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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해자』는 어떤 책인가?
『說文解字』는 무려 1萬여 자에 달하는 漢字 하나하나에 대해, 본래의 글자 모양과 뜻 그리고 발음을 종합적으로 해설한 책이다. 즉, 처음 만들어질 때의 뜻과 모양 그리고 讀音에 대해 종합적으로 해설한 중국 최초의 字典인 것이다.
이 때문에 이 책은 한자의 字形을 연구하는 文字學, 字音을 연구하는 聲韻學, 字義를 연구하는 訓詁學, 그리고 儒家의 經傳을 연구하는 經學 등의 분야에서 모두 필독서로 손꼽히고 있다. 그러므로 넓은 의미에서의 중국학 연구의 바탕이 됨과 동시에 그 정수라 할 수 있어, 중국의 전통적인 학문 분야, 특히 中國語學 분야에서는 經典으로 꼽힐 정도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중국 東漢시대의 許愼이 필생의 노력을 기울여 저술한 이 책은 우리나라에는 그렇게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중국인들에게는 經典에 버금가는 대우를 받고 있다.
淸나라 때의 학자 왕명성(王鳴盛)은, 『설문해자정의(說文解字正義)』의 서문에서 "『설문해자』는 천하에 으뜸가는 책"이라고 칭송하면서, "천하의 책들을 두루 다 읽었다 하더라도 『설문해자』를 읽지 않았다면 그것은 책을 읽지 않은 것과 같지만, 『설문해자』에 능통하다면 나머지 책들을 다 읽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를 通儒, 즉 碩學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고까지 하였다. 이 말은 비록 과장되긴 했지만, 『설문해자』의 가치와 중요성이 어느 정도인지를 잘 나타낸 것이다.
『설문해자』가 이렇게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이 책이 東漢시대 이전의 중국 文字學, 즉 漢字學의 연구 성과를 집대성하였을 뿐만 아니라, 고대 儒家의 경전은 물론이고, 諸子百家書를 비롯한 『설문해자』 이전의 모든 문헌들을 해독하는 데에는 그 어떤 책보다 훌륭한 길잡이 역할을 하는 불후의 명작이기 때문이다.
『설문해자』를 저술한 목적
오늘날까지 약 1,900여 년간 중국의 문자학을 대표하고 있는 『설문해자』의 저자는 東漢시대의 許愼이다. 『後漢書』 「유림열전(儒林列傳)」에 보면, 東漢의 대학자인 마융(馬融)이 그의 학문을 높이 추앙했으며 당시 사람들이 "五經에 관하여 허신과 짝이 될 만한 사람이 없다"는 내용이 있다.
『설문해자』는 한 마디로 허신이 필생의 심혈을 기울인 저작으로서, 그가 일구어 낸 학문의 결정체이다. 허신이 이 책의 초고를 완성한 때는 동한의 和帝 때인 서기 100년 정월이었고 그가 아들 許沖에게 명하여 이 책을 조정에 바친 때가 安帝 때인 121년 9월이므로 수정ㆍ보충하는 데에만 약 22년이나 걸린 셈이며, 그가 스승 가규(賈逵)에게서 처음 경전을 배운 때부터 계산하면 무려 40여 년의 정성과 노력을 쏟아 완성한 셈이다.
허신이 살았던 동한시대의 사람들은, 문자란 부모와 자식 사이에 직접 전해지는 것이기 때문에 글자의 모양이나 의미에 변화란 있을 수가 없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당시에 일반적으로 통용되던 예서(隸書)가 바로 창힐(倉頡)이 창조했다는 원래의 한자 그대로라고 믿었다. 그리고 글자의 표준 형태가 확립되지 않은 예서의 글자 모양에 근거하여 문자를 해설한 결과, 황당무계할 정도로 심한 오류가 빚어졌음은 물론이고, 이런 잘못된 문자 해설이 경전의 해석에까지 적용되기에 이르렀다.
漢字를 처음 만들었다는 창힐
예를 들면, '虫(충)'자는 벌레 모양을 본떠 만든 象形 글자인데, 이를 '中'자의 수직선을 구부린 것이라고 잘못 해석했다. 또한 '斗'자 역시 용량을 나타내는 용기의 모양을 형상화한 상형 글자인데, 사람이 '十'을 가지고 있다는 뜻의 會意 글자라고 잘못 해설한 것과 같은 오류를 범하였다.
이와 같은 한자해설의 오류는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자주 발견되는데, 예를 들면 '老'자의 맨 아래 부분 '匕'는 '化'의 본래 글자인데 '비수비(匕)'자라고 한다든지, '精'자는 원래 '쌀 낱알을 고르다'는 뜻인데 '푸른 쌀'로 해설하는 것과 같은 경우이다.
이 때문에 허신은 『설문해자』를 저작함으로써, 각각의 漢字마다 그 字體의 표준을 확립하고 글자의 구조를 올바로 해석함과 동시에, 매 글자의 본래의 뜻과 본래의 음을 밝혀서 경전의 해석이나 일상생활에서의 의사소통을 정확하고 원활하게 하려고 했다.
漢字 部首의 창안
『설문해자』는 중국 東漢시대 이전에 이루어졌던 漢字學의 연구 성과를 집대성한 것으로, 우선 그 규모에 있어서, 표제자(標題字)로 수록한 글자의 수가 방대함은 물론이고, 각 글자의 다양한 형태, 수록된 글자들의 배열 방법, 그리고 종합적인 연구 성과 등에 있어서 아주 획기적인 것이었다.
『설문해자』에 수록된 표제자의 수는 正文이 9,353자이고 글자의 음과 뜻은 같으나 字形이 다른 異體字를 지칭하는 '重文'이 1,163자로서 도합 10,519자인데, 이는 당시 사용되던 대표적인 한자 교육용 교재인 양웅(楊雄)의 『훈찬편(訓纂篇)』에 수록된 글자의 수가 5,340자인 것과 비교하면, 실로 대단한 규모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수의 문자들을 연구하는 것도 그렇지만, 한권의 저서 안에 이 문자들을 조리정연하게 배열ㆍ수록했다는 것은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이에 허신은 모든 한자의 구성 요소를 분석ㆍ정리하여 그 공통된 부분을 추출해냄으로써 한자의 部首를 창안하고, 이 부수에 따라 모든 한자를 분류ㆍ수록하였는데, 이 부수 분류법은 지금도 한자 字典이나 중국어 사전 편찬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설문해자』의 부수는 '一'部로부터 '亥'部까지 540개가 설정되어 있는데, 이 부수 설정의 원칙은 대개 다음의 몇 가지로 추정된다.
첫째, 漢字의 가장 기본적인 구성 요소인 字素 동일한 글자들은 그 자소를 부수로 하였다.
둘째, 자소가 둘 이상이면서 각각의 자소가 모두 부수가 될 수 있으나 이들 둘 이상의 자소가 그대로 합쳐져서 다른 글자의 자소가 되는 경우에는 이 합쳐진 자소를 독립시켜 부수로 삼았다.
예를 들면 '珏(각)'자는 원래 '玉'부에 배열할 수 있으나 '班'ㆍ'-(복)' 등의 글자가 있기 때문에 '珏'을 독립된 부수로 설정한 것과 같은 경우이다.
셋째, 원래는 같은 글자이면서도 그 구조가 서로 다르고, 또 그 각각의 글자들에서 파생된 글자들이 있을 때는 그 유래를 밝히기 위하여 그 각각의 글자들을 부수로 설정했다.
예를 들면 '儿(어진사람 인)'은 원래 '人'자의 '古文'이나, 이를 자소로 삼은 글자들이 있으므로 이것도 부수로 설정한 것이다.
그 다음 단계로는, 이렇게 설정된 540개의 부수 상호간의 배열순서는 어떻게 정했느냐 하는 점이다. 후대의 한자 자전이나 중국어 사전들은 대부분 부수의 필획(筆劃)의 수에 따라 그 순서를 정하여 글자를 검색하기에 편리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허신은 부수의 배열을 '一'부에서부터 시작하면서 첫째, 자형이 비슷한 것으로 서로 이어지게 하고,
둘째, 뜻이 서로 연관되도록 배열하여 글자 검색과 기억에 편리하도록 했다. 이런 부수 분류의 원칙과 부수 배열의 순서는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불합리한 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작업이 약 1,900여 년 전에 처음으로 시도되었고, 또 허신 개인에 의해 창출된 것임을 고려하면 그의 공적은 높이 평가되어야 마땅하다.
마지막으로, 같은 부수에 속하는 문자들 상호간의 배열 순서를 어떻게 하느냐는 문제가 남는다.
지금 대부분의 한자 자전이나 중국어 사전들은 글자 자체의 필획 수에 따라 그 순서를 정하고 있다. 그러나 허신이 표준 자형으로 선정한 소전체(小篆體)는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해서(楷書)처럼 필획의 수가 명확하게 고정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기준으로 순서를 정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허신이 스스로 언급한 바는 없으나, 실제로 『설문해자』에 배열되어 있는 순서를 귀납적으로 정리ㆍ분석해 낸 대략적인 배열 원칙은 다음과 같다.
첫째, 동류끼리 모아서 배열하고,
둘째, 글자의 뜻으로 서로 연결할 수 있는 순서로 배열하며
셋째, 會意字는 해당 글자의 뜻을 취한 편방(偏旁)의 輕重을 가리되 부수가 설정되어 있는 쪽을 우선적으로 배열하는 것 등이다.
字形을 總網羅하다
그리고 『說文解字』에는 허신 자신이 그 당시 볼 수 있었던 한자의 자형은 모두 수록되어 있는데, 여기에 수록된 자형의 종류로는 소전(小篆)을 비롯하여 주문(籒文), 고문(古文), 기자(奇字), 혹체자(或體字), 속자(俗字) 및 기타 이체자(異體字) 등이 있다. '소전'이란 승상 이사(李斯)가 진시황에게 건의하여 중거부령(中車府令) 조고(趙高)와 태사령(太史令) 호무경(胡毋敬) 등과 함께 '대전(大篆)', 즉 주문을 위주로 문자를 정리하되, 어떤 글자들은 필획을 줄이거나 자형을 약간 고치기도 하여 만든 표준 字體를 말한다.
여기서 '주문'이란, 周나라 宣王 때 太史 주(籒)가 『대전(大篆)』 15편을 썼는데, 이 책에 쓰인 자체를 가리킨다.
그리고 '古文'이란 '벽중서(壁中書)'에 사용된 자체를 말하는 데, '벽중서'는 漢 武帝 때에 노(魯) 공왕(恭王)이 자기의 정원을 늘이기 위해 공자의 生家를 철거하다가 그 곳 벽 속에서 나왔다는 책으로 『禮記』ㆍ『尙書』ㆍ『春秋』ㆍ『論語』ㆍ『孝經』 등을 말한다.
또 '기자'란 실제는 '고문'이면서 글자의 구조가 특이한 것을 말하는데, 허신이 『설문해자』에서 실제로 '기자'라고 밝힌 것은 '倉'ㆍ'儿(인)'ㆍ'涿(탁)'ㆍ'無' 등의 네 글자뿐이다.
그리고 '혹체자'란, 허신이 『설문해자』에서 '重文'의 글자 형태와 구조를 해설하면서 '혹종(或從)'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글자를 지칭하며, '속자'는 허신이 『설문해자』에서 '今字라고 지칭한 것도 포함되는데, 이는 그 당시 세속에서 사용한 자체를 말한다.
이들 이외의 이체자로는 한나라 황실의 東觀에 소장되어 있던 여러 서적들에 기록된 글자들로서, 앞에서 거론된 여러 자체들과는 구별되는 또 다른 자체인데, 여기에는 秦라 때의 석각문(石刻文)도 포함된다.
획기적인 체제와 최초의 六書 해설
『설문해자』의 文字 해설 체제는 먼저 소전체(小篆體)를 표제자(標題字)로 맨 앞에 내세운 다음에 그 글자의 뜻을 해설하고, 그 다음에 字形의 구조를 해설하는 순서를 기본 골격으로 하고 있다. 이런 다음에는 경우에 따라 발음을 설명하기도 하고 다른 학자들의 학설이나 참고 자료 그리고 例示文이나 이체자의 구조 해설 등을 덧붙이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이렇게 간략한 해설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도 이 『설문해자』가 비길 바 없이 높은 평가를 받는 주요 원인은, 字義ㆍ字形ㆍ字音이라는 세 가지 요소를 종합적으로 연구 정리하되 그 각각의 本源, 즉 本義ㆍ本形ㆍ本音을 구명하고자 한 데 있다.
먼저 자의에 대해 살펴보면, 한자는 글자 하나가 여러 가지 뜻을 나타내지만, 그 가운데 본의는 하나뿐이며, 이 본의가 구명되고 나면, 이에서 파생되거나 발전되어 나온 인신의(引伸義)라든가, 이 글자의 자음에 의탁하여 생겨난 假借義도 쉽게 찾아낼 수가 있다. 허신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본의를 구명하였는데, 대부분 자형과 자음에 근거하였다. 그리고 한자의 자형에 대해서도 자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 본래의 모양, 즉 본형을 구명하려고 하였다.
이 본형을 구명하는 작업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 바로 한자의 조자(造字) 방법이다. 허신은 『설문해자』 「서(敘)」에서 최초로, 그 당시까지는 명칭만 전해지던 한자의 조자 법칙인 '六書', 즉 象形ㆍ指事ㆍ形聲ㆍ會意ㆍ轉注ㆍ假借에 대한 정의를 천명하였다.
그는 '육서'의 각 명칭 아래에 먼저 네 글자씩 두 구절로 정의를 내린 다음에, 두 개의 글자를 예로 제시해 놓았는데, 비록 허신 이후 지금까지 수많은 학자들이 이에 대하여 나름대로의 정의를 내리고 있어 異說이 분분한 상태이지만, 지금도 이 허신의 정의가 그 기본이 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한자의 발음 즉 字音에 대해 살펴보면, 후세의 사람들은 1918년 '주음부호(注音符號)'가 공포ㆍ시행되기 전까지는 대부분 반절법(反切法)으로 한자의 발음을 표기하였고, 그 이후부터는 주음부호 또는 로마자로 한자의 발음을 표기하는 '한어병음방안(漢語抍音方案)'으로 표기하고 있는데, 『설문해자』에서는 크게 직접 표기법과 간접 표기법의 두 가지로 글자의 발음이 표기되어 있다. 직접 표기법은 '독약(讀若)'이라는 형식으로 발음을 표기한 경우인데, 약 800여 자에 대해 이런 형식을 쓰고 있으며, 간접 표기법은 주로 성훈법(聲訓法)을 사용한 경우와 해성자(諧聲字)의 성부(聲符)로 유추할 수 있는 것 등을 말한다.
성실하고 겸허한 학자의 덕목이 배어난 저작
『설문해자』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문자에 대한 해설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漢字의 字形ㆍ字音ㆍ字義, 세 측면을 정확하게 밝혀내기란 정말 쉬운 일이 아닐 뿐만 아니라, 시대와 지역 그리고 사람에 따라 그 주장과 견해에 많은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
이 때문에 허신은 한자의 자형ㆍ자음ㆍ자의에 대한 자신의 해설을 뒷받침하거나 보충하기 위하여 멀리는 黃帝시대부터 가깝게는 자신의 당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학자들의 학설을 인용함과 동시에, 儒家의 경전과 諸子百家의 책들을 비롯하여 俗語나 方言 및 律令 등은 물론, 심지어는 古詩까지도 인용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경우에는 대부분 저자의 성명과 서명 및 편명 그리고 기타의 출처를 직접 밝히고 있다.
허신은 또 앞에서 열거한 여러 가지의 해설 방식 이외에 '일왈(一曰)', '일운(一云)', '혹왈(或曰)', '우왈(又曰)' 등의 형식으로 자신의 해설을 보충해 놓았다.
이들에 대해서는 허신이 직접 언급한 바는 없지만, 이런 표현들이 실제로 사용된 예들을 귀납적으로 추정해 보면, 대개는 허신 자신의 의견과는 다르지만 참고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거나 나름대로 타당성이 있다고 여겨지는 주장에 대해 하나의 異說로 병존시킨 경우이다.
이 밖에, 『설문해자』에는 또 아무 설명도 없이 그냥 '궐(闕)'이라고만 해놓은 부분도 있는데, 이는 허신 자신이 도저히 구명해 낼 수가 없거나 알아내지 못한 부분에 대해 해설을 하지 않고 그대로 비워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자기가 모르는 것에 대해 함부로 사리에 맞지 않는 주장을 하는 대신, 아무런 언급을 가하지 않고 조용히 후진을 기다리는 허신의 학자로서의 훌륭한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옛 문헌의 올바른 해석에 필요 불가결한 효용가치
그러면 『설문해자』는 어떠한 효용 가치가 있을까? 여러 가지 측면에서 다양한 효용 가치를 논할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아무래도 甲骨文이나 金文과 같은 古文字에 대한 고증과 해석의 교량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유가의 경전과 선진시대의 제자백가서를 비롯한 상고시대의 문헌 해독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길잡이가 된다는 점이라 생각된다.
일례로, 경전 가운데 으뜸으로 꼽히는 『논어』 「學而篇」을 해석함에 있어, 朱子는 『논어집주(論語集註)』에서 '習'자를, "습이란 새가 여러 번 반복하여 나는 연습을 하다는 뜻이다"라고 하였고 '孝'자에 대해서는 "부모님을 잘 섬기는 것이 효이다"라고 하였으며, '온(慍)'자에 대해서는 "온이란 노기를 띤다는 뜻이다"라고 해설하였다. 그런데 『설문해자』를 살펴보면 역시 '습(習)', '효(孝)', '온(慍)'이 동일한 해석과 순서대로 나온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주자도 역시 경전의 해석에 『설문해자』를 참고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 대표적인 경전 주석서인 『십삼경주소본(十三經注疏本)』의 『논어』편에서 하안(何晏)은 '온(慍)' 자에 대해 "온(慍)이란 '화내다'라는 뜻이다"고 주(注)하였는데, 이는 『설문해자』의 뜻풀이와 완전히 일치한다.
그리고 형병(邢昺)은 '왈(曰)' 자에 대해 아예 『설문해자』를 인용하여 "왈(曰)이란 『설문해자』에 이르기를, 어조사이다. '口'를 의부(義符), '乙'을 성부(聲符)로 해서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고 풀이하였다. 이런 간단한 예만 보아도 『설문해자』가 경전의 해독에 얼마나 널리 이용되며, 또 얼마나 필요 불가결한 도구인지 짐작할 수 있겠다.
무릇 한 사람의 학자가 후대에 길이 읽힐 수 있고, 또 그 효용가치를 내내 인정받을 수 있는 저서를 필생의 열과 성을 기울여 펴내기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더구나 허신이 살았던 그 당시의 여건에서 한 개인이 이처럼 방대하고 다양한 자료를 모아 연구 분석 정리하고, 다시 또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여 이런 역작을 저술한 점에 있어서 저자에게 다시 한번 경의를 표할 따름이다.
더 생각해볼 문제들
1. 『설문해자』에 대한 가장 훌륭한 주석서(註釋書)는 누구의 것인가?
淸나라 때 단옥재(段玉裁)의 『說文解字注』이다.
2. 『설문해자』의 六書에 대한 정의는 허신 자신의 창의에 의한 것인가?
현재까지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한자의 조자법(造字法)인 '육서'의 명칭은 유흠(劉欽)의 『七略』에 처음으로 언급되었으나, 이에 대한 정의는 허신에 의해 최초로 이루어진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주의해야 할 점은 한자의 조자 법칙이 먼저 확정된 다음 이 법칙에 따라 한자가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漢나라 시대에 이르러 이미 만들어져 있는 한자 하나하나의 조자 법칙을 분석하여 귀납적인 방법으로 추출한 결과라는 점이다.
3. 『설문해자』에 대한 연구는 어느 정도로 이루어져 있는가?
중국에서는 청나라시대 말기까지 수없이 많은 사람들에 의해 연구가 이루어졌으며, 근년에 현대 중국어 즉 백화(白話) 번역본이 출판되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우리말 번역본이 출간되지 않은 상태이다.
4. 『설문해자』는 어떻게 연구되어야 하는가?
지금까지 이루어진 『설문해자』 自體에 대한 연구 성과를 참고함은 물론, 甲骨文과 金文 그리고 戰國 시대의 각종 지하 자료들에 대한 연구 성과를 입체적으로 참고하여 그 하나하나의 본형(本形)ㆍ본음(本音)ㆍ본의(本義)를 밝히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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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孫叡徹 "동양의 고전을 읽는다"
중국어학자 손예철[孫叡徹]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한 후,
국립대만대학교 대학원 중문과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 취득.
미국 하버드대학교 동아시아학과에서 객좌교수
대만국립정치대학교에서 교환교수.
현재 한국중국학회 회장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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