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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인과 아벨의 제사(히브리서 11장 1~4절) - 아벨의 믿음
여호와 하나님은 여자의 후손으로 메시아를 보내어
타락한 백성들을 구원하신다고 약속하셨고
그 약속의 말씀을 어떻게 이루어 주실 것인지를
성경에 기록된 이스라엘 역사를 통하여
여러가지 모형과 그림자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시면서
약속하신 메시아가 오셔서 구원해 주실 것을
모형으로 성막도 함께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실 메시아를 소망하지 않고
시내산에서 주신 율법으로 하나님을 섬기자
바벨론이라는 막대기를 사용하여 징계하셨고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약속하신 메시아를 보내어
구원해 주시는 모형으로
그들을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산다는 것으로
율법을 온전히 지켜 구원받는 것이 아닌
약속하신 메시아가 오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해 주신
복음을 믿음으로 구원받게 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고 오늘 본문에서는
믿음의 선진들에 대하여 나열하고 있는데
이들은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었는지 ....
본문 1절을 보면 ....
히11:1 <믿음>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믿음은 우리의 눈으로 보이지 않지만 보이는 것처럼
바라보고 그 날을 소망하며 살아가는 것이라 말합니다.
이 모습을 사도바울은
로마서 8장 24~25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롬8: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롬8:25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소망이 아니라는 것이며
보이지 않는 천국을 보이는 것처럼 바라보며
그 날을 소망하며 살아감으로 구원을 얻었다는 것으로
그 날을 소망하며 참고 기다리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본문 2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히11:2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의 선진들은 여호와의 말씀만 듣고 보이지 않는 것을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소망하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아브라함은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갔으며
또 100세에 낳은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번제로 드리게 되는데 ....
창세기 22장 3~4절을 보면 ....
창22: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창22:3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
창22:4 제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 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이 말씀은 장차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오실
예수님이 모리아 산에서 십자가라는 번제로
드려질 것을 모형하고 있는 것인데
아브라함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이삭을
번제로 드리기 위하여 모리아 산으로 향하게 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제삼일에 눈을 들어
그 곳을 멀리 바라보게 됩니다.
제삼일은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오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을 말하며
눈을 들어 그 곳을 멀리 바라본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여 천하 만민을 구원하는
모습을 마음의 눈으로 바라본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아브라함과 이삭의 후손으로 오실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여 천하 만민을 구원하시려면
이삭을 번제로 드려 죽일지라도
여호와 하나님은 죽은 이삭을 살려 약속하신 말씀대로
이삭의 후손으로 예수님을 보내어 약속의 말씀을
반드시 이루어 주실 것을 믿은 것입니다.
이 말씀을 히브리서 11장 17~19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히11:17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히11:18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히11:19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여호와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의 후손으로 오실
예수님을 통하여 천하 만민을 구원해 주실 것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 약속의 말씀을 믿은 아브라함은 만약 이삭을 번제로
드린다고 해도 죽은 이삭을 다시 살리셔서 약속하신
말씀을 반드시 이루어 주실 것을 믿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삭을 번제로 드리기 위하여
모리아 산으로 향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먼 훗날 이삭의 후손으로 오실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여 천하 만민을 구원하는 모습을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아브라함의 모습을
눈을 들어 그 곳을 멀리 바라봤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아브라함은 눈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마음의 눈으로 멀리 바라보고 약속의 말씀을
반드시 이루어 주실 것을 믿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이러한 모습은 마치 저와 여러분이
소망하고 있는 천국을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그 날에 저와 여러분의 눈물을 닦아 주시며 안아 주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럼 이번에는 믿음이 무엇인지 요단강을 건너는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을 통하여 살펴봅니다.
수3:2 사흘 후에 관리들이 진중으로 두루 다니며
수3:3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너희가 있는 곳을 떠나 그 뒤를 따르라
사흘 후는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여
하늘 문을 열어 주신 후를 말합니다.
그리고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멘다는 것은
언약의 말씀대로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실 것을 말하는 것으로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을 보거든
그 뒤를 따르라는 것으로 복음의 말씀을 듣거든
들은 복음의 말씀을 믿고
천국을 소망하며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서 이어지는 4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수3:4 그러나 너희와 그 사이 거리가 이천 규빗쯤 되게 하고
그것에 가까이 하지는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행할 길을
알리니 너희가 이전에 이 길을 지나보지 못하였음이니라 하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너는데 너희가 이전에
이 길을 지나보지 못했다는 것으로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시기 전에는 하늘 문이 열리지 않았다는 것이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하늘 문을 열어 주신 그 길을
통하여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됨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천 규빗쯤 되게 하여
언약궤의 뒤를 따르라는 것으로 보일듯 말듯한 거리에서
언약궤를 바라보고 그 뒤를 따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복음의 말씀을 믿고 천국을 소망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그려주고 있는 것으로 마음의 눈으로
보이지 않는 천국을 소망하며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또 이어지는 본문 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히11: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믿음으로 여호와 하나님이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며
이 우주 만물은 눈으로 보이지 않는
말씀으로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요한복음 1장 1~3절에도 이렇게 말합니다.
요1:1 <말씀이 육신이 되시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1: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요1: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며
말씀으로 우주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우주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것은
타락한 자신의 백성을 복음의 말씀으로
재창조하여 구원하실 것을 모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는 창세기 1장의 말씀은
타락한 저와 여러분을 복음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자로 재창조하셔서
구원해 주시는 모습을 그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창세기 2~3장에 가서는
빛이신 예수님을 통하여 어떻게 구원하실 것인지를
좀 더 자세히 말씀해 주고 있는 것이며
창세기 4장에서는 자신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오신다는 약속의 말씀을 믿고 오실 메시아를 소망하며
살아가는 자들의 믿음이 어떠해야 하는지
가인과 아벨의 제사를 통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 4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히11:4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칭함을 받았는데 드린 예물이 증언한다는 것입니다.
가인과 아벨이 드린 예물이
그들의 믿음을 증거한다는 것으로
예물을 통하여 그들의 믿음이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럼 이들은 어떤 예물을 드렸는지
창세기 4장 1절부터 봅니다.
창4:1 <가인과 아벨>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하와는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다는 메시아가
가인인줄 알았다는 뜻이며
가인이 태어나는 모습은 복음을 상징하는 예수님보다
(아벨보다) 먼저 온 자로 절도요 강도인
율법을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그리고 아벨을 낳게 되는데 본문 2절을 보면 ....
창4:2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
율법 다음에 오시는 분은 예수님을 말하는 것인데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보잘 것 없는 분으로 여기고
배척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과 같이 아벨이라는 이름의 뜻은
하찮음, 소용 없음, 마땅이 죽을 자의 뜻을 가진
이름인 것입니다.
아벨이라는 이름의 의미는
만나의 의미와 같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벨은 양을 치는 자고
가인은 농사를 했다는 것인데
이들이 여호와께 어떤 예물을 드렸는지
본문 3절을 보면 ....
창4:3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로 농장 물로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다는 것인데 땅의 소산으로 드렸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은 가인의 예배를 받지 않았다고
말씀하시는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토지 소산으로 여호와께 예배를 드릴 때는
이것을 드리라고 출애굽기 34장 26절은 말합니다.
출34:26 네 토지 소산의 처음 익은 것을 가져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지며
너는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지 말지니라
토지 소산의 처음 익은 것은 첫 열매 되신 예수님을
말한다고 고린도전서 15장 20절은 말합니다.
고전15: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이 말씀처럼 토지 소산의 처음 익은 열매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상징하는 것으로
복음의 말씀으로 여호와께 예배를 드리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가인은 처음 익은 것으로 드린 것이 아니라
땅의 소산으로 여호와께 드린 것으로 자신의 소견으로
가장 좋은 것을 여호와께 드렸다는 뜻입니다.
즉 다른복음인 율법으로 여호와께 예배를 드렸다는 뜻입니다.
이 모습은 마치 유대인들이 자신의 열심과 노력인
자신의 의를 여호와께 드린 모습과 같은 것입니다.
롬10: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가인의 제사는 자신의 의를 여호와께 드린 것이며
하나님의 의인 십자가를 부인한 모습인 것입니다.
그래서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신 것인데 ....
이와 반대로 아벨은 무엇으로 예물을 드렸는지
본문 4절을 보면 ....
창4: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양의 첫 새끼는
교회의(하나님 백성) 장남인 예수님을 말하는 것이며
그 기름을 드렸다는 것은
우리의 모든 죄를 예수님이 모두 지고 십자가에서 대속해
주어 구원해 주신 복음으로 예배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즉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을 드렸다는 뜻입니다.
참고로 기름이 무엇인지 알기 위하여
화목제를 드리는 말씀을 잠시 보면 ....
레3:3 그는 또 그 화목제의 제물 중에서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 곧 내장에 덮인 기름과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과
레3:4 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 곧 허리 쪽에 있는 것과
간에 덮인 꺼풀을 콩팥과 함께 떼어낼 것이요
레3:5 아론의 자손은 그것을 제단 위의 불 위에 있는
나무 위의 번제물 위에서 사를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제물의 모든 기름을 떼어 내어 번제물 위에서 불살라
드림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제사를 말하는데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지고 십자가에서
대속해 주심으로 죄가 없는 자가 되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처럼 기름을 드린 것은 세상 지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을 드린 것이며 ....
그리고 가축의 첫 새끼는 여호와의 것이라고
레위기 27장 26절은 말합니다.
레27:26 <처음 난 가축> 오직 가축 중의 처음 난 것은
여호와께 드릴 첫 것이라 소나 양은 여호와의 것이니
누구든지 그것으로는 성별하여 드리지 못할 것이며
처음 난 것은 하나님 백성을 대표하는 예수님을 말하며
다른 표현으로는 십일조 되신 예수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해 주신
복음으로 예배를 드린 것이 아벨이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여호와께 드렸다는 뜻입니다.
그랬더니 창세기 4장 5절은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창4:5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가인의 예배를 받지 않다는 것은
복음으로 예배를 드리지 않아 받지 않다는 것으로
예수님을 드리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아벨의 예배는 예수님을 드린 것으로
복음으로 예배를 드림으로 그 예배를 받으신 것입니다.
즉 창세기 2~3장에서 약속하신 메시아 언약의 말씀을 믿고
그 날을 소망하며 살아가는 교회는
어떤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
가인과 아벨의 제사를 통하여 자세히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아벨이 복음으로 예배를 드린 것을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으로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렸다고 말하는 것으로
아벨은 창세기 1장부터 3장까지 말씀해 주신
여자의 후손으로 빛이신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에서
사탄의 머리를 밟고 가죽옷을 입혀 주셔서 구원해 주신다는
약속의 말씀을 믿고 소망하며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아벨의 예배만 받으신 것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렸고 그 예물이
증거하고 있다고 히브리서 기자는 말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믿음의 선진들은 여호와 하나님이 약속하신
언약의 말씀을 믿고 그 날을 소망하며 살았다고
히브리서 기자는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아벨처럼 약속하신 말씀대로 오셔서
약속하신 말씀을 십자가에서 다 이루어 주신
복음의 말씀을 믿고 천국을 소망하며 살아야 하며
십자가에서 다 이루어 주신 복음으로만
예배를 드려야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 외의 것으로 드리는 예배는 가인처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신의 의를 드린 자가 되어
하나님이 받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잊지 마시고 복음의 말씀만 꼭 붙잡고
십자가로 예배를 드리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아멘-
첫댓글 아멘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