콜 도수 얘기로 돌아가면 참이슬은 현재 20.1도이고, 2004년 21도로 낮춰 출시된 참이슬 후레쉬는 현재 19.5도이다. 지난해 말 출시한 'J'는 18.5도인데 개인적으로는 술이라는 생각이 안 들었다. 진로 또는 참이슬의 알콜 도수는 역시 25도가 가장 적절한 것 같다.
배종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