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안에 거하라(30)_이렇게 하면 성령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_임재 안에서 성령님과 깊은 우정을 향하여(출33:11,요15:9-17) 요한복음 15장으로 갑니다. 여왕복음 15장 9절에서 17절 말씀입니다. 참고 순경음 구절은 출애굽기 33장 11절, 야고 보석 2장 23절, 역대아 20장 7절, 이사여 41장 8절입니다. 불가능하죠. 참고하면, 됩니다. 본문만 펴고 계시고 참고 순경구절 추리굽기 3311 야구부서 2장 23절 그만할까요? 역대하 20장 7절 이사야 41장 8절입니다. 아요. 한복음 15장 9절에서 17절까지 함께 읽겠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에게 이루면 내 기쁨이 너의 안에 있어. 너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나의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나 하는 이것이니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도 큰 사랑이 없노니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함은 곧 나의 친구라 이제부터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는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네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오.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내가 이것을 너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로다. 아멘. 나이 안에 고아라 계속합니다. 형님의 음성을 듣는 시리즈 안에서 지난 시간에 임재를 느끼면서 임재 안에 거하는 법 임재 안에 사는 것까지 나눴습니다. 오늘 임재 안에서 성령님과 어떻게 가장 친한 가장 가까운 진정한 친구가 될 것인가? 함께 나누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제목이 마음에 듭니까? 성령님과의 진정한 친구 오늘 본문에도 친구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그렇죠? 15장 14절입니다.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고 합니다. 나의 명하는 것은 뭐라는가 하면 사랑하는 거라고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거슬러 위로 올라가면 나의 아내 거하라고 그러지 않고 나의 사랑 아내 거하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마지막 결론은 사랑입니다. 결국 우리가 사랑 안에 거할 때 예수님의 진정한 친구가 되는 겁니다. 맨 천국에는 그것밖에 없습니다. 믿음도 소망도 이 땅에 있을 때 필요한 거고, 천국에 올라가면 사랑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천국에서 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사랑밖에 할 수 없는 사람들이죠. 그러므로, 예수님과 친구입니다. 맞나요? 예수님과 친구처럼 지냅니까? 아니면 멀리 계시면서 가끔 불러내려서 원하는 것을 달라고 하는 대상인가요? 친구처럼 어떻게 지내셨죠? 여기 대답이 사랑하면 친구라고 합니다. 이거밖에 없습니다. 그렇죠? 오늘 말씀을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초록기 33장 11절도 말씀을 드렸는데 안 피셔도 돼요. 거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머세와 친구처럼 친구와 대화하듯 머세와 이야기했다. 이렇게 모세가 하나님의 친구처럼 그래서 친구였어요. 아브라함도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의 벗 아브라함 이렇게 말해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벗이 될 만한 사람이던가요? 마누라도 팔아먹고 툭 하면 도망가고 그게 무슨 벗이에요? 망나니죠. 우리는 가능성이 있죠. 암에 훨씬 더 가능성이 있습니다. 영적으로 우리는 이미 아브라함의 자손이고 택한 백성이고 약속을 받은 사람 아브라함이 잘나서 친구가 된 게 아니고 하나님이 그냥 무작정 택하셔서 약속을 했기 때문에 친구라고 하는 겁니다. 그렇죠? 우리도 잘나서 택했기 때문에 아멘 아니에요. 못났어. 택했기 때문에 그거 아니지. 뭘 못났는데 뭐하러 택해? 별 볼일 없어서 그것도 아니고 그냥 만세 이전에 이미 찍어놨기 때문에 택했습니다. 친구로 다음에 여러분 어떤 사람과 친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맨 먼저 어떻게 해야 친구가 됩니까? 아 만나야 만나야죠 만남이 먼저고 그다음에 만나고 나서 그다음에 친하게 이제 가끔 가다 만나는 사람은 아니고 친하게 지내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아 자주 만나야 있는 거 다 해보세요. 그다음에 밥 먹으면 돼요. 그걸 자주 만나면 그것도 하고 이것도 하고 술도 마시고 담배도 아니 내 거라도 많이 주고 그런데 막 주는 거 안 좋아하는 사람도 있거든요. 그러면 친구 되기 힘들어요. 만날 때마다 밥 먹자고. 그러면 쟤는 밥밖에 몰라. 이러면 또 친구 되기 힘들죠. 그렇죠? 친구가 원하는 거 이거를. 그런데 친구가 원하는 게 뭔지 알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대화를 많이 해야 돼요. Okay? 아이 보세요. 여러분 영업도 안 해봤어요? 남편 구워 삶을 때 어떻게 했어요? 아무것도 안 했어요. 야 너 이리 와 이렇게 했어요. 안 하면은 그냥 끌고 왔어요. 힘이 세구나. 잘못 만나면 큰일 나겠어요. 그 남편을 어떻게 구워 삶았어요? 그가 구워 삶았어요. 어떻게 구워 삶던가요? 자주 나타나고 또 여기 나 했고 또 맛있는 거 사주고 마음을 주려고 돈을 안 주고 마음을 주려고 친구가 되려면 원하는 것 중요하고 그 사람을 잘 알아야 합니다. 알아야 친구가 되죠. 싫은 것 자꾸 줘봐요. 얼마나 귀찮겠어요? 그렇죠? 계속 전화만 하고 그래봐야 어떻겠어요? 그러죠? 그러면 예수님과 친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예수님을 잘 알아야죠. 그래야 예수님이 뭘 하면 기뻐하더라 뭘 하면 좋아하더라? 금방 나오잖아요. 예수님이 뭘 하면 좋아할까요? 말로만 사랑한다 하면 안 되거든요. 여러분 사랑하면 좋아한다고 그러는데 사랑이 여긴 답이 나와 있어요. 본문에 말씀을 지키는 거예요. 이제 친구 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죠 그런데 예수님이 먼저 우리에게 친구가 되신 걸 아십니까? 자신의 전보를 다 주고 친구가 되셨잖아요. 하나님을 잘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잘 알아야 되고 여러분도 누군가 친하게 지내려면 그 친구가 가장 좋아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그 친구의 성향이 어떻고 출신인 어디고 뭐 이런 건 조사하잖아요. 영업하러 갈 때 그런 거 다 사람이 어떤 색을 좋아하지? 생일은 언제지? 그 사람이 고기를 좋아하는데 얘는 생선을 좋아해. 그래서 만날 때마다 횟집을 가. 그러면 친구 될 확률이 거의 없죠. 그런가요? 아니겠어요? 그러면 여러분은 예수님을 잘 아세요? 그러니까 친구가 안 되고 멀리 있는 하나님 가끔 방문하는 방문객이요. 그러니까 방문객. 그렇죠? 예수님, 성령님 우리는 지금 성령과의 친구가 되는 거에 대해서 말씀을 나눕니다만 성령님에 대해서 잘 알아야 돼요. 성경님에 대해서 여러분이 아는 건 얼마나 될까요? 와서 막 이 능력을 행하고 예배할 때 막 뜨겁고 뒹굴기도 하고 그렇죠? 또 내일 뭔 일이 일어날 거다 이런 거는 좀 아시죠? 부흥회 때마다 아주 뜨겁게 타오르고 그리고 다음 부흥회 때까지 한참 기다려야 또 뜨겁게 타오르고 이런 분이죠. 아닌가요? 성령님에 대해서 얼마나 압니까? 성령님을 본성을 알아야 돼요. 본성. 그렇죠? 본성은 제가 말씀드렸어요. 사랑과 거루 다 말씀을 드리죠. 성경림은 또 본성이 그렇고 성령님은 하나님이에요. 하나님 아시겠어요? 성령 하나님 성령님은 여러분 하나님처럼 대하십니까? 아버지는 하나님 같고, 예수님은 아들 같은데, 성령님은 왠가 뭔가 악세사리 같지 않아요? 엄마 같아요. 어때요 여러분? 성령님은 뭔가 필요할 때 와서 이렇게 이렇게 열날 때 이렇게 열이 없어지게 하고 이런 악세서리 같은 그런 존재는 아닌가요? 여러분께? 어떤 것 같아요? 성령님을 철저하게 잘 알아야 돼요. 친구가 되려면 그걸 모르고는 우리의 어떤 잠잠한 훈련 이런 게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고 형식이 될 수도 있어요. 친구하고 성향이 너무 안 맞는데 아무것도 모르면서 무조건 앞으로 돌진해서 야 친하게 지내자 해봐요. 어떻겠어요? 그렇죠? 가서 무조건 엇박지르면 되나요? 한 방에 업어쳐서 야 너 같이 살자 이렇게 하면 돼요. 안 돼요. 여러분 어떤 스타일이에요? 일단 돌진해서 모르겠다. 그렇게 합니까? 올 때까지 기다립니까? 그거는 낙방이요. 올 때까지 기다리면 낙방이 안 온 다른 사람한테 가버린다니까 잘 보세요. 성령님의 기본 성품은 물론 오래 참는 것도 있고 사랑과 일화, 과평과 오래 참는 것 잔뜩 있잖아요. 그게 본성이고 성품이고 제일 핵심은 하나님이에요. 하나님. 하나님이라는 걸 까먹으면 절대로 안 됩니다. 이분의 핵심은 뭔가 하면은 신격 하나님 그다음에 인격 이거를 철저하게 알고 계셔야 돼요. 신격자이면서 인격자 하나님이면서 동시에 사람이 갖춘 모든 그런 감정과 성품 이런 것들을 다 가지고 계시죠. 과의 어떤 깊은 동행 안으로 마치 가장 친한 친구처럼 우정을 쌓아나가려면 이런 기본적인 것들이 필요해요. 당연히 자주 만나야 되죠. 친구가 되려면 꾸준하게 만나야 되죠. 그렇죠? 1년에 한 번씩 만나서 친구라고 하면은 되겠어요? 안 되잖아요. 그런가요? 수시로 전화하고 매일 만나고 이래야 좀 친한 친구죠? 아닌가요? 맞잖아요. 그렇게 고민을 하고 그래요. 아브라함의 삶을 보면은 계속 하나님이 간습하면서 갑니다. 여러분 에녹을 잘 알지만 300년 동안 동행했다고 그래요. 그 동행은 뭔가 하면은 아주 밀접한 관계를 말해요. 300년 상상이 갑니까? 우리는 3시간도 힘들잖아요. 3분도 하다가 가면 벌써 이미 멀리멀리 가 계시고 안 그래요. 자 이제 정리를 해 가면서 하나씩 하나씩 들어가 보죠. 성령님은 이런 모든 걸 가지고 계신 분인데 여기에 오늘 본문에 보면은 말씀을 지킬 때 친구라고 예수님이 직접 말했잖아요. 그래서 사랑 안에 거하라고 먼저 말합니다. 그 위에는 내 말의 거하라고 위에 보세요. 실제로 보면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이건 이미 완성되어 있는 거죠. 고려논서 1장 30절 하나님께 일어나서 그리스 안에 있고 그거는 이미 내 말이 너의 안에 거하면 내 말이 너의 안에 거하면 이건 여러분 서언약의 핵심이죠. 말씀을 내 마음에 새기는 핵심이 그러니까 우리가 말씀을 추하로 말씀을 묵상해서 말씀이 내 안에 존재를 있게 하는 게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이고 그게 요한복음 5장 6장 57절에 보면 말씀을 먹어라 라고 돼 있죠. 그러면 너희가 내 안에 거한다. 그래서 주야로 말숨을 묵상하고 말숨이 내 안에 생명으로 살아있게 하는 것들이 내 말이 너의 안에 커가는 걸 말해요. 이게 그러면 내 제자가 되고 과실을 많이 맺는다고 하고 그다음에 아버지의 계명을 지키는 것으로 나오는데 이게 너희 안에 거하면 계명을 지키는 자가 되고 그 안에 거하게 하시는 핵심은 성령이었죠. 세언약에서 요암일서 3장 24절 그렇죠? 성령으로 우리 안에 거하시면서 말씀을 지키게 해서 그 안에 거한다고 말씀을 지키게 한다고 계속했던 거예요. 새언형에서 결국은 성령이 우리에 오셔서 말씀을 지키게 하고 결국 우리 안에 거하게 하고 이게 같이 이루어졌죠. 맞나요? 계속한 거죠. 예 에스겔 3626 세 영을 넣어야 하니 새신을 새 마음을 새 영을 둔다고 그랬고 새한약에 보면 말씀을 새긴다고 그랬고 그래서 영 말씀이 열린 말씀일 때 성령이고 열린 말씀을 우리가 묵상할 때 그게 내 안에 새겨지는 말씀이고 내 안에 거하는 말씀이죠. 그러면은 이제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그와는 관계가 되는 건데 우리는 나면서부터 일단 그 관계 안으로 예수님을 믿는 순간 그와 관계 안에 들어와 있지만 그 말씀을 지속적으로 내 안에 넣는 건 또 다른 문제죠. 그런가요? 계속해서 넣어서. 그럼 충만해지면 열매가 당연히 나타나겠죠. 그렇게 되면 어제 그 다음에 보면 내 말을 지키면 그게 사랑으로 갑니다. 바로 계명이 사랑 안에 거하라 라고 합니다. 내 안에 거하라를 사랑 안에 거하라고 합니다. 결국은 사랑이죠. 그렇죠? 성품이 사랑이라고요. 계명을 지키는 건 사랑하는 걸 말하는 거고요. 그래서 사랑함이 없이 하나님과 임제 안에서 밀접하게 친구처럼 지내는 건 여러분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 사랑은 어떻게 나타납니까? 바로 옆 사람을 사랑하는 것으로 당연히 나타나겠죠. 그런가요? 그런 마음이 없이는 성령님과 친하게 지내는 것은 상당히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그게 성령님의 본성이기 때문에 그래요. 그런가요? 그래서 누군가 미워하면서 동시에 성령님과 깊은 교재 안에 같이 간다. 이건 가능하지 않습니다. 불가능해요. 그래서 그 시간이 아무리 있어도 안 될 수가 있죠. 그러지 않겠어요? 미워하는 마음을 가득 품고 성령님 오늘 함께 동행하길 원합니다가 될까요? 안 되거든요. 그러니까 성령님이 오시면 먼저 내 미워하는 마음부터 해결하기를 계시로 알게 해요. 누구누구를 이제 그만 미워하고 용서해라 이런 것부터 온다고요. 그게 친구 되는 가장 큰 걸림돌이기 때문에 그러지 않겠어요? 그분의 본성이 사랑인데 미움과 미움의 본질은 마귀잖아요. 그래서 마귀와 성령 콜린더스 6장에 보면 안 됩니다. 양립이 불가해요.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그랬잖아요. 그러죠. 이 귀신과 성령이 어떻게 한 자리에 같이 식사를 하겠어요? 불가능하지? 원수인데요. 그건 안 되거든요. 그러니까 우리가 미워하는 감정을 가지고 있다라는 것은 마귀적인 성품이거든요. 그게 태어나면서부터 마귀로부터 유전받아서 내려왔던 것들 그런 거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그걸 가지고 성령님과 동행 어려운 거예요. 그래서 잘 알아야 되는 거예요. 먼저 그 친구의 성향, 친구의 본성이 어떻고 이런 것들을 철저하게 알고 있어야 되는 거죠. 이해 가시죠? 그래서 성령님은 우리가 아는 것처럼 단순한 경험이 아니에요. 단순한 경험이 아니고 어떤 순간이나 찰나에 느끼는 감정 이런 것도 아니고 눈에 보이지 않는 막연한 어떤 연기 같이 공기 같은 이런 그런 게 아니고 하나님이면서 동시에 아주 예민한 인격을 가지고 있는 분이에요. 섬세한 인격을 가진 분이라고요. 그러니까 내가 미워하는 감정을 잔뜩 품고 있으면 성령님은 금방 반응을 해요. 거기에 그래서 예를 들면 둘이 친구를 만나는데 그 친구를 미워하는 마음이 생겨서 만나면 상대방이 금방 알죠? 여러분 부부 사이에 이렇게 있으면 좋기 좋은 사람들 많잖아요. 그래서 내가 여자들이 그래요. 그래서 여자들 조심해야 돼. 여자들한테 그냥 막 나갔다면 큰일 납니다. 계산하는 거 다 알아요. 어떤 한마디를 딱 하면은 여자는 그것대로 안 듣고 제가 이러이러한 생각을 하면서 이런 말을 하는구나 다 알아요. 여자를 조심해야 돼. 가까이 하기엔 너무 멀어. 조심해. 그런데 성령님은 안 그래요. 성령님은 니가 뭔 마음을 가지고 앞에 나왔는지 다 알긴 해요. 그렇다고 이 자식 봐라. 가 아니고 그 마음을 고치게 니가 왜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니? 이렇게 알게 해버리죠 그래서 그런 마음, 성령님이 싫어하는 마음을 잔뜩 가지고 있으면서 친구처럼 지내긴 참 어렵겠죠. 이걸 여러분 철저하게 깨달으셔야 돼요. 이게 인격적인 만남이에요. 두 사람이 앞에서 계속 나눴지만 이 인격적인 만남이 철저하게 유지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그 인격을 존중해야 돼요. 상대방의 인격을. 상대방의 인격을 깔아뭉개서 내에게 맞추려고 하면은 조금 힘들죠? 친구 안 됩니다. 바로 멀어집니다. 그래서 아까도 보셨지만 아브라함이 내 친구라고 그러고 예수님도 너희가 내 친구라고 그랬거든요. 말씀을 지키는 것은 당연히 성령님이 우리에게 오셔서 예수님이 다 지킨 걸 우리에게 넘겨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성령으로 인해서 말씀을 지킬 수가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서로 사랑할 수 있는 존재가 된 게 맞아요. 그래서 친구이기는 정확하게 맞습니다. 그러면 친구이면 항상 같이 자주 만나고 밀접하게 동행을 하는 그런 관계를 유지해야 되잖아요. 그래서 성령님이 그런 어떤 존재라는 거예요. 우리에게 인격적인 존재라는 건 엄청나게 중요합니다. 여러분. 그냥 그런가 보다가 아니에요. 여러분 이 인격적인 존재가 나중에 어디까지 발전을 하는가? 하면 가장 밀접한 관계 안에서 모든 성형의 나타남이 거기서 다 있어요. 능력, 행함, 기적을 일으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 거기서부터 나와요. 친구 좋은 게 뭐냐 이런 말 아시죠? 그건 무슨 뜻이에요? 내가 필요할 때 친구가 뭐든지 다 해주고 이런 관계잖아요. 그러면 성령님께 친구 좋은 게 뭐야? 성령님 충분히 말할 수 있는 거죠. 그러면 이게 인격적인 친한 관계도 아닌데 가서 30년 만에 한 번 나타나서 야 친구는 좋은 게 뭐냐 고등학교 다닐 때 우리 친하게 지냈잖아. 30년 후에 나타나서 그러면은 내가 너를 모르는 거다. 야 너 변했다. 기억이 전혀 안 난다. 야 착각하는 것 같은데, 다른 데 가봐라 그러죠. 아시겠어요? 그 인격의 친밀함에서 나오는 것은 성령님이 나타남을 통해서 성령님, 하나님만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나타나게 해요. 여기서부터 출발합니다. 거기까지 갈 거예요. 나중에 제가 철저하게 이 부분을 알고 계시라고 제가 말씀을 드린 거예요. 그래서 성경님 우리에게 가장 여러분들이 가장 친한 집에 있는 부부보다 더 밀접하고 더 가까운 관계 마치 호흡과도 같다고 그랬죠. 그리고 우리의 삶의 영원한 동반자 안 떠납니다. 남편은 떠나기도 하고 아내도 떠나기도 하고 틀리면 떠나죠. 수가 틀리면. 그런데 안 떠납니다. 죽어도 안 떠나요. 가장 가까운 친구죠. 장가 안 가도 상관없어요. 가장 가까운 친구가 있잖아요. 그렇다고 안 가면 또 그러고 가는 것도 괜찮아. 절친이죠. 절친. 그런데 더 중요한 것 한 가지. 하나님이시라는 거죠. 이해 가시죠? 그러니까 어떠한 존재보다 소중하면서도 어떠한 존재보다 존경해야 할 분이라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이면서 가장 친한 친구 우리는 하나님을 가장 친한 친구로 함께 일생을 함께 하고 있다라는 거죠. 이것만큼 엄청난 재산이 있나요? 그래서 우리에게 자신을 죽일 원하는 세상이 그 어떠한 것보다 세상에 사는 사람들 능력도 구하고 의사도 갈망하고 기적과 표적을 쫓는 사람도 많지만 그건 하나님을 너무 모르는 거예요. 성경을 너무 모르는 거고, 성경 하나님을 너무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거예요. 그건 진짜는 그게 아니에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그분과 친하게 지내면 기적이 필요하면 안 일으키겠죠. 도움이 필요하면 안 도와주겠죠. 그게 핵심이에요. 여러분 그래서 이렇게 고백을 하죠. 나는 성령님을 알고 싶습니다. 라고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고백하는지 아세요? 성령님을 알고 싶습니다가 아니고 성령님의 능력을 원합니다. 이런 걸 고백합니다. 성령님을 깊이 알고 싶습니다. 이렇게 고백하는 사람 없어요? 친구한테 그렇게 하지 않아요. 친구의 능력을 위해서 사깁니까? 그럼 안 되죠. 그런 거예요. 성령님은 이용 대상이 아니에요.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어떤 비인격적인 힘도 아니에요. 어떤 그런 도구도 아니고요. 인격이에요. 그래서 성령님과 함께 걷고 대화하고 그분을 기대하는 삶 이건 단순히 어떤 위기의 순간이나 내 필요에 의해서 나타나야 하는 그런 아니면 사역 현장에서나 확 와서 불을 막 뿜고 이런 그런 데 필요한 그런 게 아니에요. 철저히 하셔야 돼요. 그런 게 아니라 모든 순간, 모든 내가 호흡하는 그런 순간 어떤 발걸음 어디 무엇 항상 함께 동행하는 관계예요. 그 관계 안에서 출발돼야 모든 것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우리는 기적을 일으키고 이적을 일으키고 이런 걸 원하죠. 그래서 예수님이 그 당시 그 땅에 유대 땅에 왔을 때 바리스인들이 기적을 쫓고 이적을 쫓고 그러니까 어떠던가요? 음란한 자라고 그러죠. 패역한 세대라고 그러고 음란한 자라고 그러고 독사의 새끼라고 그러고 이런 말을 하는 이유가 있는 거예요. 그들은 예수님을 원한 게 아니고 예수님이 행하는 기적을 원했던 거죠. 여러분은. 예수님을 원합니까? 예수님이 행하시는 기적을 원합니까? 예수님이 주시는 오병이요처럼 그런 것들을 원합니까? 후자죠. 그러면 친구가 안 되죠. 그러죠. 어떻게 여러분 그분을 대하십니까? 이 성명님은 바로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 와 계신 분이에요. 엄청나지 않아요? 나를 위하여 와 계신 하나님이면서 동시에 나와 친구처럼 지내기 위해서 와 계신다고요? 이 갈망함을 채우지 못해 굶주려 있는 사람들에게 아니면 내가 이 땅에서 무엇을 해도 만족함이 없는 그 사람들에게 만족함을 주기 위해서 어둠 속에 헤매는 자들에게 빛이 되기 위해서 그것을 위해서 와 계신 한 인격적인 존재입니다. 그래서 성령님을 아는 길은 그렇게 어렵지 않아요. 생각보다 너무 쉬워요. 친구처럼 그렇게 그냥 친밀하게 동행하면 됩니다. 너무 쉽지 않아요. 친구를 사귀는데 특별한 공식이 필요합니까? 마음에 이거 하면 기뻐하실까? 이거 하면 좋아하실까? 이런 것들이 먼저 전제되죠. 무슨 조건을 가지고 그런 건 아니잖아요. 그렇죠? 그러죠. 그런데 이 길이 심플하고 아주 우리가 친구 사귀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한 것 같기도 하면서 때로는 대가를 필요해요. 무슨 대가가 필요한가 하면 어떤 대가가 필요할까요? 여러분? 나를 내려놓는 대가가 필요해요. 그거예요. 왜냐하면, 그 나가 누군지는 아시죠. 여러분? 그 나가 내가 아담의 피로 타고난 그 나는 하나님의 성령님의 본성과는 완전히 반대예요. 저주받은 본성이잖아요. 그 저주받은 본성의 가장 큰 본성이 뭔지 알아요?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 하는 거였잖아요. 그래서 그 본성과는 안 어울립니다. 그리고 그 본성은 누군가를 미워하고 죽이고 이 본성이잖아요. 가인이 바로 동생을 죽이잖아요. 그런 거예요. 그런 본성. 우리가 타고난 건 누굴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원수를 맺고 용서하지 못하고 이런 본성과는 전혀 안 어울리거든요. 그래서 그분을 잘 안다라는 것은 나를 잘 아는 거이기도 해요. 그러면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대가를 지불해야 되는데 그게 바로 나를 포기하는 거예요. 그 핵심 성품이 뭔가 교만이라는 거예요. 교만. 교만은 여러분 내가 잘났다고 까부는 것을 교만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교만은 뭔가 하면 하나님 없이도 혼자 얼마든지 내가 잘 살 수 있다 라고 독립적인 마음을 말했죠. 누차 말씀을 드렸지만 우리는 혼자 살 수 있도록 만들어지지 않았어요. 아시겠어요? 혼자 뭔가를 많이 배우고 잘나고 많이 가지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창조되지 않았다니까요. 그것만 알아도 이미 반은 아는 거예요. 혼자 살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고요. 지난 시간에도 했지만, 어떻게 살도록 만들어졌다고요?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 안에 거하도록 우리를 불러서 그 안에 두셨다고 그런 건 뭔가 하면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만 의지하도록 창조 나아졌어요. 그걸 떠나서는 너희가 살 수 없도록 만들어져 있어요. 그래서 나 혼자 뭐든지 할 수 있다. 이게 교만이거든요. 그게 바로 아담이에요. 마귀가 심어준 거라고요. 그걸 가지고는 하나님과 친구 못 돼요. 잠잠히 훈련할 때도 그게 힘들어요. 그래서 내 걸 가지고 내가 뭔가를 관철시키려고 내 원함을 어떻게든지 이루어 보려고 지금 잠잠히 한번 어떻게 하나님과 해보겠다. 이게 잘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그래서 항복이라고 먼저 말씀을 드렸죠. 항복하고 그다음에 임재를 느끼고 임재 안으로 들어가고 임재 안에서 이제 진짜 친한 친구처럼 사는 깊은 우정의 관계 안으로 들어가야 되는데 그 핵심이 바로 나를 포기하는 거에서부터 시작이 돼요. 심플한데 어렵죠. 그런데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령님의 도움을 구할 때 성령님께서 행하시는 일이죠. 그래서 성령님 없이는 우리 신앙생활을 할 수가 없고 성령님과 친하게 지낼 수 있는 가능성이 1도 없습니다. 여러분. 그리고 그 자아에 대한 내려놓음 존재의 끝에 가서 완전히 두 손 들고 포기하는 것 요업처럼 마지막에 아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주님 앞에 되어 들었네요. 이런 것까지 포함을 하고 그 다음에 뭔가 하면은 이 분주한 세상의 소음을 단절해야 내려놔야 돼요. 가장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게 뭔지 말씀드렸죠. 바로 이 미디어라는 거예요. 우리가 가장 많이 보는 스마트폰이요. 24시간 볼 수 있잖아요. 요즘은 횡단보도 건널 때도 이러고 건너더라고. 이게 가능한가 봐요. 가능한가 봐요. 횡단보도 건널 때 주님 하면서 건넌 사람 있어요. 그러니까 여러분 절친이 아닌 거예요. 아직. 자 보세요. 뭔 재미로 살아? 그럼 뭔 재미로 인생을 죽고 말지. 갑갑한 세상 그것도 안 보고 세상 돌아가는 것도 모르고 뭔 재미로 사냐고 뉴스라도 봐야지 정치라도 봐야지 아멘 민주당이 이번에 뭐 하는지 이런 것도 봐야 위험을 피해갈 거 아닌가벼 아멘 성령님이 민주당의 인간들보다 못해요. 그것들이 하는 정치보다 성령님이 못합니까? 민주당이 세상 돌아가는 거 다 알아요. 바보들의 집단 아닙니까? 거기가 우리처럼 우리는 최소한 그들보다 낫잖아요. 그렇죠? 사기치고 공갈 협박은 안 하잖아. 최소한. 그렇죠? 그럼 뉴스에 나오는 거. 그거 하나님이 아실까요? 모를까요? 뉴스에 나오는 거 하나님이 일으켰을까요? 아니면 우연히 일어났을까요? 스마트폰 보는 것보다 주님과 친하게 지내는 게 시간 낭비죠. 어때요 그걸 포기하면 바보가 될 것 같지만 아니에요. 성령님과 가장 친한 친구가 돼요. 그러면 기억나죠? 이거 기억납니까? 위에 것 다 외우고 계셔야 되는데 이거 첫 번째 임재안에 의하면 너의 필요한 모든 것을 거봐. 아직 멀었어. 그러니까 친구 될 자격이 점점 없는 것 같아. 이게 중요하다고. 제가 이거를 알길 원하노라. 그래서 이거 코팅해라고 분명히 코팅한 분 계세요? 누가 했어? 누가 코팅하고도 모르잖아. 뭐 해? 뭐 필요해? 안 되면 화장실에 앞에라도 붙이시라고 제가 누참을 임재 안에 있을 때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진 것이다. 두 번째, 나를 구할 때 모든 것은 제자리로 뉴스에 일어나는 모든 것. 내가 가는 곳마다 제자리를 찾게 된다. 내 안에, 내 가족 안에, 내 있는 곳에 삐뚤어진 모든 것이 그 자리를 찾게 된다. 믿어져요 저는 믿습니다. 그렇게 이루어지는 걸 제가 많이 경험을 하고 있고요. 그게 삶이 그걸 포기한 디카가 얼마나 엄청난 것으로 돌아오는지 세상에 어떠한 것과도 비교할 수 없어요. 여러분. 여러분이 모든 과학과 기술, 그 다음에 모든 걸 다 알고 다 동원해서 무지무지하게 많이 알면은 다 잘될 것 같지요? 아메 돈도 금방 벌어버릴 것 같지요? 아니요. 안 그래요. 주식을 차트만 봐도 내일은 2% 오를 거 안다 이렇게 계산을 통해서 대충 알고 있다. 그러면은 오늘 밤 하루 만에 세상에서 가장 큰 부분자가 될 수 있겠죠? 아니에요. 돈을 거기다가 넣어버리면 되잖아. 그렇죠? 내일 2% 반드시 오른다. 라는 절대적인 확신을 가지고 있는데, 로켓이 한 방 날아왔어. 북한에 저거 불장난하라고 로켓을 한 방 푹 쏘니까 아이고 주식이 20% 푹 떨어져 버리네 성경님은 로켓을 쏠 걸 알까요? 모를까요? 주식이 20% 떨어질까 알까요? 모를까요? 그러면 그 전날 주식을 넣을까요? 말까요? 그러면 뭐라고 그러겠어요? 니 멋대로 해라 하지? 예를 들어서 그렇다라는 거예요. 이해 가시죠? 주식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고 돌발 변수에 대해서 말하는 거예요. 내 인생이 뭐 생길지 알아요? 어떻게 알아요? 그걸 똑바로 듣고 계셔야지요. 졸면서 하면 하면 곤란합니다. 그건 세상에 가장 큰 슈퍼 컴퓨터, 요즘 잘 나가는 양자 컴퓨터를 100대 소유하고 있어도 그건 예측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시간 밖에서 창조와 종말에까지 현재로 다 알고 있어요. 그분과 친하게 지내는 게 낫겠어요? 아니면 파겠어요? 공부를 어떡하겠어요? 부자예요. 여러분은 뭐예요? 그런데 그렇게 안 하시는 것 같아. 스마트폰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도다. 내가 심심할 때 친구가 되고 우월할 때 기쁨을 주고 아메 긴걸들 길 횡단보도 건널 때도 멀리 가지 아니하 치고 할렐루야 스포츠도 금방 요약해서 볼 수 있고 그래서 그 재미를 얻었고 세상에 큰 걸 얻어서 그래서 갈 때 그거 다 가지고 가실 수 있어요. 그러면 또 그래 너나 가지지 말고 나는 다 가질랜다. 속으로 그러실지도 모르겠는데 그게 아니에요. 그 분과 내 가진 모든 것을 바꿀 때 그 임재 안에 거하면서 그분을 음성을 듣고 그분에게 깊은 우정 관계 안에 있을 때는 우리가 지금 세상에서 어떠한 것을 소유한 것보다 가장 비교할 수 없는 거예요. 진짜로 전지전능하시잖아요. 이 땅의 모든 것을 다스리고 운행하시잖아요. 그분과 함께하는 게 더 이상 다른 게 필요할까요? 그 친구처럼 지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게 감각이 도대체 감각이 안 되는 거예요. 지금. 그렇죠? 안 그래요? 그러지 않아요? 그래서 여러분 교회 와서 뭘 하고 하시는가 하면 예수 믿고 뭘 하는가? 하면 멀리 계신 하나님을 섬기고 계시는 거예요. 하나님은 나를 성전삼고 내 안에 와 계신다고 성경에 엄청 나와요. 그런데 멀리 계신 하나님을 섬기죠 안 그래요? 여러분 신앙생활이 그러지 않던가요? 그건 뭐가 잘못된 거죠? 잘못 배웠거든지 뭔가 전통적으로 잘못된 거예요. 성령님을 가장 가까운 친구로 모시고 그분과 함께 걷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제 더 깊이 들어가 보죠. 그래서 그분과의 우정 그건 제일 먼저가 이겁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경외해야 할 대상이고 그다음에 인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친하게 밀접하게 지내야 할 대상이에요. 그걸 위해서 우리에게 와 계신다고 성령이 우리에게 오신 이유는 하나님의 영으로 와 계시고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집행하기 위해 와 계시고 그다음에 집행할 때 그 뜻을 이루어 갈 때 마치 친구관계처럼 행하기를 원하셔요.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분이 아니에요. 아시겠어요? 그게 제 일이에요. 먼저예요. 그래서 그분을 대할 때 우리는 마치 세상에 별 볼일 없는 친구처럼 대하는 것. 그게 아니고 친구이면서도 동시에 완전한 하나님으로 대해야 돼요. 그래서 그분은 하나님에 대접받기도 원하시지만 친구처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기도 원해요. 완전한 인간처럼 느껴요. 완전한 하나님처럼 행하시고 이해하셔요? 그래서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고 하나님으로 경외함을 가지고 있어야 되고 하나님으로 인정을 정확하게 할 수 있어야 우정이 시작이 돼요. 하나님으로 인정 안 하면 답이 없습니다. 어떠한 것도 이루어지지 않아요. 그분 원유하시고 기쁨이 충만하시고 오래 참고 그다음에 내가 느끼는 감정 동시에 느끼고 말씀도 하시고 상처도 받으시고 때로는 아파도 하시고 노여워도 하시고 기뻐도 하시고 기뻐도 하시고 울기도 하시고 그래요. 그런 인격체이시면서 동시에 하나님이 있어요. 왜 그런 인격을 가지고 있느냐 하면은 내가 산 가운데 내가 어떠한 고통을 당하는지 어떠한 아픔이 있는지 어떨 때 기뻐하는지 이런 걸 다 안다라는 거예요. 그것도 모르고 일방적으로 해. 그러면 나를 로보트 대하는 거하고 똑같잖아요. 어떤가요? 성령님이 오셔서 나를 로보트에게 프로그래밍해서 원하는 대로 탁탁 하는 그런 분이던가요? 아니거든요. 나를 인격으로 존중을 한다니까요. 그분이. 그래서 우리도 그분을 인격으로 대할 뿐더러, 하나님으로 대. 그래서 하나님으로 대하면서 인격적으로 대하면서 나를 통해서 대화하고 뭘 하고 할 때 그 말을 듣고 행하기를 원하시는 거죠. 그 관계예요. 여러분 그래야 진정하고 우정은 거기서부터 시작이 돼요. 많은 사람들이 성령님을 대할 때 무슨 선물을 원하고 능력을 갈망하고 이런 관계로 알아요. 은사와 능력 정도로요. 존재 자체, 함께 있는 자체를 귀하게 여겨본 적이 없는 거예요. 그게 인격이잖아요. 친구와의 관계잖아요. 친구를 진짜 친한 친구는 엄청 귀하게 생각하죠. 안 그래요. 마치 그런 관계인데 우리가 알고 있는 성령님은 멀리 있으면서 우리가 원하는 거 기적도 일으켜 주고 막 안수하면 병도 낫게 해 주고 능력 이런 그런 정도만 취급을 했다는 거죠. 그럴 때는 성령님이 우리와 친구가 못 돼요. 그건 하나님인 건 알지만 친구처럼 되기는 이미 너무 멀리있잖아요. 그렇죠? 되게 중요합니다. 여러분 계속해서 무시하면서 친구가 될 수 있어요. 그게 성령님을 무시하는 거죠. 슬프게 하는 거예요. 단순히 능력 정도로만 취급하는 거죠. 하나님이기 때문에 나에게 와서 강압적으로 뭔가 할 것이다. 아니면 기적을 일으켜서 내가 기도하면 만족을 시켜주고 이런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은 성령님을 친한 친구를 무시하는 거죠. 친한 친구는 그걸 행하기 이전에 뭔가 아무것도 주는 것 없고 아무것도 받는 것 없고 아무것도 말하기도 전에도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처럼 그래야 진정한 인격이 형성이 되죠. 인간적인 관계가. 인격적인 관계가 형성이 되잖아요. 우리는 그걸 무시하고 하나님을 대상으로 해서 이용하려고 하는 그런 것들. 어떤 능력이나 힘 정도로만 생각했기 때문에 성령님과의 밀접한 동행을 못 했던 거예요. 그러기 때문에 성령님 안에서 일을 한 게 아니고 내가 따로 나와서 멀리 계시고 나 혼자 열심히 일하다가 안 되면 와서 도와줘야 되는 대상밖에 안 됐던 그건 성령님을 무시하는 거예요. 슬프게 하는 거라고요. 그건 인격적인 대우가 전혀 없는 거죠. 그런가요? 그래서 경외함을 가지고 그분과 친하게 지낸다라는 것은 마치 진짜 친구지만 너무 귀하고 엄청난 분으로 인식을 하고 인정을 해줘야 되는 거죠. 그렇죠? 맞나요? 그래서 가장 많이 오해될 수 있는 부분이에요. 성령님이 마치 무슨 사역의 악세사리 정도나 그렇게 취급을 하는 저도 성령님을 처음에는 그런 능력이나 기도해서 끌어당겨서 기적을 일으켜서 뭔가 우리 삶 가운데 도움이 되는 일을 일으키고 이런 대상으로 저도 알았어요. 그게 아니라는 거예요. 우리 삶의 능력 자체예요. 우리 삶을 있게 하고 우리 삶을 지탱해주는 그 관계의 가장 핵심이에요. 우리 삶을 있게 하는 분, 유지하는 분 그런 분이라고요. 능력을 이용하는 그런 이전에 그런 분이라고요. 그래서 그런 성격을 가진 인격을 가진 분과 친하게 지낼 때 능력은 나오지 않겠어요? 당연한 거죠. 그걸 원하는 거예요. 주님은. 그분은 진리의 영이라고 그래서 우리에게 오면은 내가 어떤 죄가 있고 무엇을 회개해야 되고 무엇을 더 알길 원하고 이런 것들부터 가르쳐 주잖아요. 이거 회개해라, 용서해라 이런 것부터 말하는 이유가 있는 거예요. 그것 때문에 친구가 안 되기 때문에요. 이해 가시죠? 제 가운데 있으면서 친구가 되기 힘들거든요. 거룩하잖아요. 그래서 우리에게 어떤 위기에 처해서 낙심할 때 때로는 위로자도 되는 거예요. 낙심에 있으면서 어떻게 계속 친구관계를 유지하겠어요? 그러니까 낙심하고 고통 가운데 있을 때 뭔가 위로하는 그런 메시지도 주기도 하고 성경을 들춰서 알게 하기도 하고 용기를 내라 하기도 하고 내가 너와 함께하노라. 불 가운데 지날 때도 함께 물 가운데 지날 때도 침몰당하지 않게 이런 말씀이 떠오르게 하기도 하고 이런 거죠. 이해가시나요? 그게 위로잖아요. 함께함의 증거잖아요. 그런 거예요. 그리고 상담자이기도 하시고 조력자이기도 하시고 그런 모든 관계 안에 있으면서 하나님이시고 친구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밀접하게 그 관계를 유지하는 게 실제로는 먼저예요. 그래서 그 관계를 유지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것은 청년님이 계속 계속 알게 하고 터치를 하고 깨닫게 해서 제거하게 하고 제거하게 하고 점점 가까워지고 그렇게 되려면 어떻게 해야 돼? 계속 자주 만나는 게 있어야 될 거 아니에요. 그래서 주야로 우리가 그렇게 만나기를 원하는 거예요. 성령님의 인재연습 로렌스 보셨죠? 그래서 그 책을 제가 보라고 말씀을 드린 이유가 있는 거예요. 그분 그거를 상가운데 실천하면서 그런 것들을 철저하게 행하려고 했던 분이에요. 그런거죠. 그래서 우리가 필요할 때 언제든지 도울 수 있는 분위기도 당연히 합니다. 당연히 도움만을 위해서 그분을 찾는다면 여러분 그분과 함께 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없어요. 그래서 죄에 대해서 책망도 하시고 때로는 막 안에서 슬프도 하시고 뭔가 삐뚤어진 걸 하려고 할 때 안에서 갑자기 막 불안한 마음이 든다든지 전부 이런 게 성령님의 자기 의사표시예요. 누군가를 막 미워할 때 갑자기 이러면 안 되지 라고 쑥 올라오는 게 성룡님의 의사표시예요. 그게 대화라고요. 그 정도로 밀접한 것. 이해가시죠? 그래서 그분은 어떤 것이 아니라고요? 어떤 도구 아닙니다. 그냥 그분은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친구처럼 인격적으로 대해주기를 원하시는 분이에요. 너무 밀접하게 감정까지도 같이 공유하기를 원하는 분이죠. 그래서 이건 신학적인 문제가 아니에요. 신학에서 배울 수도 있는 게 아니라고요. 관계 안에서 스스로 배우면서 터득하는 거죠. 이걸 깨달을 때 여러분 놀라운 일이 일어나요. 그러면 이제 우리가 말하는 방식도 바뀌게 되고 행동하는 것도 조금씩 조금씩 바뀌기 시작합니다. 잠잠훈련하니까 안 그러던가요? 말을 하려고 하다가 이런 거 행동을 하려다가도 이러면 안 좋아하실 텐데 이런 마음이 안 들던가요? 그러죠? 그게 바로 동반자 관계예요. 인격적인 관계, 거룩하고 아주 섬세한 관계라는 거예요. 그러면 점점 뇌가 바뀌게 돼 있어. 그걸 인식할 때 인격적인 관계라는 걸 인식할 때 바뀌게 되는 거예요. 옆에 있는 것도 아니고 내 안에 같이 계신다는 거죠. 그러면 하루를 살아가는 게 그렇죠? 운전할 때도 이제 끼어들기 해도 저럴 수밖에 없죠. 이렇게 된다면서요. 이제 와 저렇게 어떻게 변하나 몰라.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위험하긴 한데 보세요. 옆에 이렇게 아버지하고 손잡고 시장에 가고 있는데, 고양이하고 옆 사람이 지나가다가 이렇게 하면 혼자 갈 때는 어때요? 자식이 조그마한 게 까불고 있어요. 이럴 거 아니에요. 그런데 친한 여자친구하고 가는데 했다고 그러면 하겠어요. 그러면 여자친구가 본성을 알고 금방 도망갈 거 아니에요. 그러죠? 그것보다 더 가까이 계셔. 성룡님이 그러면 나타내는 반응들이나 행하는 것들 말하는 것들이 안 바뀔 수 없는 거예요. 처음에는 막 나오기도 하고 그러다가 점점 이게 나도 모르게 제어가 돼요. 하는 순간 안에서 아이고 슬퍼하시겠네 이게 돼 기분이 별로 안 좋을 것 같은데, 왜냐하면, 내가 상대방이 나에게 어떤 걸 확 할 때 기분이 벌써 안 좋으면 확 올라오죠. 똑같이 그 안에서 올라오는 거예요. 이해 가시죠? 내가 상대방이 뭔가 할 때 저 사람이 확 반응하는 게 안에서 성령님이 반응하고 똑같은 거예요. 이해 가시죠? 내 안에 계신 뭔가의 인격체잖아요. 하나님이시면서 인격체잖아요. 그러니까 내 안에서 그걸 내가 말할 때 상대방이 반응한 걸 똑같이 반응하는 거예요. 왜? 상대방도 인격을 가지고 있잖아요. 모멸감을 주면 상대방이 나를 모욕했어. 이런 속으로 하는 것도 여기 안에는 다 알죠? 그렇게 섬세한 거예요. 그러면 점점 행동이 그런 것들이 점점 하나씩 하나씩 없어지기 시작해요. 그러면서 나를 바꿔놓기 시작하죠. 그래서 뭘 말하려고 하다가도 잠깐 멈추는 일이 생기기 시작하고 그렇죠? 안 그래요? 일단 저지르고 봅니까? 그래도 10번에 한 번, 10번에 두 번 이렇게 가다가 점점 가는 거예요. 그럴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아세요? 그분과의 점점 친밀한 동행이 이루어지기 시작하면서 성령님이 원하는 대로 말하고 원하는 대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그게 그리스도 안에 있는 거예요. 그러면 이게 이루어지죠. 그러면 내가 그 안에 있습니다. 라는 고백이 실제로 한 가운데 일어나면서 만물이 그 발 아래 이렇게 질서를 잡고 하나씩 하나씩 풀어져 가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런데 너무 많은 사람들이 마치 투명인간처럼 취급하죠. 성령님의 존재를 인식하지도 못하면서 교회를 수십 년 다닙니다. 저도 한참 동안 그랬고요. 그리고 이걸 알고 나서부터 그 전에 그냥 교회를 열심으로 다녔던 시간들이 너무 원통한 거예요. 우리 사모님이 얼마 전에 그러더라고. 왜 이제야 가르쳐주냐고. 저보다 오래 했거든요. 그러니까 한 40년을 허송세월 했다. 이거죠. 열받아 죽겠다라는 거죠. 몰라서 막에게 속았다. 이거죠.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면서 성령님을 내 삶에 가장 밀접한 동반자가 아니라 마치 교리의 한 부분처럼 그렇게 대합니다. 그렇게 해서 실패합니다. 여러분 많은 시간 기회를 열심으로 다니면서도 그 인생에 실패하는 그런 경우가 얼마든지 제가 그렇게 실패한 거잖아요. 나의 모든 행동과 말에 아주 섬세하게 반응하고 계시다는 걸 한번 생각해 보세요. 어떻게 막 말할 수 있겠어요? 안 되죠? 그렇게 말할 때마다 안에서 막 슬퍼하고 멀어지고 상처를 받고 이런 거거든요. 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상처를 받아요. 노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고 진짜로 그래요. 그래서 성령님을 슬퍼하게 하지 말라고 그랬잖아요. 소멸하게 하지 말라고. 그만큼 인격적이라는 거죠. 친구가 아닌 어떤 단순한 감정도 아니고 우리 안에서 똑같이 근심하고 그렇다는 거예요. 분주할 때 안타까워하고 이런 분이에요. 그래서 이 신격과 인격을 동시에 경이롭기도 하지만 친밀하기도 한 그분은 내 안에 와서 그러면 왜 빨리 막 안 만들어가? 빨리빨리 해서 만들어버리면 내가 행복할 거 아닌가요? 그런데 그분이 또 인격적이라 기다림이 아주 오래 참으면서 자신을 알아주길 기다려요. 자신의 어떤 감정에 반응해주기를 기다리는 분이에요. 그 정도로 섬세한 분이라고요. 이해 가시죠? 강제로 안 합니다. 그 정도로 인격적이라는 거죠. 제가 여러분께 막 강제로 뭐 하던가요? 엄청 기다리잖아요. 엄청 기다리잖아요. 뭐라고? 율법적으로 이렇게 하시오. 저렇게 하시오. 이런 말 제가 거의 안 합니다. 여러분이 1대1로 만나서 왜 11조 안 합니까? 이런 말 하던가요? 교회 가보세요. 그건 기본적으로 하는 거예요. 집에 개인적으로 찾아와서 11조 내라고 합니다. 안 그러던가요? 그런 거 해보셨죠? 그랬다 보면 큰일 날 것 같고, 몰매 맞을 것 같고, 그래서 세상에 막 분주한 것 때문에 그분과의 친밀함이 그분이 나에게 말하는 음성이 그 안에 묻혀버릴 때는 너무 힘들어하는 거예요. 내가 친구를 막 부르는데 바빠서 지휘를 하느라고 창문에서 이렇게 두드리고 있는데, 이거 막 하느라고 바빠 그럼 그 친구 어떻겠어요? 아이고 나보다 저게 좋은가 보다. 아이고 내가 지 필요한 거 필요하다고 해서 가져왔는데 쳐다도 안 보네 이거지요. 이해 가시나요? 필요하는 거 잔뜩 가지고 와서 두드리고 있는데, 아프니까 다음에 와 진짜 까불지 말고 나중에 오라고 쳐다보고 본 적도 안 하고 막 한 바빠 바빠 죽는 거야. 너무 바쁘니까 지난번에 버스 이야기했죠? 내가 너무 고집이 세고 바쁘고 그러니까 옆에서 손짓을 하는데 이리 오라고 이리 오라고 하는데 1분도 안 남았어요. 이거 타고 가버렸네. 어떻게 됐어요?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버스가 가다가 충돌해서 다 뒤졌잖아요. 그걸 위해서 막 부르고 있는데, 바쁘다고 바쁘다고 그만 부르라고. 그만 부르라고. 그 소리가 다 묻혀버리는 거야. 안 들리는 거예요. 성령님은 계속 말씀하시는데 못 듣는 거예요. 우리가 아시겠어요? 왜 못 듣는지 아시겠어요? 내 안에 너무 많은 생각이 있고 너무 원하는 게 많고 하고 싶은 게 너무 많고 해결돼야 될 게 너무 많고 그러니까 그거야. 그냥 고고. 그거하고 너무 친하게 지내니까 도저히 이게 말씀이 아무리 말해도 안 들리는 거예요. 아시겠어요? 그러면 얼마나 슬퍼하겠어요? 쟤는 아무리 말해도 안 되는구나. 이집사한테 가야지 내가 그런다고 그러지는 않아요. 끝까지 기다려. 내 말을 들을 때까지 끝까지 기다려. 그래서 그분과 밀접한 동행하기 위해서는 말씀하실 때 멈추는 법을 배워야 돼요. 가르쳐달라 해야 돼. 그분이 슬퍼하실 때 슬퍼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아시겠어요? 책망하실 때 두려워 뜨는 것도 알아야 되고요. 하나님이니까. 뭐라고 해라 했을 때는 무조건 순종하여야 하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그 한 번의 순종이 인생을 바꿀 수도 있는 거거든요. 아시겠어요? 그분은 내일 뭘 일어날지 다 알면서 뭐 하라고 말하잖아요. 우리는 내일 모든 것을 예상해서 최선의 선택을 해서 하잖아요. 그분은 내일은 뭐 일어날지 몇 시에 뭐가 일어날지 다 알면서 고기를 지나가지 말라고 하잖아요. 우리는 모든 자료를 종합해서 여기를 가면 그래도 안전하겠다. 해서 가잖아요. 그래서 고기 훅 빠지잖아요. 그런 관계예요. 맞습니까? 그분이 기뻐할 때 기뻐하는 법도 배워야 하거든요. 이해 가십니까? 우리의 매일의 삶에 성령님을 경외하면서 친밀하게 대하는 그런 관계 안에서 이루어지기 시작하면은 눈이 열어지기 시작해요. 어떤 일이 생기는가 하면 보이지 못하는 것을 보는 눈이 생기기 시작해요. 로렌스 형제 책 안에 보면 이런 말이 있어요. 나는 보이지 못하는 것을 보기 위해서 본다 읽었어요. 내가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보기 위해서 지금 본다 역설 같아요. 지금 내가 이 환경 사건을 볼 때 그 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기 위해서 지금 사건을 본다 이런 뜻이에요. 우리는 지금 사건을 보고 분석하죠. 선악가. 그게 선악가예요. 이렇게 이렇게 해서 이렇게 하면 최선의 길이겠지 라고 보죠. 보고 또 보죠. 분석하고 또 분석하죠. 그런데 그 사람은 어떻게 했는가 하면은 그걸 분석한 게 아니고 그 안에서 하나님이 지금 뭘 일으키고 있지? 그걸 보기 위해서 지금 일어나는 환경을 봤대요. 그러면 그걸 보면서 뭐라고 했겠어요? 그럼 성령님 지금 뭐하고 계시지요? 이렇게 안 했겠어요? 그게 바로 하나님으로 모시는 거고, 밀집하게 대화하니까 친구처럼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거죠. 그런데 그거 없이 내가 보이는 대로 분석하고 행해버렸어. 그러면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은 기분이 어떻겠어요? 나를 개똥같이 취급하는구나 그러지 않겠어요? 바로 그런 관계를 말해요. 여러분 그게 거룩한 동행이에요. 그게 우정의 기초예요. 기초. 그게 자꾸 습관이 되면 성령님이 내가 어떤 곳을 싹 들어갔을 때 이 안에 성령님이 계시구나. 아니구나 알아요? 교회에 들어올 때 벌써 성령님이 역사하고 계시구나. 라는 걸 알아요. 오늘 보니까 성령님이 뭔가 더러운 것들이 잔뜩 있구나 이걸 알아요. 그래서 예배하면 제가 그거 알아요. 그래서 제가 영 청소한다고 한 적이 있죠. 다 그런 것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근심하는 것도 금방 알아차려요. 우리가 이제 그런 관계까지 발전한다고. 그럼 어떡하겠어요? 그분이 기뻐하는 것을 행하려고 내가 애쓰지 않겠어요? 본능이 되는 거예요. 그게 슬슬 본능이 되는 거예요. 그러면 여러분 우리의 삶에 전부가 기적이에요. 삶의 모든 부분이 기적이 된다고 아시겠어요? 눈빛만 봐도 우리는 서로 알아차리 전화예요. 아메 성령님도 그런 관계 되지요. 당연히 당연히 되지요. 그래서 내게 가까이 다가오는 것도 느낄 수 있어요. 벌써 임재가 강하게 온다는 것도 금방 알 수 있어요. 하나님이 슬퍼하시구나. 그래서 지금 기름을 붓지 않고 계시구나. 역사를 안 하고 계시는구나. 불에 임하지 않고 계시면 금방 안다니까요. 더 인정하고 더 인정할수록 그분은 우리에게 자신을 더 많이 나타내는 거예요. 그런 관계예요. 그게 인격이고 그러면서 그가 고통스러워할 때 알아주는 인격을 넘어서 왜 고통스러워하지? 알게 되는 신격에까지 우리가 점점 접근하게 되는 거죠. 이해가시죠? 가깝다는 이유로 무시하지 않죠. 하나님이기 때문에 나와 가까이 계시는 그 놀라움 때문에 우리는 더 존경하고 더 가까워하고 더 아끼죠. 그런 관계예요. 여러분 내가 그분과 함께 동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그 순간만으로도 그걸 아는 것만으로도 우리 삶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그래서 그 안에 있을 때 항상 그 임제 안에 있을 때 사역 안에 여러분이 발걸음이 닿는 그곳에 어떤 일이 일어나나 보세요. 진짜 이게 일어납니다. 진짜로 일어나요. 여러분 진정 친구가 되기를 원하시면 그분이 기적이나 일으키는 도구로 생각하는 그것 포기해야 돼요. 내가 필요할 때나 나타나는 어떤 그런 물리적인 보이지 않는 비인격적인 힘이나 그런 대상으로 생각하는 걸 다 내려놓으셔야 돼요. 그걸 회개하셔야 돼요. 아주 철저하게 회개해야 돼요. 단지 내 삶의 가장 소중한 인격체로 대하기 시작해야 그때부터 동행이 시작이 됩니다. 우정은 존경에서부터 와요. 그리고 시간이 깊어가면서 점점 우정은 깊어가고 그리고 믿음도 점점 깊어가죠. 성령님과의 관계도 똑같습니다. 존중에서부터 시작해서 자주 만남으로 깊어져 가고 믿음으로 점점 강하게 됩니다. 신뢰를 유지하게 되죠. 음성을 들려줬는데 순종하니까 청난 기적이 일어나는 걸 한 번만 경험해 보세요. 그런가요? 그러면 신뢰가 계속 쌓이겠죠.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합니다. 전화해라. 뭐 이런 거. 음성이 아니라 감동으로 와요. 그러면 전화를 하죠. 그럼 그다음에 와 이런 일이 내가 절대로 불가능한 그 사소한 것 하나 했는데 이 엄청난 일이 일어나버리네. 그러면 어떻겠어요? 오 이거 괜찮네. 친하게 지내는 게 좋겠지 않겠어요? 이런 일이 예를 들면 그런 나를 위하여 뭘 해줄 수 있는 분이 아니라 나와 얼마나 가까이 계신 분인가 라는 인정을 해주기를 원합니다. 그게 능력의 원천이에요. 그 관계가 친구가 고통을 당하면 멀리서부터 빨리 뛰어오잖아요. 제일 먼저 뛰어오잖아요. 안 그래요? 그 관계처럼요.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경외함을 인정을 하고 그분의 마음을 막 온몸으로 느끼면서 이렇게 고백을 해야죠. 성령님 나는 당신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가장 존중합니다. 나의 삶의 모든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모든 것인 줄은 아시죠? 이제 맞나요? 우리 삶에 생명을 준 분이잖아요. 그리고 유지하는 분이잖아요. 친구처럼 밀접하게 지내면서 나를 지키고 보호하고 내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기를 원하고 함께 일하기를 원하는 분이잖아요. 그래서 우리 삶의 전부예요. 사실은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삶의 전부인 거예요. 그 안에 있는 게 임지 안에 있는 게 임지 안이 거하는 게. 그래서 매일 꾸준한 관계를 통해서 그걸 계속 발전시켜 나가는 거예요. 그게 친밀함이고 여러분 사김이라는 거예요. 요한일세에 나오는 1장 3절에. 그와 함께하면 아버지와 그 아들과 함께하면서 친구처럼 사귀는 거라고 코이노니아 교제 그게 그 말이에요. 특별한 집회를 통해서만 가끔 경험하는 불 같은 그런 존재가 아니고요. 많은 사람들이 그 인격으로 친구처럼 교제를 가꾸는 대신에 능력을 쫓고 귀족을 쫓고 경험을 쫓습니다. 그래서 부엉이 하면 타올라왔던 그걸 가지고 있다가 부엉에 다음 부엉에 할 때까지는 싹 꺼져버리고 그럼 다음 부엉에 또 기대하고 있다가 확 타오르는 그런 관계가 아니에요. 아시겠어요? 칠흑같이 어둠울 때도 아무리 불러도 응답이 없는 것 같이 조용할 때도 그때도 변함없이 함께하고 계시다 라는 것을 인정해 줄 때야 우리의 삶의 동반자가 됩니다. 잠잠할 때는 이유가 있는 거예요. 아시겠어요? 아멘 어떤 감정의 파도처럼 그런 분이 아니에요. 내가 기분이 이렇다고 그냥 무시하는 그런 분이 아니에요. 가장 핵심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 함께한다는 거예요. 그게 시작이에요. 우리는 어떤 위대한 것만, 큰 일만, 그런 것만 기대하잖아요. 하나님과 함께할 때 아니에요. 그건 가장 가까울 때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거예요. 이해가시나요? 그분 안에 임재안이 거할 때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하나의 결과물이라고 기적과 이적 이런 것들은 우리는 그걸 원하죠. 그래서 안 되는 거예요. 실패하는 거예요. 이해 가시나요? 그 로렌스의 말처럼 설거지할 때도 함께 하길 원하는 분이에요. 여러분 그런 분이라고요. 운전할 때도 함께 하길 원하는 분이에요. 그래서 나갈 때 주님 오늘 같이 가시죠. 운전대 좀 맡겨드립니다. 이렇게 합니다. 요즘 자율주행이 나와서 좋긴 하더만 운전대 놔도 되드래 기대하시라. 그런 차를 곧 살까 합니다. 여러분이 살아 해서 우리가 어떤 고요한 가운데 차를 한 잔 마시고 있을 때도 함께 하기를 원하는 분이에요. 그분은 되게 외로움을 많이 타요. 왜요? 지난 시간에 했잖아요. 나 안에 함께 와서 함께 살기 위해서 와 있는데, 저쪽 방에 두고 그냥 멀리서 동거하는 그런 방문객이 아니라니까요. 외로움을 무지 많이 타요. 오늘 다 까먹어도 그것만 기억하세요. 성령님은 외로워하신다. 나 때문에. 옆에 이집사하고 아무리 같이 놀아도 소용없어요. 외로워하신다. 삶의 모든 부분에 그분은 초대받기 원하신다. 초대할 때 하나님으로서의 어떤 역할을 폼나게 하길 원하시는 분이에요. 내가 아니라 초대받은 그 자리에서 하나님이 할 수 있는 것만 하시는 분이에요. 멋지지 않아요. 그런데도 우리는 아까도 그랬지만 쫙 보고 모든 걸 계산해서 내가 행하다가 안 되면 도와주세요. 하지 그러면 안 도와줍니다. 쫙 보고 성령님 뭘 하고 계시지요? 내가 뭘 하면 좋을까요? 이게 외롭게 지내지 않는 거죠. 그러면은 가만히 있어라. 내가 알아서 한다. 마. 제가 얼마 전에 그랬잖아요. 가만히 있으라마 내가 알아서 할게. 경상도 사투리로는 안 해요. 잠잠히 있어라. 내가 알아서 할 기다. 그리고는 알아서 하셨어요. 그리고는 다니엘 기도 해라. 아멘. 그래서 했어요. 그래서 평정이도 했어요. 그럼 나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하겠어요? 아이 진짜 장장을 그렇게 못 맞추시다니? 일단 분석해야 될 거 아니에요. 어떻게 하지? 저 자식을 내가 어떻게 처리하지? 이렇게부터 나오잖아요. 그러니까 10편, 37편에는 저 자식이라고 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그래요. 저 자식 하면 니가 죄 짓는 거니까 흥분 흥분도 하지 말고 노여워하지도 말고 원망도 하지 말고 불평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라. 내가 어떻게 하는지 지켜봐라. 까불면은 그게 죄다. 그리고는 어떻게 하는지 다 나와 있어요. 시편 37편을 또 묵상하세요. 가서 아시겠어요? 이제 끝내죠. 우리는 삶의 모든 부분에 있어서 그분의 성전이에요. 그분을 담고 있는 성전. 그래서 우리는 어떤 역할인가? 예수님이 나귀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했죠. 그 나귀가 바로 나예요. 나는 성령님의 임재를 실어나르는 나귀입니다. 아메 나귀가 가면서 주님 자러 가겠습니다. Okay 하고 갑니까? 이리야 이리야 하면 오른쪽으로 가죠. 왼쪽 툭툭 치면 이쪽으로 가고 오른쪽 툭툭 치면 이쪽으로 가고 이렇게 하죠. 그리고 가서 결국 어디로 가던가요? 예루살렘 성 평화의 터전 일곱 날 평강 안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그럼 내가 가는 곳마다 일곱 날의 평강 안으로 들어가는 역사가 내 임재를 실어나르는 것. 그게 제가 그저께 묵상한 거예요. 그림도 다 그려놨어. 여러분들께 프린트해서 드릴게요. 우리예요. 나귀가 멋대로 가면 되겠어요. 하나님을 실어나르는 성령의 임재를 실어나르는 역할이에요. 우리가 그런데 수련을 할 때 인격적인 교감을 하면서 가야 돼요. 왼쪽으로 가라. 그러면 잘 듣고 가야 되는데 잘 못 들어서 계속 오른쪽으로만 가고 있어. 그러면 어쩌겠어요? 이렇게 하겠어요? 아니요. 기다려요. 듣고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갈 때까지. 그런데 삶의 모든 부분에서 자신의 임재를 실어나가기를 원해요. 그래서 내 가정에 내가 있는 곳에 임재가 있으면 애를 살려요. 평화의 터전이 되는 거예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죠. 내가 가서 그거 안에 평화를 이루려고 해보세요. 되는가? 죽어도 안 됩니다. 제가 전화하면 뭐가 돼요? 왜 되는지 아세요? 성령님 어떻게 할까요? 혀를 놀리게 하소서 그렇게 하면서 합니다. 그래서 평화가 이루어지는 거예요. 안 그러면 그 환경을 보고 미쳤어 그따위로 그래 이렇게 바로 하죠. 안 그러겠어요? 남편하고 통화하면 안 그래요. 나이도 어린 것이 그렇게 하면 되겠어요? 이렇게 당장 할 거 아니에요. 그러면 안 됩니다. 여러분. 이건 인격이기 때문에 꾸준히 시간을 들여야 돼요. 내 안에 계신 걸 아시고 계속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을 할 필요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아침에 들리든 말든 하는 거예요. 그게 여러분 내겐 안 들려도 그분은 뭔가 하고 계신 거예요.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세요? 그래서 그분을 위한 자리를 내 삶에 만들어야 돼. 나귀에 탈 곳이 없어. 짐을 잔뜩 싣고 어디로 가야 하나? 짐이 무거우냐? 홀로 치고 가기에 그러면서 교과서 촬영하면서 눈물이나 흘리고 있어. 아이고 주위 어디 계시나이까? 내 인생 왜 이럽니까? 주님 그러다가 열받으면은 또 씨. 내가 이렇게 했는데 응답도 안 하고 XX 같은 뭐 이러면서 또 주린 잘못했어요. 어떻게 하면 좋아요. 그래도 아무 소리 안 들려 들리나? 등에 짐을 잔뜩 지고 있어서 예수님이 탈 자리가 없어요. 그래서 예루살렘으로 안 가고 제멋대로 가는 거예요. 제멋대로 무거운 짐을 지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 쉼없는 방랑을 하는 거요. 그러면서 교회는 얼마나 오래 다녔는지 아세요? 수십 년을 다녀도 아직도 왜 이럽니까? 내 인생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지요. 혼자 열나게 애매고 다녔으니까 짐을 지고 남편 짐 지고 다니고 애새끼 짐 지르고 다니고 아이고 돈이 없어서 치고 다니고 아멘 그래서 인생이 괴로운데 왜 그런지도 몰라 제가 10년 전부터 말했는데도 눈치도 못 채 안타까워 죽겠습니다. 제가 그렇게 교회 다녀서 슬픔만 충만하고 우리는 그렇게 살도록 만들어지지 않았어요. 나귀가 갈 때 어떤 모습으로 가는지 아세요? 입이 빵긋해서 갑니다. 제가 그림을 나눠드릴 테니까. 입이 빵긋하면서 갑니다. 예수님도 입이 빵긋하면서 노래를 부르면서 갑니다. 서로 교감하면서 여러분 어떤 예수님을 태우고 계세요? 뭘 예수님을 태워? 잔뜩 짐을 태우고 있지? 진짜 인생에 짐을 지고 아이고 왜 내 인생이 이렇게 힘들고 고통스러우냐? 지금 웃을 때예요. 엄마가 통곡을 해야 될 텐데 그러니까 아직 모르는 거야. 지금 짐을 지고 있는지 아닌지도 모르는 거야. 예수님을 태우고 왼쪽으로 가자. 그러면 아멘 하면서 가세요. 설마 사실은 몰겠어요. 사실은 몰아도 아멘 하면서 가야죠. 돌에 맞으면 살렐로야 이렇게 가야죠.
1. 성령님과의 친구관계 이해 1-1. 사랑하는 것과 친구 - 요한복음 15장에서 예수님과 강렬한 사랑을 얘기함 - 이 사랑은 아버지의 계명을 지키며 거하는 것을 의미함 - (중요)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하면, 우리의 기쁨이 그 안에 있음 - 친구와의 사랑은 상호 이해와 노력에 의해 발전함 - 사랑이 친구관계의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강조함 1-2. 성령님과의 친구관계 - 예수님은 아버지의 명령을 지키며 사랑하는 것을 강조함 - (중요) 성령님을 잘 알아야 친구가 될 수 있음 - 성령님의 본성과 사랑을 이해해야 함 - 성령님은 예수님처럼 우리에게 필요한 때에 찾아와 도움을 줌 - 성령님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중요하다는 주장을 함 1-3. 성령님과의 친구가 되는 방법 - 성령님과의 친구가 되는 것은 사랑과 이해를 바탕으로 함 - 이를 위해 우리는 상대방을 자주 만나고, 그와의 관계를 발전시켜야 함 - 친구가 되기 위해선 상대방의 선호와 취향을 이해해야 함 - 이해를 바탕으로 서로 사랑하며, 필요한 부분을 채워야 함 - (중요) 성령님을 잘 알면, 사랑하는 마음으로 다가갈 수 있음 2. 사랑과 성품 2-1. 친구와 동행 -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친구와의 동행의 중요성을 강조함 - (중요) 성령은 우리가 아는 것처럼 단순한 경험이나 감정이 아닌 하나님이면서 동시에 인격적인 분이기에 우리가 미워하는 감정을 가지고 있다면 성령은 반응함 - 성령은 우리가 아는 것처럼 단순한 경험이나 감정이 아닌 막연한 연기나 공기가 아님 - 우리는 성령의 본성을 알고 그분이 우리의 미움의 본질에서 벗어나게 해야 함 - 성령은 우리가 사랑함으로 나아가도록 이끌어 주심 2-2. 사랑과 계명 - 말씀을 지키는 것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이루어짐 -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순간, 그분과의 관계 안으로 들어가지만 말씀을 지속적으로 넣어야 함 -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사랑과 계명을 지킬 수 있는 존재가 됨 - 우리가 사랑함으로 나아가려면 옆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나타남 - 성령은 우리가 사랑과 계명을 지키도록 우리의 마음을 가르쳐 주심 2-3. 사랑과 성품 - 사랑과 계명을 지키는 것은 성령과의 친밀한 관계를 통해 이루어짐 - 성령은 우리가 아는 것처럼 단순한 경험이나 감정이 아닌 하나님이면서 동시에 예민한 인격을 가진 분이기에 우리가 미워하는 감정을 가지고 있다면 성령은 반응함 - 성령은 우리가 아는 것처럼 우리가 사랑함으로 나아가도록 이끌어 주심 - 성령은 우리가 사랑과 계명을 지키도록 우리의 마음을 가르쳐 주심 -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우리가 사랑과 계명을 지킬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함 3. 친한 관계 3-1. 친한 관계의 중요성 - 성령님은 우리를 인격적으로 여기시고, 친한 관계를 맺으려 하심 - 성령님은 우리가 인격적으로 서로 어울리고, 모든 성령님의 능력을 나타내도록 하심 - 인격적인 친한 관계는 성령님의 능력과 함께 나와야 함 - 하나님이시며, 우리와 가장 밀접한 친구이신 하나님을 알리는 것이 중요함 - (중요) 우리가 예수님을 원하는 것과 예수님을 행하시는 기적을 원하는 것은 아님 3-2. 성령님과의 친밀한 관계 - 친구가 되려면 나를 내려놓고, 포기해야 함 - 아담의 피로 태어난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님의 본성과 반대되는 본성 가짐 - 가인은 동생 아벨을 질투하고 원수를 두려 함 - 교만은 독립적인 마음을 의미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거해야 함 - 그리스도를 의지하도록 창조되었으니,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살 수 없음 3-3. 친한 관계의 출발점 - 친한 관계는 성령님과의 동행에서 시작됨 - 성령님은 우리의 모든 순간과 발걸음을 동행하심 - 기적과 이적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나타나야 함 - 예수님은 기적과 이적을 행하시는 분이심 - 친구가 되기 위해선 마음가짐이 먼저고, 그 과정에서 대가를 지불해야 함 4. 항복과 우정 4-1. 항복과 친밀한 우정 - 나를 포기하고 친하게 지내는 것이 우선임 - 성령님의 도움이 있어야만 함 - 자아를 내려놓고 존재의 끝에 다가가야 함 - (중요) 세상 소음이 아닌 성령님과의 친밀한 우정을 구해야 함 - 스마트폰이 세상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설명함 4-2. 성령님과의 친밀한 우정 - 나를 구할 때, 내일의 모든 것에 성령님의 음성과 우정이 포함됨 - 과학기술과 기술적 지식이 무지무지한 상황에서도 성령님을 의지해야 함 - 로켓 발사와 주식 투자에 대한 비유를 통해 성령님의 통찰력을 강조함 - 돌발 변수에 대비하기 위해 하나님의 예측과 뜻을 믿어야 함 - 삶에서 가장 큰 슈퍼 컴퓨터와 양자 컴퓨터를 언급하며 인생의 예측 가능성을 시사함 4-3. 성령님과의 우정 - 성령님을 가장 가까운 친구로 모시고 함께하는 것이 중요함 - 성령님은 하나님이시며, 우리를 성전에 모시고 함께하기 위해 오심 - 우리는 세상의 별 볼일 없는 친구가 아닌, 완전한 하나님으로 대해야 함 - 성령님은 우리가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경외하며 우정을 나누는 데 도움이 됨 - 하나님으로 인정되지 않으면 우정이 시작될 수 없음을 강조함 5. 진정한 관계 5-1. 성령님을 대하는 자세 -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인격적인 대화를 나누고 기적을 행하기를 원함 - 성령님을 원하는 대상으로만 보고 그분을 무시하는 것은 옳지 않음 - 친구와의 관계처럼 성령님을 통해 기적을 일으키는 대상으로 여기면 안 됨 - 친한 친구는 그분을 함께하고 도와줄 수 있는 동반자가 되어야 함 - 성령님은 우리의 삶을 있게 하고 유지하는 분임 5-2. 성령님을 인격적으로 대하는 법 - 성령님은 우리가 겪는 위기에서 낙심하지 않고 위로와 희망을 주는 존재임 - 성령님은 우리가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능력을 발휘하기를 원하심 - 성령님은 우리가 외로울 때 함께하고, 고통과 낙심에서 위로해 주는 대상이 되어야 함 - 성령님을 인격적으로 대하며 스스로 깨닫고 성숙해지면 우리의 행동 방식도 변화함 - (중요) 동반자 관계는 인격적인 관계이며,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맺는 방법임 5-3. 동반자 관계의 중요성 - 동반자 관계는 신학적인 문제가 아니라 관계 안에서 스스로 배우고 터득하는 과정임 - 성령님은 우리의 죄를 책망하고, 막 안에서 슬퍼할 때 등 다양한 경험을 통해 의사표현을 나타내심 - 성령님은 우리가 깨닫고 스스로 변화할 때까지 인격적으로 대하고 함께하기를 원하심 - 우리의 삶에서 성령님을 인격적으로 대할 때, 우리의 언행 방식도 변화하게 됨 - 우리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인격적인 관계를 인식하고 행동하는 방식을 바꿔야 함 6. 성령님과의 친밀한 동행 6-1. 성령님과의 관계 형성 - 아버지와 손잡고 시장에 가는 중, 고양이와 친밀한 상태가 됨 - 고양이가 주변의 사소한 일에 관여할 정도로 성령님이 주변에 친밀하게 존재함 - 이로 인해 아버지가 주변 사람의 관심을 끌 수 있어 상대방이 불편해할 수 있음 - 성령님은 내 안에 계시며, 내 행동에 섬세하게 반응함 - (중요) 상대방이 나에게 반응하는 것과 똑같이 반응하게 됨 6-2. 성령님과의 친밀함이 가져오는 변화 - 성령님과의 친밀함이 점차 강화되면서, 성령님이 원하는 대로 말하고 움직이게 됨 -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을 의미하며, 이를 통해 나를 바꿔놓는 시작이 이루어짐 - (중요) 점차 행동에서 이탈이 생기기 시작하며, 나를 더 바꿔놓는 데 일조함 - 이런 변화를 통해 내가 상대방이 나에게 반응하는 것과 똑같이 반응하게 됨 - 이로 인해, 내 안의 인격체가 나타나게 되며, 상대방도 인격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됨 6-3. 성령님과의 친밀한 동행 - 성령님과의 친밀한 동행은 성령님의 음성을 듣고, 그 음성에 순종하는 것을 의미함 - (중요) 성령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매우 중요한데, 이는 상호 간의 효과적인 대화를 가능하게 함 - 성령님은 내 말에 순종하라고 요구하며, 이는 내일 모든 것들을 예상해서 안전하겠다는 의미를 가짐 - 성령님은 기뻐할 때, 슬퍼할 때, 엄청 강력하게 다가올 수 있음 - 이로 인해 내가 내 안에 있는 성령님을 슬퍼하게 하지 말고, 이로써 행복해질 수 있음 7. 친구 관계 7-1. 동행과 우정 - 하나님을 모시고, 친구처럼 대화하며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함 - 분석하고 행함으로써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을 무시하면 안 됨 - 교회에 들어올 때 이미 성령님이 역사하고 있음을 알아야 함 - 성령님이 내게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음 - 기뻐하는 것을 행하려고 노력하지 않게 됨 7-2. 동행을 위한 회개 - 성령님이 내게 가까이 계시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함 - 동행하기 위해서는 물리적인 보이지 않는 힘이나 힘을 포기해야 함 - 회개를 통해 내 삶의 가장 소중한 인격체로 대처해야 함 - 동행은 우정에서 시작하여 믿음으로 깊어짐 - 신뢰를 유지하고, 음성을 듣는 것을 순종함으로써 기적이 일어남 7-3. 친구와의 관계 유지 - 친구가 고통을 당하면 멀리서부터 빨리 뛰어옴 - 친구처럼 사귀고, 교제를 통해 동반자가 되어야 함 - 친구의 삶에 동참하고, 생명을 주고, 보호하고, 필요한 것을 공급하기를 원함 - (중요) 친구 안에 거하며, 임지 안에 거하는 것이 중요함 - 친밀함과 사귐을 통해 친구가 되어야 함 8. 수련과 임재 8-1. 내 인생을 향한 나귀의 여정 - 시편 37편을 묵상하며, 자녀를 '저 자식'이 아닌 '가만히 있어라'고 함을 강조함 - 자녀가 흥분, 노여움, 원망, 불평을 하지 말고 지켜보라 함 - 내 인생을 나라는 성령님의 임재를 실어나르는 나귀로 비유함 - 나라는 성령님의 임재를 가르는 역할로, 왼쪽으로 가면 잘 듣고 오른쪽으로 가면 잘 못 듣는 것과 같이 가르침을 받아야 함을 설명함 - (중요) 인격적인 교감을 통해 내 가정에 내 인생의 임재가 있도록 해야 함을 강조함 8-2. 내 인생의 나귀와 예수님 - '나귀'는 예수님을 태우고 가는 교감의 나귀로 비유함 - 나귀가 가는 곳마다 일곱 날의 평강 안으로 들어가 역사하듯, 내 인생의 임재도 일곱 날의 평강이 되어야 함을 강조함 - 평화가 이루어지려면, 내 인생의 임재가 내 가정에 있어야 함을 설명함 - 내 인생의 임재가 평화를 이루는 데 있어 놀라운 역사를 일으킨다고 함 - 내 인생의 임재가 내 가정을 평화의 터전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함을 설명함 8-3. 수련을 통한 인생의 깨달음 - 수련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고 깨달아야 함을 강조함 - 인생의 고통과 힘듦을 인정하고, 예수를 태우고 나아갈 때 인생이 풍요워짐을 설명함 -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모든 것이 풍요워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고 깨달아야 함을 설명함 - 인생의 임재가 내 인생의 인격적 교감을 통해 나아갈 때, 내 인생이 가는 곳마다 일곱 날의 평강이 되어야 함을 강조함 -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고, 내 인생의 임재가 가는 곳에 집중할 때 인생이 풍요워짐을 설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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