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그릇 心椀과
함께 배우는 불교
제 1100편
* 한글 금강경(金剛經)
금강반야바라밀경
(金剛般若波羅蜜經)
즉,
금강경(金剛經)은
대승 불교(大乘佛敎)의
경전(經典)으로서
대한불교
조계종(曹溪宗)의
소의경전(所依經典)이며
원불교(圓佛敎)의
경전(經典)이기도 하다.
《금강반야바라밀경》
《금강반야경(金剛般若經)》
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일찍이
석가모니(釋迦牟尼)
부처님(如來佛 세존)께서는
한 곳(限定處)에
집착(執着)하여 머물러 있는
마음(心)을 내지 말고
모양이 없는(無相)
진리(眞如眞理)로서의
부처(如來佛 세존)를
깨달아야 된다고 하였다.
그 것을 함축하여
표현하는 말이 바로
"
應無所住 而生其心
응무소주 이생기심
즉,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어라.
"
이다.
한반도에
불교(佛敎)가 유입되어 들어 온
삼국시대(三國時代) 때 부터
함께 들여 온 서적(書冊)이며
경전(經典)이다.
따라서
한국(韓國 불교)에서
가장 널리 퍼진
대표적인
불경(佛經 불교경전)
이기도 하다.
유식학파로
유명한 인도(印度)의
무착(無着,
Asaga, 395~470년경,
인도 대승불교의 사상가)과
그의 동생(弟)
세친(世親. Vasubandhu)의
주석(主釋 해설)과
중국(中國)의
구마라습(鳩摩羅什,
산스크리트어: कुमारजीव
Kumārajīva(쿠마라지바),
구마라십, 구마라집))의
주석을 포함하여
전세계적으로
주석서 800종이 있다.
대승 불교(大乘佛敎)
경전(經典)이다 보니
제목 부터가
대승 불교(大乘佛敎)의
가장 근본적(根本的)인 개념인
《반야바라밀(般若智慧)》을
포함하고 있다.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은
산스크리트어 범어(梵語)
쁘라갸빠라미따
(Prajñāpāramitā)를
음역(音譯)한 것으로
"
깨달음(무상정등각)으로
이끄는 지혜(智慧)를 가리킨다.
"
그러므로
금강(金剛)이란
산스크리트어
와즈라체디까(Vajracchedikā)
를 뜻(意)으로 풀어서
설해(說解),
해석(解釋)한 것인데
그 뜻은
와즈라(Vajra)와 같이
"
강(强 굳세다)한
힘(力 원력 축원 바램 맹세)으로
절단(絶斷 끊어냄)하는 것
"
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금강반야바라밀경
(金剛般若波羅蜜經)
이라는 제목의 뜻은
"
마음 속의 분별(分別),
집착(集着), 번뇌(煩惱) 등을
모두 부숴내고 깨뜨려서
위 없고 아래 없는
깨달음(無上正等覺)
anuttara samyak sambodhi
즉,
아뇩댜랴샴먁샴보리심
(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으로
이끌어 인도(引導)하는
강력(强力)한
지혜(반야 보리 광명 智慧)의
경전(經典)
"
이라는 뜻이다.
본론(本論)
제 24장(第 24章)
복(福德 공덕)과
지혜(반야 보리 광명 智慧)를
결코 비교(比較)할 수 없다
“
수보리(수부티, 須菩提)야 !
어떤 사람(비구 비구니 沙門,
중생, 佛弟子, 보살 수행자)이
일체(一切)
모든 삼천대천세계
(三千大天世界)에서
제일 큰 산(大山)인
수미산왕(須彌山王, मेरु,
Sineru, Mahāmeru,
수메루 산, 메루산은
힌두교 및 불교의 세계관에서
세계의 중심에
솟아있다는 상상의 산(山)의
통치자(帝王))만큼 한
금(金), 은(銀),
유리(琉璃), 자거(紫磲)와
마노(瑪瑙), 진주(赤珠),
매괴(玫瑰)
등(etc)
7보(七寶 보배)의
덩어리(寶貨)들을 가지고
두루
널리 나누고 베풂하며
보시(佈施)한다고 해도
만일 또 다른
어떤 사람(비구 비구니 沙門,
중생, 佛弟子, 보살 수행자)이
바로 이《반야바라밀경
(金剛般若波羅蜜經)》에서
네 글귀((四句)의
문자 게송(偈頌)만이라도
받아 지니고(受持 得持)
읽고(讀)
외움(頌)하고
다른 사람(他人, 남)을 위해
연설(演說, 法說)해 주었다면
앞에서 말(說)한
복덕(福德 공덕)으로는
백분의 일(1 / 100)에도
차마 미치지(이러르지) 못하고
백천만억분(百千萬億分)의
일(壹)에도 닿아 미치지 못하며
내지(乃至)
숫자(無量數)가 있는대로
모두 다 모아서(無量會合)
비교(比較)하더라도
결코
바로 이《금강경(金剛經)》
또는, 반야바라밀경
(金剛般若波羅蜜經)
즉,
금강반야바라밀경
(金剛般若波羅蜜經)》에
미치지 못하느니라.
”
제 25장(第 25章)
교화(衆生敎和,교단 화합)해도
일체(一切) 행(行)한 것이 없다.
“
수보리(수부티, 須菩提)야 !
너는 어떻게 생각(觀)하느냐 ?
너희(비구 비구니 沙門, 승려,
중생 佛弟子 보살 수행자)들은
여래(如來 불세존)께서
생각(觀, 相, 念, 願)하기를
"
내가(菩薩 修行者)
마땅히
중생(娑婆衆生)을 건져내고
제도(濟度)하리라.
"
한다고
함부로
말(說)하지 말라.
수보리(수부티, 須菩提)야 !
이러한
생각(觀念, 相, 집착상)을
하지 말라.
왜 그러냐 하면
실(實 참)로
여래(如來 불세존)에게는
건져내고
제도(濟度)해야만 할
중생(娑婆衆生)이
일체 없기(一切無) 때문이니
만약
여래(如來 불세존)가
제도(濟度)함이 있다면
여래(如來 불세존)는
곧 [ 나라는 생각 - 我相 ]
[ 남이라는 생각 - 人相 ]
[ 중생이라는 생각 - 衆生相 ]
[ 오래 산다는 생각 - 壽者相]이
아직도
남아있는(有餘) 것이기
때문(緣由 因果 이유)이며,
까닭이니라.
수보리(수부티, 須菩提)야 !
여래(如來 불세존)가
[ 나라는 생각 - 我相 ]이
있다 함은
곧 [ 나라는 생각 - 我相 ]이
있는 것(存在, 空色)이 아님을
말(說法 이야기)하는 것인데
단지,
범부(凡夫 사바중생)들이
[ 나라는 생각 - 我相 ]이 있다고
말(名號 명칭)할 뿐이니라.
수보리(수부티, 須菩提)야 !
범부(凡夫 사바중생)
라는 말(名號 명칭 이름)도
여래(如來 불세존)는
곧 범부(凡夫 사바중생)가
결코
아님을 가르키는
말(名號 명칭)이니
그 이름(名號 명칭)이
단지 범부(凡夫 사바중생)일
따름(연유 이유 까닭)이니라.
”
※
삼천대천세계
(三千大天世界)
불교의 세계관에서
부처(佛) 한 분이 교화를 맡는
세계의 범위로서
대천세계(大天世界)나
삼천대천세계(三千大天世界)
라고도 한다.
불교에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천 개를 묶어서
일천세계(一千世界) 혹은
소천세계(小天世界)라 하며
일천세계 천 개를 묶어
이천세계(二千世界) 혹은
중천세계(中天世界)라 하는데
이러한
이천세계(二千世界)를
천 개 모아야
삼천세계(三千世界)가 된다.
즉,
삼천세계(三千世界)는
1000 × 3 세계가 아니라
1000의 3제곱
십억(十億) 세계인 것이다.
법화경(묘법연화경)에서
예(實例)를 든 비유를 보면
불가(佛家)의
세계관(世界觀)에서는
이러한
삼천대천(三千大天)
세계(世界)가
적어도
오백천만억(五百千萬億)
나유타(那由他)
즉,
아승기(阿僧祇) 개(個)
이상(以上) 있다고
기록한다.
※
ㅡㅡㅡㅡㅡㅡㅡㅡ
※
원문을
해석함에 있어서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見解)와
해석(解釋)으로
오역(誤譯)
오판(誤判)한 부분도
분명하게 있을 것이다.
언제든지
글 내용 가운데
잘못 된 부분은 옳고 바르게
지적(指摘)해 주시고
새로운 가르침을 주시기를
간절히 바램해 본다.
- 마음그릇 心椀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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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그릇 心椀과
함께 배우는 불교
《== 다음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