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워싱톤 한인 침례교회 - 창립 김창순박사와 심선식 박사
침례교역사- pic
2018-03-10 16:06:45
우리 침례교단의 첫 이주 교회들 중에 당연히 첫교회 부터 쓰려하다 보니 여기 창립예배를 본 분들의 글이 있다.
잊어 가는 중에 이제 생각나는 것은 거의 20대 정도의 젊은 목사였던 김원기목사가 80년대 중반에 교회명을 '휄로쉽 교회'로 명칭을 바꾼것이 생각난다.
아닌가? ㅎㅎ 아마도 무슨일로 교회를 떠나서 '휄로쉽 교회'라는 다른 교회를 설립한것이 맞는 이야기이다. 그 다음에 이상훈목사등이 계속 있었으니....하여간
의사이신 것으로 보여지는 신선식이라는 분이 1957년 우연히 마켓에서 김창순박사를 만나 워싱톤한인침례교회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는 귀한 이야기가 있다.
다른 기록에는 김창순 박사가 1956년에 처음 예배를 드렸다고도 한다.
나의 삶 나의 신앙 / 12 심선식 ( 밴쿠버 한인 연합교회 )
와싱톤 한인 침례교회 창설회원과 첫 세례교인
세례는 요단강에서 예수님이 세례요한으로 부터 받으신 성례전으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예식" 이다.
인간이 자기의 죄을 회개하고 물로 정결하게 씻고, 성령 (하나님의 영)을 받고 새롭게 거듭나는 축복이다.
죄가 없으신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신 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며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예수님이 본을 보이신 것 같이 세례를 받음으로 시작되는 예식의 본을 보이신 것이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시고 요단강에서 나오실
때에 하늘에서 음성이 들렸는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라는 하느님의 음성이었으며, 성령이 비둘기 같이 예수님의 머리 위에 내리셨다고 성경은 말씀한다.
나는 미국생활 첫 해는 뉴저지 주 주청소재지인 트렌톤(Trenton, N.J.)의 한 병원의 인턴으로 근무했다.
미국생활에 익숙해가며 병원의 당직의사로 근무하는데 분주했다. 문화와 풍습이 다른 나라에 와서 많은 것을 보며, 느끼며 배우게 되었다. 참으로 평화롭고, 아름답고, 모든 것이 풍부함에 놀랬다. 사람들이 참으로 친절했다. 인심이 좋았다. 우리나라 속담에 " 쌀뒤주에서 인심난다" 드니 미국사람들은 풍요롭게 살아서 그런가 했는데 알고 보니 정신문명, 도덕문명이 물질문명과 겸비 되어 있어서인 것을 알 수 있었다.
히랍(그리스)에서 온 의사가 영어를 못하여 되돌려 보냄을 받을 난처한 형편에 처했었다. 내가 자원하여 그를 도와 그의 일을 분담하며 그의 환자진찰 면담을 같이하며 도와줘서 2-3개월 후 그가 되돌려 보냄을 면하게 된 일도 있어서 보람을 느꼈다.
터-키(Turkey)에서 온 부부 의사들은 동방교회교인이었고, 이란에서 온 의사는 이슬람교 신자였다. 그들은 하루에 세 번씩 자기 고향인가 어딘가를 향하여 꿇어 앉아 절하며 기도한다는 것을 듣고 나는 감탄했다. 신앙이 깊어지면 저렇구나 싶었다.
나는 햇내기 기독교인으로 기도하는 열성이 없이 지냈다.
한 일본계 미국인이 독일계 미국여인과 결혼 하여 살았는데 그 부부를 우연히 사귀게 되었다. 그 부인은 "바하이 교" 교인이었는데 참으로 자연스럽게 나를 대해주고 각종 친절을 베풀어 주고, 자기 집에도 초청해줬는데, 자기 차로 나를 데리러오고, 데려다 주곤 했다. 그녀의 호의와 친절에 감동되었다. 신앙이 깊고 성숙하면 그렇게 좋구나 싶었다.
내가 6개월 거기서 근무한 후에 내 아내가 그 시내 다른 병원에 인턴으로 취직이 되어 왔다. 위에서 말한 바하이 교인 독일계 미국여인은 내 아내를 "기순아 기순아"하며 무척 사랑해주었다. 자기 남편의 공업사무실이 있는 건물의 2층에 살림방을 하나 내주며 우리 부부가 주말이면 병원에서 나와서 거기서 살라고 까지 해 주었다.
병원에서 1년 근무하면서 의사들과 간호사들과 친해졌고, 전화교환대에서 일하는 아줌마들과, 식당에서 일하는 아줌마 아저씨들과 친해지고 정이 들었다. 그리스마스의 경축이 요란하고 파티도 요란한 것을 따라 다니며 보면서 참으로 크리스챤들은 평화롭고 사랑하며 희망 차게 사는구나 싶었다. 말 보다는 행동으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 다음 해인 1957년에 와싱톤 (미국 수도)으로 옮아가서 정형외과 전문의 훈련을 받게 되었다. 하루는 한국 식료품상엘 둘려서 김치를 사러 갔다가 김창순박사라는 분을 만났다. 생전 처음 보는 분이다. 내가 여기 모 병원에 취직이 되어 왔다니까 반가워하며 어느 교회에 나가느냐고 물었다. 아직 정하지 못했다니까, 그는 여기 이승만 박사가 옛날에 다니던 교회, 미국의 소리 방송을 한국말로 하는 황재경 목사님이 담임하는 큰 교회가 있는데 거기는 교인이 참 많다고 했다. 그래서, 새로운 교회가 필요하여 자기가 미국 남침례교단의 지원 하에 와싱톤 한인 침례교회를 창설하려고 하니 자기와 같이 일하자고 했다.
나는 기독교인이기는 하지만 세례도 아직 받지 않은 햇내기 기독교인이라고 했더니 그것은 상관없다는 것이었다. 하나님이 도와주실 거라고 했다. 이리하여 주일(일요일)이면 그가 시작하려는 교회가 있는 륏덴하우스가에 있는 교회엘 다니며 같이 섬기게 되었다. 교인은 몇사람 안되었고 뉴욕에 유학와 계시던 강원용목사님이 주말 마다 내려와 설교하셨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그분은 다니엘서를 많이 인용하여 설교하신 것이다. 다니엘선지자의 신실한 신앙을 본받으라고 하셨다. 그러던 중, 한국서 고아원 선교를 하시던 안병국 목사님을 전임목사님으로 모셔오게 되었다. 비행장에 나가 환영하며 인사하니 활짝 웃으시며 옛 친구를 만나는 모습이었고 첫 인상이 좋았다. 교회는 활기를 내는 신생 교회가 되었다. 제직회도 구성되고 나는 집사로 일하게 되었다. 친교 봉사도 잘 하며 음식도 해서 나눠먹으며 교인간의 우애가 자라났다. 그 교회에서 결혼하는 젊은이들도 생겼다. 점점 보람을 느끼게 되었다. 주일이 되기를 기다리게 되었다.
우리 부부는 세례교인이 되고자 목사님과 상의했더니 새로 생긴 작은 교회인지라 세례(침례)성수탱크가 없어서 다른 교회에 가서 세례를 받도록 교섭이 되었다. 시외에 나가면 베데스다란 곳에 베데스다침례교회가 있었는데 거기엘 가서 우리 부부는 고무 옷을 입고 세례성수탱크에 들어가 요단강에 들어간 심정으로 거기서 아취벌드 목사님이 침례세례를 주셨다. 1958년 10월 17일었다. 죄를 회개하고 물로 씻고 정결한 거듭난 마음에 성령을 선물로 받은 새 사람이 된 마음이었다. 그렇게 되어 우리 부부가 와싱톤 한인 침례교회의 창설교인으로 첫 세례교인이 되었다.
성경에 나오는 베데스다는 옐루살렘에 병이 낫는 못이 라는 곳이 있었는데 가끔 천사가 나타나 못물을 동하게 했고 병자가 누군든지 먼저 동한 물에 들어가면 병이 낫곤 했던 곳이다. 한 38년 불구자였든 사람은 그 못에 먼저 들어가질 못하여 병을 고치지를 못했는데 예수님이 "네가 났기를 원하느냐" 물으시고 "일어나 걸어가라"하시고 그 병자를 고쳐 주신 곳이다. 베데스다교회에서 세례를 받은 나도 30년 묵은 병을 고침 받은 은혜의 느낌이었다.
우리 부부는 그 와싱통 한인 침례교회에 4년간 섬기면서 믿음과 소망과 사랑 안에서 신앙생활을 즐겼다. 교인은 점점 늘어났고 100명 정도 모였다. 나는 1961년에 캐나다 밴쿠버의 대학과 대학병원에 취직이 되어 그 교회를 떠나게 되었는데 교인들과 헤어지는 것이 참으로 섭섭했다. 35년 후에 내가 그 교회를 다시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교인이 수백 명이 되어 있었고, 교회당과 교육관도 붉은 벽돌 건물로 크게 짓고, 주차장도 아주 넓었다. 예배에 참석하고 창설교인이자 첫 세례 교인이라며 내가 자신을 소개 했더니 더욱 반기며 기념품도 주어서 받아가지고 돌아 왔다.
나는 하나님께서 나 같은 보잘것없는 사람에게 믿음을 주시고, 예수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창설하시는데 쓰시고, 세례를 주시고, 돌보아 주시는 사랑에 감사 감격하며 보람을 느끼며 살게 되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